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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중국선교연구원 http://www.inbor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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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훈련
영적 성품은 크리스챤인 우리 삶의 기본이다. 우리 삶의 모든 것의 기본이다. 은사와 영성은 전혀 다르다. 은사는 영성이라는 Hardware 위에서 작동되어지는 Software 이다. 은사는 영성위에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영성은 Hardware 이다. 영성을 기초로 하지 않는 은사는 잘못되어 간다. 우리의 모든 삶이 영성을 기초로 해서 살아가야한다.
요삼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주님이 오심은 우리에게 영생과 풍성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 것은 영적인 부분의 풍성함이 있어야한다. 영성의 풍성함이 없으면 안된다. 다른 모든 부분이 다 쓰러진다. 현실세계는 이성위주이다. 그러나 믿음에서는 영성위주가 되어야 한다. 은사 위주도 안된다. 영성-이성-감성이 잘 혼합되되, 영성이 앞서서 이끌어 가야한다. 이성과 감정이 그 뒤를 따라야 한다.
한국교회는 그동안 건물, 교역자, 교인숫자.. 등등으로 너무나 외적인 면에만 치우쳐왔다. 교회의 내실은 성도의 영성이다. 이것을 회복시켜야한다. 영성은 크리스챤의 신분증명서와 같다. 온 세상에 이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빌3: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바울의 달리기는 영성을 향한 달림이었다. 기독교의 영성운동이란 주님이 가졌던 영성을 우리속에 심어넣는 것이다. 주님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작은 예수가 되어 사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것과 예수의 십자가의 삶을 본받아 사는 것은 분명히 구분되는 것이다. 예수를 본받아 사는 삶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달리는 훈련이 있어야 마라톤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영적성장에는 영성훈련이 필수적이다. 진정한 제자훈련은 영성훈련이 되어야 한다. 영성훈련은 참다운 인간이 되는 길이며, 참다운 교회가 되는 길이다. 교회와 성도가 세상을 이기며 변화시키는 길이다.
인간은 본능(감각)과 이성, 그리고 영성을 가진 존재이다. 여기서 본능은 육체를 위한 것이고, 이성은 나(자아)라는 인격을 위한 것이며, 영성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영성을 성장시키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하며, 하나님의 지배를 받으며, 하나님 중심으로, 이웃중심으로 살아야한다. 내적, 미래적, 신앙적인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훈련을 해야한다. 주님안에서 바보가 되라! 주님을 앞세우라. 주님이 일하시게 하라. 좀 나사를 풀어라. 이것이 영성훈련이다. 이러한 신앙의 구조조정을 거쳐야 한다.
본능을 위해서는 아무런 노력도 필요하지 않다. 이성의 성장을 위해서는 나의 노력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영성의 성장을 위해서는 하나님과 내가 한 팀을 이루어 노력하고 훈련해야 한다. 그래야 영적인 성품이 내면에 잠재된 상태를 벗어나서 생활에 실제적으로 표현되게 된다. 그것도 억지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성품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영성훈련은 내면화의 훈련이지만, 이것이 되면 자연스럽게 영성이 외면으로 나타난다.
세상은 나날이 사막화 되어 가고 있다. 점점 상처를 더 많이 주고 받고 있다. 점점 짐승화, 물질화 되어가고 있다. 이것을 막고 변화시키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영성을 살리고 성장시키는 것이다. 영성훈련으로 우리의 내면에 성령님이 임재하심으로 하나님 중심, 이웃중심의 삶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세상이 물질화, 과학화, 도시화로 인하여 인성이 황폐화 될 수록 사회문제, 높은 범죄율, 가정의 붕괴, 가치관 타락, 외로움이 심해지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영적인 목마름이 고조된다. 본능의 발달과 보편화에 따라 지성을 가진 자가 필요하게 되고, 지성적인 지도자가 등장하게 된다. 그런데 지성이 발달하고 보편화되면 이제는 영성이 필요하게 되며, 영적인 자가 지도자로 등장하게 된다. 마지막 시대는 영적인 사람들이 온 세상 위에 지도자가 되는 시대이다.
신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인간은 창조로부터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어있다. 하나님이라는 신비를 체험하고 교제하게 되어 있다. 이것이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신앙생활이 이성(교회출석, 성경공부, 제자훈련등)에 치우침으로 영적성장이 제한되고 있다.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체험하는 일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배울수록, 훈련받을수록, 더욱더 바리새인화 되어간다. 결국 영이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영적인 부분에 목말라하게 된다.
1. 영성의 회복
1). 영성의 회복은 잃어버린 인간성의 회복이다.
2). 영성의 회복은 관계성의 확립이다. 관계성의 확립이란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나와 이웃과의 관계, 나와 환경과의 관계의 정립이며, 이것이 되어야 나의 정체성이 확립된다.
3). 영성의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내가 닮아야할 대상과 사랑의 관계를 맺는 것이며, 이 사랑의 관계를 통하여 그분의 성품이 내면에서 외면으로 자연스럽게 발산되는 것이다.
이러한 영적회복과 영적성장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훈련을 받아야한다. 영이 깨어남, 거듭남과 영적성장은 별개의 문제이다. 영의 거듭남은 아무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지만, 영적성장은 훈련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 영이 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성장해야한다. 영적성장은 아주 실질적이며 사실적이다. 성경을 많이 읽거나 기도 많이 한다고 되지 않는다. 영적성장은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참된 영적성장은 그리스도안에서 영적, 인격적, 신체적, 사회적 관심과 정의 구현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인간의 총체적 삶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2. 영성훈련의 접근
(1)금욕적 접근: 금욕, 금식, 수행, 노동등 육을 죽이며 내면의 영성을 발전시키려는 방법.
(2)신비적 접근: 수동적, 은총, 신비에 의존하는 방법.
(3)이성, 지성적 접근: 성경교육, 경건의 시간, 제자훈련을 통해 윤리, 도덕적 교육으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정결한 삶의 모습으로 접근하려는 것.
참된 영성훈련은 이들 세가지 방법이 다 필요하며, 골고루 조화되어야 한다.
3. 영성의 발전단계
영성은 성장을 위한 지속적인 기도와 노력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1). 하나님의 형상으로의 창조.
2). 영성의 시작은 십자가의 죄사함과 거듭남(성령의 인치심,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거함)으로 시작된다.
3). 영성의 성장은 하나님과의 교제로부터 시작하며, 자기의지를 사용함으로 자기를 부인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이루어진다. 죄악과 거룩의 선택의 기로에서 거룩을 선택하려는 자기의 의지에 하나님의 의지가 작용함으로 영적성장이 이루어지게 된다.
4). 영성은 훈련을 통하여 더욱 발전된다.
5). 영성은 삶의 내면적인 면에만 국한되지 않고, 삶의 전부분에 영향을 끼쳐야한다. 영성의 시작은 내면에서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으로 시작되지만, 그 관계의 개선이 다음 단계, 즉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물질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회복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 모든 관계에서 새로운 피조물의 삶, 건전한 삶, 유익한 삶, 겸손과 봉사의 삶, 용서와 화평의 삶이 나타나야 한다.
6). 영성은 우리의 내면의 일일뿐 아니라, 실제적인 삶에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 성령은 우리의 내면에서만 역사하지 않으시며, 우리의 삶에서 실제적인 열매를 맺기를 원하신다.
4. 영성생활의 증거
1). 무조건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며,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며, 생활에서 하나님을 느낀다.
2). 선악을 분별하게 되며, 영적성장을 막고 누르는 시험, 스트레스를 이기며, 기도생활, 신앙생활에 기쁨이 생긴다.
3).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평안을 유지하게 된다.
4). 생활에 절제의 능력이 생기게 되며, 죄에 대한 경각심을 지니게 된다.
5). 삶의 방향과 중심이 자신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것으로 바뀌게 된다.
6). 사람을 섬기려는 마음이 생기고 희생, 헌신의 마음을 지니게 된다.
제2장. 영혼의 기능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며 영원한 존재이다. 선해질 수 있는 존재이며, 무한하게 발전할 수 있는 존재이다. 하나님처럼 될 수 있는 존재이며, 반대로 무한하게 악하게, 마귀처럼 될 수도 있는 존재이다.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영이란 무한한 가능성의 씨앗이며, 인간의 실존, 인간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인간의 가치를 다른 모든 피조물보다 더 귀하게 결정하는 것은 인간에게 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귀한 영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시당하고 등한시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21세기는 영성관리에 성공하는 사람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이다. 영성관리에 성공하는 사람이 자기관리, 대인관리, 물질관리에서도 성공하게 되는 시대이다.
1. 영의 어원적 이해
영은 어원적으로 바람, 생명력, 호흡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인간은 음식으로 살기보다 더 기본적으로 호흡으로 사는 것처럼 육으로 살기보다 영으로 사는 것이 기본이다.
2. 인간의 구분
육: 흙에서 나와서 흙으로 가는 것으로서, 영혼을 담는 그릇이다.
영: 하나님에게서 나와서 하나님에게로 가는 것이며, 육체를 관리하는 주체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이 되기 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천부적 기능이다.
인간은 물질인 육체와 비물질인 영혼이 연합된 존재이다.
3. 영혼의 기능 (1) - 자기의식 기능
영적인 존재는 자기를 의식한다. 자기의식이란 자신이 살아있는 존재임을 자각하고 인정하는 기능이다. 동물은 본능적, 반사적으로 살며, 자기 의식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도 역시 본능과 반사의 기능을 가지고 있으나 자기의식이 있으므로 남을 의식하고 인정하며, 따라서 자기만의 본능을 억제하며, 남과의 관게에서 도움, 양보, 이해, 협조하면서 살며, 이러한 자기의식기능이 있기에,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다.
4. 영혼의 기능 (2) - 자기표현 능력
자기의식이 내적인 기능이라면 자기표현은 외적인 기능이다. 자기의 감정, 언어, 행동, 표정, 의상, 취향, 기호, 음식 등을 통하여 외적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인간은 이러한 자기표현을 통하여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5. 영혼의 기능 (3) - 자기인식 능력
자기의식과 자기인식은 서로 다르다.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 자신의 존재가치, 존재이유를 깨닫는 것이며, 이를 통하여 타인도 인식하게 된다. 인간은 자기 인식을 통하여 현실적, 물질적이 아닌 자신의 만족, 부족함을 느끼고 깨닫게 된다. 이러한 자기인식을 통하여 인간은 욕구와 필요를 채우는 만족, 쾌감을 추구하게 된다.
1). 육체적, 신체적, 본능적 욕구: 음식, 생식, 건강, 휴식
2). 안전의 욕구: 주택, 경제, 정서, 직장등 두려움에서 자기를 지켜줄 것에 대한 욕구.
3). 소속감, 사랑의 욕구: 단체에 속하거나, 소유하려는 욕구, 사랑, 애정, 소속감
4). 지식의 욕구: 한 인간, 인격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 독서, 교육, 자기발전
5). 자기실현의 욕구: 외적으로, 사회적으로 꿈을 실현시키려는 욕구
6). 자기인식의 욕구: 보이지 않는 부분의 실현에 대한 욕구. 가치관, 삶의 의미의 실현
7). 관계, 질서, 조화, 진정한 아름다움의 추구: 인간의 궁극적 필요, 마지막 종착역인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사명), 이웃, 사회의 질서(사명), 물질의 나눔(사명), 가치있는 삶, 인생의 열매, 영원한 진리에 대한 목마름등.
여기서 1-2는 육체적, 동물적 본능, 3-5는 정신, 심리적 본능, 6-7은 영적 본능이다. 인간의 욕구, 욕망은 실락원의 존재라는 인간의 실존, 근본적 결핍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욕구, 욕망은 하위에서 상위로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 단계적으로 나아가다가 어느 단계의 욕구의 채워짐에서 얻는 쾌락, 만족함에 사로잡혀 머물러 있거나, 질서균형을 잃고 그 쾌락만을 추구하는 것은 길을 잃은 사람이다. 하위적 욕구는 상위적 욕구를 위하여 존재하여야 한다. 어느 욕구의 단계에 머물러 있고, 성장하는가에 따라 성자와 탕자가 생겨난다. 쾌락은 욕구만족에서 나오는 것이다. 가장 큰 쾌락은 영적욕구의 충족에서 나타난다. 가장 고차원의 만족을 추구하려고 하라. 영적욕구를 추구하라.
인간은 자기인식을 통하여 이러한 욕구의 단계를 조정하여 주며, 자신을 깨닫게 하여주며, 보이지 않는 필요를 깨닫게 한다. 인간의 영이 이러한 기능을 담당하는 것이다.
육체는 물질세계와 접촉하며 물질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 육체는 배고픔, 생리적 기능으로 자아(혼)에게 자기를 만족시켜줄 것을 요구한다.
영은 영적세계와 접촉하며 거기서 에너지를 얻는다. 양심의 호소, 가책으로 자아(혼)에게 영적 선택을 할 것을 요구한다.
마4: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혼은 육체와 영이라는 두 세계의 교량역할을 하는 자아의 기관이며, 지적인 것으로 에너지를 얻는다. 자아는 혼적인 부분이며, 선택을 하는 부분이다. 자아는 자유의지(선택권)를 가지지만, 육과 영은 선택권이 없다. 육과 영은 오직 혼에게 영향력, 호소력만 가지며, 자아는 육체 또는 영의 호소에 동조, 묵인, 거절의 권한을 가진다. 그러므로 자아가 육적삶을 살 것인가, 영적삶을 살 것인가를 결정한다. 그리고 육적부분이나 영적부분은 끊임없이 자아에게 자기를 선택해줄 것을 요구한다. 자아는 그동안 받은 훈련과 교육을 통하여 얻은 것으로 수시로 선택한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영적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늘 영적인 것만을 선택하는 훈련을 함으로 영적성장을 이루는 것이다.
이러한 훈련을 통하여 영적성장이 이루어지면 자아는 약해지고 영이 삶을 이끌게 된다. 영적훈련이란 모든 자아를 낮추어 철저하게 영적 요구에 순종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아를 낮추어 육체를 오직 영적 요구에 맞추도록 굴복시키는 것이다.
육성의 지배를 받는 사회는 동물적 사회이고, 이성의 지배를 받는 사회는 기계적 사회이며, 영성의 지배를 받은 사회가 바로 천국이요, 하나님이 다스리는 사회이다.
롬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과 자아만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영의 요구를 따라야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다. 영은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는 통로이다. 그러므로 영적성장이야말로 성령충만의 길이다. 말은 인간의 표현능력이다. 영성인의 말은 성령의 능력을 전달하는 도구이다.
6. 영혼의 기능 (4) - 직관의 기능
육은 감각기능을 가지며, 혼,과 자아는 판단기능을 가지나, 영은 직관기능을 가진다. 영은 시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상상과 직감의 능력으로 눈을 감고도 사물을 보며, 사물의 깊은 곳, 내면을 보고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 이러한 직관의 능력은 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에 대한 관심이 깊을수록 더 강해진다. 성령충만으로 더 넓게, 더 깊게, 더 높이 깨달아 알게 된다.
7. 영혼의 기능 (5) - 양심의 기능
자아(혼)는 자기 고집, 자기 주장을 한다. 자기 선택을 하는 자기자신이다. 그리고 양심은 자아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양심이 자아의 행동을 억제, 조절한다. 양심은 자신의 뜻(자아)에 따라 버릴 수도, 개발시킬 수도 있다. 그런데 오늘의 현실은 양심이 눌리고, 찌그러져 있다. 자아가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고 오직 이성과 육성의 소리만을 듣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심이 죽고, 굳고, 화인맞게 된다.
양심은 영을 담는 그릇이다. 양심이 죽으면 영이 힘을 잃는다. 영이 힘을 잃거나, 죽으면 양심이 힘을 잃고 죽게 된다. 반대로 영이 살아나면 양심도 살아나게 된다.
인간의 소리에는 본능의 소리, 양심의 소리 두가지가 있다. 한 인간의 가치는 이 두가지중에 어느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본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본능에 억매인 존재, 양심은 죽은 존재, 마음의 무정부상태인 존재, 무가치한 존재가 된다. 사회의 혼란과 무질서는 양심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이러한 마음의 혼란과 무질서가 밖으로 표현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양심을 살려야 한다.
인간의 양심은 영을 감싸고 담는 그릇이다. 영을 모시는 그릇이다. 육은 세상과 연결되나 영은 하나님과 연결된다. 육은 세상의 문이나 양심은 영의 관문이요,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들어가는 지성소의 휘장이다. 우리는 양심을 통해서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된다. 세상의 문을 닫고 성령의 문을 여는 훈련을 하라. 육의 문을 닫고 양심의 문을 여는 훈련을 하라. 육의 소리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NO'라는 대답을 해주어야한다. 그러한 훈련을 해야 한다. 이것이 영성훈련이다.
자아는 본능적으로, 생리적으로 육의 소리에 민감하다. 그러므로 강하게 훈련을 시켜야한다. 자아가 영의 소리, 하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훈련을 시켜야한다. 양심의 소리, 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따르는 일은 힘들고 아프지만, 훈련을 통해 이겨내면 하나님의 보상이 있다.
양심은 자신의 뜻에 따라 버릴 수도, 개발시킬 수도 있다. 양심을 훈련하라. 강하게 하라. 민감하게 하라. 현시대는 무자비하게 양심을 병들게 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조류에 과감히 맞서라.
8. 영혼의 기능 (6) - 예배, 기도, 영적 존재와의 교제 기능
육은 영을 담는 그릇이다. 영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영을 담고 있는 육이 영적인 빛의 옷을 입는다. 아담이 죄를 지은 첫 반응은 이 영적인 빛의 옷이 벗어짐으로 부끄러움을 느낀 것이었다. 육을 직접 보게 되었다. 그러면 영적인 빛의 옷을 입는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 하나님앞에 나설 수 있는 것이다.
성령님이 우리안에 거하시지만, 성령님과 교통하지 않고 있는 것은 내 영을 굳은 상태로 두는 것이요, 영적인 빛의 옷을 벗고 있는 것이다. 영을 살려야 한다. 영을 깨워야 한다.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앞에 나서라. 성령님과 교통하라. 그러면 영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육을 느끼고, 이성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내속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영을 느끼게 된다. 그럴 때에 깨어난 우리의 영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능력, 은혜가 흘러들어오게 된다. 영이 죽은 존재, 영이 잠들어 있는 존재는 단지 육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영의 기능중에 가장 중요하고 중추적인 기능은 다른 영적 존재와 영적교류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영으로 온전한 교통, 교제를 하는 것, 대화를 하는 것이 바로 예배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영으로 드려야만 하는 것이다. 신령과 진정, 즉 아주 맑은 영으로 드려야만 한다. 에덴의 아담은 영이 혼(자아)을 완전히 지배하고 육은 영혼을 담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 상태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되어야 온전하게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과 교통하게 된다. 성령과의 교통, 연합을 이루어져야 다른 영성도 전부 다 살아나게 된다. 그러면서 혼적, 육적인 부분도 다 살아나게 된다. 제대로. 영적인 부분을 살려라. 예배란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교제를 하는 것이며, 영을 살리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예배를 드리라.
잠든 영을 깨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하나님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가장 기본적인 사랑의 메시지를 반복하라. 이 사랑의 고백이야말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살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예배의 핵심이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가장 중요하다. 내 안에 와계신 하나님을 생각하라. 성령님은 우리와 교제하기 위해서 우리안에 와 계신 하나님이시다. 우리 영성을 살리기 위해서 오신 그분을 자꾸 느끼려고 하라. 성령님을 자꾸 의지하라. 느끼라. 그러면 영성이 살아나면서, 인격이 바뀌고, 자아가 바뀌고 육성이 바뀌게 된다. 이것이 변하여 새사람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구조조정이요 삶의 구조조정이다. 자아, 혼, 이성으로는 구조조정이 불가하다. 오직 영으로만 가능하다. 여기에 모든 것을 걸라, 투자하라. 영성개발에 집중하라. 처음에는 이것이 요원한 것 같고, 먼것같고,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으나, 그렇지 않다. 영적인 부분은 매우 실제적이고 가깝다. 이속에 진정한 풍성함이 들어 있다.
우리의 영은 오직 하나님과 교제함을 통하여 성장한다. 하나님을 만나라. 하나님과 교제하라. 하나님을 느끼라. 하나님과 화답하라.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내가 사랑하니 너희도 사랑하라, 내가 사모하니 너희도 사모하라, 내가 의지하니 너희도 의지하라” 고 하신다. 이러한 관계로 들어감으로 영이 살아나게 되고, 진정한 풍성함이 임하게 된다. 하나님과 화답하는 교제의 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사62:6-7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우리의 영이 잠을 자면, 우리속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영, 하나님도 주무시게 된다. 일하실 수 없게 된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깨어나, 일어나 일하시게 하라. 이를 위하여 내 영을 깨어 있게 하라. 그러면 나도 모르게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지혜, 지식, 능력이 흘러들어와 내 삶이 풍성하게 된다. 영적 교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풍성함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흘러들어오게 된다. 그러므로 예배로 교제로 영을 깨우라. 내영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성령님과 교통하게 하라. 이러한 상태에서 나오는 기도는 진정 강력한 기도, 응답받는 기도가 된다.
9. 영,혼,육의 성장 요인
육은 음식으로 성장한다. 육신은 어느정도 성장하면 그 이상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혼은 교육으로 성장한다. 혼도 나이가 들면 성장이 멈추게 된다. 그러나 영적성장에는 한계가 없다. 나이가 들어도, 아니 오히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더 영성이 깊고 맑아질 수 있다.
막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영적성장의 양식은 사랑이다. 영은 사랑을 찾는다. 영이신 하나님도 우리의 사랑을 찾으신다. 육신이 지속적으로 음식을 찾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사랑의 고백을 하라. 그러면 늘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된다. 풍성한 은사를 받는 가장 좋은 길은 사랑이다.
고전12:31-1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영적성장은 이러한 사랑이 담긴 영적접촉을 통하여 - 부모, 친구, 이성으로부터 - 이루어진다. 어린시절에 이러한 사랑을 통하여 영적으로 잘 성장한 사람은 삶의 어려움을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사랑을 통하여 영적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은 크리스챤이 되고 나서도 믿음생활에서 제대로 성숙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과 교제, 교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해결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으로 치유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적인 존재인 사람의 모든 문제의 만병통치약이다. 주님과의 지속적인 사랑의 관계, 교제와 성령충만한 믿음생활을 통하여 영적성장이 가능하다. 이러한 영적성장을 통하여 영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어야 이성과 육체의 올바른 성장이 가능하며, 이에서 더 나아가 세상과 환경, 땅과 하늘, 모든 피조물의 회복이 가능하다. 이를 위하여 잠자고 있는 영을 깨우라. 일으키라.
제3장. 한국인의 전통적 영성
1. 무교, 무속이 민족성에 끼친 영향
1). 의타성: 자신의 운명을 천지신명이 주관하며, 사주팔자에 의하여 타고난 것으로 여기는 체념적인 운명관 때문에 자신의 삶에 대한 주체적 책임감이 없다.
2). 보수성, 정체성: 모든 사건을 천지신명의 뜻, 하늘의 뜻, 정해진 운명에 귀착시킴으로 자신의 발전, 진취, 개혁이 없으며, 따라서 정치, 사회, 문화등 삶의 모든 면이 폐쇄적, 보수적이며 의도적 변화를 거부하는 정체적인 민족성이 되었다.
3). 현실주의: 모든 욕구, 소망이 현실적 축복에 집중되며, 과거를 반성하거나, 미래를 장기적으로 계획하지 못하며, 오직 주어진 현실에만 눈을 돌리는 근시안적인 삶을 살게 된다.
4). 오락성: 미래를 운명에 맡기고 살 때, 오직 현실의 쾌락을 찾는 오락성을 가지게 된다.
5). 편협성: 무교의 가치관은 자기중심적, 자신, 가족,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의 범위에 국한된다. 그러므로 혈연, 동향이 중시되며 편협적이 되고 넓은 사회성이 결여된다. 도덕성, 윤리성이 배제되며, 오직 나만 잘되면 남은 어찌 되어도 관여치 않는다는 삶의 자세가 된다.
2. 무교, 무속이 기독교에 끼친 영향
1). 영원성, 사회성이 없는 현실주의의 기독교가 되었다.
2). 기복, 액땜, 귀신축사의 무당의 역할과 목사의 역할, 무교의 제사와 기독교의 예배를 동일시한다.
3). 심방, 기도하는 목회자에게서 당장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무당적인 문제해결사의 역할을 기대한다.
4). 주체성이 결여된 의존적인 성도를 만들어 성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하지 않고 목사에게 모든 것을 의지한다.
5). 교회와 성도의 삶에 강한 보수성, 폐쇄성, 배타성이 만연하게 되었다. 개혁, 성장, 발전과 같은 변화를 싫어하고 항상 전통만을 고수한다. 한국 기독교의 강한 보수성향, 전통주의는 무의식중에 우리의 심성에 뿌려진 무속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여기서 분파주의, 교단난립의 결과를 가져오고, 교회가 전통, 특권에만 치중하게 되어 의존적이며, 나약한 신앙인을 만들게 되었다. 목회자를 마치 하나님처럼 여김으로 모든 것을 목회자에게 의지하고, 맹종만 하는 나약한 신앙인이 되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인은 사람인 목회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모든 것을 교제하는 사람, 하나님만 의존하는 사람, 하나님에게 점점 가까이 나아오는 사람이다.
제4장. 기독교 영성운동의 역사
1). 예수님의 공생애는 제자들에 대한 영성훈련의 기간이었다. 예수님은 3년간 자신의 영성을 교육과 함께 딩굴며 다니고 행동하는 삶으로 제자들에게 전수하였다. 이러한 생활을 통하여 예수님의 영성이 제자들에게 흘러들어가게 하셨다. 제자들에게 자신의 영성을 심어주셨다. 이를 위하여 제자를 불러 같이 있게 하셨다.
막3:14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육의 성품을 가진 이들을 불러 예수님의 성품을 가지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영성훈련이다. 예수님의 교육은 지식의 전달보다는 기도, 전도, 치유, 설교, 섬김, 희생, 본을 보이는 삶이었다. 이것이 바로 영성훈련이다.
마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씀은 이성의 판단과 결정을 부인하고 영성을 깨우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영성의 판단과 결정을 따르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즉 성령님을 따르라는 말씀이며, 성령님과 동행하라는 말씀이다. 영성훈련은 내 열심만으로는 안된다. 함께하시는 하나님, 성령님과 동행해야한다. 여기에 모든 것을 걸라.
마26:41 시험에 들지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영성훈련은 우리의 잠자는 영성을 깨워 본능과 이성을 다스리게 하는 훈련이다. 이를 위하여 영을 깨워 기도하라는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이 영성훈련을 강조한다. 영성훈련의 관점에서 성경을 보라. 성경의 모든 구절이 이를 요구하고 있다.
딤전4:6-8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군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는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성도의 양육, 즉 제자훈련은 바로 영성훈련이다. 경건의 연습이 즉 영성훈련이다.
2). 초대교회의 영성은 기쁘게 육신을 버리는 순교의 영성이었다. 교회별로 주어진 사명을 위하여 기쁘게 모든 삶을 드릴 수 있는 사명감당에 불타는 영성이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강한 영성으로 세상을 이기고 하나될 수 있었다.
3). 변절된 목회자가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에, 변절된 기간중에 베푼 모든 성례전의 효과성에 대한 어거스틴과 도나티스트의 논쟁에서 이러한 성례전도 유효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거룩과 성결한 삶보다는 믿음과 은혜가 더 강조됨으로 성직자들의 영성훈련의 나태와 불필요성을 은연중 인정하고 허용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교회에서는 차츰 영성훈련이 약해지게 되었다.
또한 로마철학의 영향으로 기독교가 사변화, 논리화됨으로 신학이 정립되는 단계에서 영적인 신앙, 신비적인 체험을 통한 하나님과의 실제적인 접촉이 메마르게 되었다. 영성이 신앙을 이끌어가는 시대는 지나고 신학이 신앙을 이끌어가게 되었다.
4). 이러한 현상은 정치와 종교의 연합에 따라 더 심화되게 되었으며, 이윽고 교회가 정부의 시녀로 전락함에 따라 더욱 심화되게 되었다. 그러한 중에도 기독교의 영성과 순수성의 소멸을 우려하는 이들이 사막으로 들어가서 기도와 청빈과 금욕생활로 초기 순교의 영성을 지키려는 수도원영성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수도원영성은 교회의 갱신과 사회의 정화, 구호구제사업, 학문적 성취, 농업기술의 개발을 이룩하며, 많은 사상가를 배출하며, 인간정신력과 인간영성이 환경이나 욕망을 이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Basildms 노동, 묵상, 침묵, 독서와 연구, 기도, 관상, 청빈한 생활을 강조하였으며, Benedict는 기도, 겸손, 고행, 봉사, 금욕, 공동주거생활, 과묵과 침묵, 거친 육체노동과 간소한 식사를 강조하였고, 베네딕트 수도원에서는
(1). 원장에 대한 철저한 복종
(2). 순결, 청빈, 순명의 삶에 대한 서약과 서원
(3). 몸을 통한 봉사, 노동을 기도와 명상의 수준으로 성화시켰다.
성 프란시스코는 이러한 수도회정신을 사회(도시 빈민계층과 상업계층)에까지 확산시키고 이들의 삶에서 이러한 정신을 구현시키려고 노력하였다. 평신도운동(작은 형제단)을 통하여 평신도가 설교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기도 하였다. 작은 자, 가난한 자 안에서 주님을 보고 섬기며, 빛의 신비주의, 존재 신비주의, 그리스도 신비주의를 가르쳤다.
종교개혁이 교육과 신학을 강조함으로 현대 개신교에서는 초대교회의 영성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지만, 아직도 천주교 일부에서는 이러한 수도원 영성운동의 영향이 남아 흐르고 있다.
제5장. 영성훈련의 의미와 목적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영적인 존재에서 육적인 존재로의 떨어지게 되었다. 영성훈련을 통하여 영이 거듭난 크리스챤들이 영성을 회복하고 영적인 존재가 되게 하는 것이 영성훈련의 목적이다. 영성훈련은 인간의 본질인 영성과 내적성숙을 이룸으로 생활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게 하려는 것이다.
1. 영성훈련의 의미
영성훈련은 성령 하나님과 연합하는 훈련이다. 우리의 영이 성령의 인도와 통치를 받는 훈련이다. 우리가 삶의 모든 부분에서 성령님을 의지하고 성령님을 따르는 훈련이다. 성령님과의 연합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는 훈련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하여 영-혼-육이 치유를 받는 훈련이다. 따라서 인간본연의 존재가치를 회복하는 가장 귀중한 훈련이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가장 기본적인 달란트인 영을 땅(몸, 육체)으로부터 파내어 회복시키고 이것을 잘 사용하여 열매를 거두게 하는 것이다.
갈5:16-18,24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의 의지로 의를 이루려하지 않고, 우리의 의지로 오직 성령을 좇아 인도함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영성훈련이다. 이 때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의가 나에게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성령을 좇아 행할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가 성령에게 붙들린 바 될 때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렇게 자꾸 내가 성령에게 붙들리고 성령을 좇아 행하려고 하는 것이 영성훈련이다. 우리의 생각을 성령의 일에 고정시키는 것이 영성훈련이다. 내 의지를 내려놓고 성령의 의지를 붙잡는 것, 성령에게 자꾸 무엇을 묻는 것이 영성훈련이다. 이렇게 무엇이든지 성령에게 묻는 것이 성령님이라는 인격을 존중하는 것이며, 성령님을 의지하고, 교제하려는 의도의 표시이다. 영성훈련은 이러한 것을 의도적으로 반복해서 자꾸 되풀이 함으로 나주에는 무의식적으로, 습관적으로 그렇게 하게 만드는 훈련이다.
영성훈련은 의도적으로 성령님에게 자꾸 모든 일을 질문하고 의논하는 훈련이요, 모든 삶을 의지하는 훈련이다. 조그만 것까지도 자꾸 성령님에게 질문하고 의논하는 훈련을 하라. 모든 일을 의지하는 훈련을 하라. 성령님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 삶을 생활화하라. ‘성령님 빨리 인도하세요. 성령님 빨리 말씀하세요. 성령님 도와주세요’ 하고 자꾸 의지하고 매어달리라. 영성훈련은 이처럼 자꾸 성령님을 의지하고 교제하는 훈련이다. 성령님으로 하여금 나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는 훈련이며, 나는 성령의 영향력을 행사받는 훈련이다.
우리의 삶은 성령을 좇지 않으면 결국 세상을 좇는 것이다. 성령을 좇는 훈련을 받으라. 그렇지 않으면 결국 나는 세상을 좇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영성훈련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성훈련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교제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속에 거하사 우리를 훈련시키는 성령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시고, 그리스도는 다시 우리를 하나님에게로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이러한 영성훈련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에게로, 하나님의 영광에로 나날이 가까워지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현대는 영적으로 점점 혼탁해지고 어지러워지고 있다. 사단의 역사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러한 세상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우리의 내면으로부터의 성령의 역사이다. 성령님을 통한 변화이다. 영성훈련을 통한 영성의 활성화만이 혼탁한 세상을 밀어내는 힘과 능력을 배양하는 유일한 길이다.
영성훈련은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훈련이지만, 또한 동시에 성령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성령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훈련이다. 영성훈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지게 하는 훈련이다.
영성훈련 반복을 통하여 사고구조의 틀을 바꿈으로, 행동구조의 틀을 바꾸고, 삶의 틀을 바꾸는 것이다. 육적 틀, 이성적 틀에서 영적 틀로 환골탈태하는 것이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훈련의 기본은 반복하는 것과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성훈련은 인내의 연속이다. 훈련이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외형적인 것에 치우치는 훈련이 되면 교만해져서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가 된다. 내적인 훈련이 되어야 한다.
마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영성훈련은 이처럼 나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 쏟아 부어야 하는 투자이다. 그러나 또한 동시에 이러한 투자가 있는 곳에서 육체라는 밭에 감추어져 있는 엄청난 보화를 발견하는 것이다. 이 보화가 있다는 것을 아는 이는 아낌없이 자신의 소유물을 팔아 밭을 사서 묻혀있는 보화를 캐내어 엄청난 규모의 이득을 보는 것이다. 육이라는 밭에 감추인 영이라는 놀라운 보화를 발견하고 캐내어서 갈고 닦는 것은 오직 훈련이라는 투자가 있어야 한다. 육신을 위한 투자, 지성을 위한 투자, 세상의 그 무엇을 위한 투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장 귀한 투자가 바로 영을 위한 투자요, 영성훈련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얻는 영적성장은 금생에서뿐 아니라 내세에서도 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성을 위한 투자, 영성훈련을 위한 투자를 하라. 아낌없이 하라. 영성훈련은:
1). 사람이 영적이 되려고 하는 필요를 채우기 위한 훈련이다.
2).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우리 삶 가운데 가져오는 훈련이다.
3).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정신과 삶의 자세를 본받으려는 훈련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영적인 길, 삶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4). 우리가운데 임재하신 성령님과 교제를 통하여 성령님의 성품이 나를 통하여 표현되게 하는 훈련이다.
5). 자신에게 임재하신 하나님께 묵상, 예배, 찬양으로 응답하는 훈련을 통해 훈련자 내면에서 자신의 영역은 축소되고 하나님의 영역이 점차로 확대되게 하는 연습이다.
6).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병든 자, 귀신들린 자, 가난한 자, 감옥에 갇힌 자를 찾아서 함께 고통을 나누며 짐을 질 수 있는 십자가의 희생능력을 기르는 훈련이다.
7). 예수의 인격과 삶이 자신과 교회와 사회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훈련이다.
2. 영성훈련의 목적
1).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합당한 성결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영성훈련을 한다. 인간이 참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다.
2). 성령과 동행(의지하고 따르는)하는 삶을 살고 이를 통해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구 위함이다. 성령의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3).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 가정, 마음을 다스리게 하여 진정한 크리스챤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존재는 있으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하는 것이다. 깨달음과 그 깨달음을 위한 삶의 투자가 있게 하는 것이다.
4). 열매맺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다.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열매는 영적열매이다. 육의 열매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모든 일이 성령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이생과 내생에서 거두는 가장 귀한 열매가 바로 영적열매이다.
요6: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5). 영적전쟁의 승리를 위함이다. 세상과 마귀의 공격은 육체를 통하여 보이지 않게 이루어지며, 습관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이를 이기는 유일한 길은 육성을 죽이고 영성을 살리는 것이다. 육성의 문을 닫고 영성의 문을 여는 것이며, 육성의 소리를 잠재우고 영성의 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성훈련의 목적이다.
3. 영성의 진보단계
1). 각성의 단계
깊은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는 단계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랑을 고백한다. 회개와 고백이 시작되는 단계이다.
2). 정화의 단계
기도를 통하여 점점 성령충만하게 되며, 내면의 죄성과 본성이 서서히 정화, 정돈되는 상태이다.
3). 조명의 단계
주님의 말씀의 깨달음과 주님의 마음의 전달, 이해가 인간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깨달아지고 느껴지는 단계이다.
4). 영혼의 어두운 밤의 단계
영성훈련의 길을 가는 이에게 반드시 나타나는 외적공격과 내적시험의 단계이다. 아직까지는 이성이 인격의 주체였으나 영성이 주체가 되면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거기서 나타나는 혼미와 투쟁의 단계이다.
5). 일치의 단계
어두운 밤의 단계에서 겸손, 믿음, 신뢰, 순종으로 밤을 지새우며 새벽이 오기를 기다리는 기도자에게 찾아오는 아침이다. 이 단계에서 드디어 나와 하나님의 하나됨, 연합됨을 이론이 아닌 실제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언제건, 어느 단계에서건 하나님은 준비된 사람, 정결한 사람, 순수한 사람, 영성이 성숙한 사람을 사용하신다. 오늘의 때가 악하고 어둡다는 것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사람이 나타날 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쓰실 사람을 그냥 쓰지 않으신다. 반드시 준비시켜 사용하신다. 제대로 한 번만이라도 하나님에게 쓰임받고 하나님앞에 서는 것을 나의 유일한 소망으로 삼는다면 영성을 준비시키라. 영성만 준비되어 있으면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지금 어느 단계에 있든지 반드시 불러 쓰신다. 은둔생활을 하든지, 수도생활을 하든지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영성훈련에 힘쓰라. 나의 영성을 준비시키라. 나만 준비되면, 훈련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들어 쓰신다는 소망을 가지라. 믿음을 가지라. 그리고 영성훈련에 임하라. 영성을 훈련하라.
제6장. 섬김의 훈련
1. 자세의 변화
참된 기독교인은 자세가 변해야 한다. 자세의 변화를 위한 훈련을 받아야 한다. 자세의 변화는 오직 훈련으로만 가능하다. 반복적이고 지속적인는 훈련으로만 가능하다. 이러한 훈련을 하라. 의도적으로 하라.
1). 종의 훈련
마20: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무엇보다도 먼저 섬기는 종의 훈련을 하라. 섬김받는 삶을 사는 것 자체가 섬김받는 훈련을 거듭해서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좋지 못한 훈련을 받지 말고, 예수님처럼 섬기는 종의 훈련을 거듭 거듭 반복하라. 의도적으로 하라. 섬김의 자세는 내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보느냐로 결정된다. 오늘의 크리스챤은 대부분 이 안목이 병들어 있다. 남을 보는 안목이 잘못되어 있다. 그래서 남을 비난하고 판단하기만 한다. 그런 훈련을 거듭거듭 받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는 안된다. 모든 사람을 내가 섬겨야 할 대상으로 보라. 그렇지 않으면 나의 안목이 병들어 있는 것이다.
2). 자기부인의 훈련
막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사람은 본능적으로 스스로 자기를 인정하고, 남에게 인정받으려 하며, 사람에게 받은 인정으로 자기의 존재가치를 확인하려고 한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자기 부인이란 이러한 자아를 부인하는 것이며, 자기 주장을 부인하며, 자기 욕심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대신 우리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을 인정하고, 성령 하나님의 주장을 인정하며, 성령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고 따르는 것이다. 성경적 자기부인은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을 존중히 여기되(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이 세우신 왕, 왕같은 제사장, 면류관..) 나의 육성과 이성을 부인하고 영성을 내세우는 것이며, 내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을 내세우는 것이다.
3). 예수님이 가르치신 새로운 종속관계, 주종관계의 훈련
예수님이 가르치신 가장 철저한 사회적 개념은 위대함에 이르는 새로운 개념이다. 즉 종이 되고 낮아지고 섬기는 자가 됨으로 위대해진다는 것이다. 십자가의 길을 가장 위대한 길로, 종의 길을 가장 위대한 길로, 죽음과 고난을 가장 위대한 승리의 길로 가르치셨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기본적인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이다.
영성훈련의 목적은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치심대로 살려는 성품으로의 변화이다. 이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기본적인 성품은 온유와 겸손이었다.
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온유란 외부에서 밀려오는 모든 스트레스를 스폰지처럼 흡수하여 하나님에게 그대로 배출하는 성품이다. 그러므로 온유한 성품을 가진 이는 아무리 스트레스를 받아도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고, 사랑과 오래참음으로 부드럽게 수용할 수 있다. 겸손이란 이러한 내적인 온유함을 밖으로,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나타내는 자세이다.
예수님은 온유와 겸손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방인, 죄인, 세리, 병자, 무식한 자)을 인정하고 알아주고, 귀하게 여기고 이들을 섬기셨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혁명적 개념이었다. 온유와 겸손이야말로 다른 사람을 알아주고, 사랑으로 끌어안아주고, 귀하게 여기고 섬기게 하는 성품이다. 온유와 겸손의 성품은 세상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부드럽게 나타나야 하는 성품이며, 또한 하나님앞에서는 당당하게 나타나는 성품이다.
예수님의 육신을 입고 오심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삶의 본이 되기 위함이셨다. 예수님의 삶의 본을 받는 것은 예수님의 성품을 품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품어야할 예수님의 성품이 바로 온유와 겸손이다. 이것을 자꾸 내 마음에 심으라. 끌어당기라. ‘주님의 온유를 내게 주소서. 예수님의 겸손을, 부드러움을 내게 주소서.’ 자꾸 이렇게 하면 혈기와 분냄은 자연히 밀려나간다. 예수님의 마음을 심고, 품음으로, 영이 살아나게 된다. 혈기, 조급, 분냄, 걱정과 같은 것은 내 영이 약해서 생기는 것이다. 영을 강하게 하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품음으로 영을 살려내라. 온유한 성품을 위하여 부드러운 기도와 찬송을 하라.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라. 남을 부리기도 싫고, 부림을 받기도 싫고, 다른 사람을 내 머리위에 두기도 싫고 내 발밑에 두기도 싫어하라. 나하나도 제대로 관리를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관리하려 하겠는가!. 내안에 계신 주님 하나도 제대고 섬기지 못하는데 어떤 누구를 내 머리위에 놓고 섬기겠는가! 온유하고 겸손하게 모든 사람과 평범하게 어울리며 사랑하며 살아가라.
2. 자기인식
나와 타인에 대한 새로운 관념을 자꾸 내속에 심어 넣으라. 그러면 새로운 성품과 새로운 행동이 나오게 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우리속에 심어주는 것이다.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1). 자기 자신을 바로 알아야 한다. 자신에 대한 신조, 신념, 자기존재(사명)에 대하여 확실하게 인지하라.
2). 자신의 신조에 대한 감정적 느낌과 지속적인 자기 인식을 가지라. 자신의 내면에 이것을 자꾸 심어주라. 이것이 바로 영성훈련이다.
3). 자신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내면에 자꾸 심어주면 그 신조, 가치관, 신념, 개념이 자연스럽게 말, 생각, 행동으로 나타나 열매를 맺는다.
3. 예수님의 마음
빌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자신을 어떻게 알리셨는가? 예수님은 자신의 삶으로 자신을 표현하셨다. 자신의 삶으로, 자신의 말투, 억양, 표현, 행위 등등으로 자기가 누구인가 하는 것, 자기의 존재가치의 모든 것을 표현하려고 하셨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신조이었다. 자기인식이었다. 우리가 이러한 예수의 마음을 가지게 될 때, 우리에게서도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고, 예수님의 사랑이 나타나며, 예수님의 성품이 나타나고,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이 나타나게 된다.
1). 자기존재와 사명의 인지
요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며 동등되신 분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한다는 자신의 사명을 알고 인정하였다. 이를 위하여 예수님은 어떤 희생도 감수하였다. 이것이 사명의 인지이다. 그냥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위하여 어떤 희생도 감수하는 자세이다.
나는 누구인가? 하나님의 자녀, 왕같은 제사장, 하나님이 세우신 왕, 예수님이 피값을 주시고 산 자이다. 이것을 늘 마음속에 심으라. 세상의 직위, 교회안에서의 직위와 같은 것은 나의 참 모습이 아니다. 이것은 마치 말구유의 예수님처럼 참 모습이 아니다. 내가 나를 잃어버리면 안된다. 나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이 세상에 섬기러 온 하나님의 자녀, 왕같은 제사장, 작은 예수이다. 나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고 있다. 이것이 나의 본분이고, 나의 신분이고, 나의 사명이다. 나의 본분, 나의 신분을 자꾸 자꾸 내 마음에 심으라. 인식시키라. 그래야 흔들리지 않는다. 그래야 누가 뭐래도 찔리지 않는다, 온유할 수 있고 겸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예수님처럼 내가 낮아질수록 하나님이 영광을 받기 때문이다. 널뛰기와 같이 내가 높아지면 하나님은 영화롭게 되지 못한다. 내가 낮아져야 하나님이 영화롭게 된다. 이것이 자기존재와 사명의 인지이다.
2). 자신을 비우심
예수님은 사명을 이루기 위해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셨다. 섬김받을 특권, 자기주장, 자기뜻을 주장할 수 있는 모든 권리를 포기하셨다. 자기자신의 목표까지도 비우셨다. 크리스챤이 자신의 특권과 자기주장, 자기뜻, 자기목표를 버릴 때, 하나님이 영화롭게 되시고, 이것을 주장할 때, 어지러움이 생긴다.
3). 종의 형체를 취하심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자기의 특권을 버리고 새로운 삶, 새로운 모습, 새로운 자세를 취하셨다. 이것이 억지가 아니라, 기쁨으로 자의에 의한 것이었다. 마지못해 시키니까 행동하는 종처럼 행동하거나 단지 비슷하게 흉내만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말 완전한 종이 되셨다. 무의식에서조차 종으로 행동하셨다. 이것은 오직 내면으로부터, 영으로부터 종의 형체를 취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영성훈련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즉 영으로부터 내가 종이라는 사실을 심는 것이다. 나의 가장 깊은 내면인 영으로부터 나의 모든 특권을 비웠다는 사실을 심으라. 주장하라. 성령의 임재상태에서 이 사실을 마음에, 무의식에 심으라. 이것이 바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는 영성훈련이요, 참된 영성훈련이다. 그러면 차츰 예수님처럼 눈이 밝아지고, 멀리보게 된다.
의식적인 반복을 통하여 무의식에 무엇인가를 심어주면, 그것이 자연스럽게 의식-행동-능력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이다. 일반적으로 의식적으로 무의식에 무엇인가를 심는 것은 어렵고 장시간이 필요하나, 성령의 도우심이 있으면 무의식보다 더 깊은 영에 심기며, 단기간에도 엄청난 파워가 생긴다.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4). 실천하심
예수님은 죽기까지, 즉 죽도록,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존재와 삶의 가치의 실현, 사명을 실천하셨다. 포기하지 않으셨다. 중간에 그만두지 않으셨다.
4. 삶에의 적용
1). 깨달음의 단계
나는 누구인가, 어떤 신분인가, 나의 사명은 무엇인가, 나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내안에 누가 계신가에 대한 깨달음을 확신하라. 그리고 이에 대하여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한 확신을 가지라.
2). 내삶의 목표에 대한 재점검
나는 현재 의식, 무의식적으로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어떤 존재가 되려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어떤 가치관, 인생관을 가지고 있으며, 내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이것들을 재점검하라.
3). 자신의 야망을 내려놓음
성령의 도우심으로 잘못된 야망을 발견하였으면 그것을 즉시로 내려놓으라. 주님이 주시는 사명이나 꿈과 인간적인 야망은 다르다. 사명은 하나님의 뜻이고, 야망은 내 뜻이다. 이제 다시는 야망을 추구하거나 갈망하지 않으리라는 마음을 가지라. 야망을 위한 기도를 하지 말고 사명을 위한 기도를 하라. 내 뜻을 위한 기도를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위한 기도를 하라.
4). 자신을 비움
자신의 야망을 내려놓고 욕구를 끊고난 다음에 다시 자신의 주장, 위치, 성공, 명예, 성취욕, 학식, 경험, 권위, 자부심, 특권의식을 버리라. 이것들을 버림은 이들보다 더 나은 것,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 성령님이 주시는 더 좋은 것을 받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알라. 우리가 가진 이러한 것들은 얼마나 흠있고 불결하고 세상적이고 불완전하고 타락한 것인가를 알라. 이것들을 버리거나 비우지 않고 움켜쥐고 있는 한 하나님이 주시는 더 좋고 참되고 아름답고 영원한 것, 하나님의 주장,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위치, 성공, 명예, 성취, 지식, 지혜, 권세, 능력, 참 특권을 받을 수가 없다.
5). 종의 형제를 가짐
이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가지고 새로운 가치관, 사명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섬기는 실제적 삶을 시작하라. 종의 마음만이 아니라, 형체, 즉 실제 모습을 보이라.
6). 죽기까지 낮추고 복종함
죽도록, 죽어도, 죽는순간까지, 이 자세와 마음을 바꾸지 말라.
우리가 이러한 예수의 마음을 품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들어쓰신다. 하나님은 예수의 마음으로 준비된 사람을 들어쓰신다. 어떤 상황이든지 하나님이 이끄는대로 따라가라.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에게 순종하려는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능력을 주시고, 그러한 사람을 들어 쓰신다.
‘나는 사람낚는 어부가 될 것이다. 주님이 세상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러한 말씀을 마음에 지속적으로 심으라. 하나님은 우리의 외면의 변화보다 내면의 변화를 원하신다. 어떤 일을 하는가 하는 역할, 기능이 아니라, 어떤 존재, 어떤 마음을 지니고 사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하나님은 내가 하루종일 사람들을 돕는 선행을 하고 돌아 다니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마음이 선한 착한 성품의 사람이 되는 것을 원하신다. 이런 사람이 되는 훈련을 하라.
영에 예수의 마음을 심으면, 마음이 예수의 마음이 되고, 거기서부터 새로운 습관, 성품이 우러나오게 된다. 예수님의 마음을 자꾸 내 마음에 심어야 한다. 생각으로, 말로, 기도로.. 깊이깊이 내 영에 심으라. 그래서 자연히 새 습관, 성품이 내 안, 깊은 곳, 영에서 우러나오게 하라. 좋은 것이 입력되어 있으면 좋은 것이 나오게 된다. 좋은 것을 끌어내기 위해서 좋은 것을 심으라.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예수님의 성품이다.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의 온유, 예수님의 겸손, 예수님의 참으심을 심으라.
고전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예수의 마음을 내 안에 심기위해서는 먼저 예수를 사랑해야 한다. 무한하게 예수를 사랑하라. 예수님에게 자꾸 자꾸 사랑을 고백하라. 그러면 주님의 사랑이 흘러들어옴을 느끼게 된다.
제7장. 봉사와 청빈의 훈련
1. 봉사의 훈련
봉사의 훈련이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기계적으로, 조직에 의해서 일하게 하면 조직의 소모품이 되고 만다. 아무런 유익도 없게 된다. 시험에 너머지게 된다.
마6:1-4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봉사의 기본자세는 무엇인가? 봉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상을 받을 수 있는가? 봉사는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라, 어떠한 자세로, 누구를 의식하며 하였는가가 중요하다. 인간은 외형을 보고 판단하나 하나님은 중심, 심령을 보고 판단하신다.
봉사훈련은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봉사를 하는 훈련이다.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봉사하는 훈련이다. 감정에 의해서나 이성에 의해서 하는 얕은 수준의 봉사가 아니라, 참 마음으로, 깊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봉사를 하는 훈련이다.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봉사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는다.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좋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 때문에 하는 봉사이기 때문이다.
1). 자기의 의를 위한 봉사와 하나님의 의를 위한 봉사:
봉사의 동기: 사람과의 관계, 부탁, 체면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봉사의 크기: 거창한 것에 관심 크기에 관계없이 진심으로
봉사의 보상: 외부의 상급, 칭찬을 요구, 의식 사람의 의식과 칭찬을 요구하지 않음
봉사의 결과: 성취와 결과에 깊은 관심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봉사자체를 기뻐함
봉사의 대상: 관심있는 자에게 국한 대상을 제한하지 않는다
감정과 기분: 많은 영향을 받는다 영향받지 않는다
봉사의 주기: 일시적 생활처럼 몸에 배어있다. 전문가가 되라!
봉사의 자세: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 빚진자의 마음으로, 보상을 기대하지 않음
희생의 자세: 희생이 요구되면 물러섬 희생을 감수함
봉사후 자세: 자기에게 공을 돌림 하나님과 교회에 공을 돌림
2). 봉사와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
겸손한 성품이 없기 때문에 진정한 봉사가 불가능하다. 문제는 우리의 성품이다. 우리에게 온유와 겸손이라는 성품이 없기 때문에 진정한 봉사가 불가능하고, 따라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지 못하시는 것이다. 온유와 겸손이야말로 하나님에게 쓰임받는 이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기둥이다.
3). 삶의 현장에서의 봉사
일상생활속에서, 속에서 흘러넘치는 생명과 기쁨과 평화를 가지고 섬기라. 일상생활속에서 섬김의 봉사에 참여하라고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부르신다.
2. 청빈훈련
청빈훈련이란 물질을 물질로 알고 사용하는 훈련이다.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는 훈련이며, 물질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훈련이다. 심령의 가난함이란 심령이 물질로 차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져 있는 것이다. 물질 때문에 희로애락에 빠지지않게 되는 것이다. 물질만능시대인 21세기에 물질의 권세를 이기기 위해서는 청빈훈련을 해야한다.
‘내 소유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오직 관리하고 있을 뿐이다. 나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다’ 라는 생각이 청빈 훈련의 기초이다. 나의 생명, 나의 소유, 나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맡기신 것이다. 타인을 위하여 사용하라고, 세상에 유익을 끼치라고 맡기신 것이다. 이것을 인정하고, 이에 따라서 사는 것이 청빈훈련이다.
청빈훈련의 실천:
1). 물건을 살 때는 위신에 관계없이 실용성을 본다.
2). 탐닉하게 되는 모든 것을 물리친다. 새것이라고 사지 말아야 한다.
3). 물건을 남에게 주는 습관을 기른다.
4). 광고로 충동구매하지 말라. 광고는 탐욕과 허영에 호소하는 뱀의 유혹이다.
5). 소유하지 않고 즐기는 법을 배우라.
6). 물질보다 자연을 깊이 감상하라.
7). 외상의 덫에 걸리지 말라.
8). 남을 억압하게 될 일은 모두 물리치라.
9). 물질, 부요에 대한 관심을 물리치고, 오직 영적인 부분에 관심을 가지도록 훈련하라.
제8장. 말씀의 섭취
1.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이며 우리 영혼에 감동을 주신다.
1).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이 담긴 책이다. 하나님의 생명력, 하나님의 호흡, 하나님의 치유, 하나님의 평안이 담겨있는 책이다.
벧후1:20-21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2). 책을 통하여 우리는 저자의 사상, 개념, 감동을 전달받는다. 하나님의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성경 말씀을 통하여 저자이신 하나님의 사상, 개념, 감동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읽는 것이 아니라 받아야 한다.
살전2: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력을 받는다는 기분으로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한다. 말씀속에 우리가 모르게 담겨 있는 능력을 받는 자세로 말씀을 읽고, 들어야 한다.
2. 말씀은 하나님과 우리의 인격적인 만남을 제공한다.
1).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감동감화를 받는다는 것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을 말한다. 손을 잡듯이, 손을 만지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만지고 붙잡고 새겨넣을 때,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이러한 성령의 감동감화를 위하여 성경읽기전에 기도해야한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면 말씀을 통하여 성령의 감동이 내 마음에 오게 된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마음으로 만나게 된다. 인격적으로 만나게 된다.
사람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이다. 감정으로도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육적으로도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영적으로도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누구든지 이제는 육적이나 감정적으로 만나지 말라. 영적으로 만나는 훈련을 하라. ‘영적으로 사람을 만나게 해주세요’ 하고 기도하고 누구든지 만나라.
간음한 여인을 향하여 돌을 든 사람들은 감정에 휘말려 돌을 들고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적상태에서 가만히 앉아서 글을 쓰셨다. 무슨 일이든지 생기거든 얼른 영적상태가 되라. 영적상태에서 나오는 영의 힘으로 감정을 이기라. 감정에서 나오는 행동은 돌발적 행동이나, 영적상태에서 나오는 행동은 깊은 지혜가 있는 행동이다. 이러한 영적행동이 감정의 불을 끌 수 있다. 영에서 나오는 놀라운 힘을 사용하는 훈련을 하라.
2).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 하나님의 감동, 하나님의 마음을 내 마음에 받아넣으라. 마음에 새겨넣어야 한다. 그렇게 하라고 성경을 기록하셨다.
신6:6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3.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소생케 한다.
시19:7-10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지혜롭게 하며.. 마음을 기쁘게 하고.. 눈을 밝게 하도다...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1). 성경은 바다처럼 매우 깊은 책이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욱 놀라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2). 성경은 글로 기록되어 있으나 글로 전혀 표현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에게 표현하는 신비의 책이다.
3). 성경의 기록된 말씀 속에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를 만날 수 있다. 성경을 읽을 때 이에 대한 흥분과 기대를 가져야 하며, 이를 위한 기도를 하고 말씀을 읽어야 한다. 말씀을 읽음으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모시도록 노력하고 훈련해야한다.
4). 성경 말씀에 대하여 마음을 열면 여는만큼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
5).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가장 깊은 부분인 영을 열어서 내 영에 하나님이 오시도록 해야 한다. 그럴 때, 말씀이 성령의 검이 되어 우리 심령을 치료하며 은혜를 주실 수 있다. 말씀앞에 자신을 개방하고 성령의 역사가 마음 깊숙이 임하게 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대하라.
4. 성경 말씀은 하나님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1). 성경을 읽는 것 그 자체가 성령께서 나를 파악하고, 나를 만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는 것 그 자체가 이미 고백과 기도, 예배가 되어야 하며, 성경을 읽으면서 자신을 하나님께 더 드러내고 말씀이 내게 더욱 가까이 오고 감동을 받으며 수술과 치료를 받는 것이 되어야 한다.
2). 말씀을 읽을 때, 사무엘처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세를 가지라.
3). 성경을 펼 때, 하나님께서 바로 내 앞에, 말씀 속에 계시며, 말씀을 통해 그분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는 마음과 믿음을 지녀야 한다.
5. 말씀 섭취의 방법
1).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 속에 계시는 하나님을 내 안에 들어오게 한다는 자세를 가지라.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다는 믿음을 가지라. 말씀을 나의 마음에 여러 가지로 음미하여 새겨넣는다는 자세를 가지라.
2). 조용한 찬양으로 성령님의 임재를 요청하라.
3). 성령님에게 말씀이 내 영혼의 양식이 되게하여달라고 간구하라.
4).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하라. 자신의 말로 바꾸어보라: 성경을 읽으며 고백과 회개와 기도와 간구와 위로와 은혜와 능력을 받으라.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
5). 말씀이 나에게 적용되는 것을 상상하라. 마음속으로 그려보라.
6). 말씀이 나에게 적용되는 것을 상상하면 자연스럽게 기도가 나오게 된다.
7). 실습:
①. 찬양: 찬양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찬양하라 기뻐하라 내 영혼아 기뻐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기뻐하라.
②. 기도: 성령님, 우리가 이 말씀을 대할 때에 하나님을 대하듯이 대하게 하시고, 이 말씀을 읽을 때에 성령님의 감동이 오사, 우리가 단순히 이 말씀을 읽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치료하시고, 위로하시고, 우리의 영혼을 소생하시고,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고, 우리를 교육하시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③. 예1, 약1장
내 형제들아: 그래 우리는 다 형제들이지 과연 나는 내 이웃을 나의 형제, 한 피를 나눈, 한솥밥을 먹는, 한 태에서 나온 형제로 여기고 있는가?
너희가: 내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그래 나는 지금 시험을 만나고 있지. 여러 가지로 답답하고 억울한 시험을 만나고 있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지? 지금 말씀은 나에게 무엇이라고 하는가?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아주 기쁘게 여기라고 하시는데, 나는 지금 너무 답답헤 하고 있구나. 하나님, 내가 지금 답답해 하고, 좌절하고 있는데, 하나님, 온전히 기쁘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을 주세요. 온전한 기쁨을 주세요. 시험은 감정으로 오는데, 감정으로는 시험을 전혀 못이깁니다. 감정을 이길 수 있는 영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주세요. 잃어버리는 것을 생각지 않고 얻는 것을 생각하고 기뻐할 수 있게 해주세요.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가져오나니: 시련이 오면 무엇인가 나에께서 잃게 되지만, 시련을 통해서 나에게 없었던 인내라는 열매를 얻게 되는구나. 그런데 이 인내를 얻기 위해서는 내가 기쁨을 가져야 하는구나.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성령님 인내를 온전히 이루게 해 주세요.
④. 예2, 시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래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다. 여호와는 나의 생명이시다. 아버지시다. 품으시는 분이다. 나는 그분의 양이다. 나는 그분을 따라가야만 사는 존재다. 나는 여호와를 나의 목자, 나의 주인으로 모시기 때문에 나는 행복하다. 나와 그분은 하나이다.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나의 생명이니 당연히 내게 부족함이 없다. 하나님이 나의 생명이니 나에게는 이제 만족함만이 있다. 나는 정말 충만하다, 정말 풍성하다, 정말 넘치도록 행복하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은 지금 나를 좋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있다. 좋은 곳으로 가는 중이기 때문에 지금은 좀 어렵지만 이제 곧 거기에 도달할 것이다.
제9장. 침묵과 고독의 훈련
1. 침묵의 기도
마6: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한국의 크리스챤은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 문제이다.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소리내어 하는 기도는 혼적인 기도, 감정에 의존하는 기도가 되기 쉽다. 이러한 기도는 응답은 받을지 몰라도, 영성의 발전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성령의 활동을 활성화시키는 기도, 내 영을 살리는 기도, 온유한 성품이 성령님으로부터 내게 끼쳐지는 기도는 침묵의 기도로 가능하다. 침묵의 기도야말로 영성을 발전시키는 깊이있는 기도이다. 기도속에서 나의 연약함을 보고, 기도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기도속에서 나의 영을 치료하는 기도이다. 성숙한 삶은 이러한 침묵의 기도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도시화, 산업화에 따른 혼잡과 시끄러움으로 우리의 영이 상처를 입고 있다. 산업화, 기계화로 말미암아 정신적인 피로를 풀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진다. T.V는 전혀 정신적 피로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혼적인 수단과 방법으로는 정신은 점점 예민해지게 되며, 영적으로는 점점 둔해지게 된다. 이러한 삶은 쉽게 상처를 받고 넘어지는 연약한 삶이다. 이러한 영의 상처는 침묵과 자연의 소리로 치유함을 얻어야 한다. 그리함으로 영적인 삶, 깊은 삶, 승리하는 삶, 성숙한 삶을 살아야 한다.
뇌만 사용하고 마음은 사용하지 않음으로 우리의 뇌는 점점더 스트레스를 받고, 마음은 굳어진다. 뇌(이성)는 감정에 직접 연결되어 있다. 뇌를 쉬게 해야 감정을 제어할 수 있다. 뇌를 쉬고 마음을 활성화시켜라. 뇌는 판단할 뿐이지 아무런 힘도 없다. 감정은 무식한 힘이다. 스트레스받은 뇌와 제어되지 않은 감정이 엮어내는 삶은 참으로 무서운 삶이요, 초라한 삶이요 엉망인 삶이 된다.
그러므로 영으로 뇌와 감정을 제어하게 하라. 뇌와 감정을 죽이고, 쉬게 하고, 마음을 활성화시켜라. 영을 활성화시켜라. 영은 지혜의 무한한 힘이다. 이를 위해서 내 안에, 내 마음에 계시는 성령님을 찾으라. 그분이 활동하시게 하라. 눈을 감고 마음에 집중함으로 성령님이 일어나시게 하라.
적어도 하루에 한시간, 두시간, 될 수 있는한 많은 시간을 침묵의 시간으로 보내면서 영을 활성화시키는데 사용하라. 성령님을 만나는 시간을 가지라. 하나님을 믿고만 있지말고, 하나님과 연결되어야 한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침묵은 하나님께 접근하는 첫걸음이다.
침묵은 자신의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다. 영적인 존재, 영적인 가치를 되찾는 것이다.
침묵 그 자체가 하나의 세계이다. 내면의 무한한 세계를 향한 출발이다.
침묵에서 새로운 말을 배운다. 내면의 말, 진정 필요한 말을 배운다.
침묵은 기도이며, 평화이며, 자유함이다.
침묵은 가장 효과적인 휴식이다.
침묵은 인간의 시야를 넓혀준다.
침묵할 때 마음의 소리가 떠오른다.
침묵이 시작되면 혼란, 무질서와 공허의 안개가 걷히고 깊은 지혜가 떠오른다.
2. 침묵의 실천
1). 조용한 장소에서 식사전후를 피한 1-2시간의 시간을 내라.
2). 편안한 자세를 취하라.
3). 조용한 찬양으로 마음을 안정시키라.
4).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간구하며 기다리라. ‘성령님 임하여 주옵소서.’
5). 어떤 생각의 물결도 일으키지 말고 마음을 호수의 표면처럼 잔잔하게 하라. 호수에 자신이 모습이 비추이지 않는 이유는 호수의 표면이 출렁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6). 성령님을 만날 것, 성령님의 체험을 기다리라. 침묵은 침묵으로만 이해된다.
3. 기도와 체험
성령님의 체험이 침묵기도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된다. 기도의 평가는 기도 중에 일어나는 체험이 아니라, 기도가 삶에 미치는 영향으로 하라. 삶에서 겸손, 순결, 단순, 순종, 회개, 정직, 사랑, 온유 등의 열매가 맺혀지면 바른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교만, 독선, 불순종, 시기, 질투, 다툼, 경솔, 미움, 불안이 나타나면 어떠한 신비한 체험이라도 잘못된 체험이다.
침묵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과의 일치이다. 삶에서의 일치이다. 기도와 삶의 사이에 있는 갈등, 분열을 극복하고 일치시키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이다.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기도 가운데로 가지고 가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고침, 치유 해결받아야 하며, 기도중의 깨달음, 조명하심, 나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생활에 반영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이다. 생활, 활동중에도 기도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쉬지말고 항상 깨어서 기도하라. 침묵으로. 기도하라.
제10장. 본능과 영성의 차이
롬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고전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진정한 크리스챤이라면, 영적인 크리스챤이라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라. 드리지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에 마귀가 주장함으로 고통이 오게 된다. 하나님께 다 드리면 오직 하나님의 평안, 생명이 온다.
혼적인 목숨은 일시적이다. 이 혼적인 목숨이 살아있기 때문에 영의 생명이 살아움직이지 못한다. 영적인 생명은 영원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과 연합하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적인 생명은 또한 마귀와도 연합할 수 있다. 과연 내 생명은 누구와 연합하고 있는가?
육신은 본능으로 활동한다. 본능이란 육체의 보존을 위한 동물적인 기능, 감각적인 기능이다. 이에 비하여 영성은 하나님을 닮으며 하나님과 교통하는 기능이다. 영성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높은 곳, 먼 곳을 추구하나, 본능은 보이는 것, 눈앞의 것, 땅바닥의 것, 낮은 것, 주변, 사람, 환경을 보며, 이러한 것들만을 추구한다. 이성(혼)은 판단, 추리의 기능을 가지며, 육성인 본능을 따를 수도 있고, 영성을 따를 수도 있다.
영적인 크리스챤이란 영성을 강하게 훈련함으로 영성을 성숙하게 함으로 이성이 늘 영성을 따르게 만드는 사람이다. 영의 성숙은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의 공동작업이다. 훈련이다. 이 시대에 성령운동, 은사운동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영성운동, 영성 훈련이다. 영성이 개발되면, 성령님이 오시고, 은사는 자연히 잘 나타나게 된다. 아주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나타나게 된다.
영성은 오직 훈련으로만 유지할 수 있다. 영성 훈련은 경건의 훈련이며, 육체의 훈련과 같이 계속해야 힘이 된다. 끈질기게 계속해야 힘이 된다. 영의 부분을 단장하기에 게으르지 말라. *
[중국선교연구원 http://www.inbor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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