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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성장과 영성 훈련

영성묵상훈련 유해룡 교수............... 조회 수 2192 추천 수 0 2011.07.21 16:5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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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유해룡(장신대 교수) 
영적 성장과 영성 훈련

유해룡(장신대 교수)

Ⅰ. 영성훈련의 의미

기독교 영성이란 두 가지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비움과 채움의 훈련(emptiness and fullness)이 역동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이 둘이 잘 조화를 이룰 때 영성형성이(Spiritual formation) 잘 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기독교 영성훈련의 그 초점을 시대를 막론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치관을 각 개인에게 인격화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인격화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은 그 시대의 장애물을 극복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유인이 되며, 그 부르심에 자유롭게 순종할 수 있게 된다. 기독교 영성훈련의 그 대상과 목적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바뀌어 질 수 없으나 그 방법에 관한 한 시대와 장소와 생활패션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21세기에 있어서 영성훈련 방안

1) 개인주의화되어 가는 현상을 잘 포착하라. 지금까지는 개인보다는 집단을 소중히 여기는
가치관이 우리 사회 특히 교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따라서 전체주의적인 신앙교육(설교, 성경공부 등)이 개인의 영성형성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쳐 왔다. 그러나 그 역할이 감소되어 갈 것이다.

개인을 소중히 여기는 영성훈련이 선행되어야만 공동체가 살아날 것이다. 개인을 소중히 여기는 방식의 영성훈련은 목회자 중심의 목회 사역으로 역부족이다. 적극적인 은사개발을 통하여 평신도의 역할 신장시켜야 한다. 성장보다는 성숙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2)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자연 회귀적이고 단순화의 삶을 희구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도시문화의 극대화와 얽히고 닫혀진 구조화된 세계로부터 탈출을 염원하다. 비대화보다는 실용적이고 편의주의적인 생활패턴을 추구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의 내면의 세계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가지며, 내면 훈련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내면세계를 이해하며 내면 세계의 성장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지도해 줄 수 있는 ‘영성지도’를 개발해야 한다.

3) 개인훈련을 위한 공동체적인 삶을 개발해야 한다. 기독교 영성은 하나님과의 개별적인 관계를 소중히 여기지만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서의 공동체도 중요하다. 미래사회는 점점 더 상대적 가치관에 익숙해져 가기 때문에 윤리적인 삶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개인적인 편의와 쾌락에 그 가치의 초점이 맞추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가 공동체적인 삶을 통한 섬김과 희생과 윤리적인 삶의 모델을 보여주어야 한다. 개인훈련과 공동체적인 훈련이 겸한 체제를 의미한다.

4) 다원주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서 건전하면서 경험적인 영성을 개발해야 한다. 혼합주의적인 위험 때문에 교리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가르침에만 매어 달리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 건전한 교리를 무시하고 역동적이고 체험적인 신앙만을 강조하는 경향을 조심해야 한다. 만약 성서의 가르침이 분명하지 않은 체험적인 영성훈련을 강조한다면 혼합종교에 빠지기 쉽다. 그 훈련으로 성서를 중심으로 한 기독교 명상이나 관상기도의 회복이 필요하다.

Ⅱ. 영성훈련과 기도

1. 영성훈련의 지향점

자유인이 되는 것, 하나님을 향한 열림 마음을 확보하여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마음을 조성하고 그의 뜻을 자유롭게 식별하여 적절하게 응답하는 삶을 형성하려한다. 여기에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체험이 요구된다. 하나님의 체험에는 초월적인 것과 내재적인 것이다. 초월적인 경험이란 믿음에 의한 인지요, 수용적이다. 내재적인 체험이란 감성적인 체험이요, 임재의 체험이다.

2. 영성훈련의 기본적인 틀

가. 영적각성(Spiritual awakening)

조명의 단계 ■ 영성훈련의 출발점이다.

오랜 잠으로부터 깨어나는 순간이다. 새로운 의미를 찾아서 눈이 열려지게 된다. 감각적인 가치로부터 보다 고상하고 영원하고 진리적인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비로소 신앙적인 회심이 시작된다. 눅19장에서의 삭개오의 물질관에 대한 변화, 마19장에서의 부자 청년의 변화의 시도 등이 바로 내적 각성을 보여준 예들이다. 각성의 길은 영혼의 문을 계속 열어놓고 기회를 찾는 것이다.
나. 영성훈련(Spiritual exercise)

정화의 단계 ■ 비움의 훈련에 해당한다.

육체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 적당한 운동을 통하여 불필요한 지방을 몸에 제거하여 몸의 기능을 원활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영성훈련이란 영혼의 운동이다.

우리의 영혼이 부적합한 집착에 매어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려 적합하게 순종할 수 없다. 이 집착으로부터 벗어남으로부터 영혼의 자유함을 얻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자유롭게 응답하도록 준비하는 것이 영성훈련이다. 지속적인 자아성찰과 금욕적인 수련과 덕성을 쌓아간다(빌 3:7-14).

다. 영성형성

완덕의 단계 ■ 채움의 훈련에 해당한다.

우리는 자신을 비운다 할지라도 채움이 없으면 언제든지 본래의 상태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것이 인간이다(마 12:43-45).

그렇기에 바울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를 권고한다(엡 4:13). 말씀에 대한 지속적인 묵상훈련을 통하여 완덕을 성취하게 된다.

3. 하나님 경험과 자아성찰

가. 자아로부터의 하나님에로의 영적 여행

하나님의 만남은 자아의 만남과 일치한다. 성서는 우리의 존재의 바탕이 곧 하나님이라고 말한다(창 1:27). 역동적인 의미에서도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고 교제하시는 분이다(고전 3:16 ; 6:19). 자아에 대한 인식 없이 결코 하나님 체험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영성가들은 자아로의 내적으로 내림운동은 하나님을 향한 상승운동과 같은 의미라고 믿었다. 어거스틴의 [고백록]과 존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자아에 대한 지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식과 하나님의 경험에 이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고백록> 5권 2장 2: “오 주님 내가 당신을 찾고 있을 때 나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당신은 내 앞에서 바로 계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으로부터 떠나 있었으므로 나 자신을 찾을 수 없었으니 하물며 당신을 어떻게 찾을 수가 있었겠습니다?”

■ <고백록> 6권 1장 “어릴 때부터 나의 희망”되신 하나님, 그 동안 당신은 어디에 계셨습니까?... 나는 어둠 속에서 미끄러운 길을 걸어다니며 나 자신 밖에서 당신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내 마음의 하나님을 찾지 못했습니다. 내가 바다의 깊은 밑바닥까지 내려가 보았어도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 <고백록> 10권 27장 38 “그렇게도 오래 되셨지만 동시에 그렇게도 새로운 ”아름다움“이 되시는 당신을 나는 너무 늦게야 사랑하였습니다. 당신이 내 안에 계셨건만 나는 나밖에 나와서 당신을 찾고 있었습니다...당신이 나와 함께 계셨건만 나는 당신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그 피조물들의 외형적인 아름다움이 나를 당신에게서 멀리 떠나게 한 것입니다.”

■ 깰뱅의 <기독교 강요> 1권 1장 1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 이 두 지식은 여러 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이 먼저이며, 어느 쪽의 지식이 다른 쪽의 지식을 산출해 내는가는 알아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은, 우리를 일깨워서 하나님을 찾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마치 손으로 끄는 것처럼 우리를 인도하여 하나님을 발견하게 하는 것이다.

나. 자아성찰

우리늬 내면세계는 언제나 흔들리고 혼란 되어 있다. 잘못된 습관과 편견으로 인해서 마음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늘 흔들리는 호수와 같기도 하고, 오염물질로 탁해진 호수와 같기도 하다. 탁해진 호수의 내면세계를 바라볼 수 없듯이, 일상적인 우리의 마음도 그와 같아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는 우리의 내면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침묵을 통해서 흔들리고 탁해진 마음을 갈앉힘으로써 내면세계를 성찰해 볼 수 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나와 나 자신과의 관계, 나와 사물과의 관계, 나와 너와의 관계,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현황을 직시할 수 있다. 침묵의 의미는 늘 소란스럽고 분주한 자아 내면을 훈련시키는 의미가 있고 침묵은 내면 세계 귀를 기울이려는 또 다른 조처이다. 또한 침묵은 하나님과의 만남(대화)을 위한 환경 조성적인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침묵은 대화를 멈추는 것이 아니고, 대화의 상대를 바꾸려는 훈련이다.

(1) 자아와 자아와의 관계 성찰

우리는 가면은 쓴 위자와(僞自我)와 하나님 앞에서의 진자아(眞自我) 사이에서 번민하며 사는 존재이다. 사회적으로 주어진 지위나 역할 등이 진자아와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위선자가 되고, 죄를 범하게 된다. 그 부분을 냉철하게 관찰하여 진자아와 조화를 이룬 사회적 자아(목사, 선생, 과장 등)을 실현해 가야 할 것이다. 내가 누구냐는 질문이 계속되어져야 한다.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참고하라.

(2) 자아와 타자와의 관계 성찰

이웃을 향한 인격적인 만남의 삶을 성찰하라. 나의 존재는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정의되어진다. 우리의 삶의 여정 속에서 수단으로서의 내가 아니라 목적으로서 너와의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성찰하라. 너는 나와 너로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나, 하나님과 너라는 삼각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참고하라.

(3) 자아와 사물과의 관계 성찰

물질관에 대한 성찰이다. 물질을 소유개념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지극히 세속적인 것이요, 위탁의 개념을 생각한다면 물질 생활 자체 역시 거룩한 것이요,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다. 물질자체보다는 물질을 움직이는 이의 섭리를 생각하도록 힘쓰라. 마태복음의 부자청년은 물질의 소유개념이 그 영적인 삶을 실패케 하였다(마 19:16-22). 에릭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참고하라.

(4) 자아와 하나님과의 관계 성찰

하나님에 대한 습관적인 이미지를 발견하라. 그것이 매우 편협적이고 불건전한 것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현재의 하나님과 관계상태를 보여주는 예이다. 자기의 관심도에 따라서 선호하는 이미지에 집착할 때 그 이미지 자체가 우상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이미지를 진단함으로써 보다 건전하고, 풍요롭고, 다양성 있는 이미지를 개발하도록 하라,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의 예 암탉(마 23:37), 어미(사 49: 15; 66: 10-13). 아빌라의 테레사의 [영혼의 성]을 참고하라.

4. 기도훈련

기도는 무엇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누구를 구하는 것이다. 즉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우리 개인의 반응입니다. 기도는 경외감을 가지고 그 분에게 귀를 기울이는 마음의 자세로부터 시작된다. 들으려는 자세를 가질 때 우리는 그 분께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그 분이 먼저 말씀하신다. 우리는 기도 속에서 그 분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느끼고 감사와 사랑하며 반응하는 것이다. 기도의 관심은 우리의 일이 아니고 언제나 하나님이시며 그가 행하신 일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기도는 우리 안에서 성령의 임재를 확신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지속적인 성령의 영감에 대한 확신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모든 기도는 성령께서 하시는 것이다. 말하자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기도하시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순종하려는 태도가 기도이다. 이 과정 속에서 개인은 성령의 소욕과 육신의 소욕 사이에서 모순과 갈등을 느끼면서 격렬한 투쟁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기도를 투쟁이라고 한다.

기도의 뿌리는 ‘내적인 침묵’에 있다. 관상기도는 생각으로부터 초연(detachment)하는 것이다.

말과 생각과 감정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상태(객관화시킨 상태)에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mind and heart)을 하나님께 올리는 것이다. 마음과 감정을 반추하면서 마음을 잔잔케 함으로 기도를 준비하게 된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전이고 성령의 전이다(고정 3:16). 성령은 마치 우리 자신이 그 방에 익숙하도록, 또 그 방에서 어떻게 행동하도록 가르쳐 주신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우리의 내면으로 여행하는 동안 우리의 생각과 느낌 등이 그 방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점점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는 기도에 이르게 된다.

테레사(하나님을 향한 내적인 여행으로부터 얻은 경험을 매우 날카롭고 정확하게 묘사함으로써 내적인 여행을 시도하는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인 길잡이 역학을 해주는 [영혼의 성] 이라는 글을 썼다)는 인간의 영혼을 수많은 방을 가지고 있는 수정 혹은 다이아몬드로 만든 아름다운 성이라고 했다. 이 성에 들어가기 위한 첫문은 기도와 명상이다. 이 성에 들어가기까지 만나야할 많은 장애물들이 있다. 이 장애물과 싸우면서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 기도이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내면 깊은 세계로 들어가는 동안 인간성과 마귀에 대항하는 싸움을 격렬하게 치뤄야 한다. 그러므로 온전히 기도의 삶에 헌신된 이들에게 있어서 기도는 인간본성과 마귀를 향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기도는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 끼어있는 우리 자신 안에서 맹렬한 전투를 심화시킨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이 성 깊이로 들어가는 동안 자기 자신의 삶을 수정하고 여러 덕을 쌓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전투를 감당하기 위해서 홀로 투쟁할 수 없다. 성령님의 인도와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의지로 기도하려 말고, 그 대신 우리의 의지를 통해서 온전히 성령님께 우리의 전존재를 맡겨드리도록 힘써야 한다.

기도를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청원기도요, 두 번째는 관계형성의 기도이다.

청원기도는 내면적인 욕구를 하나님께 드러내고 씨름하는 것이며, 그것을 성취하려는 욕구와의 씨름이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심령으로 드려지는 기도는 때로 포기할 용기도 얻지만, 자신의 욕구에만 집착해 있을 때 성령의 인도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외면한 자신의 욕구 실현을 위한 집요한 기도는 자칫 자신의 인격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으나, 영성형성에는 크게 도움을 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관계형성을 위한 기도는 나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실현이 그 목적이지, 우리 자신의 욕구는 지극히 부차적인 요소이다. 우리의 욕구실현에 관심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형성을 도움을 주는 범위에 제한된다. 예수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이루시겠다고 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눅 11:9).” 여기에는 아무 조건이 없다. 조건이 있다면 단지 ‘내 이름으로(예수님의 이름으로)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고 했다.

그러나 후에 사도들은 응답되어지는 기도의 조건을 별도로 붙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야고보서 4장 3절에 보면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요일 3:21)”,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요일 5: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어떤 조건이 붙어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사도들의 경험이요, 깨달음이요, 이해일 것이다. 예수님이 가르치는 기도는 욕구 성취의 도구라기보다는 하나님과의 교제요, 관계형성이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함이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까지 자라기 위한 과정이다.

그러므로 영성훈련을 영성형성이라는 말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면 무엇보다도 성숙한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형성을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과정이다. 우리의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고, 우리의 정욕이 아니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요구에 적응키 위함이다. 그것은 분명 성서로부터 출발되어진 기도일 것이다. 그리고 영성훈련이 예수님의 인격을 닮아가고 나아가서 베드로의 말대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라며, 영성훈련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적인 삶을 내면화하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아타나시우스는 “성육신은 인간을 하나님 되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기도는 하나님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는 오늘 우리에게 말씀으로 남겨져 있다. 그 말씀을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내면화 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참여되게 되고, 우리의 인격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덧입게 될 것이다. 즉 말씀이 단계적으로 기도를 통해서 내면화된다면 그것은 곧 우리가 지속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온전함을 이루게 될 것이다.

성서를 내면화하는 데 있어서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기도 방법은 관상기도이다. 관상기도란 기도자와 대상이 하나되는 일치의 상태를 말한다. 말씀을 묵상하는 과정 속에서 관상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그 말씀을 하나의 사건이요, 나 자신이 그 사건의 인물로 참여하게 된다. 그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과 뜻을 전달받고 우리는 그분과의 솔직한 관계 속에서 응답하게 된다. 이런 과정이 지속되는 과정 속에 영성형성은 꽃필 것이다.

5. 기독교적인 묵상(관상)기도

읽은 텍스트를 상상력을 통해서 생생하게 살려내고 그 실존 속으로 우리 자신이 들어가서 그 텍스트와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실존을 우리의 내면 속에서 경험키 위해서 그 매개체로서 우리 영혼이 말씀에 직면하게 하는 기도이다. 말씀과 평정한 마음이 부딪히게 될 때 하나님의 실존과 만나고 우리는 이에 상응한 응답을 하게 된다(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며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과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성숙한 기도는 상황적인 욕구를 성취하기보다는 내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영적인 갈망에 응답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응답하려는 행위이다. 요한 아른트(Johann Arndt)는 ‘기도는 하나님을 찾고 만나는 수단이다’라고 했다. 이에 가장 적합한 기도의 출발점은 상황적인 욕구보다는 성서가 알려진 내면이고 영적인 욕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성서는 하나님의 실존이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이 그것에 정면으로 부딪힘으로써 영적 체험을 구성하게 될 것이다. 성령님의 인도를 경험하고 있는 기도자는 주님과의 교제를 하는 동안 가운데 [yes] 혹은 [no]를 반복하면서 영적인 성장을 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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