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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영성 일지 기록하기

영성묵상훈련 최용우............... 조회 수 2518 추천 수 0 2011.07.21 17: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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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글렌 E. 힌슨 
영성 일지 기록하기

진정으로 하나님과의 교제에 진지하게 헌신하려면,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지는 몇 가지 방법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고함을 치거나 비명을 지르시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는 생생한 교제를 유지하기 위해 더 크게 책임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이 종교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일에 종사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영적인 문제가 적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종교적으로 전문가들이 일반 성도들보다 더 큰 위험을 당할 수 있다. 그들은 너무 쉽게 종교적인 일에 휘말리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의 공연, 역할, 행동으로 바꾸기 시작하며,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밀쳐 놓는다. 예수께서 경고하신 것처럼(마 6:5-6), 그들은 위선자, 자신이 얼마나 헌신적인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는지를 모든 사람들에게 확실히 보게 만드는 ꡒ연극 배우ꡓ들이다. 한편, 그러한 지도자들은 내면적으로 아주 메마르고 세상이 풍부하게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을 세상에게 제공하지 못한다. 초대 시대의 어느 기독교인이 관찰한 것처럼, 그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사람이다(딤후 3:5).
사람들마다 책임을 보증하는 방법이 다를 것이다. 대부분의 수도회들은 개인적인 영적 지도자를 요구해왔다. 이그나티우스 로욜라는 그러한 지도자들은 영성훈련을 행하는 사람들의 대리인이라고 생각했다.1) 로마 가톨릭 교회는 모든 신자들을 위한 개인적인 영적 지도자들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세 초기 무렵부터, 교회는 사제들에게 정규적으로 죄고백을 할 것을 요구해왔다.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은 수도적 모델과 구도로 행하는 죄고백의 관습을 거부하고서, 하나님과의 언약의 책임을 개인에게 두었다. 우리는 이것을 만인제사장설이라 한다. 사람들은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를 보살펴줄 사람이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 그 문제를 다룰 수 있었다.
개신교의 접근 방법은 이론상으로 볼 때와는 달리 실제로는 제대로 작용하지 않았다. 아마 우리는 영적으로 개신교 신자들은 쉽게 버스를 잡아 타고는 운전을 예수님에게 맡겼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문제의 배후에는 은혜에 대한 적절하지 못한 정의 즉,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의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인 성령을 강조하지 않고 오히려 심판 때에 죄인을 무죄방면해 주시는 것을 강조하는 일이 놓여 있다. 존 칼빈은 신자들의 책임감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제네바 교회법을 제정하여 올바른 경건생활을 하지 못한 데 대한 형벌을 규정했다. 그는 청교도주의를 추종했고, 특히 주일 성수를 강조했다. 그러나 뉴 잉글랜드에서의 청교도주의 운동을 통해서 교회가 신실함을 법제화할 수 없음이 증명되었다. 제3 세대에 이르러서 교회의 출석 교인수는 전체 인구의 6퍼센트 정도로 감소되었다.
1720년부터 1760년 사이에 대각성운동은 빈사상태에 빠진 종교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었고, 종교에 대한 보다 경험적인 접근방식을 고취했다. 미국 식민주들은 모라비아교도들을 통한 경건주의와 감리교운동(Methodism)의 도래를 통해 유익을 얻었다. 경건주의와 감리교운동에서는 ꡒ경건의 학교ꡓ(school of piety) 혹은 ꡒ속회ꡓ(class meeting)를 통해 양성된 성결 혹은 성화를 강조했다. 사람들은 속회나 경건의 학교와 같은 모임을 통해서 보다 친숙하게 교제하며 서로의 신앙에 대해 책임을 져줄 수 있었다. 1675년에 필립 야곱 스페너는 소규모의 세포 집단에서의 진지한 성경공부를 독일 내의 루터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자신의 계획의 첫번째 과제로 삼았다.2) 존 웨슬리는 조지아 주로 선교하러 하는 동안 모라비아 교도들을 알게 되어 처음으로 모라비아 사회에 참여하게 되었었다. 그는 자신의 신앙부흥 운동에서 소규모의 세포 집단이라는 개념을 채택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계속 주의를 기울이기 위한 또 다른 방법은 영성 일지를 쓰는 것이다. 영성 일지를 쓰는 것은 기독교에서 유서 깊은 전통이다.
일지를 쓰는 습관을 지녔던 칭송할 만한 여인들도 있었다. 믿음 때문에 사형을 당한 카르타고의 귀족 부인 퍼페투아(Perpetua)는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일기에 자기를 체포한 사람들과 자기 가족들과 자신, 자시에 있었던 일과 자신의 꿈 등 매우 개인적인 것을 포함하여 자신이 경험한 일들을 기록했다.3) 스페인의 수녀인 에게리아(Egeria)는 383년에 이집트와 성지를 순례한 일을 무척 상세히 기록했다.4)
13세기부터 15세기에 이르는 동안 많은 여인들은 ꡒ계시들ꡓ에 매우 개인적인 경험들을 기록했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로, 개신교도들과 카톨릭 교도들은 하나님과 자신의 약속을 깊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일지를 써왔다. 존 번연5)과 같은 청교도들은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ꡒ은혜의 역사ꡓ를 주의깊게 기록했다. 미국 식민주에서는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는 대각성 운동이 절정에 달했던 기간에 미국 원주민들의 회심을 목격하면서 느낀 은혜의 역사에 대한 의식을 자신의 일기6)에 상세하게 기록했다.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브레이너드가 폐병에 걸려 죽어갈 때에 에드워즈의 딸이 브레이너드를 보살펴 주었다―는 그 일기를 기독교 경건 고전으로 만들었다. 조지 폭스(George Fox)7) 때부터, 퀘이커 교도들은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일은 물론 자신의 경건을 탐지하기 위한 주요한 수단으로 일지를 사용했다. 존 울먼(John Woolman)은 노예 매매의 부당함과 학대를 극복하는 데 대한 자신의 사상을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일지를 사용했다.8) 존 웨슬리9)는 옥스포드 대학의 ꡒ신성 클럽ꡓ(holy club) 시절부터 1735년에 미국의 식민주에서 선교하던 시기에 이르는 동안 자신의 영성 생활에 대한 내용을 상세히 기록했다.

영성 일지란 무엇인가?

여기서 먼저 영성 일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보다 상세하게 정의를 내리려 한다. 어떤 영성 일지에는 일기라는 명칭이 붙기도 하지만, 영성 일지―최소한 영적 성장과 관련된 것―와 일기는 다르다. 영성 일지에는 하에 한 일에 대한 보고나 업무적인 영성 일지 같은 것이 포함되기도 하지만, 영성 일지는 단순히 그런 기록이 아니다. 영성 일지는 표면적인 내용보다는 내면적인 일에 관심을 가진다. 아마 가장 심오한 의미에서, 영성 일지란 하나님과의 대화, 의사소통, 교제 등의 기록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묘사된다면, 어거스틴의 『고백록』(Confessions)와 같은 불후의 고전은 영성 일지의 범주에 아주 근접한다고 볼 수 있다. 모튼 켈시(Morton Kelsey)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ꡒ여기에서의 목표는 단순히 나 자신의 잠재력을 성취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종교들이 말하는 영적 실재의 중심과 나와의 관계를 심화하는 것이다.ꡓ10)

영성 일지의 역할

유명한 현대인들의 영성 일지를 읽어 보면, 영성 일지를 기록하는 경건한 사람들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글라스 스티어(Douglas Steere)는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퀘이커 교도 사회에서 자신이 행한 전세계적인 사역과 관련하여 기록한 영성 일지를 보관하고 있다.11) 그의 영성 일지에는 그에게 ꡒ인간적인 지혜ꡓ를 제공한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의 영성 일지는 그가 경험한 것들을 해석해준다. 그것은 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 혹은 Friends World Committee for Consultation에 보낸 보고서 및 이 단체가 퀘이커 교도들 및 전세계의 다른 친구들에게 보낸 여행 서신들은 알 수 있는 직접적인 자료 역할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몇년 동안 더글라스의 영성 일지는 그로 하여금 American Friends Service Committee가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핀랜드의 원조 계획을 지원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많은 문필가들의 영성 일지들이 그렇듯이,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의 영성 일지는 출판을 염두에 두고 기록되었다.12) 1941년에 겟세마니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 머튼은 문장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서 영성 일지를 사용했다. 그러나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들어가 진지하게 종교적 연구를 시작한 후, 그는 하나님과 자신과의 약속을 우선적으로 염두에 두고 영성 일지를 기록했다. 비록 초기에는 공식적인 기대 사항을 충족시키려는 초심자의 경향도 나타냈지만, 그는 자기 영혼에게서 모든 가면을 벗겨버리고 적나라한 상태로 하나님 앞에 서려고 노력했다. 그의 영성 일지를 보면, 그 내용이 점차 진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머튼은 초기에는 수도원 안에 틀어박혀 세상을 등지고 살려고 노력하면서 자신의 치유와 회복에 초점을 두었다. 그는 말년에는 충분히 회복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자신의 만남의 일부로서 세상에 참여하며 세상의 악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더글라스 스티어나 토마스 머튼의 영성 일지는 출판되었지만, 일반적으로 영성 일지란 기록자 자신만을 위한 대단히 개인적인 문서이다. 세상 사람들이 보게 할 의도로 아주 개인적인 내용은 기록하지는 않는다. 영성 일지에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개인적이고 중요한 경험, 생각, 느낌, 사상, 꿈, 또는 기도를 영성 일지에 기록할 수 있다. 상상력이나 지극히 심오한 감정을 마음껏 발휘할 수도 있다. 우리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며, 일종의 치료 도구로 영성 일지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어려운 결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을 기록함으로써 성찰의 과정이 더 깊어질 수도 있다.
영성 일지는 영적 진보의 과정으로서 큰 유익이 된다. 육체의 성장이 그렇듯이, 영적 성장도 천천히 이루어진다. 이따금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에 감정이 분출하는 일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그런 일은 극히 드물다. 단기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성장은 한 번에 조금씩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성장을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만일 우리가 어떤 종류이든 기록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조금이라도 진보했는지를 측정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영성 일지는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인생관이나 하나님과의 관계와 대인관계, 그리고 우리가 직면하는 좌절에 대한 반응과 태도, 자기 이해와 확신, 자신의 인간성 등에서의 개선을 식별할 수 있는 길다란 흔적을 돌이켜 볼 수 있게 해준다. 영성 일지를 쓴다고 해서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관계를 추적하고 개선하는 데 분명히 도움을 줄 수 있다. 영성 일지를 씀으로써 내적 성장에 막대한 유익을 얻을 수 있다.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소중히 간직하고 싶은 만큼 훌륭히 제본된 일기장을 사라고 충고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영성 일지는 영구적이어야 한다. 그것은 신성한 기록이다. 일기장이 귀중할수록, 우리는 그만큼 더 영성 일지 기록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려 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영성 일지의 심미적인 면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더글라스 스티어는 줄이 그어진 종이로 만들어 제본한 연습장을 구입했고, 정확성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그는 종종 영성 일지 첫머리에 리스트를 작성했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완전성의 확보에 있었다. 토마스 머튼은 페이지를 마음대로 뺐다 넣었다 바인더식 영성 일지를 기록하여, 그것을 세 권으로 보관했다. 머튼도 스티어처럼 이따금 내용을 고치거나 추가했다.
오늘날은 사이버 시대이므로, 많은 사람들은 컴퓨터를 사용하여 영성 일지를 작성한다. 나는 1923년도에 제작된 언더우드 타이프라이터를 사용할 때,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회의적이었다. 그것이 과연 영성 일지 기록에 동반되어야 하는 묵상(meditation)을 할 수 있는가? 그런데 타이프라이터 대신에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내 생각은 바뀌었다. 컴퓨터로 영성 일지를 쓰면서, 나는 관상(contemplation)에 시간을 더 할애할 수 있고 내용을 고칠 수도 있다. 그런데 손으로 쓰거나 타이핑을 할 때는 잘라내고 편집하는 방법을 사용할 때에는 거의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나는 실마리를 풀면서 잘라내고 편집할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영성 일지에 대해 내리는 결정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줄 일기장과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신의 내면 깊숙한 감정과 경험을 기록하게 되기 때문이다. 영성 일지에 기록하거나 제외시키는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얼마나 자주 기록하나?

영성 일지를 처음 쓰기 시작한 사람들이 제기하는 질문 중 하나는 날마다 영성 일지를 써야 하는가 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영성 일지의 목적에 달려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자극하고 심화하기 위해서 영성 일지를 쓰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날마다 하나님과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집중하고 영성 일지에 성찰 내용을 기록하기 위한 시간을 따로 떼어놓으려 할 것이다. 영적 순례를 처음 시작한 사람들은 시간을 초월하는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내면의 눈과 귀를 연마해야 하는데, 토마스 머튼이 관찰한 바에 의하면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일이다. 날마다 마음이나 생각에 떠오른 것을 기록하는 훈련을 하는 것만큼 이 일에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일부 개신교도들, 특히 자유교회(Free Church) 진영의 사람들은 ꡒ왜 영성 일지를 기록해야 하는가? 그저 성령을 의지하기만 하면 되지 않는가? 그것은 내 삶에서 이루어지는 은혜의 역사를 손상시키지 않겠는가?ꡓ라고 항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항의는 설교나 기도문을 기록하는 것을 ꡒ우리는 성령을 완전히 의지하는 것을 방해하는 일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ꡓ라고 반대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초대 침례교도였던 존 스미스(John Smyth)는, 성령께서 완전히 감동하시면서 역사하도록 하기 위해서 강단에서 헬라어 본문과 히브리어 본문을 번역할 것을 강조했다. 내가 대부분의 강단에서 관찰한 바에 의하면, 그러한 관습에 너무 집착하면 성경 읽기를 제거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반면에, 기록하는 습관은 성찰 과정을 깊게 해준다.
초등학교 교사는 학생들에게 수필을 읽으라고 한다. 왜냐하면 수필을 읽으려면 말(speech)에 보다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설교, 기도, 사상과 감정을 선별하는 일 등은 기록할 때 보다 깊은 차원에 도달하며,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보다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기록하는 일은 성령을 방해하기는 커녕, 오히려 성령이 역사할 기회를 더욱 많이 준다.
내면 생활을 계발하기 위해서 날마다 영성 일지를 기록하는 훈련을 강조했지만, 날마다 일지를 쓴 영적 대가는 한 사람도 없다. 심지어 존 웨슬리나 토마스 머튼 처럼 방대한 영성 일지를 남긴 사람들조차도 날마다 영성 일지는 기록하지는 않았다. 날마다 중요한 일이 발생하지는 않았으며, 날마다 영성 일지를 기록하지 않아도, 영성 일지는 내적 성장의 훌륭한 목록이나 내적/외적 삶의 기록을 제공해줄 수 있다. 물론 날마다 무엇인가를 기록하지 않는다고 매일의 행동과 생각 속에서 하나님에게 주의를 집중하고 반응하는 성향이 활기를 잃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록하는 내용의 질이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진지한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반영하는지가 중요하다.

우선 영적 생장력을 쓰도록 하라!

영성 일지를 쓰는 많은 사람들은 처음에 영적 자서전에서부터 시작한다. 분명히 자서전에는 영성 일지의 세목이 포함되지 않겠지만, 유익한 관점, 전반적인 리스트를 줄 수 있다. 목적은 우리의 삶에서 발생한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의 영적 상태에 이르게 된 과정을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경험을 강조하는 데 있다.
지금의 우리가 되는 데 중요한 순간들, 사건들, 인물들, 혹은 경험들은 어떤 것이 있는가? 우리의 영적 여행을 해석해 보자. 할 수 있다면, 하나의 주제를 설정해 보자. 나 자신의 영적 여행의 초기 단계ꡓ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하는 것이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에 ꡒ은혜의 기적ꡓ이라는 제목을 붙이려 한다. 왜냐하면 내 삶의 초기에는 오늘날의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그다지 없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제1단계 은혜

나는 문제가 많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내 아버지는 알코홀 중독자였다.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은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말다툼을 하거나 몸으로 싸우시던 모습니다. 어렸을 때에 나의 말투는 선원들을 당황하게 할 정도였다.
종교적인 면에서 나의 인생의 전망은 그다지 밝게 보이지 않았다. 교회에 대한 나의 최초의 기억은 교령회(交靈會)에 참석했던 기억이다. 강신술사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은 사후 3년 동안은 지구 근처를 배회한다고 믿고 있다. 그 동안 세상에 남은 가족들은 영매를 통해서 죽은 사람의 영혼과 교통할 수 있다. 내 어머니는 침례교인이었지만 결혼생활의 실패나 여러 가지 위기에 대한 해답을 그런 방향에서 찾으려 하셨다.
아버지는 술에 취하지 않고 맑은 정신일 때에는 무신론자이셨고, 술 취하셨을 때에는 근본주의자이셨다. 아버지는 술에 취하셨을 때, 우리를 데리고 케이브 스프링 랜드마크 선교침례교회에서 개최는 신앙부흥집회에 가셨다. 아버지의 음성은 멋진 바리톤이셨는데, 노래를 무척 좋아하셨다. 이따금 아버지는 간신히 몸을 지탱하셨지만, 교회에서 정확하게 노래할 수 있는 몇 사람 중 한 분이였다.
내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종교적 탐색에서는 당혹함 외에는 별다른 약속을 주지 않았다. 동시에 몇몇 평범한 성인들이 내 영혼의 토양 속을 이리저리 헤집고 있었다. 나의 숙부 부부도 그들 가운데 있었다. 그분들은 믿음에 대해 진취적이지는 않았지만, 믿음대로 생활하시는 분이셨다. 부모님께서 이혼하신 후, 숙부님께서 내 형을 데려다 기르셨다.
얼마 후에, 숙부께서는 폐결핵 때문에 어머니가 요양소에서 4년 동안 지내게 되셨을 때 조카 둘을 데려다 보살펴 주셨다. 내가 시골학교에서 8년 동안 공부하는 동안 나를 가르쳐 주신 버타 브라운(Berta Brown) 선생님도 그러한 성인들 중 한 사람이셨다.
부모님의 이혼 때문에 나의 세상 전부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을 때, 선생님은 내 어깨에 손을 얹으시고 ꡒ글렌, 너는 이겨낼 수 있을 거야ꡓ라고 말씀하셨다. 선생님은 항상 그러셨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선생님은 무척 성실하셨다. 내가 그 학교에 다니는 동안 선생님이 수업을 하지 않은 것은 단 한 번, 반나절뿐이었다. 그날은 눈이 무척 많이 내린 데다가 기온이 영하 23도나 되는 추운 날이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정오에 학교에 도착하셨다. 선생님이 맡으신 학생들은 한 사람도 학교에 오지 못했지만, 선생님은 다음날 아침까지 난로를 끄지 않고 켜 놓으셨다. 선생님께서 교실에 도착하지 않으셨다면, 난로불은 완전히 꺼졌을 것이다.
우리 농장에서 5마일 떨어진 곳에서 잡화상을 하시던 부시(G. C. Busch)씨는 네번째 평범한 성도이셨다. 우리가 먹을 양식이나 가축 사료가 필요할 때면, 부시의 아들들이 트럭을 몰고 배달하러 왔는데, 그들은 언제나 어머니에게 ꡒ힌슨 부인, 지금 지불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거기에 개의치 않으십니다ꡓ라고 말하곤 했다.
그 불황기에 과연 몇 사람이나 그분의 은혜를 갚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어머니는 은혜에 보답하려고 노력하셨다. 우리는 한 달에 6불씩 지불하는 조건으로 농장에서 살았는데, 월세를 지불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부시씨의 농장으로 이사하여 공짜로 살게 되었다. 그분은 나에게 마태복음 25:31-46에 기록된 바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천국 비유에 등장하는 주인을 상기시켜 주셨다. 그분은 무척 선한 분이셨다.

제2단계 은혜

나는 11살이나 12살 때, 미조리 주 쿠바에 있는 숙부님의 농장 근처에 있는 어느 농장에서 일하던 어느 해 여름에 침례 교회에서 신앙고백을 했다. 그러나 집에 돌아온 후에는 용기가 없어 열심을 내지 못하다가, 세인트 루이스로 이사하여 일하면서 워싱턴 대학에 다니게 되었다. 그 무렵 숙부께서 쿠바를 떠나 세인트 루이스로 이사하셨기 때문에 나는 그 분들과 함께 살면서 교회에 출석하고 참여하는 것이 무척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워싱턴으로 가게 되었을 때, 나는 곧 자신이 믿음과 소명의 위기에 처했음을 발견했다.
소명의 위기는 내가 진로를 선택한 그릇된 이유들과 관련된 것이었다. 나는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워싱턴 대학에 입학했고 4학년 때에 법학학교(law school)에 입학하려 했었다. 나는 법관이 되면 명예와 돈이 보장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법학을 선택했다.
미조리 주 오자크 산악 지대에서 가난하게 자란 나는 그 두 가지를 매우 탐했다. 그러나 법학 학교의 교수들은 계속 ꡒ여러분이 받은 교육과 여러분의 인생으로 자신에게 유익을 주는 것 외에 무슨 일을 하렵니까?ꡓ라고 질문했다. 2학년을 마칠 무렵, 매 주 강의를 모두 들으면서 35시간 가량 일하다가 지친 나는 자신이 진로와 관련하여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음을 깨달았다.
그 동안 나는 믿음의 위기에 빠졌다. 교수들은 ꡒ여러분들이 믿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는가?ꡓ라고 말씀하셨다. 불행히도 내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은 근본주의자셨다. 내가 목사님께 질문을 하면, 목사님은 ꡒ만일 그 말을 믿는다면, 곧바로 지옥에 떨어질 것이야ꡓ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해할 수 있는 이유 때문에 목사님께 많은 질문을 하지는 않았다. 의심이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3학년 초에 나는 진로와 믿음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밤을 지새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 밤, 잠시 눈을 붙였다가 새벽 2시에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 앉았는데, 요한복음 8:32이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ꡒ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ꡓ 갑자기 ꡒ만일 하나님이 진리시라면, 만일 그리스도가 진리시라면, 네가 질문이라는 합법적인 수단에 의해서 발견하는 어떤 것도 그 사실을 바꿀 수 없다. 중요한 진리를 개인적인 것이며, 너는 단지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유리한 위치에서 살아갈 것이냐 아니냐만 대답할 수 있다ꡓ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정말로 자유를 얻었다.
얼마 후, 진로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었다. 어느 신앙부흥회 때에, 젊은 남아프리카 목사님이 선교 영화를 보여 주었다. 그 영화는 분명한 목소리로 나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ꡒ그대 자신을 섬기는 것 외에 네 인생을 걸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너는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ꡓ
그후의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지금까지의 이야기만으로도 여러분이 동일한 일을 하기 위한 틀을 충분히 제공될 것이다. 내 이야기의 중요한 주제는 ꡒ나 같은 죄인 살리신ꡓ이라는 유명한 찬송가에 잘 드러나 있다: ꡒ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ꡓ

영성 일지를 기록하는 방법

영성 일지를 기록하는 훈련을 하려면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설득력 있는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아마 내향적인 사람들이 외향적인 사람들보다 그 일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영성 일지를 기록하는 일에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우리가 획득하고자 하는 귀중한 것들을 적어 보자.
⑴ 내가 최근의 세월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⑵ 특별히 중요한 경험들을 회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⑶ 그것은 내적 창조성을 자극할 것이다.

⑷ 그것은 나의 상상력을 계발해 줄 것이다.

⑸ 그것은 내가 갈등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⑹ 그것은 내가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털어놓게 해줄 것이다.

⑺ 나의 영성생활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영성 일지를 쓰는 데 보내는 시간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처음에는 매일 일정한 시간을 배정하여 놓고 실천하는 것이 좋다. 인간이 자신이 행하고 있는 것에서 최고의 유익을 얻으려면 그 일을 습관화하는 것이 좋다. 하루 중 언제라도 좋지만, 능률이 오르지 않는 시기에 영성 일지를 기록해서는 안 된다. 영성 일지를 쓰는 시간은 우리의 삶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에 대해서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완전히 주의를 집중하고 솔직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사람들이나 전화소리나 시끄러운 소음 등의 방해를 받지 않는 고요한 장소를 찾고 싶을 것이다. 영성 일지를 쓰는 것은 하나의 작은 피정(mini-retreat)이다. 그것은 하룻 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서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해서 하루의 압박과 갈등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기력을 회복하여 세상이 요구하는 것에 대처할 능력을 갖추고 돌아오기 위해서 순간적으로 세상을 이탈하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기력을 회복하려면 선입견이나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우리가 많은 짐―괴로운 생각, 대화, 해야 할 일, 써야 할 편지 등―을 진채 이 고요한 시간에 임할 수도 있다. 우리 자신과 관련하여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것들을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서 몰아내야 할까?
모튼 켈시(Morton Kelsey)는 영성 일지 쓰는 일을 시작하기 전에, 머리 속에 맴도는 생각을 잊어버릴까 하는 염려에서 해방되기 위해서 그것들을 종이에 써서 상자에 넣는다. 그리고 영성 일지 쓰는 일을 마친 후에 다시 그것을 생각한다. 사람들은 긴장을 풀고 집중하기 위해서 묵상 훈련을 하기도 한다.
요가에서부터 선(禪)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훈련은 우리가 긴장을 풀고 하나님과의 대화라는 중심적 관심사를 위해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유익하다고 여기는 아주 간단한 방법은 오른쪽 엄지 발가락에서부터 시작하여 정수리까지 차례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몇 초 동안 각 부분의 긴장을 푼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행하는 데는 대략 10분 정도가 소요되는데, 정신을 집중하면 실제로 긴장이 해소된다. 훈련은 간단할 수록 좋다. 훈련의 목표는 우리가 기도의 행태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내면의 고요이다.
여기에서 고려하는 형태의 영성 일지는 기도의 형태이다. 그것은 글로 기록하는 하나님과의 대화, 교제, 의사소통하는 것이다. 우리는 말로 기도할 때와 마찬가지로, 관심사를 표현하고 요청하고 호소하며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께 알리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정직하고 솔직하게 기록하려면 갈등을 느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시편 기자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만들려 한다면, 우리는 가면을 벗고 철저히 자신을 개방해야 한다.
토마스 머튼이 표현했듯이, 우리는 자신의 거짓된 자아를 완전히 벗어버리고 참된 자아에게로 내려가야 한다. 하나님은 허물과 흠이 있는 우리의 현재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셔서 변화시키실 수 있다. 탕자를 아들로 받아들이시며 동생이 돌아온 것을 기뻐하지 않고 부루퉁해 있는 맏아들을 격려해주시는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우리는 아무 것도 감추지 않는 솔직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눅 15:11-32). 이렇게 사랑하시는 분 앞에서, 우리는 아주 솔직하게 모든 염려를 털어놓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을 기록함으로써 우리의 심오한 갈망이 분명해지고 성숙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대화에는 우리가 능숙하지 못한 측면, 즉 듣는 일도 포함된다. 아무리 경건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 대한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항상 침묵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것에 대한 우리의 해석이 정확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겸손하게 인정해야 한다. 동시에 모든 시대의 성도들과 더불어 하나님께서는 자연, 역사, 우리의 삶, 때로는 꿈이나 환상을 통해서 보다 직접적으로 말씀하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영성 일지를 기록할 때에 우리는 자신이 듣고 있는 것과 보고 있는 것을 기록하고 되새겨 보는 치밀한 과정에 종사하게 된다.

{글렌 E. 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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