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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주 목사님의 [보는것을 보는 눈이 행복하다]를 읽으면서 각 챕트마다 일부분을 옮겨적었습니다.

가능하면 읽어보는 것으로 만족하시고 죽 긁어다가 다른데로 옮기는 것은 좀 삼가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작권 문제 때문에 글이 여기저기 복사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아시겠지요?  -최용우


1.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마4:1)

성령께서는 예수를 광야로 이끌어 거기서 악마에게 넘겨주시고 다른 데로 가신 게 아니라, 예수와 함께 그 시련의 과정을 모두 견뎌 내셨다.

주님! 저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그 일에 파묻혀 정신을 잃지 말고, 그 일 속에서 저와 함께 하시는 당신을 바라보게 하십시오. 그래서 무슨 일이든지 그 일을 통하여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게 하시고 따라서 그 만큼 성숙하게 해주십시오.

 

2.모든 일이 연합하여(빌1:12)

배움, 오직 배움에 뜻을 둔 사람한테는 선생 아닌 사람이 없고 교재 아닌 사물이 없다.

주님, 제가 하는 모든 일이 오직 당신께 드리는 저의 순명이기를 바랍니다. 이는 당신께서도 바라시는 바일 텐데 왜 잘 되지 않는 걸까요? 아무래도 제가 자꾸 훼방을 놓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 선배에게 해 주셨듯이 저에게도 각별한 도움을 아끼지 말아 주십시오. 그래서 아무쪼록 저를 비우고 당신으로 가득 채우게 해 주십시오. 아멘 

 

3.시키시는 대로(민3:51)

야훼께 무슨 지시를 받아서 어떻게 했느냐도 중요하긴 하지만, 야훼께 지시를 받아서 그대로 했다는 사실만큼 중요하지는 못하다.

주님, 당신을 주인님으로 모시고 살 수 있게 해주셔서 진짜 고맙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제가 틈만 나면 어느새 당신 자리에 앉아서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이 하도 오랜지라, 버릇이 굳어져서겠지요? 제발 주님, 이 버릇 좀 뜯어 고쳐주십시오. 저도 정신 차려서 주인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무슨 일이든지 시키시는 대로 하는 연습에 좀 더 충실하겠습니다. 제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보다, 그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과연 주님의 지시를 받아서 그대로 하고 있는지, 그 점을 늘 반성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4.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행4:32-34)

제대로 된 집안이라면, 아버지는 부유하고 어머니는 가난하거나 형은 넉넉하고 아우는 쪼들리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 제대로 된 교단이라면, 도시 교회는 풍족하고 시골 교회는 빈궁한 그런 현상이 빚어질 수 없다.

주님, 하지만 그냥 멍청히 앉아서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저 사람 주머니에 있는 것을 제 주머니로 들어오게 하는 '어려운 일'에 더 이상 매달리지 말고, 제 주머니에 있는 것을 저 사람 주머니로 가게 하는 '쉬운 일'에 더욱 용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저 사람이 제 아픔에 동참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저 사람 아픔에 제가 먼저 동참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5.속절없는 나그네 인생(창33:18-20)

아무리 많은 값을 치르고 땅을 사서 등기 이전까지 마치고 철조망을 둘러도, 거기는 네가 떠나온 곳, 따라서 네가 돌아가야 하는 그곳이 아니다. 그 자리에 대리석으로 제단을 쌓았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어디에 머물든 거기는 임시 거처다. 그러니, 천막으로 집을 대신하는 것이 실은 잘하는 짓이다.

그렇지만 주님, 저는 아직 주님만큼 자유롭지 못한데다가 함께 살아야 하는 식구들도 있는지라, 저녁에 몸 눕힐 집 한 채쯤 있어야겠습니다. 어차피 출가할 팔자가 아니라면, 이 집안에 살면서 주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무엇보다도, 한 번 쓰고 버릴 수밖에 없는 '일회용품'들에 너무 매달리지 않도록 필요할 때마다 깨우쳐 주십시오. 아닙니다. 제 손에 잡히고 제 눈에 보이고 제 귀에 들리는 것들과, 그것들을 잡고 보고 듣는 저까지도, 모두가 어쩔 수 없는 '일회용품'임을 항상 알아차리게 도와주십시오.

 

6.폭력의 수렁에서(수8:23-25)

수 천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스라엘 하면 분쟁과 전쟁이 연상되는 상황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하다. 바로 그런 나라에서 예수가 태어났다. 끝없는 다툼과 폭력의 수렁에서 장엄한 평화의 연꽃이 피어난 것이다. 역사의 신비가 아닐 수 없다.

주님, 때로 저 자신이 깜짝 놀랄 만큼 더럽고 비굴한 폭력이 제 속에서 터져 나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럴 때 저는 진짜로 속수무책이지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저 그럴 때에도 주님이 저를 곁에서 눈물 글썽한 눈으로 물끄러미 보고 계심을 기억하고, 겸손하게 뒷수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키리에 엘레이송! 
 

7.속속들이 착한 사람

직업의 귀천은 일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에 다라서 결정된다.
병들어 썩고 냄새나는 것은 정치판이 아니라 정치인이다.
부패한 것은 종교계가 아니라 종교인이다.

 주님, 저 부자 안 돼도 좋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고 싶지도 않고요, 유명인사 못 돼도 상관없어요. 주님, 당신을 닮고 싶습니다. 그뿐이에요. 그래서, 나쁜 짓을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누가 억지로 시켜도 나쁜 짓을 못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싶습니다. 사람들한테, 제 밥도 찾아먹지 못하는 바보라고 놀림당해도 좋아요. 주님, 당신처럼, 속속들이 착한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8.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보면(막7:27)

길게 곧은 신작로처럼, 그렇게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은 없다. 그게 세상이다. 뜻밖의 돌발 사태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됨의 깊이와 높이를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주님, 저는 무슨 일을 제가 예상했던 대로 되지 않으면 무지 빠르게, 누구 때문인지, 왜 이렇게 됐는지를 묻습니다. 그걸 따져봤자 이미 쏟아진 물인 줄 알면서도 그러고 있으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주님, 부디 저를 도와 주십시오. 그래서 뜻밖의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누구를 탓하려 하지말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침착하게 대처하며 제 길을 가는 그런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9.희언자연(稀言自然) (전5:1)

사람이 때와 곳에 맞추어, 그때 거기서 하지 않을 수 없는 말만 겨우 한다면, 그 사람은 저절로 말수가 드물(稀言自然) 것이다.

주님, 주님이 하신 설교를 살펴보면, 아무리 천천히 해도, 설교 한 번에 3분을 넘기기 어렵겠더군요. 저는 그런데 왜 이리도 말이 많은 겁니까? 물로 주님의 경지까지야 제가 어찌 넘보겠습니까만, 이제 저도 환갑을 넘긴 몸이니 좀 더 말을 아껴서 꼭 해야 할 말만 겨우 하는 그런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한 말 또 하고, 제멋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꼴불견 늙은이는 제발 안 되게 도와주세요. 

 

10. 소용돌이 세상에서(마4:11)

밤에 잠을 설친 사람은 낮에 활동도 어지러울 수밖에 없다.
고요히 앉을 줄  모르는 사람은 날렵하게 움직일 줄도 모른다.

주님, 무지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정신을 차리기가 쉽지 않네요. 고요히 앉아있는 시간이 필요함을 제 몸이 느낍니다. 주님, 선명하게 깨어있는 상태로 빈둥빈둥 보내는 시간을 자주 가질 수 있도록, 그래서 이 속도를 위한 속도의 눈먼 소용돌이에 파묻히는 일이 없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11. 진면목(眞面目)(눅10:23)

너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느냐? 네가 보고 있는 그것을 과연 너는 보고 있느냐?

주님,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노라고 말씀하신 주님, 제가 바로 그 '보지 못하는 자들'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니 제 눈을 열어, 보아야 할 것을 보게 해 주십시오, 눈에 보이는 겉모습에 속아서 그것의 참 모습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부디 제 눈을 맑게 닦아주십시오. 네가 진실을 알게 될 터인 즉 진실이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씀이 저에게서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12.헛된 공사(렘51:58)

먹어도 먹어도 결국은 죽고 마는 육신의 양식을 위해 새벽부터 밤중까지 매달리면서, 한 번 마시면 두 번 다시 목마르지 않을 샘물과 한번 먹으면 두 번 다시 배고프지 않을 떡이 바로 곁에 있건만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아니, 그런 것이 거기 있는 줄도 모른다. 어리석음이 태산보다도 높구나.

주님, 육신의 양식과 영혼의 양식이 어디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콩 하나를 그마저 없는 이와 나누어 먹으면, 그것이 콩과 함께 사랑을 먹는 것이므로 영원히 살게 하는 영혼의 양식이요, 혼자서 먹으면 그것은 사랑 없이 콩 한 알 먹고 마는 것이므로 결국은 썩고 말 육신의 양식임을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용기를 내어 가르쳐 주신대로 살도록 주님, 저를 도와 주십시오.

 

13.닮은꼴(갈3:26)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일을 완성하는 것이 내 양식이다.(요4:34) 먼저 그분의 뜻을 이루는 데 몸을 바치면 그 몸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저절로 따라온다는 말씀이다.

하느님 아버지, 저에게 예수님을 알고 그분의 가르침을 받게 해 주신 은혜가 진실로 태산보다 큽니다. 아아, 하느님. 이 마당에 제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제 소원은 오직 하나, 아무쪼록 스승의 가르침을 잘 받아서 스승과 '합동'은 못 되어도 '닮은꼴'은 되게 해 주십시오. 백두산이 산인 것만큼 남산도 산이니, 저는 아주 작은 예수로도 만족하겠습니다.

 

14.지금 여기에 (잠8:1-3)

높은 산, 깊은 골, 인적 끊긴 사막까지, 지혜와 슬기 찾아 먼 길 떠날 것 없다. 거기서는 오히려 그것들을 찾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 있는 곳이 길가 언덕, 네거리, 마을 어귀 성문께, 대문 여닫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혜와 슬기는 저를 알아보는 사람에게 안기고 싶어서 길가 언덕, 네거리, 마을 어귀 성문께, 대문 여닫히는 곳을 서성거리며 오늘도 사람들을 부른다. 성산(聖山)은 히말라야에 있지 않고 네 눈꺼플에 있다.

땅과 하늘이 만나려면, 땅이 하늘로 올라갈 수 없으므로, 하늘이 땅으로 내려와야 하듯이 주님과 제가 만나려면, 제가 주님 계신 데로 갈 수 없으므로 주님이 저 있는 데로 오셔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주님은 지금 여기 계십니다. 제가 지금 여기를 떠나서 다른 곳 다른 때에 있을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 이제 더 이상 당신 찾아 바깥으로 헤매지 말고, 지금 여기에 들리는 소리, 보이는 것에 눈과 귀를 열어 놓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15.터무니없는 착각(롬16:21-23)

바울로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니다. 나무 한 그루 서 있음은 거기 땅이 있고 물이 있고 바람이 있고, 벌레들과 새들이 있음이다. 혼자라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착각일 뿐이다.

사람은 섬(島)이 아니라는 말, 저도 들어보았습니다. 주님, 그런데도 때로는 이 황량한 세상에 저 혼자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주님, 왜 저에게 그런 터무니없는 느낌이 찾아오는 걸까요? 숨을 거두면서 "엘로이 엘로이 사박타니?" 하고 부르짖으신 주님, 저의 뜬금없는 고독감 속에서 당신을 만나고 싶습니다. 


 16.없는 발자취(시77:19-20)

선행(善行)은 무철적(無轍赤)이라, 잘 가는 사람은 발자취를 남기지 않는다고 했다. 없는 발자취를 누가 볼 수 있으랴?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살 수 없거든, 차선(次善)으로, 흔적을 감출 일이다.

주님, 저도 몸무게 있는 사람인지라, 걸으면서 발자국을 남기지 않을 수가 없네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동안 제가 남긴 발자국에 괜한 신경을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이 제 발자국을 보고 이러니 저러니 판단하는 소리에 어쩌면 그리도 예민하게 반응을 했던지요. 이제부터라도 뒤에 남겨진 발자국 따위는 그냥 그대로 두고, 한 걸음 한 걸음 저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데 전념하도록 도와주십시오. 누가 제 발자취에 대하여 칭찬을 하든 경멸을 하든 그런 것에 마음 빼앗기지 않도록,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17.왜 그 길을 가는가? (눅9:23-24)

제자에게는 여기를 가나 저기를 가나, 스승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애쓰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다. 예수에게, 당신을 세상에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고 완성하는 것 말고 다른 아무 할 일이 없으셨듯이.
예수처럼 살지 않고서 예수를 따를 길이 없다.

주님. 세상에 태어나 아무 이루어 놓은 것 없이 싱겁게 돌아갔다는 말 들어도 좋습니다. 그냥, 선생님 한 분 만나, 잘 되지는 않았지만, 그 가르침대로 살려고 애쓴 자라는 말 한 마디 들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습니다. 그런데 그것조차 제 능력만으로는 되지를 않는군요. 주님, 당신을 위해서라도 저를 도와주십시오. 그래서 조금이나마 주님 말씀대로 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18.세상에서 밀려난 예수(마8:34)

세상에는 다른 사람 목숨보다 내 집 돼지가 더 소중한 그런 사람들이 있다. 있어도 아주 많이 있다. 그들이 정치, 경제, 문화, 종교까지도 점령했다. 예수는 그래서 지금도, 남의 생명보다 자기 소유물이 더 소중한 사람들 땅에서 발 디딜 자리가 없다.

길 막고 물어보면,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고 대답할 사람 아무도 없을 겁니다. 하지만 주님, 지금 우리는 어딜 가서 무얼 하든지 먼저 돈 눈치부터 살펴야 하는 참 개떡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것도 누가 강제로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들 그러고 있으니, 생각하면 기가막힐 노릇입니다. 돈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로 세상에 오셨던 주님, 이 미쳐버린 자본주의 세상에서 사람의 자존심이라도 되찾게 도와주십시오. 돈 앞에 허리 꺾느니 차라리 말라 죽는 쪽을 택하겠습니다.

 

19.사는 길, 죽는 길 (호12:11-12)

사는 길을 알려 주었는데도 그 길을 가지 않았으니, 남는 것은 죽는 길밖에 더 있겠는가?

큰일입니다, 주님. 제가 벌써 당신 이름을 알고, 사람답게 사는 길에 대한 당신의 가르침도 들어 알고 있으니, 이제 남은 것은 과연 사람답게 사느냐 아니면 짐승처럼 사느냐 둘 가운데 하나일 뿐이군요. 주님, 이왕에 저를 부르셨으니, 그 부르신 뜻을 중도에 포기하지 마시고, 끝까지 붙잡아 주십시오. 필요하다면, 제가 감당할 만큼 채찍을 쓰셔도 좋습니다. 어찌되었든, 첨부터 몰랐으면 모르겠으나 사람답게 사는 길에 대한 당신의 가르침을 이미 알고 있으니, 가다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갈 수 있는 데까지, 당신이 가르치신 길을 따라서 가 보겠습니다.

 

20. 여기 가만히 (행23:11)

여기 가만 있어야겠다. 가만 있어서, 찾아오시는 주님을 알아 뵙고 맞아들여야겠다.

주님, 알겠어요. 그동안 제 소리가 너무 컸고 제 행동이 너무 바빴습니다. 그래서 당신 음성이 귀에 들리지 않았고 당신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거예요. 이제부터라도 고요한 가운데 당신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당신의 변장한 모습을 뵙고 싶습니다만, 그런데 그게 참 어렵군요. 아마도 가만히 있어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주님, 도와주십시오. 누가 무슨 말을 할 때 건성으로 들어 넘기지 않게 하시고, 누가 어떤 모습을 보일 때 겉모습만 슬쩍 보아 넘기지 않게 저를 좀 도와주십시오.

 

21. 그럴 마음이 있는가? (요13:12-15)

 다른 누군가의 허물을 내 몸으로 덮는다면, 누군가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욕설을 대신 받는다면, 그것이 누군가의 발을 씻어 주는 것이리라.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까 -를 묻기 전에, 그럴 마음이 있는가 -를 먼저 물어야 한다. 진심으로 그럴 마음이 있다면, 기다렸다는 듯이 기회가 닥칠 것이다.

주님. 살아볼수록 주님을 본받아 산다는 것이 그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절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로 어려워서 어려운 게 아니라, 제 맘대로 살아온 세월이 하도 오랜지라, 너무나도 몸에 익지 않아서 그래서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지, 사실은 쉬운 일이라는 것쯤 머리로는 압니다. 그러니 주님, 제게 용기와 믿음을 주십시오. 남에게 돌아갈 허물이 제 몸에 돌아오거나, 남이 들어야 할 비난이 저에게 쏟아질 때, 변명하거나 저항하려 하지말고, 티를 내어 환영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게 도와주십시오.

 

22.그 일을 하는 이는 누구인가? (창41:14-16)

임금을 대리하는 자는 영화를 누리지만, 임금을 사칭하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
어떤 사람이 자기도 기적을 일으키고 싶어서 하느님께 기도했다. "저도 기적을 일으키게 해주십시오." 아무리 오래 간절히 기도했지만 그는 기적을 일으키지 못했다.
어느 날 문득 생각이 달라져서 기도를 바꿨다. "하느님, 저를 통해서도 기적을 일으키십시오." 그러나 그는 기적의 사람이 되었다.

주님, 언제 무슨 일을 하게 되더라도, 제가 당신을 '주님'으로 불러 모시는 한, 그 일을 하는 것이 제가 아님을 잊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그래서 일이 잘 되었을 때 우쭐거리거나 일이 달 안 되었을 때 낙담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주님처럼 치열하게 살되, 주님처럼 삶에서 자유롭기를 소망합니다.

 

23.나그네 길 (행28:11-14)

인생 자체를 나그네길로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뿌리내려 머물 장소가 없다. 비록 몸은 고향을 떠나지 않고 평생 한 집에서 산다 해도, 그의 삶은 날마다 새로운 경유지를 찾아 길을 떠난다. 겉사람은 세월 따라 낡아가지만, 속사람은 날마다 세로워진다는 말이 그 말이다.

주님, 모든 것이 변하며 끝없이 흐른다는 사실을 항상 유념하고 살게 도와주십시오. 무엇을 움켜잡지 않으려고 애쓰는 대신, 제가 이 손으로 움켜잡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확연히 깨달아 알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좋은 것을 움켜잡으려 하다가 오히려 잃어버리는 어리석음을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고, 이 몸이 늙어가고 있으며, 머잖아 마지막 숨을 거두게 되리라는 사실을 기억하여, 매순간을 나그네답게 살아가도록, 주님, 불쌍한 저를 부디 도와주십시오. 

 

24. 더 불쌍한 인생 (욥34:1-4)

욥기에는 욥만큼이나 불쌍한 인간이 네 명 등장한다. 이 세상에도 욥처럼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보다, 욥의 세 친구와 엘리후처럼 그렇게 불쌍한 자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같잖은 지식과 말재간을 자랑하기 위하여, 고통의 늪에서 신음하는 친구를 토론 마당으로 끌어들이는, 너무나도 잔인한 어리석음에서, 주님, 우리를 건져 주십시오. 온갖 상처의 피고름이 냇물을 이루는 세상에서, 무슨놈의 논쟁과 이론들은 이렇게 시끄럽기만 한 것일까요? 주님, 공허한 말장난으로 한 번뿐인 인생을 더 이상 낭비하지 말고, 당신의 뜨거운 눈물과 깊은 침묵과 단호한 행동을 이제라도 배우게 하옵소서.

 

25.복된 수련기(단4:31-33)

장인(장인)은 거문고를 만들기 전에, 오동나무를 먼저 죽인다.

주님, 어렵고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그것이, 저를 깨끗하게 정화하기 위하여 특별히 제작된 용광로임을 기억하고, 아울러, 거기에 저를 넣으신 분이 당신이지요, 거기에서 저를 꺼내어주실 분 또한 당신이심을 기억하게 도와주십시오. 그것을 견뎌낼 만한 힘이 저에게 없다면, 어렵고 힘든 일 또한 저에게 있을 리 없음을 일깨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26.땅에서 하늘을 사는 사람(행7:54-58)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를 따져 가리는 일은 덧없다. 어제 쫓겨난 자들이 오늘은 쫓아내고 오늘 쫓아내는 자들이 내일은 쫓겨날 것이기에...

주님, 이유 여하를 묻지 말고, 어떤 그럴듯한 명분으로도, 저 아닌 다른 사람을 단죄하는 죄만큼은 피하게 해 주십시오. 길을 잘못 가고 있는 게 틀림없이 보이는 사람에게도, "거긴 길이 아니다."라고 말은 할지언정, 그를 심판하여 단죄하는 짓만큼은 저지르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당신께서도 하시지 않은 일을 제가 어찌 시도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어리석은 인간이지만, 할 수 있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 해도 되지 않을 일 정도는 스스로 알아야하지 않겠습니까?

 

27.미련 없이 가는 길(행8:39)

빌립보가 길에서 에디오피아 여왕 내시를 만나, 그에게 성경을 해설해 주고, 그의 요청을 받아들여 세례를 베푼다.
그런 다음, 홀연히 모습을 감춘다. 어~ 하는 사이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내시 또한 그를 찾아서 두리번거리지 않고, 기쁨에 넘쳐 자기 길을 간다.
깨끗하다! 아름답다! 가슴이 저리도록

주님, 어차피 잠깐동안 살다가는 인생입니다. 만날 사람 만나서 볼 일 마쳤으면, 지저분하게 미련 따위 흘리지 말고, 뒤돌아보는 일도 없이, 내가 무슨 일을 이루었다느니, 내가 무슨 업적을 남겼다느니, 그런 우습지도 않은 생각일랑 비집고 들어올 짬도 없이, 아직 많이 남은 저의 길을 서둘러 걷게 하옵소서. 있지도 않은 과거의 그림자에 휘둘려 오늘을 그르치는 어리석음에서, 주님, 저를 지켜주십시오.

 

28. 나의 일과 하느님의 일(잠16:33

 사람이 주사위를 던지지만, 그 결과를 정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사람이 주사위를 던지지 않았는데, 하느님은 그 결과를 무슨 수로 정하실 것인가?

저로 하여금, 제가 할 일은 저에게, 하느님께서 하실 일은 하느님께로 돌릴 줄 아는 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어디까지가 저의 일이며 어디부터가 하느님의 일인지, 어디까지 잡고 있다가 어디에서 놓을 것인지, 분별하는 지혜도 함께 주십시오. 

 

29. 반경 십미터만이라도(눅3:1-2)

이 사람 저 사람이 이런 일 저런 일로 바쁘게 움직일 때, 어떤 사람은 광야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 지금도 그렇다. 어떤 사람은 자기 골방에서 하느님 말씀을 듣는다.

주님은 하느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제 인생이 그 기도의 실현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바 있다면, 더 무엇을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주님, 제 몸 있는 곳에서 반경 십미터만이라도, 하느님의 뜻이 옹글게 이루어지는 천국으로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처음부터 끝까지 허(虛)하고 무(無)한 것으로 온 나라를 채우려 하는 대신, 영원한 진실로 제 몸 하나 채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하느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제 몸에서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나이다.

 

30. 하늘은 꺾지 않는다 (삼상8:19-22)

 땅은 단단하고 하늘은 부드럽다. 사람들의 단단한 고집을 하늘은 꺾지 않는다. 그래서 밝은 하늘 아래 전쟁도 벌어지고 학살도 자행된다. 그러나 부드러운 하늘이 없으면 단단한 땅이 있을 데가 없다. 사람들은 제 고집에 갇혀서 이 엄연한 사실을 알지 못한다.
어쩌다가 몇몇 하늘을 본 사람만이 고개 숙여 자기 고집을 꺾고 생각을 비운다. "제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 이렇게 말한 예수가 가로 그런 사람이다.

주님, 부족한 종이오나, 이 몸으로 당신의 뜻을 이루십시오. 제 남은 생을, 오직 이 한 마디 기도로 살아가게 하여 주십시오.

 

31. 이 흥할 것들! (미가2:1-3)

권력을 잡았으나 자리에 들면 착한 일만 생각했다가 아침 밝기가 무섭게 실천에 옮기는 이 선당(善黨)들아,
탐나는 밭이 있어도 못 본 척하고 탐나는 집이 있어도 못 본 척하여 그 집과 함께 임자도, 밭과 함께 밭 주인도, 맘놓고 살게 하는구나.
나 야훼가 선언한다.
나 이제 이들에게 복을 내리리라.
내 축복에서 빠져 나갈 생각은 말아라.
머리 들고 가슴 펴고 다니리라.
복이 내릴 때가 가까웠다.

주님, 저로 하여금 복 받기를 기도하는 대신, 지금 여기에서 복 받을 짓을 하게 해 주십시오. 저는 그 길이 어디 먼 데 있는 험난한 길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제 발로 걸을 수 있는 쉬운 길임을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주신 좋은 기회들을 슬기롭게 활용하여 살도록, 주님, 도와주십시오.

 

32.가깝고 쉬운 곳에 (롬1:10)

하느님이 지으신 나무 한 그루 잘 돌봐 주고 사랑하는 것도, 그분을 섬기는 훌륭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목숨을 내어 주는 것까지는 아직 얼었다 해도, 하느님 섬기는 방법은 가깝고도 쉬운 곳에 얼마든지 있다.
자기에게 허락된 시간을 소중하게 여겨 헡루 낭비하지 않는 것도 그 중 하나다.

간밤에 우습지도 않은 이유로 벌컥 화를 내었습니다. 제 귀가 어두워 소리를 듣지 못해 놓고는, 엉뚱한 데다 화풀이를 해댄 거예요. 금방 사과를 하긴 했습니다만, 무슨 그런 어이없는 짓을 다 합니까? 그게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에고'의 원래 모습이라고요? 그러니까 그게 바로 저라고요? 그러는 저를 가지고 당신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요? 큰일에 참기 보다 작은 일에 참기가 본디 더 어려운 법이라고요? 아, 알겠습니다. 이제라도 좀 더 자세히 살피며 작은 일로 당신 사랑하는 법을 익히도록 힘써보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주님! 

 

33.누가 거두어 주겠는가? (렘22:18-19)

어쨌거나, 아무리 지독한 폭군도 제 송장까지 장사 지내고 가지는 못한다. 그게 하늘 법이다. 살아 생전에 아무도 가엾게 여기지 않다가 죽은 그를, 누가 가엾게 여길 것인가? 살아 생전에 아무도 거두어주지 않다가 죽은 그를, 누가 거두어 주겠는가?

주님, 오늘도 저에게, 제가 돌봐 주고 사랑해야 할 이웃들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무런 꿍꿍이속 없이, 보상 같은 것 바라는 마음 조금도 없이, 그냥 제가 그들을 보살피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고맙고 기뻐서,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그이들을 보살피고 사랑하되, 어디까지나 제 방식이 아니라 주님이 가르쳐 주시는 방식으로 그리할 수 있도록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34.아주 잘한 일(시3:1-2)

자기를 괴롭히고 넘어뜨리려 하고 빈정대는 자에게 사방으로 애워싸여 있으면서도, 다윗은 아주 잘한 일 하나가 있다. "야훼여!" 라는 절규로 노래를 시작함으로써, 자기에게 일어난 온갖 이해 못할 사건들과 그것들이 안겨준 괴로움 따위를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로 바꾸고, 사람들에게서 받은 상처를 있는 그대로 하느님 앞에 펼쳐 놓은, 그것이 바로 그 '잘한 일'이다.

하느님, 이왕에 저를 세상에 보내셨으니 저에게 기술 하나 가르쳐 주십시오. 그리하여, 저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그것들이 안겨 주는 온갖 영욕(榮辱)을 당신께 드리는 '기도'로 바꾸는 연금술사가 되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만 된다면, 저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그것들로 말미암은 결과들이, 당신과 저 사이를 더욱 친밀하게 해주는 역할만 하고, 용무 마친 심부름꾼들처럼 사라지겠지요? 주님, 제 생전에, 하느님을 믿는 자에게는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善)을 이룬다는 바울로 사도의 말씀이 빈말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간절한 소원입니다.

 

35.저 주도면밀 앞에서 (아모스4:13)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고 손에 잡히는 모든 현상(현상)을 있게 하면서
자기 자신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잡히지도 않는,
저 새벽 풀벌레들을 울게 하는,
밤하늘 가득 추운 별들로 반짝이게 하는,
우주에 편만하여 어느 한 구석 미치지 않는 데가 없는,
그 '무엇'이 오늘도 이 물건으로 하여금 종이에 낙서를 하게 하고 성경을 읽게 하는구나!
하늘 그물은 성겨 보이지만 놓치는 것이 없다 하였거늘,
눈 덮인 뜰에 수선화 푸른 싹을 밀어 올리는 저 주도면밀 앞에서
무엇을 미리 근심하고 두려워 할 것인가?

주님, 제 눈앞에 무엇이 나타나든 겉으로 보이는 그 모양에 제 눈길이 머물러 있지 말고, 그것들 안에, 그것들을 관통하여, 그것들 너머에 계신 당신께로 가서 닿도록 도와주십시오. 제가 이렇게 원하고, 틀림없이 주님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실 터인즉, 그리 되지 않을 까닭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제가 사물의 거죽 모양에 취하여 노닥거리거나 무서워 눈을 감아버리거나 하면, 주님도 어쩌실 수가 없겠지요. 그러니, 우선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나 귀에 들리는 소리를 관통하여 당신께 가서 닿고 싶은 제 마음을 알아주시고, 이런 저에게 필요한 도움을 아낌없이 내려주시기 바라나이다. 

 

36. 나는 믿는다.(시23:1-4)

나는 하느님을 믿는다. 비록 포연이 그치지 않고 증오와 분쟁의 아우성이 멈추지 않는 아비지옥을 지나느라고 심신이 아울러 지쳐 있지만, 이 길 끝에 아무도 아무를 비워하지 않고 다치지 않는 하느님 나라가 기다리고 있음을, 나는 믿는다.이 믿음이 오늘도 나를 살아있게 한다.

주님, 비록 어리석긴 하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발걸음 걸음마다 주님이 저와 함께 하셨음을 알게 됩니다. 지금까지 제가 겪었던 일들이, 그 중에는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도 있습니다만, 그것들까지 포함하여 모두가, 오늘 여기 이런 모습의 저를 만들었으니까요.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어차피 언제고 숨이 질텐데 그 순간까지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더 이상은 한눈팔지 않겠습니다. 아무쪼록 저에게 더욱 든든한 믿음을 심어 주십시오. 

 

37. 그는 누군가? (골4:18)

내가 지상(地上)에서 마지막 숨을 거둘 때, 그 동안 이 몸으로 경험한 일들과 그것들을 통해서 배운 것들 또는 버린 것들이 모두 당신 것임을 친필로 서명하여 확인해 줄, 그는 누구인가?
나는 아니다!

주님, 제가 당신을 '주인님!' 으로 불러 모시는 이것이 허풍이나 쇼(show)가 아니라면, 저에게는 제것이라고 우길 만한 것이 하나도 없고 모두가 당신의 것이어야 합니다. 제가 과연 그렇게 살아가고 있느냐는 별 문제로 하고, 사실이 그러하다는 것을 인정할 뿐 아니라 실제로, 저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임을 아는 그 앎에 근거하여 살고 싶어한다는 건 주님이 아십니다. 제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에 주님이 친필 서명하여, 이번 생은 처음부터 나중 까지 모두 내 것이었노라고 확인해 주실 그 순간을 항상 유념(留念)하며 살게 도와주십시오. 

 

38. 의표(意表)를 찌르시는 분(행7:35)

 배척당했던 사람을 일으켜 세워 그들 배척했던 자들의 지도자로 삼는다. 배척당했던 사람도, 배척했던 자들도, 뭔가 미심쩍다.
이쪽도 마지못해서 가고 저쪽도 마지못해서 받아들인다. 그 결과, 종살이하던 자들이 해방되었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분은 자주 인간의 의표(意表)를 찌르신다.

주님,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세상에 앞장서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저에게는 불붙은 가시나무 같은 것 보여주지 마셔요. 그 대신, 아내가 타 주는 커피 한 잔, 뜰에 피어나는 수선화 한 송이에서 당신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게 지나친 욕심이라 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39.단순한 표현의 차이가 아니다 (눅8:38-39)

예수께서는 그를 돌려보내시며, "집으로 돌아가서 방금 내가 너에게 베풀어 준 모든 일을 이야기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하느님께서 너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일을 이야기하라."고 하셨다. 단순한 표현의 차이가 아니다.

주님, 제가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이제 분명히 알겠습니다. 우주가 동원되지 않으면, 달리 말해서, 주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는 것도 어느 정도 알겠습니다. 제 앎이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저를 포함한 삼라만상이 모두 당신의 자기-실현이라는 진실에까지 이르도록, 주님, 저를 계속 이끌어주십시오. 그래서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모든 것에서 당신을 뵙고 당신을 모실 수 있게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나이다.

 

40.우리의 능력(히6:13-15)

우리에게는 그분의 약속을 실현시킬 능력이 없지만, 그것을 유효로 만들거나 무효로 만들 능력은 있다.

주님, 저를 부르시고,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시겠다고 약속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당신의 약속이 공약(空約)이 아님을 믿습니다. 저만 포기하지 않으면, 저만 돌아서지 않으면, 반드시 그 약속이 저한테서 이루어지리라고 확신합니다. 사실은 저한테서 그 약속이 실현되기 시작하였고, 이제 남은 것은 시간문제임을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이런 믿음과 깨달음을 주셔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에게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이, 하나부터 열까지, 당신의 작품입니다. 이젠 그렇게 되기도 어렵겠습니다만, 저로 하여금 당신의 약속을 잊거나 엉뚱한 일로 빗나가는 일이 없게끔 항상 지켜주십시오. 그리하여 앞으로 남은 길 가는 데까지 지치지 않고 가도록 붙들어 주십시오.

 

41. 오늘 하루치만 (민11:31-34)

이 정신 없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모두들 돈 돈 돈만 생각하고, 뭐든지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크면 클수록 좋다는 터무니없는 착각에 빠져 있는데, 거기에 휩쓸리지 않고서 오로지 하늘 도(道)를 좇아 살아가기가 쉽지 않듯이...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신 주님, 내일 염려는 내일에 맡기라고 가르치신 주님, 당신의 가르침대로 산다는 게 그게 참 이다지도 어려울 줄 몰랐습니다. 최소한,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러니까 어쩔 수 없다는 핑계만이라도 떨쳐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 일도 오늘 하루치 일, 양식도 오늘 하루치 양식으로 살아가는 그 옹근 자유와 평화의 날을 저에게 속히 허락해 주십시오.

 

42. 예수의 눈길은(요7:32-34)

 주님, 분명 제 마음인데 제 맘대로 되지 않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병으로 마비되거나, 술에 잔뜩 취하면 몸이 맘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요? 아, 예! 그래서 제 마음이 제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거군요?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제 마음이 제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건강하지 못하고 병들었거나 다른 무엇에 잔뜩 취해있기 때문이라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주님,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겠습니다. 병든 몸으로 의원을 찾듯이, 제 마음이 제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때마다 제 영혼의 주인(主人)이시오 주치의(主治醫)이신 당신을 찾아야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제 마음을 억지로 다스려 보려고 애쓰는 대신, 당신의 응급실로 달려가겠습니다. 주님, 그러기 위해서, 평소에 당신이 하신 일이나 당신이 하신 말씀에 머물러있지 말고, 그렇게 일하시고 말씀하시는 당신께로 곧장 달려가는 연습을 착실히 해야겠습니다. 제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필요할 때마다 제 생각을 일깨워 주십시오. 

 

43. 진짜 이야기(히7:4)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 위에 그보다 높은 사람이 있고 모든 사람 밑에 그보다 낮은 사람이 있다. 역시 옳은 말이다. 괜히 우쭐거릴 것도 없고 괜히 주눅들 것도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주님, 제가 오기 전에도 사람들은 세상을 살았고 제가 떠난 뒤에도 사람들은 세상을 살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시원과 종말을 알 수 없는 '사람'의 아주 작은 중간 토막으로 잠시 살다가 가는 거지요. 이 엄연한 진실을 잊어먹고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엉뚱한 일에 근심과 걱정이 끊일 새가 없음은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겁내지 말고 다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순간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또한 주님, 저의 앞뒤로만 그런 게 아니라 위아래에도 그러함을 시방 가르쳐 주셨으니, 제 위에 사람 있음을 기억하여 우쭐거리지 않고 제 아래 사람 있음을 기억하여 주눅들지 않고 저에게 주어진 길을 겸허하고 당당하게 걸어가되 행여나, 제 아래 사람 있음을 알고 우쭐거리거나 제 위에 사람 있음을 보고 주눅 드는 망발에는 결코 빠지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저를 지켜 주십시오.

 

44. 각별히 조심할 일 (막13:21-23)

 누가 무슨 기적을 일으켰다는 소문이 들리면 각별 조심할 일이다. 그가 만일 제가 일으킨 기적을 제 입으로 선진하고 다닌다면, 그 사람 근처에도 가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것이다.

자기와 자기가 하는 일을 선전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 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우리를 휘어잡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따르노라는 교회들이 그러고 있으니, 참으로 딱하고 민망한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주님, 저로 하여금 당신이 이루신 일들을 바라보는 사이에 당신을 놓치는 어리석음을 짓지 않도록 살펴주십시오. 제가 하는 일들에 빠져서 저 자신을 잃어버리는 망신을 당하지 않도록, 제 마음과 행동을 지켜주십시오. 

 

45. 그것을 관통하여(왕상5:9-14)

 나는 오늘도 나무를 보고 구름을 보고 사람들을 만나고 사건들을 겪을 것이다. 그러면서 얼마나 내 마음은 나무와 사람들과 사건들을 관통하여, 그것들을 거기 그렇게 있도록 하시는 '그분'께로 눈길을 돌릴 것인가? 그게 문제다.

주님, 제가 무엇을 보게 되든지 그 보이는 모양에 눈길이 머물러 있지 말고, 그것을 관통하여, 그 뒤에 숨어 계시는 당신께로 나아가게 도와주십시오. 맘으로는 간절히 바라는데 그게 잘 되지를 않습니다. 방법은 주님께 맡기오니, 제발 그렇게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46.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 (요17:16-19)

 진리를 좇아서 살아가는, 그것이 바로 진리이다.
진리를 좇아서 살아가려면 '이것이 진리다'라는 내 생각을 먼저 비우고, 보이지 않는 그분께 옹근 알몸을 바쳐야 한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로 허공에 몸을 던져야 한다.

허공에 몸을 던진다는 것이, 그것이 말하기는 쉽고 멋도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 얼마나 어렵고 괴로운 일인지 주님도 잘 아실 것입니다. 아니면, 왜 겟세마네에서 구슬땀을 흘리셨습니까? 하지만 주님, 이 길만이 진리에 몸 바쳐 사는 길이라면, 저 또한 진심으로 백척간두진일보를 소망합니다. 제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못 가는 길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소망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길이라는 것도 압니다. 아무쪼록 저도 주님처럼, 진리에 몸 바치는 그날을 맞게 해 주십시오. 오직 그 날을 바라보며 날마다 '오늘 하루'만 살게 도와주십시오. 숨지기 전에 그 날을 보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47. 비밀 (창39:20-21) 
사람이, 어떤 처지에서도 자기를 눈동자처럼 아끼고 보살피는 그분의 현존을 느끼면서 좌절 낙담하여 함부로 처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주님이 저를 보살피시지 않아서 저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주시니 고맙습니다., 주님이 저를 지켜주시기에, 원천적으로 저에게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없음을 일깨워 주시니 더욱 고맙습니다. 다만, 저의 믿음이 아직 충분히 두텁지 못하여, 짧은 소견으로 근심하고 두려워하는 일이 자주 있사오니, 아무쪼록 불쌍히 여기시어, 저로 하여금 더욱 담대하고 굳건한 믿음으로 주님의 가르침을 좇아 살게 해 주십시오. 저에게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다 해도 그것이 제가 스스로 만든 믿음이 아니라 당신이 저에게 주신 믿음임을 고백합니다. 실로 저의 모든 것이 오직 당신의 작품입니다.

 

48.거룻배 한 척의 거리 (막3:7-12)

향기로운 꿀을 담은 꽃이 사방에서 모여드는 벌 나비를 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깊은 바다가 사방에서 흘러드는 강물을 막을 수 없듯이...
예수 있는 곳으로 모여드는 군중이 그와 같았다. 누가 있어 그 흐름을 막을 것인가?
그러나 군중 속에서 군중들로부터 떨어져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군중에 묻혀 질식하고 만다. 거룻배 한 척의 거리!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 그 거리를 유지하는 데 "예수의 길'이 있다.

 주님, 저에게 날마다 그날에 해야할 일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정성껏 하겠습니다. 하지만 제 일에 파묻혀서 저 자신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음만큼은 피하게 해 주십시오. 저에게 주신 일에 충실하되 그 일에서 자유롭고 싶습니다. 주님이 군중 속에서 거룻배 한 척으로 군중을 멀리 하셨던 것처럼, 저도 이 세상 어디를 가든지 제 속에 거룻배 한 척 가지고 다니며, 사람들 가운데서 홀로 있기를 시도해 보겠습니다. 나아가, 정작 보아야 할 것에서 눈을 돌려 보지 않아도 되는 것 또는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하려는 사탄의 유혹에서 저를 건져주십시오. 

 

49. 말끝 (행13:43)

누구와 어디서 무슨 말을 나누든, 마침내는 자기와 하느님 사이의 관계로 말끝이 돌아간다. 그러지 않으면, 하느님의 사도가 아니다.

주님, 저로 하여금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에서 현존하시는 당신을 뵙게 해주십시오. 아울러, 나침반의 바늘이 언제 어디서나 북쪽을 바라보며 북쪽을 보여 주듯이, 저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실로 하여금 오직 당신을 바라보며 당신을 보여주는 손가락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모한다스 간디처럼, 저도 마지막 숨 거두는 순간 당신 이름을 부르게 해 주십시오. 

 

50. 항상 대기 중(전5:19)

행복한 사람은 춤을 춘다. 춤추는 몸은 무겁지 않다. 인생을 너무 가벼이 여겨 아무 데서나 까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인생을 너무 무겁게 살아 언제 어디서나 침통하게 가라 앉아있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를 하느님께서 바라신다. 사람도 같은 것을 바란다. 둘의 뜻이 합했는데, 사람이 행복하게 살지 못할 까닭이 없다. 그런데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 이유는, 본인이 행복을 바라고 있지 않든지 아니면, 바라기만 했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배우려 하지 않았든지, 둘 중 하나이다.

무슨 조건이 갖추어졌기 때문에 행복한 가짜 행복이 아니라, 아무 이유 없이 그냥 행복한, 그래서 더 이상 '행복'이라는 단어조차 생각나지 않는 그런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것이 저의 소원일 뿐 아니라 당신의 소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믿나이다.

 

51. 있지도 않은 적(롬11:11-12)

 매우 분명한 사실 하나. 예수가 없었다면 부활도 십자가도 없었겠지만, 산헤드린이나 빌라도가 없었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둠이 따로 실제 하는 것이 아니라 빛의 부재가 곧 어둠이듯이, 선의 부재가 곧 악이요, 삶의 부재가 죽음이다.
'죽음'은 싸워서 이길 무엇이 아니다. 악(惡)도, 죄(罪)도 마찬가지다. 있지도 않은 것을 무슨 수로 싸워서 이길 것인가?

 주님, 세상의 악과 싸우느라고, 죄와 싸워서 이겨보려고, 오랫동안 아까운 시간과 정력을 바쳤습니다. 그래도, 그래서, 그게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됐으니 마냥 헛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 는 그렇게 살지 않겠어요. 어둠을 물리치고 불의를 꺾으려던 생각일랑 깨끗이 비우고, 그 대신, 빛을 일으키고 의를 세우는 일에 전념하겠습니다. 주님, 제 이 각오가 물거품처럼 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52. 사람의 말(마3:1-2)

세례요한이 외친 곳은 광야였지만, 그 말의 파장은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유다 여러 지방 요르단 주변 각처로 퍼져 나갔다. 신문도 라디오도 인터넷도 없었는데 그랬다.
세례 요한이 당시 제사장들이나 율법학자들이 입는 고급 비단옷을 몸에 걸치고 높은 걸상에 앉아서 하늘나라가 다가왔다고 외쳤어도, 사람들이 그에게 몰려와서 세례를 받겠다고 했을까?

주님, 사람들의 말이 입으로만 하는 게 아님을 깨우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하늘만큼 땅만큼 달라지는 게 사람의 말임을 명심하여, 말은 많은데 시끄럽기만 하고 귀만 아픔 그런 사람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언제 어디서나, 제 입으로 말하는 게 제가 아니라 당신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만...

 

53. 끝까지 (히4:1)

하느님이 살아 계시고 당신도 아직 살아 있다. 그러니 당신에게는 절망할 근거가 없다. 그런데도 절망한다면, 그것은 본인의 선택이므로 하느님께서도 어쩔 수 없으시다.
무엇을 기다리거나 견디려면 끝까지 기다리고 끝까지 견뎌야 한다. 그게 하느님을 믿는 것이다. 여기서 말한 '끝까지'란, '숨'을 거두는 바로 그 순간까지를 뜻한다.

주님, 사람에 대하여, 그 사람이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든 간에, 미리 절망하고 포기하는 불신에 빠지지 않도록 저를 붙잡아 주십시오. 당신이 온 몸으로 사랑하시는 그 사람을, 미리 포기하거나 정죄하는 것은, 그 사람보다 더 자신을 위하여 불행한 일이겠지요. 당신의 약속 굳게 믿고,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사람에 대하여, 역사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참고 견디며 기다릴 수 있도록, 주님, 저의 마음과 몸을 붙잡아주십시오. 

 

54. 말하기 전에(욥13:12)

 말이 무용지물(無用之物)인 때가 있고, 말 자체가 장벽이 되는 때가 있다. 아무리 좋은 말도 시의를 잃으면 결코 좋은 말이 못된다. 마땅히 말하기 전에 때와 상황을 살필 일이다. 하늘은 가끔 천둥벼락으로 말하지만 대부분은 침묵으로 말한다. 하늘을 닮은 사람도 그럴 것이다.

무슨 말이든 마지못해서 하면 인생이 너무 삭막해질까요? 글쎄, 그럴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쓸데없는 말을 시끄럽게 늘어놓아 저도 피곤하고 남도 고단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때로 서릿발처럼 날카로운 말을 해야 할 경우도 있겠지만, 평상시에는 입을 다물고 그 대신 온화한 얼굴로 소리 없이 말하며 살도록 주님, 제 입술을 지켜주십시오. 

 

55. 오직 근본을 얻는 일(눅10:38-42)

 무슨 일이든, 지엽(枝葉)을 거기 그냥 두고 근본(根本)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온갖 복잡한 문제를 푸는 것은 단순함이라는 열쇠다. 그래서,
단득본막수말(旦得本寞愁末)을 여유리함보월(如琉璃含寶月)이라,
맑은 유리가 밝은 달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오직 근본을 얻을 일이요 잔가지들을 근심하지 말라고 했다.
주님 한 분 중심에 모시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더 무엇을 구할 것인가?

주님,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이는 저를 봅니다. 그래도 주님, 저 걱정하지 않습니다. 제 뿌리가 당신 품에 박혀 있으니까요. 그냥, 고마울 따름입니다. 

 

56. 처음 자리 (마28:10)

갈릴레아는 제자들이 스승을 처음 만난 곳이다.
어디에 있든, 처음 자리를 지키면, 그 있는 곳에서 별 탈이 없을 것이다. 스승과 함께 있는 제자는 무슨 짓을 해도 잘못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님, 제가 어디에 있든, 거기서 무슨 일을 하든, 당신이 저를 호흡 가운데 만나 주시던 수녀원 화장실의 새벽을 기억하고, 제 마음으로 하여금 그곳을 떠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나아가, 제가 어미 태에서 양수를 쓰고 세상에 나오던 그날의 가난함과 고요함을 유념하여, 어떤 추위와 빈곤에서도 넉넉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견딜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저와 함께 이 길을 떠나신 당신이 지금도 함께 계시며 제 인생의 종점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시는 줄 알기에,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57.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요3:19-21)

무슨 일이든지 자기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하려면, 방법은 간단하다. 그 일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어 하면 된다.
청천(晴天白日)을 머리 위에 모신 상태에서,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묻어두지 않고 일하면, 그 일이 곧 '하느님의 뜻을 따라서 한 일'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자기 뜻대로 일하는지 하느님 뜻대로 일하는지, 그 판가름은 그가 무슨 일을 하느냐 보다 그 일을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비밀이 없는 곳에 하느님이 계시고, 비밀이 있는 곳에 사탄이 숨어있다.

어느 정보기관 마당에 이런 내용의 글이 돌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양지를 지향하며 음지에서 일한다." 그 석문(石文)이 세워져 있는 동안, 많은 사람이 거기에서 고문을 받았고 그러다가 죽어간 이들도 적지 않았지요. 저는 그것을 볼 때마다, 저 말을 거꾸로 하면 내가 살아가면서 취해야 할 자세가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나는 음지를 지향하여 양지에서 일한다." 주님, 제가 어디에 있든지 세상의 그늘진 곳을 망각하거나 외면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그러나 저 자신은 언제 어디서나 밝은 빛에 알몸으로 노출시키도록 믿음과 용기를 주십시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겠느냐고들 합니다만, 그런 사람 여기 있다, 자 털어 보아라! 당당하게 나설 수 있는, 빛살 같은 사람으로 되고 싶은 제 마음, 주님이 아십니다.

 

58.그림자처럼 (마1:6-7)

자기보다 훌륭한 분, 신발끈을 풀어드리기도 황송한 분, 그런 분을 모시고 길라잡이로 나선 사람. 요한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었다!
이제 그에게 한가지 남은 일이 있다면, 겸손히 그분 뒤로 물러서서, 그림자처럼 그분을 따르는 일이다. 거기가 그의 종점이었다. 그가 과연 거기까지 갔는지 안 갔는지 또는 못 갔는지, 그건 내 알바 아니다.

자애롭고도 친절하게도 저보다 꼭 한 발 앞서 가시며,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딴전을 피워도 넉넉하게 기다려 주시는 주님, 고맙습니다. 주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살게 된 것 하나만으로도 저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틈만 나면 당신을 잊어버리고 괜한 일에 실망과 불평을 늘어놓곤 합니다. 주님, 언제 어디서나 제 앞에 당신이 계시다는 사실을 유념하고 살게 도와주십시오. 당신의 그림자 되어 당신을 따라가는 것으로 제 인생의 모든 것을 삼게 해주십시오. 

 

59. 부드럽되 때로는 서릿발처럼 (갈1:8)

단호하다. 서릿발 같다. 사랑하는 제자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서라!" 호통을 치던 스승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함부로, 그런 실력도 자격도 없으면서, 아무나 흉내낼 일은 결코 아니다. 그런 자들이 너무 많은 세상은 오늘도 슬프고 어이없는 한판 코미디다.

주님, 항상 따스하고 부드럽되 때로는 서릿발처럼 차갑고 날카롭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제 임의로 그러하지 못하게 막아주십시오. 언제나 겸손히 물러서되 때로는 오만하게 앞장설 줄도 알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역시 제 임의로 제 감정을 못 이겨서 그러지는 않게 해 주십시오. 부드럽든 딱딱하든, 겸손하든 오만하든, 모든 일에 오직 당신의 손발 되기만을 원하나이다. 

 

60. 진인사(盡人事) 눅19:1-4

거기까지다. 예수가 지나가는 길을 앞질러 달려가서 길가에 있는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갔다. 자캐오와 예수의 극적인 만남이 성사되는데, 자캐오가 한 일은 거기까지였다. 그는 다만 예수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주님, 당신을 만나기 위하여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그 일을 제가 어디까지 할 수 있습니까? 가르쳐 주십시오. 이 세상 사는 동안 그 한가지 일에 저의 모든 것을 걸겠습니다. 저에게 너무 많은 소원들이 지저분하게 있어서 그것들이 제 길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친히 만나 뵙는 것, 그 일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해 주십시오. 

 

61. 한 배를 탄 사이(눅8:23-25)

주무시던 예수께서 스스로 잠을 깨고 일어나시지 않았다. 겁에 질린 제자들이 그분을 깨워드렸다. 아무리 한 자리에 있어도, 잠들어있는 사람 하고는 함께 있을 수 없다. 잠들어 있는 사람하고는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고 밥도 같이 못 먹는다. 한 배에 탔어도 한 배에 탄 게 아니다.
잠에서 깨어난 스승은 풍랑을 먼저 잠재운 다음 제자들을 꾸준하셨다. 제자들을 꾸짖고 나서 풍랑을 잠재우신 게 아니다. 아직 모자라고 아직 덜 되고 아직 모르는 게 많아서, 그래서 제자다. 꾸짖을 제자들이 눈 앞에 있다! 얼마나 행복한 스승인가?

주님, 저를 제자로 받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왕 제자가 되었으니, 선생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받아서 배워 익히게 도와주십시오. 무엇보다도, 저 자신이나 선생님을 속이려 드는 못난 제자가 되지 않도록, 저를 정직하고 단순한 아이로 만들어 주십시오. 그래서 꾸중을 들을 때 꾸중 듣더라도, 그것이 싫어서 아닌 것을 그런 척 하거나 그런 것을 아닌 척 하는 일은 없게 해주십시오. 선생님, 저에게 남은 세월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더 이상은 어떤 명분으로든 쇼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만사에 사랑과 진실로만 대하며 살아가도록, 주님의 강하신 손으로 저를 붙잡아주십시오.

 

62.눈이 가리워져서 (요일2:9-11)

세상에 빛이 없어서 우두운 게 아니라 내가 눈을 드지 못해서, 내 눈이 가리워 있어서, 그래서 어두운 것이다. 밝음과 어둠의 경계가 사람의 얇은 눈꺼풀에 있다.

주님, 저에게 당신의 눈을 주십시오. 당신 눈으로 보면 저도 모든 사람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형제자매로 보이겠지요. 저에게 사랑하는 가슴보다 먼저 당신의 밝은 눈을 주십시오. 사랑이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눈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이제 알겠습니다. 

 

63. 낮과 밤의 조화 (눅21:37-38)

 낮의 활동은 밤의 휴식을 부르고, 밤의 휴식은 낮의 활동을 낳는다. 낮과 밤의 조화(調和), 그 속에 그분의 삶이 있었다.

주님, 그동안 게을리 했던 밤 기도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낮에 제대로 움직이려면 밤을 제대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이쪽이 저족의 뿌리임을,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님, 낮에 저를 지켜 주시고 밤에 저를 만나 주십시오. 아니, 낮에 저를 지켜 주시고 밤에 저를 만나 주시는 당신을 망각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64.오늘 하루만이라도 (요12:49)

다만 오늘 하루, 내 생각을 고집하지 말고, 내 말에 스스로 갖혀 있지 말고, 귀를 내면으로 향하여, 중심에서 들려오는 스승의 말씀을 놓치지 않도록, 그리고 그 말씀에 오로지 순종하도록, 삼가 조심하며 살아볼 따름입니다.

주님, 오늘 하루만이라도 제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당신 말씀대로 살아보고 싶습니다. 한나절이 안 되면 한 시간도 좋습니다. 주님, 제가 마음은 원하는데 그게 참 이다지도 어렵군요. 하지만, 하는데 까지 해보겠습니다. 그것말고는, 제가 남은 세월에 달리 해 볼 만한 일이 따로 없으니까요. 저에게 이 한가지 소망 남겨 두시고, 기타 등등 번잡한 소망들을 없애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65.무엇을 보느냐 (시107:23-24)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그 하는 일에서 무엇을 보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

주님, 저에게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하되, 일을 통해서 당신을 만나지 못한다면, 비록 그 일을 훌륭하게 성사시켰다 하여도, 그 모두가 아무것도 아님을 명심하게 도와주십시오. 동시에, 주님이 주신 일을 떠나서는 당신을 만나 뵐 다른 길이 없음도 잊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부디 제 눈과 귀를 열어 주시어, 보이는 모든 것에서 당신 모습을 뵙고 들리는 모든 소리에서 당신 음성을 듣게 해 주십시오. 

 

66. 보수(報酬) 고전9:13-18

돈 도는 돈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나서 일하는 것과 일을 하고 나서 돈을 (주면)받는 것은 크게 다르다. 아니, 전혀 다르다.
참과 거짓, 진짜와 가짜는 나란히 놓고 견주어 볼 상대가 아니다.

주님, 거저 받은 것 거저 주라고 하셨지요? 제 남은 인생이 바로 그 말씀을 실현하는 것이 되게 해주십시오. 무엇을 하든 말든, 오직 주님이 주신 일이니 할 뿐이요 주님이 하지 말라고 하시는 일이니 하지 않을 따름인, 그런 인생이 되게 해주십시오. 제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67.법이 필요 없는 사람 (신23:25)

예수는 율법을 없애러가 아니라 완성하러 세상에 왔노라고 하셨거니와, '율법의 완성'은 법조문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법조문 자체가 필요 없는 사람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주님, 저로 하여금 당신의 법을 잘 지키는 데서 걸음을 멈추지 말고  당신의 법이 필요 없는 자리까지 나아가도록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앞으로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희망사항이고, 지금은 당신의 밥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형편입니다. 그러니 당장 오늘 하루만이라도 제 생각이마 판단에 따라서 행동하지 말고 당신께 자주 여쭈면서 살게 도와주십시오. 언제 어디서나 주님이 제 곁에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저를 일깨워 주십시오. 

 

68.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민36:10)

 하느님 아버지의 명(命)에 불복할 어떤 구실도 명분도 있을 수 없다.

 주님. 하느님의 말씀은 말하는 사람한테 있는 게 아니라 듣는 사람한테 있는 것 아닌가요? 같은 당신의 말씀을 어떤 이들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들었고, 어떤 이들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으로 들었으니까요. 그러니 주님, 저에게 들리는 모든 소리를 당신의 명령으로 알아듣는 귀를 열어 주십시오. 나아가, 그 명령에 복종할 용기와 믿음도 저에게 주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하더라도 제 맘대로 하는 옛날 버릇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69. 절망이 곧 희망 (시107:33-34)

사람들이 악해서 강물이 마르고 샘구멍이 막힌다. 강물이 말라서 사람들이 악해지는 게 아니다. 이 말은, 사람이 착해지면 강물도 흐르고 샘도 솟아난다는 말이다. 절망 속에 희망이 있다. 아니, 절망이 희망이다.

 주님, 같은 상황인데 누구는 절망하고 누구는 희망합니다. 절망과 희망이 상황에 있지 않고 사람한테 있기 때문이겠지요. 언제 어떤 상황에서라도, 하느님을 믿는 자라면, 악하게 처신할 권리는 없고 착하게 살 의무만 있음을, 따라서 절망할 권리는 없고 희망할 의무만 있음을, 머리 아닌 몸으로 고백할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70. 피갈회옥(被葛懷玉)  마3:4

 예수, 그분은 겉모습 따위로 당신을 사람들한테서 구별짓지 않으셨다. 성경 어디에서도 그분의 옷차림이나 특이한 식생활에 대한 언급을 읽을 수 없음이 그 증거이다.

예, 주님, 그건 그렇습니다만, 저는 아직 요한한테서도 한참 거리가 먼 놈입니다. 그러니 제가 무엇이라고 드릴 말씀이 없군요. 하지만, 유별난 몸차림이나 행동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저를 드러내려는 치기 어린 짓만큼은 피하게 도와주십시오. 공자님도 제자들에게 유별나게 굴지 말라고 하셨다지요? 진심으로 동감입니다. 

 

71. 처음 마음(계2:1-5)

영화(榮華)를 알면서 욕(辱)됨을 지키면 세상의 골짜기가 되어 한결같은 덕(德)이 넉넉하다고 했다.(노자28장). 사업이 번창하는 가운데 있으면서 처음 시작할 때의 가난한 마음을 지키면 그에게서 한결같은 덕(尙德)이 떠나지를 않는다. 그러나 그게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주님, 제가 숨지는 순간까지, 저를 처음 만나 주셨던 자리, 그 가난하고 비참했던 자리를 잊지 말게 하시고, 거기서 드렸던 저의 소박한 약속을 기억하면서 살게 해주십시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저로 하여금 방심하지 말고, 처음 당신이 제 이름을 불러 주셨을 때 제가 지녔던 그 무능(無能)과 무력(無力)을 유지하도록, 저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72.천금 같은 오늘 (레14:33-35)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닥치는가? 내가 무엇을 어쨌기에 이런 일이 닥치는 것인가? 이런 질문은, 지금 내게 닥친 일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 그 방법을 찾아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보다 시급하지 않다. 화재 원인을 규명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화재를 진압한 다음에 할 일이다.
그런데도 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나 지난 일로 인한 고통에 사로잡혀서 천금같이 소중한 '오늘'을 허비하고 있으니, 일상생활을 온통 그런 어리석음으로 채우고 있는 셈이다.

주님, 몇 년 전 일이나 몇 달 전 일만 지난 일이 아닙니다. 바로 십분 전 일도 지난 일입니다. 저에게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지혜와 용기를 주시어, 어미 가슴에 안긴 젖먹이처럼 이 세상을 살게 해 주십시오. 하지만, 저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담아 놓으신 당신의 '메시지'를 놓치지 않도록, 일을 수습하는데만 매달리지 않게 저를 도와주십시오

 

73.겸손하고 작은 사람 (레13:15)

나무가 자라면서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로 갈라지듯이, 인간들이 하는 일도 끊임없이 세분되었다. 어디까지 갈라질까? 모를 일이다.

주님, 무서운 속도로 세상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는 일도 빠른 속도로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으려고 쓸데없이 노력하지 말게 하시고, 그냥 저에게 주어진 작은 몫이나 제대로 감당하여 전체적으로 세상이 돌아가는 데 지장을 주지 않도록, 겸손하고 작은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74.하늘이 하는 일(행8:1-4)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 그랬다. 초대교회는 흩어져서 살아남았다.
살아남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더욱 커졌다.

주님, 그 사람 관두껑에 못을 박기 전에는 그가 어떤 사람이라고 단정짓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주님, 그것은 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러니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방심하지 말고, 오직 당신이 가르치신 대로 살아가는데 전력을 기울이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저에게서, 아무것도 모르며 함부로 남을 판단하는 못된 버릇을 깨끗이 청소해 주십시오. 이제부터는 할 수 있는 대로 묵묵히 저에게 주어진 길만 걸어보겠습니다.

 

75.텅 비움 (요13:1)

촛불은 꺼지기 직전에 더욱 밝게 빛난다. 사람 생명도 마찬가지다.
죽을 때가 되면 평소에 하던 일을 더욱 극진히 하다가 숨을 거둔다. 자기 욕심에 이끌려 살아온 사람은 사나운 욕심덩어리가 되고, 자기를 내어주면서 살아온 사람은 허공처럼 텅 비워진다.

주님, 저도 언젠가는 죽기는 하겠지만, 그날에 어떻게 죽을까를 염려하는 대신 오늘 저에게 주어진 일을 어떻게 주님 가르치신 대로 할 것인지, 그것을 생각하며 살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막상 죽음을 앞두게 되었을 때 평소보다 더욱 극진히 하게 될 그 일이 부끄럽거나 값없는 일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처럼 죽음 앞에서 온 몸을 사랑으로 불태울 수 있기 위하여, 오늘 하루를 사랑으로 살아가도록 도와주십시오.

 

76. 빌라도의 후예, 예수의 후예 (마27:24)

일을 할 때, 그 일이 어떤 결과를 빚을 것인지 미리 예측하여, 해 봤자 별무소용(別無所用)이라는 결론이 내려지면 망설임 없이 손을 씻는 빌라도의 후예들이 지금도 세계 도처에, 그것도 높은 자리에, 앉아있다.
덕분에,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오직 자기에게 주어진 천명(天命)을 좇을 따름인 예수의 후예들이 오늘도 세계 도처에서 십자가의 길을 가고 있다.

주님, 저의 모든 일이 당신의 명에 대한 복종이 되게 하시고, 일을 하는 동안에는 일의 결과에 대한 계산으로 미혹되지 않게 하소서.

 

77.화해코자 하거든 (레26:46)

하늘과 땅이 서로 합하여 단이슬을 내린다.(天地相合而陸甘露)고 하였거니와, 단이슬에 젖는 것은 하늘이 아니라 땅이다.
누구와 화해코자 하거든, 상대 쪽에서가 아니라 내 쪽에서 화해의 가교(架橋)를 놓을 일이다.

주님, 다툼과 분열이 어지러운 세상입니다. 동의할 수 없고 동의하고 싶지 않은 세상이에요. 그러나 제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아무쪼록 누구하고 다투거나 갈라서는 일을 제 쪽에서만은 주도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혹시 누구와 다투었더라도, 상대를 저에게 화해시키려 하는 대신, 저를 상대에게 화해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원하고 주님이 원하시면 안 될 이유가 없으니, 저로 하여금 당신이 보여 주신 '평화의 가교'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하여 주십시오.

 

78.사람의 생각일 뿐 (롬9:14)

하나님에 관하여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든, 그것은 그 사람의 생각이요 말이지, 사실이 그렇다고 또는 그렇지 않다고 입증할 무슨 방법이 없음을 피차 인정할 필요가 있다.

주님, 제 생각이 아무리 옳고 바르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생각일 뿐임을 유념하게 도와주십시오. 그래서 제 생각대로 말하고 움직이되,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저와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을 핍박하는 잘못 만큼은 저지르지 않게 해주십시오.

 

79.속모습 그대로 (고전11:1)

본받는다는 것은, 보이는 겉모습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그렇게 있도록 한 보이지 않는 속모습을 그대로 닮는다는 말이다.

주님, 제 눈을 열어주시어 당신의 속모습을 바로 보게 하시고, 그대로 닮고자 애쓰는 인생이 되게 하소서. 그것말고는 바라는 게 없는, 마음의 가난뱅이가 되게 하소서.

 

80.욕심과 짝짓는 대신(약1:15)

욕심과 짝짓지 말라. 사람은 유한한데 욕심은 무한하니 사람이 욕심한테 잡아먹힐 것은 뻔하지 않는가? 사람이 자기 욕심을 뜻대로 부리지 못하고 그것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 그 사람한테서 생겨나는 것은 죄밖에 없다.

주님, 사람이 살면서 욕심을 완전히 비운다는 게 저 같은 보통사람으로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욕심을 버리려고 애쓰기 보다 제 욕심에 질질 끌려다니는 일만이라도 없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부디 도와주십시오. 욕심과 짝짓는 대신 당신과 짝짓게 저를 도와 주시고 이끌어주십시오. 주님, 제가 무슨 짓을 어떻게 하든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이 저를 버리지 않으셨거늘 제가 어디로 가겠습니까? 그러기에 제가 당신께 드릴 말씀은 "죄송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이 두 마디밖에 아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81. 명명백맥한 삶 (출27:20-21)

어둠 속 등불이 저를 감출 수 없듯이, 내 모든 것을 드러내어 명명백맥으로 살아야겠다.

주님, 저에게 드러내어 자랑할 만한 것이 별로 없듯이, 세상을 향해 굳이 감추어야 할 것도 없게 해주십시오. 자신에게나 남에게나 속이고 감출 것이 없는 명백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제 가슴에 등불을 밝히되 그것이 세상을 밝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 자신을 밝히기 위해서임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주님, 처음부터 그랬겠지만 앞으로도, 제 목숨이 붙어 있는 동안 제 속에 타오르는 등불이 있다면 그것은 곧 빛이신 당신이심을 잊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82.야훼의 구름 (민19:33-34)

어디를 가든지 야훼의 법을 앞세우면 야훼의 구름이 당신을 덮어 줄 것이다. 어디를 가든지 힘의 논리를 앞세우면 주먹이 당신을 덮어 주듯이...

주님, 어차피 출발한 인생, 가지 않을 수 없는 여정이라면, 주님과 함께 사랑의 법을 앞세우고 가도록 도와주십시오. 마음은 원하는데 그게 맘대로 되지 않아 낙심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래도 좌절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 사랑의 깃발을 높이 들고 앞서가시는 당신을 따라갈 수 있도록 용기와 믿음을 주십시오.

 

83.괜한 걱정(시102:23-24)

해가 바뀌고 세대가 돌아도 영원히 계시는 하느님, 그분이 바뀌는 해와 돌아가는 세대 속에서 무수한 얼굴로 명멸(明滅)하신다.
그러니 괜한 걱정을 해도 괜찮다.

주님, 제 눈을 열어 주시어, 보이는 모든 얼굴들에서 당신을 뵙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께서 저를 위해 세우신 뜻과 섭리를 이루소서. 이대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죽어도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모자라게 보이는 저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걱정이 되는데, 안 되는 것처럼 보이려고 애쓰지 말고, 걱정하는 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저는 아닙니다. 모두가 당신입니다.

 

84.믿음은 믿어지는 것 (눅8:43-48)

믿음이란 믿는 게 아니라 믿어지는 것이다. 믿음은, 믿겠다는 의지의 산물이 아니다. 인간의 의지 너머에서 난데없이 나타나 한 인간을 삼켜버리는 어떤 힘, 그것이 믿음이다. 그러기에, 믿음의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 복된 사람이다.

주님, 아직 세상이 끝나지 않았고 제 인생도 더 남아있습니다. 그러니 저에게는 무슨 일로든 낙심 좌절할 이유도 근거도 없지요. 이 사실을 언제나 유념하며 살게 도와주십시오. 

 

85. 친절한 손길 (눅13:10-13)

예수가 우리에게 준 기쁜 소식은 우리가 어찌어찌 하면 죄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게 아니라, 이미 죄에서 조건 없이 해방되었으니, 아직도 죄에 갇혀 있다는 착각을 떨쳐버리라는 것이다.

 주님, 당신이 저와 함께 계심을 압니다. 그런데, 자주 잊기도 하고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저로 하여금 좀 더 예민하게 깨어 있어서, 저를 어루만지는 당신의 손길을 느낄 수 있게 해주십시오.

 

86.사람에게로 (렘3:2-3)

신토불이(身土不二), 몸과 땅이 하나인지라, 사람 몸이 병들면 땅도 병들고, 땅이 병들면 사람 몸도 병든다. 하지만 그 순서는 사람이 먼저다. 먼저 사람이 병들어서 땅이 병드는 것이지, 땅이 먼저 병들어서 사람이 병드는 것은 아니다.

주님, 무엇이 잘못 되었다고 말할 때 그 주범이 저쪽에 있다고 생각해 온 낡은 어리석음에서 저를 구해주소서.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한, 세상을바로 잡으려면 저쪽 어디를 바로잡아야 하는데, 사실 말이지 그것은 당신도 못한 일 아닌가요? 사람이라는 물건이 제가 저를 뜯어고치려고 맘먹고 애를 써도 잘 안 고쳐지는 고질덩어리인데, 하물며 무슨 수로 남을 바꾸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더군다나 그쪽의 동의는 관두고 강한 반발을 받으면서 말입니다. 아까운 세월, 되지도 않거니와 된다 해도 결과만 더욱 고약해질 일에 그만 매달리고, 오직 하늘의 뜻을 좇아서 혼자만이라도 가야 할 길을 걷고자 애썼던, 그래서 그 결과 자기를 죽이면서 다른 모든 이를 위하여 살아야 했던, 당신의 '이상한 이기주의'를 배우게 하소서.

 

87.천사의 전언 (마1:24)

잠 속에서 주의 천사를 만나 하늘 메시지를 전해들은 요셉은 잠에서 깨어나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꿈에 아내를 마리아로 맞은 것이 아니다.

주님, 요셉에게 천사를 시켜 지시를 내리셨듯이 저에게도 천사를 시켜 지시를 내려주세요. 벌써부터 그렇게 하셨다고요? 다만 그것을 제가 알아듣지 못했다고요? 아이쿠, 죄송합니다. 드럼 이제부터는 천사를 알아보고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제 눈을 열고 제 귀를 뚫어 주십시오. 간절히 기다리며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88.더 갈 데 없는 생각 (출9:12)

하늘을 거역하는 사람도 하늘이 시켜서 그러는 것이라는 말이다.
더 갈 데 없는 엄청난 생각이다.
이런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누가 무엇으로 괴롭힐 수 있을 것인가?

주님, 드릴 말씀이 없네요. 지금 제 형편에 맞는 '생각'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 생각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보겠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의 작품입니다. 고맙습니다.  

 

89. 모세가 모세였던 비결 (레8:4-5)

모세가 무엇을 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그 일을 자기가 알아서 하지 않고 야훼의 지시에 따라서 했다는 사실이다. 모세가 모세였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누가 순수한 자의(自意)로 누구의 꼭두각시 되기를 소원하여 그리 되었다면, 그는 과연 꼭두각시인가 아닌가?

주님, 당신은 스스로 당신의 뜻을 포기하심으로써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결국, 당신의 뜻에 반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신 셈입니다. 이 절묘한 역설로 저 또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저에게 주신 자유로 저를 당신께 온전히 굴복시켜, 그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당신의 종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이는 당신을 향한 저의 소원일 뿐 아니라 저를 향하신 당신의 바람(望)이기도 함을 믿습니다.

 

90. 재능을 잘 관리하는 방법 (벧전4:10)

 오늘도 주님은 내게 건강한 몸과 하루를 주셨다. 이것으로 누구를 어떻게 섬길 것인가?

주님! 세상에 섬김을 받으러 온 게 아니라 섬기러 왔노라고 말씀하시고, 그 길을 몸소 보여주신 주님. 저도 당신처럼 세상의 섬김을 받으려 하지 말고 사람들을 섬기며 살아야지, 마음은 그렇게 먹는데, 막상 누가 저를 무시하거나 깔보는 낌새만 보여도 속에서 화부터 치밀어 오르니,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할른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아무래도 이것은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통찰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마더 테레사처럼, 비천해 보이는 사람들한테서 당신 모습을 알아볼 수 있게 맑은 눈을 주십시오. 그러면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남을 섬기는 자세가 제 몸에서 저절로 나올 테니까요. 다른 일도 아니고 남을 섬기는 일인데, 속은 아니올시다면서 겉으로만 그러는 척 꾸민대서야, 그게 어디 말이 되겠습니까? 

 

91. 긴박한 초대 (요12:34-36)

빛이 있는 동안 한 걸음이라도 걸을 일이다.
날이면 날마다 주어지는 그런 기회가 아니다, 우리네 인생이란!

 주님! 신약성서에 새겨진 당신의 많은 발자취들을, 오늘 여기 계신 당신을 제가 만나는 일에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로 삼게 해주십시오. 저에게 필요한 분은 옛날 어느 곳에 계셨던 당신이 아니라, 지금 제 곁에 게시는 당신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믿으면서 성경에 갇히지 않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92. 어둠이 곧 빛이요 (왕상8:10-11)

영광(榮光)은 말 그대로 밝은 빛이다. 빛이 어둠 속에 감추어져 있는 게 아니다. 어둠이 끝나고 나서 빛이 밝아오는 게 아니다.
어둠이 곧 빛이요, 빛이 곧 어둠이라는 이야기다.
과연 누가 이 모순의 통일을 견뎌낼 것인가?

주님, 빛이 어둠 속으로 들어왔으나 어둠이 저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복음서 기자의 증언을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건 그랬을는지 모르나, 어둠이 없고서야 어찌 빛을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이 왜 저토록 어둡고 슬퍼야 하는지를 조금 알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빛이신 당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시고자 어둠으로 세상을 가득 채우시는 주님, 우리로 하여금 저 어둡고 슬픈 현실을 피하려 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어둠을 피하려고 할 때 결국 빛이신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될테니까요.  

 

93. 통째로 바치는 믿음 (갈3:7)

아브라함을 아브라함 되게 한 것은, 그 몸에 흐르는 '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命)에 자신의 명(命)을 통째로 내어맡긴 '믿음'이었다.
아브라함의 자손을 아브라함 자손 되게 하는 것이, 그 몸에 흐르는 '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을 따르고자 자기 목숨을 통째로 바치는 '믿음'임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주님, 저로 하여금 '피'로 사는 사람에 그치지 말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94.속이야기 (눅23:39-43)

사람은 저마다 자기 인생 자기가 만들어간다. 그러니 위로 하늘을, 아래로 남을 원망하거나 탓할 근거가 없다. 그래도 그러는 사람은, 그런 식으로 지금 자기 인생을 구중중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주님, 주님은 한 죄수의 청을 들어 주시면서 그의 과거를 문제삼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그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다른 사람의 과거 뿐 아니라 저의 과거도, 제가 지금 여기에서 하는 일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지난날의 영광과 치욕에서 저를 해방시켜 주십시오. 간혹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당신이 알아서 가장 좋은 방식으로 들어주시리라 믿고, 청할 일이 있으면 서슴없이 청하도록 하겠습니다. 

 

95. 견해를 부수라 (행10:44-45)

불용구진(不用求眞)이니 유수식견(唯須息見)이라, 따로 진리를 구할 필요가 없으니 다만 견해를 멈추라고 했다. 천사에 대한 내 생각을 비울 때 거기 천사가 나타나난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내 견해를 버리는 그곳에 하느님 나라가 있다.
그리스도인의 편견을 깨뜨릴 힘은 그리스도교를 반대하는 자들에게 있지 않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에 있다.

주님, 생각을 하지 않고서 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한계요 운명인 줄은 압니다만, 자기 생각에 갇혀 스스로 죽어가는 어리석음에는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제 생각을 나룻배 삼아 그것을 타고서 오직 한 분이신 당신께로 나아가기를 소원합니다. 무엇이 제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화를 내거나 낙심하는 대신, 오히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저를 키워주십시오. 

 

96. 

 비밀 (대하14:13-14)

동산에 떠오른 해가 어찌 서산에 지지 않겠는가? 아니다. 사실은 동산에 떠오르는 해가 곧 서산에 지는 바로 그 해다.
네가 남에게 하는 모든 짓이 곧 네가 너에게 하는 짓이다.

주님! 천지가 나와 한 뿌리요 만물이 나와 한 몸이라는 말을 머리로는 알아듣겠는데 아직 제 몸이 알지는 못합니다. 당신처럼 온몸으로 그 비밀을 알아 한 분 아버지의 뜻을 거침없이 에누리 없이 이루는 자식이기를 바랍니다. 아니, 그러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원 하나로 오늘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부디 저를 도와주십시오. 

 

97. 스승의 눈(마26:6-13)

 제자들은 '여자가 쏟은 향유'를 보고, 스승은 '향유를 쏟은 여자'를 본다.
한 사건이지만 서로 본 것이 다르니 그에 대한 반응 또한 다를 수밖에!

 주님! 저로 하여금 당신 눈으로 보고 당신 귀로 듣고 당신 손으로 일하게 하소서. 아닙니다. 당신께서 제 눈으로 보시고 제 귀로 들으시고 제 손으로 일하십시오. 그러다가 마침내 때가 되어 당신과 저 사이에 사이가 없어진다면, 그런 기막힌 기쁨이 어디있겠습니까? 그 때야 오든 말든, 저는 그 때를 바라보고 사모하며 살겠습니다. 말리지 마세요. 소용없는 일입니다.

 

98. 겨울 냇물 건너듯 (벧전1:17)

 겨울 냇물 건너듯 발걸음을 머뭇거리는, 그 사람이 성인(聖人)이다.

 주님, 제가 이곳 지구별에서 인간의 몸으로 살아가는 한, 어둠과 빛을 함께 겪지 않을수 없듯이, '카르마의 법'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차피 벗어날 수 없는 법이라면, 그 법을 걸림돌 아닌 디딤돌로 삼아서 제 길을 더욱 잘 가게 해주십시오. 무슨 일이 닥치든 그 일로 해서 남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말게 하시고, 오히려 그 일을 발판 삼아 도약하는 용기와 지혜를 주십시오. 그러면 천상천하에 저를 돕지 않는 물건이 없겠거니와 그 비결이 바로 저한테 달려 있음을 명심하겠습니다. 

 

99.이 땅에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너는 누구의 아들. 딸이냐?"는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주님, 제가 누굽니까? 제가 어떻게 해서 지금 여기 이런 모습으로 있게 된 것입니까? 당신은 말씀하셨지요.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있다고요. 저도 그걸 알고 싶습니다. 주님이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와 나는 한 몸이라고 하셨는데, 주님이 아시는 것을 제가 모른다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예, 알아요. 저도 언젠가는 알게 될 줄을. 남은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임을. 언제고 저도 거침없이 "나는 사람의 아들이다." 하고 말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100.사람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요1:6-9)

모자라는 제자가 있어 온전한 스승이 있고, 같은 말을 거꾸로 해도 말이 된다. 온전하지 못한 것이 합하여 온전한 세상을 이룬다. 따라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저마다 온전하지 못하고 저마다 온전하다.
사람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주님, 제가 당신을 떠나서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제가 온전한 당신의 모자라는 부분이요, 따라서 지금 있는 이대로 온전한 존재이자 턱없이 모자라는 존재임을 기억하게 도와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이 그러셨듯이, 누구에게도 무릎꿇지 않는 오만과 모든 이를 우러르는 겸손으로 살아가는 모순덩어리가 되게 도와주십시오. 

 

101. 그런 줄 누가 모르랴? (잠5:9)

 그런 줄 누가 모르랴?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돈에 목숨을 건다.
허어 참! 어이없도록 재미있는 세상이다. 이렇게 살아보니까 헛되고 헛되구나~를 깨달으려고 일생을 헛되게 살다니!

주님! 돈을 우습게 보지 않도록, 돈을 미워하지 않도록, 그래서 돈한테 앙갚음 당하지 않도록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돈을 귀하게 여기도록, 돈을 잘 사랑할 수 있도록, 그래서 돈에 매이거나 돈을 숭배하는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가르쳐 주십시오. 이 미쳐버린 자본주의 세상에서 사람으로 살아남는 길을 보여 주시고, 그 길을 담대하게 가도록 용기와 믿음을 우리에게 주십시오.

 

102.초연한 시늉(요7:11-12)

주님, 쟁기를 맨 자가 자꾸 뒤를 돌아다 보면 당신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하신 주님. 당신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라기 보다 시방 하고 있는 쟁기질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앞서 가시는 당신에게만 제 눈을 두게 해 주십시오. 뒤에서, 옆에서, 저를 두고 수군거리거나 터무니 없는 말로 비난을 하거나 달콤한 말로 칭찬을 하거나, 그런 소리에 흔들리지 않도록, 주님, 제 마음을 오로지 당신께 두고자 합니다. 이왕에 누군가를 시늉하며 살게 되어 있는 게 인생이라면 주님이 보여주신 초연한 참여의 길을 시늉해 보겠습니다. 부디 저를 도와주십시오. 아니, 이것이 본디 저의 소원이기 이전에 당신이 저를 부르신 이유요 목적일 터인즉, 저로 하여금 당신이 저에게 하시는 일을 잘 도와 드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103.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 (갈2:6)

주님, 내가 세상에 온 것은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신 주님. 제가 아직도 사물의 진면목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겉모습에 붙잡혀 왔다 갔다 하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통하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리하여, 주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저를 통해서 옹글게 이루시기 바라나이다. 

 

104. 씨앗이 움트듯 (사61:11)

그렇다. 참된 하느님 찬양은 가슴 깊은 곳에서 저절로 솟아나와 강물처럼 흐른다. 반복적인 연습 효과로 또는 최상급 음향기기의 효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주님, 저로 하여금 세상을 정의로운 곳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오랜 미망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그 대신, 제 삶의 밭에 당신의 가르침을 심어 그것이 정의의 새싹으로 움돋게 하소서. 

 

105. 교회 안에도 있다 (밷후2:1)

 가짜는 어디에나 있다. 교회 안에도 있다. 이상한 일이지만 사실이다.
삼가 조심할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그러나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가짜를 분별하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는 말에 속지 말고, 그들이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먹으며 어떤 집에 살고 있는지를 찬찬히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수상하면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주님, 이 바쁜 세상 살면서 가짜한테 속아 허송세월하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하지만 주님, 가짜한테 속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저 자신이 가짜가 되는 일만큼은 결단코 없어야겠습니다. 부디 저를 지켜 주시고 조금이라도 그럴 기미가 보이거든 가차없이 일깨워 주십시오. 제가 저를 비우고 그 자리를 당신으로 채우면 가짜가 되고 싶어도 될 수 없으리라는 것, 잘 압니다. 모든 일에 저를 앞세우지 말고 당신 뒤에 서도록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106. 그래서 틀린 말이 아니다 (시75:6-7)

 산에서 재면 높은데도 있고 낮은 데도 있다.
강에서 재면 먼 데도 있고 가까운 데도 있다.
그러나 하늘에서 재면 높은 데도 낮은 데도 없고 먼 데도 가까운 데도 없다. 하느님의 판결이 공평무사하고 머리털만큼도 어긋나지 않는 까닭은 하느님이 하늘에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 제가 만일 지옥으로 간다면 그것은 하느님이 저를 그리로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제가 저를 그리로 보내는 것입니다. 제가 만일 천당으로 간다면 그것도 하느님이 저를 그리로 보내시는 것이 아니라 제가 저를 그리로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요, 그런 줄 알면서도 어째 저는 자꾸만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려 하는 것일까요? 마음으로는 모든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야지 하는데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오만에 자신을 감추고 있습니다. 오, 주님. 제가 저를 어쩔 수가 없네요. 부디 저를 당신의 소유로 봉인하여, 죽이든지 살리든지 뜻대로 하십시오.

 

107.답은 한 곳을 가리킨다 (요1:26-27)

주님, 저를 남보다 높은 자리에 세우기는 물을 위로 올리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고, 저를 남보다 낮은 자리에 두기는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쉬운 일인데, 그런데 그게 왜 이다지도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주님, 어려운 일을 도모하다가 고생만 하고 아무 얻는 게 없는 허망한 인생이 되지 말고, 쉬운 일을 쉽게 하면서 거기에서 오는 설명 못할 평화와 기쁨을 맛보게 도와 주십시오. 저에게 그 길을 일러주러 하늘 보좌를 비우고 이 땅에 내려오지 않으셨습니까? 낮은 자리로 내려가려 애쓰지 말고 네 진면목을 알라고요? 네가 얼마나 비천하고 엉터리없는 물건인지를 알라고요? 그러면 저절로 낮은 자리가 편해진다고요?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저로 하여금 제 진면목을 알고 잊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108. 갈 길이 멀다 (마26:20-22)

주님, 남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저 자신을 사랑할 줄 알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저 자신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하느님을 사랑할 줄 알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저의 사랑이 저한테만 머무르는 과오를 범하지 않게 도와주십시오. 정말이지 저는 사랑으로 살고 사랑으로 죽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사랑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어요. 열심히 베울 터이니 적절하게 가르쳐 주십시오.

 

109. 진정한 들음(롬10:16-17)

 들어야 믿을 수 있다.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귀로만 듣는 것은 믿음과 아무 상관이 없다. 오히려, 시끄럽게 굴지 말라고 짜증을 낼 수도 있는 일다. 마음으로 듣고 승복해야, 그래야 진정한 '들음'이다. 그렇게 들으면 저절로 몸이 움직인다.

주님, 저 한 몸 여기 이렇게 있기 위하여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세월 나고 죽기를 반복한 생명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그이들 덕분에 제가 오늘 여기 이렇게 있습니다. 아니, 그이들과 함께 제가 여기 이렇게 있습니다. 그런 줄 알면서, 제가 어찌 스스로 잘난 척 으스대거나 스스로 좌절하여 낙담하겠습니까? 뽐낼 것도 없고 주눅들 것도 없는 인생, 생긴 대로 살다가 때 되면 몸을 바꿀 따름이지요. 그러니 저로 하여금 부디 저 혼자서 사는 게 아니라는 진실을 잊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110. 대책 없는 사람(막15:1)

예수가 체포되던 날 새벽에 예루살렘에 의회가 소집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대책을 의논하였다. 바로 전날, 혼자 대책을 생각하다가 그나마 포기하고 모든 것을 '하늘'에 맡겨버린, 한 '대책 없는 사람'을 처형하기로, 보나마다 근사한 예복으로 위엄(?)을 갖추었을 의원님들이 결정하셨다는 이야기다.

주님! 날마다 머리 둘 곳 없이, 물처럼 바람처럼 정처 없는 흐름으로 사셨던 주님, 그러나 빈틈없는 하늘 섭리에 몸을 내어맡기고 옹근 자유를 누리셨던 주님, 저도 당신처럼 살고 싶습니다. 도무지 대책이 없어 보이지만, 때와 곳에 틀림없이 나타나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저에게 이런 소원을 품게 한 분이 바로 당신이시니, 당신의 뜻을 부디 저에게서 이루어 주소서.

 

111.부끄러울 것 없다.(마10:24-25)

우리 스승 예수는 악마의 괴수(바알세불)이라는 말까지 들으신 분이다.
그분 제자로 자처하면서 무슨 누명을 새삼 겁낼 것인가?

주님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스승님처럼, 온갖 누명을 쓰면서도 때 하나 묻지 않는 그 당당함과 깨끗함의 비결을 배우고 싶습니다. 저에게, 세상의 이런 저런 비난과 모함으로부터 지켜야 할 '나'가 아예 없었으면 합니다. 이런 소원도 소원이랄 수 있겠는지요? 

112. 괜히 기웃거릴 것 없다. (히6:20)

멜기세덱이 어떤 인물인지, 예수께서 우리보다 앞서 들어가셨다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그런 것을 미리 알고 싶어서 괜히 기웃거릴 것 없다. 그러느라고 지금 여기에서 앞서 가시는 주님을 놓친다면, 숟가락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알아보느라고 밥을 굶는 사람과 다를 게 무엇이랴?

주님, 당신과 저 사이에 더 이상 당신에 대한 사람들의 이런 저런 설명이 끼어들지 못하게 해주십시오. 이정표에 눈이 가려 길을 보지 못한다면 그런 낭패가 어디 있겠습니까? 당신에 대한 저의 경험조차도 저와 당신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모든 것들을 오직 당신과 함께 가는 이 길의 디딤돌로 삼게 해 주십시오. 

 

113. 너는 누구 것이냐? (눅20:25)

"이것이 가이사의 것이냐 하느님의 것이냐를 결정짓는 것은 '이것'이 아니라 너다. 네 눈에 가이사의 것으로 보이면 가이사의 것이요, 하느님의 것으로 보이면 하느님의 것이다. 무엇이 가이사의 것이고 무엇이 나느님의 것인지 내게 묻지 마라."

주님, 제가 당신을 주님이라고 부르는 한, 저는 제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언제나 기억하고, 저를 당신께 돌려 드리는 것으로 제 삶의 모든 것을 삼게 하소서. 그러다가 마침내 당신께 저를 돌려드리는 저까지 없어진다면... 주님, 그날이 오든 말든 오직 그날을 바라보며 나가가게 하소서.

114. "어디"가 따로 없다.(눅9:57-58)

정처가 없는 사람은 어디든 갈 수 있다. 머리 둘 곳이 없는 사람은 아무데나 누울 수 있다. 임성소요(任性逍遙)에 수연방광(隨緣放曠)이라, 하늘 성품에 나를 맡기고 노니는데 인연 따라 거침이 없도다!

주님, 이왕에 당신의 가르침을 받아 살기로 작정하여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대로 살다가 아무 이룬 것 없이 죽어도 괜찮으니, 뒤를 돌아보거나 한눈 파는 일만큼은 없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당신 계신 곳까지 다 못 가도 좋습니다. 그리로 가다가 숨을 거두었다는 사실 하나로 저는 더 바랄 것이 없어요. 이 말이 저의 진심인 줄, 당신은 아십니다.

 

115.고쳐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마15:29-31)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소경 절름발이...를 고쳐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랬더라면, 갈릴리 호수를 지나서 산에 올라가 앉는 대신 병자들이 있는 마을을 순방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대대적인 '치유 집회'를 계속하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 주는 가운데, 당신의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오직 하늘 아버지 뜻에 복종하고, 그렇게 영생의 도를 몸소 걸으시고, 그것을 우리에게 모범으로 보여 주시고자 그분은 세상에 오셨다.
병자들을 고쳐 줌으로써 그분이 참으로 이루신 것은, 기적 같은 치유행위가 아니라, 당신을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이었다.

주님, 하늘 아버지께 바치신 당신의 오롯한 순종이 벙어리를 말하게 하고 절름발이를 걷게 하셨습니다. 당신의 치유 능력을 시새우지 말고, 당신처럼 온전히 하늘 아버지께 순종하며 살게 해 주십시오. 제가 그것을 이토록 소원하건만 제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를 않습니다. 제발 불쌍히 보시고 그냥 이대로 놔두지 말아 주십시오. 잠자코 당신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116.걸어다니는 하느님 나라 (눅9:27)

예수, 그분은 걸어다니는 하느님 나라셨다. 젖먹이 아이처럼 하느님 통치를 받아들이는 자라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걸어다니는) 하느님 나라로 살 것이다.

주님, 저도 당신이 그러셨듯이 젖먹이 아이처럼 온전히 하느님께 순종하여 '걸어다니는 하느님 나라'로 살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는 어른의 욕심을 따로 품지 않게 해 주십시오.

 

117.눈 먼 사람들! (요9:18-23)

눈 뜬 사람 내쫓는 눈 먼 사람들!
우습다고 해야 할까?
슬프다고 해야 할까?

주님, 지금도 이런 일이 대낮에 일어나는 세상입니다만,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는 더 묻지 않겠어요. 다만 저는, 누가 무슨 짓을 저질러도 그를 내쫓아야만 할 '신성한 공간'을 따로 소유하지 않겠습니다. 아니, 한낱 피조물인 사람이 그런 공간을 소유한다는 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명심하겠습니다. 하느님 나라에는 그런 데가 따로 없으리라 믿고 있으니까요.

 

118.신비 체험의 마지막 (눅9:36)

물이 증발하여 허공에 머물다가 빗방울로 내려와 만물을 살리듯, 평범한 일상을 떠나 신비의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 신비 체험의 한 사이클이다.

주님, 평범한 일상(日常)으로 숨어 계시는 당신을 알아 뵙게 해 주십시오. 그러기 위하여, 일상생활에 충실하면서 그것에 사로잡혀 걸리지 않는 구도자의 자세를 유지하도록, 순간순간 저를 일깨워 주소서. 

 

119. 주는 자와 받는 자가 같지 않다.(행17:32)

서로 다른 사람들이 반드시 상대를 용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느 한 쪽만 자기와 다른 쪽을 인정하고 용납해도 충돌과 갈등을 피할 수 있다. 손바닥 하나로는 소리를 낼 수 없는 법이니까.
수많은 사람의 반대와 배척을 받았지만 단 한번도 그 누구와도 충돌하거나 갈등한 적이 없으신 분, 그러면서 당신에게 주어진 길을 한 치 어긋남 없이 걸어 목적지에 정확하게 도달하신 분, 우리 스승 예수가 바로 그런 분이시다.

주님, 바람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것은 바람 알갱이가 그물코보다 작기 때문인 줄 압니다. 주님, 저로 하여금 사람들 속에서 미세한 먼지처럼 스스로 작아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자꾸만 커지려고 하는 이 마음을 당신께 맡깁니다. 섬김을 받으러가 아니라 섬기러 이 세상에 오신 당신을 본받아, 모든 사람을 저보다 크고 높은 자리에 기꺼이 모시고 저는 날마다 더욱 작아지는 존재로 살아가게 도와주십시오. 그리하여 누가 뭐라고 해도 그 말이나 행위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120.어려운 일이 아니다. (요7:16-17)

누가 무슨 일을 할 때, 그 일을 자기 뜻대로 하는지 아니면 하느님의 뜻대로 하는지를 분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가 만일 그 일로 자신의 영광을 구한다면, 그래서 자기 명예를 더럽히는 자들에게 화를 내거나 그들을 미워한다면, 그는 하느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자신의 뜻을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온 세상이 들고 일어나 자기를 모함하고 핍박해도 그들을 미워하거나 그들에게 성을 내는 대신 오히려 복을 빌어주고 담담하게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실현코자 애쓰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 속은 어떤 속임수나 거짓도 없이 맑고 투명하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이 옹글게 그를 통하여 세상에서 이루어진다.
햇빛과 바람이 자유자재로 통하는 곳에는 속임수와 거짓의 곰팡이가 피지 못한다.

 주님, 저를 투명인간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그래서 당신의 빛이 저로 말미암아 막히거나 뒤틀리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게 해 주십시오. 지나친 욕심인가요? 그래도, 그대로 되든 안되든, 이 욕심 하나 품고 살아보렵니다. 그건 허락하시겠지요?

 

121.임자가 바뀌었다. (롬6:20-22)

성한 사람이 아니라 병든 사람을 위해서 세상에 오신 주님. 온 몸이 마비되어 제멋대로 움직이던 저를 수술해 주신 것 감사드립니다. 그 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아직 잘 움직이지 않는 부분이 제 몸에 남아 있어요. 워낙 오래된 중증이었기에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릴 줄 알고 있습니다만, 제 맘하고 상관없이 움직이는 제 몸을 볼 때면 조바심도 나고 자신에게 짜증도 납니다. 주님, 저에게 참을성을 주시어 모든 것을 견디며 모든 것을 바라게 도와주십시오. 나아가,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도 오래 참고 기다려줄 수 있도록 저를 붙들어주십시오.

 

122.흥성망쇄(興盛亡碎) -겔29:6-9

주님, 사람이 정직하지 않고 그래서 거짓말을 좀 해도 '경제'만 살려 준다면 기꺼이 지도자로 모시겠다는 돌아버린 민심(民心)이, 바다건너 제국을 신명나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바야흐로 자본주의 제국의 멸망이 다가오는 게 보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 바짝 차려서 사람이 돈과 하느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당신 말씀에 저의 삶을 오로지 의탁하고, 주어진 길을 곧장 가게 도와주십시오. 저로 하여금 돈을 겁내지도 말고 경멸하지도 말고, 의연하게 그 주인으로 행세하는 인간의 존엄을 잃지 않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십시오.  

 

123. 하늘에 맡기다 (대상12:17-18)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광야를 유랑할 때 많은 무리가 찾아와 그와 합세했다. 다윗은 찾아오는 자들을 선별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였다. 그들 가운데 누군가 다윗을 배신하여 사울에게 넘겨줄 가능성은 언제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줄 알면서도 다윗은 그들을 받아들인다.
다윗이 거저 다윗이 아니다.

주님, 저에게 주어진 일,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두려움도 망설임도 없이 하되, 내일을 위하여 힘을 남겨두지 말게 하소서. 그러나 그 밖의 일은 모두 하늘에 맡기고 주제넘게 참견하는 일 또한 없게 하소서. 제가 세상에 와서 잠시 동안 당신의 일을 하다가 갈 뿐임을 유념하여 잊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24.일진(日辰) 사나운 날 (눅23:26)

그날이 시몬에게는 일진 사나운 날이었던가? 그날에는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저 많은 사람들 가운데 왜 하필 나냐고, 더럽게 재수 나쁜 날이라고, 투덜거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날이 있었기에 구레네 시몬은 살아있는 예수를 가슴에 모신 '거듭난 사람들' 무리에 들게 되었고 그래서 그 이름을 오늘 나도 이렇게 알고 있는 것이다.

주님, 당신 때문에 생긴 일이라면, 그 일이 아무리 황당하고 역겨운 일이라 해도, 그것이 저를 살게 하고 저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비록 저의 어리석음이 꼬투리가 되어서 일어난 일이라 해도, 당신에게만 연결이 되면, 영락없이 그 일로 제가 살고 제가 행복해집니다. 이 알 수 없는 기적을 목숨 다하는 순간까지 체험하게 하소서. 아멘 

 

125. 폭력의 다른 얼굴(눅18:35-48)

도움을 받는 자에게도 겸손한 마음과 예절바른 태도가 있어야 하지만, 도움을 주는 자에게도 똑같이 겸손한 마음과 예절바른 태도가 있어야 한다. 도움 받을 자의 마음과 형편을 아랑곳하지 않고서 제 맘대로 자비를 베풀고 제 방식대로 남을 돕는 것은 다른 얼굴의 폭력이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고전13:5)

주님, 돌이켜보면 제가 참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제 맘대로 누구를 도우려다가 오히려 그에게 상처를 입힌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아아, 주님. 다시는 그런 종류의 폭력을 행사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발 저를 도와 주십시오. 

 

126. 마음을 거울같이 쓰라.(눅17:3-4)

사물이 제 앞에 서기 전에는 그 모습을 비춰주지 않고, 사물이 떠난 뒤에는 그 모습을 간직하지 않는다. 그것이 거울이다.
모든 행위(action)가 반응(reaction)인데, 거기에 한 오라기의 사심(私心)도 작용하지 않는다.  그것이 거울이다.
"한 친구가 저에게 하루 일곱 번이나 잘못을 저지르고는 그때마다 와서 잘못했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진심으로 그러는 것 같더니 언제부터인가 재미가 붙었는지 건성으로 잘못했다고 그럽니다. 그래도 용서를 해야 합니까?"
"그렇다"
"언제까지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거울은 수를 세지 않는다"

주님, 오늘은 더 드릴 말씀이 없네요. 맞습니다. 거울은 수를 세지 않습니다. 

 

127. 오직 앞에 있다.(요21:20-22)

"나를 따르라"는 말은 앞서 가는 사람이 뒤에 있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뒤에 있는 사람이 그 말대로 하려면 앞을 보아야 한다. 뒤를 보면 앞에 가는 사람을 따를 수 없다.

주님, 당신을 따르겠다면서도 제 눈은 이리저리 한눈팔고 지난 일 돌아보느라고 쓸데없이 바쁩니다. 이 노릇을 어찌해야 할는지 모르겠어요. 주님, 무슨일을 당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저로 하여금 앞에 가는 당신을 놓치지 말고 당신만 바라보며 따라가게 도와주십시오. 

 

128. 없는 믿음 (약2:24)

많은 사람이 자기가 주를 믿고 있는 줄로 착각한다. 그래서 주의 이름을 밤낮으로 부르며 그분의 가르침과 상관없는 짓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기이(奇異)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님, 말로만 당신을 따르고 말로만 이웃을 사랑하는 사기꾼만큼은 되지 않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사람으로 태어나 무슨 할 짓이 없어서 저를 속이고 세상을 속이며 산단 말입니까? 그건 정말이지 싫습니다. 제발 도와 주시어, 저의 말과 삶이 하나되게 해주십시오. 

 

129. 필유아사(必有我師) 고전10:8-11

삼인행(三人行)이면 필유아사(必有我師)라,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거기에 반드시 내 스승이 있다 하였다. 바르게 걷는 사람은 본받을 스승이요, 그르게 걷는 사람은 본받지 않을 스승이다.

주님, 언제 어디서나 배우려는 학생정신을 잃지 않게 해주십시오. 모르는 것을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러워하지 않게 하시고, 모자라는 것을 감추려하지 않게 하시며, 넘어졌을 때 절망하여 포기하지 않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저에게 평생토록 배우는 학생으로 살아갈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날마다, 시간마다, 눈 앞의 스승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일이 없게 해주십시오. 과거의 일이든 현재의 일이든 비난이나 원망의 소재로 삼지 않고 오직 저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교재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130. 어찌 알겠는가? (시133:1)

어둠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빛의 밝음을 어찌 알겠는가? 그런즉, 모든 상실(喪失)이 끝내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모든 좌절이 끝내 아프기만 한 것은 아니다.

주님, 그런 줄 압니다만, 그래도 아픈 것은 아픈 것이고 슬픈 것은 슬픈 것입니다. 아프면 아픈대로 아파하고 슬프면 슬픈대로 슬퍼하게 도와주세요. 당신이 붙들어 주지 아니하시면, 저 혼자서는 아파하고 슬퍼하는 것도 제대로 못한다는 거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요, 주님! 아파하되 아픔에 삼키지 않고 슬퍼하되 슬픔에 질식되지 않도록 저를 지켜 주시고 이끌어주십시오.

 

131.시련의 과정 (벧전1:6-7)

예수 때문에, 그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그것 자체를 기쁨으로 감사할 일이다. 지금 당장은 어렵다 해도 머잖아 그렇게 될 것이다. 금(金) 제련공이 잡금을 도가니에 넣었다. 어찌 순금(純金)으로 태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님,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하게 하소서. 이것이 그냥 어렵기만 한 일이 아니라 목적이 분명한 단련의 과정임을 알고 잘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132.사이비(似而非)를 멀리 하는 길 (딤후3:1-5)

사이비를 멀리하는 길은, 그렇다, 사이비를 멀리하는 데 있지 않고 진실을 가까이 하는 데 있다.

주님, 부지런히 길을 가되 가는 길에 붙잡히지 않고,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되 사람에 매이지 않고, 정성껏 일하되 하는 일에 노예가 되지 않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오. 더는 사이비들의 근사한 말에 휘둘려 길을 잃고싶지 않습니다. 그들을 멀리 할 궁리로 머리를 돌리지 말고 빛이신 당신께로 가까이 가는 일에 정성을 쏟아야겠습니다. 주님, 당신이 자유로우셨듯이 저도 자유롭고 싶습니다. 제가 이렇게 원하고 주님 또한 원하실 터인즉 안 될 까닭이 없겠지요? 믿고 참으며 기다려보겠습니다. ⓒ이현주 (목사)
<보는 것을 보는 눈이 행복하다/kmc>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