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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처럼 빌레몬처럼

빌레몬서 박상훈 목사............... 조회 수 2843 추천 수 0 2011.07.25 07: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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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몬1:4-7 
설교자 : 박상훈 목사 
참고 : 승동교회 
바울처럼 빌레몬처럼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4-7)

헝가리의 유명한 작곡가이며 피아노의 거장인 프란츠 리스트(Ferenc Liszt, 1811∼1886)에 관한 일화입니다. 한 번은 그가 독일에 있는 어느 작은 시골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그곳에 한 무명의 여류피아니스트가 연주를 한다는 광고가 여기저기에 나붙어 있었습니다. 그 여류피아니스트는 리스트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서로 간에 한 번도 만난 적조차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마치 자기가 피아노의 거장 리스트의 제자인 것처럼 선전문구에 적어놓았습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자기를 좀 더 높이 평가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연주회를 하기 바로 전 날 리스트가 그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지방신문을 통해서 게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 무명의 여류피아니스트가 얼마나 난감했겠습니까? ‘아, 이제 나는 죽었구나! 나의 연주 생명이 이것으로 끝이구나!’ 그는 자기의 거짓말이 탄로가 나서 망신을 당하기 전에 조용히 그 마을을 빠져 달아나 버릴까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까지 마치 자기가 리스트의 제자인 것처럼 행세한 것에 대해서 강한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리스트를 찾아가서 백배사죄하고 용서를 빌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리스트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흐느끼면서 그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고아로 자랐습니다. 저는 피아노를 너무나 좋아하지만 저의 형편이 어려워서 훌륭하신 선생님 밑에서 사사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열심히 피아노를 쳤습니다. 이제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이 마을 저 마을을 순회하며 연주하고 있습니다. 저는 선생님에게서 한 번도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인기를 끌기 위해서 선생님의 제자인 것처럼 행세를 해 왔습니다. 선생님, 정말 잘못했습니다. 깊이 뉘우치고 있습니다.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리스트는 그 말을 듣고 난 뒤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당신의 말을 듣고 보니까 당신이 잘못하기는 잘못했군요. 거짓말로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현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실수는 다 있기 마련입니다. 당신이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치고 용서를 비니까 내가 기꺼이 용서를 해 드리지요.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내일 당신이 연주할 곡을 내 앞에서 한 번 직접 쳐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당신을 용서해 주겠습니다.”
그는 어쩔 수없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서 피아노 앞에 가서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리스트는 그의 연주를 들으면서 이따금씩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고, 또 때로는 이곳저곳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여기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고, 또 저기는 저렇게 하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그가 연주를 마치고 나자 리스트는 손뼉을 치면서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당신은 내게 조금이라도 배웠으니까 분명히 나의 제자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떳떳하게 나의 제자인 것을 밝히고 연주회를 계속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내일 연주회에는 나도 참석을 하렵니다. 사람들에게 마지막 곡은 나의 스승인 리스트 선생님께서 직접 연주해 주시겠다고 말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내가 대신해서 한 곡을 쳐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무명의 여류피아니스트가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일평생 그 은혜를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용서는 그렇듯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주일에 이어서 오늘도 빌레몬서를 함께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한 가정의 실제적인 문제를 통해서 용서의 정신을 너무나도 아름답고 감동있게 설명해 준 책이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빌레몬의 집은 골로새에 있었습니다. 그의 부인의 이름은 압비아였고, 그의 아들의 이름은 아킵보였습니다. 그는 부유했습니다. 그래서 골로새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빌레몬의 집에 모였습니다. 빌레몬에게는 오네시모라는 종이 있었습니다. 빌레몬은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주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네시모는 자유를 누리겠다고 빌레몬에게서 달아났습니다. 심지어 빌레몬의 돈까지 훔쳤습니다. 그리고는 그 당시 세계 수도였던 로마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니까 거기에 숨어살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머지 않아서 오네시모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자기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의 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금 오네시모는 바울을 잘 도와주고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있는 바울의 뒷바라지를 잘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마땅히 오네시모를 그의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그를 위해 한 장의 편지를 써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레몬서에서 오네시모의 모든 과거의 잘못을 용서하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로서 오네시모를 따뜻하게 맞이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는 감사의 이유를 여러 가지로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는 감사요, 빌레몬을 향해서는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빌레몬으로 인한 기쁨의 말씀으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도 바울처럼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데 인색하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칭찬할 수 있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빌레몬처럼 남에게서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바울처럼 빌레몬처럼 나와 이웃의 관계가 늘 아름답게 맺어지기를 바랍니다.
편의상 오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감사의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아무리 급한 말이 많고 해야할 일이 많아도 첫째는 감사입니다. 감사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말을 해야지 상대방이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래야 설득력이 있고, 효과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평하고 원망하는 마음으로 말하면 상대방은 감정을 상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감동을 주지도 못하고 효과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에게 있었던 감사의 특징을 세 가지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항상 감사했습니다. “내가 항상.” 지금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사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감사는 언제, 어떠한 형편에서라도 감사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1968)는 삼중고의 장애자였습니다. 보지를 못했습니다. 듣지도 못했습니다.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난과 역경에 쓰러지지 않고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그는 건강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대학에 들어가서 당당히 우등생으로 졸업했습니다. 많은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는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는 88세까지 장수했습니다. 그가 노년에 이르렀을 때 한 신문기자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고통 속에서 일평생을 살아왔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따금씩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신 적은 없습니까?”
그때 헬렌 켈러는 단호히 말했습니다.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하나님을 원망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는 자기의 삶을 다 살고 난 뒤에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아! 참으로 나의 인생은 아름다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의 일평생이 다 지나고 난 뒤에 우리도 우리의 삶을 마감하면서 “주의 은혜로 나의 삶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복된 모습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바울은 진실된 감사를 드렸습니다. 지금 바울이 누구 앞에서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있습니다. 진실된 감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 앞에서의 감사는 진실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에 없는 거짓된 감사일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잔칫집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선물을 사려니까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없이 봉투에 한 5∼10만원 정도 넣어서 주었습니다. 잔치가 끝나고 나와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먹고 갑니다. 대접 잘 받았습니다.”
그러나 뒤돌아서면서 속으로는 왠지 모르게 손해본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남을 칭찬할 때도 그렇습니다. 아기엄마 앞에서는 아기를 칭찬합니다.
“똑똑하게 생겼네. 잘 생겼네.”
그러나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고것, 자기 엄마 닮아서 여우같이 생겼네. 깍쟁이 같이 생겼네.”
이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사람 앞에 감사하거나 칭찬할 때는 그것이 진실되지 않은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된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바울은 자기 때문에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지금 바울은 빌레몬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저 내게 무엇이 들어와야, 내가 잘되어야 감사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감사는 모름지기 나로 인해서도 감사해야 되겠지만, 다른 사람이 잘될 때 그것으로 인해서 감사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날 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서 유월절 만찬을 드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성찬을 제정하셨습니다. 이제 그 밤만 지나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떡을 가지고 축사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셨다는 뜻입니다. 식후에 또 예수님은 잔을 가지사 사례하셨습니다. 역시 하나님께 감사하신 것입니다. 떡은 예수님의 찢기어질 살입니다. 잔에 담긴 포도주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셔야 할 보혈입니다. 내일이면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 당하시고 죽으셔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하나님께 감사하셨습니다. 무엇을 감사하셨을까요? 아마도 이러한 뜻의 감사일 것입니다.
“나는 비록 살이 찢기어지고 피를 흘려야 하지만, 나로 인해서 너희의 죄가 용서함을 받고 너희가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을 생각하니까 나는 너희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아니할 수가 없다.”
지금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지금 빌레몬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감사가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물론 나 때문에 감사해야 되겠지만, 이웃이 잘될 때도 함께 감사해 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빌레몬처럼 다른 사람이 나를 생각할 때, 절로 그 마음 속에 감사의 정이 넘칠 수 있는 삶을 우리가 살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감사의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저 습관적으로 한 마디하고 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제가 이런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이것도 주셔야 되겠습니다. 저것도 주셔야 되겠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졸라대기만 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막연하게 감사드리는 것이 아니고,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들어가면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는 감사입니다. 그러나 빌레몬을 향해서는 그것이 칭찬의 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을 칭찬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은 훌륭하십니다.” 이렇게 막연하게 말하는 것은 아첨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래서 훌륭하십니다. 저렇기 때문에 훌륭하십니다.” 그 이유를 밝히면 정당한 칭찬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여섯 가지로 빌레몬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우선 바울은 그 자신이 빌레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빌레몬은 바울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심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절 하반부에 보면 바울은 빌레몬을 가리켜서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이라고 했습니다. 빌레몬의 사람됨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사도 바울은 5절 끝부분에 있는 것처럼 들은 것이 있었습니다. “들음이니.” 빌레몬의 이야기를 누구에게서 들었겠습니까? 그의 종 오네시모를 통해서 들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통해서도 그의 주인 빌레몬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만일 빌레몬이 나쁜 사람이라면 오네시모는 결코 빌레몬에게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당시 도망친 노예가 잡히게 되면 죽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살리더라도 노예의 이마에 낙인을 찍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만일 빌레몬이 훌륭한 사람이 아니고 가혹한 사람이었다면, 왜 오네시모가 돌아가려고 했겠습니까? 오네시모가 기꺼이 돌아가려고 결심한 것은 그만큼 빌레몬이 좋은 주인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2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지금 바울 곁에는 에바브라가 있습니다. 여러분, 에바브라가 누구입니까? 빌레몬의 집에서 골로새 교회가 모였습니다. 골 1:7의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군이요.”
골로새 교회의 초대 목회자였던 에바브라가 지금은 로마에 있습니다. 바울은 에바브라를 통해서도 빌레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에바브라가 로마로 가고 나서는 빌레몬의 아들인 아킵보가 대를 이어 골로새 교회의 목회자가 된 것입니다.
아무튼 바울은 우선 그 자신이 빌레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오네시모와 에바브라를 통해 빌레몬에 대해서 좋은 소식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여섯 가지로 감사의 이유를 밝히면서 빌레몬을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다. 칭찬의 내용이 두 가지로 나오고 있습니다.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대상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입니다. 칭찬의 내용도 두 가지입니다. “사랑과 믿음”입니다. 만약 이 두 가지를 서로 한 가지씩만 연결시킨다면 어떻게 연결을 시키겠습니까? 믿음의 대상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됩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을 믿으면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의 대상은 모든 성도입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요, 사랑의 대상입니다. 골 1:4의 말씀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믿음은 예수님과 연결이 되어있고, 성도는 사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 엡 1:15의 말씀입니다.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아무튼 빌레몬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또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빌레몬아, 네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깊고 모든 성도에 대한 너의 사랑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나는 오네시모를 통해서 또 에바브라를 통해서 이미 잘 알고 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 것처럼, 이제는 너도 너의 종 오네시모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고 그를 따뜻하게 영접해 주리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러한 의도로 지금 사도 바울은 빌레몬을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6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또 세 가지로 칭찬의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그에게는 믿음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나는 나 너는 너, 나 혼자만 잘 믿으면 된다.” 빌레몬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따뜻했습니다. 그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외로운 사람이 있으면 친구가 되어주고 먼저 가서 인사하고, 어려움을 당하면 같이 짐을 나누어주고, 기쁜 일이 있으면 같이 기뻐해 주는 사랑의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따뜻한 마음으로 이제는 너의 종 오네시모도 영접해 주기를 바란다.” 바울은 이러한 뜻으로 빌레몬을 칭찬했던 것입니다.
 
넷째 칭찬은 무엇입니까?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빌레몬의 삶을 통해서 기독교인이 실천해야 할 선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 기독교인은 저렇게 살아야 되는구나! 저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선이구나!”
빌레몬의 삶을 통해서 성도들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제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영접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도들은 “아, 저것이 기독교의 사랑이구나! 저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용서의 정신이구나!”라고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칭찬은 6절 끝부분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고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사는 존재입니다. 이제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면,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오네시모를 용서해 주라는 것입니다.
 
여섯째 칭찬은 7절 말씀에 있습니다.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칭찬입니까? 빌레몬은 성도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저 말 한 마디를 잘못해서 이웃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산에 산불이 나는 것도 불을 많이 질러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성냥 하나만 켜면 산 전체가 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은 여러 말이 아닙니다. 한 마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하기에 앞서 좀 더 깊이 생각을 하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람이 아니라 이웃의 마음에 평안함을 끼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빌레몬을 여섯 가지로 칭찬했습니다. 그에게는 1)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2)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3) 믿음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4) 선을 실천함이 있었습니다. 5)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었습니다. 6) 성도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왜 바울이 빌레몬을 칭찬하는 것입니까?
“빌레몬아, 너는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니까 내가 너에게 부탁하는 대로 너는 틀림없이 너의 종 오네시모를 충분히 용서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런 뜻으로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칭찬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행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합니다. 그러므로 칭찬에 인색하지 마십시다.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이웃을 칭찬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도 빌레몬처럼 남에게서 책망을 받는 사람이 아니고 칭찬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바울은 기쁨의 말씀으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7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다.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지금 바울이 누구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까? “내가 감옥에서 나가면 기뻐하겠다.” 이런 말이 아닙니다. 바울은 빌레몬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내가 잘되어야 기뻐하는 것이 아니고, 경우에 따라서 나는 실패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웃이 성공했다면 그것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그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모의 기쁨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부모는 자기가 못먹고 자기가 입지를 못해도, 자기의 자녀를 먹이고 입히면서 기뻐합니다. 자녀가 잘되면 부모는 기뻐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공부를 잘하면 부모가 기뻐합니다. 자녀가 공부를 잘해서 부모에게 오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가 공부를 잘하면 부모는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기쁨이 지금 사도 바울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기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으로 인해서 단순히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Much joy and comfort(많은 기쁨과 위로)”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면서 진정으로 기뻐해 주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사람을 생각해도 원망스럽고, 저 사람을 생각해도 분통이 터지는 것은 나에게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바울처럼 이 사람을 생각해도 기쁘고, 저 사람을 생각해도 감사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손양원 목사님은 사랑의 원자탄의 주인공입니다. 여순반란 사건때 그는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빨갱이 학생이 두 아들을 죽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의 두 아들을 죽인 빨갱이 학생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의 구명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수양아들로 삼았습니다. 나중에는 그 아들이 목사가 되었습니다. 손목사님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한 것입니다. 용서의 정신을 실천한 것입니다.
우리는 죄와 허물로 인해서 마땅히 죽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삼아주셨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도 예수님의 사랑, 용서의 정신이 깊이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오네시모처럼 마음을 아프게 하는 역할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십시다. 예수님이 그 사람의 마음을 위로해 주시기로 기도하십시다. 아울러 내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나의 오네시모가 있습니까? 그가 누구이든지 간에, 그가 나에게 무엇을 했든지 간에, 용서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바울처럼 칭찬하고 또 빌레몬처럼 칭찬 받는 가운데 나와 이웃과의 관계가 늘 아름답게 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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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8 요한복음 우라부지 집에서 와이라노! 요2:14-17  강종수 목사  2011-07-22 2468
5537 고린도전 영을 따라 사는 사람 고전2:12  강종수 목사  2011-07-22 2176
5536 사사기 전쟁을 모르는 세대를 위하여 삿3:1-6  옥한흠 목사  2011-07-21 2606
5535 아모스 정의의 강물 암5:21~27  유관지 목사  2011-07-21 2205
5534 마가복음 지금, 우리에겐 뭔가 거대한 것이 필요합니다 막1:9-11  이정수 목사  2011-07-20 2090
5533 마가복음 기도는 이루어진다!”, 과연 그러한가? 막14:36  이정수 목사  2011-07-20 2848
5532 창세기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창조주 이십니다 창1:1-2:3  이정수 목사  2011-07-20 2525
5531 잠언 기도는 나의 실존을 하나님께 맡기는 일입니다 잠16:3  이정수 목사  2011-07-20 2567
5530 마가복음 관상기도(Contemplative Prayer) 막6:46  이정수 목사  2011-07-20 2121
5529 시편 묵상기도(Meditative Prayer) 시19:1-14  이정수 목사  2011-07-20 2420
5528 누가복음 소원기도(reflexive prayer) 습관 눅18:1-8  이정수 목사  2011-07-20 3334
5527 다니엘 위대한 습관을 창조하자! 단6:10  이정수 목사  2011-07-20 2287
5526 시편 멈추라, 그리고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시46:1-10  이정수 목사  2011-07-20 2859
5525 누가복음 말씀에 의지하여 깊은 데로 가라! 눅5:1-11  이정수 목사  2011-07-20 3437
5524 요한복음 지금, 두려운가요? 요14:27  이정수 목사  2011-07-20 2021
5523 데살로전 성령을 소멸치 말라 살전5:19  이정수 목사  2011-07-20 3265
5522 고린도전 너희 몸은 성령의 전이라 고전6:15-20  이정수 목사  2011-07-20 3015
5521 예레애가 푸른 나이에 꼭 기억할 것들? 애3:25-29  이정수 목사  2011-07-20 2196
5520 요한삼서 이렇게 효도하라 요삼1:2-4  이정수 목사  2011-07-20 2089
5519 고린도후 은혜 받은 자, 은혜 받을 자 고후8:1-5  이한규 목사  2011-07-16 3259
5518 고린도후 서로 힘이 되어주는 길 고후7:12-16  이한규 목사  2011-07-16 2417
5517 고린도후 근심을 유익으로 만드십시오 고후7:9-11  이한규 목사  2011-07-16 1949
5516 고린도후 영혼의 병균 침투를 막는 길 고후7:9-11  이한규 목사  2011-07-16 2086
5515 고린도후 하나님의 사랑 받는 사람 눅15:8-10  이한규 목사  2011-07-16 2107
5514 고린도후 쓸데없는 근심을 버리십시오 고후7:9  이한규 목사  2011-07-16 1875
5513 고린도후 칭찬의 위력 고후7:2-4  이한규 목사  2011-07-16 2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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