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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www.inbor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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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하기 -잔느귀용
이 책을 기록할 때에는 출판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마음을 다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몇몇 개인을 위해서 저술했지만 그 사람들을 통해서 많은 사람에게 전해지게 되면서 출판되어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요약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다. 각 단락으로 나누어져 있고 그 안에서 다루는 것이 다르고 또 그 안에서 직접 행해 보면서 읽어 내려가게 되어 있는 부분도 있어서 좀 어렵긴 하다. 그리고 내용이 많지를 않아서 그냥 책을 읽으면서 예수님을 깊이 체험하는 것이 쉬울 수도 있다.
저는 이 책의 단락별로 나누어진 부분을 따로 요약하면서 써 보기로 했다.
서론.....
책을 쓰면서 귀용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이 나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렵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을 깊이 체험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책을 써 내려갔다고 한다. 귀용은 하나님을 만나고 완전함에 이르는 것을 쉽다고 말을 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을 어렵다고 생각을 하는가? 그것은 주님을 찾으면서도 죄를 짓는 일을 중단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은 죄와 더불어 계실 수가 없고 사람들을 게시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은 경건한 삶을 두려워하고 있다. 기도도 어렵게 생각을 하고 있다. 그래서 경건과 기도의 문제에 대해서 바람직하고 즐거우며 유익하게 비추어 주고 있다.
“ 이책의 목적은 소박하고 어린이와 같은 심령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되신 분 즉 자녀들의 겸손한 확신(담대함)을 기뻐하시며, 또한 그들의 불신을 슬퍼하시는 아버지에게로 나오도록 권면하고자 하는 것일뿐이다” 라고 좀 어려운 이야기 이지만 귀용은 분명 위와 같이 말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사랑 이외에는 아무 것도 바라지 말라고 말을 하고 있다.
1.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여기서 부터 본격적인 내용이 시작된다.
제목에서 알수 있듯이 이제 기본적인 가치관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 모든 사람은 구원 받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하는 자리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깊고 내적인 관계는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로 향하여 돌이키고 주님께 굴복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고 그것은 우리들의 마음으로 주님께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다.
먼저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병이 들면 의사에게 나가는 것처럼 나가는 것이고 갈증을 느낀다면 생수가 있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양과 같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으면 목자에게 나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 아가는 것에 제외 되어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나아가기 전에 해야할 일은 먼저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질문해야 할 것은 “ 당신은 주님을 깊이 알기를 원하는가?” 다시 말을 해서 나는 정말로 주님을 깊이 알기를 원하고 있냐는 것이다. 그럼 그 열쇠는 기도에 있다.
완전함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 임재안에서 행하는 것이다. 그 임재안에서 살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기도를 통해서 이다. 이기도는 어떠한 상황이나 장소나 시간에도 경험될 수 있는 기도이다. 이 기도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기도를 말하는 것이다. 마음으로 부터 나오는 기도는 생각에 의하여 방해를 받지 않는다. 이 기도를 “ 단순한 기도(the prayer of simplicity)라고 말을 한다.
이 단순한 기도를 통해서 즉 마음속으로 깊이 경험하는 것에 의하여 공기를 들이마시며 살아가는 것보다도 더 쉽고 더 어려움이 없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단순한 기도의 방법을 배워 가는것이다.
이것이 이제 얕은 곳에서 깊은곳으로 가기위한 첫번째 이다.
2.입문...
주님께 나가는 두가지 방법중 하나는 “성경으로 기도하기” 그리고 또 하나는 “주님 바라보기” 혹은 “ 주님의 임재하심 속에서 기다리기” 이다.
“ 성경으로 기도하기”는 다음과 같다.
성경에서 간단하고도 실천적인 구절을 선택하여 편다. 그 다음에는 주님께로 나아가라 조용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마음으로 나아가라. 그리고 그 마음으로 선택한 성경구절을 읽는다. 여기서 성경을 읽을 때는 내용을 음미하면서 완전히 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을 빨리 읽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성경을 기도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문으로부터 어떤 것을 이끌어낸 훙에 당신이 그 부분의 핵심을 파악하고 그 구절의 깊은 의미를 다 알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 아주 천천히 다음 부분으로 일어 나가기 시작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학문적으로 읽는 것과는 달리 성경으로부터 깊고 내적인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다보면 조금씩 조금씩 우리의 내적인 존재로 부터 흘러나오는 아주 풍요로운 기도 생활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 바라보기” 혹은 “ 주님의 임재하심 속에서 기다리기” 이 기도에서도 성경을 사용하지만 목적이 다르다. 그래서 주님을 기다리기 위해서 주님께 나가는 별도의 시간을 마련을 해야한다.
첫번째 방법의 목적은 성경내용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래서 성경으로부터 주님의 계시하는 모든 사항들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두번째 방법의 목적은 우리의 생각을 주님앞에 잠잠케 하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 앞에 앉아서 그분을 바라보기 위하여 주님 앞으로 나아갈 때 성경을 사용하여 생각을 잠잠하게 하는 것이다.
주님과 함께하는 별도의 시간을 가져라.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임재로 향하게 하라. 이것은 믿음으로 주님께 향하는 것이다. 주님 앞에 있는 동안 성경을 읽어 나가기 시작하라. 그리고 성경 읽는 것을 중단하라. 이것은 우리의 지성을 성령님께 고정 시키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지성을 내적으로 그리스도께로 고정시키게 된다.
주님 앞에 있는 동안에는 당신의 마음을 주님의 임재안에 계속 있게 하라. 이것도 믿음으로 한다. 여기서 우리의 생각이 흩어지지 않게 해야한다. 여기서 생각이 흩어지면 다시 의식을 내적인 부분으로 돌아가라. 혹시 여기서 생각이 산란해진다고 해 보자. 생각이 흩어질 때는 생각하고 있는 내용을 바꾸려고 하지말라. 그렇게 하면 생각을 더욱 자극하여 더욱 산란스럽게 만들 뿐이다. 다시 마음속으로 주님의 임재로 돌아가기를 계속하라.
이렇게 자꾸 하다보면 내적인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새로운 습관을 가지게 되고 은혜가 많으신 주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을 주님께 복종시키는 일이 더 쉬워질 것이다.
3. 깊은체험-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도 경험할 수 있는 축복
이장은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록했다. 그러나 귀용은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도 읽어라고 당부하고 있다. 우리가 읽어야 할 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모든것을 가르쳐 주시기 때문에 그분을 읽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있다는 사실을 먼저 배워야 하겠다.
주님께 나아갈 때는 주님을 깊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가아야 한다. 그리고 주님앞에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고백해야 한다. 주위의 모든 부분에 눈은 감고 내적인 눈을 떠서 우리의 영을 바라보면서 내적인 부분에 집중시켜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안에 계신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믿음만이 우리를 그분의 거룩하신 임재하심 앞으로 인도해 줄 것이다. 떠 돌아 다니는 생각을 그분앞에 고정을 시켜라.
주님의 임재속에 들어가면 “주기도문”을 반복하기 시작하면 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렇게 하면 그 단어의 모든 의미가 우리의 마음에 깊이 와 닿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 우리들 안에 계신 아버지께서 정말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를 몹시 원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깊이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결코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이제 잠시동안 주님 앞에 고요하게 있어라. 그리고 언제 기도를 계속 진행시켜 나가야 할지에 대하여 감지하게 되면 다음 주기도문을 계속해서 반복해 나가면 된다.
주님을 우리의 목자로서 나가고 싶을 때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실제 꼴을 얻기 위하여 목자를 찾는 한 마리 양으로 서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위와 같은 방법으로 하면 될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어떤 일을 행하시는 분인지 상상하지 말고 단순히 그분이 임재해 계신다는 사실만 믿기만 하면 된다.
4. 두번째 단계
앞에서 말한 성경으로 기도하는 법, 주님을 바라보는 법, 혹은 주님의 임재 하심 속에서 기다리는 등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하리라 생각을 하고 주님과 한층 더 깊은 체험의 단계 “단순한 기도” 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흩어지는 생각들을 불러모으는 것이 아주 어렵고 또한 지속적으로 우리의 영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새로운 방법을 시작하는 초기에는 언제나 약간의 어려움 들을 겪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낙심하지 말아야한다. 주님과의 깊은 관계로 들어가려고 하는 길에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기도의 새로운 단계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무엇보다도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주님 앞에 있을 때에는 우리의 생각이 모아져 완전히 고요한 상태에 이르게 될 때까지 계속 우리의 의식을 내부로 심령으로 집중 시켜야 한다. 그렇게 되었으면 우리는 그분 앞에서 단지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있다가 주님의 임재하심에 대한 의식이 감소되기 시작하면 주님께 사랑을 고백하고 주님의 이름만 부르면 된다. 그렇게 하면 다시 주님의 임재속에 들어가게 될것이다. 이것은 불이 희미해지기 시작하면 크게 타오를 때까지 부드럽게 불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하면 우리는 모든 노력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두번째 단계이다. 이렇게 기도가 끝나 가는 순간에 주님 앞에서 잠시 고요한 상태로 그대로 있어야 하고 모든 기도가 믿는 마음으로 끝나야 한다는 것도 중요하다.
주님께 기도하러 나아가는 이유가 무엇인가? 기도하기 위해서 주님께 나아갈 때에는 주님께 아무 것도 구하지 말고 다만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그분의 뜻을 행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종이 주인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처럼 단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나아가야 한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그것은 바로 그 시간에 주님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 드려야 한다. 그렇게 되어지면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평온함이 있을 것이다.
5.영적으로 메마른 시기
하나님의 소원은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는 영혼과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영혼에게 친히 자신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자신을 주시고자 하시는 이 하나님께서 때로는 하나님을 찾는 바로 우리에게 숨기실 때도 있다. 이것이 영적으로 메마른 시기라고 하겠다. 그리고 숨기시는 목적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영적인 게으름으로부터 우리를 깨우시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구하시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우리가 영적으로 메마른 시기를 만나게 될 때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러한 시기에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입증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과 우리의 충성심을 입증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우리의 힘을 다해서 그렇게 하려고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주님이 더 빨리 우리에게로 돌아 오시기를 설득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참고 인내하는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이 우리에게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주님께서 자신을 감추셨다 하더라도 계속하여 주님 앞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평온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당신의 마음을 쏟아 놓아 라는 것이다. 이렇게 영적으로 메마른 시기에도 조급해 하지 말고 기도하면서 인내하여야 한다.
6. 자기 포기
지금까지 살펴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아는 방법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것은 아주 간단했다. 더 깊이 주님을 경험하는 단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제 기도를 한 두번 정해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기도의 자세가 생겨나야 한다. 한 두번 정해 놓은 기도 시간의 범주에서 벗어나 전 생의 전체까지도 달라져야 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가 있다. 그것은 “자기 포기(abandonment)"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만나는 자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 존재를 포기하고 하나님께 맡기기 시작하는 것이 요구된다.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이 다 하나님의 뜻과 허락에 의하여 임한다는 사실을 절대적으로 믿어야 한다. 이것은 앞에서 말을 했던 것과 같이 모든 상황에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는 것이 있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임으로 시작된다. 우리가 모든 상황을 이러한 시각으로 보고 주님꼐 대한 신앙에 대해서도 그러한 시각을 갖게 된다면 우리는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믿게 되면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모든 것들을 사람의 손으로 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으로 부터 오는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하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자신을 하나님 앞에 완전하게 포기하기를 원하는가? 보아야 한다.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한번 드린 것은 다시 돌려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님을 아는 일에 진보가 있으려면 자기 포기가 가장 중요하다. 즉 자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내적인 영적 생활에 이르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주님께 완전히 맡겨 드리는 방법을 아는 그리스도인은 완전함에 이르게 된다. 여기에서 완전함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게 살아가는 삶 또한 그렇게 살아가려고 하는 의지를 가지는 삶을 말하고 있다. 일단 자기 포기가 되었다고 하면 이제는 흔들려서는 안되고 그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자기 포기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자기의 염려를 던져 버리는 것이다. 자기의 필요 사항을 다 떨쳐 버리는 것이다. 참된 자기 포기는 두 가지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외적인 부분 곧 실제적인 것들과 관계되는 자기 포기가 있어야 한다. 두 번째는 내적인 부분 즉 영적인 것들과 관계되어 있는 자기 포기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완전히 자유롭고 평안한 상태에 있게 될 것이다.
이 자기 포기 훈련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매일, 매시간마다 그리고 매순간마다 실시 해야한다. 자기포기는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뜻 속에서 완전히 녹아서 없어지는 것이 반복되어짐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들 안에 개인적인 소원이 일어나면 그것이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그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해질 수 있는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 이렇게 되어질 때에 자유로이 하나님의 뜻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자기 포기는 또 우리의 과거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미래에 대해서는 하나님께 완전히 맡겨 버리는 것이고 현재의 일들에는 완전하게 우리 주님께 바쳐 드리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하는 자리로 들어가기를 원하면 지금부터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실 수 있도록 우리를 포기하고 내어 드려야 한다. 내적인 생활이든 외적인 생활이든 주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7.자기 포기와 고난
인생에 환난이 닥쳐올 때 자신을 구별하여 드린다는 것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말을 하겠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내신 모든 환난을 참고 인내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변화산의 영광 속에서도 아버지를 사랑했고 십자가의 달리신 갈보리산 에서도 아버지를 결코 덜 사랑하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자신의 사랑을 가장 크게 보여 주신 곳이 바로 갈보리산 이었기 때문이다.
십자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사랑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주시고 십자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준다. 이것은 참된 영적 원리인 것이다. 우리의 삶 가운에 십자가를 체험하는 거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실제적인 진보가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내적인 삶에서도 영적인 진보가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의 삶에 주시는 십자가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하는가? 그 순간이 오면 즉시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께 내어 드리는 것이다. 주님께 완전히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 십자가가 어떤 것이든지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으로 받아 들이라. 십자가에 고통이 없다면 그것은 고난이 아니다. 고난의 아픔을 느끼는 것이 바로 고난을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들이다. 고통이 없다면 십자가도 없다. 우리가 힘있을 때에 십자가를 질 때도 있고 우리가 연약하여 질 때 십자가를 질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모습이든 십자가를 져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뜻 안에서 십자가를 지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8.자기 포기와 계시
자기 포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를 주시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방법이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받게되는 계시는 단지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실제로 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자기 포기라는 방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누구에게 우리를 포기해 드리는 것인가? 그것은 예수님이다. 우리가 기로 따르게 될 분도 바로 주님이 시고, 진리로 듣게 될 분도 바로 주님이시고, 당신이 생명을 받게 될 것도 바로 주님이시다.
우리에게 계시가 임하게 되면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혼에 친히 자신의 도장을 찍으시는 것이다. 주님께서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모든 것을 완전하게 포기하여 드린 그리스도인을 찾아내시면 바로 그 사람에게 주님 자신의 속성에 대한 특별한 계시를 주시려고 한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에 관한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9 자기 포기와 거룩한 삶
하나님 앞에서 지속적인 자신을 포기한 상태로 행하면 그 결과는 경건이다. 경건이란 하나님께로 부터 나오는 어떤 것이다. 주님을 경험하는 이 간단한 방법을 충실하게 배워 나간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소유하면 할수록 더 하나님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이 경건이 우리 속에서부터 자라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히 가면에 불과할 것이다. 외적인 모습뿐인 경건은 의복처럼 변할수 있을 것이다.
경건에 이르는 방법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 완전히 포기하고 맡겨 드리기를 배워 가고 주님께 완전히 포기하고 맡겨진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최고 수준의 경건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도인 들에게 철저하게 경건을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시다. 경건에 도달하는 일은 단지 자기 포기뿐이 아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사항을 충실하게 따라 간다면 경건이 임할 것이다. 경건 이라고 하는 금을 추출해 내는 것은 바로 고난의 불이다.
10. 안에 거하는 삶
여기서는 우리의 감각과 욕망을 전적으로 다스리고 승리하는 것을 자기 포기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우리의 다섯가지 감각들은 그 생명과 에너지를 어디로 부터 얻고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영혼으로 부터 이다. 우리의 감각과 생명과 에너지를 공급해 주는 것은 바로 우리의 영혼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육체가 죽어 있다면 우리의 육체는 욕망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육체가 영혼과 단절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욕망을 극복하기 위하여 많은 방법을 모색해 왔다.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훈련과 자기거부일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궁극적인 해결이 될 수가 없다. 우리의 다섯가지 감각들을 정복하기 위한 방법은 단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내적인 명상의 방법이다. 이 감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영혼으로 하여금 완전히 내적으로 우리의 심령을 향하도록 하여 거기에 계시는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에너지를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향하여 그리스도께로 집중되어야 한다.
우리의 관심을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에 두게 된다. 우리의 주요 관심을 하나님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묵상하고 생각하는 데 있다. 그렇게 되어지면 우리는 특별히 육체를 벗는 일에 생각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육체를 다스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우리의 의식을 최대한 하나님께로 고정시킨 상태에 확고하게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영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여기서 두 가지로 요약을 하다보면 첫 번째로 무엇보다도 우리의 외적인 대상들로부터 멀어짐으로써 우리가 지속적으로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우리가 주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갈수록 죄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내적으로는 우리의 심령으로 향하여 주님께 가까이 나가고 다른 모든 것들로부터는 멀리 떨어져 있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11.중심을 향하여
우리가 주님을 깊이 아는 단계로 들어오게 되면 중심 지향의 법칙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중심 지향의 법칙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영혼을 깊은 내적인 곳에 지속적으로 머물러 있게 함에 따라, 하나님께서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속성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를 주님 자신에게 끌어당기신다. 그렇게 하고 우리에게 주님께 속하지 않는 것들을 제하여 깨끗하게 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끌어당기실 때에는 수동적인 우리의 자세 안에 우리의 자발적인 협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게 될 때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밖의 활동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중심을 향하여 나아갈 때에 우리를 방해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들의 불순물이다. 부정함과 또한 불순물이 섞여있는 혼합물들이다. 어떠한 불순물이라도 그것은 우리를 주님의 앞에 끌어당기는 것을 완전히 막아 버린다. 또 하나는 우리가 하는 노력이다. 우리가 노력을 기울이려는 노력으로부터 자유로워 질수록 우리는 주님을 향하여 더 빨리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것은 끌어당기는 에너지는 하나님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럼 여기서 우리는 죽어있는 수동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옳은가? 그것은 아니다. 우리는 영혼의 의지를 드려야 한다. 영혼의 주 요소는 의지이다. 그래서 영혼은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기다리면서 중립적이며 수동적인 상태로 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힘을 다하여 내 속에서 하나님의 소원이 성취되는 것을 원해야 한다. 우리를 완전히 소유하려고 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시도록 하기 위하여 나의 모든 활동과 힘의 사용을 중단하고 있는 상태로 있기를 바랄 뿐이다.
12.지속적인 기도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을 충실하게 따라왔다면 우리는 전과 같이 않은 특별한 안정감과 평온함이 점차적으로 우리의 영혼에 덮여 오게 될 것이다. 우리의 모든 기도와 모든 생활이 새로운 수준에 들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은 침묵으로 이루어지는 기도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침묵 속에서 우리들에게 깊고 내적인 사랑을 부어 주신다. 이러한 사랑이란 우리의 전 존재를 채우며 스며들어가는 체험이다.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느낄 수 없는 이유는 그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의 영역이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우리의 심령이기 때문이다.
침묵을 유지하는 이유는 말할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주님과의 깊은 만남을 경험하는 경우에 있어서는 말할 것이 너무 많아서 침묵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체험은 기도로 점차적으로 진행도어 나간다. 이러한 체험은 그 충만한 은혜가 자아의 활동을 완전히 중단시킬 때까지 계속된다. 그러므로 고요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하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기도에 있어서 우리는 어떠한 노력도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입술을 움직여서 젖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젖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면 이제는 잠잠해 있어야 한다.
지속적인 기도란 내면적인 곳으로부터 시작되는 기도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들어가고 싶다면 앞에서 말하는 내용대로 해 오면 자연스럽게 하나님께로 이르게 될 것이다.
13.풍부함
기도가 계속 되어짐에 따라서 이제는 그 기도 자체가 주님의 임재하심 자체로 변하게 된다. 실제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은 주님이시다. 이것은 기도 이상의 것이다. 주님을 찾아 만나는 유일한 길은 모든 의식의 방향을 내면 세계로 돌이키는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이제 우리의 눈을 감자마자 곧 깊은 기도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데 여기서 내면 세계에서 일어나는 또 하나의 경험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내적으로 하나님과 대화 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는 것이다. 이 대화는 아주 즐거운 일이며 환경도 이 대화를 방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안에는 심령 속의 생수의 샘이 풍성하게 터져 나와서 모든 선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가지 명심해야 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임재하심으로 차고 넘칠 때까지 채움을 받으며 또한 깊은 내면 세계에서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려 주시려고 선택하신 것이 무엇이든지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14.침묵
앞에서 체험해온 것은 우리를 인도하는 곳은 침묵 및 지속적인 기도의 상태로 가는 것이다.
여기서 주님 앞에 침묵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겠다. 첫째 우리의 타락한 본성이 하나님의 속성과는 반대되는 것이 때문이다. 두번째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 즉 말씀하시는 말씀이시기 때문이다.
좀더 생각을 해 보면 우리가 무엇이든지 듣기를 원한다면 수동적인 귀를 가져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말씀이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할 때에는 우리의 관심과 의식을 최대한 주님의 목소리에 집중시키기를 원하신다. 이렇게 침묵의 습관을 가져 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자신에 대한 관심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라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조용한 장소를 찾아보라는 것이다. 외적 고요함이 내적 고요함을 일으켜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15. 죄의 고백에 대한 새로운 이해
이렇게 하다보면 우리의 죄에 대한 고백을 언제 하는가? 그리고 자신에 삶을 점검해 보는 일은 언제쯤 하는가? 일반적으로 죄의 고백을 선행해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주님께 나올 때에는 다음을 추천하고 싶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 열어 놓고 있으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의 죄에 대하여 분명하게 조명해 주실 것을 확신해도 좋다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빛 비추심을 통해서 우리의 잘못을 볼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다. 여기서 죄를 드러내고 죄의 정도를 알려고 자신을 의지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우리가 단순한 기도를 통하여 주님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되면 우리에게 있는 그 어떤 잘못도 하나님의 경책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죄를 범하자마자 우리의 내적인 의지에 의하여 경책을 받게 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어떤 죄라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죄의 고백에 대해서 과거에는 주님께 죄를 고백 할때 죄에 대한 후회하는 마음을 가져 왔을 것이다. 그러나 후회의 감정보다 더 깊고 높은 차원의 회개와 고백이다. 그것은 사랑과 정온함의 감정의 회개인것이다. 억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통회하고 슬퍼할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의 과거의 회개를 살펴보면 이런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 할 것은 우리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깊은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이다. 죄에 대해서 그 어떤 것보다 고귀한 회개는 깊은 사랑의 의식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님과 이러한 관계가 되어질 때에 하나님이 주도하시는 회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죄를 미워하게 만들 것이다.
주님께서 죄를 드러나게 하시면 아주 많은 부분에서 드러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점검하는 일을 하면 많은 부분에서 발견되지 않고 넘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점검하는 일을 주님께 맡겨 드려야 한다. 우리가 노력할 때 보다 훨씬 더 많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16. 성경
앞에서 성경은 우리가 기도에 들어가는 길이라는 사실을 말을 했다. 이제 성경을 또 다른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겠다.
첫 번째로는 주님께 나와서 성경을 읽기 시작하라는 것이다. 내면 세계로 인도함을 받는 것이 느껴지면 곧바로 읽는 것을 중단해라. 이제는 단지 잠잠히 있으라. 한동안 그대로 있으라. 이제 성경을 읽어 나아가. 그러나 조금만 읽어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내면 세계로 좀더 깊이 이끌어 가시는 것이 느껴질 때마다 성경을 읽는 것을 중단하라. 그렇게 하다보면 침묵에 상태에 접하게 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소리를 내어 기도해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지 말라는 것이다.
한가지 더 말을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모든 경우에 있어서 정해진 형식이 나 틀 그리고 방법은 멀리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일이다. 그 대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우리를 완전히 맡겨 드려야한다.
17. 기도 제목
사실 이제 우리는 간구의 기도 요청의 기도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과거에는 이 간구의 기도와 요청의 기도가 훨씬 쉬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주님과 새로운 관계에서 기도하시는 것은 성령이시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의해서 중보 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하나님 뜻대로 기도를 하신다. 성경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 할 수 없고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도 무른다고 나와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우리의 모든 활동을 가져가시고 그 자리를 하나님의 활동으로 채우신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행사를 맡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기도에는 또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래서 그분으로 하여금 기도하게 해야한다. 우리가 가지는 기도의 집착을 버려야 한다. 아무것에 대해서도 그것이 얼마나 좋아 보이더라도 집착하지 말고 성령님께서 기도하시도록 두어야 한다.
18. 산란해짐
우리는 주의가 산란해 짐을 만나게 될 것이다. 초기에 그러한 경우가 많은데 그럼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즉시 내면 세계로 우리의 영혼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가능하면 빨리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시기로 하시는 그 어떤 벌이라도 받아야 한다.
여기에서 조심해야할 사실이 있다. 그것은 마음이 산란해 졌다 하더라도 낙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첫째로 이 낙심의 상태는 영혼에 동요를 일으키고 따라서 우리의 주의를 외부적인 것으로 흩어지게 만든다. 둘째로 이 낙심이 사실은 교만이라는 숨겨진 뿌리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낙심은 우리의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상하며 동요를 일으키고 있는 것일 뿐이다. 자신의 참 모습을 보면 볼수록 자신의 전존재를 좀더 하나님께 포기하여 드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절실히 필요하도록 깨닫게 되면 좀더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기 위해서 힘쓰게 될 것이다.
19. 유혹
주의가 산란해지는 것뿐 아니라 유혹도 하나님을 향해 나가는 동안 직면하는 큰 문제이다. 유혹에 대한 자세는 조심스러워 해야 한다. 유혹의 문제를 직접 싸우려고 하면 그 유혹의 강도만 높아 질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목적은 그리스도와 친밀한 관계이다. 그러므로 죄나 우리의 생각을 산란케 하는 외부적인 요인에 대해서 그 죄로부터 돌이키기만 하면된다. 죄에서 돌이킨 후에는 주님께로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유혹의 문제를 해결하는 또 다른 방법은 유혹이 닥치고 주의가 산란해지는 시기에는 믿음으로 단지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하심 앞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즉시로 힘을 공급 받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다윗이 공급받았던 힘이요 후원이다.
“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쁘고 내 영광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시편 16편 8,9절”
20. 자아 소멸
우리는 깊이 내면적으로 주님께 경배하는 것이 없이는 진정한 기도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은 안다. 진정한 기도의 핵심적인 요소는 경배이다. 그러나 기도에 있어서 경배만큼이나 핵심적이고 필수적인 요소가 하니 더 있다. 그것은 마로 자아 포기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요소이다.
사도 요한은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향 연기라고 말을 하고 있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 드리는 것이다. 이 쏟아 놓은 이러한 행위가 바로 피어나는 향 연기인 것이다. 이러한 향 연기는 곧 우리 자신을 주님 앞에 드리는 것이 된다.
기도는 영혼을 녹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 영혼이 녹아 짐으로 인해서 그 영혼으로부터 감미로운 향기가 일어나게 된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 깊은 곳에서 불타고 있는 사랑이며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불이다.
우리는 영혼이 어떻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가 하는 것을 질문해 보아야 한다. 그 영혼은 자아를 포기함으로 내어 드림으로 하나님께로 올라가게 된다.
그럼 어떻게 우리의 자신을 하나님께로 넘기는가? 우리의 자아를 던져 하나님 안에서 사라지게 하면 된다. 우리의 자아를 없앤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극히 값진 지주, 감추인 보화인 것이다. 이것을 발견한 사람은 누구든지 그것을 사기 위하여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팔아 사게 되는 것이다.
21. 침묵기도
여기서는 침묵기도가 차지하는 역할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침묵기도는 영혼이 소리를 내어 입으로 하는 기도에서보다 더 높고 포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것은 주님께서 친히 영혼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침묵기도에 들어가는 것은 우리의 모든 활동을 중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혼이 우리의 영의 움직임에 의하여 활동하게 됨을 의미한다.
성령께서는 궁극적으로 우리를 하나님과 연합하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 중에 영혼으로 하여금 아무것도 하지 않게 해야한다. 영혼은 궁극적인 목표에 이르게 될 때까지 성령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러므로 침묵기도는 영혼이 모든 활동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침묵기도의 실제적인 면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리의 영혼이 성령의 활동과 별도로 활동하다 보면 기도 속에서 영혼의 노력은 언제나 염려와 애쓰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이 성령님께 반응하여 움직이게 된다면 그러한 활동은 자유롭고 쉬우며 자연스러워진다. 이렇게 되어지면 우리는 주님의 영의 내적으로 이끄시는 힘은 매우 강하게 된다. 우리의 영혼이 평온한 상태에 있을 수록 그 영혼은 영혼의 주심인 하나님을 향하여 더 빨리 나아갈 수 있게된다. 그것은 혼이 영에게 복종하고 영은 성령의 지시를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강하게 이끄시는 것이다. 우리를 단순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영께 의지하는 것이 다른 모든 것보다도 더 필요한 일이다. 이것은 영혼이 원래 창조된 목적인 통일성과 단순성에 이르게 해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될 때에는 하나님의 뜻의 다양한 면들을 수행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침묵의 기도가 이끌어 가는 자리이다.
여기서 하나님과 연합되는 체험을 네 가지 단계로 나누어서 살펴보기로 하자. 초기, 진행, 성취, 완성의 단계이다. 연합의 체험은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싹틀 때 아주 간단하게 시작된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하는 시가는 우리의 영혼이 내적으로 성령으로 비롯해서 강력하게 끌어당기시는 힘 아래 굴복하게 될 때에 그 마음이 생긴다. 이 마음이 일단 생기기 시작하면 영혼은 점점 더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기 시작한다. 결국 하나님과 한영이 된다. 우리는 이곳까지 가야한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든 사역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우리안에 일하시는 그분은 누구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더 이상 종의 영이 아니라 자유의 영 심지어는 하나님의 아들의 자유의 영을 받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주님을 체험하는 여정의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성령님의 역사 하심이 우리의 모든 활동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
22. 변하지 않는 상태
우리가 영적 체험은 외적인 것과 우리의 존재의 깊은 내적인 곳에서 발생하는 경험의 두 가지 범부로 나누고 있다.
외적인 활동이란 밖으로 나타나 보이는 활동을 말을 한다. 그것은 영적 성장이 거의 없으며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것도 거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예외가 있다. 만일 외적인 행위가 우리의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의 결과라면 그때는 외적인 행위들은 영적인 가치를 가지게 되며 정말로 참된 선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외적인 행위들은 원천으로부터 영적 가치를 얼마만큼 받느냐에 따라 그 영적 가치가 정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활동들에 모든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그러한 활동은 바로 성령님의 활동이다. 성령님은 외적인 분이 아니시고 내적인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가 내면 세계로 돌이켜서 영으로 방향을 돌이키면 우리는 외적인 활동이나 산란함으로부터 돌이키게 된다. 내면적 활동은 단지 내면 세계 곧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인 우리의 영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로 향하여 돌이키는 것으로 시작된다. 우리의 모든 의식과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시켜야 한다. 마음을 드린다는 것은 영혼의 모든 힘을 언제나 하나님께로 모아져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져 있게 된다. 우리가 만약에 주님으로부터 떠나 있는 것을 발견하자마자 의도적으로 우리의 의식을 내면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돌이켜야 하겠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의식이 하나님께 집중되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은 성장할 수록 주님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일을 반복하지 않고 점점 더 많이 주님과 함께 거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지속적인 내면 세계에 거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내면 세계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있고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안에 머물러 있게 됨을 의미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영의 밀실에서 주님과 함께 거하고 있는 것이다. 영적 생활의 이러한 단계에서는 어떤 외적인 수단을 통하여 주님께로 돌아가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이렇한 상태에서는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향해 있는 상태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게 되며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안식 안에서 있는 것은 수동적인 것으로 여겨 질수도 있지만 그것은 아니다. 그것은 완전히 능동적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한 다는 행위 속에서 안식하고 있다. 그 행위는 영 안에서의 행위인데 그것은 하나님께로 빠져 들어가는 일인 것이다.
23. 사역자들에게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을 회심 시켰다면 그들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함에 이르게 하기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은 회심하자마자 실제적인 기도와 참되게 내적으로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일을 소개하게 하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수많은 참된 제자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초신자들에게 외부적인 행위 곧 법을 강조해서 짐을 지우고 있다. 그렇게 해서는 안되며 내면 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방향을 돌이키는 방법을 배우고 주님께 그들의 온 마음을 드리게 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초신자들에게 자기 자신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방법을 가르치기만 하면 그들은 생각을 그리스도에게로 고정시킬 수 있게 되고 생각이 흐트러질 때마다 다시 주님께로 돌아갈 수 있게 되어진다. 좀더 나아가서 자신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하겠다는 목적을 갖게 해 주고 그것을 위해서 인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면 엄청난 변화가 되어지게 될 것이다.
24. 그리스도인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곳
그리스도인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곳은 거룩한 연합의 자리이다. 거룩한 연합은 우리의 체험, 묵상, 사랑이나 예배 , 우리의 경건 생활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 행하셔야만 연합이 실현 되어질 수가 있는 것이다.
연합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에서 나오는 기도를 해서는 안 된다. 자아의 노력은 다 잠잠해야 한다. 하나님과 정 반대되는 것은 자아이다. 그래서 자아가 있이는 하나님과 연합은 불가능하다. 연합을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자아가 없어지고 하나님 자신의 활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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