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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돔의 포학

오바댜 박상훈 목사............... 조회 수 1687 추천 수 0 2011.07.30 18:27:22
.........
성경본문 : 옵1:10-14 
설교자 : 박상훈 목사 
참고 : 승동교회 
1:10­-14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을 인하여 수욕을 입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늑탈하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뽑던 날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었느니라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의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라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사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대적에게 붙이지 않을 것이니라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에는 왜 에돔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유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아무런 이유 없이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거기에 상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에돔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마땅한 이유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것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을 인하여 수욕을 입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네가” 라는 것은 에돔입니다. “네 형제 야곱에게”라고 했습니다. 원래 에돔과 이스라엘은 형제 나라였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이삭과 리브가의 쌍둥이 아들이었습니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이라고 했습니다. 본래 형제라는 말과 포학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단어입니까? 어울리지 않는 단어입니까? 형제 뒤에는 무슨 말이 나와야 합니까? 도와주고, 위로해주고, 아껴주고, 사랑해준다는 말이 나와야지요. 포학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에돔이 형제 야곱에게 포학을 행했습니다. 그러니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지요.
“포학을 인하여 수욕을 입고”라고 했습니다. 형제를 도와주지 않고 형제를 짓밟고 못살게 굴고 괴롭게 할 때 영광을 받을 것 같지요? 그렇지 않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어떤 수욕을 당했는지 2절 말씀을 보십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를 열국 중에 미약하게 하였으므로 네가 크게 멸시를 받느니라.”
에돔이 그런 수욕, 곧 부끄러움을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수욕을 입고 어떻게 되리라고 했습니까? “멸절되리라”고 했습니다.
잘 들어보세요. 하나님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 잘못할 때도 역시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그것은 징계라고 합니다. 여기에 상처가 있어서 곪았습니다. 그러면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수술을 합니다. 곪은 곳을 도려냅니다. 그것은 우리 몸을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악인을 징벌하실 때는 완전히 잘라냅니다. 심판을 하십니다. 악인은 영원히 심판을 받습니다. 영원히 멸절되는 것입니다.
11절 이하에는 에돔이 야곱에게 어떤 포학을 행했는지 그 내용이 나옵니다.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늑탈하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뽑던 날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었느니라.”
형제가 괴로움을 당하고 있으면 빨리 달려가서 도와주어야지요. 그런데 에돔은 멀리 서서 수수방관하고 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늑탈하며.”
이방인이 이스라엘에 쳐들어가서 재물을 약탈합니다.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에 성문이 있고 그 성문 안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넓은 광장이 있습니다. 광장에는 시장도 열리고 재판도 열립니다. 이방인들이 공격해 들어와서 예루살렘 성을 점령했습니다. 그리고는 예루살렘 성에서 빼앗은 재물들을 나누기 위해서 그곳 광장에 다 모였습니다. 재물을 나누기 위해서 무엇을 합니까? 제비뽑기를 합니다.
“제비뽑던 날에.”
그런데 그 제비뽑던 날에 에돔도 바로 그들 중 한 사람 같았다고 했습니다.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적이 되었습니다. 적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옛날에 일본이 우리 나라를 지배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이 참 미웠습니다. 그러나 그들보다도 더 못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 사람으로서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매국노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더 악질적이었습니다. 에돔이 그런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방 나라야 적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형제 간인 에돔이 그들 중 한 사람 같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다 죽게 되었습니다. 제사장이 지나갔습니다. 레위인이 지나갔습니다. 도울 수도 있는데 도와주지 않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에돔은 그것보다 더 악질적입니다. 왜요? 단순히 방관만 한 것이 아니라 강도가 되어 더 못살게 괴롭힌 것입니다. 그러니 심판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다음에 12절 이하 14절까지는 에돔에 대한 경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가 다시 한번 읽어볼 때에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말이 몇 번 나오는지 세어보세요.
“내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의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라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사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대적에게 붙이지 않을 것이니라.”
몇 번 나옵니까? 여덟 번 나옵니다. 그런데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에돔은 어떻게 했다는 말입니까?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다는 것입니다. 먼저 에돔의 태도가 좋지 않았다는 것을 12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의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라.”
에돔은 형제가 재앙을 받는 그날에 어떻게 했습니까? 방관했습니다. 도와주어야 하는데 무관심했습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어떻게 했습니까? 유다 자손이 패망하는 날에 기뻐했습니다. 얼굴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무관심한 표정에서 오히려 이제는 기뻐하는 표정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입을 크게 벌렸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노골적으로 점점 도가 더 심해집니다.
바로 그러한 날 때문에 에돔의 처지가 어떻게 됩니까? 8절을 보세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내가 에돔에서 지혜 있는 자를 멸하며 에서의 산에서 지각 있는 자를 멸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날에 에돔이 행한 그대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13절부터는 이제는 단순히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이제는 단순히 마음가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성문에 들어갔습니다. 무엇하러 들어가는 것이겠습니까? 물론 도와주러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실속을 차리기 위해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방관하는 것은 보기만 하는 것이지요. 빼앗을 물건이 있나 없나 하면서 성에 들어가서 찾아 다녔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성 안에 들어가서 탈취할 물건을 부지런히 찾아내서 차지합니다.
14절을 보세요. 이제는 물질에만 손을 대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의 생명까지 앗아가는 일에 앞장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대적에게 붙이지 않을 것이니라.”
길목에 서서 재앙을 피해 도망하는 백성들을 도망하지 못하도록 막아서 죽게 했다는 것입니다. 또 거기다가 더 나쁜 것은 고난의 날에,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를 살려주고 보호해주어야 할 텐데 오히려 대적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심판받아 마땅한 짓을 행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에돔을 영원히 멸절시키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에돔같이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고, 괴롭게 하고, 나를 돕는 것이 아니라 나를 오히려 못살게 하는 사람들이 없잖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가 살아 있기 때문에 나를 대신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원수를 다 갚아주실 것입니다. 원수갚는 것은 누구에게 있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롬 12:17­21,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의 원수에게조차도 사랑을 베풀어줌으로써 선으로 악을 이기고 승리하시는 오늘 하루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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