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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에 오른 캐라반”(Caravan on Pilgrimage)

시편 김영봉 목사............... 조회 수 2582 추천 수 0 2011.07.31 23:20:23
.........
성경본문 : 시133:1-3 
설교자 : 김영봉 목사 
참고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2009.8.16 (김 영봉 목사)

 

“순례길에 오른 캐라반”(Caravan on Pilgrimage)
--시편 133:1-3

1.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음악 장르 중 하나가 ‘흑인 영가’(African American Spirituals)입니다. 가사도 좋지만, 음악이 더 좋습니다. 이 노래들은 우리 민요와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가락과 리듬도 우리 민요와 비슷하고, 어쩐지 애수에 깃든 것 같은 느낌의 단조 음율도 마음을 파고 듭니다. 그러면서도 짓눌리지 않을 희망과 용기의 정서가 느껴집니다.

이 노래들이 만들어진 배경을 생각하면 더 애정이 갑니다. 이 노래들은 흑인들이 이 땅에서 노예 생활을 하면서 만들어 불렀던 노래입니다. 그래서 노예들의 눈물겨운 애환이 그 안에 녹아 있습니다. 그 노래들을 듣거나 부르고 있으면 그 애환이 느껴집니다. 그러면서도 그 노래 안에는 미래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이 노래들은 후에 다른 노예들에 의해 불려졌습니다. 그러면서 이 노래들은 노예들의 고단한 삶에 위로가 되었고 삶의 활력이 되었습니다. 착취와 억압과 차별과 학대에도 불구하고 하루 하루 살아가야 할 이유를 알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 성서 안에 흑인영가와 비슷한 노래들이 있음을 아십니까? 구약성서 시편에 보면,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라는 표제를 가진 열 다섯 편의 시편이 한 데 묶여 있습니다. 120편부터 134편까지입니다. 영어로는 ‘Songs of Ascents’라고 부릅니다. 이 시편들은 그 탄생 배경이나 성격이나 역할에 있어서 흑인영가와 유사한 면이 많습니다.

순례자의 노래들이 만들어진 배경을 잠시 생각해 보십시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가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지은 죄를 용서 받으려면 그에 상응하는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제사는 반드시 성전에서 제사장의 집례로 이루어져야만 유효하다고 믿었습니다. 이 믿음과 관행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에게는 여간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당시로서는 먼 거리 여행이 불편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하여 언제부터인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 사이에서 순례 여행의 전통이 시작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유대인 성인 남자는 일년에 적어도 세 번, 유월절과 오순절과 초막절만큼은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전통이 생겼습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는 세 번의 순례 여행이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별로 여유롭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것만도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일년에 한 번 정도 순례 여행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믿음 좋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루살렘 순례 여행은 가장 가슴 설레이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2.

당시 순례자들은 보통 캐라반 여행을 했습니다. 캐라반 여행이란 한 목적지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 함께 여행을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때로 사막을 지나야 하기도 하고, 들짐승이 우글거리는 산을 지나야 했습니다. 때로는 산적들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했으며, 또 때로는 이방인들의 위협을 만나야 했습니다. 낮에는 뜨거운 햇볕과, 밤에는 뼛속을 파고드는 냉기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렇게 험한 길을, 때로는 며칠 동안 혹은 몇 주일 동안 걸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육신은 지치고, 사기는 떨어집니다. 때로는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 사이의 우정까지 위태로와지기도 합니다.

 

믿음이 깊은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노래를 만들어 불렀습니다. 그들은 그 노래들을 통해, 왜 자신들이 그같은 고된 여행을 해야 하는지, 목적 의식을 잊지 않으려 했습니다. 장차 예루살렘 성전에서 경험하게 될 영광과 은혜를 기대하면서 노래들을 만들어 불렀습니다. 그들이 만들어 부른 노래들은 마치 흑인영가처럼 그들에게 위로가 되었고 방향타가 되어 주었으며 동력이 되어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33편도 그런 상황에서 지어졌고 또한 불렸던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그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가!
형제 자매가 어울려서
함께 사는 모습! (1절)

이 대목에서 ‘형제 자매’는 육신적인 가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성전에서 함께 모여 예배 드리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가리킵니다. 이 노래는 머지않아 성전에 도착하여 다른 지역에서 온 순례객들과 만나 한 분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리고 화목제물을 나누어 먹으며 교제를 나누는 광경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모습을그리면서 순례자는 두 가지의 비유를 사용합니다.

 

첫 번째 비유는 ‘기름’입니다. “머리 위에 부은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을 타고 흘러서 그 옷깃까지 흘러내림 같고”(2절). 여기서 언급된 아론이라는 사람은 이스라엘 역사상 첫 번째 대제사장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어떤 중요한 직책에 임명할 때 기름을 부었습니다. 왕을 임명할 때도 그랬고, 제사장을 임명할 때도 그랬습니다. 이 경우, 머리로부터 흘러 내리는 기름은 위로부터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상징합니다. 그 기름이 수염을 타고 흘러 내려 옷깃까지 적시고 있는 모습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충만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비유는 ‘이슬’입니다. “헤르몬의 이슬이 시온 산에 내림 같구나”(3절). 헤르몬 산은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는데, 해발 9230 피트나 되는 높은 산입니다. 산이 높기 때문에 그곳에는 아주 진한 이슬이 내립니다. 반면,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 시온 산은 ‘산’이 아니라 ‘언덕배기’(hill) 정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곳에는 이슬이 별로 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헤르몬 산의 이슬이 시온 산에 내린다는 것은 시온 산에 사는 식물들에게는 엄청난 축복입니다. 비가 적은 이스라엘 땅에서 아침에 내리는 이슬은 생명수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한 이슬이 내린다는 것도 역시 하나님의 생명의 은총이 부어진다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름’과 ‘이슬’의 두 비유는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 모인 모든 예배자들이 하늘로부터 임하는 은혜와 능력으로 충만해진다는 뜻입니다. 성서에서 ‘기름’과 ‘물’은 하나님의 성령에 대한 상징으로 자주 사용된 것을 생각한다면, 이 두 비유의 의미를 더 분명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의 끝에서 오늘 시편 마지막 구절에서 순례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님께서 그곳에서 복을 약속하셨으니, 그 복은 곧 영생이다”(3절). 믿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예배 드리고 사귐과 섬김을 나누는 곳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겁니다. 무슨 복을 주십니까? 오늘 본문은 그 복을 ‘영생’이라고 정의합니다.

3.

‘영생’이란 과연 무엇입니까? 저는 몇 달 전 “영생은 장수가 아니다”라는 설교를 통해서 영생에 대해 말씀 드린 바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영생은 죽고 나서 시작된다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경험하는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참된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보통, 영생을 ‘영원히 지속된다’ 의미로만 이해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얻는 영생은 영원히 지속되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질적으로 달라진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우리는 보통, 영생을 죽고 나서 천국에서나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얻는 영생은 이 땅에서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영생에 대해 정의하시기를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이라고 하셨습니다.

 

영생을 얻게 되면 우리에게는 많은 변화가 생깁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게 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해 주는 실마리를 하나님 안에서 찾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내가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내가 결국 어떻게 될지도 알게 됩니다. 영생을 얻게 되면, 이 세상을 제대로 보게 됩니다. 없는 것처럼 생각했던 하나님 나라가 엄연한 현실임을 깨닫습니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를 알게 됩니다. 무엇이 헛된 것이고, 무엇이 영원한지를 알게 됩니다. 그렇게 참되고 영원한 것을 찾아 살기에 그의 인생이 허비되지 않습니다. 분명한 방향이 잡히고, 시류나 유행에 따라 표류하지 않습니다.

 

영생을 얻게 되면 매일 뿌듯한 보람을 안고 잠자리에 들고, 매일 활기찬 생명력으로 일과를 시작합니다. “이게 사는 것이구나!” 싶은 순간이 자주 찾아옵니다. 감사가 넘칩니다.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자주 깨닫기 때문이고, 자신의 삶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 그분의 목적을 위해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면서 답답하고 어둡고 힘든 고비를 만나도 그의 마음은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는 줄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매일 영생을 맛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살면서 영생을 맛보았으므로 더 좋은 것이 올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죽음 이후에는 이 땅에서 맛보았던 불완전한 영생의 맛이 완전해질 것을 압니다. 그것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숨이 주어져 있는 한 값지게 살려고 힘쓰지만, 거부할 수 없는 ‘때’가 오면 선선히 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 믿음은 교리에서 온 믿음이 아니라 매일의 삶을 통해 체득한 것이므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죽음에 당도하여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의 시 한 구절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떡일 것입니다. “나와 함께 늙읍시다. 가장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으므로!”(Grow old along with me! The best is yet to be).

4.

오늘 읽은 순례자의 노래가 말하듯, 하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이 그분 앞에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며 혈연과 지연과 학벌과 계층과 인종의 차별을 넘어 한 가족이 되어 서로 사귀고 섬길 때, 그곳에 복을 내려 주십니다. 진실로 예배하며 진실하게 사귀고 섬기는 사람들에게 영생을 알게 하시고 영생을 누리게 하십니다. 마치, 대제사장 아론의 머리에서 수염으로, 수염에서 옷깃으로 타고 흘러 내리는 기름처럼, 마치, 메마른 시온 산에 내리는 헤르몬 산의 진한 이슬처럼,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한 마음이 되어 예배 드리며 사귀고 섬기는 곳에 하나님은 참된 생명의 은혜를 풍성하게 내려 주십니다.

 

순례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가는 고단한 여정 속에서 이 비전을 마음에 품었습니다. 시편 133편을 노래하면서 장차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믿음의 식구들이 함께 음식을 나누며 사귀고 섬길 것을 꿈 꾸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모임에 내려 주실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며 꿈 꾸었습니다. 여독에 지치고, 여행길의 위험에 마음이 위축될 때마다, 그들은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들의 마음에는 다시금 기쁨이 들어찼고, 약해졌던 다리에는 다시 힘이 들어찼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성전에 도착하여 함께 예배 드릴 것을 간절히 열망했습니다.

 

이렇게, 순례 여행의 비전을 기억할 때마다 순례자들은 새 힘을 얻었을 뿐 아니라, 앞으로 성전에서 경험하게 될 그 기쁨을 미리 맛보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전에 당도하려면 아직도 먼 길을 걸어야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종종 이미 성전에 당도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럴 때면, 그들은 여행 중에서도 서로 보듬어 안고 서로 위하며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텐트를 치고 저녁 식사를 나눌 때마다 그들은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제물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처럼 마음에 감사와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렇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가슴 설레는 비전을 잠시 망각하고 순례 여행에서 겪는 고초에 마음이 붙들리고 길에서 만나는 위험들로 인해 마음이 위축되는 때도 없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는지 의문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한 식구 같았던 동행들이 미워지고 싫어질 때도 없지 않습니다. 차라리 혼자 따로 떨어져 갈까 싶을 때도 있습니다. 차라리 돌아갈까 싶을 때도 있습니다. 과거에 자신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성전에서의 비전이 모두 거짓말만 같은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노래가 필요했습니다. 시편에 수록된 열 다섯 편의 순례의 노래들은 이같이 비전이 흐려지고 마음이 짓눌리고 육신이 지칠 때마다 불러야 하는 노래들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 노래들은 비전을 회복시켜 주고 마음을 새롭게 해 주며 육신에 힘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마치, 흑인 영가들이 흑인 노예들로 하여금 힘들고 고단한 삶을 지속할 이유와 능력을 제공해 주었듯, 순례자의 노래들은 순례자들의 지친 영혼을 위로하고 쳐진 발걸음을 잡아 주었습니다.

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믿는 사람들이 순례자들임을 아십니까? 우리가 속한 믿음의 공동체 즉 교회는 순례자들의 캐라반임을 아십니까? 안디옥 혹은 로마의 한 구석에 살던 한 유대인이 하나님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나 크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너무나 보고 싶어서 어느 날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순례를 떠나듯, 우리 각자는 하나님을 찾아 그리고 하나님을 믿고 사는 성도들을 찾아 우리가 살고 있던 곳을 박차고 순례를 떠난 사람들입니다. 물리적으로는 한 곳에 머물러 살고 있다 해도,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영적인 의미에서 순례자들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는 이렇거나 저렇거나 순례자들입니다.

순례를 떠나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떤 줄 아십니까? 시편 16편의 한 구절이 순례를 떠나는 사람의 마음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잘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를 지켜 주십시오.
내가 주님께로 피합니다.
나더러 주님께 대해 말하라면
‘하나님은 나의 주님,
주님을 떠나서는
내게 행복이 없다’ 하겠습니다.
땅에 사는 성도들에 관해 말하라면
‘성도들은 존귀한 사람들이요,
나의 기쁨이다’ 하겠습니다. (1-3절

 

우리 자신에게 한 번 물어 보십시다. 우리에게 이 고백이 있습니까? 우리는 진실로 “주님을 떠나서는 내게 행복이 없다”고 믿습니까? 그 믿음 때문에 이 순례의 길에 올랐습니까? 아마도 이 믿음이 없거나 혹은 부실한 분들은 이 순례의 길을 끝까지 완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웬만한 어려움이나 위협 혹은 유혹만 있어도 대오를 이탈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게 되면, 그때까지 고생한 것은 모두 허사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이 순례의 길에서 우리는 자주 멈추어 서서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진실로 그렇게 믿고 있는가? 나는 진실로 하나님을 떠나서는 진정한 행복이 없다고 믿는가?

 

두 번째 고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도들은 존귀한 사람들이요, 나의 기쁨이다.” 여러분도 그렇게 고백하고 사십니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진실하다면, 그리고 우리가 걷는 이 순례 여행이 얼마나 귀중한 여행인지 제대로 안다면, 우리와 함께 순례의 길을 걷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새롭게 보일 것입니다. 우리도 교우들을 생각하면서 “당신들은 존귀한 사람들이요, 나의 기쁨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진정한 교회가 이루어집니다. 이같은 고백이 우리에게 살아 있을 때, 나는 진실한 순례자가 됩니다.

 

불행하게도, 이 순례의 길을 홀로 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로 캐러반이 오합지졸들이 모인 한심한 집단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시끄럽고 성가시고 쓸 데 없는 일로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 가는 것이 속 편하고 나을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교회와 상관하지 않고 홀로 믿고 살아가기를 선택합니다. 그 심정은 이해합니다만, 그것은 참으로 불행한 선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으실 때 홀로 믿고 살아가도록 지으시지 않았습니다. 또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홀로 믿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 정도로 만만한 곳이 아닙니다. 그 옛날, 캐러반을 떠나 홀로 순례의 길을 떠나는 것이 위험 천만한 일이었듯, 오늘날 홀로 믿고 살아가려는 것도 마찬가지로 위험 천만한 일입니다.

6.

순례 길에 나선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목표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순례길의 최종 목적지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곳에 이르러 천군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성도들이 서로 사귐을 나누며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어떨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나라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날, 우리 모두는 감사와 감격의 찬양으로 응답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순례의 길을 걸으면서 그 영광스러운 미래를 꿈 꿉니다.

 

둘째, 그 영원한 나라를 향해 나아가면서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속한 이 캐러반, 즉 우리의 교회를 아름다운 공동체로 가꾸는 것이 또 하나의 목표입니다.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함께 모여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예배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를 가꾸는 일입니다. 그럴 때, 오늘 시편 133편에서 기대한 것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그같은 교회에 은혜와 능력을 부어 주시되, 아론의 머리에서 수염으로, 수염에서 옷깃으로 홀러 넘치는 기름과 같이, 그리고 헤르몬 산의 진한 이슬같이 넘치게 부어 주십니다. 그리하여 그 교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축복, 즉 영생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기름과 이슬의 축복을 받아, 교회가 거룩하고 성결하고 은혜가 넘치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고, 성도 각자가 진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면, 그 때 우리는 이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 각자는 이 세상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 순례자로서 차별성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교회는 비로소 이웃들을 향하여 손을 내밀고 이 여정에 참여하라고 초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을 이 여정에 불러 들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위해 일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를 위한 헌신이 고귀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를 아름답고 즐거운 캐러반으로 만드는 일에 헌신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그 모든 헌신이 얼마나 귀한 열매를 맺어 왔는지, 믿음의 눈으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시, 그동안 충분히 열심을 내지 못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아름다운 교회를 일구는 일에 참여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교회를 위해, 교회의 지도자들을 위해, 교회에서 행하고 있는 일들을 위해 매일 기도해 주시는 것이 가장 큰 도움입니다. 마음을 담아 헌금하시는 것도 커다란 도움입니다. 여러분들이 드리는 물질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만들어 내는 데 사용될 것입니다. 시간을 내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싶으면 주저하지 마시고 나서 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 교회는 사랑이 충만하고 흥겹고 신나는 캐라반이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기쁘고 즐겁게 순례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기름과 이슬의 축복을 풍성하게 부어 주실 것입니다. 그럴 때,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가 걷고 있는 이 순례길에 오르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말만으로는 이 길에 오르도록 초청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이 길을 걷고 있는 우리의 표정과 몸짓이야말로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 사람들인지를 말해 줄 것입니다.

7.

우리 교회가 2년 전에 매나싸스 캠퍼스를 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와싱톤한인교회라는 거대한 캐러반을 일부 떼어내어 좀 더 친밀하고 기동성이 강한 캐러반으로 만들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우리의 순례 여행을 더 신명나게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을 우리의 캐러반 순례길에 초청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이것이 실제로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이제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9월 첫 주일부터 센터빌 캠퍼스로 옮겨 그 아름답고 의미로운 일을 지속할 것입니다.

 

이제 캠퍼스 사역 2주년을 맞아, 그리고 센터빌로의 이주를 맞아, 이 사역에 동참하실 분들을 찾습니다. 예배 시간이 오후 2시라는 불편을 감수하고도 남을 가치가 이 사역에 있습니다. 좀 더 친밀하며 기동성 있는 캐러반으로 옮겨, 목회의 객체에서 주체로 변신하여 헌신하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거룩한 여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참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호소하고 권면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이것이 교회를 교회 되게 하고, 교회의 사명을 이루는 일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앞으로 8월 말까지 3주일 동안 기도하시는 가운데 성령의 음성을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저의 소망은 단지 하나입니다. 와싱톤한인교회가 아름답고 복된 순례자들의 캐러반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기름이 아론의 머리로부터 수염으로, 수염으로부터 옷깃으로 흘러 넘치는 것처럼, 그리고 헤르몬 산의 이슬이 시온 산에 내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성령의 은총과 능력이 우리 교회 위에 그리고 성도 각자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로 모일 때마다 성령의 은총이 충만하고, 우리 각자가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영생의 은총을 넉넉히 받아 누리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이 순례 여행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날, 전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그런데 교회의 일원이 되지 않고는 건강한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캐러반에 참여하지 않고는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진실로 잃어버린 영혼들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그 열정의 일부를, 성결하고 사랑이 넘치는 교회를 일구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맥클린에서 그리고 센터빌에서 진정한 교회를 일구기 위해 헌신하며 수고하는 이들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그 일을 위해 교우 여러분의 기도를 호소합니다. 그 일을 위해 교우 여러분의 헌신을 호소합니다. 여러분의 결단을 호소합니다. 저 멀리, 시온성을 바라 보면서, 오늘 서로 손잡고 찬송하며 함께 순례의 길을 걸어 나가기를 결심하며, 위로부터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기를 바랍니다. 분명, 주님께서 약속대로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고 찬양하는 그곳에 임재하셔서 참된 복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이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올립니다. 이 거룩한 여정에 참여한 모든 성도들께 주님의 은혜가 더욱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주님을 떠나서는 행복이 없음을 믿습니다.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떠나서는
이 순례의 길에서 성공할 수 없음을 믿습니다.
하오니
저희 각자를 지켜 주시며
저희 교회를 돌보아 주소서.
모일 때마다
기름같은 은혜와 이슬같은 은총이
저희 위에 넘치게 하소서.
그 능력으로
이 세상에 들어가
순례자로 살며,
이 순례의 길로
우리의 이웃을 초청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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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10 마태복음 매일이 주일이다”(Everyday is the Lord’s Day) [1] 마28:16-20  김영봉 목사  2011-07-31 2971
5609 마가복음 다 거룩하다”(All Things Are Holy) 막7:14-23  김영봉 목사  2011-07-31 2320
5608 베드로전 모두 다 제사장이다”(We Are All Priests) 벧전2:1-5  김영봉 목사  2011-07-31 2460
5607 히브리서 믿음의 담력”(Assurance of Faith) 히4:14-16  김영봉 목사  2011-07-31 2624
5606 로마서 제단에 올려진 삶”(Life Laid on the Altar) 롬12:1-2  김영봉 목사  2011-07-31 2921
5605 로마서 죄 속에 벌이 있다”(Sins Are Sugar-coated) 롬6:15-18  김영봉 목사  2011-07-31 1941
5604 히브리서 제사가 아니다”(It Is Not a Sacrifice) 히10:19-23  김영봉 목사  2011-07-31 2061
5603 요한복음 예수님의 영적 음모”(Spiritual Conspiracy of Jesus) 요2:13-22  김영봉 목사  2011-07-31 2415
5602 요한복음 잔치는 계속된다." (Feast Will Go On) 요2:1-11  김영봉 목사  2011-07-31 2468
5601 누가복음 침체를 끝내는 법”(How to End the Depression) 눅3:21-22  김영봉 목사  2011-07-31 2364
5600 마태복음 찾고 있습니까?”(Are You Seeking?) 마2:1-12  김영봉 목사  2011-07-31 2443
5599 요한복음 나같은 하나님, 나같은 인간”(God Like Me, Human Like Me) 요1:1-5  김영봉 목사  2011-07-31 2499
5598 누가복음 루저들에게 임하는 성탄의 은혜"(The Christmas Is For the Losers) 눅2:1-1  김영봉 목사  2011-07-31 2961
5597 누가복음 고민을 멈추면 썩는다”(Holy Agony) 눅3:7-18  김영봉 목사  2011-07-31 2382
5596 말라기 금을 연단하는 불같이”(Like a Refiner’s Fire) 말3:1-5  김영봉 목사  2011-07-31 2658
5595 누가복음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To Stand Before the Son of Man) 눅21:29-36  김영봉 목사  2011-07-31 2515
5594 히브리서 새로운 살 길을 걷다”(We Are On the New and Living Way) 히10:19-25  김영봉 목사  2011-07-31 2439
5593 마가복음 진리는 때로 부담스럽다”(Truth Is Often Burdensome) 막12:38-44  김영봉 목사  2011-07-31 2637
5592 시편 예배가 나를 만든다”(Worship Forms Me) 시24:1-10  김영봉 목사  2011-07-31 3672
5591 시편 따뜻한 관심(Radical Hospitality) 시34:1-8  김영봉 목사  2011-07-31 2436
5590 마가복음 우리에게 부족한 것”(One Thing We Lack) 막10:17-22  김영봉 목사  2011-07-31 2552
5589 마가복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By All Means) 막9:42-48  김영봉 목사  2011-07-31 2889
5588 시편 시냇가에 심긴 나무”(A Tree Planted By the Streams of Water) 시1:1-6  김영봉 목사  2011-07-31 3241
5587 마가복음 우리의 거울은 너무 작다”(Our Mirrors Are Too Small) 막8:27-30  김영봉 목사  2011-07-31 2308
5586 야고보서 두 개의 영적 전립선”(Two Spiritual Prostates) 약2:14-17  김영봉 목사  2011-07-31 2494
5585 요한복음 영생에 이르는 열매”(The Crop for Eternal Life) 요4:3-9  김영봉 목사  2011-07-31 2745
» 시편 순례길에 오른 캐라반”(Caravan on Pilgrimage) 시133:1-3  김영봉 목사  2011-07-31 2582
5583 요한계시 3 가지 새로움 계21:1  강종수 목사  2011-07-31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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