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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관심(Radical Hospitality)

시편 김영봉 목사............... 조회 수 2436 추천 수 0 2011.07.31 23:20:23
.........
성경본문 : 시34:1-8 
설교자 : 김영봉 목사 
참고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2009.10.25 (김 영봉 목사)

<열매맺는 교회의 다섯 가지 습관>
두 번째 습관: 따뜻한 관심(Radical Hospitality)
“내 마음의 화로”(A Heater in My Heart)
--시편 Psalms 34:1-8

1.

연합감리교회 미주리 연회를 치리하고 있는 로버트 슈네즈(Robert Schnase) 감독님이 2007년에 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이후로 이 책은 교회를 교회되게 하고 갱신과 부흥을 일구는 데 아주 유익한 책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우리 말로는 <열매맺는 교회의 다섯 가지 습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교회가 영혼을 구하고 키우는 일에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섯 가지의 요소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 다섯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Radical Hospitality: 직역하자면 ‘급진적인 환대’라고 할 수 있지만, 저는 이것을 ‘따뜻한 관심’이라고 부르려 합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둘째, Passionate Worship: ‘열정적인 예배’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저는 이것을 ‘영감있는 예배’라고 부르려 합니다.
셋째, Intentional Faith Development: 저는 이것을 ‘영적 성장을 위한 지속적 노력’이라고 부릅니다.
넷째, Risk-taking Mission and Service: ‘위험을 감수하는 전도와 선교’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섯째, Extravagant Generosity: 직역하면 ‘낭비될 정도의 나눔’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저는 그것을 ‘후한 인심’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저는 지난 주일부터 다섯 주간 동안 이 요소들을 하나씩 살펴 보면서, 진실로 그러한지, 왜 그러한지, 그리고 우리 교회는 어떤 상태에 있으며, 우리 각자는 어떤 상태에 있는지 반성해 볼 계획을 세웠습니다. 지난 주일은 평신도 주일로서 장로님들께서extravagant generosity에 대해, 즉 ‘후한 인심’에 대해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저는 지난 주일 장로님 네 분의 설교를 모두 들을 수 있었는데, 그분들의 믿음과 정성과 헌신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런 분들과 함께 교회를 섬기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더구나, 지난 주일 설교하신 네 분은 우리 교회에서 특별히 예외적인 인물들이 아니라는 점이 더 놀라운 일입니다. 드러나지 않더라도, 묵묵히, 청지기로서의 소명을 따라 헌신하는 분들이 적지 않으십니다. 그같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위해 헌신된 교우들이 점점 더 많아지기를 소원합니다. 이번 다섯 번의 설교를 통해 우리 모두의 헌신의 도가 한층 높아지기를 바랍니다.

2.

오늘은 두 번째 주제로서 radical hospitality를 다루려 합니다. 직역하면 ‘급진적인 환대’인데, 저는 이것을 ‘따뜻한 관심’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먼저, ‘급진적인 환대’라고 직역하지 않고 ‘따뜻한 관심’이라고 번역한 이유를 말씀 드리려 합니다.

슈네즈 감독은 쇠퇴 일로에 있는 미국 주류 교회(mainline church)의 상황을 생각하고 이 책을 썼습니다. ‘주류 교회’라 하면, 미국 개척 당시에 개척자들과 함께 이 땅에 들어왔던 교파들을 가리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공회, 장로교회, 감리교회, 루터교회, 그리고 개혁교회 같은 교파들입니다. 한 때 미국 역사를 이끌었던 미국 주류 교회들의 분위기는 대부분 냉랭합니다. 예배 분위기도 그렇지만,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그렇습니다.

몇 년 전, 뉴저지에서 살 때, 교회 파송을 기다리며 몇 개월 동안 그 지역에 있는 여러 교회들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미국 주류 교단 교회들이 얼마나 냉랭한지, 특히 방문자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한지 경험했습니다. 한 번은 그 지역에서 가장 잘 하고 있다는 장로교회를 방문했었습니다. 제가 갔던 날이 부활 주일이어서 예배당에는 대략 7백명쯤 모여 있었습니다. 거의가 백인이었는데, 그 때 저는 그곳에서 담임목사 한 사람과만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머뭇 거리며 두리번 거려 보았지만, 아무도 제게 눈길을 보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슈네즈 감독은 이러한 교회들을 향하여 ‘급진적인 환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교인들이 서로에 대해, 그리고 방문한 사람들에 대해 이상하게 보일 정도로 친절을 배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경험으로 보더라도, 미국 주류 교회 교인들은 급진적인 환대를 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인 교회들은 어떻습니까? 특별히 한인 이민 교회들의 환대는 이미 충분히 급진적입니다. 특별히, 새로 온 교인에 대해 교회가 취하는 행동을 보면, 급진적이다 못해 과격합니다. 이것도 역시 저 자신이 겪은 바입니다. 대개의 한인 교회들을 가 보면, 안내자들이 예배당 문간에 서 있다가 처음 본 사람 같다 싶으면 마치 굶주린 사자처럼 달려듭니다. 새 교우를 담당하는 사람은 마치 첩보원 훈련을 받은 것처럼 밀착 경호합니다. 친절을 사양해도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아주 이상한 미소를 흘려가며…… 방문하여 아무런 기록을 남기지 않았는데도 며칠 후에 교회에서 전화가 옵니다. 정말, 급진적이고 과격합니다.

급진적인 환대는 급진적인 경계심을 만들어 냅니다. 이민자들은 한국의 경우보다 교회를 돌아다니며 shopping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매 주일 방문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미 마음에 결정을 하고 오자 마자 등록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분들은 대개 환하게 웃으며 안내자들에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예배를 드리며 우리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알아보려는 분들이 더 많이 계십니다. 그분들은 이미 여러 교회에서 경험한 과격한 환대로 인해 극도로 긴장한 표정으로 들어오십니다. 안내자들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아주 쌀쌀하게 행동합니다. 어떤 분들은 안내하는 분들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십니다. 예배가 끝나면 축도가 끝나기도 전에 나갑니다. 그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예배를 드리고 나가는 분이 어떻게 저렇게 무례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분들만을 탓할 것은 아닙니다. 한인 교회의 과격한 환대가 그분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급진적인 환대’가 아니라 ‘따뜻한 관심’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우리가 설 자리는 미국 주류 교회의 ‘냉랭함’과 한인 이민 교회의 ‘뜨거움’ 사이, 그 중간에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새로 방문한 분들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지나쳐도 좋지 않고 너무 무관심해도 좋지 않습니다. 그분들의 자유를 존중해 주면서 필요한 일을 도와 드려야 할 것입니다. 교우들 사이의 관계도 그렇습니다. 냉랭한 것도 문제이지만, 뜨거운 것도 문제입니다. 교우들 사이에 뜨거운 관계가 오래 지속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뜨거울수록 더 심하게 깨집니다. 남겨진 상처가 깊습니다. 따뜻한 관계가 좋습니다. 그래야 오래 지속되고 서로에게 유익을 끼칩니다.

3.

현대인들의 가장 큰 질병은 외로움입니다. ‘외롭다!’는 말을 다른 말로 하면 ‘춥다!’가 됩니다. 인터넷을 의미하는 www, world wide web, 즉 ‘세상을 모두 연결하는 거대한 거미줄’을 통해 우리는 골방에서 이 세상 누구와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외로움을 해소하기에 용이한 문명의 이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쩝니까! 우리가 느끼는 외로움은 더 깊어지고만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아직도 교회 근처에서 배회하고, 혹시나 싶어 발길을 들여놓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추워서 그렇습니다. 몸을 녹일만한 공동체를 찾고 싶어서 그럽니다.

우리 교회 안에 그같은 따뜻한 온기가 있어야 합니다. 교우들 간에 서로를 따뜻하고 진실한 관심을 가지고 대해야 합니다. 새로 오시는 교우들에게 따뜻하게 대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새교우들을 영접하고 도와주는 사역팀을 ‘바나바 사역’이라고 부릅니다. 감사하게도, 새로 오시는 교우들께서 종종 ‘바나바 팀이 참 따뜻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정중하게 대하고, 무관심하지도 않고 강요하지도 않는,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그분들의 편의를 위해 섬기는 모습이 참 좋다고 말씀들 하십니다. 말이 나왔으니, 바나바 사역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속회는 화롯불이 피어있는 사랑방 같은 곳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불을 중심에 모시고 정담을 주고 받음으로 몸과 마음을 녹일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감리교회의 창시자 존 웨슬리가 어느 날 그의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내 마음이 이상하게 따뜻해졌다.” 성령의 감동을 받을 때, 말씀의 영감을 경험할 때,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질 때, 우리의 마음은 따뜻하게 되고, 그 마음을 나눌 때, 그곳에 진정한 따뜻함이 깃듭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따뜻함이 없다면, 인간적인 따뜻함만 가지고는 속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우정이나 세속적인 오락으로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힘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 보았자, 외로움은 더 깊어질 뿐입니다. 그 속회는 결국 와해되고 말 것입니다. 혹시 지속된다 해도 몸과 마음을 녹이는 속회는 되지 못할 것입니다. 진실로 구해야 할 것은 성령의 임재와 말씀의 능력과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발생하는 ‘거룩한 온기’입니다.

교회 안에서 사역을 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역을 하십니까? 주차 봉사원으로 혹은 안내자로 혹은 방송실 봉사자로 섬기십니까? 성가대로 혹은 찬양단으로 섬기십니까? 그 사역에 임하기 전, 먼저 여러분의 마음에 성령께서 주시는 따뜻함이 있는지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그것 없이 일하는 것은 무익합니다. 아니, 때로 그같은 사역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사역하시는 분들은 그것이 크거나 작거나 간에 항상 따뜻함을 유지할 수 있도록 성령께 기도해야 합니다.

따뜻한 사람들이 함께 모일 때, 그 교회가 따뜻해집니다. 교회가 따뜻해지면 추위에 진저리가 난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거룩한 따뜻함이 있으면, 급진적인 환대로 인해 잔뜩 긴장하고 경계심을 한껏 높인 사람도 저절로 무장해제 하게 됩니다. 추운 겨울밤에 화롯불을 쪼여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처음에는 외투를 입고 손을 비비며 이불 속에 발을 들이밉니다. 그러다가 얼마 지나면 외투를 벗습니다. 한 참 이야기를 하다가 털옷도 벗어 놓습니다. 단추도 풀어 놓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양말까지 벗어 놓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제 남남이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로운 교회’입니다.

4.

잠시, 눈을 돌려 우리 자신을 한 번 살펴 보십시다. 여러분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따뜻함이 있습니까? 그분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에 젖어 사는 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거룩한 온기가 있습니까? 성령은 불이라고 했는데, 성령의 불로 인해 여러분의 마음이 데워져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마음에 살아 움직임으로 인해 거룩한 온기가 채워져 있습니까?

아, 그래서, 여러분의 얼굴에는 늘 미소가 퍼져 있는가 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항상 주변을 돌아보며 도울 사람은 없는지 찾고 있는가 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는 마치 ‘누구든 오십시오. 내가 친구가 되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처럼, 늘 열려 있는가 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함께 있고 싶고 함께 밥이라도 먹고 싶어지는가 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보고 기꺼이 지갑을 여는가 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서는 경계심을 느낄 수 없고, 어디서나 편안해 보이는가 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렇게 행복해 보이는가 봅니다.

알고 보면, 그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면, 우리의 마음은 걸어 닫고는 답답해서 견디지 못하는 법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살아 움직이며 성령의 불이 타고 있다면, 우리의 마음은 다른 사람을 향해 열리게 되어 있고, 우리의 표정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번지게 되어 있으며, 잔뜩 긴장된 몸이 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마음 속에서는 거룩한 온기가 끓고 있는데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면, 그 온기는 결국 식어버릴 것입니다. 내 마음의 추위도 녹이고 다른 사람의 추위까지 녹일 수 있는 ‘마음 속의 화로’를 스스로 꺼 버리는 것입니다.

지난 10월 2일부터 4일까지 저는 29명의 남성 교우들과 함께 영성 수양회를 다녀 왔습니다. 참여한 29명의 교우들 중에는 이미 영적으로 충분히 깊은 분도 계셨지만, 더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별로 체험하지 못한 분들이었습니다. 몸은 교회에 나오고 있었지만, 마음은 닫혀져 있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언젠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차일 피일 미루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아주 어렵게 용단을 내려 수양회에 참여한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분들이 다 각기 다른 종류의 은혜를 입고 돌아왔습니다만, 이미 수양관에서 함께 지내던 2박 3일 동안에만도 하나님의 은혜가 그분들의 마음 속에 젖어들면서 표정에, 말에, 그리고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뚜렷이 목격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 가장 먼저 일어나는 변화는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얼어있던 마음을 녹여 주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나면, 표정이 달라집니다. 경계심과 긴장감이 사라지고 편안해집니다. 잔잔한 미소가 번집니다. 수양회 기간 동안에 아주 뚜렷하게 표정이 변화한 분이 계셨는데, 마지막 날 아침에 예배 드릴 때의 그분의 표정이 얼마나 온화하고 평화롭던지, ‘아, 천사의 표정이라는 것이 저런 것이로구나!’ 싶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을 지배하면, 거룩한 온기가 일어나고 표정이 풀리며 마음이 열립니다.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다가가고 싶고, 누구든지 받아줄 마음이 생깁니다. 그렇게 하여 자신의 마음 안에 주어진 거룩한 온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줍니다.

5.

오늘 우리는 성서 일과에 따라 시편 34편을 읽었습니다. 이 시편에서 다윗은 자신이 경험한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아비멜렉이라는 적군의 임금에게 사로잡혀 죽을 뻔했습니다. 그 때 다윗은 죽음의 위기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미친 사람 흉내를 냈습니다. 그처럼 절박한 상황에서 살아나온 다윗은 나중에 깨닫습니다. 그 위험과 고난 중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보호해 주셨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 체험을 바탕으로 이 시편을 썼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생각하면서 첫 절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내가 주님을 늘 찬양할 것이니, 주님을 찬양하는 노랫소리, 내 입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나 오직 주님만을 자랑할 것이다.”(1-2절). 이 말을 할 때, 다윗의 ‘마음의 화로’는 약간 달아 올라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하고 나면 그 마음이 처음에는 달아 오르는 법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마음이 그렇게 달아있는 이유를 4절에서 이렇게 밝힙니다. “내가 주님을 간절히 찾았더니, 주님께서 나에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져내셨다.” 아마도, 이 당시 다윗의 표정은 내적인 열기로 인해 이글이글 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거룩한 온기가 그에게서 발산되었을 것입니다. 미소가 얼굴 가득 피어났을 것입니다.

다윗은 보는 사람마다 붙들고 권고합니다. “겸손한 사람들아, 듣고서 기뻐하여라. 나와 함께 주님을 높이자. 모두 함께 그 이름을 기리자”(2-3절). 그런데 그 권고에 응하는 사람들은 많이 않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냉랭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을 찬양할 이유도 없었고, 노래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자랑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그들의 마음은 스산했고 황량했습니다. 마음이 그랬기에 다른 사람에게 눈길을 주고 마음을 줄 여유가 없었습니다. 마음을 꼭 걸어 잠그고, 표정을 굳게 하고, 그저 자기 앞 가림에 몰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모인 곳에도 찬바람이 불었습니다.

혹시나,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이같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이 시간에 조차도 혹시 우리의 마음은 얼어붙은 땅과 같은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고, 아무도 상관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닌지요? 하나님께 대해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이상해 보이고, 하나님을 찬양하자는 사람들이 귀찮아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이유 없이 웃으며 내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보이고 바보같아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다윗이 그들에게 말합니다. 그들을 통해 마음이 차가운 우리에게도 권고합니다. 5절에서는 “주님을 우러러보아라. 네 얼굴에 기쁨이 넘치고 너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고, 8절에서는 “너희는 주님의 신실하심을 깨달아라”고 권고합니다. <개역성경>에는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고 그분과 사귐을 나누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왜 다윗이 그렇게 달뜬 모습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지 알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기, <개역성경>의 8절의 표현이 참 좋아 보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하나님에 대해 배우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그분의 사랑을 맛보아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랑에 감염되고 나면 우리의 마음에 거룩한 온기가 들어찹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아 알게 되면, 우리 마음에 ‘거룩한 화로’ 하나를 품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무엇으로도 풀 수 없던 마음의 빗장을, 하나님의 사랑은 열어 놓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녹일 수 없던 마음의 동토(frozen soil)를, 하나님의 사랑은 녹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따뜻함은 표정을 통해 그리고 몸짓을 통해 발산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추위에 떨던 사람들이 화롯가에 모여들듯, 외로움으로 인해 마음이 시린 사람들이 우리 곁으로 모여들 것입니다.

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마음에 이 거룩한 온기가 있습니까? 굳은 표정을 풀어지게 하고 온화한 미소가 저절로 번지도록 만드는 따뜻함이 마음에 있습니까? 누구에게든 열려있고 누구에게든 다가갈 수 있는 개방성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을 편하게 느끼고 가까이 오고 싶어합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마음에 거룩한 화로를 품고 사는 분들입니다. 사람들은 여러분으로 인해 얼어붙은 손을 녹이고 추운 마음을 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도 마음의 화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을 우러러 보고 주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기 위해 힘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따뜻함’은 성숙한 교회의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부산함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된 열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거룩한 화로’로부터 번지는 따뜻함을 말합니다. 교회 안에서 섬기는 분들이 늘 마음의 화로에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힘쓰고, 내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따뜻함으로 섬길 때, 우리 교회는 거룩한 온기가 느껴지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같은 따뜻한 마음으로 섬길 때 내가 섬기는 속회가 따뜻한 공동체로 성숙해 나갈 것입니다. 이렇게 거룩한 온기로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섬길 때, 마음이 추운 사람들, 외로움에 지친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찾아와 추위를 녹이고 하나님을 발견하는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더욱 영적 생활에 시간과 마음을 쏟아야 하겠습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 안에서 꺼지지 않는 화로를 얻고 우리의 이웃들의 추위까지 녹여줄 수 있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겠습니까? 그런 ‘나’들이 모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귀과 섬길 때, 우리 교회는 따뜻한 사랑의 공동체가 되고, 끊임없이 사람들이 찾아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도구로 쓰임받을 것입니다. 이같은 변화와 축복이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교회에게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교회에게 임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불로 임하시는 주님,
저희에게 마음의 화롯불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님
저희의 부주의로 인해
불씨가 꺼지지나 않았는지,
화로가 차갑게 식지나 않았는지,
두렵습니다.
이 시간, 간절히 구합니다.
주의 성령으로 불씨를 살려 주시어
저희 자신의 추위를 녹일뿐 아니라
이웃의 추위까지 녹일 수 있게 하소서.
저희 각자의 영적 회복으로 인해
저희 와싱톤한인교회가
더욱 따뜻한 공동체가 되도록 인도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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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92 시편 예배가 나를 만든다”(Worship Forms Me) 시24:1-10  김영봉 목사  2011-07-31 3672
» 시편 따뜻한 관심(Radical Hospitality) 시34:1-8  김영봉 목사  2011-07-31 2436
5590 마가복음 우리에게 부족한 것”(One Thing We Lack) 막10:17-22  김영봉 목사  2011-07-31 2552
5589 마가복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By All Means) 막9:42-48  김영봉 목사  2011-07-31 2889
5588 시편 시냇가에 심긴 나무”(A Tree Planted By the Streams of Water) 시1:1-6  김영봉 목사  2011-07-31 3241
5587 마가복음 우리의 거울은 너무 작다”(Our Mirrors Are Too Small) 막8:27-30  김영봉 목사  2011-07-31 2308
5586 야고보서 두 개의 영적 전립선”(Two Spiritual Prostates) 약2:14-17  김영봉 목사  2011-07-31 2494
5585 요한복음 영생에 이르는 열매”(The Crop for Eternal Life) 요4:3-9  김영봉 목사  2011-07-31 2745
5584 시편 순례길에 오른 캐라반”(Caravan on Pilgrimage) 시133:1-3  김영봉 목사  2011-07-31 2582
5583 요한계시 3 가지 새로움 계21:1  강종수 목사  2011-07-31 2111
5582 오바댜 이스라엘의 회복된 모습 옵1:19-21  박상훈 목사  2011-07-30 2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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