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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을 연단하는 불같이”(Like a Refiner’s Fire)

말라기 김영봉 목사............... 조회 수 2657 추천 수 0 2011.07.31 23:20:23
.........
성경본문 : 말3:1-5 
설교자 : 김영봉 목사 
참고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2009.12.6 (김 영봉 목사)
“금을 연단하는 불같이”(Like a Refiner’s Fire)
--말라기서 3:1-5

1.

지난 주 제게 배달된 라는 기독교 관계 저널 단신 란에 보니 흥미로운 기사가 두 가지 실렸습니다. 그 두 기사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아마도 편집자가 일부러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그 기사의 하나는 미네소타 주에 있는 우들랜드 힐스(Woodland Hills) 교회 담임목사이며 신학자이자 영향력 있는 기독교 저자인 그레고리 보이드(Gregory Boyd) 목사에 관한 것입니다. 그는 아주 보수적인 배경에서 자란 분인데,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로 정치 권력과 결탁된 미국의 기독교 보수주의를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그는 2004년, “십자가와 칼”(The Cross and the Sword)이라는 연속설교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산다는 것이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얼마나 헌신하며 희생하는 것인지를 아주 도전적으로 설교합니다.

얼마나 도전이 되었던지, 이 설교로 인해5천명 교인 중 1천명이 넘게 교회를 떠납니다. 이것을 계기로 보이드 목사는 ‘철저한 제자도’(radical discipleship)에 대해 설교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최근에 기고한 어느 글에서 보이드 목사는, 설교자가 제자도의 대가에 대해 분명히 말하면 할수록 예배 참석 인원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한 때, 보이드 목사가 섬기는 우들랜드 힐즈 교회의 평신도 지도자들이 그렇게 제안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목회자 세미나에서 교회 성장에 대해서 가르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교인수를 줄이는가에 대해 가르치십시오.”

그렇다고 해서 보이드 목사가 잘 나가는 교회를 말아먹은 것은 아닙니다. 한 때 그런 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체질 변화로 인해 과거보다 더 건강하고 열매맺는 교회로 변모했습니다. 잃어버린 수보다 더 많은 교인들을 얻었습니다. 이런 경험에 바탕하여, 보이드 목사는, 철저한 제자도를 설교하면서도 교회를 건강하게 성장시킬 수 있는 설교자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 글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와 나란이 배열되어 있는 또 다른 기사는 일리노이 주에 있는 라잇하우스 열방교회(Lighthouse Church of All Nations)의 이야기입니다. 이 교회는 지난 11월 초부터 특별한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주일 아침에 세 번 예배 드리는데, 예배 때마다 추첨을 하여 세 사람을 뽑아, 두 사람에게는 250달러씩을, 한 사람에게는 500달러를 상으로 줍니다. 예배 때마다 1천 달러씩을 사용하는 겁니다. 이 교회의 담임목사 댄 윌리스(Dan Willis)는 상을 주면서 단서를 붙입니다. 그 상금을 물건 사는 데 사용하지 말고 밀린 payment를 내는 데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추첨 행사를 하기 전의 주일 평균 출석이 1,600명 정도였는데, 추첨 행사가 시작된 후로 지금은 평균 2,500명이 예배에 출석한다고 합니다.

자, 여러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추첨 행사가 시작된 다음부터 예배에 나오고 있는 그 900명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온 것일까요? ‘아, 교회가 돈을 달라고만 하는 줄 알았더니, 교인들에게 돈을 줄 줄도 아네? 이런 교회라면 한 번 다녀 볼까?’라는 생각으로 나온 것일까요? 그런 기특한 생각이었다면 좋겠습니다만,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더 강한 것은 제가 너무 부정적인 까닭일까요?

2.

오늘 성서 일과에 따라 읽은 말씀은 말라기서 3장에 나오는 예언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과 말라기서 전체에서 우리가 직면하게 되는 질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예배를 드리고 있으며, 우리가 드리는 제물은 어떤 제물인가?”

말라기는 전체 4장밖에 되지 않는 짧은 예언서입니다. 예언서 ‘말라기’는 ‘말라가 쓴 기록’이라는 뜻이 아니라 ‘말라기’ 자체가 예언자의 이름입니다. 말라기 예언자는 생전에 많은 말씀을 전했을 것입니다만, 기록된 것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때는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의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이스라엘을 재건하기 위해 몸부림 치던 때의 일입니다. 이 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 예언자 말라기는 유대인들이 지금 겪고 있는 그 모든 불행의 원인을 ‘예배의 타락’에서 보았고, 희망의 단초를 ‘예배의 회복’에서 보았습니다. 1장에서 말라기 예언자는 예배의 타락에 대해 이렇게 고발합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공경하고
종은 제 주인을 두려워하는 법인데,
내가 너희 아버지라고 해서
너희가 나를 공경하기라도 하였느냐?
내가 너희 주인이라고 해서
너희가 나를 두려워하기라도 하였느냐?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제사장들아, 너희가 바로 내 이름을 멸시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가 언제 주님의 이름을 멸시하였습니까?’하고 되묻는다.
너희는 내 제단에 더러운 빵을 바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너희는,
‘우리가 언제 제단을 더럽혔습니까?’하고 되묻는다.
너희는 나 주에게 아무렇게나 상을 차려 주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눈먼 짐승을 제물로 바치면서도 괜찮다는 거냐?
절뚝거리거나 병든 짐승을 제물로 바치면서도 괜찮다는 거냐?
그런 것들을 너희 총독에게 바쳐 보아라.
그가 너희를 반가워하겠느냐?
너희를 좋게 보겠느냐?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6-8절)

한 번 상상해 보십시다. 엘리아자르라는 한 유대인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려고 준비합니다. 양 한 마리를 제물로 바쳐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마음에는 비둘기 한 마리로 때웠으면 좋겠는데, 율법은 양 한 마리를 번제로 바치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엘리아자르는 목장에 나가 제물로 바칠 양을 고릅니다. 만일 엘리아자르의 마음에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이 살아 있다면, 그는 값을 따지지 않고 가장 좋은 양을 고를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은혜가 메말라 있었습니다. 하기는 싫고 안 하면 벌 받을 것 같아서 마지 못해 한 마리 고릅니다. 어제, 양치는 일꾼이 “주인님, 이놈은 며칠 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도대체 병이 낫지 않네요”라고 말했던 그 양이 눈에 들어옵니다. 엘리아자르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옳다, 저 놈을 바치자. 어차피 죽을 놈이니, 제물로 바치면 일거양득이 아닌가?’

엘르아자르로서는 좋은 꾀를 낸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말라기를 통해 엄중히 책망합니다. 그같은 제물을 드리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제단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말라기 예언자가 활동할 당시, 제사드리러 오는 사람들의 마음이 대부분 이러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드리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대부분이 율법의 규정을 형식적으로 만족시키는 정도에서 행동했습니다. 정성 없는 제물과 마음이 담기지 않은 물질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으로써 그들은 하나님에게 최소한의 도리를 한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이 오히려 당신을 경멸하는 행위라고 책망합니다.

3.

보이드 목사가 ‘철저한 제자도’에 대해 설교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 비싼 대가를 치루라고 도전했을 때, 그 교회를 떠난 1천명의 교인들을 생각해 봅니다. 댄 윌리스 목사가 매 주일, 예배 때마다 추첨을 하여 세 사람에게 도합 1천 달러를 상으로 주겠다고 했을 때 모여든 9백명의 교인들을 생각합니다. 그들과 말라기 예언자 시대의 유대인들과 무엇이 얼마나 다를까, 질문해 봅니다. 적어도 예배를 대하는 그들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마음은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 모두의 예배와 제물에는 마음이 담겨 있지 않았고 정성도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거룩한 제물’을 바친다고 했지만, 오히려 그 제물이 거룩한 제단을 더럽혔고 하나님을 능멸하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예언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 가운데서라도 누가 성전 문을 닫아 걸어서,
너희들이 내 제단에 헛된 불을 피우지 못하게 하면 좋겠다!
나는 너희들이 싫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너희가 바치는 제물도 이제 나는 받지 않겠다. (10절)

여러분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았는데, 그 선물이 어쩔 수 없어서 ‘때우려는’ 것임에 너무도 분명한 경우, 말입니다. 선물을 주는 사람의 마음이나 정성을 전혀 느낄 수 없는 경우, 말입니다. 그런 경우, 마음이 어떠하던가요? 말라기 예언자를 통해 하신 말씀, 즉 “나는 너희들이 싫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동감되지 않습니까? 나를 향한 그 사람의 마음이 그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싫어지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배에 임하는 우리의 태도가 어떻습니까? 예배를 향해 올 때,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말라기 1장 13절에 보면, 제물을 드리면서 유대인들이 마음 속으로 이렇게 불평합니다. ‘이 얼마나 싫증나는 일인가?’ 예배에 나오는 우리의 마음이 혹시 그런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러 오는 사람다운 열정과 기쁨이 우리 마음에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주일 아침 우리는 일찍부터 예배를 위해 부지런을 떨 것입니다. 미리 미리 준비하여 차분한 마음으로 예배에 임하도록 힘쓸 것입니다. 일 주일 중에서 주일 아침이 가장 즐거운 날이 될 것입니다. 집을 떠나기 전, 차분히 앉아 지난 주일을 생각하고 감사하며, 정성껏 헌금을 준비할 것입니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만큼 바치는 것은 마치 병든 양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예물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역겹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마음에 있으면, 그 사람은 예배당에 도착하여 주차 안내원들에게 환하게 인사하며 아이를 내려 주고는, 시간이 넉넉한 것을 보고는, 교회 주차장에 주차해도 되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추가 주차장으로 갈 겁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러 오는 기쁨 때문에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 번지고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먼저 인사를 전합니다.

얼마 전, 새로 임원이 되신 분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일 예배를 전후하여 몇 시간은 완전히 포기하라고 말입니다. 일 주일에 하루, 주일 아침 혹은 오후 몇 시간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라고 말입니다. 어떻게든 최소한의 시간만 떼내어 예배를 ‘때우고’ 가려 하지 말고, 충분한 시간을 떼어 성별하여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여유있게 예배 준비를 할 수 있고, 그렇게 하면 마음 다해 예배 드릴 수 있고, 예배 후에 다른 사람의 예배를 위해 봉사할 수도 있습니다.

4.

오늘 읽은 말라기 3장에서는 장차 메시야가 오실 길을 닦을 ‘특사’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 말라기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나의 특사를 보내겠다.
그가 나의 갈 길을 닦을 것이다.
너희가 오랫동안 기다린 주가,
문득 자기 궁궐에 이를 것이다.
너희가 오랫동안 기다린,
그 언약의 특사가 이를 것이다.(1절)

구원자 메시야가 오시기 전, 먼저 특사가 와서 메시야의 구원 역사를 위해 준비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특사가 누굽니까? 세례 요한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고, 예수님보다 먼저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파합니다. 그러다가 세례 요한이 헤롯 안티파스에게 사로잡혔을 때,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셔서 당신의 사역을 시작하십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특사로서 자신의 소임을 다한 것입니다.

장차 세례 요한이 담당하게 될 그 특사의 소임에 대해 말라기 예언자는 이렇게 대언합니다.

그러나 그가 이르는 날에,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살아 남겠느냐?
그는 금과 은을 연단하는 불과 같을 것이며,
표백하는 잿물과 같을 것이다.
그는 은을 정련하여 깨끗하게 하는 정련공처럼,
자리를 잡고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할 것이다.
금속 정련공이 은과 금을 정련하듯이,
그가 그들을 깨끗하게 하면,
그 레위 자손이 나 주에게 올바른 제물을 드리게 될 것이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제물이
옛날처럼, 지난날처럼,
나 주를 기쁘게 할 것이다.(2-4절)

메시야를 맞아들이고 그분의 구원을 얻기 위해 당시 유대인들에게 먼저 일어나야 할 일은 ‘예배의 회복’이었습니다. 제물이 정화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마음에 변화를 받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깨닫고, 감사와 기쁨으로 그분 앞에 서는 변화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으로 향하는 그들의 발걸음에 힘이 넘치고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함께 예배 드리는 사람들에게 친절해지는 변화가 일어나야 했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변화가 일어나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메시야의 오심은 그들에게 구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같은 변화가 없다면, 메시야의 오심은 그들에게 구원이 아니라 멸망이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왜 제사가 이렇게 중요합니까? 하나님께 대한 제사가 먼저 회복되어야 다른 모든 것이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마음의 자세는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그 영향력을 파급시키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해 마음이 닫히면 다른 영역에도 마음이 닫힙니다. 하나님께 인색하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색해집니다. 하나님께 무성의하면 다른 것에도 무성의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부패가 일어나면 다른 모든 관계에 부패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예배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5절에서 말라기 예언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를 심판하러 가겠다. 점 치는 자와, 간음하는 자와, 거짓으로 증언하는 자와, 일꾼의 품삯을 떼어먹는 자와, 과부와 고아를 억압하고 나그네를 학대하는 자와, 나를 경외하지 않는 자들의 잘못을 증언하는 증인으로, 기꺼이 나서겠다.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여기서 하나님은 말라기 예언자를 통하여 나열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제물에 대해 무성의하게 임하게 되면, 점 치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게 됩니다. 간음의 유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거짓으로 증언합니다. 하나님이 보고 듣고 계신 줄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꾼의 품삯을 떼어 먹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깁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려운 사람들을 돕기는 커녕 그들을 학대하는 일에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것은 단지 몇 가지의 예일 뿐입니다. 우리가 가정과 직장에서 범할 수 있는 모든 잘못들은, 그 뿌리를 캐어 보면,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가 부실해져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들입니다. 성소가 무너지고 제단이 황폐해져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들입니다. 예배는 예배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배가 살아야 우리의 삶이 삽니다. 그래서 예배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모든 것이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5.

우리의 예배를 살려 내기 위해 필요한 것,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자는 것이 회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특사로 오신 세례 요한은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 회개만이 메시야의 오심을 준비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설교했습니다. 회개란 자신이 잘 못 살고 있음을 깨닫고 가던 길에서 돌아서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운전 용어로 표현하자면 U-turn을 하는 겁니다. 하나님에게 등을 지고 반대 방향으로, 멸망의 도성을 향해 가던 길에서 돌아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그 영광스러운 생명의 도성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전환이 일어나면, 그 전환은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예배에서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면, 일상이 바뀝니다.

하지만 그 회개가 어렵습니다. 그동안 탐닉했던 죄들을 내려 놓아야 하기 때문에, 또한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의를 행해야 하기 때문에 회개가 어렵습니다. 우리 몸 속에 있는 타락한 욕망을 따라 가는 것은 쉬운데, 회개는 그것을 거슬러 살아가게 만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길은 넓고 편한 길이며,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는 길은 좁고 험한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가 어렵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맛을 깊이 경험하고 나면 회개의 길에 신령한 기쁨과 자유가 있음을 깨닫습니다만, 그 전까지는 회개는 고통스럽습니다. 특히, 회개하는 첫 순간은 찢어지는 듯합니다.

오늘 읽은 말라기 예언자의 예언을 보면, 회개는 마치 은이나 금을 불에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과정과 같다고 말합니다. 또한 옷감을 표백하기 위해 잿물에 넣어 뜨거운 물에 삶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메시야의 특사가 오는 것을 당할 사람이 별로 없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그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회개를 반길 사람이 별로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특사로 온 세례 요한은 배척당하고 순교 당했습니다. 죄와 악을 즐기던 사람들이 회개를 부르짖는 그의 목소리를 침묵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듯, 특사의 목을 잘랐어도 메시야는 오고야 말았습니다. 메시야가 왔을 때, 회개를 거부했던 사람들은 불같은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대강절 두 번째 주일을 맞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오심을 기억하고 축하하며, 오늘 성령을 통해 보일듯 말듯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찬양하고, 또한 장차 모든 것이 제 모습을 드러낼 재림을 기다립니다. 이 시점에서 말라기 예언자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은 2천 5백년이라는 시간을 넘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2천년 전, 유대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외쳤던 세례 요한의 음성도 그렇습니다.

지난 화요일 아침, 목회자들과 직원들이 함께 모이는 경건회에서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제 마음에 선명하게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습니다. “너는 얼마나 정련되어 있느냐? 너는 얼마나 표백되어 있느냐? 너는 거룩해지고 순수해지기 위해 얼마나 아픔을 겪었느냐?” 그 순간, 저에게는 부인할 수 없는 저의 진상이 보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에게로 전향한 지가 이미 오래 되었는데, 회개의 열매가 제게 별로 없다는 진실, 말입니다. 저는 아직도 더 많이 불에 달구어져야 할 불순물 덩어리요, 양잿물 속에 넣고 푹 삶고 빨래 방망이로 수 없이 두들김을 당해야 할 정도로 더럽혀진 옷감이라는 진실, 말입니다. 저는 “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 덕분에 저는 오늘 성령으로 함께 계시는 인자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 값없는 은혜 덕분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지막 날에도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저는 저 자신이 순수한 금이나 은으로 변화되기를 기도합니다. 그 값없는 은혜로 제가 감당할 수 없는 구원을 주셨기에 저는 더 더욱 티도 없고 얼룩도 없는 옷감으로 만들어지기를 소원합니다. 그 옛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면서 행했던 회개가 더 깊어지고 더 강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저의 예배가 변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변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과 기도가 변하기를 바랍니다. 저의 예배가 달라지는 그만큼 저의 삶도 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6.

그레고리 보이드 목사가 철저한 제자도에 대해 설교하며 도전했을 때, 그것이 듣기 싫어 그 교회를 떠났던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그것이 혹시 우리의 모습이 아닐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믿음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날을 당해 낼 수가 없습니다. 라잇하우스 열방 교회가 예배자들을 추첨하여 돈을 준다 하여 몰려든 교인들을 생각합니다. 그것이 혹시 우리의 모습은 아닐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오락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아니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진정한 회개에 마땅한 값을 지불하고, 믿음 생활 가운데 회개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가는 역사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때로 회개가 고통스럽지만 진정한 희망은 그것 외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저는 ‘열매맺는 제자, 열매맺는 교회가 되기 위한 헌신서약서’를 주보 삽지에 나누어 드렸습니다. 이것은 지난 다섯 주간 동안 설교한 <열매맺는 교회의 다섯 가지 습관>을 바탕으로 하여 만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따라, 철저한 제자도를 향해 성숙해 가기를 바라는 분들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뒷면에 나와있는 안내에 따라 스스로 평가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의 내가 얼마나 열매 맺는 제자인지를 알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부족한 부분에 집중하여 기도하고 노력하면, 점점 더 나은 제자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쉬운만큼만 하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수술 후유증으로 굳어버린 어깨나 다리를 제 상태로 만들려면, 아플 정도로 움직여 운동해야 한다고 합니다. 아픈 만큼 치료가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불순물이 모두 빠져 나가게 하려면, 혹은 우리에게 물든 오염이 모두 지워지게 하려면, 그리하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살아가고자 한다면, 그동안 살아왔던 것에 부담이 될만큼 혹은 아픔이 느껴질만큼 발돋움을 해야 합니다. 나누어드린 헌신서약서가 그런 점에서 여러분의 영적 재활(spiritual rehab)의 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가 드리는 예배가 다시금 하나님께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희가 떨리는 손으로 바치는 예물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예배가 정화되고 회복되어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 빛나는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언제라도 주님 앞에 설 때에 대해 준비되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고 하신 주님,
나를 따르려면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하신 주님,
당신을 따르는 길은 좁고 험하다고 하신 주님,
그래도 주님을 따르고 싶습니다.
그것이 생명의 길이요 진리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 주님,
저희를 도우소서.
저희의 회개가 깊어지게 하시어
저희의 예배가,
저희의 예물이,
그리고 저희의 기도가
주님의 마음에 합당해지게 하소서.
저희의 삶이
산 제사로 드려지는 삶이 되게 하소서.
주님 오실 그 날까지!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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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07 히브리서 믿음의 담력”(Assurance of Faith) 히4:14-16  김영봉 목사  2011-07-31 2624
5606 로마서 제단에 올려진 삶”(Life Laid on the Altar) 롬12:1-2  김영봉 목사  2011-07-31 2921
5605 로마서 죄 속에 벌이 있다”(Sins Are Sugar-coated) 롬6:15-18  김영봉 목사  2011-07-31 1941
5604 히브리서 제사가 아니다”(It Is Not a Sacrifice) 히10:19-23  김영봉 목사  2011-07-31 2061
5603 요한복음 예수님의 영적 음모”(Spiritual Conspiracy of Jesus) 요2:13-22  김영봉 목사  2011-07-31 2415
5602 요한복음 잔치는 계속된다." (Feast Will Go On) 요2:1-11  김영봉 목사  2011-07-31 2468
5601 누가복음 침체를 끝내는 법”(How to End the Depression) 눅3:21-22  김영봉 목사  2011-07-31 2364
5600 마태복음 찾고 있습니까?”(Are You Seeking?) 마2:1-12  김영봉 목사  2011-07-31 2443
5599 요한복음 나같은 하나님, 나같은 인간”(God Like Me, Human Like Me) 요1:1-5  김영봉 목사  2011-07-31 2499
5598 누가복음 루저들에게 임하는 성탄의 은혜"(The Christmas Is For the Losers) 눅2:1-1  김영봉 목사  2011-07-31 2961
5597 누가복음 고민을 멈추면 썩는다”(Holy Agony) 눅3:7-18  김영봉 목사  2011-07-31 2382
» 말라기 금을 연단하는 불같이”(Like a Refiner’s Fire) 말3:1-5  김영봉 목사  2011-07-31 2657
5595 누가복음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To Stand Before the Son of Man) 눅21:29-36  김영봉 목사  2011-07-31 2515
5594 히브리서 새로운 살 길을 걷다”(We Are On the New and Living Way) 히10:19-25  김영봉 목사  2011-07-31 2439
5593 마가복음 진리는 때로 부담스럽다”(Truth Is Often Burdensome) 막12:38-44  김영봉 목사  2011-07-31 2637
5592 시편 예배가 나를 만든다”(Worship Forms Me) 시24:1-10  김영봉 목사  2011-07-31 3672
5591 시편 따뜻한 관심(Radical Hospitality) 시34:1-8  김영봉 목사  2011-07-31 2436
5590 마가복음 우리에게 부족한 것”(One Thing We Lack) 막10:17-22  김영봉 목사  2011-07-31 2552
5589 마가복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By All Means) 막9:42-48  김영봉 목사  2011-07-31 2889
5588 시편 시냇가에 심긴 나무”(A Tree Planted By the Streams of Water) 시1:1-6  김영봉 목사  2011-07-31 3241
5587 마가복음 우리의 거울은 너무 작다”(Our Mirrors Are Too Small) 막8:27-30  김영봉 목사  2011-07-31 2308
5586 야고보서 두 개의 영적 전립선”(Two Spiritual Prostates) 약2:14-17  김영봉 목사  2011-07-31 2494
5585 요한복음 영생에 이르는 열매”(The Crop for Eternal Life) 요4:3-9  김영봉 목사  2011-07-31 2745
5584 시편 순례길에 오른 캐라반”(Caravan on Pilgrimage) 시133:1-3  김영봉 목사  2011-07-31 2582
5583 요한계시 3 가지 새로움 계21:1  강종수 목사  2011-07-31 2111
5582 오바댜 이스라엘의 회복된 모습 옵1:19-21  박상훈 목사  2011-07-30 2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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