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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는 계속된다." (Feast Will Go On)

요한복음 김영봉 목사............... 조회 수 2468 추천 수 0 2011.07.31 23:20:23
.........
성경본문 : 요2:1-11 
설교자 : 김영봉 목사 
참고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2010.1.17 (김 영봉 목사)

"잔치는 계속된다." (Feast Will Go On)
--요한복음 2:1-11

1.

예수님 당시, 갈릴리에 가나라는 한 동네가 있었습니다. 그곳의 한 집에서 혼인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유대인들의 혼인 관습은 좀 특별한 데가 있습니다. 한 남자가 어느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겨 결혼할 결심을 했다 합시다. 그러면 그는 부모에게서 잔치할 돈을 받아냅니다. 신랑은 그 돈을 가지고 신부 집으로 가서 잔치를 벌이는데, 보통 일주일 동안 지속됩니다. 결혼 잔치의 절정은 일주일의 마지막 날에 옵니다. 그날이 오면 신랑은 포도주 한 잔을 신부 앞에 놓습니다. 신부가 그 잔을 마시면 결혼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거절하면 신랑은 헛돈을 쓰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신랑이 내미는 포도주잔을 거절하는 신부는 별로 없었습니다. 이미 그 정도는 약속되었기에 잔치를 허락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결혼식 잔치에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 그리고 제자들이 초청을 받았습니다. 마리아가 그 집의 주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미루어 짐작컨대, 아마 예수님의 친척집이었을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지속되는 잔치였으나, 예수님과 그 일행이 일주일 내내 먹고 마셨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잔치 준비를 위해 어머니 마리아가 먼저 그 집으로 갔을 것이고, 예수님과 그 일행이 나중에 그 집에 들렀을 것입니다. 이야기의 흐름을 살펴볼 때, 아마도 적어도 사나흘은 지나서 그 집에 들렀을 것 같습니다.

잔칫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포도주였습니다. 일주일 동안 잔치를 벌이려면 제법 많은 포도주를 준비해 두어야 합니다. 집에서 담그는 포도주만으로는 안 되고, 이웃집에서 혹은 포도주 가게에서 사다가 충분히 마련해 놓았어야 합니다. 아마도 가나의 그 집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그 일행이 도착하고 나서 얼마 있다가 그만 포도주가 떨어지고 맙니다. 준비를 충분히 해 놓지 않았는지, 아니면 예상보다 많은 손님이 왔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은 잔칫집 주인에게는 아주 곤란한 일이었습니다. 그 지역에서 포도주를 구할 수 있은 만큼 구해 놓았기 때문에 포도주를 더 구할 방도가 마땅치 않습니다. 포도주 없는 잔치는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잔치를 끝낼 수도 없습니다. 잔치의 주인공들로서는 매우 큰 위기를 만난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신부 앞에 놓을 포도주조차 구할 수 없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주인으로서는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2.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주인과 함께 궁리합니다. 그때, 마리아는 아들을 생각했습니다. 아들 예수는 얼마 전에 유다 광야로 나가 몇 개월을 보내더니 갈릴리에 나가 전도자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아들을 따라다니는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아직 그 아들에게서 특별한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무슨 일이든 할 것만 같았습니다. 마리아는 뭔지 모르지만, 아들이 의지가 되었습니다. 왠지, 그 사실을 아들에게 알려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과 그 일행이 있는 방으로 가서, 눈짓으로 아들을 불러냅니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 듣지 못하게 귓속말로 말합니다. "포도주가 떨어졌구나."

마리아는 얼마든지 달리 말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혹시, 너를 따르는 저 사람들을 데리고 이웃 동네로 가서 포도주를 사다 줄 수 있겠니? 너희들이 한두 통씩만 들고 오면 나머지 잔치를 치를 수 있을 텐데." 저와 여러분 같으면 그렇게 말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다 큰아들을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조종하거나 부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포도주가 떨어졌구나!"라고만 말하고, 말을 아꼈습니다. 아들을 의지하고, 아들이 뭔가 도움을 주기 바라지만, 모든 것을 아들의 판단에 맡긴 것입니다. 마리아는 다만 지금 해결해야 할 문제 상황이 있음을 알리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어머니의 부탁에 대해 예수님은 냉담한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4절에 보면, 예수님이 이렇게 응답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자여, 그것이 나와 당신에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아직도 내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어머니에게 "여자여"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우리에게는 무례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문화에서는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과 별 차이가 없는 말입니다. 따라서 어머니에게 한 이 대답에서 예수님은 정중하고 완곡하게 거절의 뜻을 드러낸 것입니다. 자신은 그런 일에 개입하고 싶지 않고, 또한 아직 개입할 때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가 어찌하는가 보십시오. 일꾼들을 불러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세요"(5절). 아들을 강제하지는 않지만, 아들이 자신을 꼭 도와줄 거라고 믿은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자신의 청을 거절했지만, 어미의 딱한 사정을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아들이 마음을 돌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를 대비해 일꾼들에게 준비를 시켜 둔 것입니다.

3.

마리아는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고, 예수님도 일행 가운데로 돌아가 음식을 드십니다. 얼마를 그렇게 있더니, 예수님이 일어나 일꾼들을 부릅니다. 그들을 데리고 문간에 있던 물 항아리 쪽으로 가십니다. 유대인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물로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그것은 위생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종교적인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그 집에 당도하기 전까지 알게 모르게 부정한 것을 만진 손을 정결하게 씻어야만, 먹는 음식에 부정이 타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특히나, 손으로 음식을 먹는 그들이었기에 손을 씻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손에 부정이 타면 씻을 수 있지만, 부정 탄 음식을 먹어 내장이 부정해지면 달리 방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돌로 만든 커다란 항아리 여섯 개를 준비해 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항아리들을 가리키며 일꾼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십시오." 그때 즈음, 항아리마다 물이 많이 줄어 있었습니다. 일꾼들은 마리아로부터 받은 다짐이 있었기에 그대로 행합니다.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손님들이 떼로 몰려오려나? 왜 이렇게 물을 많이 준비하라는 거지?’ 여섯 개의 물 항아리에 물이 가득 채워지자, 예수님이 일꾼들에게 다시 명령하십니다. "이제는 저 물을 떠서, 잔치 맡은 이에게 가져다주어라." (8절). ‘잔치 맡은 이’는 그 잔치 전체를 책임진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때는 이미 물 항아리의 물이 포도주로 변한 상태였을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을 때, 그 포도주는 백포도주(whine wine)였을까, 적포도주(red wine)였을까?" 당시 유대인들이 일상생활에서 마시던 포도주는 대부분 적포도주였으니, 적포도주였을 것입니다. 일꾼이 그 물 항아리에 바가지를 넣고 한 번 휘저었을 때, 그는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조금 전에 자신이 길어다 부은 것은 물이었는데, 그것이 이제는 붉은 포도주로 변한 것입니다. 도대체 믿을 수 없는 일이 자기 눈앞에서 일어난 것입니다. 그 포도주 바가지를 잔치 맡은 이에게 전해 줄 때, 그 일꾼의 마음은 신비롭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을 것입니다.

잔치를 책임진 그 사람은 일꾼이 건네주는 바가지를 들고 한 모금 마셔 봅니다. 그 맛을 음미한 다음,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 모금 더 마십니다. 그리고 그는 급히 신랑을 부릅니다. 그는 손에 들고 있는 포도주 바가지를 가리키며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뒤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데, 그대는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 두셨구려!" (10절) 이 말에 신랑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오늘 본문은 침묵하고 있습니다만, 얼마든지 추측할 수 있습니다. 신랑도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그 둘은 일꾼을 불러 그 포도주가 어디서 난 것인지를 캐물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자초지종을 알고 그 모든 일을 일어나게 한 예수님을 찾아 그분이 머물던 방으로 갔을 때, 그분은 이미 일행들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을 것입니다. 요한복음을 한 번 주의 깊게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에게서 보이는 하나의 행동 패턴이 있습니다. 어떤 이적을 행하고는 사람들이 자신을 주목할 때 즈음이면 종적을 감추어 버리는 것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쳤을 때도 그랬고,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덩이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이신 다음에도 그랬고, 나면서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쳤을 때도 그랬습니다. 언제나, 이적을 행하고 나서 사람들이 자신을 주목하려 할 때면 종적을 감추었습니다. 그분이 이적을 행한 목적은 자신을 스타로 만들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게 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4.

오늘 본문의 11절을 보면 요한복음 저자가 이렇게 기록해 두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첫 번 표징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시니, 그의 제자들이 그를 믿게 되었다." 여기서 요한복음 저자는 ‘이적’이나 ‘기적’이라는 단어 대신에 ‘표징’(sign)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사건은 단순히 놀라운 일(‘기적’)이나 이상한 일(‘이적’)이 아니라, 뭔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사건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그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잔치’라는 주제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잔치는 우리 각자의 인생을 의미합니다. 한때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영화배우 로잘린드 러셀(Rosalind Russell)이 <인생은 잔치다>(Life Is a Banquet)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는데, 그 책의 제목은 확실히 기독교의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을 잔치가 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타락하기 이전의 에덴동산 이야기에서 우리가 읽어야 하는 진리입니다. "나는 천생 시인이다."라고 했던 전상병 시인은 인생을 ‘소풍’에 비교했습니다. ‘소풍’이나 ‘잔치’나 같은 상징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섭리는 각각의 인생을 그리고 인간 사회를 그리고 온 우주를 잔치로 만드는 것에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잔치판이 깨졌다는 데 있습니다. 잔치판을 깬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인간입니다. 저는 어릴 적에 어른들이 잔칫집에서 싸우는 모습을 자주 보았습니다. 잘 차려 놓은 잔칫집에 와서 반가운 사람들과 만나 한참 흥겹게 즐기던 사람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취기가 오르면서 험한 욕설과 몸싸움을 하며 잔치를 파장 내곤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차려 놓으신 잔치를 깬 것은 잔치의 주인인 하나님이 아니라 손님으로 초대받은 우리 인간들입니다. 우리의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고, 이웃과의 관계가 깨졌습니다. 그러자 자연과의 관계도 깨졌습니다. 서로 싸워 정복하고 정복당하는 관계가 되어 버렸습니다.

인간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벌여 놓으신 잔치판이 깨지자, 우리 인간들은 제각기 자신의 손으로 잔치를 차리고 즐기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벌여 놓으셨던 잔치는 모두가 참여하고 모두가 행복을 누리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인간들이 서로 각축전을 벌여 강자만이 잔치를 즐기고 약자는 멀리서 그 잔치를 구경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강자가 되기 위해, 그리고 어떻게든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삶을 잔치로 만들어 보기 위해 분투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서, 어떤 사람은 출세하여, 어떤 사람은 건강과 미모로써, 어떤 사람은 학벌과 경력으로써 자신의 삶을 잔치로 만들어 보려 합니다.

이렇게, 우리 자신의 힘으로, 우리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 만든 잔치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무엇으로 잔치를 만들었든, 그것은 결국 고갈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결혼 잔칫집에 포도주가 떨어져 파장 날 뻔했던 것과 같은 위기가 종당에는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미모로써 잔치를 즐기고 있습니까? 그 미모가 언제까지 가겠습니까? 돈으로써 잔치를 즐기고 있습니까? 지난 한 두 해 경험해 보지 않았습니까? 그 돈이 언제든 손가락 사이로 술술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권력으로써 잔치를 즐기고 있습니까? 그 권력이 언제까지 갈 것 같습니까? 무엇이든 결국 시간의 문제입니다. 결국 우리가 마련한 포도주는 고갈되고 맙니다.

둘째, 설사 그것이 죽는 순간까지 우리 손에 남아 있다 해도, 우리 스스로 만든 잔치가 주는 행복은 결국 권태를 불러오거나, 우리의 삶을 파국으로 몰고 갑니다. 우리는 최근에 어느 스포츠 스타의 몰락에 대한 뉴스를 들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돈과 인기와 체력으로 연일 잔치를 즐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잔치에는 만족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즐기면 즐기는 만큼 권태감도 커집니다. 그 권태감을 잊기 위해 다음에는 더 강한 쾌락을 추구했고, 그렇게 하여 결국 파국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스스로 만든 잔치의 본질입니다.

5.

그러므로 삶의 진실 중의 진실은, 우리가 스스로 차린 잔치는 우리를 진실로 만족시켜 줄 수 없으며, 그 잔치는 결국 끝나게 되어 있고, 그때 우리는 큰 위기를 겪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가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를 통해 깨달아야 하는 진리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늘 이 이야기를 통해 깨달아야 하는 진리의 반쪽에 불과합니다. 다른 반쪽의 진리를 찾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잃어버린 잔치, 파장 난 잔치, 파장 날 위기에 있는 잔치를 회복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셨던 그 에덴을 우리 각자의 삶에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회복시키려는 것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이유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잔치 맡은 사람이 신랑에게 한 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만드신 포도주 맛을 보고 그 사람은 신랑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뒤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데, 그대는 이렇게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 두었구려!" (10절) 손님들 정신이 말짱할 때는 좋은 포도주를 내 놓았다가 술에 취해 미각이 둔해지면 그때는 저급 포도주를 내어 놓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만드신 포도주는 그들이 찾을 수 있는 그 어떤 포도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잔치 맡은 사람이 놀란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잔치를 회복하면, 그 잔치의 맛은 그 이전에 즐기던 잔치의 맛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들어오시면 어떻게 잔치를 회복시켜 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되찾게 됩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막혀 있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죄의 장막을 벗겨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을 힘입어 성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을 통해 우리와 함께 계시며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변호자로, 때로는 의사로, 때로는 교사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영적인 눈을 뜨고 있으면, 우리는 언제나 그분과 함께 갈 수 있습니다.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 살아갑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평안과 기쁨과 위로와 안식을 경험하게 됩니다. 잔치의 기쁨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경험하는 것입니다. 때로 그분은 우리를 어렵고 힘든 길로 인도하기도 하십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짐을 맡기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가서 우리가 생각도 하지 않은 일을 하게 하십니다. 때로는 내가 즐기던 것을 포기하게도 하시고, 또 때로는 내 손에 쥔 것을 포기하게도 하십니다. 하지만 그분을 믿고 묵묵히 순종하고 따를 때, 우리는 그 고난과 희생과 아픔 속에서 마음 깊은 보람과 기쁨을 맛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삶에 오셔서 이렇게 에덴을 회복시키십니다. 잃어버렸던 잔치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 잔치의 맛은 그 이전에 즐기던 잔치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들어 주시는 잔치의 기쁨은 우리를 결코 권태롭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깊은 만족을 안겨 줍니다. 예수께서 만들어 주시는 잔치는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갈수록 더 깊어지고 더 충만해집니다. 이 땅에서의 목숨이 끝나고 나면 이제까지 즐긴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잔치가 하나님 나라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때가 되면,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맛본 잔치의 맛은 영원한 잔치의 맛을 시음한 것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떻습니까? 다들 어렵다고들 하는 지금, 여러분은 잔치를 즐기고 있습니까? 무엇으로 그 잔치를 마련하셨습니까? 돈으로 하셨습니까? 여러분의 건강과 미모로 잔치를 즐기고 있습니까? 탁월한 능력으로, 인기로, 혹은 권력으로 잔치를 즐기고 있습니까? 든든한 직장으로 인해 혹은 효성 깊은 자식들로 인해 잔치를 즐기고 있습니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참 유익한 것입니다. 건강한 것도 좋은 것이고,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사는 미모를 가진 것도 좋습니다. 능력자로 인정받는 것도 좋은 일이고, 권력을 얻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직장이 든든한 것도 감사한 일이고, 자식들이 잘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여러분이 그 축복을 계속 누리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여러분을 즐겁게 하는 유일한 요소라면, 그렇다면 필경 장차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축복을 시기하여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분명한 진실입니다. 혹시, 그 잔치를 좀 더 오래 지속하도록 해 달라고 빌기 위해 예배에 오신 것은 아니기를 바랍니다. 간절히 빌리는, 여러분 스스로 마련한 잔치로부터 고개를 돌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잔치를 발견하시고, 그동안 즐기던 잔칫상을 거두어야 할 때, 기꺼이 거둘 수 있기 바랍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가나의 혼인 잔치 집의 신랑과 같은 입장에 있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경기 침체로 인해 그동안 즐기던 잔치가 끝나버린, 혹은 끝날 찰나에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 버려서 혹은 갑작스럽게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잔치를 끝내야 할 것 같은 상황에 계십니까? 잘하던 자식들이 갑자기 문제를 일으켜서, 혹은 든든하던 직장에 문제가 생겨서, 흥청 이는 잔칫집 같던 여러분의 삶이 손님들이 모두 가버린 잔칫집처럼 황량하게 되었습니까?

속히 상황이 변화되어 예전 같은 평안과 번영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상황이 전환되기 전까지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삶에 더 깊이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만든 잔치로부터 눈을 돌려, 예수께서 만들어 주시는 잔치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깊이 뿌리를 두고 영의 눈을 떠서 하나님 나라를 보고 성령의 임재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임재 안에서 평안과 위로와 성취를 맛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능력 안에서 회복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그 잔칫상을 보시고 그 맛을 보신다면, 지금까지 붙들고 있던 잔칫상을 기쁨으로 물릴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그동안 남들이 즐기는 잔치를 구경만 했다 싶은 분들도 계십니까? 세상 사람들이 다 각기 무엇인가를 쟁취하여 다 각기 잔칫상을 차리는 동안, 한 번도 뭔가 가져본 적이 없어 잔치다 싶은 삶을 살아본 일이 없습니까? 혹은, 전에 한때 보란 듯 잔치를 차리고 즐긴 적이 있는데, 이제는 다 옛날 일이 되어 버리고, 다시금 그런 시절이 올지, 갑갑하기만 하십니까?
그렇다면 오늘의 말씀을 더 깊이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잔치, 결코 고갈되지 않는 기쁨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의 삶에 잔치를 회복시키지를 원하십니다. 그분에게는 그럴 능력이 있습니다. 마리아처럼, 그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무엇을 어떻게 하실지 모르지만, 그분이 하시는 대로 따를 준비를 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결코 끝나지 않는 잔치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고, 그 평안과 기쁨의 능력으로 여러분의 삶의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7.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차린 잔치는 결국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끝나지 않는다면, 그 잔치의 즐거움에 결국 질리게 되어 있습니다. 질리지 않는다면, 더 큰 쾌락을 추구하다가 결국 파국을 맞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우리의 집에 모셔 들여야 합니다. 그분이 베풀어 주시는 신령한 잔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맛을 알아야 합니다. 그 안에서 만족과 행복을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 세상의 물질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베풀어 주시는 잔치를 맛보지 못하면, 돈이 절대가 됩니다. 명예가, 권력이, 인기가, 건강이, 자식이 절대가 됩니다. 그것이 없이는 잔치가 계속될 수 없다고 믿기에 그것에 집착합니다. 그리고 결국 그것 때문에 망합니다. 반면, 예수께서 베풀어 주시는 잔치를 맛본 사람에게는 그 모든 것이 상대화됩니다. 돈이, 명예가, 권력이, 인기가, 건강이, 자식이, 있으면 감사하고 좋지만, 없다 해서 "내 인생은 끝났다!"라고 탄식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있으면 선한 뜻을 위해 사용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 기쁘게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실이 이렇다면, 우리의 집에 예수 그리스도를 더 깊이 모셔 들이십시다. 그분 안에 더 깊이 뿌리를 두십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잔칫상을 차려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시편 23편 5절에서 다윗이 고백합니다. "주님께서는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내게 잔칫상을 차려주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상황이 어떻든지 상관없이 항상 잔치를 즐기는 삶을 우리에게 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렇게 사셨고, 또한 우리에게 그러한 삶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오늘도 우리를 잔치의 삶으로 인도하십니다.

그 잔치의 맛은 우리로 하여금 번영과 성공 중에서도 부패하지 않게 하고,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짓눌리지 않게 합니다. 그 잔치는 더 치열하게 경쟁하고 더 많이 얻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꾸고 하나님의 나라를 발견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잔치를 발견할 때, 우리는 비로소 싸움터 같은 이 세상을 잔칫집같이 변화시킬 수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내가 진정한 잔치를 누릴 때, 나로 인해 내 가정도 잔칫집처럼 변해갈 것이고, 내 교회도 그렇게 될 것이며, 내가 속한 직장과 사회도 그렇게 변화될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은총이 저와 여러분에게 참다운 잔치의 삶을 누리게 해 주시기를, 그리하여 참된 잔치의 기쁨을 이웃에게 전염시킬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잔치의 주인이신 주님,
저희 마음에 오소서.
저희 가정에 오소서.
저희 직장에 오소서.
우리나라에 오소서.
오셔서
저희끼리 배설한 잔치를 끝내게 하시고
주님의 잔치를 즐기게 하소서.
그 잔치의 기쁨을 마음에 품고
저희가 속한 공동체를 잔치 집처럼 변화시킬 수 있도록
저희를 도우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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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15 이사야 아픔이 아픔을 치유한다”(Pain Heals Pain) 사53:1-6  김영봉 목사  2011-07-31 3319
5614 요한복음 네 영혼의 오두막으로 오라”(Come to the Shack of Your Soul) 요21:15-17  김영봉 목사  2011-07-31 3334
5613 창세기 누구나 아프다”(Everybody Hurts) 창3:1-7  김영봉 목사  2011-07-31 2891
5612 창세기 보시기에 참 좋았으나…”(It Was Very Good, But …) 창1:26-31  김영봉 목사  2011-07-31 2117
5611 요한복음 인생은 성찬이다”(Life Is Sacramental) 요17:15-19  김영봉 목사  2011-07-31 2314
5610 마태복음 매일이 주일이다”(Everyday is the Lord’s Day) [1] 마28:16-20  김영봉 목사  2011-07-31 2971
5609 마가복음 다 거룩하다”(All Things Are Holy) 막7:14-23  김영봉 목사  2011-07-31 2320
5608 베드로전 모두 다 제사장이다”(We Are All Priests) 벧전2:1-5  김영봉 목사  2011-07-31 2460
5607 히브리서 믿음의 담력”(Assurance of Faith) 히4:14-16  김영봉 목사  2011-07-31 2624
5606 로마서 제단에 올려진 삶”(Life Laid on the Altar) 롬12:1-2  김영봉 목사  2011-07-31 2921
5605 로마서 죄 속에 벌이 있다”(Sins Are Sugar-coated) 롬6:15-18  김영봉 목사  2011-07-31 1941
5604 히브리서 제사가 아니다”(It Is Not a Sacrifice) 히10:19-23  김영봉 목사  2011-07-31 2061
5603 요한복음 예수님의 영적 음모”(Spiritual Conspiracy of Jesus) 요2:13-22  김영봉 목사  2011-07-31 2415
» 요한복음 잔치는 계속된다." (Feast Will Go On) 요2:1-11  김영봉 목사  2011-07-31 2468
5601 누가복음 침체를 끝내는 법”(How to End the Depression) 눅3:21-22  김영봉 목사  2011-07-31 2364
5600 마태복음 찾고 있습니까?”(Are You Seeking?) 마2:1-12  김영봉 목사  2011-07-31 2443
5599 요한복음 나같은 하나님, 나같은 인간”(God Like Me, Human Like Me) 요1:1-5  김영봉 목사  2011-07-31 2499
5598 누가복음 루저들에게 임하는 성탄의 은혜"(The Christmas Is For the Losers) 눅2:1-1  김영봉 목사  2011-07-31 2961
5597 누가복음 고민을 멈추면 썩는다”(Holy Agony) 눅3:7-18  김영봉 목사  2011-07-31 2382
5596 말라기 금을 연단하는 불같이”(Like a Refiner’s Fire) 말3:1-5  김영봉 목사  2011-07-31 2658
5595 누가복음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To Stand Before the Son of Man) 눅21:29-36  김영봉 목사  2011-07-31 2515
5594 히브리서 새로운 살 길을 걷다”(We Are On the New and Living Way) 히10:19-25  김영봉 목사  2011-07-31 2439
5593 마가복음 진리는 때로 부담스럽다”(Truth Is Often Burdensome) 막12:38-44  김영봉 목사  2011-07-31 2637
5592 시편 예배가 나를 만든다”(Worship Forms Me) 시24:1-10  김영봉 목사  2011-07-31 3672
5591 시편 따뜻한 관심(Radical Hospitality) 시34:1-8  김영봉 목사  2011-07-31 2436
5590 마가복음 우리에게 부족한 것”(One Thing We Lack) 막10:17-22  김영봉 목사  2011-07-31 2552
5589 마가복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By All Means) 막9:42-48  김영봉 목사  2011-07-31 2889
5588 시편 시냇가에 심긴 나무”(A Tree Planted By the Streams of Water) 시1:1-6  김영봉 목사  2011-07-31 3241
5587 마가복음 우리의 거울은 너무 작다”(Our Mirrors Are Too Small) 막8:27-30  김영봉 목사  2011-07-31 2308
5586 야고보서 두 개의 영적 전립선”(Two Spiritual Prostates) 약2:14-17  김영봉 목사  2011-07-31 2494
5585 요한복음 영생에 이르는 열매”(The Crop for Eternal Life) 요4:3-9  김영봉 목사  2011-07-31 2745
5584 시편 순례길에 오른 캐라반”(Caravan on Pilgrimage) 시133:1-3  김영봉 목사  2011-07-31 2582
5583 요한계시 3 가지 새로움 계21:1  강종수 목사  2011-07-31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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