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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제사장이다”(We Are All Priests)

베드로전 김영봉 목사............... 조회 수 2460 추천 수 0 2011.07.31 23:20:23
.........
성경본문 : 벧전2:1-5 
설교자 : 김영봉 목사 
참고 :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2010.3.14 (김 영봉 목사)

“모두 다 제사장이다”(We Are All Priests)
--베드로전서2:1-5

1.

지난 주일 설교에서 저는 “목사는 제사장이 아니다”라고 말씀 드렸는데, 교우들이 보여 준 반응은 특별했고 또한 다양했습니다. 아마도, 목회자들의 권위주의적인 모습으로 인해 평소에 마음이 좋지 않았던 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혼란스러워 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목회자를 제사장으로 알고 그렇게 대해 왔는데,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태도를 취해야 할 지,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오랜 숙제를 푼 사람처럼 깊은 해소감을 보이셨습니다. 인터넷으로 설교를 들으시는 분들 중에서도 그같은 메일을 보내 오신 분이 계십니다.

그런데 지난 주일 설교는 진리의 반쪽만을 전한 것입니다. “목사는 제사장이 아니다”라는 진리의 다른 반쪽은 “믿는 사람은 모두 다 제사장이다”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특정인이 제사장의 역할을 독점하는 체제를 끝내시고 모두가 제사장의 역할을 하는 새로운 영적 질서를 시작하셨습니다. 보이는 성전을 밀어내고 보이지 않는 성전을 세우셨듯, 그리고 짐승의 피로 드리는 제사를 끝내시고 우리의 삶으로 드리는 제사를 시작시키셨듯, 말씀입니다. 특정 시간, 특정 장소, 특정 인물을 거룩하게 구별하는 것이 율법의 질서였다면, 모든 시간, 모든 장소, 모든 사람을 거룩하게 보고 또한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복음의 질서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주교와 신부만이 제사장이라고 가르치지만, 개신교회는 모든 믿는 사람들이 제사장이라고 가르칩니다. 이것이 ‘만인 제사장직의 교리’(doctrine of priesthood of all believers)입니다. 오늘 읽은 베드로전서의 말씀은 개신교의 ‘만인 제사장직의 교리’가 성서적 진리임을 전합니다. 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십니다.” 9절에서는 믿는 사람들을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부릅니다. 요한계시록에도 같은 뜻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고, 우리로 하여금 나라가 되게 하시어 자기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1:5-6).

2.

저는 지난 주, 한국 교회의 갱신을 위해 가장 시급한 것 중 하나로 ‘목회자들이 제사장의 권위를 내려 놓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과 함께 일어나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한 모든 성도들이 제사장으로서의 신분을 확인하고 그 직분을 기꺼이 짊어 지는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교회 갱신을 위해 목회자가 담당할 몫도 있지만 평신도가 담당해야 할 몫도 있다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모두 다 제사장이다”라는 진리는 우리 모두에게 적어도 세 가지 변화를 요청합니다.

첫째, 이 진리는 믿는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영적 성장을 위해 힘 쓸 것을 요청합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성직자에게 주어진 사명과 평신도에게 주어진 사명이 다르다고 가르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직자에게는 특별한 영적 훈련이 필요하고, 평신도들의 영적 훈련은 그보다 약해도 상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를 제사장으로 생각하는 개신교인들도 비슷한 생각을 합니다. 목사는 영적 생활에 전력투구해야 마땅하지만, 자신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평신도들은 먹고 사는 일에 충실하고, 영적인 일들은 목회자들이 대신 맡아서 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심히 왜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믿는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부르셨습니다. ‘제사장직’의 본질은 이 세상의 구원과 변화를 위해 하나님의 종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렇게 섬기기 위해서는 그만한 영성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파리한 상태에 있는 사람은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목사 안수를 받았다고 자동적으로 그 사람에게 영적 능력이 주어지는 것이 아님을, 여러분은 인정하실 것입니다. 목사로서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그에 상응하는 영적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기준을 목사에게만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목회자에게 기대하는 영적 생활의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해야 합니다.

“목사는 제사장이 아니다”라는 선언을 듣고 동의하신 분들은 이 점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목사에게서 제사장의 권위를 벗기는 것으로 일이 다 끝난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으로서의 소명과 책임을 여러분이 짊어 져야 합니다. 제사장으로서 져야 할 가장 우선적인 책임, 즉 부단히 영적 성장을 위해 전념할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회 교인들을 생각하며 드린 기도가 있습니다. 그 한 대목에서 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모든 성도와 함께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고,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여러분이 충만하여지기를 바랍니다. (3:14-19).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했다면, 그의 직분이 어떻든지 상관 없이, 그분의 능력으로 속 사람이 끊임없이 자라가야 합니다. 이것은 의무이기 이전에 특권입니다. 그렇게 자라가면 먼저 나 자신이 유익을 얻습니다.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고 진리 안에서 기뻐하며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세상을 위해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3.

둘째, “믿는 사람은 누구나 제사장이다”라는 진리는 영혼을 구하고 키우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메시지를 품고 있습니다. 목회는 목사가 하는 것이고, 선교는 선교사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믿는 사람은 누구나 교회 안팤에서 진행되고 있는 하나님의 목회와 선교에 참여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받은 소명을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은혜를 내게 주신 것은, 나로 하여금 이방 사람에게 보내심을 받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게 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방 사람들로 하여금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게 하여,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받으실 제물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롬 15:16)

믿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제사장의 직무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떠나 죽어버린 영혼들을 살려내고, 회복된 영혼들을 키워내는 일을 말합니다. 교회의 사명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교회를 통해 복음을 듣고, 그 복음 안에서 영적 생명을 얻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얻은 새 생명을 키워가기 위해 교회로 모여 예배도 드리고 사귐도 나누고 봉사도 합니다. 그렇게 우리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해 가면서, 우리는 아직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찾아 나섭니다.

따라서 목사와 평신도는 영적 성장을 위해 함께 힘쓰며 동역자로서 목회와 선교에 참여해야 합니다. 물론, 가정과 직장에서의 일로 인해 달리 사용할만한 시간과 에너지가 없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를 통해 영혼을 구하고 키우는 일에 헌신할 자리를, 할 수 있는대로 찾아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 다우려면 자신의 영혼을 가꾸면서 다른 사람의 영혼을 돌보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목사가 필요 없는 교인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감당할 뿐 아니라, 목회와 선교에 참여한 사람들의 삶의 질도 달라집니다.

한국에 있을 때, 어디선가 이런 주제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 어느 장로님께서 저를 찾아와 질문하셨습니다. “교수님, 강의 아주 감명깊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질문입니다만, 만일 교수님의 말씀이 옳다면, 목사만이 아니라 장로도 교회에서 축도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아, 어떻게 이토록 모든 것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해석할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장로님은 다른 장로님이 축도한다고 할 때 기꺼이 고개를 숙일 용의가 있습니까? 장로님께서 축도하겠다고 단에 설 때, 교인들이 기꺼운 마음으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일까요?”

믿는 사람들은 모두 제사장이라는 말은 누구나 교회에서 목사 역할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은사와 직분에 따라 목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라는 뜻입니다. 영적으로 성숙한 장로님이라면, 교회의 질서를 무시하고 나도 축도하겠다고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예를 들었듯,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교인들은 각각의 지체입니다. 모두 다 눈의 역할을 하려 해서도 안 되고, 모두 다 입의 역할을 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입도 있어야 하지만, 냄새나는 배설물을 처리하는 기관도 있어야 합니다. 늘 잘 치장하고 있어야 하는 지체도 있어야 하지만, 늘 옷으로 가려야 하는 지체도 있습니다. 다 각각 맡겨진 곳에서 성령께서 주신 은사에 따라 자신의 역할을 감당해야만 몸이 제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만 교회에서 하는 봉사 활동이 나와 이웃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4.

셋째, “믿는 사람은 누구나 제사장이다”라는 진리는 우리의 직업을 성직으로 받들라는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율법주의는 이 세상에 있는 직업 중에서 몇 가지만을 선택하여 ‘성직’이라는 고결한 이름을 붙여 줍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직업은 모두 성직이라고 가르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직업에 종사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직업을 어떤 태도로 섬기느냐에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을 높이고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 봉사하려는 목적으로 행한다면, 그 어떤 직업이든 성직이 됩니다. 바울 사도는 당시의 노예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종으로 있는 이 여러분, 모든 일에 육신의 주인에게 복종하십시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주님을 두려워하면서, 성실한 마음으로 하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이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이 진심으로 하십시오. (골 3:22-23)

어떤 사람들은 이 가르침이 노예들을 착취하는 주인들의 입장에서 주어진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겉으로 보면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노예 제도가 폐지 되기 전, 얼마나 많은 백인 목사들이 이같은 가르침으로 노예 주인들의 착취를 도와주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바울의 이 가르침은 노예들을 실질적으로 해방시켜주는 ‘영적인 비밀’이었습니다. 노예로서의 소임을 성직으로 알아 “주님께 하듯” 섬기면 그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니라 성직자가 되는 것입니다. 노예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 모든 직업이 그렇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의 뜻을 실천하려 한다면, 그 직업은 곧 성직이 됩니다.

이 진리를 여러분의 직업에 적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거대한 조직에 고용된 말단 사원이든, 개인 사업자든, 아니면 거대한 조직을 운영하는 CEO든, 그 어떤 직업에도 이 진리가 적용될 수 있고 또한 되어야 합니다. 이 진리를 적용할 수 없는 직업이 있다면, 그것은 없어져야 할 직업입니다. 가령, 마약을 판매하는 직업은 어떤 방식으로도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직업에 속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 사회에 악을 확산시키는 직업들은 여기에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그 외에는, 바울 사도가 말한 진리를 적용하지 못할 직업이 없습니다.

은퇴하신 분들의 경우에도 성직자로 살 방법이 있습니다. 인생의 첫 30년은 전반전이고, 그 이후의 30년은 후반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은퇴 후의 시간은 연장전이랍니다. 은퇴하신 분들은 연장전을 선물로 받은 분들입니다. 누구에게나 연장전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선물로 주어진 그 값진 시간을 모두 골프채로 쳐서 날려 보내야 하겠습니까? 그 값진 시간을 거룩하게 사용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4월 말에 ‘실버 선교 훈련’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선교’라는 말에 부담갖지 마시고, 은퇴하신 분들 혹은 은퇴를 앞 둔 분들께서는 이 훈련에 참여하여 인생의 연장전을 값지게 보낼 길을 찾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직업을 구속(redeem)하시기 바랍니다.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우리의 직업을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성직’으로 변모시키시기 바랍니다. 그것을 위해 직업을 바꿀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 직업을 대하는 태도만 바꾸시면 됩니다. 아침에 직장에 나가실 때, 마치 목사가 주일에 예배당으로 나오는 심정으로 나가시도록 마음을 바꾸시면 됩니다. 직장에서 동료들을 만날 때, 목사가 교인들을 대하듯 대하시면 됩니다. 직장에서 손님들을 대할 때, 목사가 우리 교회를 처음 찾은 새 교우를 대하듯 대하시면 됩니다. 직장에서 일할 때, 목사가 예배를 섬기듯 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부단히 훈련해 갈 때, 자신도 알지 못하는 동안에 일을 대하는 태도와 동료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져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며, 자신의 직업을 통해 의미와 보람을 즐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변화가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내 이웃에게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5.

지난 주간에 중국의 한 도시에서 사업을 하시는 분으로부터 메일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마태복음 6장 33절의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구절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셨습니다. 그분의 질문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질문)
“우리의 삶에서 주님의 나라와 주님의 의가 이루어지는 것이 어떤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인지, 알 것 같기도 하지만 명확히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초점을 명확히 하지 못하는 한, 저의 신앙생활이 힘이 없고 항상 불안하기만 하고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같은 신앙생활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 바쁘신 중 이시지만 저의 이 신앙의 안개를 걷고 인생과 신앙의 기준을 제대로 잡아서 한 발자국 내딛고 싶은 절박함을 이해하시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그분의 질문이 매우 진지하고 심각한 것이어서 저는 며칠 후 다음과 같이 긴 답변을 써 보냈습니다. 그 답변의 일부를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자신의 직업 현장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은 곧 자신의 직업을 성직으로 받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회답)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나라’와 ‘의’라는 두 단어 때문입니다.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가 보통 ‘하늘나라’ 혹은 ‘하나님 나라’라고 하면 어떤 공간을 생각할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사용하셨던 아람어에서 ‘나라’를 뜻하는 ‘말쿠트’라는 단어는 ‘다스림’ 즉 ‘통치력’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말은 예수님을 통해 실현되고 있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하라는 뜻입니다. ‘그의 의’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바꾸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라’와 ‘의’는 같은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한 서로 다른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은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다스림을 사모하고 그 다스림 안에 들어가 그분의 뜻을 따라 살기를 힘쓰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이 번역한 <메시지>에 보면 이렇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이 실체가 되시고, 하나님이 주도하시며,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삶에 흠뻑 젖어 살아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의 통치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은 영의 눈을 떠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보고 그 다스림에 자신을 맡기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다스림을 경험합니다. 언젠가,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 우리는 그 다스림을 100%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만,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성령의 임재를 통해 부분적으로 경험하고 삽니다. 그 다스림을 구하고 늘 그 다스림 안에 머물며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이루는 것이 믿는 사람의 삶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냐? 회사를 운영하는 분이시니, 그 상황을 생각하며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회사를 두고 기도할 때, 자신과 직원들 그리고 거래하는 고객들을 하나님의 사랑의 다스림에 맡겨야 할 것입니다. 또한 회사의 소유권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회사의 모든 것을 다스려 주시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회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사장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부단히 찾아야 할 것입니다.

이 경우, 많은 이들이 ‘돈을 많이 벌어 선교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만, 그보다 더 우선적인 것이 있습니다.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신발을 만드는 회사라면, 최선의 제품을 가장 적정한 가격에 생산하고 공급하여 고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회사이니까 적당한 이윤을 남겨야 하겠지요. 하지만 그 이윤에 부끄럽지 않도록 제품과 서비스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회사에 대한 하나님의 일차적인 기대입니다.

회사에 대한 하나님의 또 다른 기대는 모든 직원들이 행복하게 일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출근할 때 직원들이 신나게 걸어올 수 있는 직장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기대입니다. 직원들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도록 배려를 하고, 직장에서 받는 월급으로 가족들을 부양하기에 힘들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운영하는 직장 때문에 한 가족이 걱정 없이 현재를 살아가고 미래를 계획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일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게다가, 그들이 회사를 통해 복음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된다면, 하나님의 기쁨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요. 회사를 통해 얻은 수입으로 선교를 하는 것은 그 다음의 과제입니다. (중략)

이렇게 살다 보면, 하루하루가 복된 날로 변화할 것입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는 말씀은 바로 그런 뜻입니다. 물론, 이렇게 회사를 운영하면 사장 자신의 손에 떨어지는 돈의 액수는 줄어들지 모릅니다. 하지만 매일의 삶 속에서 느끼는 삶의 보람은 몰라보게 달라질 것입니다. 그 보람과 기쁨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보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후략)

6.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불러 주신 제사장들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고귀한 신분을 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율법주의는 우리를 교묘하게 속여서 이 신분을 벗어버리도록 만듭니다. 율법주의의 올무에 빠지면 목회자들이 제사장을 자처하며 권위를 휘두르는 것을 못 마땅하게 느끼면서도 모른 척 그것을 묵인해 줍니다. 그것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평신도니까~”라고 생각하고는 영적 성장을 위한 노력에 게을리 하고, 목회와 선교에 대한 책임을 목회자에게 모두 떠넘깁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직업을 철저히 세속화시켜 편하게 먹고 사는 데 만족하려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쉬운 것은 사실인데, 그것이 결국은 그 사람의 영성을 고갈시키고, 교회를 병들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그르치게 만듭니다.

희망은 은혜의 복음에 있습니다. 은혜의 복음은 우리 모두가 ‘거룩한 제사장’, ‘왕같은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그러므로, 왕같은 제사장 여러분, 그 신분에 걸맞도록 여러분 자신을 준비시키고 또한 여러분의 인생을 바치시기 바랍니다. ‘제사장’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영적 생활에 부단히 정진하십시다. 영적 생활에 게을리 하면서 목사로서의 권위만 주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해 보이던가요? 저와 여러분도 그런 모습으로 전락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원치 않는다면, 우리에게 주신 신분을 귀하게 여기고 그 직분을 다할 수 있도록 영적 생활에 힘 써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자라가십시다.

그렇게 영적으로 자라가면서 주신 은사에 따라 교회를 통해 이루시는 하나님 나라의 사역에 참여하십시다. 목회를 ‘받는’ 수동적인 자세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영혼을 살리고 키우는 일에 무슨 일로든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우리에게 주어진 직업을 성직으로 여기고 모든 일을 “주께 하듯” 섬기십시다. 은퇴하신 분들은 그 값진 연장전의 선물을 거룩한 일을 위해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까지 가야만, 우리는 비로소 ‘전임 제사장’(full-time priest)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많은 이들에게 유익을 끼치지만, 가장 우선적으로는 우리 자신의 인생을 의미와 보람으로 가득 채울 것입니다.

사랑하는 제사장 여러분, 중단 없는 영적 생활을 통해 제사장 다운 ‘영성’이 여러분에게 형성되기를 기도합니다. 제사장 다운 삶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기도합니다. 교회와 세상에서 제사장 답게 살아가는 이들이 넘쳐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위대하고 영원하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시여,
저희를 주님의 고귀한 직분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저희를 도우소서.
제사장으로의 부름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알게 하시고
제사장 다운 영성에 이르게 하시며
제사장 다운 삶을 살도록 저희를 훈련하소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서
복음을 위해 헌신하게 하시며,
저희에게 주신 직업을 성직으로 받들게 하옵소서.
전임 제사장으로의 부르심을 귀하게 여기며
늘 향기로운 삶의 제사를 드리며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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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01 누가복음 침체를 끝내는 법”(How to End the Depression) 눅3:21-22  김영봉 목사  2011-07-31 2364
5600 마태복음 찾고 있습니까?”(Are You Seeking?) 마2:1-12  김영봉 목사  2011-07-31 2443
5599 요한복음 나같은 하나님, 나같은 인간”(God Like Me, Human Like Me) 요1:1-5  김영봉 목사  2011-07-31 2499
5598 누가복음 루저들에게 임하는 성탄의 은혜"(The Christmas Is For the Losers) 눅2:1-1  김영봉 목사  2011-07-31 2961
5597 누가복음 고민을 멈추면 썩는다”(Holy Agony) 눅3:7-18  김영봉 목사  2011-07-31 2382
5596 말라기 금을 연단하는 불같이”(Like a Refiner’s Fire) 말3:1-5  김영봉 목사  2011-07-31 2658
5595 누가복음 인자 앞에 설 수 있도록”(To Stand Before the Son of Man) 눅21:29-36  김영봉 목사  2011-07-31 2515
5594 히브리서 새로운 살 길을 걷다”(We Are On the New and Living Way) 히10:19-25  김영봉 목사  2011-07-31 2439
5593 마가복음 진리는 때로 부담스럽다”(Truth Is Often Burdensome) 막12:38-44  김영봉 목사  2011-07-31 2637
5592 시편 예배가 나를 만든다”(Worship Forms Me) 시24:1-10  김영봉 목사  2011-07-31 3672
5591 시편 따뜻한 관심(Radical Hospitality) 시34:1-8  김영봉 목사  2011-07-31 2436
5590 마가복음 우리에게 부족한 것”(One Thing We Lack) 막10:17-22  김영봉 목사  2011-07-31 2552
5589 마가복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By All Means) 막9:42-48  김영봉 목사  2011-07-31 2889
5588 시편 시냇가에 심긴 나무”(A Tree Planted By the Streams of Water) 시1:1-6  김영봉 목사  2011-07-31 3241
5587 마가복음 우리의 거울은 너무 작다”(Our Mirrors Are Too Small) 막8:27-30  김영봉 목사  2011-07-31 2308
5586 야고보서 두 개의 영적 전립선”(Two Spiritual Prostates) 약2:14-17  김영봉 목사  2011-07-31 2494
5585 요한복음 영생에 이르는 열매”(The Crop for Eternal Life) 요4:3-9  김영봉 목사  2011-07-31 2745
5584 시편 순례길에 오른 캐라반”(Caravan on Pilgrimage) 시133:1-3  김영봉 목사  2011-07-31 2582
5583 요한계시 3 가지 새로움 계21:1  강종수 목사  2011-07-31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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