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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과 절망을 넘어

시편 이상호 목사............... 조회 수 2743 추천 수 0 2011.08.03 14: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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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42:1-5 
설교자 : 이상호 목사 
참고 : 세광교회 
04. 9. 19, 오전
불안과 절망을 넘어
시 42:1-5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사람들은 두 가지 생각을 했었습니다. 한가지는 앞으로 한 세기가 어떤 시대가 될 것인가? 한편에서는 모든 면에서 불확실한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하였고, 다른 한편에서는 고도로 발달하는 과학기술로 인하여 획기적인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더욱이 21세기를 밝게 전망하는 측에서는 생명공학(生命工學)이라는 말까지 사용하면서 인간의 유전인자(遺傳因子)까지 바꿔서 질병을 없애고, 장수(長壽)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그렇게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나타나는 현실은 어떠합니까? 21세기가 시작되는 첫 해부터 예측하지 못했던 전쟁의 공포 속에서 전전긍긍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불행스러운 일입니까? 21세기는 테러와 전쟁과 죽음의 공포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누가 감히 미국 본토의 자본주의의 상징이었던 세계무역회관이 그렇게 무참하게 무너질 줄이야 꿈엔들 생각하였겠습니까?

1. 지금 많은 사람들은 불안한 세상을 낙망하고 살아갑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모두 각자의 마음속에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불안함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현대를 일컬어 “불안의 시대(The Age of Anxiety)”라고 합니다. 시대가 불안하니 사람들도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생활에서도 불안함을 느끼고 직장생활에서도 불안함을 느낍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장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불안 없이 산다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러시아의 대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삶은 공포다. 현재의 모든 것은 공포이며 고통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생 자체가 불안과 공포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느끼는 불안이나 공포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여러 종류의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정보기술의 발달에 따른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서 많은 중년층 남성들은 미래와 또 그 밖의 여러 가지들을 불안해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사이버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또 사회생활하면서 경쟁에 뒤지지 않고 남보다 앞서기 위한 생존경쟁에서 ‘사회 공포증’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집에 일찍 귀가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귀가 공포증’도 있습니다. 부인과의 관계가 나빠지면 귀가 공포증에 시달립니다. ‘도·감청 공포,‘에이즈 공포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인생의 적은 바로 걱정과 불안입니다. 걱정과 불안은 우리에게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병을 일으키고 생활의 발전을 저해합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 말씀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불안과 두려움, 공포 속에 시달리고 편안치 않게 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마음에 평강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봐주시고 지키고 보호하여 주시니까 우리는 염려를 다 떨쳐버리고 평강 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이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불안과 낙심을 다 추방하고 싸워서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할 수 있습니다.(창 15:1)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렘 17:7~8), 성령 충만한 사람(막 13:11), 기도하는 사람(빌 4:6~7)들은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요즘 점점 더 불안해하는 것 같습니다. 세계가 모두 미래를 낙관하기 보다는 불안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나라 안에서도 만족해하는 사람보다는 불안해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① 직업을 잃은 사람들, ② 미래의 대책이 서지 않은 사람들, ③ 경제적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 ④ 질병 속에서 고통 하는 사람들, ⑤ 아들을 군대에 보낸 사람들, ⑥ 입시를 앞둔 부모들, 모두가 걱정과 불안해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삶 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의 요소들은 누구에게나 다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삶의 터전이 불안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시야를 넓게 보면 지구상에 있는 나라들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 안전한 나라라고 그렇게 생각들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모두 미국으로, 미국으로 불안한 한국을 떠나 이민으로 나갔고, 너나 할 것 없이 자녀들을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미국 본토는 한번도 공격을 당하지 않았다고 자부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일 안전한 곳이 어디인가? 미국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돈 있는 사람이나, 능력 있는 사람들은 모두 미국으로 보냈습니다.그런데 요즘에는 어떻습니까? 미국은 물론, 이제 지구촌 어디에서도 불안이 없는 곳은 없게 되었습니다. 특히 미국 사람들은 세계 어디서도 테러의 대상이 되었기에 모두 불안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2. 그러면 오늘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는 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① 돈으로 해소할 수 있겠습니까? 재물로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도리어 돈 관리하느라 더 불안한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② 그렇다고 불안한 마음을 술이나 마약으로 해소할 수 있겠습니까?
술은 불안한 마음을 잠시 잊어버리게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근본 해결책은 아닙니다.
술이 깨면 더 깊은 좌절과 근심과 불안을 낳게 할 뿐입니다.

③ 또 그렇다고 불안한 생각을 무력의 힘으로 해소할 수 있겠습니까?
무력의 힘은 파괴할 수는 있어도 사람의 마음을 안전하게 인도해 갈 수는 없습니다.
도리어 지금 보면 모두 과학의 지식과 기술로 만들어진 것들로 서로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한쪽에서는 지하 수십미터 깊이의 벙커까지 꿰뚫을 수 있는 폭탄으로 퍼붓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과학기술로 만든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을 가지고 맞대응하고 있으니, 이 모든 것이 다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이렇게 그 무엇으로도 인간의 마음의 근심과 불안을 해소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불안한 마음을 해소하는 데는 돈으로도, 술로도, 무력의 힘으로도 불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성경을 보십시다. 오늘 말씀은 고라자손의 슬픈 노래입니다.
* 고라는 모세의 사촌으로 지성소의 법궤와 성소의 상과 등대와 단과 기물을 관리하는 제사장 버금가는 중요한 직분을 담당하는 레위 자손이었습니다. (민 3:29-31)
"레위의 증손 고핫의 자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250인과 함께 일어서 모세를 거스리니라. 그들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거스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분수에 지나도다. 회중이 다 각각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총회 위에 스스로 높이느뇨?" (민16:1-3)

고라는 모세와 아론을 육적으로 보았고 아론의 아들들이 거룩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제사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도 그 옷을 입고 그 자리에서 서서 분향해 보고 싶은 욕망이 발동하여 모세를 거스려 반역하였다가 땅이 입을 벌려 삼켜버리는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 자였습니다.(민 16;31-33) 그래서 고라자손들은 성전에서 완전히 쫓겨난 신세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고라자손이 성전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사모하며 쓴 시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불안을 해소하는 길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뿐입니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근본적인 불안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바라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여기 바란다는 말은 그에게 <소망>을 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는 hope in God 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를 '전적으로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에게는 불안이 엄습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에게 소망을 걸고 있는 자들을 실망시키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서 많은 기적을 행할 때마다 무엇이라고 하였습니다.
① 네 믿음이 크도다.
② 내가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다.
③ 네 믿음대로 되라... 등등 모두 믿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은 사람을 의식하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이 불안해지는 이유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 보다, 사람의 생각들을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인위적이고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겉과 속이 다르게 행할 때, 그런 마음에는 불안이 없어지질 않습니다. 하나님 보다 사람을 더 크게 보는 한 불안합니다.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산(山)이 요동치 않음같이 영원토록 그 자리에 서 있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3. 그러므로 불안한 마음은 하나님을 바라볼 때 새 힘이 주어집니다.
악하고 불의한 세상에 사는 동안 제아무리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려고 해도 악한 자들로부터 조롱과 멸시를 받을 경우들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불신자들은 항상 호의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진실되게 신앙생활을 하려고 할 때, 조롱과 멸시와 그리고 박해 속에 살게 됩니다. 그럴 때 성도들이 이길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것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에 불안이 있는 분들이 계십니까? 현실의 생활에서 낙심되는 일을 맞이한 분들이 계십니까? 오늘의 말씀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라는 말씀을 기억하시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가운데서 역경과 절망의 담을 뛰어 넘으시기를 바랍니다.

4.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 하나님의 도우심을 찬양하라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또는 의식적으로 낙망과 불안이 닥칠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습니다.다윗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나와서 찬송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찬송한다는 것은 감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뻐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것입니다.
시편 56편 4절 말씀에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을 만드시고 천지를 창조하시고 생사화복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사람들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점치는 귀신이 들린 여종에게로 가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러자 그 여종의 주인이 자신의 이익이 떨어짐으로 인해 바울과 실라를 모함하여 고소를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죄도 없는데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였고, 홀연히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모든 사람들의 매인 것이 풀리고 간수가 찾아와 회개하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찬송은 기적을 가져옵니다. 기도는 응답을 가져옵니다. 캄캄한 감옥 속에 들어갔다 할지라도 좌절하거나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면 지진을 통해서 감옥 문이 열리는 역사가 나타납니다.여러분도 찬송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찬송을 부르면 귀신과 병마가 물러갑니다.(삼상 16:23) 우리의 영혼이 새롭게 소생되며(시 22:26), 병 고침을 받습니다.(렘 17:14) 그리고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행 16:25~26)

일이 잘못되어 갈 때 하나님께 찬송하십시오. 찬송은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 줍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함으로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찬송을 부르십시오.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면 하나님께서 실패를 성공으로, 패배를 승리로 바꾸어 주십니다.

바람이 부느냐, 불지 않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고통 가운데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보다도 그 사람이 거기에 대해 어떻게 대응을 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의심의 열매를 맺게 되고, 믿음을 가진 사람은 담대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어느 가난한 지역을 대상으로 무료 건강진단을 실시했습니다. 총 200명의 사람들 중에 교회를 다니는 교인 100명과 불신자 100명이 건강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은 100명 중 40%가 병이 있는 환자였고, 불신자는 100명 중 80%가 환자였습니다.

교인들은 불신자보다 갑절로 건강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분석해보니 교인들은 교회 나가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첫째, 박수치고 찬송을 부르기 때문에 그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넘쳐서 스트레스가 풀리고 전신의 근육과 신경 운동을 하게 되므로 혈액순환이 잘 되니 건강하다고 합니다.

둘째, 교회 나가서 기도함으로 근심과 걱정, 속상함, 불안 등을 해소할 수 있기 때문에 울화병이 안생기고 마음에 평강을 누릴 수 있어 건강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은 속상하다고 술 마시고 싸움을 하는 등 오히려 병을 더 만듭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축복하심으로 건강하다고 합니다. 이 세상을 혼자서 고아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도움을 받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하고 믿음을 가지니 그 사람의 생활이 더 행복하고 성공하더라는 것입니다.오늘 성도 여러분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촌 진흥청의 잠사곤충부 연구관인 이완주 박사가 「음악에 의한 식물 생육 촉진 및 성분 함량의 변화」라는 아주 놀라운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이지만 식물들도 어떤 음악을 들려주느냐에 따라서 잘 자라기도 하고 비뚤게 자라기도 합니다. 논문에 의하면 새소리, 물소리, 소의 울음소리 등 자연의 전원적인 노래를 계속 들려주면 식물들이 바르게 잘 자랍니다. 그런데 소음, 록이나 헤비메탈 같이 시끄러운 음악을 들려주면 식물들이 비틀어져 자란다는 것입니다.

요즘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음악을 들으면 바르게 잘 자라는데 이상한 음악을 들으면 머리모양이나 옷 입는 것, 인상, 화장법까지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좋은 음악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좋은 것만 보시기 바랍니다. 찬송을 부르시기 바랍니다. 음악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찬송입니다. 종일 찬송을 부르는 사람은 얼굴에 기쁨과 평화가 넘쳐납니다.
여러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웃과 함께 나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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