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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동의와 믿음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 10:9~10)
많은 사람들이 믿음에 대해 오해하는 것은
'지적 동의'와 '믿음'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적 동의'를 '믿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단과 그와 함께한 악한 영적 무리들은
영적 세계에 대한 모든 지식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어떤 분이신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사람들을 죄용서한 것도 알고 있으며,
이후에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이 있을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구원이 있지는 않습니다.
쉽게 말해 사단과 그의 무리들은
모든 진리와 영적 세계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들에겐 구원이 없습니다.
그들의 심령은 부패했고 교만해서 하늘에서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신앙생활을 시작해서
영적 세계에 대한 모든 지식이 있을지라도
그가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타락하여 이기적이 된 생명을 그대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와 사람들 사이에서는
성경 말씀과 많은 기도와 영적 체험을 통해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목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자신보다 많이 아는 자들에게 맹종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영적 체험과 영적 세계에 대한 지식이 있다 할지라도
그들의 심령이 여전히 이기적이어서
자기 속에서 난 정욕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성품이 없다면
그들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한 사람을 만나서 그가 식사했는가를 물었습니다.
그가 식사했다고 대답했다고 합시다.
만일 그의 말을 믿는 다면 식사하기를 청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식사를 청한다면 그의 말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믿음은 반드시 그에 따른 행위가 따릅니다.
타락한 모든 사람은 십자가에서 이미 심판받아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이를 믿는 다면 그에 따라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따라 행동하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생명이 십자가에서 죽지 않은 것처럼
전과 같이 행동하거나 말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믿음이 될 수 없는 지적 동의에 불과합니다.
지적 동의는 일어난 사실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그에 근거해서 행동할 수 없게 합니다.
그는 사실을 머리로만 수긍했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구원이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사람에게 임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마음으로 믿지 않습니다. 여전히 옛사람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옛사람인지 살펴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몇년을 했든지, 신앙과 관련된 무슨 일을 하든지,
얼마나 많은 영적 지식이 있든지, 얼마나 많은 공이 있든지
전에 하던 말습관이나 삶의 태도로 알 수 있습니다.
그것으로 분별하기 어렵다면
그가 여전히 사랑받길 원하고, 높아지고 인정받길 원하거나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부로 삼고
다른 것들에 대한 모든 가치가 없어졌는가를 보면 압니다.
믿음을 갖고 난 후에도 자신이 아닌 그리스도로 사는 데에 대한 관심보다는
여전히 보이는 것을 위해서나,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기 위하거나,
보다 훌륭하고 멋지고 나은 삶을 위해 힘쓴다면 옛사람입니다.
그의 믿음은 믿음이 아닌, '지적 동의'에 불과합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5:19-21)
그러나 믿는자는 성품의 변화가 확연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5:22-23)
이는 열심히 기도하고 난 후의 성령의 열매가 아니라,
평상시의 삶의 열매로써 나타나야
믿음으로 변화된 성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 믿음의 도전을 받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려 노력하는 것은
사람의 노력과 애씀이지 성령의 열매는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는 억지에 의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십자가 복음을 믿는 다면
항상 성령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항상 잎이 푸르고
쉬지않고 1년 12달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어떤 한 사람이 믿는지 믿지 않는지는
그의 성품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변화된 하나님의 성품이 없다는
그의 믿음은 '지적 동의' 수준이며 생명이 없습니다.
생명없는 자는 교회나 주님을 위해서 사역할 단계가 아닙니다.
먼저 바른 믿음을 갖는 것이 순서입니다.
이 땅엔 지식뿐인 믿음으로 사역하여
외적 성공을 거둔 자들을 어디서나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두려운 사실은
소경이 되어 많은 소경을 인도하는 것은
그 많은 자들을 더욱 멸망의 구덩이에 인도할 뿐입니다.
바른 믿음이 없는 사역은 적그리스도의 일과 다름없습니다.
만일 성령의 열매가 영적으로 상기된 상태에서나,
말씀에 도전받거나 기도에 힘쓴 결과가 아닌,
비신자들과 섞여 사는 삶 속에서
자신의 성품으로써 나타나지 않는다면 지적인 믿음일 뿐입니다.
'자기 죽음'이라는 십자가를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면 타락하고 이기적이고 정욕적인 자신이 나타나지 않고
그리스도가 주재하여 그리스도 자신을 드러내는
아름답고 멋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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