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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하지 않을 권리를 포기합시다

고린도후 최용우............... 조회 수 1886 추천 수 0 2011.08.06 13: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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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고후2:5-11 
설교자 : 홍만조 목사 
참고 : 2011.7.24 새길교회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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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용서하지 않을 권리를 포기합시다

(고린도후서 2:5-11)

2011년 7월 24일 주일예배 말씀증거

들풀 형제(홍만조 목사)

 

사랑과 용서라는 단어를 교회만큼 많이 사용하는 곳은 드믑니다. 그런데 사랑과 용서의 실천이 교회만큼 인색한 장소도 없습니다. 소위 스스로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상처를 준 사람에게 보복하지 않고 그를 용서하는 것이 사랑의 완성이란 것쯤은 잘 알지만 여러 가지를 이유로 실천하는 데 아주 인색합니다. 한번 마음이 상하면 서로 쳐다보지도 않더군요.

 

나름 열심인 사람일수록, 신앙 연륜이 긴 사람일수록, 이런 면에 약하다는 것과 이런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파장이 크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사단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로를 정죄하게 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로 반목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을 슬프게 합니다. 이러한 사단의 전술에 패배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렸던 고린도교회를 향한 바울 선생님의 가르침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1. 공동체에 혼란이 엄습할 때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세운 곳으로 1년 6개월을 머물렀던 애정이 깊은 곳입니다. 그런데 공동체를 조종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신앙과 삶의 유형에 따라 여러 파당이 생기더니, 지난날 바울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던 일을 끄집어내면서 그가 전한 복음조차 거부하면서 그의 인격과 사도됨에 대해서 공격하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나타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2번째 권면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것이 고린도전서입니다.

이 편지에 대해 비웃는 자들에 대하여 어조로 책망하지만, 회개한 자들은 품고 용서하라는 내용을 담아 편지한 것이, 오늘의 본문이 담긴 고린도후서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해결되어 모든 게 제 자리로 돌아왔으나 아직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문제를 일으킨 그 사람이 심한 비난을 받고 위기에 몰려 고린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같이하기가 어렵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공동체를 시끄럽게 한 그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도 문제거리였습니다. 해결 방법으로는 공동체를 어지럽게 했으니, 공동체를 떠나라는 조치도 설득력을 얻고 있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은 고린도 신앙공동체 앞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했습니다.

(고후 2:5) “누가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면, 실은 나를 마음 아프게 한 것이 아니라, 과장하지 않고 말해서, 어느 정도는 여러분 모두를 마음 아프게 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바울은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들을 용서했으며 더 이상 마음에 담아두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공동체 안에서 한 짓에 대해서는 제재가 필요하지만 무거운 조치를 내리지 말고 알아들을 만큼만 권면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인간은 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만든 쓴뿌리를 안고 살게 되면 언젠가는 분노가 되어 가해자에게 보복을 하려합니다. 보복하는 그 순간, 정의감과 영웅심의 쾌감을 만끽하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설명하려 하는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바울이 이런 제안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예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아 전도사역자가 되었음을 잊지 않고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왜곡된 영성과 비정상적인 열정 때문에 교회를 박멸하려 했던 자기를 포기하기 않고 찾아오셨던 주님이 생각났습니다. 바울은 자기 같은 사람도 용서하시고 돌아 설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신 주님의 그 분의 사랑을 닮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살고 싶었습니다. 그랬기에 자신의 아킬레스 같은 과거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그들이지만, 공동체가 추구하는 존재의미를 혼란스럽게는 하는 그들이지만, 힘들더라도 용서하고 순례자의 좁은 길을 함께 갈 기회를 주자고 제안할 수 있었습니다.

 

2. 우리는 용서를 받은 자니, 힘들더라도 남을 용서하기를

 

바울은 힘들게 했던 사람에게 돌아설 기회를 주기 위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고후 2:6) “여러분 대다수는 그러한 사람에게 이미 충분한 벌을 내렸습니다.”

여러분! 공동체가 추구하는 가치관을 헤칠 때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조치는 사랑으로 용납한 다음, 권고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가르쳐 주는 용서방법을 실천했다는 한국사회와 기독교가 이렇게 모질고 살벌하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파집니다. 바울의 계속되는 권면입니다.

(고후 2:7-8) “그러니 여러분은 도리어 그를 용서해 주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지나친 슬픔에 짓눌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그에게 사랑을 나타내어 보이기를 권합니다.”

28절은 원어 성경에 더 가깝게 번역한 공동번역으로 소개해 드립니다.

<공동번역> (고후 2:8) “그러니 여러분은 부디 그에게 사랑을 다시 베풀어 주십시오.”

그러나 용서(forgiveness)와 위로(comfort)는 범죄한 자의 회개를 전제로 함을 잊으며 곤란합니다. 잘못을 범한 사람이 진정으로 뉘우치고 고치고자 하는 모습이 역력한데도 불구하고 그를 궁지로 몰아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설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잘못에 대한 뉘우침이 있을 때는 그의 잘못을 용서하고 오히려 위로하는 것이 공동체의 바른 영성이란 말입니다. 그렇게 실천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고 경험하게 하란 말입니다.

저는 남은 생애동안 힘들고 어렵겠지만 이렇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가 회원으로 있는 공동체의 가족들의 덕목 중에 한 가지가,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을 이해하고 용서하며 살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성령님께 간구합니다.

 

3. 용서는 사랑의 완성이니

 

(고후 2:10) “여러분이 누군가를 용서한다면, 나도 그 사람을 용서하겠습니다. 그리고 용서할 일이 있어서 내가 용서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 앞에서 여러분을 위해서 용서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내용은 공동체에 큰 혼란을 일으킨 사람을 정죄하고 있는 교인들 중에는, 바울을 비난하던 자들 편에 서 있던 사람도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자신은 마치 공동체에 혼란을 일으킨 적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용서받을 짓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남을 용서하라고 가르치셨지, 남에게 용서를 받으라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남을 용서하는 것은 권리이지만, 용서 구할 것이 있다면 부끄러운 겁니다.

우리는 자신의 잘못과 상관없는 억울하게 당한 고통을 복수하고 싶어 합니다. 그 보복을 이룰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분노가 폭발합니다.

이런 분노의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찾아 평생을 헌신한 분이 있습니다. 남아프리카 출신의 임상심리학자로서 스트레스와 우울증의 권위자인 아치볼드 하트 박사입니다. 그분의 책, ‘숨겨진 감정의 회복’ 중에 나오는 구절을 소개합니다.

“용서는 앙갚음하려는 욕구를 포기하는 열쇠이다. 용서는 상처 입고 분노하는 마음을 위한 해독제다. 보복하려는 충동에 이보다 더 만족스러운 해결책은 없다. 용서는 상대방이 내게 상처를 줄 때 앙갚음할 권리를 내려놓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배푸신 하나님의 용서를 기억하는 것보다 용서하는 마음을 더 효과적으로 갖게 되는 것은 없다. 용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이지 원수를 위한 것은 아니다. 복수심과 증오심으로부터 지유하라. 우리는 자유케 된 사람이다.”

용서는 용서받는 사람만 자유롭게 하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용서하는 자신의 가슴에 웅크린 화를 녹여 내리고 상처와 모욕을 씻어줍니다. 그래서 용서의 최고 수혜자는 상대방이 아니고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언젠가는 다른 사람들이 준 상처보다 내가 타인에게 입힌 상처를 더 많았음을 깨닫는 날이 올 것입니다.

(고후 2:11) “그렇게 하여 우리가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으려 하였습니다. 우리는 사탄의 속셈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해를 끼친 사람도 용납하고 다시 사랑하라 하시는데, 사단은 우리에게 그들이 참회할 때까지 반목하고 분리하며 상종하지 말라고 합니다. 용서는 예수님의 삶을 따르기 위함일 뿐, 용서를 받아들이는 상대방의 반응 여부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영적전쟁에 패배하지 않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싶다면, 어렵고 힘들지만 주님의 용서하는 마음을 따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통을 준 사람의 죄를 더 이상 거론하지 말며 머리와 입술에서 지워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간혹, 세월이 흐르면 언젠가는 용서하게 되리라고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연약함을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묵은 원한은 보복의 크기를 자라게 할 뿐입니다. 그래서 집단적 용서는 복잡하지만 개인적인 용서는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개인의 용서가 확산될 때, 집단적인 용서가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60년 전, 한국전쟁의 기억 때문에 용서하는 것이 아직도 힘들어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 역시 연약한 형제임을 이해하면서 이 땅에 평화심기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용서의 덕목을 민족의 가슴에 심어가는 역할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먼저 깨달은 기독교인들과 신앙공동체 안에서 먼저 실천해야할 과제입니다.

(나의 스숭이야기) 저는 오늘 저에게 용서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 한 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제가 그분을 만났던 때는 1988년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소속 교단의 교육부로부터 1989년 ‘성숙한 교회와 통일교육’이라는 주제로 고등부 여름성경학교 교제를 집필을 의뢰받게 되었습니다. 5번에 걸친 수정과 조절로 마무리된 원고가, 문 목사님의 방북의 여파로 저의 글이 ‘신앙을 가장한 불온 용공 좌경세력의 의식화 교육 문서'라는 긴 제목으로 매도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목사로 있던 노회와 교회에서 쫒겨나 경북 안동으로 갔습니다.

학생교제에 통일을 염원하는 문익환 목사님의 통일을 염원하는 시(詩)‘개똥같은 내일이야 꿈 아닌들 안 오리오.’라고 시작되는 꿈을 비는 마음’을 실었고 교사지침서에는 ‘한국전쟁의 피해 통계’를 KNCC 자료를 인영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유배되듯 2년이 지난 어느 날, 안동교도소로부터 설교를 부탁받았습니다. 당시 그 교도소에는 3범 이상 청송감호소에 가기 직전의 재소자가 대부분일 만큼 살벌한 곳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가죽 명찰을 달고 있는 수척한 분에게 예배 내내 마음이 갔습니다. 그는 1986년 여름, 38일간 죽음의 지하실에 지내는 동안 공안당국이 조작한 소위 ‘서울대학교 진달래 사건’의 피해자 이병설 박사님이었습니다.

저는 이 박사님이 좋아하는 김밥과 닭고기를 준비해서 2달 동안 매주 특별면회를 하였습니다. 서로의 아픈 상처를 이야기할 만큼 가까워지자 그는 담당검사가 북한에 가서 노동당에 가입했다고 말만하면 풀어주겠다는 말을 믿고 그렇게 진술했는데 형이 확정되자 그 검사는 그런 약속한 적이 없다고 잡아떼더랍니다. 이 말을 하면서 평소 의연하던 분이 그 날은 동생 같은 저에게 안겨 꺼이꺼이 우셨습니다.

그 날, 자신이 유아세례교인이었을 밝히고 입교되기를 원했습니다. 교도소에서는 개인지도를 허락할 수 없다면서, 10년 이상 형을 받은 30명의 재소자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하는 것을 조건으로 허락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2시간 씩 주 2회 만남을 2년을 하는 동안 이 박사님은 입교를 하였고 전원이 안동지역 목회자들에게 세례문답 후 세례를 받았습니다. 통곡과 눈물이 가득 찬 예배였습니다.

그러나 ‘문민정부’가 용단을 내려 이인모 씨가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게 되자, 이 박사님은 형기의 2/3를 넘긴 자신이 특사로 출소되기를 설날, 삼일절, 광복절, 추석, 성탄절마다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 소망은 점점 더 큰 절망이 되어 돌아 왔습니다. 그러던 1995년 10여년의 옥살에서 얻은 폐암이 말기가 되자 형집행정지로 출소하여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제가 병원으로 면회를 갔을 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홍 목사님! 저는 그동안 미워하던 사람들을 이제는 다 용서합니다. 목사님도 남은 세상은 용서하지 못한 권리를 포기하며 사십시오.”

그는 고통 속에서도 예수님처럼, 스데반처럼, 원수를 용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분이 국가권력이라는 거대한 세력 앞에 미약한 자신의 몸부림을 포기하고 멋지게 죽기 위해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말을 하실 때 비록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지만 그 분의 눈은 평온했으며 얼굴을 맑았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뵙는 것 같아 큰 도전을 받고 돌아왔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 며칠이 지나 유난히도 무더웠던 7월말 이맘때 쯤, 뼈아픈 한을 품은 채 이 땅을 떠나셨습니다. 그 분이 주신 말씀은, 치유되지 못한 상처 때문에 분노가 폭발할 때 마다, 저를 잠잠케 하였습니다. 지금도 용서한 삶에 관한 한 이병설 박사님은 저의 선생님이십니다.

 

(이야기) 증오와 분노로 가득한 세상에 사람답게 살 수 있기를 염원하며 쓴 소설이 있어 소개하려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작가이자 코미디언인 앤디 앤드루스(Andy Andrews)가 2006년 멕시코 만의 섬에서 있었던 사실을 바탕으로 ‘용서에 관한 짧은 필름’이란 장편소설입니다. 그 소설에는 2차 대전 때 독일군에게 학살된 남편을 가슴에 묻고 외딴 섬에서 증오의 상처를 안고 사는 여인 헬렌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헬렌은 어느 날, 총에 맞아 생명이 꺼져가며 그 섬 해안가로 떠밀려온 요제프란 청년이 독일군이라는 것을 알고는 분노의 주먹을 날립니다.

요제프는 그런 헬렌 앞에서 그저 미안하다는 말을하며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헬렌은 원수인 요제프에 대하여 증오를 드러내면서도 치료해 주는 동안 성자가 되어갑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헬렌의 입을 통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분노에 집착하는 건 네가 독약을 마시고 다른 사람들이 다 죽기를 기다리는 거야!"

여러분! 남을 용서한다는 것이 아주 어렵다는 것은, 증오와 분노에 밤을 지새워 본 분들은 공감할 것입니다. 작가는 이런 말로 이 소설의 의미를 정리합니다..

‘살면서 화를 다스리는 일처럼 어려운 일은 없다. 한마디로 불가능하다.

해결의 방법은 용서하는 길밖에 없다.“

앤디 앤드류스는 관용과 용서를 행할 수만 있다면 누구든 성자가 될 수 있다고 독자들을 설득합니다. 작가는 그 작품에서 다운증후군으로 30살 되었어도 어린아이의 지능인 '대니'의 입을 빌려 말했습니다.

"용서는 용서하려는 그 대상을 하나님께 맡겨버리는 거다."

(옛 교훈) 명심보감(明心寶鑑)나오는 말입니다.

용서할 줄 알아야 사랑할 줄도 안다. 용서는 내면의 평화를 열어주는 열쇠이다.

먼저 용서하라. 먼저 용서하는 사람이 이기는 게다. 용서받는 사람보다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라.

저는 이 글을 사랑하는 두 아들의 영혼에 거듭 새겨 주며 살고 있습니다.

모두를 위해서 용서를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살다가 가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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