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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본문 : | 고후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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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 참고 :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
고린도후서(33) 풍성하신 하나님 (고후 8:9)
< 풍성하신 하나님 >
이런 주장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난하게 사셨기에 우리도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그 주장에 의하면 마치 부자가 되는 것이 죄악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그 반대 말씀도 많습니다.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우리를 부요케 하시려고 가난하게 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예수님이 문자적으로 정말 가난하게 되었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영적인 의미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살 집도 없이 노숙자처럼 찢어지게 가난하게 사신 것으로 오해하지만 실제로는 예수님도 살 집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세례 요한의 두 제자들이 예수님의 거처를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와보라!”고 하자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 예수님의 거처로 가서 하룻밤을 묵었습니다(39절). 이 말은 예수님의 집이 손님 둘을 재워줄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 집에서 예수님은 적어도 여섯 명의 동생과 함께 살았습니다(막 6:3).
마태복음 8장 20절에 나오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는 말씀도 실제로 예수님이 집이 없었다는 말씀이 아니라 복음 증거를 위해 가정을 떠나 여기저기 분주하게 다니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집이 없었으니 성도도 집 없이 청빈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맞지 않는 말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일행에게는 돈궤가 있었는데 그 돈 궤를 맡은 사람은 가룟 유다였습니다(요 12:6). 그 돈으로 명절에 쓸 물건도 샀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도 했습니다(요 13:29). 즉 예수님은 돈 없이 살지 않고 구제도 하면서 당당하게 사셨습니다.
어디서 그 돈이 생겼을까요? 변화 받은 사람들이 물질을 드렸습니다. 예를 들어,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수산나가 물질을 드려 예수님의 복음 사역을 도왔습니다(눅 8:1-3). 특히 헤롯왕의 금고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가 물질 문제의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을 것입니다. 그런 여러 성격적인 증거들을 볼 때 예수님이 찢어지게 가난했으니까 성도들도 물질을 악으로 규정하고 가난하게 살아야한다는 주장은 잘못입니다.
< 풍성한 삶의 축복 >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예수님의 옷이 통으로 된 고급 옷이었기에 로마 군병들은 제비뽑기로 그 옷을 서로 차지하려고 했습니다(요 19:23-24). 그 말은 예수님은 넝마조각과 같이 다 떨어진 옷을 입고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면서 복음을 전하러 다니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역자는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성경은 가난하게 살아야 은혜로운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몇 번이나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창조 세계가 풍성했다는 말입니다. 에덴동산도 풍요로운 동산이었지 가난한 동산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범죄 후에 저주의 가시와 엉겅퀴로 가난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이 원래 가난을 주신 것이 아니라 범죄 후에 가난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인식하고 가난을 극복하려는 믿음과 소망을 가지십시오.
믿음의 조상 중에는 물질적인 축복을 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육축과 은금이 풍부했습니다(창 13:1-2). 그 아들 이삭도 복을 받아 거부가 되었습니다(창 26:12-14). 야곱도 형 에서를 피해 요단강을 건널 때는 지팡이만 가지고 건넜지만 나중에는 두 떼의 큰 무리와 물질을 가지고 귀향합니다(창 32:10). 그처럼 성도는 영혼뿐만 아니라 생활도 나아지기를 힘써야 합니다. 구원의 축복에는 풍성한 삶의 축복도 약속되어 있습니다. 가난이 저주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도는 가난을 탈피하려고 부단히 힘써야 합니다.
출애굽기 1장 12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지만 나중에 애굽사람들이 두려워할 정도로 창대케 되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약속합니다(출 3:8). 그처럼 하나님은 자녀들을 풍요의 세계로 인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마음도 풍성하고, 생활도 풍성하고, 정신도 풍성하기를 추구하십시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축복은 헌신으로 받습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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