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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빛

요한복음 김필곤 목사............... 조회 수 2482 추천 수 0 2011.08.20 14:2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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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1-5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사람들의 빛
요1:1-5

내비게이션이 없던 옛날에 어느 목사님께서 부흥회 강사로 낯선 도시를 방문하였답니다. 교회를 찾지 못한 목사님은 차를 세우고 지나가는 노인에게 물었답니다. “저, 혹시 중앙교회가 어딘지 아십니까? 여기서, 제일 큰 교회라고 들었는데..... ” “바로 뒤에 놔두고도 몰라?” 교회를 바로 뒤에 두고 찾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도 이 목사님이 전도하려고 할아버지에게 “혹시 교회에 나가십니까?”라고 질문을 했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역정을 내며 “난, 교회를 싫어해!”라고 했답니다. 목사님은 친절하게 “할아버지, 오늘 저녁에 시간이 있으시면 제 설교 들으러 오세요. 제가 천국 가는 길을 가르쳐 드릴게요.” 그러자 그 할아버지는 코 방귀를 뀌며 중얼거렸답니다. "바로 뒤에 있는 교회도 모르는 놈이... 천국 가는 길을 어떻게 알아? " 우리 성도님들이 오늘 교회에 나와 경건하게 예배를 드리는데 혹시 천국 가는 길을 알고 있습니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오늘 돌아가신다면 천국에 가겠습니까? 지옥에 가겠습니까?
하나님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죽으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를 통하여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 말씀하신 것도 천국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4:17)” 예수님은 이 땅에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었으며(마4:23)“ 천국 가는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가 죽어 눈을 떠 보니 천국에 가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너 어떻게 이 좋은 천국에 왔느냐?”라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40)”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요 6: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4:6)”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면 구원함을 받습니다. 영생을 누리고 천국에 갑니다. 다시 한 번 물어 보겠습니다. 오늘 밤 돌아가시면 천국에 가 있겠습니까? 지옥에 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어떻게 천국에 왔냐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행 16:31)”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9)”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행 4:12)”
믿습니까? 아멘으로 신앙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1:20)”
교회는 다니지만 “아멘”도 하지 않고 잘 믿지 않는 며느리가 있었다고 합니다. 결혼 한 지 5년이 지나도 아이를 갖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교회에 데리고 가면서 당부했답니다. "아가야~ 목사님이 기도하실 대 무조건 '아멘' '아멘' 해야 된다. 그러면 원하는 아기를 가질 수 있단다." 목사님의 기도가 이어졌지만 며느리는 "아멘" 이란 말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다급해진 시어머니가 며느리 대신 연신 "아멘!, 아멘!" 을 외쳤답니다. 결국 기도는 응답이 되었는데 몇 개월 후......시어머니가 그만 임신을 해버렸답니다. 누가 지어낸 유머겠지요.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아멘”으로 믿고 그대로 될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마음 자세가 달라지고 태도가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집니다. 고백이 달라지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사랑할 때 “사랑합니다. 결혼해 주세요.” “예 저도 사랑합니다.” 단순한 것 같지만 그 고백이 평생을 바꾼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 가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 스스로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니까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옹졸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지성적이지 않게 보이는 것입니다. 배타적이고 독선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편협하고 유치하게 보입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면 지성인에서 벗어나는 사람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도덕적 선생이나 심오한 진리를 말하는 종교 지도자 정도로 여기고 싶어 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오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Ⅰ. 오늘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예수님은 시간의 창조주로 선재하셨습니다(1).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몸을 입고 있는 인간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육신적으로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때부터 존재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창조되기 전 영원부터 계셨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존재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태초는 창세기 1장 1절에 나오는 태초와 다른 말씀입니다. 창세기 1:1에서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고 말씀할 때 태초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포함한 이 세상의 시작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우주공간이 만들어진 때와 세상의 시간이 시작된 때를 말합니다. 그러나 요한복음에 있는 태초는 시간이란 개념을 초월한 의미로 시간과 공간이 창조되기 이전을 뜻합니다. 곧 만물이 있기 전의 영원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합니다.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5)” 예수님은 모세 전에, 아브라함 전에 계셨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는 예수님의 선재성이라고 합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는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골1:15)”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이 태초부터 계셨다는 것입니까? 로고스(말씀)으로 계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말씀”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의 이해를 돕기 위해 문학적인 수사법인 은유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읽는 사람들이 납득하기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진면목을 보여 주시기 위해 이런 은유를 많이 사용합니다. “① 나는 생명의 떡이다(6:35). ②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③ 나는 양의 문이다(10:9). ④ 나는 선한 목자다(10:11). 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⑥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14:6). ⑦ 나는 참 포도나무다(요15:1)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말씀이라는 형태로 태초부터 계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말씀은 표현의 수단이고, 말씀은 전달의 수단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생각을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하였습니다. 바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분으로 계셨다는 것입니다. 천지 창조를 할 때부터 이미 계셨고(우리) 창세기에 이미 예언하셨고 구약에서도 활동 하셨으며 인류 구속의 성취자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하게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요14:8-9 절을 보십시오.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예수님을 보면 하나님의 전능성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면 하나님의 공의를 볼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1). 계셨다는 것은 존재하기 시작하였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미 존재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곧 하나님(1)셨습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2). “예수님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요10:30)”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요8:19)”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고(요1:2; 8:58; 17:5: 17:24), 어디에나 계시며(마18:20, 28:20), 전지하시며(마17:22-27, 요4:16-18), 전능하시고(마8:26-27, 눅4:38-41) 영원한 생명의 소유자(요일5:11-12)가 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냐는 당시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유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지만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보냐는 것인 인간의 삶에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3. 예수님은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3).
만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지어졌습니다. 새로 번역하면 “그를 통하여”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이 나왔습니다(요10:9, 롬5:1). 예수님은 구원자인 동시에 만물 창조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한 것입니다. 그는 존재 성립의 원인이요, 존재 시작의 원인이요, 존재 형식과 내용의 원이이요, 존재 가치의 원인이요, 존재 의미의 원인이요, 존재의 궁극적 목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 죽은 신이나, 없는 신이나, 악한 신이 아니라, 존재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심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가 없으면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만물 존재의 근원이 예수님 자신이라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8장 6절에 [그러나 우리에게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고 그로 말미암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골로새서 1장 16절에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어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자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장 2절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가 지은 바 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도 요한이 거짓말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주장이 진실 아니면 거짓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거나 믿지 않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16:15)”라는 질문을 받을 때 선택을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거짓 주장을 하였다면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거짓인 줄 알고 거짓말을 한 경우입니다. 이런 때는 예수님의 사기꾼, 거짓말쟁이입니다. 위선자입니다. 거짓인줄 모르고 그런 주장을 하였다면 정신병자입니다.
예수님이 거짓말쟁이 위선자 사기꾼이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정직하라고 가르치면서 자신은 사기를 쳤겠습니까? 예수님이 자신을 따르는 사람에게 헛된 소망을 가지라고 속였겠습니까? 그렇다면 말할 수 없는 사악자입니다. 어리석은 자입니다. 마지막에 십자가 상에서 자신의 거짓을 철회했으면 되었을 것입니다. 거짓말 했겠습니까? 예수님이 거짓말을 했다면 일관성있게 계속적으로 거짓을 가장하고 살 수 있겠습니까? 예수처럼 살았고 예수처럼 가르쳤고 예수처럼 죽은 누가 거짓말쟁이가 될 수 있겠습니까? 예수가 선포되는 곳마다 악한 사람이 선해집니다. 국가가 발전하고 도둑이 정직해 집니다. 알콜 중독자가 변하고 증오가 사랑으로 변합니다. 거짓말 장이에 의해 이런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정신병자이겠습니까?
스스로 하나님이라고 착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종종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정신병동). 그러나 정신분열증에 걸리면 현실을 도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심오하고 정신적 압박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겸손했고, 수많은 사람의 추앙을 받으면서도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 십자가의 길도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만큼 건강하고 영향력이 있는 말씀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정신적으로 예수님처럼 건강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예수님의 주장대로 진정 하나님이십니다. 지성인들은 예수의 신성이나 그의 부활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습니다. 과학적인 증명은 어떤 사실에 의문을 가진 사람 앞에서 그 사건을 반복함으로 그것이 사실임을 입증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방법은 아닙니다. 어제 저녁에 텔레비전을 보았다는 것은 과학적 방법이 아니라 법적-역사적 증명을 통해 사실임을 입증할 수 있습니다. 법적-역사적 증명은 세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구두증언과 문서상의 증거 그리고 증거물입니다. 과학적인 방법은 오직 반복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증언은 법적-역사적 증명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수많은 증거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구주라는 사실은 증거가 부족하여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믿기를 꺼리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자들에 대하여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시10:4)”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시14:1)”라고 말씀하신다. 어리석음과 교만이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예수님은 시간의 창조자로 선재하였습니다. 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구원주이십니다. 메시아 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댄 브라운은 “다빈치 코드”에서 “공식적으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지지하는 상황에서 콘스탄틴 황제는 예수를 인간 세계 너머에 존재하는 신으로 도전할 수 없는 권한을 가진 하나의 실체로 변화시켰다.”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이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억지 주장에 불과합니다. 그보다 훨씬 전에 베드로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 16:16)”라고 고백했습니다. 마르다도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요 11:27)” 의심만은 도마도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요 20:28)”라고 고백했습니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도(ad110) "성육신 하신 하나님......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다“라고 했고 순교자 저스틴(100-165)도 ”하나님의 말씀이 독생자가 되었고 그분은 하나님이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레니우스(177)도 ”성부가 하나님이시고, 성자도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서 나신 그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기록한 요한을 보십시오. 권력욕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격이 활화산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만나 자신의 형제 야고보가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어쩌면 집안 망한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증언하여 인간적으로 이익될 것없는 사람입니다. 에베소로부터 로마로 강제 송환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기름이 끓는 솥에 던져지는 형을 받았다고 합니다. 끓는 기름가마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해를 입지 아니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나자 도미티안(Domitian)은 그를 팟모 섬으로 추방하였다고 합니다. 제자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자 도망간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는 저주까지 하고 부인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사실을 증거하다가 다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야고보는 돌에 맞아 죽었다고 전해집니다. 빌립은 채찍에 맞았으며, 십자가에서 처형되었습니다. 마태는 창에 찔려 살해 되었습니다. 안드레는 십자가의 두 끝을 수직으로 못박혀 죽었습니다. 마가는 몸이 찢기어 순교 당하였습니다. 빌립도, 바돌로매도, 시몬도 십자가에서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도마는 창에 찔려 순교 당하였고, 다대오는 화살에 맞아 순교 당하였습니다. 거짓을 위해 이렇게 순교를 당하였겠습니까? 제자들이 꾸며냈겠습니까? 예수님의 가족을 보십시오.
당시 예수님의 가족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요 7:5)" 막3:21
예수님은 자신을 누구라고 주장했습니까?(요10:36,요14:6-9) 그러나 그 가족이 변하여 오순절 성령이 임하실 때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합니다. 행1:1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을 기도의 대상자로 생각하며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기도합니다. 성령 충만을 받습니다. 육신의 동생 야고보는 초대 교회의 지도자가 되고 야고보서를 기록합니다.
자신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말합니다.

Ⅱ. 예수님을 구주로, 하나님으로 믿으면 그리스도 안에 생명을 얻습니다.
1. 예수님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의 특이한 표현 중에 하나가 [생명]이란 단어입니다. 요한복음은 생명이란 말로 시작하여(1:4), 생명이란 말로 끝맺게 됩니다.(요한복음 20장 31절)
[생명]이란 말에는 비오스란 말과 조에란 말이 있습니다. 비오스란 말은 보통 '생애' '생활'등을 뜻하고 '조에'란 말은 요한복음에 무려 35회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생명의 책'이라고도 합니다.
(1) 죽음과 반대되는 '삶' 그 자체를 뜻합니다. 곧 '영생'을 뜻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사람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를 믿기만 하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는 듣고 믿는 자는 영생을 받게 되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5장 29절에는 '생명에 이르는 부활'이 있고 '심판에 이르는 부활'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8절에는 [예수께서 생명을 주시는 자는 결코 멸망치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생명은 사망과 심판을 물리칩니다.
(2) 이 생명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요, 그를 믿는 신자의 생명입니다. 요한복음 6장 57절로 58절에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나도 아버지로 인하여 살고...]라고 하였습니다. 또 다시 말하기를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는 창조의 근원이시요, 생명 그 자체를 실제로 계시하신 자요, 우리의 생명을 값으로 사 내신 분이십니다.(요6:40, 27, 17:2). 우리도 예수로 인하여 살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죽은 자들이 살아납니다. 예수님은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 해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생명, 죽음을 몰아내는 생명, 어두움을 몰아내는 생명,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생명, 죄인을 의인으로 바꾸는 생명,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는 생명, 약한 자를 강한자로 바꾸는 생명, 질병을 건강으로 바꾸는 생명이십니다.
조쉬 맥도웰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예수를 종교라고 하는가?”의 저자입니다. 전세계적으로 1천 5백만 부나 팔린 책입니다. ccc 간사가 되어 84개국 700여개 대학에서 1천만명 넘는 청년들에게 말씀을 전한 사람입니다. 110권 이상의 책을 단독 공동으로 저술한 사람입니다. 미국기독교 출판협회에서 선정한 골드메달리언 상을 4번이나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회의론 자였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행복과 자유를 포기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자신의 즐거운 시간들을 망쳐 버리는 지름길로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자신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모임에 참여했다가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했습니다.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구세주로 모셨습니다. 그의 인생은 변화되어 마음에 평안이 찾아 왔습니다. 어릴 때 성적으로 괴롭혔던 사람을 용서하게 되었습니다. 알콜 중독자인 아버지를 용서하게 됩니다. 아버지는 알콜 중독자여서 어머니를 폭행했습니다. 어머니가 너무 심하게 맞아 헛간의 거름더미 위에 누워있는 것을 종종 발견하였습니다. 어느날 친구들을 초대했을 때 아버지를 헛간으로 끌고 가서 묶어 놓기도 했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후 아버지를 사랑하고 용서했답니다. 교통 사고로 입원해 있을 때 아버지는 자신을 찾아와 “조쉬, 어떻게 나같은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니?”라고 물었답니다. “아버지 얼만 전만 하더라도 전 아버지를 많이 미워했어요.” “예수 그리스도를 제 삶에 영접한 후 삶이 변했어요... 아버지의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해요.” 아버지는 그 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시고 완전히 술을 끊고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시면 생명이 살아납니다. 지금도 수많은 생명이 예수님을 생명으로 모시고 변화되고 있습니다.
얼마전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내릴 당시 삼풍백화점 대표이사 사장으로 있었던 이한상씨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지금은 몽골 선교사로 제 2의 인생을 산다고 합니다. 1995년 광복 이후 최대의 인적 재해로 기록된 사건입니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501명이 사망하고 937명이 다쳤으며 6명이 실종되었습니다. 재산피해액도 약 2700억원에 달했습니다. 7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그는 젊은 나이에 부와 명예 등 모든 것을 가진 듯 보였던 그를 사람들은 부러워했답니다. 그러나 한 순간 모든 것이 무너졌답니다. 감옥에서 성경을 읽다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는 어느 날 요한복음 21장 15절 말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에 걸친 예수의 물음은 심장을 때렸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던 모든 게 없어진 뒤 하나님은 제게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답니다. 그 때 그는 '네'라고 답했답니다. 그리고 그는 인생이 변해 16년 째 몽골에서 한 생명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 선교활동을 한다고 했습니다.

2. 이 생명이 사람들의 빛입니다(4).
로고스 안에 있는 생명은 '사람들에게 빛을 주는 운동'이입니다. 여기 빛은 달빛 같은 반사광이나, 별빛 같은 발광체도 아니고 횃불 같은 인위적인 빛도 아닙니다. 여기 빛은 본질적인 빛, 근원적인 빛, 생명 자체의 빛을 말합니다. 빛의 근원, 빛 중에 빛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장 9절에 [참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에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사람들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9장 5절에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2장 46절에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라고 하였습니다.
1) 사람 안에 머무며 영혼의 눈을 뜨게 하는 빛입니다.
2) 이 빛을 받으면 혼돈과 어둠은 물러가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5절에 [이 빛이 어둠에 비추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우리에게 있는 사망과 사탄의 어둠이 물러가 버리게 됩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모두 어두움이요 혼돈 상태였습니다. 예수 없는 인생은 파괴요, 절망적이고. 정욕적이요 마귀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물러갑니다.
3) 이 빛은 앞을 밝히 밝히며 이끌어 주는 빛입니다. 요한복음 12장 46절에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날 때부터 소경된 자는 밝은 세계로 이끌림을 당했습니다. 38년 된 베데스다 못가의 앉은뱅이는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나사로는 이 빛의 호출을 받고, 어두운 무덤에서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절망의 베다니에 부활 소망의 빛이 비추었습니다. 역사상에 오고 간 수많은 사람들은 온갖 회의와 불안과 공포와 죽음의 어둠에서 빛이신 예수에게 나아 와 광명의 걸음을 걸었습니다.
4) 이 빛은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는 빛입니다.
이 빛은 어두움이 깨닫지 못했습니다(5).
저 나사렛 사람 예수가 가는 곳에는 어둠, 절망, 불안, 공포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불가능이란 자리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비관과 좌절은 영원히 자취를 감추어 버렸습니다. 그 빛이 오시므로 사망의 어둠이란 절단이 나 버린 것입니다. 이 빛은 사람들에게 믿음, 소망, 사랑을 줍니다. 애굽 바로의 빛, 곧 우상의 빛은 참 빛이 아니었습니다. 바벨론의 황금빛, 헬라와 파사의 은 빛(철학)은 참 빛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철(鐵)빛은 참 빛이 아니었습니다. 결코 사람들에게 있는 철학, 문학, 과학, 예술, 정치 경제 등의 빛은 참 빛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들은 이따금 사람들을 유혹하고 놀라게 하는 일시적 섬광일 뿐입니다. 사람들의 속을 비추어 주지 못합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생명운동이 없습니다. 죽음을 물리치지 못합니다. 참 빛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고 사랑하게 합니다.
작년에 닉 부이치치 간증을 듣고 매우 감명을 받았습니다. 지난 주 그의 책을 읽어 보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팔다리가 없던 아이였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자신의 신체적 장애로 인해 아픔과 절망의 나날를 보낼 수 밖에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에게 예수님의 생명, 참 빛이 있었습니다. 8세 이후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믿음으로 일어섰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서핑을 하고, 드럼을 연주하고, 골프공을 치고, 컴퓨터를 했습니다. 15세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인생이 변한 것입니다. 그는 그 책에서 절망이 희망이 되는 삶을 이야기 합니다. 기적의 주인공이 되라고 합니다. 인생은 믿음의 승부라고 말합니다. 생각이 현실이 되는 삶을 살라고 합니다. 태도를 바꾸면 인생도 바뀐다는 것입니다. 실패가 기회가 되는 삶을 살라고 합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다면 넘어져도 좋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활짝 열고 변화를 환영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을 위한 기회가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한계가 비전이 되는 삶을 살라고 합니다. 그는 그의 행복의 비결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모라라는 구석이 많지만 “나도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그리고 그분의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나를 창조하셨다라는 깨달음이 나의 행복의 비밀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인생을 우울하게 만들고 무엇이 가정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우리를 둘러쌓고 있는 어둠이 무엇입니까?
최근 '1.3 1.3 송가네 공부법'을 쓴 송하성 교수의 간증을 읽어 보았습니다.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상업고등학교에 들어갔답니다. 빛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희망이 없는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시절 교회 가까이서 자취하다 자연스럽게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답니다. 목사님 설교를 듣는 중에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마 7:7-12)'라는 말씀을 처음으로 듣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그 메시지는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게 되었답니다. 학생회 예배 외에도 주일예배를 꼬박꼬박 참석하고, 새벽기도를 매일 나가면서 최선을 다해 공부하기 시작했땁니다. 그는 "그 말씀 하나로 가정에는 혁명이 일어났다"고 말했습니다. 어둠의 가정에 빛이 들어 온 것입니다. 동생들은 "형이 교회 다니면서 달라졌다"며 증거했고, 동생들도 형을 따라 공부했답니다. 그는 2학년 겨울방학 때 청소년 수련회에 가서 다시 한 번 도전을 받게 되었답니다. "여러분들은 이 시대의 요셉입니다. 큰 꿈을 가지십시오. 자신이 품은 꿈만큼 되는 것입니다" 라는 설교를 듣고, 대충 은행에 취직해서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접고, 대학 진학의 꿈을 키웠답니다. 고학으로 대학을 다니며 행정고시에 합격했답니다. 경제기획원과 공정거래위원회, 청와대 등에서 경제 관료를 지냈답니다. 5형제인데 모두 고시에 합격했답니다. 그리스도가 가는 곳에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드러납니다.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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