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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사53: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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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필곤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
십자가의 사랑
사53:1-10
'토리노의 성의(聖衣)'라는 말을 들어 보았습니까?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처형된 다음 매장할 때 몸을 쌌던 수의(壽衣)로 알려진 옷입니다. 이탈리아 토리노 대성당(大聖堂)에 깊이 간직돼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감쌌던 천으로 알려진 가로 1.2m 세로 4.4m의 수의(壽衣)를 말합니다. 이 유물은 1백 년에 네 번 정도 공개된다고 합니다. 20세기에는 1931년과 33년, 78년, 98년의 네 차례만 보여졌습니다. 이것이 공개되는 날 수십만의 순례자가 운집하곤 한답니다. 작년에(2010) 공개되었는데 50명이 한 그룹이 되어 1분씩 본다고 합니다. 한 달 동안 180만이 모였다고 합니다. 1902년에 프랑스의 저명한 의학자인 이브 드라주 박사가 면밀한 과학적 조사를 했답니다. 그 결과 아마포에 스며든 인체의 땀과 향료가 영상을 이룬 것으로 혹심한 고문을 당한 흔적이 그 영상에서 완연하게 담겨 있다고 합니다. 코가 부러지고 오른쪽 볼이 부어올랐으며 오른쪽 눈꺼풀이 찢어져 있고 이마에 흐른 듯한 핏자국이 나 있답니다. 가시 돋친 두 줄기의 채찍에 맞은 것이 분명했고, 흉복부에는 상처가 나있고 어깨로 무거운 짐을 나른 흔적 같은 찰과상이 나 있었답니다. 양쪽의 손목과 발목에 핏자국의 흔적이 있어 못 박힌 자국이 아니라고 반론할 증거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옷이 예수님의 옷이라는 것입니다. 이 옷이 진짜 예수님의 옷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인간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한 것은 사실입니다. 많은 군중 앞에서 옷을 벗김 받았습니다. 로마 군병의 채찍을 맞았습니다. 조롱을 당합니다. 손과 발에 못이 박힙니다. 머리에 가시관을 씌웠습니다. 옆구리에 창을 찔림 받았습니다. 왜 이런 고통을 당했습니까? 반역죄입니까? 절도죄입니까? 우리를 사랑하여서입니다.
롬 5:8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 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최절정 사건입니다. 성경은 예수님 오시기 700년 전에 이미 이 사실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해 놓았습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1.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를 위하여 낮아져 고난 받은 사랑입니다.(1-3)
1)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고난입니다.(2)
(1) 연한 순같은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당시 아무런 정치적 영향력이 없는 다윗의 왕조에서 나셨습니다. 목수의 아들 처녀 마리아의 아들로 나셨습니다. 오해받을 만한 관계 속에서 태어 나셨습니다. 분만실이 있어 그곳에서 난 것도 아니고 부모의 기대와 환영을 받으면서 낳은 것도 아닙니다. 짐승이 잠자는 마구간에서 나셨습니다. 호화로운 요위에 뉘이신 것이 아니라 말 먹이통에 누이셨습니다.
(2) 마른 땅에 나온 줄기 같았습니다. 헤롯의 칼이 기다리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부패하고 타락한 시대에 태어 나셨습니다.
(3) 외모로 보아 흠모할 만한 것이 없이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고운 모양도, 풍채도, 흠모할 만한 아름다음도 없었습니다." 모세나 다윗 처럼 이땅에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사람은 다 위대한 신화가 있고 태어 날 때부터 뭔가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시는데 이렇게 오셨습니다.
2) 멸시를 당하신 고난이었습니다.(3)
(1) 문둥병자 같이 취급당하였습니다.(3)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라는 말이 그 말입니다.
(2) 사람들이 싫어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부귀와 영화를 가지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3) 간고를 많이 겪었습니다. 슬픔을 계속 겪었다는 말입니다.
(4) 질고를 알았습니다. 육체적인 질병을 겪었습니다.
(5) 자기 백성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 멸시를 당하며 이 땅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까? 그것은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사랑 때뿐이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란 이런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멸시를 당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집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을 감수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멸시받고, 천대 받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나의 이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갖은 정서적인 반응이나 호감 정도가 아닙니다. 그 사람을 위하여 고통을 감수하지 않는 사랑을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을 그 사람을 이용할 따름입니다. 나에게 유익이 있을 때만 사랑하는 것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처지로 내려가 감당하는 것입니다.
눅 6:32에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상대방을 위하여 처절한 고통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자녀를 위하여 고통을 감수합니까? 남편, 아내, 이웃, 교회와 국가를 위하여 고통을 감수합니까?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남을 위해 고난받는 사랑으로 사랑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녀를 위해, 부모를 위해, 남편과 아내를 위해, 힘들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이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문둥이 성자 다미안”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번역할 때 다미안이라고 번역하기도 하고 다미엔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실화를 기록한 책입니다. 그는 1840년 벨기에 작은 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신앙을 가지게 되었고 신부가 되었습니다. 하와이 군도에 있는 몰로카이 섬으로 갔습니다. 제주도의 약 1/3 정도 되는 작은 섬입니다. 19세기 나환자 거주 지역이었습니다. 다미엔은(Damien, 1840~1889) 버림받고 상처받은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였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비웃었습니다. "자신은 건강한 몸이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 살지만, 만약 우리들처럼 날마다 몸이 썩어간다면 그렇게 말하진 못할 것이다." 다미엔은 고민에 빠져있었는데 그 때 한사람이 찾아와서 말하기를 “우리는 나병환자이고 당신은 건강한 사람이니까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달라서 안 됩니다.”고 말하였답니다. 이러한 말을 들은 다미엔은 선교를 포기하고 돌아갈까 하다가 하나님께 큰 결단을 가지고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저에게도 나병을 허락하옵소서. 저는 저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라는 기도였는데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손등에서 나병균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손에서 나병균이 발견된 순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그렇게도 기뻐하고 감사하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나병환자가 되었기 때문에 저들과 같은 위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었답니다. 결국 나병환자가 된 그는 그들과 함께 같은 아픔을 가지고 살면서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살아있는 무덤’이라 불리는 땅에 가서 49세의 나이로 죽으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모든 것을 전부 다 바친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지금 나는 완전히 가난한 모습으로 죽는다.” 1965년 하와이 주정부는 다미엔을 하와이의 영웅으로 결정하고 미국국회 의사당에 자료를 전시하였답니다. 저와 우리 성도님이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이런 사랑으로 사랑한다면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 우리 사회가 천국으로 변할 것입니다.
2.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를 위한 대속의 사랑입니다.(4-6)
예수님은 왜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습니까? 성경을 보십시오.
1) 우리의 질고를 지셨습니다.(4)
2)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습니다.(4)
3) 우리의 허물로 인하여 찔림을 당하였습니다.(5) 가시면류관과 못과 창으로 찔림을 당하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의 허물, 나의 교만, 나의 오만, 나의 아집 때문입니다.
4)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상하였습니다.(5) 상한다는 것은 뼈가 부서지는 듯한 처참한 상황입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1)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5) 2) 우리에게 나음을 입었습니다.(5)
하나님은 우리 무리의 죄를 예수님께 담당시켰기 때문입니다.(6) 우리는 길 잃은 양이었습니다. 근시여서 우리를 찾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릇 행하였습니다. 제멋대로 행하였습니다. 죄의 본능대로 살았습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았습니다.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노르웨이에 있는 한 교회의 탑에 어린양의 조각이 있다고 합니다. 이 조각이 세워진 경위는 이렇답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처음 짓고 있던 어느 날 높이 세워진 디딤대 위에서 일하던 인부가 발을 헛디뎌 떨어졌습니다. 가까이 있던 인부는 떨어진 동료가 틀림없이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급히 현장으로 가보니 뜻밖에도 떨어진 사람은 가벼운 상처만 입을 뿐 살아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인부는 마침 이곳을 지나가던 양떼 위로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양들 몇 마리가 깔려 죽고 대신 이 사람들은 살아난 것이었습니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인간을 위해 어린 양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대신 죽으심으로 인간을 구원하셨습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이사야 53:5). 십자가의 사랑은 다른 사람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는 것입니다.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우리고 이 대속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부모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고 있습니까? 아내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고 있습니까? 남편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고 있습니까? 자녀, 교회, 이웃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고 있습니까? 예수님은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 (막 12:33)”라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는 짊어지고 따라야할 것입니다. 장식품이 아닙니다. 이용물이 아닙니다. 자기를 합리화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고 했습니다. 나는 죽고 다른 사람은 살리는 것이 사랑입니다. 다른 사람이 유익하다면 나는 손해 보는 것이 사랑입니다.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 입장에서 나에게 유익한 쪽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3. 십자가 사랑은 죽기까지 순종한 사랑입니다.(7-9)
오늘 본문에는 두 종류의 양이 소개 되어 있습니다. 6절에는 길 잃은 양입니다. 7절에는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양입니다. 십자가에 달리기 위해 고문받고 끌려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그 모진 고문 앞에서 어떻게 하였습니까?
1) 곤욕과 괴로움 속에서도 반항하지 않았습니다.(7) 잠잠한 양같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2) 곤욕과 심문을 당하였습니다(8).
3) 그런데도 강포를 행하지 않았습니다(9) 폭력 앞에 강포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궤사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 모든 것을 순종하였습니다. 죽음으로 순종한 사랑입니다. 얼마든지 로마 군인들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인류 구원사역을 완성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요10:14-15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님의 사랑을 십자가에서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랑입니다.
우리도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랑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차대전이 한창이었던 1943년 1월 22일, 뉴욕항을 떠난 연합군 병력수송선 도체스터호는 904명을 태우고 어둠을 가르며 북으로 향하고 있었답니다. 항해 12일 만에 그 해 2월 3일 55분 독일 잠수함(u-233)이 도체스터 호에 어뢰를 쏘았답니다. 얼마가지 않아 도체스터 호는 어뢰를 맞고 점점 물에 잠기기 시작하였답니다. 도체스터호는 아수라장이 되었답니다. 비상 훈련을 기억해내는 병사는 아무도 없었으며 모두 상대편을 잡고 울부짖었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 네 명의 군목들은 매우 침착하게 구명조끼를 나누어 주며 병사들을 구명정 타는 곳으로 안
내했답니다. 더 이상 나누어줄 구명조끼가 없었답니다. 그 때 군목 폴링이 한 병사에게 물었답니다. “자네 예수 믿는가?” “아니요” 그러자 군목은 자기가 입고 있던 구명 조끼를 벗어주면서 말했답니다. “나는 예수를 믿으니 지금 죽어도 천국 간다. 너는 이 구명조끼를 입고 살아서 꼭 예수를 믿고 천국에서 만나자” 네 명의 군목은 모두 다 자신이 낀 장갑과 구명조끼까지 벗어 병사들에게 주었답니다. 도체스터호에는 점점 물이 차올랐습니다. 자신의 구명조끼마저 병사들에게 준 네 명의 군목은 서로 팔을 끼고 기울어진 갑판에 서서 "내 주를 가까이"라는 찬송가를 부르며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생존한 병사 Grady Clark은 그들의 최후를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내가 본 마지막 장면은, 군목들이 기도하는 모습이에요. 그들은 최선을 다했고 나는 그들을 다시 보지 못했어요. 그들은 자기 자신들이 입고 있었던 구명조끼와 장갑을 병사들에게 벗어 주었어요.” 병사 904명 중 605명이 전사하였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살아남은 수병들이 군목들의 희생을 기억하였습니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이들 4명의 군목 폭스, 구스, 폴링. 웨싱턴을 기리는 예배당을 짓게 했습니다(US Naval Chapel 미해군 예배당) 필라델피아 시에서는 이 용감하고, 희생적인 4인의 군목을 영원히 기념하기 위해서 기념관을 짓고, '4인의 불멸의 군목들'이라는 기념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1992년 뮤지컬 작가 J. Swearinge은 이 이야기를 소재로 "영원한 빛(The Light Eternal)“을 제작 ,공연하여 큰 감동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우리도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이 사랑을 실천하는 주인공이 되지 않겠습니까?
오늘도 주님은 말씀합니다. “막 12:30-31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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