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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자존감이 숨 쉬는 가정

예레미야 김필곤 목사............... 조회 수 3097 추천 수 0 2011.08.20 14:2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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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렘1:4-10 
설교자 : 김필곤 목사 
참고 :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용인) 

건강한 자존감이 숨 쉬는 가정
예레미야1:4-10

‘자존감’이라는 책을 쓴 이무석 교수의 강의를 들어 보았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치료했던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중에 사업에 성공을 해서 부자도 되고, 책도 많이 읽고, 열심히 살아가시는 어떤 부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부인은 가출 것 다 갖추었는데 항상 '고졸'이라는 것에 대한 열등감이 심했답니다. 하루는, 아파트 소장님을 만나러 갔는데, 그 소장님은 어떤 지적인 여자와 얘기하느라고 자기를 미처 못 봤답니다. 자기가 보기에 한눈에 대졸이라는 것이 확실히 느껴질 정도로 지적인 여인이었답니다. 그러자 이 부인은 소장이 자신이 '고졸'이라서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했답니다. 집에 가는 길에 과일가게에 들러서 과일을 만져 보는데, 점원이, 너무 만지지는 말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때 이 부인은 "어떻게 알았지? 자기가 고졸이라는 사실을...”이라고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택시를 타려고 손을 들었는데 운전사가 자기를 못 보았는지 휙 지나갔다고 합니다. 이 때 이 부인은 또 생각했답니다. "어떻게 알았을까? 자기가 고졸이라는 사실을...” 다른 것은 다 남보다 뛰어난데 단지 가난하여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것이 열등감이 되어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를 '자동적 사고'라고 한다고 합니다. 성급한 사고를 하는 것입니다. 현실에는 객관적 현실과 심리적 현실이 있는데 확실한 증거도 없는데 진위를 확인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하여 어떤 마음과 태도,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결론지어 버립니다. 객관적 현실은 상관이 없습니다. 성급하게 사고하고, 지레짐작의 과오를 범하는 것입니다. 제가 눈이 적다고 설교하면 “아 목사님이 쌍거풀 수술을 해 달라고 하는가 보다.”라고 단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잘못된 예측을 확실한 기정사실인 것처럼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과잉확대를 하고 과잉축소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사실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객관적 현실과 심리적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심리적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가족 구성원이 되면 가정이 불행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존감이 부족한 것입니다. 행복하게 살지 못합니다. 자신의 가치를 무시합니다. 병적인 열등감에 사로잡혀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합니다. 늘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자신을 비하합니다. 과도하게 수줍어하고 두려워합니다. 자신에 대해 불만족하고 자신을 사랑하거나 존중하지 못하며 무시합니다. 스스로 자해하고 심하면 자살을 합니다. 잠재적 꿈이나 재능을 마비시키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합니다. 자녀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비난하고 신앙생활도 율법주의에 빠져 규칙과 규제를 지나치게 강조하며 자기 의를 주장합니다. 자기중심적이고 자신의 부족함과 약점을 포장하기 위해 과장하거나 허풍을 떱니다. 직장 상사와 충돌하고 직장 동료들과 싸우기를 잘해 원만한 대인관계를 가지지 못합니다. ‘마음 탐구’의 저자 Gary R. Collins은 가족치료의 영역 가운데 80%가 "자존감의 치유"의 영역이며, 성에 대한 임상치유에 있어서도 약 10%만이 신체적, 육체적 문제의 영역일 뿐 거의 90%의 문제는 자존감과 의사소통의 문제이기에 자기존중은 정신건강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라고 말합니다. 자존감의 문제는 인간의 모든 문제와 같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감정과 생각과 말, 그리고 그의 태도와 행동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광범위하게 이 자존감이 영향을 줍니다. 어린 아이에서부터 청년까지 그리고 장년에서 노년까지 모든 사람들에게 심각하게 영향을 줍니다. 이 자존감이 어떠냐에 따라 가정이 행복해 질 수도 있고 불행해 질 수도 있습니다. 월급 100만원 받으면서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천만원 받으면서도 불행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행기의 퍼스트클레스인 일등석에 앉아서도 그 감격을 느끼지 못하고 속이 상해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코노믹클레스인 삼등석에 앉아서도 감사하며 감격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존감의 문제입니다. 자존감(Self-Esteem)의 회복은 성공의 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자존감이 상실된 것은 물질이 부족해서만도 아니며, 건강이 부족해서만도 아닙니다. 지식이 부족해서만도 아니며, 지혜가 부족해서만도 아닙니다. 또한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해서만도 아니고, 그럴싸한 친구가 없어서도 아니며,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만도 아닙니다. 물론 이것들이 하나의 요소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인 것은 아닙니다. 자존감의 상실은 사고왜곡 때문입니다. 실제 상황과 동떨어진 비현실적 사고를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사고 왜곡으로 인하여, 자신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무가치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죄인의식 사고와 부정적인 사고, 그리고 완벽주의 사고와 열등의식의 사고, 잘못된 율법주의 신앙적 사고 등으로 인하여 상실된 자존감으로 살아갑니다. 자존감이 행복과 불행의 열쇠가 되는데 어릴 때 결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심리상담가인 토니 험프리스 ‘8살 이전의 자존감이 평생 행복을 결정한다’라는 책에서 우리 자존감의 몸통은 8살 이전에 완성된다고 주장합니다. 자존감은 중요한 타인들의 영향, 기질과 성격적인 영향, 사회 환경적 영향에 의해 만들어 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가정에서 부모가 어떻게 아이를 대하고 키우느냐에 따라 거의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들은 5-10% 정도가 되는데 당연히 학교에 가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즐겁게 생활을 하고 성공적으로 인생을 행복하게 산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좌절도 쉽게 이겨내고 사랑으로 충만한 인생을 즐기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자존감’이라는 것입니다.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가정의 자존감의 산실입니다. 건강한 자존감이 숨쉬는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행복한 인생을 살기 위해 건강한 자존감이 숨 쉬는 가정을 어떻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1. 하나님의 시각으로 나의 과거 존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었다는 자기 가치감을 가져야 합니다./과거의 나
자존감은 자기 가치감(존중감)과 자신감으로 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자존감이 높을 수도 있고 낮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동물과 달리 생각하는 능력이 있고, 생각을 고집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물은 새로운 것이 들어가면 옛 것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사람의 생각은 새로운 것이 들어가도 옛것이 없어지지 않고 옛것으로 새로운 것을 해석하고 걸러낼 것 걸러내고 받아들일 것 받아들입니다.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만 받아들입니다. 어떤 것을 합리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합리화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할 때도 늘 과거의해 생각합니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떤 교육을 받았고, 어떤 경험을 했고 등에 의해 자아의식을 갖게 됩니다. 역기능 가정에서 자랐거나 부모로부터 심하게 구타를 당하고 소외된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 부정적 감정이 무의식 속에 묻혀 열등감으로 형성됩니다. "너는 무능해" "너는 보잘 것 없어" “너는 벌레같은 존재야” “너는 거짓말 장이야” 이런 부정적인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들으면 낮은 자존감을 갖게 됩니다. 과거의 특정한 사건, 사고, 인간관계를 통하여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그 상처는 과거 속에 묻혀서 의식하지 못하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고, 낮은 자존감이 되어 우리의 현재의 삶 속에 감염된 상처처럼 계속 고통을 주며 영향력을 미칩니다. 앞에서 예를 든 여인처럼 모든 것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데 고졸이라는 청소년 시절의 불행한 경험이 그 후 좋은 경험들을 포로로 잡아 그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고졸이라는 안경으로 바라보고 해석해 버립니다. 어릴 때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으며 동물처럼 취급받은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손버릇이 나빠 어머니 돈을 훔쳤습니다. 어머니가 야단치면서 쥐같은 인간 보기 싫다고 꺼져 버리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마음 깊이 자리 잡아 자신을 쥐라고 망상하고 있던 사나이가 마침내 정신병원에 들어가 치료받고 퇴원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병원 출입문에서 발이 땅에 달라붙어 버렸는지 밖으로 나가려고 하질 않았습니다. 의사가 이상해서 이유를 물었습니다. "왜 그러고 서 계시오?" "바로 앞 저기 고양이가 있어요." "하지만, 당신은 이제 쥐가 아니라는 걸 아셨지 않소?" "그건 틀림없습니다만 고양이 쪽에서는 모르고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과거에 발생했던 좋지 못한 사건의 기억이나 어린시절에 우리가 당한 상처 혹은 과거에 지은 특정한 죄 등으로 자기를 부정하고, 우울증, 죄책감, 분노, 수치심, 열등감, 미움 등에 시달리게 됩니다. 과거가 물려준 거짓된 영상의 노예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신앙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과거의 모든 죄가 용서받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믿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믿습니까?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사1:18)”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사 43:25)”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의 모든 과거의 죄와 상처 아픔을 지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하나님도 기억하지 않는 과거를 가지고 끝까지 과거의 노예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자들입니다. 존귀한 자들입니다. 모태로부터 우리를 불러 하나님의 아들 딸 삼아 주었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망해버린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을 가리켜 버러지 같은 야곱이라고 말씀합니다. 지렁이 같다는 것은 비참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들은 과거의 죄 때문에 지금 포로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될 줄을 모릅니다.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직장을 잃어 버렸습니다. 언제 돌아갈지 기약이 없습니다. 모든 논밭을 잃어 버렸습니다. 비참한 상황입니다. 국제 정세도 자신의 나라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지 않습니다. 국제 정세를 보니 바사 나라가 일어나고 그 나라에 대항하여 열국들이 우상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연합하여 국제 패권 다툼을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존감을 갖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에 사로잡히면 자신을 존중하지 못합니다. 나는 실패한 사람이고 나는 쓰레기 같고 나의 미래는 없고 나에 대하여 아무도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8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나의 종이라고 합니다(8).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8). 땅 끝에서 택했다고 말씀합니다. 친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를 싫어하여 버리지 않았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에 대하여 그래 누가 뭐라 해도 나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자존감을 가져야 합니다. 실패하고 잃어버리고 희망이 없는 것같은 상황에 처했다고 할지라도 그래, 그래도 나는 하나님의 종이고 하나님의 택한 사람이라는 자존감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천지를 만드시고 다스리시는 그 하나님이 나를 친구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얼마나 자존감을 살려주는 말씀입니까? 우리 자녀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대하여야 합니다.
모세가 광야에 쫓겨 갔다고 하나님이 모세를 버린 것 아닙니다. 야곱이 삼촌 집으로 도망갔다고 하나님 야곱을 버린 것 아닙니다. 예레미야가 감옥에 들어갔다고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버린 것 아닙니다. 요셉이 감옥에 들어갔다고 하나님이 요셉을 버린 것 아닙니다. 부모는 버리고 형제는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한 번 택한 백성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온 것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여 하나님의 아들 딸 삼았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 세상의 친구들 나를 버려도 나를 사랑하는 이 예수뿐일세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쟎네 온 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449장 1절)
검은 구름 덮이고 광풍 일어도 예수 나의 힘 되니 겁낼 것 없네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쟎네 온 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449장 2절)
괴로운 일 당해도 낙심 말아라 영원한 주 능력이 붙드시겠네 예수 내 친구 날 버리쟎네 온 천지는 변해도 날 버리지 않네 (449장 3절)"
사람이 낮은 자존감을 가지게 되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대부분은 부모의 부정적 영향 때문입니다. 중요한 타인의 영향에 의해 생기는 것입니다. 그 중요한 타인 바로 대부분 어머니와 아버지입니다. 특이 어머니와 애착관계, 유년 시절 부모의 양육태도, 아동시기의 또래와의 관계에서 생기게 됩니다. 자신을 가치없는 존재로 보느냐 가치있는 존재로 보느냐는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토니 험프리스는 자존감은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신의 힘을 믿는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중심축이 있습니다.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느낌’과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입니다. 아이들이 이런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부모들은 신체적 자아에 대하여 “네 몸은 항상 옳다”라고 말해라는 것입니다. 정서적 자아에 대하여 “넌 아무 조건 없이 사랑받는 가족의 소중한 일원이다”이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지적 자아에 대하여는 “네게는 세상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이 있다”라고 하고 행동적 자아에 대하여는 “노력이 곧 재능이며 네 존재만으로도 기쁨이다”라고 하라는 것입니다. 사회적 자아에 대하여는 “넌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다”라고 말하고 창조적 자아에게는 “너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자랄 권리가 있다”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야 합니다. '자기중심성'을 포기하고 '하나님 중심'적으로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죄인일지라도 하나님에 의해 받아들여졌고 소중하게 여겨지며 사랑 받고 있습니다. 자기 비하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의 가치를 부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되기를 기꺼이 포기하십시오. 우리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 용서와 구속의 은혜를 받을 만한 피조물로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관점, 하나님의 느낌, 하나님의 행위에 근거를 둔 자존감이 진정한 자존감입니다. 과거가 어떻든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실 정도로 천하보다 귀중한 지극히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2. 하나님이 함께 현재 부족한 자신을 사용하신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현재의 나
현재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열등감도 가질 수 있고 자신감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낳고 길러주신 부모의 모습이 훌륭하냐 그렇지 못하느냐?,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많은 재산을 소유하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높은 지식을 가졌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능력이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어떻게 인지하는가에 따라서 자존감의 정도를 만들어 냅니다. 자신의 소유에 따라 가치를 판단하고 자신감을 갖기도 하고 못 갖기도 합니다. 자신이 무능력하다고 생각하면 늘 열등감에 사로잡히고 이미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재능을 살리지 못하고 남의 떡만 바라보면서 부러워하고 불평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에 무능한 이스라엘을 향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놀라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늘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 사로잡힙니다. 그 두려운 때문에 무엇을 하지 못합니다. 재능을 썩혀 버립니다. 교회에서 직분 감당하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노릇 어머니 노릇 제대로 하기를 두려워합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합니다. 열등감의 포로가 되어 기를 살리지 못합니다. 왜 하나님 이 연약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붙들어 주십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우리를 도와 주실 것을 약속해 주시고 있습니다.(10,13,14)
그들을 괴롭히는 자들을 어떻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11-13)
그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투는 자들이 결국 멸망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을 치는 자들이 허무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지금 붙들고 있는 문제가 대단히 큰 것 같지만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그것 아무것도 아닙니다. 태산 같은 것도 무너뜨린다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불가능한 것 같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길이 열리고 무너지고 평탄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막 9:23)”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이 고백이 여러분과 저의 고백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능력없다고 두려워하며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여 우리를 도와주면 능력이 생깁니다. 무식한 베드로를 사용합니다. 모세의 지팡이를 사용하십니다. 약점이 결코 약점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약점이 강점으로 되는 것입니다. 무능력으로 고난받은 기간이 결국 낭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시면 고난의 기간은 훈련의 기간에 불과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의 훈련을 25년 동안이나 받았습니다. 야곱은 30여 년을 광야에서, 바울은 3년 반 동안이나 아라비아 사막에서 외로운 광야 훈련을 받았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시나이 광야에서 40년을 다윗은 17여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며 혹독한 훈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 과정을 통하여 우리에게 새힘을 주시고 새 성품 새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약점을 보완하는 것입니다.
자존감은 자기 가치감과 자신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개인의 지능, 신체적 매력, 교육, 재력, 권력, 성취 등에 따라 자존감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자존감의 공식을 욕구분의 성공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성공하면 할수록 자존감은 커진다는 것입니다. 욕구가 크면 클수록 자존감은 낮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패를 많이 하는 사람은 자존감이 낮습니다. 신체적으로 열등한 부분이 있는 사람들은 자존감이 낮습니다. 눈이 작다든지 키가 작다든지 신체적 장애가 있으면 자존감이 낮아집니다. 가난하다든지 교육을 많이 받지 못했다든지 하면 자존감이 낮아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 우리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자신감을 가지고 쓰임받아야 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되면 당한 자존감을 갔습니다. 통수권자의 생각과 행동처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비록 비서실장이지만 통수권자의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모든 사람의 비난을 받는 독재자라면 자존감을 갖지 못합니다. 존경받고 인정받는 지도자라고 본인이 생각할 때 그 분을 모신 것에 대하여 자존감을 갖습니다. 외형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자아가 가지고 있는 자아관이 더욱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외형을 가졌을지라도 그것을 좋지 않게 생각한다면 높은 자존감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가 된 것입니까? 물건은 누가 가지고 있는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3. 하나님이 함께 하여 우리 인생이 좋아 질 것이라는 미래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16)/미래의 나
자존감은 미래 인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인식은 곧 자존감으로 나타납니다. 지금은 연약하지만 치료 받으면 건강해질 것을 믿거나, 지금은 먹고 살기 힘들지만 곧 먹고 살만 해질 것을 믿거나, 지금은 먼 곳에 계신 아버지이지만 조금 기다리면 멋진 모습으로 귀가하실 아버지로 믿거나, 지금은 가난하지만 좀 더 노력하면 큰 재산을 가지게 될 것을 믿거나, 지금은 별 실력이 없지만 이 노력의 결과로큰 실력을 갖게 될 것을 믿거나, 지금은 별 능력이 없는 사람이지만 앞으로 큰 능력을 가질 수 있는 사람임을 믿음으로 인하여, 자신 앞에 올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과 꿈이 있다면, 큰 자존감을 가지게 됩니다. 인간이 가진 실제적인 미래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그 미래를 어떻게 인식하느냐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지금 어렵과 힘들어도 나는 내가 그래도 자랑스럽다라고 생각하면 자존감이 높은 것입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에게 말하는 자신의 말이 더 중요합니다. 늘 자신에게 “너는 빌어 먹을 것야, 너는 실패할 것야, 너의 인생은 별 볼릴 없어” 이런 식으로 말하면 자존감이 결코 높아질 수 없고 미래는 행복하지 못합니다. 내 마음의 믿음이 미래를 만들어 냅니다.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라고 말씀합니다. 내 마음에 행복을 심어 놓으면 행복의 열매가 열립니다. 내 마음에 불행을 담아두면 불행의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에게 자기 위로 기능을 잘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기 비하 기능을 능숙하게 합니다. “괜찮아 잘 될 것야”라고 말하는 사람과 “아무리 해도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의 미래는 천지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모릅니다. 하나님만이 미래의 주인이십니다. 포로로 잡혀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는 생각하면 암담했을 것입니다. 자기 비하를 할만한 충분한 상황입니다. 이제 다 끝났다 어쩔 수 없어라고 한숨 쉴만한 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고 계십니까? 15절을 보십시오. 같이 읽겠습니다.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사 41:15)” 얼마나 희망적인 말씀입니까? 16절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같이 읽겠습니다.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사 41:16)”
우리가 두려워하는 외적 환경을 변화시켜 버립니다. 국제 관계가 변화됩니다. 뜻하지 않게 고레스가 나타나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버립니다. 포로에서 자유함을 줍니다.
지렁이 같지만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는다는 것입니다. 산들을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고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무능력한 자이지만 능력있는 자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포로로 살지만 자유인이 될 것이고 지금은 지배를 받고 노예처럼 살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열방의 나라에서 쓰임받은 나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금 모습이 참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예수님처럼 영화로운 몸으로 부활하여 영원한 천국 잔치에 참여할 날이 올 것입니다.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자랑하는 날이 분명 올 것입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형통하게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사람들이 인정해 줍니다. 가정이 평안해 집니다. 성격이 변화됩니다. 삶이 깨끗해집니다. 입술이 사람들 보기에 좋아 집니다. 아름다워 집니다. 인격의 냄새를 사람들이 즐거워합니다. 자랑하는 일들 즐거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생활이 풍성해 집니다. 이런 날이 올 줄 믿습니다. 우리는 지금 공사중입니다. 어떤 목사님에게 늘 비난을 하는 젊은이가 있어서, 그 목사님은 설교를 하실 적에도 그 젊은이가 너무 신경쓰여서 늘 불편해 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도로를 걷다가, "통행에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공사 중" 이라는 팻말을 보고는,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합니다. "그래, 그 젊은이가 공사 중이어서 나에게 통행의 불편을 주는구나." 그리고, 몇 걸음 더 걸어 가다가, 더 큰 깨달음을 얻으셨다고 합니다. "아. 그리고 나도 공사 중이로구나" 그 뒤로는, 목사님의 마음은 편해지셨고, 목사님과 젊은이는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공사 중인 건물을 보고 비관하지 않습니다. 기대를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 식구들 다 공사 중입니다.
5월 가정의 달입니다. 우리는 건강한 자존감이 숨쉬는 가정을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거울을 보며 하나님 그래도 세상에 쓸 만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한 글자로 말하면 "나" 두 글자로 말하면 "또 나" 세 글자로 말하면 "역시 나" 네 글자로 말하면 "그래도 나" 다섯 글자로 말하면 "아무래도 나" 자만심을 가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교만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다이아몬드를 쓰레기 취급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존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릴 뿐 아니라 풍성하게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나 혼자의 삶도 목말라 하는 삶이 아니라 우리 가정을 통해 그 생명의 풍료로움이 흘러 넘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나의 과거 존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되었다는 자기 가치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현재 부족한 자신을 사용하신다는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여 우리 인생이 좋아 질 것이라는 미래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16)
10절 말씀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3회 반복 너에 자기 이름 넣어).

열린교회/김필곤목사/20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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