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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사53: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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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참고 : | 세광교회 http://sk8404.or.kr |
그리스도의 고난
사 53:4∼6
2005. 3. 20, 종려주일
오늘은 세계교회가 종려주일로 지킵니다. 종려주일이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꺽어들고 환호한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환호하는 승리의 입성, 영광의 입성인 것 같지만 사실은 온갖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을 위한 입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종려주일은 고난주간의 첫날로 이어집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교회는 오늘을 고난주일로 지키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고난은 어떤 고난입니까?
주님이 받으신 고난은
1. 하나님이신데 사람이 되신 고난입니다.
2. 가난하게 되신 고난이며,
3. 목마르게 된 고난입니다.
4. 배고픔의 고난이요
5. 배신당하신 고난이요.
6. 멸시와 천대를 당하신 고난입니다.
7. 의인이 죄를 짊어지신 고난이요
8. 어머니보다 먼저 죽는 고난이며,
9. 찔림의 고난,
10. 상함의 고난입니다.
11. 하나님으로부터 외면당하신 고난입니다.
첫째,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시는 고난
예수님은 본래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으로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가운데 한 분이십니다. 성경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낮아지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와 똑같이 몸의 고통을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구약에서 짐승을 바치는 제사는 대속의 상징이며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지은 죄의 값을 치르기 전에는 속죄받을 수 없으며, 완전한 의인이 아니고서는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성령으로 여인의 몸에서 잉태된, 죄 없고 흠 없는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를 속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심은 섬김의 본을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자신을 높이거나 드러내지 않으시고, 오히려 낮추셔서 겸손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막 10:45).
둘째,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시는 고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허물 때문에 찔리는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성경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사 53: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강제로 가시관을 쓰시게 되었고, 십자가 위에서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히셨습니다. 얼마나 아프셨던지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 즉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그리고 운명하신 후에도 로마 군병의 창에 옆구리를 찔리는 수난을 겪으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그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 19:34)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년에 한 번 오는 사순절과 고난주간에, 우리는 사람의 몸으로 당할 수 있는 최악의 고난을 겪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을 깨닫고, 삶의 방향을 온전히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어 나가야 하겠습니다.
세째,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함을 받으시는 고난
예수님께서 당하신 모든 고통은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에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사 53:5)고 했습니다. 우리의 죄는 죽음으로써만 갚을 수 있습니다(히 9:22). 그 당시 사람들은 이 대속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을 조롱하고 멸시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 53:4)
그런데 예수님께 십자가의 고난을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것은 단지 한 개인의 죽음이요, 실패자의 죽음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6백여 전에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예언된 것입니다(사 53:10).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하나님의 뜻에 의해 죽음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죽음은 전 인류를 위한 우주적인 대속의 죽음이며, 더 이상 피흘림의 제사가 필요없는 완전하고 영원한 대속이었습니다.
넷째, 우리의 평화를 위해 받으신 징계의 고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와 평화를 주시기 위해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성경은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사 53: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가져다주시기 위해 겸손한 모습으로 오셨으나 유대인 지도자들은 그가 죄인들의 친구이며, 나라를 어지럽히는 자라고 비난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자로 오셔서 죄악의 담을 헐고 평화를 가져다 주셨으며, 사람들 사이의 분쟁과 미움과 다툼을 없애기 위해 사랑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를 따르는 제자들과 무리를 이끌고 마지막 주간에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정복자처럼 말을 탄 것이 아니라 평화의 왕으로서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습니다. 왕중의 왕이신 예수님만이 평화로 세계를 다스리실 것입니다(사 9:7).
다섯째, 우리의 건강을 위해 채찍에 맞으신 고난
아무리 권세가 있고, 명예가 있고, 물질과 아름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건강을 잃어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체를 입고 오셨기 때문에 이렇게 아픈 자들의 고통을 충분히 알고 계시며, 그들을 위해 치료의 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빌라도의 뜰에서 39대의 모진 매를 맞으셨습니다. 그 채찍은 가죽으로 된 끈마다 쇠갈고리가 달려 있어서, 로마 병정이 예수님의 등을 내리칠 때마다 주님의 살점이 무참하게 찢겨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3년 반동안 많은 병자를 고치셨고, 우리의 모든 질병을 지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말씀으로, 치료의 영으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자는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고,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이 모든 진리를 깨닫지 못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인생의 모든 고난을 담당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우리에게 용서와 부요와 자유와 평화와 건강을 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실천을 통해서 우리에게 겸손과 섬김과 봉사의 방법을 알게 한 위대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고난은 하나님의 예언을 이루어드리는 순종과 충성의 극치였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 남의 짐을 함께 져주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이웃에게 치료와 부요와 평화를 가져다주는 예수님의 제자요, 증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교회 절기로 사순절 기간이며 특히 이번주간은 고난주간입니다. 다음주일은 부활주일입니다. 이번 한 주간 주님의 고난의 발자취를 따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신 마지막 생애 중 1주간을 금식하며 따라가보십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의 행진으로 이웃과 함께 나누는 기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위한 대속의 고난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고난을 깊이 생각해봄으로 대속의 의미와 고난의 깊은 뜻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은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며 감사하는 신앙인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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