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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8:1-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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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참고 : | 세광교회 http://sk8404.or.kr |
용서와 생명
본문 : 요한 8:1-11
2005. 4. 24, 오전
제목 :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혹은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지난 주 말씀은 죄와 사망이었습니다. 오늘은 용서와 생명에 대해서 말씀드립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거룩한 주님을 가장 먼저 목격한 여인이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막달라 마리아는 창녀라고 알고 있는 여자요, 7곱 귀신이 들렸던 여자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어떻게 그런 여인이 그 놀라운 부활의 첫 번째 목격자, 첫 번째 증인이 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으로 순전히 소설이지만 한 전설을 근거로 한 추리소설이 있는데 포르투칼의 199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복음”이라는 책(유세 사라마구작)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전도하실 때 외딴 집을 찾아가셨습니다. “선생님, 이 집이 어떤 집인지 알고 오셨습니까?” 예수님 말씀이 “어떤 집인데?” “창녀의 집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 우리의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결국 이 일로 그녀는 주님을 영접하고 새 사람이 되었고 주님께 헌신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현장 범, 당시의 관습으로는 돌로 쳐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여인을 끌고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당신은 이 여인을 어떻게 하겠습니까?”질문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해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그리고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1. 정죄형 인간(1-4절)
정죄형 인간의 특징은 분별력을 상실하여 누구이던 간에 정죄하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고 정죄하기 위해 범죄한 여인을 성전 안으로 끌고 왔습니다. 성전이 어떤 곳입니까? 자신의 죄를 자백하며, 짐승을 잡아 자기 대신 제물로 바치며, 죄사함을 위해 예배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나온 사람들은 정죄하고 시험하기 위해 몰려들었지 예배하고 자신의 삶을 점검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되는 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자신의 죄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에서 사람을 죽이려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입니다. 가정, 학교, 국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죄형 인간으로 있는 한 행복의 파랑새는 깃들일 수 없습니다.
2. 용서의 은혜 아래 놓이는 인간이 될 때(5-9절)
그들은 율법 속에 있는 은혜의 측면은 다 무시해 버리고 정죄의 측면만 율법인 것처럼 여겼습니다. 남의 정죄에만 관심이 있지 자신의 죄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의 강력한 메시지 아래 놓이게 되면서 자신과 또 다른 용서와 사랑의 세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예화) 한 목사님이 어느 날 회의를 하면서 “그런 것은 넘어가겠습니다.” 하며 대충 넘어가는데, 한 젊은이가 “목사님, 그렇게 대충 넘어가지 말고 법대로 합시다.” 분위기가 어색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때 목사님이 그의 눈을 쳐다보며 “이보게 젊은이. 법대로 하자고? 법대로 했으면 자네는 지금 지옥에 가 있어야 되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가운데 간음하지 않은 자가 누구 있습니까? 성경에 보니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 5:28)
"남의 아내와 통간하는 자도 이와 같을 것이라 무릇 그를 만지기만 하는 자도 죄 없게 되지 아니하리라."(잠언 6:29)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간음하지 않은 자 몇이나 되며, 미움이 살인이라면 살인하지 않은 자 몇이나 되며, 욕심이 도적질이라면 도적질하지 아니한 자 누구며,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씀 앞에 자유한 자가 누구며,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 하셨으니 십계명 앞에 자유한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우리는 모두가 다 죄인이고 따라서 우리는 모두가 죽어야 할 사람입니다.
3. 정죄를 초월한 주님의 사랑(10-11절)
그러나 여기 사는 길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을 심판하실 권세를 가지셨지만, 정죄를 초월하여 정작 죄인을 사랑하시어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이 사실을 본문이 증명합니다. 이 여인의 범죄로 인해 예수님이 곤경에 빠졌습니다. 이 여인의 죄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죄는 여인이 저질렀는데 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고소할 조건을 찾으려고 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죄를 사하시고, 그런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것을 저들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한다.” 지금 이 여인은 지방법원이나 대법원에서 판결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앞에서 정죄를 초월한 죄 사함의 놀라운 선언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 용서(容恕)란? 인터넷 다음국어사전에 보니까 "잘못이나 죄를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끝냄"이러고 되어 있었습니다. 용서란 상대방의 실수와 잘못을 잊어버리고 끝내버리는 것입니다. 용서했다고 하면서 싸울 때 다시 옛날 얘기를 꺼내는 것은 아직도 용서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용서란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아니 끝내버리는 것입니다.
죄는 우리를 종노릇하게 만듭니다. 한번 죄를 지으면 그 죄를 용서받기 전에는 질질 끌려다니게 되어 있습니다.
예화) 쩔그렁 보물이 깨졌습니다. 30년전 어린이 전도지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죄는 우리를 자꾸 찌릅니다. 부부관계에서 한번 실수는 평생 갑니다. 하루빨리 용서하셔야 합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그 죄가 결국 파탄에 이르게 합니다.
왜, 내가 먼저 이해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합니까? 죄는 사망을 가져오지만 용서는 화해와 생명을 가져옵니다. 저는 이번에 저를 두 번씩이나 곤경에 빠뜨린 여인을 용서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이번에 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칭 선교사요 소설작가인 이창식씨를 용서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는 전과자요, 도피자며, 선교사로 사칭한 사기꾼이요, 한 여성을 성폭행하고 성고문하며, 가정파괴까지 꾀한 나쁜 사람입니다. 저를 죽음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한 살인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나를 미워하고 있습니다.(두분이 면회/아직도 분이 다 풀리지 않았답니다, 별로 때리지도 않았다고 한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저는 주님의 말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용서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제 마음의 공포가 다 사라졌습니다. 그를 용서하기 전에 저는 몹시 공포와 보복의 두려움에 쌓였었습니다. 이처럼 용서는 기적을 가져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왜 사랑스런 아내를 용하지 못합니까?
우리는 왜 믿음직스런 남편을 용서하지 못합니까?
우리는 왜 존경하는 시어머니를 용서하지 못합니까?
우리는 왜 이쁜 며느리를 용서하지 못합니까?
우리는 왜 이웃과 구역식구들과 교사들끼리 서로 용서하지 못합니까?
우리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를 용서하지 않고 꼭꼭 기억하고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아니 죄의 종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70번씩 7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마 18:22) 아니 무제한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자기를 못박는 자들까지 용서하셨습니다. 누가 23:34에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고 하셨습니다.
용서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죄요 마귀입니다. 그래서 불화하게 만들고 속상하게 만들고 파괴시켜버리는 것이 죄요, 용서하지 못함입니다. 죄는 사망을 가져오지만 용서는 생명입니다.
※ 반대로 죄의 용서는 생명과 평화입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북의 지도자들이 서로 갈라져 미워하게 만들어 나눠먹기식 권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공산주의를 용납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6.25 이전에 우리는 하나였습니다. 우리 백성들은 아무 죄도 없이 동족간의 미움과 죄로 서로 갈라져 쓸데없는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기득권을 버리고 서로 용서하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사간 죄인들은 모두 가운데 통로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죄 없는 분들은 돌을 들어 치시기 바랍니다.
..
우리는 모두가 죄인입니다. 죄인이 사는 길은 용서받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모두가 서로 용서하고 용서받고 생명과 화해로 진정한 기쁨과 평화를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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