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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눈물

김필곤............... 조회 수 2932 추천 수 0 2011.09.07 22: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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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딸 은지와 주말 부녀지간이 되었을 때가 있었다. 은지는 월요일에 역곡의 외할머니 댁에 갔다가 금요일 오후 아니면 토요일에 왔다. 아이들을 어릴 적 부모와 떨어뜨려 기른다는 것이 아이들의 성격형성과 인격발달에 지극히 나쁜 줄 알면서도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못하고 남편으로 가장으로의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여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고 있었다. 엄마는 학원에 나가고 나는 교회에 나오게 되면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기 때문에 둘째는 외가에 보내고 첫째 애는 학원에 엄마와 함께 갔었다. 자신들의 딸을 외가에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야 이루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지만 다행히도 은지는 매주 월요일마다 기쁘게 할머니의 등에 업혀 아빠 엄마 언니에게 "뺘뺘"를 하고 밝은 웃음을 지으며 집을 떠났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애가 이상한 요구를 했었다. 밖의 기온은 매서운데 자꾸 밖에 나가자는 것이었다. 아이에 대한 죄책감에서인지 모르는 사이에 은지의 요구를 다 들어 주는 습성이 붙은 나는 두꺼운 옷을 입히고 밖에 나갔었다. 은지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거리 저거리를 아무 것도,아무 사람도 의식하지 않고 때로는 뛰고 때로는 걷고 하며 놀았다. 나는 딸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면 혹 넘어지지 않을까? 차가 오지 않을까? 하며 그를 보호하며 최대한 자유스럽게 놀도록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았다. 한시간 쯤 지났는 데도 집에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지친 것 같아서 집에 가자고 하니 싫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어 시간 정도 밖에서 놀다가 집에 돌아왔었다.
집에는 은지를 다시 데리고 가기 위하여 장모님이 이미 오셔서 은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은지는 외갓집에 부모의 사정 때문에 자신은 원치 않을지라도 가야할 시간이었다. 장모님은 은지를 업고 가기 위하여 보자기를 가지고 다가섰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그 전까지는 전혀 그런 일이 없었는 데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얼른 할머니에게 다가가서 할머니의 손에 있는 보자기를 빼앗아 나에게 가져오는 것이었다. 아빠가 업으라는 것이다. 할머니가 그냥 간다고 일어나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내 곁을 떠나지 않으려고 내 몸을 붙들었다."은지야 가야되, 할머니 집에 갔다가 금요일 날 와. 은지, 착하지 !." 아무리 설득해도 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더니 10여분 동안 계속 설득하니까 자신을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린 듯 아니 아무리 우겨 보았자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기라도 한 듯 자기 주장을 포기하고 할머니 등에 가 업혔다. 은지는 할머니 등에 업혀 예전과 같이 손을 흔들며 "뺘뺘"를 하였다. 그러나 난 예전과 같이 딸애를 바라 볼 수가 없었다. 가기 싫은 딸애를 억지로 할머니의 등에 업혀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눈에는 이미 눈물이 고였기 때문에 그 눈물을 은지에게도 장모님에게도 보이기 싫어서였다. 머리를 들지 않고 얼른 현관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 와 버렸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꼭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인지? 딸을 보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신앙이란 무엇인지?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때 지금은 돌아가셔서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신 아버지의 눈물이 떠올랐다. 농부로 평생 땅과 함께 살아오신 아버지는 아무리 힘들고 슬픈 일이 있더라도 좀처럼 자식들 앞에 눈물을 보이시는 적이 없었는데 어느 날 나를 앞세워 놓고 소리내어 우셨다. 그 날은 추석날 오후였다. 추석 성묘를 위하여 일가 친척이 다 모였다. 작은 아버지와 사촌 형제들도 다 왔다. 장손 집인지라 모두가 우리 집에 모여 성묘를 가기 위해 준비를 하였다. 그런데 나는 그 전 해부터 성묘를 가지 않았다. 그 당시 신앙심이 깊어졌기 때문이다. 성묘하는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으로 기독교인으로는 절대로 조상의 무덤에 가서 절을 해서는 않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묘길에 따라 나서면 어른들의 지시에 따라 절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아예 처음부터 가지 않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래서 그 날도 처음부터 아버지의 얼굴을 피해 도망갔다가 어른들이 모두 성묘길을 떠난 후에 집에 들어 왔다. 아버지는 장남인 나를 찾다가 집에 있지 않자 친척들과 함께 성묘를 떠났고, 다녀와서 나를 아버지 방으로 불렀다. 방에 들어서자 마자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며 다른 말씀은 하시지 않고 부자의 관계를 끊자고 말씀하셨다. 다른 친척들은 자식들과 함께 가는데 장손의 장남인 아버지는 대를 이을 장남인 아들을 데리고 가지 못하는 것이 조상들에게 몹시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였는지, 성묘길에서 어떤 이일 벌어져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아버지는 나를 불러 놓고 복바치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슬픔을 흘리셨다. 나는 그곳에 있을 수 없어 얼른 내 방으로 갔다. 책상에 엎드려 기도하고 싶었으나 눈물을 억제하지 못하였다. 아버지의 가슴을 상하게 했던 죄책감을 후회하는 눈물을 흘리면서 신앙을 버리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신앙의 지조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신앙생활을 계속하면서 아버지의 눈물의 의미도 점점 내 가슴에서 희석되어 갔었다.

부자 관계를 정리하시자 시며 아들 앞에 눈물을 흘리시던 아버지는 신앙을 빼놓고는 퍽이나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셨다. 회갑 때는 못난 아들이지만 같이 춤을 추자며 내 손을 잡으시던 아버지, 그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 평생 효도 한 번 제대로 해드리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마음 아프게 해드린 못난 큰아들을 두 손으로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끌어 않으며 아들에게 마지막 체온을 남기고 이제 다시는 아들로 인해 피맺힌 눈물을 흘릴 필요없는 영원한 나라로 가셨다. 다시 만나는 기약이 있었지만 은지를 외가로 보내면서 아버지가 된 내가 다시 그 옛날 나로 인해 피눈물을 흘리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며 나의 영혼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의 나를 향한 눈물도 생각해 보았다. 항상 불효하는 아들인 것을 생각하며......♣

아버지의 눈물/섬기는 언어/김필곤 목사/2004.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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