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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주님 오심이 가까움을 알수록 우리의 마음은 거룩을 향한 열망이 타오르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많은 경우에 잘못된 경건의 모양으로 나아가서
결국에는 자기도 구원하지 못하고 다른 이들에게 상처만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켰고 금식했으며
훌륭한 선지자들의 기념비를 세워 그들의 뜻을 기리는 사역도 열심히 했습니다.
어떤 바리새인들은 바다 건너 산을 넘어 열심히 전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나 그들을 바라보는 일반 백성들에게서나
거룩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평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그들을 향한 판단은 잔혹했습니다.
그들은 회칠한 무덤이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마23:27)
그들은 온 율법이 사랑인 줄 알았고
그 율법을 행함으로 사랑을 이루고 거룩을 이루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에 사랑과 거룩을 이루려 하지 않고
그져 행위로만 모양을 내려고 했습니다.
이유는 거룩의 모양을 이루어 백성 가운데 존경받고
하나님에게 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더 큰 욕심을 이루기 위해 사소한 육체의 욕심을 절제한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사랑도 진정한 거룩도 아닙니다.
더 큰 욕심으로 작은 욕심을 억누르는 것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고
겉으로는 사랑과 열심과 거룩이 있어보이나
속으로는 철저하고 더 견고해진 자기 중심적 자아만이 남습니다.
그래서, '행위로는 구원을 못받습니다. '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믿음을 통해 오는 마음의 변화, 마음에 하는 할례를 통해 받습니다.
혹시 우리가 주님 오심을 바라보면서
주님을 사랑해서가 아닌 다른 이유로 나의 거룩의 훈련에 채찍질하고 있다면
그렇게 이룬 경건의 모양은 자기와 사람은 속일지라도 주님의 눈은 속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단지 거룩한 모양을 만드는 기술이지 성령의 능력이 아니기에
마지막 날 성령님께서 그를 변화된 몸으로 만드실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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