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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주는 5대 자유

시편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910 추천 수 0 2011.09.19 18: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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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1:1-6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믿음이 주는 5대 자유 (시편 1편 1-6절)

 

< 시편 23편의 여러 지방 버전 >

 성경 전체에서 가장 사랑 받는 장 중의 하나는 시편 23편입니다. 이 시편 23편은 한때 여러 지방 번역본이 만들어졌습니다. 전라도 버전, 경상도 버전, 충청도 버전, 평안도 버전 등이 있는데 때로는 그 지방 버전들이 말씀의 깊은 의미를 더 잘 전달하는 느낌도 듭니다.

 시편 23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그 구절의 전라도 버전은 이렇습니다. “아따, 여호와가 시방 나의 목자신디/ 나가 부족헌 것이 어찌꼬 쪼매라도 있건능가요/ 글씨 그 분이 말이시 나 같은 것을 저 푸러브른 초장께로 뉘어뿔고/ 내 삐친 다리를 쉬어뿔게 헐라고 물가시로 데리고 가뿌네, 어메 징헌거.”

 그 구절의 경상도 버전은 이렇습니다. “니 여호와라꼬 허는 냥반 이름 들어봤나 그 냥반이 내하꼬 목자된다 아이가/ 그래마 내사 답답할끼 한개도 읍다 안카나/ 그 냥반이 낼로 시퍼런 풀구딩이로 디비지고/ 저 쓴한 또랑가 안있나 글로 내를 데리꼬 댕기시는 기라.”

 그 구절의 충청도 버전은 이렇습니다. “여호와는 염생이 같은 지를 키우시고 멕이시는 분이시니/ 지가 부족한 것이 없네유/ 그분이 지를 무지무지 파란 풀밭에 어푸러지게 하시며/ 니나노하기 딱 좋은 둠벙 가생이로 인도하여 주셔유.”

 그 구절의 평안도 버전은 이렇습니다.“아 여호와가 내 목잔데/ 뭐이가 부족하간/ 거저 시퍼런 풀밭에 쉬라딜 않나/ 목마르문 거저 물가로 데리가딜 않나 야, 뭐이가 부족하간?”

 아무리 읽어도 싫증나지 않는 시편이 바로 시편 23편입니다. 이 시편에는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음이 힘들 때 이 시편을 계속 음미하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 믿음이 주는 5대 자유 >

 먼저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믿으면 만사형통하고 어려움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믿어도 여전히 어려움을 당하지만 하나님이 내 목자기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만족한다는 말입니다.

 지금 만족이 없고, 마음이 공허하고, 불안하고, 외롭고, 좌절감이 있다면 그 이유는 환경 탓도 아니고 다른 어떤 사람 탓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을 내 목자로 모시지 않은 탓입니다. 하나님을 내 목자로 모시면 깊은 만족감이 생기고 그때부터 온도계(thermometer)처럼 환경에 조절되지 않고 온도조절장치(thermostat)처럼 환경을 조절하는 대 자유인의 삶이 펼쳐집니다.

 살면서 자유를 누리며 사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입니까? 군인이 군에서 제대할 때 그 자유와 행복감을 어떻게 잊습니까? 어떤 목사님이 청년 때 데모하다가 감옥에 갔는데 다행히 3일 만에 풀려나왔습니다. 그런데 딱 3일 만에 풀려나도 찐빵을 사먹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격했다고 합니다.

 참 자유를 체험하면 어제의 하늘과 오늘의 하늘이 달리 보입니다. 나무 한 그루도 달라 보이고 삶 자체가 감격이 됩니다. 오늘 예배 후에 돌아갈 때 주위를 한번 죽 둘러보고 환경이 새롭게 보이는 자유자의 체험을 해보십시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자유를 경험하지 못하고 무엇인가에 매여 살면서 두려움과 낙심 가운데 삽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면 대 자유를 얻습니다. 믿음은 어떤 자유를 줍니까?

1. 욕망으로부터 자유

 오늘날 많은 사람이 욕망의 포로가 되어 있습니다. 그 욕망을 처리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은 두 가지 방법을 추구했습니다. 첫째, 욕망을 제거하는 방법입니다. 많은 동양 종교들이 이 방법을 욕망을 제거하려고 했지만 끝없는 욕망 앞에 결국 무너졌습니다. 둘째, 욕망을 충족시키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욕망이 충족되면 역시 또 다른 욕망이 찾아옵니다. 결국 욕망의 제거나 충족을 통해 욕망으로부터 자유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내 목자로 모시면 욕망의 근원적 충족이 가능합니다.

 길을 잃고 우는 애에게 과자나 장난감을 사주면 만족합니까?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엄마를 찾아 엄마 품에 안기면 그 순간만은 아무 것도 원하지 않고 오직 엄마와 함께 있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것이 바로 본문 1절의 고백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왜 다윗에게 부족함이 없습니까? 모든 욕구를 다 채웠기 때문이 아니라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 필요를 채워주지만 그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채워주지 않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예스(Yes)’도 축복이지만 하나님의 ‘노(No)’도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살면서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도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런 모든 욕망을 초월한 자유인의 고백을 하면 먼저 행복해지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필요한 것을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영국 고아의 아버지 조지 뮬러는 3천명의 고아를 키울 때 단 한 번도 사람들에게 부족함을 호소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뮬러의 배짱이고 믿음이었습니다. 그런 배짱이 어디서 생겼습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한 번도 조지 뮬러를 실망시키지 않고 3천명의 고아를 먹일 수 있게 하셨습니다.

 어느 날, 허드슨 테일러에게 하나님이 중국 선교사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를 찾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자신을 중국으로 보내달라고 호소했지만 어떤 교회도 그를 후원하지 않았고 선교부는 계속 “노!”라고 했습니다.

 그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면 선교부가 돕지 않아도 하나님이 도우실 것이다.” 그래서 단신으로 중국으로 가서 ‘차이나 인랜드 미션(China Inland Mission)’을 조직하고 중국 선교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 용기와 배짱은 어디서 나왔습니까? 역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는 굳은 믿음에서 나왔습니다. 그처럼 참된 믿음은 욕망과 필요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자유를 줍니다.

2. 방황으로부터 자유

 본문 2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성도를 평안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때 인생의 방황도 끝나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주 결심합니다. “이번에는 남을 마음 아프게 하지 말자! 이번에는 그 말을 참자!” 그런데 어느새 입에서 상처 주는 말이 나옵니다. 결국 사람의 힘만으로는 참된 자유를 얻지 못합니다. 참된 자유란 자기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는 능력입니다. 그런 능력이 없다면 아직 자유한 것이 아닙니다. 참된 자유란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자원을 힘입어서 꿈과 비전을 향해 꾸준히 꿋꿋하게 걷는 삶입니다.

 새는 하늘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고 물고기는 물속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물고기가 땅에서 맘껏 놀겠다는 욕망을 가지고 물을 떠나면 그 욕망은 자유가 아닌 죽음을 줍니다. 기차는 철로 위에서만 자유롭게 되듯이 사람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만 자유롭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했습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 15:5).”

 왜 주님을 떠나면 아무 것도 못합니까? 언뜻 보면 하나님이 없이도 잘 지낼 수 있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이 결정하고 하나님이 없이 걷는 삶은 차라리 낭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삼고 나를 드리면 하나님이 내 삶을 쥐시고 내 삶을 그분의 뜻대로 인도합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뜻과 사명에 순종하고 나갈 때 인생의 방황을 끝내고 참된 자유와 만족과 행복을 얻게 됩니다.

3. 매임으로부터 자유

 다윗은 하나님이 우리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성도가 평화롭게 노는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믿음에는 구도자적인 삶도 있지만 그런 삶보다 더욱 믿음에 가까운 삶은 하나님의 품에서 즐겁게 노는 삶입니다. 그런데 주님 안에 있으면 진정한 안식과 놀이의 축복을 얻습니다.

 성도에게 ‘놀이’는 의외로 중요한 것입니다. 영혼이 행복과 만족을 누리려면 하나님과도 잘 놀고 사람과도 잘 놀아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논다’는 말은 ‘게으르게 지낸다’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안식한다’는 개념입니다. 즉 하나님과 놀 줄 아는 사람에게 작품인생이 나옵니다. 작품과 상품은 다릅니다. 상품은 대량생산이 가능하지만 작품은 하나입니다. 살면서 자신을 상품화하지 말고 작품화하십시오.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눈뜨고 보이는 사람’이고 또 하나는 ‘눈감고 보이는 사람’입니다. ‘눈뜨고 보이는 사람’보다 ‘눈감고 보이는 사람’이 진짜입니다. 요새 교단 총회장이 되려고 엄청난 돈을 쓰지만 그래서 총회장이 되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주기철 목사님이나 손양원 목사님에 비하면 다 허수일 뿐입니다.

 어떤 성도는 장로가 되지 못했다고 시험 들어서 교회를 떠납니다. 그것도 ‘눈뜨고 보이는 사람’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장로 선거에서 떨어졌을 때 감사하는 사람이 진짜 장로감으로 그런 사람이 오히려 나중에 훌륭한 장로가 됩니다.

 목회자 세미나에 가보면 강사는 대개 큰 교회 목사입니다. 그 목사님들의 자랑스러운 강의를 들으면 듣는 목사님들은 기가 죽고 샘도 납니다. 그래서 “샘이 나게 해서 세미나다!”란 말도 생겼습니다. 그런 세미나에 가면 목회를 상품화시키는 원리를 많이 배우지만 중요한 것은 목회를 작품화시키는 것입니다. 다 순복음교회나 영락교회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작품은 유니크(unique)한 것입니다.

 돌아가신 법정스님은 감투는 없어도 조계종의 감투 쓴 많은 높은 스님들보다 더 높이 평가됩니다. 그처럼 출신과 배경과 외형을 떠나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을 작품화시키십시오. 물량으로 크면 그 흔적은 금방 사라지지만 자신을 작품화하면 오래 그 흔적이 남습니다. 그처럼 인격도 작품화시키고 인간관계도 작품화시키십시오. 어떻게 삶을 작품화시킵니까? 좋은 사상을 배우고 실천하는 방법보다 더 훌륭한 방법이 바로 하나님과 놀이로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주인과 종의 주종관계이고, 둘째는 부모와 자녀의 부자관계이고, 셋째는 신랑과 신부의 부부관계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주종관계보다 더 깊은 부자관계로 들어가고, 부자관계보다 더 깊은 부부관계로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그처럼 예수님의 신부로서 주님과 한 몸의 단계로 들어가 어우러져 노는 것이 성도에게 있어서 최고의 행복입니다.

 ‘놀이’란 말은 영어로 레크리에이션(recreation), 즉 재창조란 말입니다. 놀이를 잘할 때 참 만족과 창조적인 지혜를 얻습니다. 돌아가신 이중표 목사님은 목사는 ‘몰이 목사’가 아닌 ‘놀이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늘 강조했습니다. 사냥꾼들이 짐승을 잡으려고 몰아대듯이 외형적이고 상품적인 성장을 위해 막 몰아대면 결국에는 모두가 불행해집니다. 교회도 ‘몰이 교회’가 되기 전에 먼저 ‘놀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기초는 ‘놀이’입니다. 사명 이전에 먼저 놀이 단계에서 성공해야 합니다. 세상은 원래 놀이동산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안식하시면서 인간과 놀이관계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때 아담과 하와에게는 진정한 만족이 있었습니다. 그처럼 진정한 행복을 원하면 하나님과 놀이관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게으르게 살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 삶을 삶의 기초로 삼으라는 말입니다.

 가정에서도 가장 행복한 때는 부모와 자녀가 숨바꼭질하며 즐겁게 놀 때입니다. 그때가 부모가 가장 본전을 찾는 때입니다. 그러다가 점점 크면서 공부에 시달리면 놀이 관계가 사라지면서 삶의 만족도도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그러다가 더욱 커지고 성숙해지면 다시 부모를 생각하게 되면서 깊은 차원의 놀이관계가 새롭게 형성됩니다.

 부부도 처음에는 놀이관계로 시작했다가 점점 돈과 집을 생각하며 남과 비교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놀이관계가 끝나면서 사사건건 바가지를 긁게 됩니다. 그렇게 바가지를 긁고 살다가 늙으면 부부가 다시 놀이관계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는 모든 것이 다 소용없고 둘만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는 얼굴만 봐도 좋은 느낌을 가지면서 비로소 진짜 행복을 찾습니다.

 행복을 원하면 놀이관계를 회복하십시오. 놀이관계를 가지라고 해서 서로 마주 앉아서 술 먹고 쓸데없는 말을 하며 놀기만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진짜 놀이는 아름다운 인격관계를 통해 삶이 물위에 기름이 놀듯이 자유롭게 펼쳐지는 것입니다. 그처럼 자유를 만끽하면서도 사랑으로 맺어진 인격관계가 진짜 놀이관계입니다. 그런 놀이관계를 회복하려면 주일성수를 비롯해서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 삶의 기초가 분명해야 합니다.

4. 두려움으로부터 자유

 두려움과 공포는 사망 자체를 통해서도 오지만 대개 보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즉 사망의 그늘로부터 옵니다. 그런 두려운 상황에서 다윗은 어떻게 고백합니까? 본문 4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성도에게도 사고와 질병과 불행 등의 사망의 음침한 그늘이 덮이지만 그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굳게 믿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믿음대로 역사하셔서 꿈과 비전을 더욱 속히 이뤄지게 하실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 초에 영국의 한 배가 있었습니다. 그 배가 중요한 정보 임무를 띠고 미국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때 선장이 수많은 적들의 함선과 비행기를 피해서 어떻게 무사히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것인지 염려하자 사령관이 말했습니다. “소령! 위험에 처할 때마다 이 비밀 부호를 사용해 무선을 치게! 그러면 곧 답이 올 것이네.”

 그 말을 믿고 선장은 곧 배를 끌고 떠났습니다. 며칠 후 갑자기 적들의 전함이 나타났습니다. 선장이 급히 비밀 부호로 무선을 치자 곧 답신이 왔습니다. “지금 우리도 적을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신들 곁에 있으니 안심하고 전진하십시오.” 그 답신에 큰 용기를 얻고 계속 전진해서 마침내 미국 항구로 막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배 뒤에 어떤 거대한 물체가 물속에서 쑥 올라왔습니다. 알고 보니까 잠수함이 계속 그 배를 지켜주면서 따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성도에게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곁에서 계속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이런 음성이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그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담고 두려운 일을 만나도 너무 두려워하지 사십시오. 그러면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얼마든지 넉넉한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 종종 이런 경험을 합니다. 아이가 방에서 혼자 잘 노는 줄 알고 엄마 아빠가 잠깐 일을 보러 방을 나가면 곧 아이가 무서워서 “앵앵!” 웁니다. 그때 급히 가서 안아주면 금방 울음을 그치고 곧 아빠 품에서 새근새근 잠듭니다. 그때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부족한 부모지만 그래도 부모 품에 안겼다는 사실 하나로 이런 평온한 잠이 가능하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품에 안긴 나는 근심과 두려움을 버려야겠다.” 목회 초기에 그런 생각을 통해서 놀라운 평안을 얻었습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정말 믿으면 본문에 나오는 다윗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습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5절).” 살다 보면 두려움과 공포도 생기고 원수도 생기지만 그때도 주님은 원수를 목전에 두신 채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구별된 존재로 기름을 부으시며 위로해주십니다. 얼마나 통쾌한 일입니까? 그처럼 하나님을 굳게 믿고 나갈 때 두려움과 공포로부터 자유할 수 있게 됩니다.

5. 죽음으로부터 자유

 진정한 자유는 궁극적으로 죽음으로부터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위인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는 죽음으로부터 자유할 수 없습니다. 결국 믿음이 없이는 사람은 진정한 의미의 만족과 행복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 사실은 우리 자신의 체험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역사가 그 사실을 증거합니다.

 1980년 3월, 프랑스 파리의 한 병원에 폐수종으로 세계적인 유명한 지성인이 입원했습니다. 그는 한 달 동안 병원에서 고통 중에 발악하면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으로 자기 병명조차 묻지 못했습니다. 곁에 선 계약결혼을 한 아내는 발악하는 남편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고 그저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그가 ‘자유’란 주제로 수많은 글을 써서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입니다.

 1980년 4월 16일, 그가 입원한지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나자 프랑스 신문들이 썼습니다. “신으로부터의 자유를 그토록 자신 있고 당당하게 역설했던 사르트르가 왜 그렇게 비참하고 허무하게 죽었는가?” 그때 한 독자의 투고가 신문에 이렇게 실렸습니다. “사르트르의 말로가 그렇게 비참했던 이유는 그에게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르트르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에 마지막 순간에 지성을 잃고 허무하고 비참한 최후를 마친 것입니다. 반면에 본문 6절에 나오는 다윗의 고백을 음미해보십시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다윗은 천국의 집이 있음을 확신했기에 죽음을 넘어선 평안한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하는 고백이 있어야 그가 바로 진정한 자유인입니다. 그런 자유인이 된다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사르트르와 함께 20세기 지성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또 한 사람이 바로 독일 고백교회의 신학자인 본회퍼입니다. 그는 제 2차 세계 대전 중에 나치에 항거하다 수용소에 갇혔습니다. 어느 날, 간수 하나가 문을 두드리며 들어오자 직감적으로 본회퍼는 자신의 마지막 때가 온 것을 알고 감방 동료들에게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여러분! 먼저 떠납니다. 천국에서 기쁘게 다시 만날 때까지 잘들 계십시오.” 그때 그를 뒤덮은 깊은 평안이 모든 감방 동료들에게 큰 감동과 충격을 남겼다고 합니다.

 본회퍼와 사르트르의 죽을 때의 극명한 차이는 무엇 때문입니까? 본회퍼는 돌아갈 고향이 있었고 사르트는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복되고 감사한 일입니까? 명절 때 고향에 가는 기쁨보다 이 세상의 사명을 다 마치고 천국에 가는 기쁨은 더욱 큰 기쁨입니다. 항상 굳건한 믿음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기쁨과 평안을 잃지 않는 복된 자유인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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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64 에배소서 새사람을 입으라 엡4:17-24  김필곤 목사  2011-09-23 4038
12363 레위기 절기로 새겨 잊지 않는 감사 레23:15-22  김필곤 목사  2011-09-23 2898
12362 시편 신앙인의 회복탄력성(1) 두려움의 극복 시46:1-11  김필곤 목사  2011-09-23 3344
12361 사사기 신앙인의 회복 탄력성(2) 긍정적인 마음 삿6:11-18  김필곤 목사  2011-09-23 3076
12360 사도행전 신앙인의 회복탄력성(3) 인간관계 능력 행18:1-11  김필곤 목사  2011-09-23 3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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