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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31: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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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홍진 목사 |
참고 : |
깊은 실의의 늪에서 벗어나십시오
본문: 시 31:1-24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이 온다』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잭 캔필드와 마크 빅터 한센이 공저로 내놓은 책입니다. 주제는 소망에 대한 책입니다. 그 책의 핵심 교훈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가장 큰 핸디캡은 공포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핸디캡이라고 하면 경제적이고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핸디캡을 생각합니다만 정신적 핸디캡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큰 핸디캡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실의에 빠져버리는 정신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용기를 상실한다는 것입니다. 두려움 속에서 삶의 의욕을 상실한다는 것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절망적인 상황이 아니라 실의의 늪이라는 것입니다. 실의에 빠지면 희망을 가지지 못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현대인들의 많은 현상 중에 꿈이 큽니다. 비전도 큽니다. 원대한 포부가 있습니다. 큰 계획을 설정합니다. 그러나 모두 다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꿈이 좌절됩니다. 계획도 무너집니다. 그러면서 깊은 실의에 빠집니다. 인정받고 싶습니다. 개성을 살리고 싶습니다. 이름을 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 때 실의에 빠집니다.
실의란 무엇입니까? 실의란 “기대가 어긋나 뜻이나 의욕을 잃어버리는 일”을 말합니다. 실의는 기대가 어긋나고 결과가 좋지 않고 소망이 좌절 때,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근본에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입니다. 이런 상심의 경험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은 실의에 빠지게 됩니다.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은 실의(失意)에 빠져 있습니다. 의욕상실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현상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젊은 우리에게도 실의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절망의 깊은 수렁에서 실의에 빠져 허덕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지금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에는 실의라는 웅덩이가 항상 놓여 있습니다. 어떻게 실의에 빠지지 않고, 실의에 빠졌을 때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를 생각해보겠습니다.
■ 언제 실의에 빠지는가?
언제? 왜? 실의에 빠집니까?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소망이 좌절 될 때, 중요한 것들을 상실했을 때, 인정받지 못할 때, 자신의 의미를 상실해버릴 때, 깊은 실의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견디기 힘든 깊은 고난이 있을 때, 그리고 그 고난이 길어질 때, 실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31편에는 실의에 대하여 가장 현실적으로 깊게 이해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성경입니다. 본문을 쓰고 있는 사람은 실의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저자 자신이 깊은 실의에 빠져 있는 삶을 경험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9절에서 10절을 보면 실의에 빠져 있는 그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내 고통을 인하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근심으로 눈과 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내 생명은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해는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으로 약하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그는 모든 무리가 자기를 대적하며 아무도 자기를 이해해 주지 않고, 용납하여 주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자기를 지킬 힘도 없고 친구를 찾을 희망조차 없어졌습니다. 그는 혼자 소망 없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때 시편 기자는 실의에 빠졌습니다.
11절에 보니 시편 기자가 언제 실의에 빠졌는지 보여줍니다. “내가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경쟁자로부터 욕을 당할 때 실의에 빠집니다. 이웃에게 불신당할 때 실의에 빠집니다. 친구에게 멸시를 받을 때 실의에 빠집니다. 나를 지켜보는 자들이 나를 무시할 때 실의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때 12절에 실의에 빠진 자기를 이렇게 그립니다. “내가 잊어버린바 됨이 사망한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파기와 같으니이다” 이것이 실의에 빠진 모습입니다.
13절에 보니 실의에 언제 빠졌는지 말합니다.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으오며 사방에 두려움이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치려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이 때 실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이유 없이 비방을 듣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아 공격해 옵니다. 사람들이 나를 넘어트리기 위해서 소문들 터트립니다. 이때 의지가 약한 우리도 실의에 빠집니다. 특히 시편 저자는 “잊어버린 바 되었다”, “잊혀졌다” 등의 생각에 사로잡습니다. 이것이 바로 실의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실의를 경험해본 적이 있으시나요? 이런 실의에 빠진 경험이 없으나 다행입니다. 앞으로 실의는 나를 비켜지나가지는 않을 것이니다. 경고합니다. 나에게도 언젠가는 찾아온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혹 이런 시련 가운데 있나요? 이 시련이 반가운 손님이 아닙니다. 왜냐면 시련에 빠지면 여러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시련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감정들을 일게 합니다.
■ 실의에 빠지면 어떤 감정이 오는가?
실의에 빠지면 우리는 슬픔, 자기 연민, 비탄, 실망, 시기, 부끄러움, 자기 경시 등의 감정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이런 감정들은 실망이라는 감정으로 흐르게 됩니다. 실망하면서 실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맥이 빠집니다. 살고 싶은 의욕이 사라집니다. 왜 살아야하는지 이유도 잃어버립니다. 실의는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갖게 만듭니다. 자기가 버림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는 형편없고 작고 열등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치의 느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연약하고 의욕을 잃어버립니다.
깊은 실의에 빠진 사람이 의미를 찾지 못하면 자살이라는 방법을 찾기도 합니다.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할 때 실의에 빠지고 자살이라는 극한 방법을 찾기도 합니다. 유명한 여배우 <마린몬로>를 다 아실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자기를 죽였습니다. 죽으면서 "아무도 날 사랑해 주지 않아"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사실 그녀는 많은 남성으로부터 흠모를 받은 당사자였습니다. "나는 인생의 아무 기쁨도 누리지 못하고 죽네"라고 남겼습니다. 아니 그녀는 모든 것을 다 누린 사람이었는데 이러한 고백을 했습니다. 이것은 인생에서 진정한 기쁨과 감사가 없는 삶의 종말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세상이 주는 기쁨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좋은 사례입니다.
정말 죽고 싶은 사람이 있지요? 그런 사람을 위해서 죽는 방법 6가지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첫째, 집에 가서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오 아무것도 먹지말고 굶어요. 하루 이틀 지나면 죽습니다. 어떻게 죽어요? 배고파서 죽습니다. 그래도 안 죽는다 그러면 나와서 실컷 먹습니다. 먹고 또 먹습니다 계속 먹습니다 어떻게 죽어요? 배 터져 죽습니다. 그래도 안 죽는다 그러면 놀아요. 매일 놀아요. 일년 365일 놀아요. 백수로 놀아요? 어떻게 죽습니까? 심심해 죽습니다. 그래도 안 죽는다. 그러면 일을 해요. 24시간 쉬지 말고 48시간 잠도 자지말고 계속 일을 해요. 어떻게 죽어요? 힘들어 죽습니다. 그래도 안 죽는다. 그러면 집 앞에 가게에 가세요. 500원 짜리 동전을 들고 가게 집 아저씨에게 가서 아저씨 저 죽고 싶은데요. 그런 말했다가는 얻어맞아 죽습니다. 그래도 아저씨에게 죽고 싶으니까 복권하나 주세요. 그리고 사서 들고는 절대 긁지 마세요. 어떻게 죽어요? 궁금해 죽습니다. 정말 죽을 것 같다. 그러면 긁어요. 긁어보니 꽝 입니다. 어떻게 죽어요. 억울해 죽습니다. 그래도 안 죽으면 아 나는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의미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따라해 보세요, “자살” 다시 한번 “자살” 이제는 따라 합니다. 자살을 거꾸로 시작 “살자” 그러면서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의욕의 상실, 의미의 상실, 이 깊은 인생의 실의 속에서도 당당히 일어서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결코 실의를 피해갈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이 실의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 어떻게 실의에 빠지지 않고 실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첫째, 자기를 찾아야 합니다.
실의에 빠지지 않고 실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를 찾아야 합니다. 나를 찾아야 합니다. 나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나는 의미 있는 존재다. 나는 사랑 받은 존재다. 나는 가치 있는 존재다.” 라는 자기 존재를 찾아야 합니다. 자기를 회복해야 합니다. 자기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12절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나는 귀중한 존재야. 나는 유일한 존재야. 나는 하나님의 가치 있는 사람이야.”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왜 자기를 멸시합니까? 왜 자기를 포기합니까? 왜 자기를 무시합니까? 아무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도 나는 나를 인정해줄 수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사랑해주는 것 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자기를 존귀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자기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해주십시오. 자기를 소중히 여기고 자기를 세워주십시오. 내가 나를 세워주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세워주지 못합니다. 자기를 사랑하십시오. 자기가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는데 아무도 나를 사랑해줄 자가 없습니다. 이기적인 자기 욕망을 채우는 사랑이 아닌 진정으로 자기를 받아주는 사랑을 하십시오. 자기를 가치 있게 여기십시오. 나를 의미 있는 존재라고 여기십시오. 이 때 실의는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기의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봅니다. “내가 누군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를 죽게까지 하면서 나를 구원해주었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주었지, 나는 하나님의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야. 나는 그 사랑을 받았지, 지금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있어.” 이렇게 하나님 안에서 자기의 가치를 새롭게 인정하십시오. 실의는 나에게 터를 잡을 수 없습니다.
한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림이 유명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습니다. 넓은 정원과 좋은 저택에서 화려한 생활을 했습니다.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갑자기 아내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그는 상심했습니다. 이젠 돈을 다 날려 버렸습니다. 알거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실의에 빠졌습니다. 그가 바로 네덜란드의 유명한 화가 렘브란트입니다. 이런 실의에 빠져 있을 때에 친구가 "나와 같이 교회 나가자" 권유를 했습니다. 저 같으면 '너나 나가라' 할 사람이 권유를 받아들여 교회에 나갔습니다. 실의에 빠져 삶의 의미를 상실한 렘브란트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부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보기 시작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생각합니다. 자기의 의미를 찾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찾았습니다. 이제 삶의 방향이 바뀝니다. 세상 그림이 아니라 성화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불후의 명작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감옥에 있는 사도 바울」을 남겼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기를 찾고 삶의 의미를 찾고 나의 사명을 찾을 때 실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저자는 실의에 빠져 있을 때가 자기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생각합니다. 19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나는 실의에 빠질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실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실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그 큰 은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무 가치 없는 나를 사랑하였잖아요.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소중함과 가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세워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세우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인정해주시고 나를 세워주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순간 실의는 나를 정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둘째, 하나님을 믿음으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실의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과정은 실의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왜 실의에 빠집니까? 근본적인 뿌리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부족입니다. 믿음의 흔들림이 있을 때 실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결국 실의에 빠지지 않고 실의를 벗어나는 길은 믿음입니다.
시편 기자는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다시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점검합니다. 하나님을 다시 믿습니다. 14절에서 16절까지 저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에서 나를 건지소서.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취시고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로 부끄럽게 마시고 악인을 부끄럽게 하사 음부에서 잠잠케 하소서”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믿음만이 당신을 다시 세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실의에 빠졌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마태복음 26장 38절에 보면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실의에 빠져 있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놓고 이 일을 감당할 사명이 너무나 엄청납니다. 고민에 빠집니다. 실의에 빠졌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어떻게 다시 일어섭니까? 하나님과 연결시키면서 실의를 극복해 갑니다. 39절에 예수님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면서 하나님과 다시 연결하여 자신의 사명을 다시 찾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곧게 가게 됩니다.
너무나도 깊은 실의에 빠져 낙심과 절망 가운데 있는 한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그가 혹시 자살이라도 할까봐 그 주변에서 칼이나 면도칼이나 날카로운 것들을 다 치워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씌워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살아 있는 인간 중에 가장 비참한 존재이다. 내가 이 상태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인지 그것을 믿을 수 없다. 아마 나에게 있어서 더 좋아진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 사람은 바로 에이브럼 링컨입니다. 그는 수많은 대통령에 낙선되어 낙심과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때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늘 말씀해주시던 성경말씀이 기억났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느니라" 그는 이 믿음으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링컨의 대통령 직무실에는 이 성경구절이 걸려있었습니다. 이것이 역전의 인생입니다. 실의를 모르는 인생,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를 의지하고 살 때, 우리에게는 결코 영원한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신앙은 결코 실의에서 영원히 좌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굳건히 당당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는 원치 않게 실의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실의에 빠집니다. 사람들이 나를 포기하기에 실의에 빠집니다. 나를 멸시하는 사람이 있기에 실의에 빠집니다. 나를 무시하는 사람이 있기에 실의에 빠집니다.
그러나 이 때 우리의 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다시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실의를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인정해주지 못해도 잘 난 것이 없지만 나를 인정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잖아요. 사람들이 나를 포기했어도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이 계시잖아요. 사람들이 나를 멸시하고 무시해도 결코 나를 멸시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는 하나님이 계시잖아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실의에서도 벗어날 수 있어요. 믿습니까?
맺는 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믿음이 없는 사람만 실의가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모든 사람에게는 실의가 찾아옵니다. 어는 심리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치 있는 삶을 살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항상 실의를 경험하게 된다” 왜 그럴까요? 그렇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사는데는 여러 가지 넘어야할 장애가 많다는 것입니다.
삶에서 어떤 실의를 경험하고 있습니까? 혹 실의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은 실의를 경험하지 못했다구요? 다행입니다. 앞으로 실의는 결코 나를 비켜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가 중요합니다. 결코 실의에 인생을 맡기지 마십시오. 실의에게 내 인생을 넘겨주지 마십시오. 실의는 내가 피해갈 수는 없는 길이지만 내가 극복하지 못할 길은 아닙니다. 실의는 우리를 넘어트리려고 하지만 실의는 우리가 정복해야할 과제입니다. 실의를 축복의 기회로 삼으십시오. 실의보다 더 깊은 수렁은 없습니다. 더 이상 낮아질 것이 없는 것이 실의입니다. 그렇다면 실의는 인생에서 다시 일어나야 할 곳입니다. 실의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실의를 축복의 기회로 삼으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일어나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실망했던 일들을 잊어버리십시오. 하나님을 믿음으로 다시 실의 가운데 삶의 에너지를 받으십시오. 하나님을 믿은 믿음으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십시오. 실의의 깊은 계곡에서 새로운 인생을 창조해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홍진 목사
본문: 시 31:1-24
『가장 절망적일 때 가장 큰 희망이 온다』라고 하는 책이 있습니다. 잭 캔필드와 마크 빅터 한센이 공저로 내놓은 책입니다. 주제는 소망에 대한 책입니다. 그 책의 핵심 교훈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가장 큰 핸디캡은 공포이다" 라는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 핸디캡이라고 하면 경제적이고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핸디캡을 생각합니다만 정신적 핸디캡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장 큰 핸디캡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실의에 빠져버리는 정신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용기를 상실한다는 것입니다. 두려움 속에서 삶의 의욕을 상실한다는 것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가장 무서운 적은 절망적인 상황이 아니라 실의의 늪이라는 것입니다. 실의에 빠지면 희망을 가지지 못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현대인들의 많은 현상 중에 꿈이 큽니다. 비전도 큽니다. 원대한 포부가 있습니다. 큰 계획을 설정합니다. 그러나 모두 다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꿈이 좌절됩니다. 계획도 무너집니다. 그러면서 깊은 실의에 빠집니다. 인정받고 싶습니다. 개성을 살리고 싶습니다. 이름을 내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 때 실의에 빠집니다.
실의란 무엇입니까? 실의란 “기대가 어긋나 뜻이나 의욕을 잃어버리는 일”을 말합니다. 실의는 기대가 어긋나고 결과가 좋지 않고 소망이 좌절 때, 삶의 의미를 상실하고 근본에는 무엇인가를 잃어버렸다는 느낌입니다. 이런 상심의 경험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은 실의에 빠지게 됩니다.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은 실의(失意)에 빠져 있습니다. 의욕상실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현상입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젊은 우리에게도 실의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절망의 깊은 수렁에서 실의에 빠져 허덕이는 순간이 있습니다. 지금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의 삶에는 실의라는 웅덩이가 항상 놓여 있습니다. 어떻게 실의에 빠지지 않고, 실의에 빠졌을 때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를 생각해보겠습니다.
■ 언제 실의에 빠지는가?
언제? 왜? 실의에 빠집니까?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소망이 좌절 될 때, 중요한 것들을 상실했을 때, 인정받지 못할 때, 자신의 의미를 상실해버릴 때, 깊은 실의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견디기 힘든 깊은 고난이 있을 때, 그리고 그 고난이 길어질 때, 실의에 빠지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31편에는 실의에 대하여 가장 현실적으로 깊게 이해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성경입니다. 본문을 쓰고 있는 사람은 실의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저자 자신이 깊은 실의에 빠져 있는 삶을 경험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9절에서 10절을 보면 실의에 빠져 있는 그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내 고통을 인하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근심으로 눈과 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 내 생명은 슬픔으로 보내며 나의 해는 탄식으로 보냄이여 내 기력이 나의 죄악으로 약하며 나의 뼈가 쇠하도소이다.” 그는 모든 무리가 자기를 대적하며 아무도 자기를 이해해 주지 않고, 용납하여 주지 않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자기를 지킬 힘도 없고 친구를 찾을 희망조차 없어졌습니다. 그는 혼자 소망 없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때 시편 기자는 실의에 빠졌습니다.
11절에 보니 시편 기자가 언제 실의에 빠졌는지 보여줍니다. “내가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고 내 이웃에게서는 심히 당하니 내 친구가 놀라고 길에서 보는 자가 나를 피하였나이다” 경쟁자로부터 욕을 당할 때 실의에 빠집니다. 이웃에게 불신당할 때 실의에 빠집니다. 친구에게 멸시를 받을 때 실의에 빠집니다. 나를 지켜보는 자들이 나를 무시할 때 실의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때 12절에 실의에 빠진 자기를 이렇게 그립니다. “내가 잊어버린바 됨이 사망한 자를 마음에 두지 아니함 같고 파기와 같으니이다” 이것이 실의에 빠진 모습입니다.
13절에 보니 실의에 언제 빠졌는지 말합니다. “내가 무리의 비방을 들으오며 사방에 두려움이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치려 의논할 때에 내 생명을 빼앗기로 꾀하였나이다” 이 때 실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이유 없이 비방을 듣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아 공격해 옵니다. 사람들이 나를 넘어트리기 위해서 소문들 터트립니다. 이때 의지가 약한 우리도 실의에 빠집니다. 특히 시편 저자는 “잊어버린 바 되었다”, “잊혀졌다” 등의 생각에 사로잡습니다. 이것이 바로 실의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런 실의를 경험해본 적이 있으시나요? 이런 실의에 빠진 경험이 없으나 다행입니다. 앞으로 실의는 나를 비켜지나가지는 않을 것이니다. 경고합니다. 나에게도 언젠가는 찾아온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혹 이런 시련 가운데 있나요? 이 시련이 반가운 손님이 아닙니다. 왜냐면 시련에 빠지면 여러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시련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감정들을 일게 합니다.
■ 실의에 빠지면 어떤 감정이 오는가?
실의에 빠지면 우리는 슬픔, 자기 연민, 비탄, 실망, 시기, 부끄러움, 자기 경시 등의 감정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이런 감정들은 실망이라는 감정으로 흐르게 됩니다. 실망하면서 실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맥이 빠집니다. 살고 싶은 의욕이 사라집니다. 왜 살아야하는지 이유도 잃어버립니다. 실의는 “나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을 갖게 만듭니다. 자기가 버림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는 형편없고 작고 열등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치의 느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연약하고 의욕을 잃어버립니다.
깊은 실의에 빠진 사람이 의미를 찾지 못하면 자살이라는 방법을 찾기도 합니다.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할 때 실의에 빠지고 자살이라는 극한 방법을 찾기도 합니다. 유명한 여배우 <마린몬로>를 다 아실 것입니다. 그는 자기가 자기를 죽였습니다. 죽으면서 "아무도 날 사랑해 주지 않아" 그런 고백을 했습니다. 사실 그녀는 많은 남성으로부터 흠모를 받은 당사자였습니다. "나는 인생의 아무 기쁨도 누리지 못하고 죽네"라고 남겼습니다. 아니 그녀는 모든 것을 다 누린 사람이었는데 이러한 고백을 했습니다. 이것은 인생에서 진정한 기쁨과 감사가 없는 삶의 종말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세상이 주는 기쁨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좋은 사례입니다.
정말 죽고 싶은 사람이 있지요? 그런 사람을 위해서 죽는 방법 6가지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첫째, 집에 가서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오 아무것도 먹지말고 굶어요. 하루 이틀 지나면 죽습니다. 어떻게 죽어요? 배고파서 죽습니다. 그래도 안 죽는다 그러면 나와서 실컷 먹습니다. 먹고 또 먹습니다 계속 먹습니다 어떻게 죽어요? 배 터져 죽습니다. 그래도 안 죽는다 그러면 놀아요. 매일 놀아요. 일년 365일 놀아요. 백수로 놀아요? 어떻게 죽습니까? 심심해 죽습니다. 그래도 안 죽는다. 그러면 일을 해요. 24시간 쉬지 말고 48시간 잠도 자지말고 계속 일을 해요. 어떻게 죽어요? 힘들어 죽습니다. 그래도 안 죽는다. 그러면 집 앞에 가게에 가세요. 500원 짜리 동전을 들고 가게 집 아저씨에게 가서 아저씨 저 죽고 싶은데요. 그런 말했다가는 얻어맞아 죽습니다. 그래도 아저씨에게 죽고 싶으니까 복권하나 주세요. 그리고 사서 들고는 절대 긁지 마세요. 어떻게 죽어요? 궁금해 죽습니다. 정말 죽을 것 같다. 그러면 긁어요. 긁어보니 꽝 입니다. 어떻게 죽어요. 억울해 죽습니다. 그래도 안 죽으면 아 나는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의미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따라해 보세요, “자살” 다시 한번 “자살” 이제는 따라 합니다. 자살을 거꾸로 시작 “살자” 그러면서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의욕의 상실, 의미의 상실, 이 깊은 인생의 실의 속에서도 당당히 일어서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결코 실의를 피해갈 수 없는 것이라면 어떻게 이 실의를 벗어날 수 있을까요?
■ 어떻게 실의에 빠지지 않고 실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첫째, 자기를 찾아야 합니다.
실의에 빠지지 않고 실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기를 찾아야 합니다. 나를 찾아야 합니다. 나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나는 의미 있는 존재다. 나는 사랑 받은 존재다. 나는 가치 있는 존재다.” 라는 자기 존재를 찾아야 합니다. 자기를 회복해야 합니다. 자기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12절 의미 있는 존재라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나는 귀중한 존재야. 나는 유일한 존재야. 나는 하나님의 가치 있는 사람이야.”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왜 자기를 멸시합니까? 왜 자기를 포기합니까? 왜 자기를 무시합니까? 아무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도 나는 나를 인정해줄 수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사랑해주는 것 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다. 자기를 존귀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자기를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해주십시오. 자기를 소중히 여기고 자기를 세워주십시오. 내가 나를 세워주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세워주지 못합니다. 자기를 사랑하십시오. 자기가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는데 아무도 나를 사랑해줄 자가 없습니다. 이기적인 자기 욕망을 채우는 사랑이 아닌 진정으로 자기를 받아주는 사랑을 하십시오. 자기를 가치 있게 여기십시오. 나를 의미 있는 존재라고 여기십시오. 이 때 실의는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기의 가치를 인정해야 합니다.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봅니다. “내가 누군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독생자 예수를 죽게까지 하면서 나를 구원해주었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주었지, 나는 하나님의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야. 나는 그 사랑을 받았지, 지금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고 있어.” 이렇게 하나님 안에서 자기의 가치를 새롭게 인정하십시오. 실의는 나에게 터를 잡을 수 없습니다.
한 화가가 있었습니다. 그림이 유명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습니다. 넓은 정원과 좋은 저택에서 화려한 생활을 했습니다.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갑자기 아내가 병들어 죽었습니다. 그는 상심했습니다. 이젠 돈을 다 날려 버렸습니다. 알거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실의에 빠졌습니다. 그가 바로 네덜란드의 유명한 화가 렘브란트입니다. 이런 실의에 빠져 있을 때에 친구가 "나와 같이 교회 나가자" 권유를 했습니다. 저 같으면 '너나 나가라' 할 사람이 권유를 받아들여 교회에 나갔습니다. 실의에 빠져 삶의 의미를 상실한 렘브란트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을 부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보기 시작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생각합니다. 자기의 의미를 찾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찾았습니다. 이제 삶의 방향이 바뀝니다. 세상 그림이 아니라 성화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불후의 명작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감옥에 있는 사도 바울」을 남겼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기를 찾고 삶의 의미를 찾고 나의 사명을 찾을 때 실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저자는 실의에 빠져 있을 때가 자기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생각합니다. 19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 두신 은혜 곧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나는 실의에 빠질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실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실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그 큰 은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무 가치 없는 나를 사랑하였잖아요. 나를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소중함과 가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세워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세우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인정해주시고 나를 세워주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순간 실의는 나를 정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둘째, 하나님을 믿음으로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실의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과정은 실의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왜 실의에 빠집니까? 근본적인 뿌리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부족입니다. 믿음의 흔들림이 있을 때 실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결국 실의에 빠지지 않고 실의를 벗어나는 길은 믿음입니다.
시편 기자는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다시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점검합니다. 하나님을 다시 믿습니다. 14절에서 16절까지 저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그러하여도 나는 주께 의지하고 말하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였나이다.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에서 나를 건지소서.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취시고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나로 부끄럽게 마시고 악인을 부끄럽게 하사 음부에서 잠잠케 하소서”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믿음만이 당신을 다시 세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실의에 빠졌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마태복음 26장 38절에 보면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실의에 빠져 있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놓고 이 일을 감당할 사명이 너무나 엄청납니다. 고민에 빠집니다. 실의에 빠졌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어떻게 다시 일어섭니까? 하나님과 연결시키면서 실의를 극복해 갑니다. 39절에 예수님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면서 하나님과 다시 연결하여 자신의 사명을 다시 찾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곧게 가게 됩니다.
너무나도 깊은 실의에 빠져 낙심과 절망 가운데 있는 한 변호사가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그가 혹시 자살이라도 할까봐 그 주변에서 칼이나 면도칼이나 날카로운 것들을 다 치워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일기장에는 이렇게 씌워있었습니다. “나는 지금 살아 있는 인간 중에 가장 비참한 존재이다. 내가 이 상태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인지 그것을 믿을 수 없다. 아마 나에게 있어서 더 좋아진 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 사람은 바로 에이브럼 링컨입니다. 그는 수많은 대통령에 낙선되어 낙심과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때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늘 말씀해주시던 성경말씀이 기억났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느니라" 그는 이 믿음으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링컨의 대통령 직무실에는 이 성경구절이 걸려있었습니다. 이것이 역전의 인생입니다. 실의를 모르는 인생,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를 의지하고 살 때, 우리에게는 결코 영원한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신앙은 결코 실의에서 영원히 좌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인생을 굳건히 당당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믿습니까? <아멘>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는 원치 않게 실의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실의에 빠집니다. 사람들이 나를 포기하기에 실의에 빠집니다. 나를 멸시하는 사람이 있기에 실의에 빠집니다. 나를 무시하는 사람이 있기에 실의에 빠집니다.
그러나 이 때 우리의 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을 다시 찾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실의를 이겨나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나를 인정해주지 못해도 잘 난 것이 없지만 나를 인정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잖아요. 사람들이 나를 포기했어도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않는 하나님이 계시잖아요. 사람들이 나를 멸시하고 무시해도 결코 나를 멸시하지 않고 무시하지 않는 하나님이 계시잖아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기에 우리는 실의에서도 벗어날 수 있어요. 믿습니까?
맺는 말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믿음이 없는 사람만 실의가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모든 사람에게는 실의가 찾아옵니다. 어는 심리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치 있는 삶을 살려고 하는 자들에게는 항상 실의를 경험하게 된다” 왜 그럴까요? 그렇게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사는데는 여러 가지 넘어야할 장애가 많다는 것입니다.
삶에서 어떤 실의를 경험하고 있습니까? 혹 실의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은 실의를 경험하지 못했다구요? 다행입니다. 앞으로 실의는 결코 나를 비켜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 때가 중요합니다. 결코 실의에 인생을 맡기지 마십시오. 실의에게 내 인생을 넘겨주지 마십시오. 실의는 내가 피해갈 수는 없는 길이지만 내가 극복하지 못할 길은 아닙니다. 실의는 우리를 넘어트리려고 하지만 실의는 우리가 정복해야할 과제입니다. 실의를 축복의 기회로 삼으십시오. 실의보다 더 깊은 수렁은 없습니다. 더 이상 낮아질 것이 없는 것이 실의입니다. 그렇다면 실의는 인생에서 다시 일어나야 할 곳입니다. 실의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찾을 수 있습니다. 실의를 축복의 기회로 삼으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일어나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실망했던 일들을 잊어버리십시오. 하나님을 믿음으로 다시 실의 가운데 삶의 에너지를 받으십시오. 하나님을 믿은 믿음으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십시오. 실의의 깊은 계곡에서 새로운 인생을 창조해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홍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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