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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6: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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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박조준 목사 |
참고 : |
깊은 강이 가로지를 때
요한복음 6장 1 절- 15 절
신약성경 4복음 전체를 통해서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게 되면 아 30가지는 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천명을 먹일 수 있는 이 기적만은 4복음서를 다 뒤져 봐도 다기록 이 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이 오천명을 먹일 수 있는 이 기적만은 그 어떤 사건보다도 많은 군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몹시 피곤해 있었습 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군중들을 다 돌려 보내고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들렸습니다. 오고 가는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은 피곤하셨습니다. 일 중에 사람을 대하는 일보다 더 피곤한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도 사람은 반드시 휴식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 다.
오늘처럼 세상이 소란하고 복잡해지기 오래 전에 예수님께서는 이레 중에 하루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영혼에 안식을 얻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이 귀하신 명령을 저버릴 위험마저 직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세대가 고요하게 휴식을 취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사실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찍이 어거스틴은 이런 기도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 영혼을 세 상에 속한 복잡함 속에 구원하시어 주 날게 그늘 밑에 품어 주시옵소서." 우리 인간에게 는 육신적인 휴식과 영혼의 안식이 꼭 필요합니다.그러므로 주일에 예배당을 찾아 나와 서 예배 드리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사실 우리육신과 영혼에 얼마나 큰 축복이 되는지 모릅니다. 현대인은 육신과 영혼이 다 지쳐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사람들을 다 돌 려 보내고 좀 쉬시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바다를 건너 가셨는데 거기도 벌써 예 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이 나 가지고 사람들이 모여 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피곤한 몸을 쉬실 시간도 없게 되었을 때도 짜증내지 아니하시고 그 많은 사람들을 보았을 때 불쌍히 여기셨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요구를 아셨고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기셨습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게 된 이유도 여기 있다고 생각 합니다. 예수님이 큰 기적을 행할 능력을 가지고 계셨고 어느 누구도 하지 못하시는 말 씀을 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 큰 이유는 예수님은 군중을 사랑하 셨고 또 군중들은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가르치셨고 또 그들의 병 을 고쳐 주셨고 그들의 영혼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양식이 필 요할 때가 왔습니다. 주님은 영혼에만 관심을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신에 도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친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 가운 데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놀 라운 능력을 우리의 매일매일의 육신적인 생활에도 채워 주시기를 기뻐하는 것을 의미 합니다.
우리 자신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은 아주 귀한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직장에 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은 모두 하나님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제가 듣는 대로 결혼 연령이 되었는데 아직 마땅한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남모 르게 고민하는 분들도 꽤 계시는 모양인데 이거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결혼도 하나님이 도와 주지 아니하시면 사람의 힘으로 꼭 되는 게 아닙니다. 이 말은 우리가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고 육신을 위해서 기도할 의무가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 오천명을 먹일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난 것을 생각해 보세요.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 니다. 많은 사람의 무리가 굶주릴 대에 제자들이 기껏 생각해 낸 것은 이 사람들을 다 돌려 보내어 각자 사 먹도록 합시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들 은 오천명이 넘게 많이 모였는데 제자들에게는 음식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다 대 접할 만한 재정적인 형편도 되지 못했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우 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가장 인간적인 상황입니다. 도저히 우리 힘으로는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이 우리가 나가는 앞날에 가로지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세상 사람들은 낙심하고 고민하고 심지어는 자살해 버리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가끔 우리는 이 책임 을 전가시킬 수 없으면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도피하려 합니다.
옛날 시편기자도 이렇 게 말해줍니다." 나의 말이 내가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으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구하리로다 했습니다." 여러분 이 시 한 귀절 속에서도 이 시인의 입장이 어느 정도라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오죽이나 답답했으면 오죽 이나 어려웠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아예 훨훨 날아가서 저 멀리 날아가서 좀 편히 쉬고 싶다고 했겠습니까? 그는 육신과 영혼이 피곤하고 지쳐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 이 자리 에도 제가 그와 같은 처지에 있습니다. 그 시는 바로 제 심정의 표현입니다 라고 말씀 하실 분이 많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가끔 사람들은 불안감 때문에 그들의 삶에서 도 피하려고 하는 충동을 느끼며 삶을 파괴해 버리기조차도 합니다. 그리고 필요를 충족시 킬 수 없을 때 흔히 취하는 행동은 뒤로 미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욱 더 편리할 때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이란 우리의 기회를 영원히 우리가 미치지 못하는 그것으로 조용히 옮겨다 놓곤 합니다. 우리가 그것을 너무 오래 미루어 두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생에 있어서 가장 큰 모험의 기회를 잃어버릴 때가 많 습니다. 여러분 우리 앞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 도저히 우리 힘 가지고는 건널 수 없 이 깊은 강이 가로지를 때가 있습니다. 여기 오늘 본문 중에도 제자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식량이 많은 것 이 필요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역량과 특별히 하나님 의 능력을 염두해 두지 못하고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과 우리가 일해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란 절대로 없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십니다. 보세요. 해는 저물어 오는데 사람들은 모여 들었지요 그런데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굶주린 사람들을 앞에 두고 제각기 돌려 보내라고 하셨습니까? 그러지 않았습니다. 주님에게는 불가능이란 없었습 니다. 건너지 못할 강, 깊은 강이 없습니다.
예레미야서32장17절에 주 여호와여 주께서 권능과 드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 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불가능한 일을 생각해 낸 다고 해도 하나님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십니다. 예레미야32장27절에 보면 나는 여 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렇습니다. 누가복음18장27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사람의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앞에 깊은 강이 가로 막고 있습니까? 사업에 어려움 당하고 있습니까? 결혼 생활에 문제가 있습니까? 친구간 에 오해가 있습니까?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셨습니까? 여러분에게 능 치 못할 일이 있으면 주님께 믿음으로 맡기시고 의심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 문에 보면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맨 우측 요한3글자로 시작이 됩니다. 그 위에 라는 말입니다. 무슨 일이 있은 후입니까? 요한은 이 기적을 설명하기에 앞서 서5장에 걸쳐 다른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같은 말이 나타나면 이해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이전 에 제자들을 택하여 여러 곳으로 파송했습니다. 마태복음에 의하게 되면 제자들은 마을 마다 돌아다니며 하늘나라의 복음 회개의 말씀을 전했다고 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피곤 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주님 곁으로 왔습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말씀을 전파해 서 육신과 영혼이 모두 피곤했고 주님은 그들과 더불어 따로 쉬시려고 했습니다. 예수 님은 열심히 일한 제자들을 데리고 군중들을 피해 쉴 수 있게 되기를 바랬습니다.
그래 서 오늘 본문1절에서 3절에 보면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 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예수께서 산 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했습니다. 그 장면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과 그의 열두 제자는 산 위로 올라가서 휴식을 취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6장 5절 에 보면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보에게 이르 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피곤 하고 지쳐서 혼자 쉬기를 바라셨지만은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예 수님께로 몰려 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0절 말씀을 보면 그 수가 오천이라고 기록되 어 있는데 마태복음 14장 21절에 볼 것이면 여자와 아이를 뺀 수가 오천이라고 했습니 다. 그러니까 적어도 만명이 넘었을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그들은 여기 황량한 산중턱에 모여 들었습니다. 그들은 몹시 배가 고팠습니다만은 근처에는 뭐 사 먹을 만한 구멍가게도 하나 없었습니다. 도저히 그 때 상황으로는 어떻 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제자 들의 생각은 여러분이나 제 생각과 같았습니다. 주님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제자들은 모두부정적인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았지만 예수님은 이 상황 속에서 기적을 일으키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그와 같은 사실을 배우고 알고 있었습니다. 지 금까지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왔었지만은 이제는 예수님의 행함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다가왔습니다. 이론적인 지식이 확고부동한 실제적인 현실로 바꾸어지는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시험했습니다.
오늘 본문 5절을 보세요.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 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라고 말씀하셨습니 다. 사실 빌립은 돈을 갖고 있는 회계가 아닙니다. 회계는 그 당시 가롯 유다가 있었습 니다. 그런데 왜 빌립에게 이렇게 물어 보았을까요. 여기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다 음 절에 말씀을 읽어 보시면 압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하심이었더라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각자가 체험을 통해서 배우게 하고자 하십니다.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세요. 주님은 우리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믿으며 어려움 속에서도 인내로 견디어 나가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의 이 신앙을 알아보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빌립이 나를 온전히 믿을 만큼 많이 배웠을까 건널 수 없는 강이 가로질러 있을 때 나의 능력만을 온전히 의지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습 니다.
사실 빌립이라는 사람은 눈으로 모든 것을 직접 모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사 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 람들에게 먹게 하겠느냐 고 주님이 물으셨을 때 빌립은 각 사람에게 조금씩 먹게할지라 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할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물으 신 물음과는 엉뚱한 대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디에 가야 하겠느냐 라고 물으셨는데 돈이 얼마 들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예수님은 빌립이 이렇게 대답하기를 바 라셨는지도 모릅니다. 선생님, 전 모르겠습니다. 우리로서는 전혀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넘지 못할 것이 없으시니 주님이 하시는 대로 전 따르겠습니다. 주 님은 이와 같은 상황에도 모든 것을 다할 수가 있으실 줄다 믿습니다. 이렇게 대답하기 를 바랬을 것입니다.
그런데 빌립은 그렇게 대답하지를 못했습니다. 빌립은 주위의 상 황 문제의 심각성만을 보았지 하나님의 권능이 얼마나 큰지를 몰랐습니다. 그는 할 수 있는 일보다도 할 수 없는 일에 더 큰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대개의 사람이 그렇습니 다. 어떤 일에 봉착할 때 할 수 없는 일에만 신경을 쓰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안 그렇습니까? 우리 주위의 상황이 악화되어 더 이상 우리 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을 때에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믿으면 된다는 생 각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을 불가능한 일뿐입니다. 그래서 낙 심하고 겁나하고 두려워합니다.
오늘 본문 9절 이하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한 아이가 있어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베드로의 형제되는 안 드레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 말을 하지 않았으면 더 좋을 뻔 했습니다. 여 러분 우리도 안드레처럼 이것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것 없습니다. 시작도 할 수 없습니 다. 하면서 받은 관람표와 역량을 낭비해 버리지는 아니합니까? 우리는 이 소년의 이름 도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보리떡 다섯 덩이와 생선 두 마리를 원하실 때 주 님께 온전히 드렸습니다. 역사는 여기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배불리 음식을 먹을 뿐만 아니라 이 소년도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나 하나님께 청결하게 드리는 것은 결코 잊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 받는 축복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예수님은 이 보리떡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를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 다음에 이 빵이 커진 것을 기다리지 아니하시고 그 보리떡 다섯 덩이 가지 고 직접 떼어 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얼마나 큰 믿음입니까? 예수님은 단지 갖은 것 가지고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모든 사람이 여호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습니 다. 사실상 오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습니 다. 어떻게 떡이 불어났는지 저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그것은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기적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의지하는 사람에게는 계속 일어난 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전 생애를 통해서 이런 기적이 반복될 것입니 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또 우리의 삶의 환경이 너무 어려워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처럼 우리 앞에 가로막힌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그것을 주님앞에 바 칠 때 주님은 바로 그것을 통해서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받게 해주실 줄을 믿습니 다. 더구나 더 풍성하게 받게 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지금 믿는 믿음을 가지고 시작해 보십시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시작해 보십시오. 할 수 있을 때까지 기 다리지 마시고 지금부터 시작해 보십시오. 그것 가지고 기적을 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지금이 바로 기적이 일어날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깊은 강을 건널 때입니다.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를 때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주님 손에 맡 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드리십시다. 우리 한국의 형편이 어떻습니까? 한 마디로 어렵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다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국민은 굶주리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요. 쌀이 남아서 다른 사람을 도와 주고 있는데요. 천만에요. 굶주려서 앞길이 캄캄해서 이 강을 건널 수가 없어서 자살하 는 사람이 우리 주변에 있잖습니까? 경제는 경제대로 어렵습니다. 집세와 물가고는 하 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아 오르고 증권은 바닥 없이 떨어지고 경제 관료를 바꿔 보면 봄 나아질까 해서 바꿔 보지만 신통한 길이 없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외국의 모 든 경제 전문가들도 한국의 경제에 대해서 대책이 없어졌다고 합니다. 사람 볼 때는 거 의 절망적입니다. 정부도 위기를 느끼고 정부의 존속 여부를 가지고 심각하게 의논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만 성도 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선 우리 의식구조가 문제입니다. 이것 바꿔야 합니다. 물론 자본주의 체제에 있는 우리들이 남 돈 벌어서 쓰고 있는데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이 우스워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기초적인 상식 범위는 지켜야 합니다. 나 국산 냉장고 맘에 안 들어 미제 냉장고 사 쓰는 데 그것 누가 뭐라 그래요.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 돈이 있어서 200만원 짜리 블라우스 사 입는데 누가 말합니까. 그러나 최소 한도 이것만은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여기 정신 차려야 합니다. 요새 과소비 과 소비하는데 다른 사람 말고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정신 차려야 합니다. 그러면 놀라 운 변화가 일어날 줄을 나는 믿습니다. 돈 많다고 제 마음대로 쓰는 사람 볼 때 부러워 하는 대신 멸시할 줄 알고 경멸할 줄 아는 수준에 이르러야 합니다. 나도 언제쯤 저렇 게 할까?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이 할 일이 아니예요. 여기 우리 가운데 이런 사람 있 으면 용서하세요. 용서할 것도 사실은 없습니다. 정신 차려야 합니다. 사업을 하는 분 들도 그렇습니다. 십억불어치 수출하는 것보다 일억불어치 사치품 사오는 게 돈 더 벌 린다고 그 일하게 되면 나라는 망합니다. 노사 문제 복잡한데 머리 쓸 것 없이 땅 사는 게 좋다고 땅 사면 돈법니다. 그러나 그 일하면 나라는 망합니다. 이거 알아야 합니다. 내가 갖은 것 용량 적습니다. 보리떡 다섯 덩이에 생선 두 마리 보잘것 없습니다.그러 나 이것을 온전히 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십니 까?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것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하 는 것을 하나님은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을 강제로 빼앗아 해결해 주 시는 분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려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 어 려운 때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전 이스라 엘 민족을 영도하는 여호수아에게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것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데 마침 그 때 몸을 거두는 시기가 되어서 요단물이 언덕 위에 넘칠 때가 되어 도저히 깊은 강을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언약괴를 내 어 백성의 제사장들이 백성이 보는 앞에서 철철 넘치는 요단 강물에 발을 담가라 그랬 습니다. 그 말씀대로 언약괴를 맨 제사장들이 순종의 요단 강물에 발을 담그었더니 기 적이 일어났습니다. 강물이 갈라졌습니다. 깊은 강 건널 수 없는 강을 육지처럼 건너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분명히 들으세요. 우리 천만 그리스도인들이 하나 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이 어려운 문제에 내가 할 수 있는 일 가지고 믿음으로 한 발씩 내딛으면 반드시 기적이 일어날 줄을 믿습니다. 우리의 문제가 해결될 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가는 길에는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이 놓여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험적으로 순종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보리떡 다섯 덩이에 생선 두 마리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바치십시오. 그럴 때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가나안 땅을 점령하게 됩니다. 기적이 이 민족 역사 속에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박조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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