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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로 가는 항해 .....

사도행전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472 추천 수 0 2011.10.15 11: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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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27:1-20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아그립바 왕 앞에서의 심문이 끝나고, 바울은 무죄라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이에 아그랍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26:30-32) 그러나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를 했으므로 총독은 바울을 로마로 이송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바울이 얼마나 로마에 가고 싶어 했습니까? 당시 로마는 세계의 중심지였습니다. 로마에는 영향력 있는 유력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으며, 로마로부터 시작된 잘 정비된 도로가 온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로마에 복음을 전하면 온 세계에 보다 효과적으로 복음이 퍼져나가게 될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토록 로마로 가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야, 그것도 죄수의 신분으로 바울은 로마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죄수의 신분이었으나 바울은 그가 가졌던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죄수의 몸이냐 자유의 몸이냐 하는 것은 그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복음을 가지고 로마로 가는 것만이 그의 꿈이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그의 꿈을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출항

 

바울 일행은 다른 죄수들과 함께 아구스도隊의 백부장인 율리오라는 사람의 지휘 하에 로마로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로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 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1-2절). 

 

 ‘아구스도隊’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군대라는 뜻입니다. 이 부대는 황제와 로마 군단 사이를 연락하는 임무와 죄수를 로마로 호송하는 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가이사랴에서 배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가이사랴에서 로마까지 가는 배편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아드라뭇데노 배를 타고 가다가 다른 배로 갈아타고 항해를 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무라 항에서 배를 갈아탔습니다. 

 

무라는 애굽과 로마 사이를 왕래하는 곡물 선단이 이용하는 항구 중의 하나였습니다. 애굽은 로마의 주요 곡창이었습니다. 로마 본국에서 소비하는 밀의 1/3을 애굽에서 조달했다고 합니다. 식량 수급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으므로 로마는 이 곡물 수송을 국가가 직접 관장하고 있었습니다. 곡물을 수송하는 배들은 알렉산드리아와 로마 사이를 왕래했습니다. 바울 일행이 탄 배가 무라 항에 도착했을 때, 항구에는 알렉산드리아를 출발하여 로마로 가는 곡물 운반선이 정박하고 있었습니다.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 일행을 그 배에 옮겨 태웠습니다.

일행

 

바울은 그렇게 열망하던 로마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처지는 열악하고 한심했습니다. 바울은 많은 죄수들 틈에 끼어 긴 항해를 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바울에게 큰 위로가 되는 사람들을 동행하게 하셨는데, 그들은 누가와 아리스다고였습니다. 

 

누가는 자기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사도행전에서 ‘우리’라는 말이 나오면 그것은 저자인 누가가 포함된 경우입니다. 1절에서 ‘우리가’라고 기록한 것은 누가가 함께 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또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바울과 동행하고 있었습니다. 누가와 아리스다고는 바울의 좋은 동역자들이었습니다. 죄수의 몸으로 로마까지 호송되는 바울에게 이 두 사람은 얼마나 위로와 힘이 되었겠습니까? 우리가 큰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늘 위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동역자들을 통하여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동역자로 부르신 것은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동역자들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시돈에서

 

하나님께서 바울을 위로하신 또 한 가지 일은 시돈에서 있었습니다. 바울 일행을 태우고 가던 배는 가이사랴를 출발하여 다음 날 시돈에서 잠시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배가 시돈에 머무는 동안 백부장은 바울이 친구들을 만나러 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3절) 이 때 시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는데, 이 일이 바울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선교지에서 수고하다가 잠시 귀국하는 선교사님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그 분들에게 작은 사랑을 베풀어 드리면 그 분들은 큰 위로를 받게 됩니다. 크게 돕지 못해도 편지 한 장, 작은 선물, 식사 한 끼 대접하는 일들이 그 분들의 수고와 피로를 녹여줄 것입니다. 이번에 잠시 귀국한 오삼열 선교사님은 수술을 받고 회복 중에 있습니다. 우리의 위로와 작은 대접이 복음을 위해 몸이 상하도록 수고한 선교사님에게 큰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미항에서

 

바울 일행은 무라 항에서 로마로 가는 곡물 운반선으로 갈아타고 다시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7,8절을 보면 바울 일행이 탄 배는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미항이라는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간신히 그 해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5-8절)

 

이것은 항해가 순조롭지 못했음을 보여줍니다. 거기서 그들은 항해를 계속할 것인지 중단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이제 곧 겨울이 닥쳐올 것이고, 겨울에는 항해를 계속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문제는 지금 도착한 미항이라는 곳에서 겨울을 지내느냐, 아니면 64km를 더 항해하여 뵈닉스에서 겨울을 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미항은 그레데 섬의 남쪽에 위치한 작은 항구였고, 뵈닉스는 그레데 섬의 서쪽에 위치한 큰 항구였습니다. 사람들은 작은 항구 미항에서 답답하게 겨울을 나기보다는 유흥가와 위락시설이 많은 큰 항구 뵈닉스에서 겨울을 지내고 싶어 했습니다.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12절)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나려면 64km를 더 항해해야만 했습니다.

바울의 만류

 

바울은 이 항해를 만류했습니다.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9-10절) 때는 대속죄일이 지나서 금식하는 절기, 즉 9월 하순이었습니다. 지중해는 9월 중순부터 11월 초순까지는 항해하기가 어렵고 위험했습니다. 바울은 지중해를 11차례나 항해한 적이 있었으며, 세 번이나 파선을 당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충고는 그의 경험과 과학적인 상식,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으로서의 감각에 근거한 것이었습니다. 

 

신앙은 상식적이고 과학적인 판단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물론 때로는 그런 것들을 뛰어넘어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해야 할 때도 있고, 하나님께서는 상식과 과학을 초월하여 기적을 베푸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평상시에 신앙인은 상식과 과학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의 나이아가라 폭포 상류에는 뱃놀이하는 곳이 있는데,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위험하기 때문에 줄을 쳐놓고 위험하다는 표시를 해놓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스릴을 맛보고 싶어서 곧잘 금지구역까지 갔다고 되돌아오곤 한다고 합니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되돌아올 수 없도록 너무 아래쪽까지 내려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배가 막 떠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은 큰 소리로 기도했다. “하나님, 구원해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살려주시면 이제 하나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그 보트가 어떻게 되었을 것 같습니까? 이런 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바울은 지중해에서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었으며, 특히 확고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신앙과 상식의 균형이 잘 잡혀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그의 경험과 영적인 감각으로 계속해서 항해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만류했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고서 배를 출항시켰습니다.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11절) 그 결과 그들은 죽음의 위기를 당해 많은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믿음의 사람 바울이 그 배에 타고 있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모두 죽고 말았을 것입니다. 신앙과 상식이 조화를 이루는 신앙이 건전하고 올바른 신앙입니다.

풍랑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 선주와 선장의 말을 더 믿고 항해를 계속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일단 배는 출항했습니다. 그리고 한 동안 순조롭게 항해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판단이 옳았다고 하면서 좋아했습니다. “남풍이 순하게 불매 그들이 뜻을 이룬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끼고 항해하더니”(13절) 이렇게 60km만 가면 유흥가와 술집이 많은 뵈닉스에 도착할 것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겨울을 즐겁게 보낼 생각에 그들은 기뻤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습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어김없이 광풍이 불어왔습니다. 

 

“얼마 안 되어 섬 가운데로부터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14절) 바람이 얼마나 심하게 불었던지 배가 바람에 맞추어 갈 수가 없어서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갔습니다.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15절) 그 배는 범선이었는데 바람이 워낙 세서 돛을 내리고 방향을 잃어버린 채 바람 부는 대로 마냥 밀려갔던 것입니다. 그들은 배가 부서질까 염려하여 간신히 구명보트(거루)를 끌어올려 배에다 끌어맸습니다. 그리고 배가 스르디스(모레 톱이나 암초)에 걸릴까 두려워 배의 연장을 바다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러고도 풍랑을 이길 수 없게 되자 사공들은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하여 짐을 바다에 버렸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에는 배의 기구를 바다에 버렸습니다. 이것은 이제 인간의 힘으로는 이 풍랑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포기한 것을 의미합니다. 

 

20절은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않았으며,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20절) 하루나 이틀만이 아니라 며칠 동안 칠흑 같은 어둠이 계속되었습니다. 기분 좋게 출발했는데 이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죽을 위험을 만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사람 바울의 충고를 듣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일개 죄수의 말을 따르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보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따르는 것이 더 쉬웠을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한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충고를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자녀를 결혼시킬 때 누구와 의논합니까? 자녀의 진학을 위하여 누구와 의논합니까? 사업을 시작할 때 누구와 의논합니까? 이사를 할 때는 누구와 의논합니까? 

 

이러한 경우에는 전문가의 말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 합니다. 성도들이 어떤 일을 결정하고자 할 때 목사와 의논하는 것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목사가 결혼에 대해서, 자녀문제에 있어서, 사업에 대해서, 경제에 대해서, 정치에 대해서 전문가는 아닙니다. 그러나 전문가의 충고 못지않게 하나님의 사람의 의견이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점검해주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이 다 잘되었다 해도 이것이 잘못되면 우리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특히 중요한 일일수록 전문가의 의견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의논하십시오. 기도하는 사람들과 의논하십시오. 더 나아가서 직접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바울이 탄 배를 책임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 바울의 말을 무시하고 출항을 강행하여 풍랑을 만났으며, 죽을 위기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거기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 인생의 항해 가운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순풍에 속았다.

 

뵈닉스를 향하여 출발한 사람들은 남풍이 순하게 불자 자기들의 결정이 잘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역시 전문가의 말 듣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광풍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처음에 일이 잘되면 모든 것이 다 잘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정말 일이 잘되었느냐 잘못되었느냐 하는 것은 끝까지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냐, 하나님의 뜻대로 되고 있느냐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사업이 잘되고 아무리 일이 잘 풀린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성경적이냐,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냐 하는 것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만일 그것이 성경에 맞지 않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면 일이 잘 풀린다 해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결국 큰 손해를 입게 됩니다

 

불신앙적인 방법으로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아무리 출세를 해도 그것은 성공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일시적인 형통일 뿐 곧 어려움과 낭패가 찾아오게 됩니다. 뵈닉스로 출발했을 때 순풍이 불었다고 해서 그들이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살 소망이 끊어진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항해와 같은 인생

 

바다에서 항해를 하다가 광풍을 만난 이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인생에 대한 교훈을 배우게 됩니다. 인생은 험한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이 힘들고 위험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생 항로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도자와 보호자가 되어주십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인생의 동역자들을 주셔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동역자들이 얼마나 귀합니까? 

 

인생을 항해할 때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물을 많이 얻거나 출세하여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도 중요할지 모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과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지 못했다면 우리의 인생은 헛되고 피곤한 인생이 될 뿐입니다. 당신은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순종하며 살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방법과 수단을 사용하여 출세하거나 재산을 모으는 것은 결코 성공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순종하는 인생을 사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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