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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28: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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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정원 목사 |
참고 : | http://charmsarang.onmam.com/ |
동족에 대한 사랑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지만, 자기 동족에 대한 사랑도 남달랐습니다. 바울은 세계 각처를 돌아다니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렇게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을 보면서 바울은 한 편으로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방인들은 이렇게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데 동족인 유대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디를 가든지 먼저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유대인들에게 핍박을 받았으나,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에서도 바울은 먼저 유대인들을 초청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바울처럼 민족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까? 당신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려 본 적이 있습니까?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 많은 죄와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우리나라가 이 만큼 평안한 것은 기도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그런데 민족에 대한 가장 큰 사랑은 이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성도가 되며, 이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헌신하는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가까운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변명함 로마에 도착한 지 사흘 후에 바울은 유대인들 중 높은 사람들을 청했습니다. 그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변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바울은 지금 로마 황제에게 상소하여 로마로 오게 되었는데, 내용을 모르는 로마의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바울이 자기 민족을 황제에게 고소한 것으로 생각할 것이 염려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결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찾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자기가 있는 곳으로 초청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황제에 상소하게 된 것을 설명했습니다.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내준 바 되었으니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 하는 것이 아니니라”(17-19절) 바울은 자신이 로마에 온 것은 유대인들을 고소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 자기는 지금까지 조상들의 전통과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었다는 것, 그런데 유대인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으며 로마인들에게 넘겨주었다는 것, 로마인들은 바울을 심문한 후 죄가 없음을 알고 석방하려 했으나 유대인들이 반대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황제에게 상소하게 된 것을 그들에게 해명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희망, 곧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아에 대한 소망이 예수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전한 것 때문에 죄수가 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복음을 전할 기회 바울의 변명을 들은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아직까지 유대로부터 어떤 편지도 받은 바 없으며, 어느 누가 와서 바울에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말한 적도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전하는 나사렛 예수에 대해서는 그 파가 어디서나 반대를 받는 줄로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은 바울의 말을 더 자세히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21-22절) 그래서 그들은 다시 모여서 바울의 말을 자세히 들을 날짜를 정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울은 자기의 입장을 변호할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바울에게 배울 또 하나의 중요한 모습입니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복음 전하기를 힘썼습니다. 어떤 기회만 생기면 그것을 통하여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복음 전할 기회 만들기를 별로 힘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복음 전할 기회를 만들도록 힘써야 합니다. 안 믿는 이웃이나 친구의 생일이라든지, 그들이 병원에 입원을 했다든지 할 때는 그들을 축하해 주거나 위로해 주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진정한 부흥 요즘 한국 교회는 성장이 둔화되거나 멈추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흥되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교회들도 자세히 따져보면 안 믿는 사람들을 전도하여 부흥되기 보다는, 다른 교회에서 유입된 교인들로 인해 숫자가 늘어난 경우가 많습니다. 정말 순수하게 안 믿는 사람들을 전도하여 부흥되어야 진정으로 부흥된 것입니다. 요즘 미국에서 유명한 윌로우크릭 교회나 새들백 교회는 불신자들을 전도하여 부흥한 교회로 유명합니다. 그들의 슬로건은 “불신자들을 전도하여 헌신된 주님의 제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 교회들은 성도들에게 먼저 불신자들과 친해지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그들을 교회로 초청하여 그들을 위해 준비된 예배에 참석시킵니다. 그런 다음에는 그들을 헌신된 사역자로 양육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수만 명의 불신자들을 헌신된 사역자들로 변화시켰습니다. 부산의 세계로 교회는 전도해서 부흥한 대표적인 교회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안 믿는 이웃이나 친구에게 다가가 복음 전할 기회를 만드십시오. 그리고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그들에게 복음으로 도전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흥입니다. 두 가지 반응 약속한 날짜가 되자 많은 유대인들이 바울이 머물고 있는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울의 강론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말을 가지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전했습니다. 즉 유대인들이 믿고 인정하는 구약을 가지고 예수가 바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라고 전한 것입니다.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23절) 모인 사람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바울의 강론을 들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런데 바울의 강론을 들은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나타냈을까요?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습니다(24절).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씀을 들었는데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말씀이 선포될 때마다 언제나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이렇게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믿지 않는 쪽에 서지 말고 믿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이 둘의 차이는 하늘과 땅보다 큽니다. 말씀을 듣고도 결단하지 않는 사람들은 항상 있습니다. 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도 말씀을 들을 때 늘 결단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신앙이 성장하고 삶이 변화됩니다. 그러나 결단하지 않는 성도는 항상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시간에도 말씀을 들으면서 결단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실망하지 말 것 우리가 전도하기를 겁내는 이유는 사람들이 전도해도 믿지 않을까 봐서입니다. 그러나 대사도인 바울이 복음을 전했는데도 안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전도했는데 안 믿는다고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주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에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고 안 믿고는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닙니다. 물론 전도 받는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게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안 믿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믿을 수 있습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13:48) 그러므로 전도해도 소용없을 것이라고 지레 겁을 내지 말고 기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하기를 항상 힘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을 부르실 때 반드시 우리의 전도를 통하여 부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할 때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이 믿게 될 것입니다. 성경으로 해석함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을 다해 복음을 전했으나 안 믿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우리처럼 바울도 매우 섭섭하고 실망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곧 성경을 통하여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이렇게 전하는데도 왜 사람들이 믿지 않았을까요? 그는 그 대답을 성경에서 찾았습니다. 바울은 이사야 6:9-10을 생각해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데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복음을 전했는데 안 믿는 사람들은 바로 여기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야의 말씀으로 이 사건을 해석하고 마음의 섭섭함과 실망스러움을 다 벗어 버렸습니다. 당신은 당신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을 말씀으로 해석하고 있습니까? 다시 말해서 그 모든 일들을 말씀에 비추어 보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생각과 기준으로 모든 사건을 해석하기 때문에 늘 실망합니다. 그리고 남을 탓합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해석할 줄 아는 성도는 실망하지 않고 더욱 하나님을 바라보며 위로를 받습니다. 그리고 마땅히 해야 할 것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만일 당신이 진정 믿음으로 살며 주님을 위해 충성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당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가운데서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섭섭할 것도 없고 실망할 것도 없습니다. 오직 선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위로를 받고 확신을 갖게 됩니다. 문제는 내가 이 모든 일을 말씀에 비추어 해석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바울은 동족인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자기의 소명을 확인합니다.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28절) 한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교전략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강퍅하여 복음을 거절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방인에게 보내신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복음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안 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복음 전하는 길이 막혔습니다. 그러면 이제 복음 전하는 일은 끝난 것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다른 길을 여십니다. 우리는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에서도 이러한 원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시아로 가는 길을 막으셨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행16:6) 그러나 아시아로 가는 길이 막힌 대신 유럽 쪽으로 가는 길이 열렸습니다.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행16:9) 바울은 처음 자기가 원한대로 아시아로 가지는 못하게 되자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마게도냐로 가서 복음을 전하여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우리에게 더 좋은 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 우리가 복음을 위해 살며 주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자 하는데도 길이 막힐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다른 길을 여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새로 열어주신 길이 훨씬 효과적이고 좋은 길입니다. 비록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을 단념했지만, 그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수많은 이방인들을 구원했습니다. 비록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했지만, 그 대신 로마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나중에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했을 때 보니 로마 황실에까지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핍박을 받는 중에도 복음은 힘 있게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한 문이 닫히면 곧 다른 문이 열립니다. 그리고 그 문이 더 좋은 길로 통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교전략입니다. 오직 복음을 위하여 살고자 하는 사람과 교회는 이러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합니다. 한 영혼을 전도하기 위해 그토록 기도하면서 공을 들였는데 끝내 믿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이사를 가거나 다른 교회로 출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그 동안 기도하고 공들인 것이 수포로 돌아간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또 다른 사람을 전도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사람을, 아니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살려는 성도들, 오직 주님을 위하여 충성하기를 원하는 성도들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인도해주십니다. 그들의 길이 막히면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길을 열어 주십니다. 직장이 교회를 섬기기에 마땅치 않아서 맘껏 교회를 섬길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한 성도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 기도를 들어주시고 더 좋은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오직 하나님만 온전히 신뢰하며 우리의 인생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더 좋은 길을 예비하시고 열어주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쉬지 않고 복음 전하기를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011.9.4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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