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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순전한 신앙 이야기<http://cafe.naver.com/ghkdqndl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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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법정이 교회에 대한 이런 황당한 판결을 내린 적이 있었습니다. 춘천지법에서 올라온 목사 정년에 관한 건이었는데 대법원에서는 목사는 다중집회를 주재해야 할 직무특성에 비추어 그 직무 정년을 65세로 보아야 한다며 사건을 원심으로 돌려보내어 총회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70세의 정년을 사법 심사가 멋대로 깎아버린 경우였습니다.
또 울산지법에서는 분쟁 난 교회에 불신앙의 변호사를 보내어 장로의 직무를 대행케 하고 교회에서는 그에게 월300만원의 보수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헌법에 보면 공동의회 소집청원을 교인들이 할 경우 무흠 입교인 3분의 1이상 청원이 있어야 함을 이는 가중하니 교인 5분의 1이상이 적당하다며 이를 위반하면 위반행위 1회 때마다 2천만원씩 신청인들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판결들로 인해 교계가 충격 받고 알게 된 자들은 말도 안되는 일로 매우 황당해 했지만 이것은 그런 세상법정에 교회 사건을 의뢰한 것이 잘못이고 문제라 봅니다.
주께서 보실 때 더 황당하게 여기실 것은 하나님의 교회된 자들이라면서 하나님의 법에 의뢰하거나 그 법에 굴복하지 않고 세상 법에 의뢰하고 그 판결에 따르며 하나님의 법과 통치가 통하지 않는 교회들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분이 다스리는 그 나라된 교회의 권세나 질서보다 세상나라 법의 권세를 더 두려워하고 인정한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어느 법률가가 언론에서 자기 느낌을 밝힌 바에 의하면 기독교계 내에서 발생하는 분쟁과 갈등으로 인해 법정에 계류 중인 민형사 사건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데 가능한한 서로 그런 교계 사건은 안 맡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법과 얽혀서 매우 복잡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실로 그렇습니다. 교계 신문이나 잡지 같은 매체를 통해 볼 것 같으면 교회 분쟁으로 인해 성도끼리 서로 고소하고 고발하는 사건도 많고 교단끼리 얽힌 문제로 인해 소송한 일도 있고 교단내 정치문제로, 신학교 문제로, 어떤 재정문제로, 교단장 선출에서 부정선거 시비로, 불법문제로, 재단이사 운영문제로, 선교사업 문제로, 성경찬송 출판 이권문제로 심지어는 폭력이나 감정대립이나 명예훼손 시비 등으로 서로 고소하고 소송을 제기하고 무효소송을 내고 가처분신청이나 가압류신청을 하는 교계 실재의 사건들이 연이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정당한 것처럼 합니다. 또한 거리낌 없이 공개적으로 말하고 승소했니 패소했니 언론에 공포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교계가 마땅한 하나님의 법이 통하지 않고 세상법이 통하는 역리현상이 많은 것은 하나님 나라를 얻고 누리려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많은 지도자들부터 교회를 통해 자기 성공과 사람들이 알아주는 인기나 영광의 자리를 욕망하고 있기 때문에 지지 않으려 하고 손해 보지 않으려 구속력이 있는 세상 법정에 송사하는 것이며 그 밑에서 보고 배운 교인들은 하나님을 통해 세상을 얻는 잘못된 신앙들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법이 통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 백성이라 면서도 세상 법정에 고소한 일이 있었음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 알다시피 유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당시 교권주의 자들은 예수를 세상 법정인 빌라도 총독 앞으로 끌고가 고소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고소한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교권에 위협을 느낀 것이며 또한 자기들의 인정받는 신앙과 가르침에 대한 예수님의 지적이나 교훈이 그들에게는 정면적인 거스림이었고 또한 위협과 방해로 느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주의 자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교권과 무리들로 인한 인기와 영광을 계속 누리기 위해 상대적으로 느낀 예수님을 제거하기위해 세상 법정에 고소한 것입니다. 요즘에 보면 사이비나 이단들이 지적을 받고 몰리면 그 상대에 대해 가차 없이 공격하며 이렇게 저렇게 얽어서 세상 법에 고소하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또한 사이비가 아니라 할지라도 교회 된 성도끼리 세상 법정에 재판을 걸고 서로 싸우며 대립하는 교회가 있었는데 바로 고린도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 고린도 교회가 성도끼리 일어나는 분쟁과 시비문제나 어떤 상대적인 일로 인해 세상 법정이나 관청에 호소하고 고소하는 일에 대해 강하게 책망했는데 거기에 보면 “너희 중에 누가 다른 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 형제가 형제로 더불어 송사할 뿐더러 믿지 아니하는 자들 앞에서 하느냐 너희가 피차 송사함으로 너희 가운데 이미 완연한 허물이 있나니 차라리 불의를 당하는 것이 낫지 아니하며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구나 저는 너희 형제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성령께서는 바울의 입을 빙자하여 책망합니다(고전 6:1-9 참조)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분명하게 알아두어야 할 것은 형제끼리의 문제, 즉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성도간의 문제를 가지고 불의한 자들(믿지 아니하는 세상) 앞에서 송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는 완연한 우리의 허물로 잘못되고 부끄러운 처사가 되는 것이라고 증거 합니다. 본질적으로 세상이 오히려 교회 판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공의의 참된 판결이 있기 때문 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모르고 하나님 법과 반대되는 인간적 기준으로 되어 있는 세상 법정에 교회 일을 송사하면 되겠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속임을 당하는 것이 낫다는 말씀입니다. 어려움을 당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교회는 하나님 나라 실현을 위해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보건대 하나님의 통치의 법이 전혀 통하지 않는 무리들이 있는데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고 또 하나님을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면서도 마음은 다른데 있어 통하지 않는 유대종교처럼 하나님을 이용하는 잘못된 이단종파든가 하나님을 통해 세상을 구하는 잘못된 신앙의 무리들입니다. 그리고 또한 고린도교회처럼 아직 육신에 속해 서로 분쟁을 일삼는 어린아이 같은 신앙의 무리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보기에 크게 부흥한 교회며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고 인기 있는 유명한 신앙의 지도자라 할지라도 서로 갈리어 분쟁하며 야기되는 문제들을 하나님 나라의 법으로 다스리고 판결하지 않고 세상 법정에 의존하여 송사한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교회이거나 아니면 거룩한 교회 모습으로 성장하지 못해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모습이 많아 서로 분쟁하며 세상 법정에 송사한 고린도교회같이 아직 어린아이 같은 신앙의 무리들에 불과 합니다.
오늘날 교계에 매우 크게 성장한 교회로 알려진 교회들 중에 지금 몇 년째 교회분쟁으로 서로 원수처럼 싸우며 한 건물에서 따로 예배하며 수없이 세상 법에 고소하고 소송 걸고 하면서 그 판결에 따라 이겼다고 기뻐하고 졌다고 또 항소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런 교회는 숫자와 크기로는 성장한 교회로 다수가 인정하고 알아줄지 몰라도 그리스도의 교회 모습으로는 성장한 것이 없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최고라는 교회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통치의 법은 통하지 않고 인간 중심이나 세상법이 앞서고 통한다면 그건 분명히 그리스도의 왕국된 교회라 할 수 없습니다. 지도자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다스리심을 세우며 드러내는 자로서 합당한 종이라 할 수 없습니다.
이사야52:7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최고로 복되고 영원토록 좋은 구원의 기쁜 소식과 그 실재의 핵심은 하나님이 통치하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을 통해 이루어 가시는 통치의 영역이 곧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 땅에 실현된 하나님 나라입니다. 때문에 교회는 이름만 가지고 모여 든다고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그 나라된 교회에 머리되신 하나님의 통치가 살아있고 그 말씀의 통치의 법에 굴복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이 실현되어 가는 거룩한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 모습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고 그것을 그대로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릴줄 아는 목회자의 모습 속에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일군된 모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떻게 된 것인지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려고 통치하는 주인 되신 하나님 말씀의 법은 통하지 않고 다수의 목소리나 카리스마적인 독선이나 세상법이 통하는 교회들이 되었으니 과연 하나님이 살아계신 거룩한 교회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통치가 없는 곳에는 다른 세력의 통치가 이루어짐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 교회의 모습이 그렇게 해서 구분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의 법을 파수하며 그 법을 바르게 세우지 못하는 목회자는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일군이 아닌 것이며 하나님의 통치의 법이 통하지 않는 교회는 머리가 없는 괴상한 교회든가 아니면 가칭교회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고 구원하여 거룩한 교회로 세우신 것은 그가 특별히 통치하시는 그 나라로 이루려 하심에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통치의 법이 통하는 교회만이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희락이 있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실현되는 진정한 교회성장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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