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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가분하게 사십시오

시편 이한규 목사............... 조회 수 2237 추천 수 0 2011.10.26 20: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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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39:1-7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홀가분하게 사십시오 (시편 39편 1-7절)

 

< 언어생활에서 승리하십시오 >

 어떤 사람이 ‘좋은 아내와 나쁜 아내’를 이렇게 구분했습니다. 첫째, 좋은 아내는 천사가 되려고 하지만 나쁜 아내는 자기가 천사라고 믿습니다. 둘째, 좋은 아내는 작은 선물을 받고도 기뻐하지만 나쁜 아내는 뭘 사줘도 잘못 샀다고 구박합니다. 셋째, 좋은 아내는 작은 일도 남편이 원하면 해주지만 나쁜 아내는 남편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안 된다고 우깁니다. 넷째, 좋은 아내는 남의 흉을 보지 않지만 나쁜 아내는 남 흉볼 때 남편이 동조하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다섯째, 좋은 아내는 남편이 이불을 걷어차면 조용히 덮어주지만 나쁜 아내는 남편이 덮은 이불까지 빼앗아 덮습니다. 여섯째, 좋은 아내는 희망과 사랑으로 매일을 살지만 나쁜 아내는 절망과 푸념으로 매일을 삽니다. 일곱째, 좋은 아내는 남편이 실직해도 격려해주지만 나쁜 아내는 좋은 직장 다니는 남편도 구박해서 실직시킵니다. 여덟째, 좋은 아내는 잔잔한 얼굴로 남편을 편하게 해주지만 나쁜 아내는 잔인한 얼굴로 남편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듭니다.

 아홉째, 좋은 아내는 예쁘다고 하면 기뻐하지만 나쁜 아내는 예쁘다고 하면 “언제는 미웠어!” 하고 따집니다. 열 번째, 좋은 아내는 남편에게 새 양복을 사주며 기뻐하지만 나쁜 아내는 남편이 새 양복을 사면 “애인 생겼어! 그러면 끝이야!” 하고 위협합니다. 열한 번째, 좋은 아내는 친구들이 자기 남편을 흉볼 때 끼지 않지만 나쁜 아내는 자기 남편을 제일먼저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합니다. 열두 번째, 좋은 아내는 남편이 아프면 더 잘해주지만 나쁜 아내는 남편이 아프다고 하면 “아프려면 혼자 조용히 아파!” 하고 소리칩니다.  

 이 구분을 보면 가정의 행복과 인간관계의 승리를 위해 제일 중요한 것이 말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 사실을 다윗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1절 말씀을 보면 다윗은 혀로 범죄하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런데 악인이 보입니다. 그때 크게 퍼붓고 싶지만 자기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고 결심합니다. 그처럼 조용히 선한 말도 안 하고 있으려니까 마음이 답답하고 근심이 더해졌습니다(2절).

 마침내 참다못해서 입에서 말이 나오는데 어떤 말이 나옵니까? 본문 4-6절 말씀을 보면 악인을 욕하는 말 대신에 오히려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고백하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면서 결국 7절에서 “나의 소망은 오직 주께만 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그처럼 혀를 절제하려는 다윗의 사투를 하나님이 얼마나 기쁘게 보셨을까요?

 말은 생명을 죽이고 살리는 위력이 있습니다. 온유한 말은 상처에서도 새 살이 돋게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존심 때문에 좋은 말을 주저합니다. 그런 자존심은 주의 뜻을 존중히 여기는 주존심으로 바꾸십시오. 욕해도 시원치 않은데 좋은 말을 해주려면 억울하고 속이 터지고 자기에게 손해와 상처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위로해주시고 그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이제 잘잘못을 따져 비난하기 전에 먼저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따뜻한 말을 해주십시오. 그래도 상대방이 계속 망아지처럼 못된 언동을 하면 사랑하는 마음은 가지되 그를 외면하고 멀리하십시오. 때로는 사람을 가려 사귈 줄도 알아야 자신에게도 유익이 되고 상대에게도 성숙하게 될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 주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

 사람은 대개 보면 자신의 혀도 잘 다스리지 못합니다. 그처럼 인생은 강한 것 같지만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런 연약한 존재가 인생을 지혜롭게 살려면 특별히 세 가지 사실을 늘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첫째, 인생은 한번 살다 가는 ‘일생’이란 사실입니다. 자신의 생애가 한번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사는 것이 소중하고 엄숙합니까? 인생은 연습 시간이 없이 이대로 종말을 향해 한번 살다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는 지금 생애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둘째, 인생은 짧다는 것입니다. 젊을 때는 잘 느끼지 못해도 나이가 오십쯤 넘으면 인생의 허무함과 무상함을 실감합니다. 10대는 봄을 생각하는 사춘기지만 50대는 가을을 생각하는 사추기입니다. 그처럼 인생의 가을이 되면 정욕도 영광도 명예도 서서히 사라지다가 곧 영원히 잊혀질 때가 찾아옵니다.

 셋째, 인생은 나그네 길이란 사실입니다. 사람은 세상에 잠깐 살다 언젠가 돌아가야 할 존재입니다. 어디로 돌아갑니까? 영원한 지옥으로 들어갈 수도 있고 영원한 천국 고향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왜 다윗이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까? 자기 인생이 나그네 인생임을 알고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4-7절 말씀을 보면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저의 종말과 연한을 알게 하시고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한 뼘 길이만한 제 일생을 생각하면 잘 나갈 때도 허무함을 느끼는 그림자와 같은 인생입니다. 사람들이 헛된 일로 소란을 피우며 재물을 쌓지만 그 재물이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하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저는 오직 주님만 바라봅니다. 저의 소망은 주님께 있습니다.”

 다윗처럼 나그네 의식을 가지고 사십시오. 하나님은 이 땅에서 떵떵거리며 살기보다 늘 천국을 소망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결국 성도의 최상의 고백은 이런 고백이 아닙니다. “하나님! 하나님 덕택에 부자 되었습니다. 출세했습니다. 성공했습니다.” 물론 그런 고백을 통해서도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수 있지만 하나님은 이런 고백을 더욱 기뻐하십니다. “하나님! 저는 외로운 나그네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한 시도 못삽니다.”

< 물질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

 사도 바울도 나그네 의식이 철저했습니다. 그는 나그네처럼 직접 텐트를 만들어 팔면서 자비로 복음 전파를 위해 아시아와 유럽의 각지를 다녔습니다. 결국 나그네가 세계복음화의 기초석이 된 것입니다. 이제 다윗이나 사도 바울처럼 자신이 외로운 나그네임을 고백하고 다른 외로운 나그네를 사랑하고 격려하며 사십시오. 곧 이 땅을 떠나게 될 나그네는 사실 누구도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원수 같은 배우자도 불쌍하게 생각하십시오. 인생은 일생입니다. 그의 청춘과 인생도 한번이고 내 청춘과 인생도 한번입니다. 그처럼 일생의 의미와 만남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 무언가 애틋한 감정이 생깁니다. 사실 외로운 나그네 인생길에서 조금만 기대치를 낮추면 동반자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도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세상은 다리와 같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다리를 건너는 수단으로만 사용하고 다리 위에 집을 짓지는 않습니다. 왜 사람들이 싸우고 갈등합니까? 자신이 나그네임을 잊고 다리 위에 큰 집을 지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올 때 가져온 것이 없고 또한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갈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너무 많이 가지려고 하지 마십시오. 더 가졌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고 덜 가졌다고 불행한 것도 아닙니다. 물질은 없어도 재벌보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을 다 쓰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것을 생각하고 세상적인 욕망을 버리면 그때부터 마음이 얼마나 편해집니까?

 한 억척스러운 여성이 있었습니다. 너무 억척스러워서 돈이라면 가족끼리 싸우는 것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억척스럽게 사니까 돈은 많이 모았지만 마음은 늘 불편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억척같은 그분에게 억척스런 며느리가 들어왔습니다. 그때부터 두 억척스런 여성이 싸우니까 그 집안에 남자의 존재감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며느리의 억척이 시어머니의 억척을 압도했습니다.

 마침내 며느리가 억척스럽게 몰아붙여서 억척스런 시어머니를 골방으로 보내버렸습니다. 그렇게 비참한 모습으로 늙어서 골방에 있는데 하루는 동생이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언니, 그렇게 억척스럽게 살았지만 결국 골방에 있네요. 왜 그렇게 사셨어요? 인심 좀 쓰고 살지.” 그 말을 듣고 그 할머니는 회한의 눈물을 흘렸지만 가족 중의 어느 누구도 그 할머니에게 동정의 눈물을 흘려주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 할머니가 화병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죽게 되었습니다. 재산이 수십 억 원인데 그 많은 돈을 두고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죽으려니까 너무 원통해서 눈이 잘 감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혼자 고민했습니다. “서초동의 빌딩은 누구에게 주나? 대치동의 아파트는 누구에게 주나? 장롱 속의 보석들은 누구에게 주나?

 그렇게 고민하며 눈을 감지 못하자 아들이 말했습니다. “어머니! 편히 눈 감으세요. 제가 있잖아요.” 옆에 있던 억척스런 며느리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말했습니다. “어머니! 마음 푹 놓고 어서 가세요.” 그 말이 빨리 죽으라는 말처럼 섭섭하게 들렸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이 더 상해서 편히 눈을 감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억척스럽게 살던 그 할머니는 눈도 제대로 못 감고 눈을 뒤집어 깐 채 한을 품고 죽어갔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자기가 가진 것을 다 쓰고 가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돈에 집착해서 미워하고 싸우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일본의 한 부자는 많은 돈을 두고 죽기가 너무 아까워서 돈을 씹어 먹다가 돈이 목구멍에 걸려서 죽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불행한 모습입니까?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과 불행을 낳습니다(약 1:15).

< 홀가분하게 사십시오 >

 이 세상에 영원히 살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요한일서 2장 15-1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제 세상 것에 너무 미련을 두지 마십시오. 홀가분하게 떠나는 연습을 지금부터 하십시오. 그래서 선교마인드가 필요합니다. 그런 마인드가 없어서 불행하고 구차하게 사는 성도들도 많고 심지어는 목회자들도 많습니다.

 저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교회 수련회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한번 하고 싶습니다. ‘죽는 체험’이란 프로그램입니다. 먼저 관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그 관에 한 명씩 들어가 눕게 하면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이제 당신은 죽었습니다. 세상에 아무 것도 가져온 것이 없으니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그 선포 후에 관 뚜껑을 매정하게 덮고 못을 탕탕 박습니다. 그렇게 관속에 누워 있게 하다가 5분쯤 후에 관 뚜껑을 열어줍니다. 그리고 나오면서 이렇게 선언하게 합니다. “주님! 저는 이제 죽었다가 예수님 때문에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 너무 욕심 부리지 않고 늘 선교마인드를 품고 살겠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하면 많은 참여자들이 조금 더 진지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었다면 싸울 일도 없고 근심에 지배당할 일도 없습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로 살겠다고 새로 각오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그는 몸은 이 땅에 있지만 영혼은 하늘에 속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세상적인 것 때문에 울고 웃지 않는 영적인 깊은 놀이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사람의 날 때와 죽을 때를 보면 묘한 교훈을 얻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 보면 주먹을 꽉 쥐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살면서 권세와 지식과 돈을 하나씩 쥐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떠날 때는 누구도 예외 없이 저절로 손을 쫙 펴고 죽습니다. 그처럼 저절로 손이 펴져서 그 쥔 것을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의미 없이 놓게 되기 전에 내 손에 있을 때 자기의 선한 의지를 담아 선한 어떤 일을 위해 거룩한 인심을 많이 쓰십시오.

 선하고 의미 있는 삶을 외면하고 끝까지 억척스럽게 움켜쥐려고만 하면 언젠가는 자기보다 더 억척스런 사람을 만나서 다 빼앗깁니다. 그러면 그때는 누구도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려줄 사람이 없게 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인생입니까?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 아무 것도 없이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나그네처럼 사시다가 돌아가실 때는 속 옷 하나만 입고 돌아가셨습니다. 왜 예수님이 다 벗고 가셨습니까? 조금이라도 세상 것이 있었다면 그것 때문에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천국행을 잘 준비하려면 다 벗어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손에 다이아 반지라도 끼어있으면 자신이 죽을 때 사람들이 겉으로는 “아이고... 아이고...”라고 울어도 속으로는 “저 다이아 반지를 어떻게 내가 가질까?”라고 계산하게 됩니다. 결국 욕심이 인간관계의 정감까지 상실하게 만듭니다. 그처럼 겉으로는 눈물을 흘리지만 속으로는 계산하게 만드는 그런 비참한 죽음의 대상이 되지 말고 자기 존재만 남기고 다 벗어버릴 준비를 하십시오. 그때 진정한 인격적인 만남과 행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십시오 >

 마지막으로 나그네 인생길에 한 가지 꼭 기억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그네 인생길에서 힘들고 밤이 깊어갈 때 편히 쉬어갈 곳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곳은 바로 교회입니다. 해가 저물어 갈 수 없을 때 나그네는 주막집을 찾아 밥을 먹고 쉬었다가 다음날 출발할 때 주막집 주인에게 길을 묻습니다. 그러면 주막 주인은 친절하게 길을 안내해줍니다. 그 주막이 바로 교회이고 주막집 주인은 바로 영적인 멘토입니다.

 오늘도 나그네 인생길에서 잠깐 안식하고 본향으로 가는 길에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지침을 받고 길을 나서려고 영적인 주막(主幕, 주님의 장막)인 교회에 온 줄 믿습니다. 교회에서 앞으로 고향으로 갈 사람들이 고향 음식을 먹으며 고향 소식을 듣는 시간이 바로 예배 시간입니다. 그처럼 예배를 통해 말씀을 들으면서 천국 소망을 뚜렷하게 하십시오. 결국 철저한 예배생활과 말씀생활에 인생 승리와 행복의 길이 있습니다.

 이제 교회를 주님의 몸처럼 사랑하고 교인들을 사랑하십시오. 교회는 한 몸 공동체입니다. 성찬식을 왜 합니까? 주님 안에서 한 몸 공동체임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처럼 항상 교회의 필요에 최우선의 관심을 가지고 교회부흥에 힘을 보태십시오. 교회는 세상 정복을 위한 본진입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잘 드리면 얼마나 영혼이 강해지는지 모릅니다.

 특별히 교회생활을 잘하려면 언어생활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마귀가 교회를 깨뜨리려고 얼마나 많은 부정적인 말들을 유포합니까? 사실 외적의 침입보다 내부분열이 더욱 무서운 적입니다. 외적인 공격을 받으면 오기로 더 뭉치지만 내적으로 “그것은 틀렸다. 그는 틀렸다!”고 하면 자멸합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말은 가급적 삼가고 현실은 어려워도 힘써 서로를 격려해주고 꿈과 비전을 일깨워주십시오.  

 광야생활에서 이스라엘의 60만 명 이상의 장정이 부정적인 말로 죽었습니다. 할 일을 찾는 교회는 흥하지만 할 말을 찾는 교회는 망합니다. 이제 할 말만 찾아내지 말고 자신 안에 주어진 약속의 말씀을 찾아내십시오. 그 약속의 말씀을 내세워 열심히 서로 격려해주면 반드시 말한 대로 이뤄질 것입니다.

 살다 보면 어려움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그때는 문제점을 찾기보다 더욱 좋은 말을 해주십시오. 교회와 가정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사실 어려울 때는 정이 깊어질 호기입니다. 왜 요새 교회에 대한 애틋한 정이 없습니까? 성도들이 편한 것만 추구하고 어려움을 나누는 과정을 생략하기 때문입니다. 요새는 대형 교회 교인들이 오히려 “교회는 너무 크면 안 좋아요.”라고 말합니다. 속 깊은 정이 잘 안 생기기 때문입니다.

 애틋한 정은 자신의 피와 땀과 눈물로 무엇인가를 키울 때 생깁니다. 그렇게 키우면 동물과도 정이 생깁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피와 땀과 눈물로 교회를 키우는 과정을 생략하고 교회로부터 무엇인가를 얻기만 바라면 절대로 거룩한 축복의 연줄이 생기지 않습니다. 연줄은 작은 공동체일 때 같이 고생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축복의 줄입니다.

 교회가 너무 커져서 내 힘과 정성이 교회를 기르는데 거의 영향이 없게 되면 시간이 지나도 정이 잘 생기지 않고 축복의 연줄도 잘 형성되지 않습니다. 결국 내 피와 땀과 눈물을 통해 무엇인가를 기르는 것은 자신의 축복나무를 기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 원리를 깊이 인식하고 교회를 자신의 애틋한 손길로 섬기고 사랑하고 살피십시오. 그 순수한 헌신이 인정될 때 하나님은 “이제 됐다!”고 하시며 축복의 문을 활짝 열어주실 것입니다.

 요새 방송되는 슈퍼스타케이란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발군의 실력을 가진 한 팀이 있습니다. 울랄라 세션이란 남성 4인조 팀이 있습니다. 실력도 있고, 재미도 있고, 열정도 있고, 게다가 멤버들이 하나같이 순수하고 겸손합니다. 그런 실력자들이 이제까지 잘 알려지지 않는 것이 신기합니다. 그러나 마침내 때가 되어 뜨게 되었습니다. 이때를 위해 그들이 얼마나 많이 음지에서 준비했겠습니까? 그런 외로움과 서러움과 배고픔의 시간들을 극복하고 열심히 준비했기에 마침내 그들의 때가 온 것입니다.

 지금 그 팀의 리더가 암 말기라고 합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생방송 무대에 나온 것입니다. 그 열정 때문에 정말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혜성처럼 왔다가 혜성처럼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의 때가 온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기억해주고 아껴주고 그 리더의 쾌유를 위해 성원하는 것만 가지고도 그들의 때는 이미 온 것입니다. 저도 그 유능한 젊은이가 꽃필 무렵에 지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서 그의 쾌유를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고 준 대로 받습니다. 계속 준비하면 언젠가 우리 때는 반드시 옵니다. 조만간 우리 분당 샛별교회의 때도 올 줄 믿습니다. 요새 사람들마다 스펙(spec)을 쌓는데 열심이지만 스펙을 쌓는데 열중하기 전에 스토리(story)를 만드는데 열중하십시오.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으로 멋진 스토리를 만들어내십시오. 그러면 때가 되어 하나님이 뜨게 하실 날이 반드시 올 것이고 그때부터 그가 가는 길은 히스토리(history)가 될 것입니다. 그처럼 피와 땀과 눈물은 결코 우리를 배반하는 일이 없습니다.

 저희 요삼일육선교회가 작은 선교회로서 지금까지 열 명도 넘는 선교사님들을 지속적으로 돕고 가끔 선교사님들의 특별 기도제목에도 넘치게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교인들의 헌신도 있었지만 우리의 말씀사역과 문서선교사역에 담긴 정성과 피와 땀과 눈물의 흔적을 인정해준 인터넷 식구의 은밀한 후원의 손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전혀 생각지 못한 분의 생각지 못한 헌신으로 몇 달 동안의 선교후원비의 마이너스분이 한꺼번에 채워지는 기적도 있었습니다.

 지난주에는 한분이 특별선교헌금을 보내면서 이런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목사님! 저는 목사님의 매일 온새기와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같이 봅니다. 제 생각에는 남이 쓴 책에서 좋은 글을 한두 줄 골라 보내주는 아침편지보다 직접 글을 써서 보내는 온새기가 훨씬 정성이 담긴 것 같은데 후원의 손길은 아침편지에 비해 너무 없는 것 같아서 아내와 상의 후에 이번에 특별헌금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계속 수고해주세요.”  

 그러면서 선교사님을 위한 특별선교헌금과 더불어 사역을 돕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하라고 식사비까지 보내오셨습니다. 그분의 메일을 받고 다시 한 번 피와 땀과 눈물에는 배반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음지에 있다고 할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과 축복된 운명을 향해 나가면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기를 아끼지 마십시오. 그러면 언젠가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는 날을 보게 될 것입니다.  

 겉으로 볼품은 없어도 여문 열매가 농익은 맛을 냅니다. 이제 친구 따라 강남 가면서 세월을 낭비하지 말고 개척자의 꿈과 비전을 가지고 사십시오. 누가 봐주지 않아도 한적한 산길에서 향내를 풍기는 들꽃처럼 늘 예수님의 향기를 풍기며 사십시오. 그 향내에 끌려 삶에 지친 나그네 인생들이 교회에 와서 주님을 알게 되면 그것도 큰 성공입니다. 항상 주님 꼭 붙잡고 주님의 향기를 날리며 많은 영혼을 주님 품으로 이끄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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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5 시편 순종하는 자가 핍박을 받을 때 시119:39  김남준 목사  2011-10-20 1994
5834 시편 순종하는 자가 역경을 만날 때 시119:157-158  김남준 목사  2011-10-20 2448
5833 시편 순종의 원천 시119:54~55  김남준 목사  2011-10-20 2112
5832 시편 기꺼운 헌신자들 시110:3  김남준 목사  2011-10-20 2262
5831 신명기 말씀에 익숙한 자들의 불순종 신30:14  김남준 목사  2011-10-20 2307
5830 마가복음 인자가 오심은 막10:45  김남준 목사  2011-10-20 1960
5829 마태복음 언약의 피 마26:28  김남준 목사  2011-10-20 2166
5828 이사야 위대하신 절대지존 하나님 사40:12-26  이한규 목사  2011-10-18 1834
5827 이사야 한 사람의 힘은 작지 않습니다 사40:9-11  이한규 목사  2011-10-18 2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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