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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12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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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동호 목사 |
참고 : | 2009-02-15 |
울며 씨를 뿌리는 사람.
시 126:1-6.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누 떼가 이동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엄청난 수의 누가 엄청난 거리를 이동하는데 이동하면서 암 누가 새끼를 낳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누 새끼는 낳자마자 걸었습니다. 걷는 정도가 아니라 사자가 공격을 하자 어미와 함께 달리는 것이었습니다. 태어난지 몇 분도 되지 않는 누 새끼가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결국 사자의 공격을 피하여 생명을 건졌습니다.
누는 좀 특별한 경우인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있는 모든 동물들은 거의 다 인간보다 빠릅니다. 대개 태어 난지 한 달 안에 걷거나 납니다. 그리고 일 년 정도가 지나면 어미가 되어 새끼도 낳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연약하고 더딘 동물이 있다면 그것은 사람입니다. 세상에 일 년이 지나야 겨우 걷는 동물은 아마 사람 밖에 없지 않을까요? 일 년이 되어서야 겨우 걷는 아이를 보고 좋다고들 난리치는 사람들을 동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배꼽을 잡을만한 개그로 보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런 인간이 만들어 내는 세상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인간은 동물보다 빨리 달리지 못하지만 자동차를 발명하여 어느 동물보다 빨리 달릴 수 있습니다. 인간은 새처럼 날 수 없지만 비행기를 발명하여 어느 새보다 빨리 높게 멀리 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 인간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저는 수 만 리 떨어져 있는 손녀와 거의 날마다 전화를 합니다. 컴퓨터를 이용하여 서로 얼굴을 보고 화상 전화를 할 수도 있습니다. 네비게이션을 통하여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정확히 찾아 가기도 합니다. 인터넷을 통하여 세상의 온갖 잡다한 소식과 지식을 접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와 같은 것들을 만들어 낼 뿐 아니라 엄청만 속도로 빨리 발전시킵니다. 컴퓨터의 속도와 저장 능력만해도 정말 엄청나게 발전하였습니다. 20 여 년 전 제가 처음 쓰던 컴퓨터는 용량이 너무 적어서 윈도우를 돌릴 수 없었습니다. 그 때는 도스 라는 운영체계를 사용하여 겨우 워드 작업을 하는 것에 만족했었습니다. 지금은 조그마한 칩 하나가 몇 기가가 되어 엄청난 양을 정보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발전의 속도에서 가장 앞선 나라 중에 하나가 우리 한국입니다. 우리나라의 전자 산업은 세계 최첨단입니다. 삼성과 엘지 휴대폰이 미국 시장의 40%를 점유하였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새롭고 놀라운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우리 사람들을 그렇게 끊임없이 새롭고 놀라운 것들을 만들어내게 하는지 아십니까? 저는 그것을 ‘욕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끝없는 욕심이 끝이 안 보이는 발전을 가져오는 동력입니다.
남보다 빨리 더 좋은 제품을 만들어내면 그것이 다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가 발전하지 못하는 치명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그것이 자신의 욕심을 채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돈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세계의 발전은 인간의 본능인 욕심 때문에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이 큰일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그 욕심 때문에 발전하고 그 욕심 때문에 망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죄의 삯은 사망이고 그 죄의 원인이 바로 욕심이 이라고 말씀합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 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의 과도한 발전은 공해를 가져왔습니다. 과도한 발전을 위하여 사람은 자원과 자연을 파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고 있고 실제적으로 큰 피해를 입고 있는 것 중에 하나는 지구 온난화입니다. 이것을 막지 못하면 지구와 인류는 큰 재앙을 입게 될 것입니다. 입게 될 것이 아니라 벌써 지구 곳곳에 그와 같은 재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욕심 때문에 죄를 짓고 그 죄 때문에 세상은 발전보다 더 무서운 속도로 나빠지고 있습니다. 악해지고 있습니다. 어리석어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욕심 때문에 불행해 지고 있습니다. 세상은 엄청나게 부요해 졌지만 사람들은 부요해지면 부요해 질수록 상대적인 빈곤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남에게 지면 안 된다는 욕심 때문에 자신과 타인을 들들 볶고 있습니다. 어떤 베스트 셀러 작가가 절필을 하고 글을 쓰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였습니다. 그 분이 라디오에 나와 그 이유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자기가 책을 내면 보통 30만 권 정도가 팔렸답니다. 그것은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쩌다 20만 권 정도만 팔리는 책이 나오면 그것이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20만 권도 정말 대단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그것 때문에 불행해 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필을 선언하고 더 이상 책을 내지 않기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절필이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고는 꼭 생각하지 않지만 욕심을 컨트롤하지 못하면 인간이 얼마나 바보가 되고 불행해 지는가에 대한 좋은 예는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 중에는 앞에서 말씀드린 그 작가와 같이 욕심을 버리고 그 어리석은 경쟁에서 스스로 내려옵니다. 용감한 사람들은 아예 세상을 등지고 자연 속에 파묻혀 자연인으로 살아가기도 합니다. 저도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무한경쟁 속에서 철저히 파괴되어 가는 삶에 휩쓸려 가는 것보다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그와 같은 삶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욕심으로 말미암아 세상과 자신을 파괴하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지만 그렇다고해도 세상 모두를 다 부인하고 산으로 들어가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 벼개하고 누워 사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으십니다.
성경은 욕심을 버리라고 말씀하시기 보다는 욕심을 바꾸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와 그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예수님의 그 유명하신 산상보훈에서 찾습니다. 예수님이 산상보훈에서 말씀하신 8복에서 찾습니다. 8복 중에 하나는 심령이 가난해 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욕심 때문에 망하니 그런 욕심에 휘말리지 않고 욕심 없는 마음 즉 가난한 심령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복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8복은 그것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8복 중에 하나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주리고 목마름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욕심이 됩니다. 쉽게 말하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에 대해서는 욕심 없는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대해서는 주리고 목마른 사람 즉 욕심이 많은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제가 목사이기 이전에 여러분과 똑같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가장 힘쓰고 몰두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과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주리고 목마른 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혹 아시겠지만 저는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8년째 금전출납부를 써오고 있습니다. 제가 금전출납부를 기록하는 이유는 제 욕심을 구체적으로 좀 컨트롤 해 복 싶어서였습니다. 저는 큰 교회의 목사입니다. 교회에서 주시는 생활비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살 수 있는데 저는 인세와 강사비도 만만치 않아 그것을 제 욕심을 위하여서만 쓴다면 아주 큰 부자는 못 되도 세상에서 제법 부자들이 하는 짓과 일들을 어느 정도 흉내 내며 살 수는 있을 겁니다. 제게도 그런 욕망이 있습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큽니다. 그래서 장부를 씁니다. 제 장부는 수입과 지출을 기억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나를 위해서는 얼마나 쓰고 하나님을 위해서는 얼마나 지출하는가를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인 방법을 스스로 정하고 8년째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저는 길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힘이 듭니다. 제가 스스로 세워 놓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고 심지어는 괴롭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심령은 가난한자가 되고 의에는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될 때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높은 뜻 정의교회 교우 여러분 저와 함께 가십시다. 남보다 더 잘 먹고 남보다 더 잘 입고 남보다 더 세상적으로 잘 살고 싶은 욕심을 버리고 남보다 더 잘 예수 믿고 남보다 더 의롭고 가치 있는 일에 욕심을 부리는 사람이 되십시다. 말만 그렇게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매달 수입의 몇 %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하여 쓰겠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길을여지지 않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만 기도하지 말고 욕심을 버릴 수 있기를 위하여 새벽에도 기도하고 밤에도 기도하는 사람이 한번 되어 보십시다.
제 구체적인 목표는 현재 수입의 40% 미니멈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쓰는 것입니다. 최근 몇 년 중에 가장 낮은 목표입니다. 큰 아이 가정이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핑계이고 아직도 제가 오늘 제가 설교하는 말씀에 길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소유하고 있는 것의 최소한 1/3은 하나님께 유산으로 남기는 것입니다. 1/3은 우리 부부 몫으로, 1/3은 세 아들 몫으로, 1/3은 하나님의 몫으로 떼고 싶습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려면 매일 매일 싸워야 합니다. 저는 이번 달도 싸우고 있습니다. 막내가 결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대로 지나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할 겁니다. 그래도 돈이 필요할 겁니다. 써야 할 돈들이 있기 때문에 나 자신과 약속한 돈을 떼기가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그것을 뗀다고 못할 것은 아닌데 그래도 하여간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래도 뗄겁니다. 그리고 그 돈을 어디에 쓸건가를 결정할 겁니다.
우리 높은 뜻 교회는 보이지 않는 성전을 고집하다가 네 교회로 분립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네 교회는 성공적으로 분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분립교회의 성공이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를 분립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하였던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이 퇴색해 지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성전 건축은 200억 원을 예산으로 탈북자를 포함한 빈민들의 자활과 통일 준비 그리고 인재양성이라는 구체적인 세 기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하여 여러분들이 희년헌금을 작정하여 그 헌금으로 우선 열매나눔재단을 세워 탈북자와 빈민 자활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그 사업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이제는 인재양성과 통일 준비를 위한 일에도 투자를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예산이 없습니다. 교회 분립에 정신을 쏟느라 희년이 헌금이 줄었습니다. 지난 달 네 교회에서 들어 온 희년헌금만을 생각하면 통일준비와 인재양성은 고사하고 열매나눔재단 지원도 벅찰 것 같습니다. 같은 것이 아니라 벅찹니다. 그 일을 책임지고 있는 저로서는 불안감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울며 씨를 뿌린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그 말씀을 그냥 읽습니다. 그냥 시로 읽습니다. 그냥 말씀으로 읽습니다. 울며 씨를 뿌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자신에게 적용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구체적으로 큰 아들 유학 비용과 막내 아들 결혼 비용으로 힘들지만 나 자신과 약속한 하나님의 몫을 다 채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쓰는 것이 바로 울며 씨를 뿌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말씀이 정말 피부에, 삶에 와 닿습니다. 울며 씨를 뿌리는 심정으로 저는 이번 달 아니 이번 주에 하나님 몫을 떼고 그것을 어디엔가 결정하여 보내겠습니다.
오늘 시편의 말씀 중에 여호와께서 대사를 행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일은 포로로 잡혀 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되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과 같은 큰 일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둘 것이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기쁨으로 거둘 단이 바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대사입니다. 우리가 눈물을 흘리며 뿌린 씨는 반드시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그 씨를 오병이어처럼 사용하시어 하나님께서 대사를 이루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그 말씀을 믿습니다.
저는 매주 분립된 네 교회를 순회하며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설교를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냥 말씀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의 구체적인 삶의 문제를 다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높은 뜻 숭의교회 담임목사로서 설교할 때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높은 뜻 광성교회, 높은 뜻 정의교회, 높은 뜻 하늘 교회와 높은 뜻 푸른 교회의 설교를 하려고 하니 입장이 좀 다릅니다. 분립 된 네 교회의 담임목사가 있는데 잘못 설교하면 너무 지나치는 것이 아닌가? 너무 독립된 교회에 간섭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조심성이 생깁니다. 그래서 좀 자유롭지 못합니다.
조심스럽지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조심해서 말씀하겠습니다. 지난 달 제가 설교하러 왔을 때 주보에 교회분립감사헌금 봉투가 들어 있었습니다. 정의교회가 분립되는데 약 10 억 원 정도의 경비가 드는 것 같습니다. 3억 원은 분립하면서 높은 뜻 숭의교회가 분립자금으로 주었습니다. 나머지 한 6-7억 원은 여러분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오 목사님 생각은 그 중에 한 절반 정도는 여러분들의 헌금으로 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의교회는 분립된 교회이지만 분립된 그 자체로 이미 큰 교회입니다. 주일 출석이 1,500명이 넘는 교회가 교회를 분립하면서 3-4 억 원의 헌금도 감사와 기쁨으로 하지 못한다면 저는 돈을 떠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물론 금융위기로 경제가 많이 나쁘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때에 부담이 되는 분립감사 헌금을 한다는 것은 눈물이 날 만큼 힘든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건강한 높은 뜻 정의교회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정의교회를 통하여 대사를 행하시려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교인들이 있어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에게 눈물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희생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헌신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힘들고 어려운 교회에는 그 역할을 감당하려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크고 넉넉한 교회에는 그 역할을 감당하려는 교인들이 적습니다. 우리 교회의 경우에는 거의 없습니다. 사실 여러분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으셔도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도 할 수 있고 정의교회 리모델링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하고 못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우리 높은 뜻 교회에 필요한 것은 눈물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우리는 너무 쓸데없는 세상에 욕심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정말 너무나 욕심이 없습니다. 설교 하는 저도 그렇습니다. 그렇게 장부까지 써가며 발버둥을 치지만 그게 너무너무 힘들고 어렵습니다. 고통스럽습니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가는 자신에 대해서는 부요하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가난한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는 하늘나라에는 보물을 하나도 쌓아두지 못하고 썩어질 세상에만 잔뜩 쌓았다가 하나님 나라에 가게 되면 정말 가난한 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욕심 있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교회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역에 더 많이 투자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늘에 보물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쌓은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복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대사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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