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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전15:4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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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창인 목사 |
참고 : | 광성교회 - 김창인 목사 제3설교집 <하늘농사꾼/모퉁이돌> 에서 |
하늘에 속한 자(고린도전서 15: 42-58)
본문은 두 종류의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흙에 속한 사람, 즉 땅에 속한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 땅에 속한 사람은 아담을 말하는 것이고 하늘에 속한 사람은 예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흙에 속한 사람들이고 예수님을 믿고 중생하여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사람들이 하늘에 속한 자 입니다.
이런 “하늘에 속한 자 ”에게만 주어지는 ‘세 가지 영광’, ‘세 가지 은혜’그리고 ‘세 가지 분분’이 있음을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I. 세 가지 영광(42∼49절)
1. 부활의 영광(42∼44절)
네번이나 반복되는 ‘다시 산다’는 말은 부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믿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부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말세에 예수께서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공중재림을 하실 때에 예수 믿다가 죽어 무덤에 묻힌 사람들이 다시 살아납니다. 이미 육신은 썩어져서 한 줌의 흙이 되었을 지라도 부활하게 됩니다. 이렇듯 믿는 사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어도 다시 사는 것입니다.
"네가 죽는다고 해도 예수를 믿겠느냐?" 할 때에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내 놓으면서까지 믿음을 지키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 재림할 때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서 들림 받아 공중에서 주님과 더불어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영광, 이런 부활의 영광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영광이기에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2. 중생의 영광(45-46절)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중생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영광이 있습니다. 중생이라 함은 생명을 다시 한번 거듭 받는 다는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생명을 받아 세상에 태어납니다.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똑 같이 누리는 한번 태어남입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에게는 다른 태어남이 하나 더 있습니다. 중생입니다.
아담에게서 육신의 생명을 받으면 아담의 족보에 듭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죄를 지은 족보입니다. 지옥과 통하는 지옥의 족보요, 마귀가 깃들이는 마귀의 족보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족보에 든 사람 중 구원 얻을 자를 택하시고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죄의 족보에서 떠나 하나님 앞으로 나오면 하나님께서 제2의 생명을 주십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 바로 영적인 생명입니다. 부족함이 많고 허물과 죄가 있어도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족보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흙으로 빚어진 첫째 아담의 영은 생기를 넣어주심으로 살게된 산영이지만 마지막 아담 예수는 살려주는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은 역시 죽은 우리의 영을 살려 주시는 영이십니다. 믿음으로 하늘에 속하는 자가 받아 누리는 중생의 영광인 것입니다.
3. 형상의 영광(48-49절)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이 영광스럽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 형상을 입게 되는데 흙에 속한 자, 아담의 형상을 입기도 하고, 하늘에 속한 자, 예수님의 형상을 입기도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형상을 입지 못합니다. 믿는 자만이 누리는 영광인 예수님의 형상은 부활하신 몸의 형상입니다. 대문을 잠그고 있어도 들어오시고, 잡숫기도 하시며 여기저기 동시에 나타나십니다. 전혀 병들지 않습니다. 죽지도 않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아니하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형상을 입는다는 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요 축복인 것입니다.
II. 세 가지 은혜(50-54절)
1. 유업의 은혜(50절)
육신의 피와 육신의 몸을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에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담에 속한 사람, 흙에 속한 사람, 육신의 형상을 가지고는 못 가는 나라,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은 사람만이 유업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돈을 지불하고 가는 나라가 아니요, 어떤 공로를 세워 가는 나라도 아닙니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아무런 공로가 없어도, 하나님께서 건설하여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시는 나라,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 즉 은혜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은혜중의 최고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삶이 이 세상 삶만으로 끝이라면, 천국의 소망이 없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까요? 아마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무섭게들 살아가겠지요. 그러나 우리에겐 하늘나라 유업이 있습니다.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그곳의 목표를 향하여 바르고 밝게 살아야 합니다.
2. 변화의 은혜(51-53절)
변화의 은혜입니다. 예수 믿다가 죽은 사람들, 무덤에 묻힌 사람들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 다 거기서 다시 살아나 들림 받아서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지만, 그 때까지 살아 남아 있는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 편지로 답변해 주는 얘기가, 믿다가 죽는 사람들이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부활해서 들림 받는 순간, 신령한 몸으로 다 같이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무덤에서 살아난 사람과 똑 같이 즉 예수님의 신령한 몸과 똑 같이 변화합니다. 훈련이나 교육을 받아서 되는 것도 아니요,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 되는 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인 능력으로 주시는 변화의 은혜인 것입니다.
3. 승리의 은혜(54절)
'이 죽을 것'이라는 것은 육신의 몸을 말합니다. 죽지 않을 것으로 입을 때 즉 우리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 때 그 사람에게는 전혀 죽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사망을 삼켜버린 것입니다. 생명이 사망을 완전히 정복한 것입니다. 완전 무결한 생명의 승리입니다. 이 승리는 우리가 싸워서 얻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죽음이 우리를 괴롭히지 못하고, 주장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죽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우리, 하늘에 속한 자에게 주시는 승리의 은혜입니다.
III. 세 가지 본분(55-58절)
1. 선포의 본분(55-56절)
바울 사도가 만 천하에 선포하는 것은 너(죽음)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네가 어디서 이길 수 있느냐, 무엇을 가지고 어디다 쏘느냐, 우리를 향해 달려들어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망은 완전히 정복되었습니다. 죽음은 이제 죽음이 아닙니다. 성경에 표현되었듯이 믿는 사람의 죽음은 잠자는 것과 같습니다. 하루종일 열심히 일하고 피곤하고 지친 몸으로 저녁에 돌아와 잠이 듭니다. 죽은 모습 그대로이나 우리는 걱정하지 않습니다. 아침이면 새롭게 힘을 회복하고 다시 일어남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믿는 사람의 죽음은 안식입니다. 주님이 주신 평안 속에서 날마나 새롭게 깨어날 뿐입니다. 영광과 은혜를 받은 자로서 마땅히 선포해야만 합니다. '사망이 어디 있느냐?' 없습니다.
2. 감사의 본분(57절)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바울 사도는 처음 예수 믿지 않았을 때 예수 믿는 이들을 핍박하고 미워하고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믿게 되었을 때 '내가 좀더 기도해야 되겠구나. 이젠 기도할 때구나 이건 기도할 문제다'라고 생각하고 아라비아 사막으로 가서, 모래밭에서 3년 동안 기도합니다. 육신은 그 사막에 엎드려 있었는데 영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3층천에 올라갔습니다.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천국입니다. 지상, 공중, 그 다음 하늘을 3층천이라고 합니다. 그곳은 너무나 화려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고, 표현하여 설명할 낱말이 전혀 없었습니다. 말로 할 수 없는 그 아름다움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3층천을 생각하며 죽을 때까지 주님 사업에만 정진을 합니다. 행여 걸림돌이 될까 결혼도 하지 않았고, 산헤드린 공회원으로서의 지위와 권세, 명예도 모두 포기하고 오히려 갖은 고난과 핍박을 받아가며 세계 방방곡곡을 찾아다니며 선교에 몰두했습니다. 감사의 마음이 있었기에 할 수 있었습니다. 은혜로 주신 하늘나라, 3층천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것은 우리 성도의 마땅한 본분입니다.
3. 봉사의 본분(58절)
하늘에 속한 자로서 마땅히 주의 일에 앞장서 봉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그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을 주의 일에 봉사해야 합니다. 세상 것을 위해 노력함에도 나름대로 보람이 따르는데 하물며 주님을 위한 수고가 헛되겠습니까? 이렇듯 귀하고 값있는 주의 일에 애씀은 당연한 일이나 무엇보다 마음가짐과 태도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내 기분대로 하면 남에게 상처 주고 자신도 상처받고 결국은 넘어 집니다.
늘 주님의 뜻을 생각하고 남을 존중하며 겸손히 섬기는 자세로 주의 일에 임해야 합니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어렵고 힘들어도 변함 없이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늘에 속한 자가 누리는 영광이 있고, 특별히 주어지는 은혜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믿는 자로서 마땅히 해야할 본분을 다 한 후에 이 모든 것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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