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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요2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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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상호 목사 |
참고 : | 세광교회 http://sk8404.or.kr |
새벽을 여는 교회
요 21:1-6
06. 1. 1 영신예배 설교
지금 우리는 주후 2006년의 새해 첫 시간을 열었습니다. 새 밀레니엄의 장이 열린지 벌서 5년이 흘렀습니다. 21세기를 향한 역사의 여명을 긴장과 설레임으로 맞은 감격이 이제 우리에게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2005년을 보내고 2006년을 맞는 우리는 새로운 긴장 속에 설레임으로 새해를 준비해보십시다.
저는 2005년을 살면서 너무나 어려운 일들을 겪었기에 아예 어두운 밤으로 보고싶습니다. 배용운, 테러, 재판, 화재, 장로님, 눈과 차량전복 등등 말도 꺼내기 싫은 세월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칠흙같은 어두움 속에서 가장 어둡다는 것은 밝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2006년 교회 표어를 '봄과 새벽을 여는 교회'라 잡아보았습니다. 여러분들과 상의해서 표어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습니다. 2005년이 흘러가면 갈수록 2006년이 시작되는 순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서도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고기를 잡으러 갔고, 밤이 새도록 수고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전혀 고기가 잡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바로 이 때였습니다. 날이 새어갈 즈음 홀연히 바닷가에 서셔서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질 것을 명하셨습니다. 말씀대로 행하자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이에 제자들이 하나둘씩 주님임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새벽에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이 오신 아주 특별한 목적은 주님께 대하여 죄송해 하고 부끄러워하는 베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새 사명을 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새벽, 혹은 이른 아침에 대해서 관심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도, 그날의 창조가 모두 끝난 후에 그날을 묘사하며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고 표현합니다. 하루의 그 수많은 시간 중에서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아침이 되는 시간에 주목하십니다. 창세기 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성은 새벽에 하늘로부터 유황과 불이 비같이 내려 성이 허물어지고 백성들은 비명을 지르며 죽어갔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날이 하나님을 거역하며 살았던 자신들의 방탕한 삶의 심판 날이었지만,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게 그 새벽은 구원의 시간이었습니다. 롯에게 있어 그날은 평생 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에 대한 생생한 체험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성을 돌기 시작한지 7일째 되던 날에 무너졌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시간에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첫날부터 마지막 일곱째 날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돈 것은 다른 시간이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맞이한 새벽 시간이었습니다. 철옹성과 같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그들은 매일 새벽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우리에게도 이 치열한 삶의 현장에 무너지지 않는 큰 성이 있습니다. 너무나 크고 높아서,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여 공격하기보다는 숙명처럼 그 아래서 비굴하게 살아가게 하는 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성의 무너짐을 꼭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보다 넓은 은혜의 세계를 향하여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여리고 성의 교훈을 통해 그 난공불락의 성을 허무는 방법을 우리에게 일러주셨습니다. 성을 무너뜨리고 싶다면 새벽에 나가 믿음으로 그 성을 돌아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여리고 성은 도무지 변화되지 않은 우리 자신일 수도 있고 구원받지 못한 우리 가족일 수도 있으며 벽에 부딪힌 사업상의 위기나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건강이나 학업 성취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지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이 거기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제껏 극복할 수 없었던 상황을 극복하게 하시고, 넘을 수 없는 벽을 넘게 하시는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벽에 그 위대한 일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여리고 성을 돌았습니다. 믿음으로 그 일을 시작하였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새벽의 사람들을 축복하시던 날에 그들은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위대함을 목격할 새벽의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수많은 이적적인 도우심을 자세히 관찰하며 느끼는 것은 우연히 생긴 기적이란 없다는 것입니다. 남들에게는 그저 기적일 뿐이지만 그 일을 위해 하나님께 매달린 당사자에게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필연이었습니다. 그 기적은 절망의 어두운 밤을 믿음의 기도로 지낸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엄청난 군사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는 신앙에 입각하여 반앗수르 정책을 지켰습니다(왕하 18,19장). 그리고 하나님께서 모욕 받으시는 것을 애통해 하며 선지자 이사야의 권고에 따라 전심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앗수르 대군에게 포위된 채,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공격을 두려워하며 예루살렘 성안에서 밤을 지새운 히스기야 왕과 백성들은 이튿날 새벽 놀라운 광경을 봅합니다. 성을 포위하고 있던 18만 5천명의 앗수르 군사들이 모두 시체가 되어 누워있었던 것입니다. 그 어두운 밤 동안, 그들의 육신은 잠시 평안을 누리고 있었지만 정신은 이미 처절한 절망과 공포의 한가운데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그런 절망의 밤이 있었기에 새벽에 목격한 그 승리가 엄청나게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절망과 고통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믿음 안에서 누린다면, 우리에게 희망과 감격의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만 한다면 아무리 어둡고 험한 골짜기라 할지라도 은혜로 점철된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어두운 밤을 기도로 보낸 사람, 확정된 패배 앞에서도 하나님의 위대한 역전을 꿈꾸며 어린이처럼 매달린 사람들이 맞이하는 새벽은 주님이 주시는 승리로 더욱 눈부십니다.
이와 같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도 이른 아침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이 무너짐을 믿고 성을 돈 것도 새벽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도 새벽이었습니다. 홍해가 갈라진 것도 새벽이었고 광야에 만나가 내린 것도 늘 새벽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새벽이 이처럼 위대한 의미를 가지고 다가오는 것은 아닙니다. 새벽의 위대한 의미는 새벽에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에게 발견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새벽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해 줍니다. 무엇을 생각하며 눈을 뜨는지는 그 사람이 무엇을 사랑하며 사는지를 가르쳐 줍니다. 부지런한 사람인지, 게으른 사람인지도 그 사람의 새벽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피곤하고 일이 많아서 새벽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가능한 시간이 언제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어 간 기도의 사람들 치고 충분한 수면을 누렸던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기도의 사람들에게 이른 새벽은 잠자는 시간이 아니라 기도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기도는 헌신입니다. 시간과 몸과 마음, 자신의 존재 전부를 헌신하여 맺는 열매가 기도입니다. 따라서 시간을 다스리고 육신의 욕망을 이기지 않고서는 절대로 참된 기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새벽에 조금만 더 일찍 일어난다면, 하나님을 묵상하고 얼마간의 시간을 기도에 바친다면, 아침 시간을 은혜에 대한 사모함으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시작하는 하루하루가 쌓여서 그 사람의 삶을 새벽기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과는 판이하게 다른 인생이 되게 합니다. 지속적으로 새벽의 시간을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며 사는 새벽기도의 사람들은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그 새벽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큰 기적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에 일상적으로 되풀이되어야 할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정말 새벽마다 더러운 죄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거기서 세상을 이길 힘을 공급받으며, 우리의 마음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매일 아침을 기도와 말씀으로 사는 꾸준한 경건생활이야말로, 바로 매일 만나를 공급받으며 광야에서의 삶을 살아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 험악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길 힘을 하늘로부터 공급받는 비결입니다. 하나님께서 굳이 새벽이 이 이적을 베푸신 것은 새벽이 죽음과도 같은 어둠이 물러가고 빛의 날이 시작되는 시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 같은 잠에서 깨어 그 하루를 살기 위해 새롭게 태어나는 당신의 백성들이 제일 먼저 당신을 대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새벽에 그 사건을 베푸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갖고 아침마다 말씀을 대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으로든지 아침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정결케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생활의 성패를 결정짓는 것이 바로 기도 생활입니다. 기도생활과 말씀생활은 이렇게 서로 깊은 영향을 끼치며 함께 가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경건 생활이 세워지지 않고서는 절대로 받은 많은 은혜들을 유지해 나갈 수 없습니다. 개인적인 경건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를 담을 수 있는 그릇과 같은 것입니다. 그 그릇이 견고하고 탄탄하게 마련되어 있을 때에만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영혼에 담을 수 있는 것입니다. 경건한 믿음의 사람들이 새벽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은 그 때가 하나님을 만나기 가장 좋은 시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묵상이 주는 위로와 은혜 가운데 살기 위해서는 그 새벽에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경건의 시간을 가지며 말씀을 폈을 때 우리에게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신령한 말씀을 내려 주시고 새벽기도 시간에 은혜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에서 오는 거룩한 감화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고자 하는 충성스러운 마음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굳은 마음을 깨뜨리고 그 깨어진 마음을 깊은 기도가 아침 이슬처럼 적실 때, 우리는 비로소 영적인 원기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이 세상을 이기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새벽은 새롭게 소생하는 만물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입니다. 예외적인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그리스도인의 공통된 고백이 새벽 시간에 하나님과 대면할 기회를 놓치면 종일 그런 기회를 갖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새벽 시간은 기도하고자 하는 신자의 마지막 보루입니다. 그 새벽마저 안 된다면 경건의 시간을 가질만한 다른 시간은 거의 찾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다양하게 변명한다 할지라도, 성도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새벽을 하나님과 대면하기 위한 기회로 쓰겠다고 온전히 결단하고 뜻을 정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방식을 사용하시든지 도우실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의 새벽 경건을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상황의 개선이나 환경의 변화가 아닙니다. 어찌하든지 새벽 시간을 주님께 드리겠다는 결단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결단으로 축복 받을 그릇을 준비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요한 복음의 마지막장인 21장을 읽게 되었습니다. 1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창조주 하나님이고 시작되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는데 이가 곧 하나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21장에 오게 되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가장 친밀한 인간의 모습으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새벽까지 밤이 맞도록 고기잡이하는 제자들에게 찾아와서 떡과 고기를 구어서 저들을 먹이시는 주님의 모습은 부활하여 우리와 상관없이 존재하시는 주님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와 함께 웃고 우시는 주님이라는 것입니다.
1. 고기 잡으러 나간 제자들.
이에 대하여 어떤 분들은 제자들이 실망하여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제 완전히 옛 생활로 돌아와서 타락하여 세상 직업으로 뒤돌아 갔다고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고 했는데 다시 고기잡이로 가다니 타락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친구들이여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고 정답게 물으셨습니다.
2. 빈 그물을 건지는 제자들을 찾아오신 주님이십니다.
그들은 그 밤에 나가서 열심히 그물을 던졌지만 아무 것도 잡히지를 않았습니다. 어부가 아니라도 그들의 기분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많은 것을 허비하였습니다. 시간과 정력과 힘을 다 했지만 얻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래도 막연하나마 3년 반 전의 어부의 실력 자기들의 경험을 총 발휘하였지만 빈 그물만이 거두었습니다.
1) 이러한 일은 주님이 돕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2) 빈 그물을 거두고 텅 빈 가슴으로 걱정이 깊어질 때 그때가 바로 주님이 찾아오신 때였다는 점입니다. 주님 없이 한평생 수고해 보아야 우리 인생은 빈 그물입니다. 올 한 해도 주님과 함께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3. 실패를 고백하고 주님을 만나 승리하는 제자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얘들아 고기를 좀 잡았느냐고 물었을 때에 제자들은 대답했습니다.
실패를 고백하는 일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저들은 주님 앞에 사실대로 고백하였고 바로 그때에 그 실패를 회복하게 하시는 주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제자들이 아무 것도 잡은 것이 없다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배의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했더니 큰 고기 153마리가 잡혔어요. 조그마한 그물에 153의 고기가 바동거리는 것을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신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물은 찢어지지 아니했습니다.
실패의 현장은 인생의 빈 그물을 거두게 될 때 그것은 버림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 자리에 주님이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입니다. 그리고 지난날의 실패를 정직히 고백하십시다. 주안에서도 말씀대로 살지 못함을 정직하게 고백하십시오. 고백은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통로가 됩니다.
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 주소서 넘치도록 채우소서 주님으로 넘치도록 채우소서. 그리하여 실패를 회복할 뿐만 아니라 더 큰 은총과 축복의 사람으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에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그 사람 자체가 새롭게 바뀌고 아울러 그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새롭게 바뀌어버린 이야기들이 수 없이 많습니다만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린 사람도 그런 경우입니다. 그는 오스카 써번티스 라는 사람인데요 그 사람의 변화야말로 인생을 바꿔놓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한 살아있는 실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스카는 어렸을 때부터 문제 속에서 자라야 했고 자라가면서 그는 강력 범죄로 열 일곱 차례나 감옥을 드나들었고요, 정신과 의사들마저도 오스카는 구제 불능상태라고 말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다 틀린 말이었습니다. 짧은 막간의 자유를 누리던 어느 날, 오스카는 한 노인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노인은 오스카에게 예수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날 오스카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었고 차츰 친절하고 사랑 많은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그후 얼마 안 있어 그는 감옥에 갇혀있는 사람들에게 간증을 하며 복음 전하는 사역을 시작했는데요 그 감옥의 죄수들을 상대로 목회를 하는 목사는 이렇게 오스카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감옥의 매달 세 번째 토요일 밤은 '오스카의 밤'이다. 재소자들은 다 모여 무려 2시간 동안이나 진지한 자세로 앉아 오스카의 메시지를 듣고, 열렬하게 복음 성가를 부른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게 할 때 예배당의 제단 앞으로 거침없이 걸어 나간다."
이것 보세요, 많은 전문가들이 몇 년을 두고 오스카와 상담을 통하여 새 사람으로의 변화를 이루어보고자 했으나 실패했던 그 일을 한 노인의 전도로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고 그리스도께서는 단 한 순간의 회심을 통하여 이루어내셨습니다.
우리는 마가복음 5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격분하여 날뛰는 귀신들린 광인을 유순하고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으로 바꾸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광인과 오스카 써번티스를 바꾸어놓은 바로 그 능력은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늘도 활짝 문이 열려있습니다. 그분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새롭게 변화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아니 이 온 세상 그 자체를 완전히 새롭게 바꾸실 뿐만 아니라 자연 우주 만물까지도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대 변혁자 이십니다.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 앉아 계신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으로 인하여 변화되셨습니까? 실패하셨습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반드시 승리하실 것입니다. 2006년 새벽을 여는 교회되어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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