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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고용주와 고용인이 되어가는 교역자들

순전한신앙이야기 황부일목사............... 조회 수 1894 추천 수 0 2011.11.03 12:4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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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순전한 신앙 이야기<http://cafe.naver.com/ghkdqndlf> 

근간에 우리는 교회 노조설립에 관한 소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교계 언론들은 “스스로 노동자로 전락한 목회자들”, “은혜위의 노동법(?)”, “교회 노조 설립은 하나님과 성직자들에 대한 심각한 모독행위, 교회 본질을 크게 왜곡하는 일” 등으로 사설에서나 교계 대표되는 자들의 입을 인용한 기자 수첩 등에서 주로 날을 세워 비판했습니다.

 

물론 찬성하며 공감하는 자들의 입장도 실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반응은 교회 노조설립에 대해 있을 수 없는 일로, 말도 안 되는 일로 반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로 그것을 시작한 자들에 대해 교회를 만신창이로 만들어 가는 자들로 세속화시켜 가는 부정세력으로 몰아 부치면서 예의 주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대다수가 맹비난하는 것처럼 교회 노조설립은 한마디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는 선언이요 교회가 될 수 없다는 증명인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가 할 때에 그 문제는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심는 대로 거두게 되는 원리의 말씀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갈 6:7). 이들은 이 땅의 교회들이 그동안 무엇을 세우고 무엇을 그토록 원하며 얻으려 했던 가에 대한 한 산물인 것입니다. 그 나무를 증명하는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는다고 했습니다(마 7:17-18). 이런 원리로 볼 때 이들은 교회를 세속화 시키는 장본인들이 아니라 세속화 되어 온 교회들의 결실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나무 된 우리 자신들은 못보고 나무에 맺힌 열매가 엉뚱한데서 생겨진 것이 날아와 붙어 있는 것처럼만 보는 것입니다.

 

그들이 교회 노조설립을 하게 된 취지를 보면 이러합니다. “지금까지 교회는 종교라는 특수성 때문에 교회 당회장과 노동자(부교역자나 직원 등)간의 가부장 봉건적인 관계로 근로환경의 사각지대에 방치 되어 왔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주장을 계속 보면 부교역자들은 담임목사에 의해 존재하고 한순간 파리 목숨처럼 잘라 져야하고 때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차량운행이나 심방, 맡은바 파트의 일과 담임목사 비서같이 해야 하고 그 외에 교회 제반되는 모든 일까지 사찰처럼 하기도 하지만 거기에 비해 사례는 너무 적고 그것도 담임목사에 눈 밖에 나면 언제든지 한순간 그만 두어야 하고 때로는 억울하고 황당하여 담임목사에게 따지고 싶고, 어디 내놓고 하소연이나 하고 싶어도 그 교단에서 앞으로 목회 하려면 어쩔 수없이 참아야 하는 이런 경우들이 너무도 부당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로 부교역자의 이런 형편을 뼈저리게 실감했던 자들이 교회 노조 설립을 추진하게 된 것이며 지금은 그것을 공감한 다수의 부교역자들이 계속 가입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담임목사는 고용주요 부교역자들은 고용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어떻게 교회에 고용주가 있고 고용인이 있는가 할 때에 그것은 교회가 기업화되어 가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이 땅에 교회들은 세상의 기업들처럼 외적성장에 치중해 왔습니다. 물론 지금은 더 말할 나위없지만 많은 목회자들은 기업을 키워 가듯이 대 교회로 세우고 목회 성공을 하기 위해 영업적인 전략과 조직 행정을 펼치며 경쟁하면서 거기에 필요한 인력으로 부교역자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대 교회의 세속화와 타락의 현상은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모습으로 교회를 이루어 가야함은 없고 자기 욕망과 인간적 기대에 맞는 오직 팽창적인 외적 성장에 목표를 둘 때부터이었습니다. 작은 교회는 큰 교회가 되려하고 큰 교회는 더 큰 교회가 되려하는 데에만 열중이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에 모든 계획이나 프로그램 하다못해 예배 설교까지 모두 그런 부흥성장에 초점을 두고 달려 왔던 것입니다. 그러니 목회자들은 오직 팽창하고 확장되어가는 목회성공을 위한 경영자가 되었고 그런 경영에 필요한 기업식 일군으로 그 방면에서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되는데 쓸만한 부교역자를 구하여 고용인처럼 부려먹은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담임목회자는 고용주가 되었고 그것이 이제는 열매 맺어 보다 확실한 교회 안에 노사관계로 현실화 되어 나타나지게 된 것입니다. 노사문제가 있는 세상기업처럼 된 것입니다.

 

부교역자 시절을 누구나 지내며 겪었겠지만 부교역자도 교회를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세워 가는데 함께 협력하는 동역자로 여긴다거나 아니면 그런 하나님나라에 합당한 일군으로 양성하려고 제자처럼 여기며 이끌어주고 함께하려는 담임목사를 본적이 있습니까? 말은 목회의 협력자요 교회부분을 맡은 직분자라고 하지만 언제나 요구되는 것은 목회자들마다 각자 가진 자기중심에 맞추어 달라는 것이었고 그 일에 복종하고 충성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교단마다, 노회마다 실시하는 부교역자 세미나를 보면 부교역자가 하나님 나라 된 교회의 일군인지, 또는 그렇게 쓰여 질 자로 가는 과정의 직분자인지에 대한 인식적인 강조는 거의 없고 교회를 운영하는 목회자 개인의 보필자로서의 일군으로 잘해야 될 것으로 강조되는 것입니다.

 

내 경우의 체험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때도 신학교 게시판에 전도사구함, 부교역자 구함이라는 광고가 종종 붙어 있었는데 그때는 주로 성가대 지휘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우대한다거나 아예 그런 자로 자격을 금 그어 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성가대 지휘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그것이 은근히 불만이었습니다. “아니 교회 전도사라면 주일학교나, 중고등부나 청년들을 잘 가르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그것은 두 번째고 성가대 지휘여부에 기준을 두고 전도사를 구하려는 걸까?” 이것이 내게는 의문이었고 그런 광고를 보는 당시 나의 답답함이었습니다.

 

근래에도 신학교 게시판에 부교역자를 구하는 광고가 붙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보면 요즘에는 옛 우리 때와 달리 “일종면허 소지자 우대, 봉고차 운전할 수 있는 자”등을 기준으로 부교역자를 구하는 광고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저도 교계신문 광고란에서 종종 그런 광고를 본 기억이 납니다. 우리는 이런 광고에서 교회에서 정작 필요한 부교역자가 어떤 자인지를 알 수 있으며 담임목사들이 원하는 부교역자는 실제로 하나님 나라의 일에 합력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 그렇게 성가대 지휘만 할 줄 알고 운전만 할 줄 알면 되는 평범한 일군에 불가한 것임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회 봉고차 기사를 구하는 것인지 부교역자를 구하는 것이 맞는지 구분이 안가는 이런 광고에서 우리는 이미 서로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세워 가는데 있어 중심을 둔 상태에서 복음의 동역 자, 선후배, 제자 관계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 조직이나 행정이나 교회 일에 기능이나 한 파트 담당자로서 임시 고용되는 관계로 될 수밖에 없는 상태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잘 아는 한 후배 목사는 근간에 부목사로 있다가 사임하고 개척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서 부교역자로서 애로점이 바로 무엇이냐 하면 자신은 하나님의 일군이요 그 길로 가는 자인데 담임목사가 원하는 것은 자기의 하수인이나 종처럼 따라 주길 원하고 언제나 자기편에서 대변해 주거나 일해 주길 원하는 것으로 인해 오는 갈등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강도사 때 어느 교회에 부교역자로 갔다가 두 달도 채 지나지 못해서 그만두어야 하는 사정 얘기를 내게 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담임목사의 입장이었지만 실로 그 목사님이 너무한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교회가 있는 곳으로 가까이 왔으면 좋겠다 해서 이사까지 왔는데 교회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 봉고차를 운행하다가 차문제로 인해 생긴 일로 원감과 언쟁 중에 그에게 따졌다고 그만두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후배는 한 동안 그 충격으로 낙심과 원망에 빠져 이 길을 내가 가야 하는지에 대해 갈등까지 생겨 매우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또 우리교회 집사님 동생은 첫째니 둘째니 하는 장로교단에 대학원을 나와 지방도시에 가서 같은 교단에 소속되어 있는 교회에서 주일학교를 맡아서 1년쯤 전도사로 있었는데 담임목사님이 원로로 은퇴하면서 새로 부임하는 목사가 옴으로 부교역자는 모두 그만 두어야 하는 관례(?)로 부득이 하게 사임했고 그 후에 아는 목사님을 통해 다른 교회로 갔는데 거기서는 유년주일학교를 맡으면서도 새벽마다 차량운행을 해야 했고 저녁예배가 있는 수요일이나 주일에는 밤늦게 까지 교회 일을 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이런 수고는 참을 수 있었는데 문제는 담임목사가 전도사인 자신에게 대하는 언행이었답니다. 자기는 언제나 깍듯이 대해주고 섬겨주길 원하면서도 전도사는 마치 종처럼 부려먹으려 하는 것이나 때로는 모욕적인 언사도 마구해대는 것은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한번은 전도사가 저녁예배 때 설교를 하게 되었는데 그 설교내용 중에 목사님의 귀를 거슬리게 하는 것이 있었나 봅니다. 그것으로 인해 심한 반 욕설적인 책망까지 받았고 그 길로 그만두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런 형편은 상대적이라 반대편의 입장도 있을 줄 압니다. 반대로 부교역자로 인한 교회의 문제도 많고 부교역자로 인해 고통을 겪는 목사들의 얘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편들어 밝히자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대체적으로 교회 안에 목사와 부교역자와의 관계가 이렇게 마치 세상의 영리 목적인 일터의 사람들처럼 고용주와 고용인 관계가 되어 자기의도와 요구와 기분감정에 따라 한순간 내보내고 그만두고 그래서 또 다른 일군(부교역자)을 구하고 또 다른 일터(교회)를 찾고 한다는 것입니다.

 

부교역자는 필요한데로 쓰는 임시 고용인이 아닙니다. 그리고 담임목사는 그들을 채용한 고용주가 아닙니다. 모두가 하나님 나라를 세워갈 하나님의 사역자들인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부름 받은 같은 형제며 동역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앞선 자가 담임목사라면 부교역자들은 그 담임 목사를 통해 지도 받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합력하여 섬기는 관계인 것입니다. 그것은 사도 바울과 제자 디모데, 디도와 같은 관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제자인 그들을 때론 아들 같게 여기면서도 복음의 일을 위해서는 동역자라고 불렀고 또한 그 일을 잘 감당하는 자로 자라며 서가도록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지고 언제나 기도하며 가르쳤던 것입니다.

 

실제로 그의 서신에서 찾아 볼 것 같으면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라 했고, 너를 생각하며 쉬지 않고 밤낮 간구한다고 했으며, 또한 같은 믿음을 따라 된 나의 참 아들 된 디도를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고 했습니다(고후 8:23).

 

그리스도의 교회에 있어 담임목사와 부교역자 관계는 바로 이런 관계입니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같은 믿음으로 한 몸을 이루고 있는 하나님의 한 권속이요 한 형제이며 또한 성도를 온전케 하며 그리스도를 세워 가도록 복음의 사역자로 부르심을 입은 목사요 교사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사도바울을 부르시고 그의 복음사역을 통해 믿음으로 부름 받은 자들 가운데 앞으로 복음의 사역을 감당해 갈 자를 제자로 양육 받게 하셨고 그들은 복음으로 가르침을 받으며 또한 비울의 사역을 도우며 부분적으로 교회를 섬기며 사역하는 자로 점점 자라갔던 것입니다. 그렇게 모두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선한 일군으로 하나였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라면서도 이런 관계가 왜 안 되는 것입니까? 많은 요인과 문제가 있겠지만 대다수의 우리의 모습에는 본질적으로 하나님 나라 된 거룩한 교회 모습이 없고 또한 그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복음에 합당한 신앙이 서로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저 욕망을 따라 보이는 크기로 성공하며 영광을 얻고 때로는 자식에게 물려주려는 인간적인 사업적 의도가 처음부터 깔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거기에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사도성이 있을 수 없고 복음의 한 믿음으로 내려가는 진리의 기둥과 터가 되는 교회의 맥이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껏 이 땅의 교회들은 그런 식으로 달려 왔고 지금도 더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앞선 자는 그것을 비젼으로 추구하고 뒤선 자는 그것을 그대로 답습하며 따라가는 계주 속에 있습니다. 실로 안타까운 것은 오늘날 말은 부교역자들이 큰소리치는 고용주 같은 담임목사 밑에서 임시고용인 같이 고생하며 때론 모욕을 당하며 마음이 상해도 나도 그와 같이 빨리 성공하리라는 각오로 전념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고용인이지만 보다 큰 고용주가 되겠다는 일념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맛을 잃은 소금이 되었고 어둠의 죽은 자 가운데서 잠자고 있는 상태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책망 받는 사데 교회처럼 되었고 세상인지 교회인지 구분이 안 되는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보이는 것으로 크고 부유한 것을 자랑하는 눈멀고 부끄러운 모습에 있는 것입니다. 더욱 한탄스러운 것은 대다수가 이런 모습으로 교회를 경쟁적으로 세우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개혁의 역사만 기도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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