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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순전한 신앙 이야기<http://cafe.naver.com/ghkdqndl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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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교회들에게 있어 관심과 전부는 교회성장에 있습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냐 하면 교회 모든 의식, 행사, 프로그램, 시스템 등이 다 교회성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예배 하나를 볼 것 같으면 예배순서, 기도 ,찬양, 설교 등 예배하는 장소와 분위기까지도 성장에 목표를 두고 오로지 그 중심으로 실행합니다. 심지어 요새 교회들이 사회구제와 복지사업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재정을 활용하는데 그것도 다 성장을 위해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교회성장을 요하고 전부하고 있는 것이 마땅한 듯이 보이지만 문제는 교회성장을 교인수 늘이기 예배당 건물 크게 짓기에 기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교회 성장은 세상기업이나 어떤 단체가 확장되고 팽창하고 활성화 되어 가는 성장과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교회성장, 교회부흥이라는 말과 실제에 교회라는 거룩한 본질적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기업의 발전 성장과 같은 영업방식이 난무하고 마케팅식 전략이 그대로 실용되어 꿩 잡는게 매라는 식으로 어쨌든 교회만 커지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공한 목회자로 훌륭하게 여기고 높여주고 하나님의 권능의 능력의 사역자로 여기저기서 강사로 모셔 가는데 예약을 해야 할 정도입니다.
<먼저 교회를 알아야 한다>
교회를 모르면 교회된 모습이 없습니다. 때문에 요즘 교회라고 모이는 자들과 그런 교회를 더 크게 세우려는 지도자들에게서는 거룩한 교회된 모습들이 보이질 않는 것입니다. 그들 모두는 거룩한 교회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런 교회모습을 아예 이루려 하질 않습니다. 이런 현대적 교회는 가칭교회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었다고 지적받은 사데교회 같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계3:1-2)
오늘날은 교회를 모르는 교회들이, 교회 모습이 없는 교회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들 다수가 교회성장을 자기들 기대대로 기준하고 저들끼리 인정하며 경쟁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의 비밀로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1:9)고 증거 했습니다.
성경의 역사는 구속사인데 하나님께서 이미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교회를 계획하시고 그것을 은혜의 언약으로 말씀 하시고 교회된 자들을 부르시고 그분의 교회를 언약대로 경륜을 따라 이루어 오셨습니다. 그것이 구속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교회로 정하신 자들을 불러 거룩한 교회로 구원하십니다. 이것이 그대로 이루어져 가는 것이 참된 교회성장입니다. 롬8:29-30절에 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바울은 증거 했습니다. 이렇게 교회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본받아 그를 드러내며 증거 하기 위해 미리 정해진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주님은 복음전파를 통해 부르시고 믿음으로 의롭게 하시고 교회된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자라게 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성장의 원리입니다.
고린도 교회를 실제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당시 고린도는 헬라의 남부 아가야에 있는 큰 항구도시였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이성중(고린도)에 내 백성이 많다고 하시며 두려워 말고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십니다.(행18:9-11) 사도 바울은 1년 6개월 동안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며 가르쳤습니다. 고린도전서에 보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각처에서 우리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자들”이 교회라 했습니다(고전1:2) 그렇다면 바울에게 말씀하신대로 고린도에는 미리 정해진 교회된 성도들이 많다고 했으니 그들이 바울의 복음전도를 통해 많은 성도의 수로 고린도 교회가 된것인데 그러나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성장한 교회로 보지않고 오히려 어린아이 같은 성장치 못한 교회로 지적합니다. 그들은 아직 육신에 속한 모습을 가지고 시기하며 분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고전3:1-3) 오늘날 교회들은 교인수만 많아지면 성장한 교회로 보는 시각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된 연합체입니다.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으로 언약의 백성으로 이미 예정하셨는데 그렇게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 한 구원의 생명으로 택하셨고 또한 시기를 따라 그들을 성도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예정된 구원의 수를 다 채울때까지 부르십니다. 그래서 한몸됨을 이루십니다. 때문에 교회로 성도가 불러지는 것은 성장이 아니라 교회로 세워 가시는 하나님의 성취의 역사인 것입니다. 교인들이 많다고 교회가 두몸되고 세몸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가 많든 적든 교회는 한몸일 뿐입니다. 보이지 않는 무형교회가 온전한 그리스도의 한몸된 본질적 교회라면 보이는 유형교회도 세상 각 곳곳에서 그리스도의 한몸된 교회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에베소서4:13-16절을 보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 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고 증거 했습니다. 이 말씀에 교회성장의 본질과 원리가 담겨있습니다. 한 마디로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까지 자라가는 것이요 그래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나타나지는 것이 교회의 성장인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교회성장으로써 교회된 성도들이 머리되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가야 함을 말씀하며 또한 거룩한 연합체로 서로 함께 하며 도우며 거룩한 하나님의 집으로 통일되어 지어져 가는 것을 말씀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이니 교회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된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를 믿는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오직 우리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3:18)고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안다는 것과 지식이란 말은 그리스도를 믿고 더욱 그를 깨달아가는 것인데 그래야 성도로서 온전케 되는 은혜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된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모습을 가질수 없던 자들입니다. 다 죄로 인해 어둠에 속해 있었고 사탄의 본성을 가지고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살던 자들입니다. 그랬던 우리를 하나님의 은혜로 불러 주시고 그리스도 안에 한 생명을 갖게 하신 것입니다. 때문에 교회된 자라 할지라도 실제 모습은 타락한 육체의 옛사람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고 증거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요 실제 우리는 연약하여 의로운 자다움이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의인된 자다운 모습을 가지며 그 열매를 맺어가는 것이 곧 교회된 자로서의 합당한 성장이요 이렇게 자라는 자들이 함께 연합체로 그 역할과 관계를 잘 이루어 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한몸된 교회로서 참 성장을 이루는 것입니다.
<교회 성장은 하나님 은혜의 역사>
사도 바울은 교회 성장에 대해 증거 하기를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3:5-7절에 보면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을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현대교회들을 보면 교회성장을 전부 목회자가 계획하고 주도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리고 그들은 교회성장을 크기로 성공여부를 가리며 마치 교회성장이 자기들의 특별한 능력이나 뛰어난 리더십으로 이루었다며 떠들고 다수들은 그것을 인정하여 높이 평가하고 후배 목회자들은 그들의 목회전략이나 방법을 전수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를 예정하시고 그 계획대로 섭리 하셔서 교회로 불러 세우시고 그 언약대로 교회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바울의 증거처럼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 했는데 주의 종이라고 하는 인간들이 감히 목회 노하우하며 교회를 부흥성장 시켰다고 하는데 그럼 그들이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까?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교회를 그 분이 원하시고 뜻하신 거룩한 교회로 성장시킬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역사하시는 교회성장은 교회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언약이고 그대로 그 분만이 하실 수 있는 주권적 역사의 성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들이 떠들며 자타가 인정하는 교회성장은 모두 인간적 기준에 불과한 것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나타내고 알아주는 교회성장을 보면 거룩한 교회 모습을 이루어 감이 없습니다. 그저 외형적으로 클 뿐이고 조직이나 운영이나 체제 시스템들이 사업적으로 잘 될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증거 하기를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2:11-13)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구약교회의 성민으로 합당한 어른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양육 하셨다고 고백했던 것처럼(창48:15) 신약교회도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모습으로 그분만이 은혜로 성장케 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인간적인 것으로만 자라게 할 뿐입니다.
<교회 성장은 오직 복음에 있다>
복음이 아니고는 교회가 설 수가 없습니다. 또한 거룩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된 모습으로 자라갈 수 없습니다. 오직 복음에만 교회 구원이 약속되어 있고 또한 교회 구원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1:16-17절에 보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복음에 교회 구원이 예정되어 있고 그대로 온전케 성취된다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3:15-17절에 보면 성경 말씀만이 구원의 지혜를 주고 거룩한 교회된 자로 의롭게 바르게 자라도록 교육한다고 했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선한 일을 행하는 자로 온전케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모범적인 교회로 나오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보면 사도 바울의 복음증거로 그중에 택함을 입은 자들이 성령의 역사로 믿어 교회가 되고 환난 중에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복음의 가르침을 받아 헛된 것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신앙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본받는 자들이 되었고 또한 복음이 그 교회로부터 주변 각처로 전해지므로 말미암아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고 했습니다.(살전1:4-10절참조)
오늘날 교회가 부흥하고 크게 성장했다고 자타가 인정하며 자랑하는 교회들이 많지만 데살로니가교회 같이 참된 교회 모습으로 성장한 교회들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현대교회들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참으로 모범적인 교회들을 목표로 세워가려 하지 않고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한 유명한 교회들만 닮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들 교회들의 분명한 차이점은 데살로니가교회는 복음적인 교회인데 반해 현대교회들은 다른복음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크게 성장했다고 하는 현대교회들의 모습에서는 그리스도의 몸된 참모습이 보이질 않는 것입니다. 분쟁하고 시기하고 육체의 모습들이 심했던 그래서 사도바울은 성장하지 못한 어린아이 같이 여긴다고 했던 고린도교회 같은 모습들만 그득히 채워져 커진 교회들이 바로 현대판 성장한 교회들인 것입니다.
다른복음을 기대하고 몰려들었던 예수님 당시 유대 무리들, 그들은 교회가 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다른 복음으로 그들에게 맞추어 주었다면 그 많은 무리는 크게 성장한 오늘날 교회처럼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진리의 복음은 그들을 떠나게 했고 주의 사람들로 부르신 제자들만 남게 했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증인된 자가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복음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작정되어 있고 복음에만 작정된 교회 구원만이 언약된 것입니다.
원복음인 창세기3:15절에 보면 여자의 후손 중에 뱀의 머리를 밟고 뱀으로부터 발뒤꿈치를 물리는 메시야를 통해 여자와 여자의 후손이 뱀으로부터 벗어나는 구원을 은혜로 언약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여자와 그 후손이 바로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갈라디아서4장에 보면 아브라함의 두 여자 중에 종에 속하는 하갈과 자유 하는 여자인 사라를 비교하여 증거 하는데 자유 하는 여자에게서는 성령으로 난자가 나오고 종으로부터 난자는 육체를 따라 난자가 나오는데 이들이 서로 원수관계가 된다 했습니다. 자유한 여자는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으로 곧 우리의 어머니라 했고 우리는(교회)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했습니다.(갈4:22-31) 그러니까 창3:15절에 여자와 여자의 후손은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될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계속적으로 여자의 후손인 언약의 자녀를 낳아 길러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위에 있는 예루살렘으로서 어머니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하신대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구원해 가십니다. 아담의 후손중에서 아벨을 의로 구별하시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셋과 에노스를 낳게 하시고 노아와 셈과 나홀과 데라와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아브라함을 불러내시어 언약의 땅과 언약의 후손을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그 언약대로 언약의 자녀 이삭을 불러내시고 이삭의 두 아들 가운데 어머니 태중에서 이미 선택된 야곱을 구별하시어 구약교회를 이스라엘로 이루실 것을 언약하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구약교회에 먼저된자로 부르시고 간교했던 자를 교회된 거룩한 자로 성장시켜 가십니다. 창48:15절에 보면 야곱은 요셉과 그 두 아들을 축복하는 선언에서 고백하기를 내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남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야곱을 교회된 자로 선택하심도 하나님이시고 그를 구별시켜 언약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된 자답게 변화되고 온전케 되도록 자라게 하신분도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구원의 계획대로 하나님 나라를 실현시켜 가십니다. 디도서2:11-12절에 보면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근신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라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속에 계획하신 그 분의 교회를 구별하시고 그분의 교회된 모습으로 이루도록 자라게 하시는 복음적인 참 교회성장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목적대로 성장시켜가는 교회는 망해야 합니다. 오로지 주님의 언약대로 서가는 교회안에서 자라가는 은혜로 발견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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