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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3: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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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복음의 능력과 기도
2005-07-10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새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행 3:1-6)
I. 본문의 배경
예수님의 부활 승천 후, 오순절 성령 강림을 경험한 초대 교회는 놀라운 은혜와 권능을 소유한 공동체가 되었다.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삼시(오전9시), 육시(정오), 구시(오후 3시)에 기도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초대 교회의 성도들 역시 이 기도의 습관을 따랐다. 공동체가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초대 교회는 하루에 세 번씩 헌신적으로 기도하였던 것은 복음의 위대한 능력을 보존하는 비결이 기도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기도하기 위해 성전으로 올라가던 베드로와 요한에게 한 앉은뱅이가 구걸을 하였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그가 구한 재물 대신,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던 복음을 전하며 그를 근본적으로 고쳐주었다.
II. 복음을 가진 교회 - 6절에 나타난 베드로 사도의 말 속에서 우리는 예루살렘 교회가 복음을 소유한 교회였음을 알게 된다.
A. 복음을 믿음 : “은과 금은 없으나”
은가 금이 없다는 베드로의 말은 사실 옳지 않다. 성경 곳곳에서 우리는 초대 교회의 성도들이 자신의 소유를 팔아 예루살렘 교회로 가져온 것을 볼 수 있다. 아마도 예루살렘 교회에는 가난한 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재물이 있었을 것이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한 것은 지금 그에게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은과 금이 아니라, 복음임을 확신하였기 때문이었다. 베드로는 그 앉은뱅이가 교회를 향해 마땅히 기대하여야 할 것을 기대하기 원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오직 복음만이 인간의 모든 곤고와 비참을 고칠 수 있음을 알았다.
B. 복음을 가짐 : “내게 있는 것으로”
베드로와 요한에게 있었던 복음은 단순한 앎이 아니었다. 이것은 그들의 마음속에서 현재적으로 살아 역사하고 있는 것이었다. 교회는 복음으로 세상을 고치도록 부름받은 공동체이다. 교회가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살아 역사하는 복음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어야 하며, 이 활활 타오르는 복음은 전해져야만 한다.
복음이란, 간단히 말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사셨다는 것인데, 이것이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이 사건이 우리를 위한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를 위하여” 라는 것은 먼저 우리를 대신하였다는 것이며, 둘째로 우리를 대표하였다는 것이며, 셋째로 우리가 혜택을 입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교회라면 모두 복음을 소유하고 있는 것인가? 슬프게도 그렇지 않다. 교회의 이름으로 모이고 있다고 할지라도 복음을 현재적으로 경험하며 살고 있지 못한 이들의 공동체라면, 그것은 오히려 복음 전파의 걸림돌일 뿐이다. 교회는 하나님을 모르기에 곤고하게 살아가는 영적 앉은뱅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세상은 복음을 기뻐하지 않고, 그래서 때때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박해를 받기도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III. 능력으로 나타난 복음
A. 근본을 고치는 기독교 : 우리는 여기서 기독교의 사명이 근본을 고치는 것임을 알게 된다. 앉은뱅이가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한 것은 평생 호의호식할 수 있을 만한 어마어마한 재물이 아니라 한 두 끼를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잔돈푼이었다. 그러나 그저 하루 정도 이어질 혜택을 구하는 앉은뱅이에게 사도들은 영원히 이어질 혜택을 선사했다. 사도들은 동전 몇 닢을 던져주는 것으로는 앉은뱅이의 비참한 삶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들은 앉은뱅이의 비참한 삶이 근원적으로 개선되기 원했고, 그러한 놀라운 일은 오직 복음을 통해서만 일어날 것임을 믿었다. 기독교에는 이처럼 사람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복음의 능력이 나를 변화시키고, 복음의 능력이 나를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구출했다. 그런데 그 복음을 지금도 현재적으로 소유하고 있는가? 처음 구원을 받았을 때처럼, 그 복음에 한없이 감격해 하는가? 복음의 순수한 능력을 늘 누리며, 매일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살아나는 경험을 하고 있는가?
B. 능력으로 나타난 복음 : 예루살렘 교회가 사람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수 있는 놀라운 복음을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의 능력이 그들과 함께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렇게 성령님의 능력이 그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1. 공동체의 마음 -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행1:14),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2:46) 에서 볼 수 있듯, 첫 번째 비결은 공동체가 한 마음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이다. 개개인이 순전한 마음이 아닐 때에는 아무리 하나 되고자 해도 하나 될 수 없다. 하나님만을 사랑하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자 하는 성도 개개인의 순전한 마음이 교회의 하나 된 마음을 가져온다.
2. 공동체의 기도 (행 2:42) - 예루살렘 교회는 강력한 기도의 공동체였다. 기도하지 않으면서 설교자와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능력이 나타나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그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에게 능력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기도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기도를 사용하여 놀라운 역사를 일으키신다. 2005-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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