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오늘의

읽을꺼리

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그리스도 영성이란

영성묵상훈련 김진 목사............... 조회 수 1814 추천 수 0 2011.11.16 22:33:51
.........
출처 :  

그리스도 영성이란
김진 목사 (크리스챤아카데미 연구원)

1. 영성마당

 

그리스도교 영성은 나 자신이 그리스도의 영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서 성장해갈 때 그리스도교 영성은 나 자신과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과 소통, 그리고 성령과의 친교를 통해 더 깊어진다.

 

나 외에 다른 사람이 나 자신의 영성을 책임질 수는 없다. 개인의 영성생활을 위한 개인의 신앙생활과 표현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개인의 영성생활의 중요성이 개인화된 영성, 혹은 영성의 개별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영성을 자기 자신의 사적인 영역으로 국한시키면 그가 추구하는 영성은 궁극적으로 삶의 변화를 가져오기보다는 심리적인 변화에 그치기 쉽고, 자신의 복만을 추구하는 기복주의적인 영성추구에 빠지기 쉽다. 또한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영성을 등한시하게 됨으로써 비역사적, 탈세속적인 영성을 지향하게 될 위험이 있다.

 

우리의 영성을 본질적으로 개인화된 것으로 만들고 가난한 자들이나 정의의 요구로부터 단절시키면 그것은 곧 단순한 개인 치료책이나 어떤 형태의 기술 내지는 더 좋지 않을 경우 불건전한 파당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개인과 개인 속에서 활동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을 통해 드러나는 공동체적인 영성이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자신을 위해 가장 지고한 존재를 찾거나 자신을 위해 궁극적 존재를 찾는 사적인 찾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성은 공동체적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찾아가는 것이며, 개인은 하나님의 얼굴을 오로지 역사적인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적으로 찾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를 형성해가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개인의 영성은 공동체의 영성을 통해 순화되기도 하고 고양되기도 한다. 한 공동체에 속한 개인은 공동체와 함께 공동의 신앙행위를 통해 자신의 영성을 더욱 충만하게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게 하시는 은총으로 인해 우리의 영성은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으며, 개별적인 영성추구가 빠질 수 있는 실수와 실패를 극복할 수 있다.

 

개인의 영성생활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영성은 하나님과 자신과의 친밀한 소통을 기반으로 하되 공동체 영성과의 상호 순환을 통해 더 깊어진다.

 

2.그리스도교 영성은 내면적인 영역에 국한된 문제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 존재가 뿌리내리고 있는 그곳에서 피어난다. 그러기에 영성의 내면적인 측면은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자신의 존재 깊이 안에서 영성이 충만하지 않은 채 그 어떤 영성의 외형적인 드러남도 오래갈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영성이 그리스도의 영과 깊은 만남을 통해 형성되고 자리 잡는다고 해서 내면의 세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영성은 우리의 존재, 삶의 영역, 모든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강한 영향을 미치면서 솟구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의 삶의 모습에서 그 영성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영성은 그 특성상 절대로 내면에만 머무르지 않으며 어떤 형태로든 겉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영성을 내면적인 영역에만 머무르도록 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영성을 내면에서 일궈내고 있다 하더라도 이것이 밖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나가지 않으면 안에서 고여 곧 시들고 말 것이다.

 

영성은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영성이 사람과의 관계와 활동 속에서 올바르게 드러나기 위해서는 말, 표정, 몸짓에 자신의 영성이 실리도록 그 통로를 열어두어야 한다. 예수의 영성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내면의 영성은 사회 안에서 사랑과 평화운동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때 영성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펼치는 동력으로 전환된다. 개인의 내적인 평안은 사회적 평화운동의 동력이 되고, 내적인 명상은 사회정의운동의 토대가 된다.

 

내적 가난, 영혼의 가난함을 추구하는 깊은 영성은 사회적으로 가난하고 병든 약자를 위한 사랑의 실천 활동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실천적인 영성을 통해 이 역사 속에서 현존하시는 그리스도를 더욱더 실감나게 체험하게 할 것이며 이는 우리의 영성을 더욱 건강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런 영성체험과 영성표출의 순환을 통해 우리의 영성은 더욱 알차게 영글어갈 것이다.

 

3.영성은 정적인 것이다

 

영성이 개인화되고 또 내면화에만 머무른다면 당연히 영성을 정적인 현상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런 영성이해로는 성령이 일으키는 구원의 역동성을 바라보지 못한다. 성서에서 드러나는 성령의 활동하심은 그렇게 정적인 활동에 머무르지 않는다.

 

영어로 성령을 표기할 때 Holy Ghost와 Holy Spirit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Ghost는 본래 앵글로 색슨계에서 격렬한 서두름(violent hurry)을 뜻하는 단어인 gast에서 유래했다. 이 어원에서 볼 수 있듯이 성령의 움직임은 인간이 감당할 수 없으리만큼 격동적이고, 역동적인 힘으로 다가올 수 있다.

 

마가의 다락방에 불어닥친 성령강림 사건은 이런 동적인 성령의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성령의 휘둘림으로 말미암은 우리의 영성 또한 이렇게 동적인 모습으로 체험되고 표현된다. 반면에 Spirit은 라틴어 단어인 Spiritus에서 유래했는데 그 본래 뜻은 생명의 온유한 호흡이다.

 

우리는 성령의 모습 속에서 영성이 지닌 부드러움, 고요함을 보게 된다. 간혹 개인의 기도생활과 실천적인 영성을 지닌 사람들에게서조차 마음과 영혼의 부드러움을 간직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게 된다. 자기 자신에게 너무 철저하게 경직된 마음과 권위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는 것도 영혼의 미소지음을 잃고 있기 때문이며 관용과 인내, 이해와 은총에 감사한 마음이 부족한 사람들 또한 생명의 온유한 호흡으로서 성령을 만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성이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이 양자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4.영성은 오로지 순수하게 영과 정신의 세계와 관계한다

 

영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큰 오해 중 하나는 영성을 인간의 물질적인 삶과 무관한 순전히 영적인 문제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것은 영과 몸, 정신과 물질을 이분법적으로 사고한 오랜 그리스도교 사상 전통에서 비롯된 가장 큰 폐해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영성은 몸을 지닌 인간의 총체적인 삶의 영역과 긴밀하게 관계하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영과 몸, 정신과 물질 두 영역간의 상호 긴밀한 관계는 이미 과학과 의학의 세계에서조차 검증되고 있다. 몸과 마음, 인간과 우주세계는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영성 또한 이 물질세계로부터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영성은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모든 접촉과 만난다. 영성은 실제 삶의 유형 - 먹고, 배설하고, 일하고, 웃고 등 - 의 관계를 통해 변화해간다. 삶의 공간으로서 자연이나 환경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연에서 멀어진 시멘트 빌딩 숲에서 형성되는 영성과 생명력 넘치는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형성되는 영성은 질적으로 다르다.

 

물질이 영성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영성이 물질적인 삶에 영향을 끼친다. 그 사람의 영성 변화에 따라 그의 삶의 관계나 질(質) 또한 변화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영성이 물질적인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상호간 더 자유롭게 소통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영성을 영적인 문제로 국한하려는 인식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5.영성은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나 있는 문제다

 

많은 사람이 영성이나 영성수련이라는 용어를 떠올릴 때 가장 큰 오해는 영성을 어떤 색다르고 은밀한 것으로 생각하고 밥이나 김치 냄새가 나는 일상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히 많은 사람은 영성이라는 단어를 어떤 불가사의하고 신비스러우며 교회 안에만 있는 거룩하고 경건한 것, 다른 세상의 것, 뉴에이지 운동, 부수적인 어떤 것 내지는 뭔가 선택적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영성을 우리의 삶의 중심에 놓여 있는 근본적이고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영성에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것은 바로 우리의 일상(日常)의 삶이며, 영성 또한 가장 일상적인 현실에서 드러난다.
일상과 유리된 믿음, 일상에서 피어나지 않는 영성은 영성이라 말할 수 없다. 일상 속에서 현존하는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그의 뜻을 일상 속에서 구현해가는 것이 그리스도교 영성의 핵심이다. 때때로 우리는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한적한 곳에서 명상과 기도로 우리의 영성을 되돌아보며 수련할 필요가 있다.

 

자연의 생명력 속에서 자신의 영성을 새롭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의 삶으로 돌아와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기에 영성은 일상의 삶에서 뿌리내리고 자라날 수밖에 없다. 일상 속에서의 영성적 삶, 영성생활의 일상화를 통해 영성은 더욱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우리의 영성이 일상 속에서 영글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부재의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한다. 곧 하나님은 언제 어디에나 계시다고 교리적으로 믿을지는 몰라도 실제의 삶 속에서는 마치 하나님이 없는 듯 살아가는 삶에 익숙해져 있다. 일상의 영성은 하나님의 현존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는 무의식적으로 일상의 문제들을 신앙과는 분리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이럴 때 우리는 토마스 키팅 신부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나날의 생활 속에서 성령은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스도는 갖가지 모습으로 현존하신다.

 

인간의 비극 속에는 아버지께서 치유의 능력을 발휘하시기 위해 우리가 해주기 바라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복음의 관상적 차원은 이 같은 감수성을 꾸준히 강화시켜준다. 우리가 성령의 영감에 따를 때 예상할 수 없는 결과들이 나타난다. 따라서 손쓰기에 불가능해보이는 상황들 속에서 하나님의 현존과 활동을 감지하는 능력을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의 신비는 제아무리 하찮고 평범한 일들 속에서도 늘 작용하고 있다.

 

일상의 영성은 나날의 삶 속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 영성생활과 관련하여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영역이 신앙생활의 일상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생활의 삶은 또 하나의 중요한 일상 중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주일 예배를 비롯하여 기도, 심방, 찬양, 봉사, 친교 등 교회생활과 관련하여 반복되는 신앙생활의 일상 속에 우리가 추구하는 영성이 스며 있다. 이 모든 신앙행위가 우리의 영성과 만나고 또 영성을 깊게 하는 중요한 수련임을 깨닫고 그 모든 행동을 영과 진정으로 참여해야 한다. 신앙생활과 영성수련은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반복되는 주기도문, 식사기도, 찬양, 성만찬 등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그 하나 하나의 신앙생활 속에 배어 있는 영성수련은 자신의 영성을 위한 영양분이다.

 

위에서 언급한 영성에 대한 오해를 극복하면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영성을 지향하게 된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그리스도인들의 일상적인 삶을 통해 표현되고, 심화되는 생활 속의 영성이어야 한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현존 체험이 반복되고 그 체험을 통해 온전한 영성적 삶이 영위되어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교 영성은 통전적인 영성이어야 한다. 곧 하나님과 인간, 몸과 영혼, 초월과 내재, 개인과 공동체, 성과 속 등의 관계 속에서 조화롭게 꽃피는 총체적인 영성을 추구한다.

 

그리스도교 영성은 모든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성령의 소통하심으로 하나되고 온전함을 추구한다. 또한 그리스도교 영성은 공동체적이고 실천적인 영성으로 발현된다. 영적 여정에서 개인과 공동체는 상호 영적 성숙을 가져오는 동반자다.

 

개인적인 영성은 공동체 안에서 더욱 깊어질 수 있으며 이 상호 만남을 통해 그리스도교 영성은 실천적인 영성으로 표출된다. 우리의 영성은 우리의 삶을 위한 힘이다. 영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행위나 실천은 공허해질 수 있으며, 신앙행위로서의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된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580 목회독서교육 꿈꾸는 도토리 -꿈토리 file 김대철 목사 2011-11-26 2881
2579 영성묵상훈련 믿음"과 "깨달음"의 종교로서의 기독교 류기종 목사 2011-11-24 2290
2578 영성묵상훈련 칼 융(Carl Jung)의 영성 이해 file 류기종 목사 2011-11-24 2870
2577 순전한신앙이야기 기독교는 민족종교가 아니다 황부일목사 2011-11-23 1838
2576 순전한신앙이야기 역리현상 [1] 황부일목사 2011-11-23 2322
2575 순전한신앙이야기 복음이 있는 곳에만 은혜가 있다 황부일목사 2011-11-23 2091
2574 인기감동기타 잘못된 축도’ 이제 그만 버려야 [3] 최용우 2011-11-22 6251
2573 수도관상피정 관상기도의 기본은 무엇인가? 인보라 2011-11-16 1830
2572 영성묵상훈련 영성 형성론 송인설 교수 2011-11-16 1800
2571 영성묵상훈련 영성 생활의 본질 인보라 2011-11-16 1995
2570 영성묵상훈련 기독교 영성신학과 영성의 유형 홍성주 목사 2011-11-16 2054
» 영성묵상훈련 그리스도 영성이란 김진 목사 2011-11-16 1814
2568 목회독서교육 작은 교회 살리기 국제제자 2011-11-14 1862
2567 목회독서교육 가치 창출의 커뮤니케이션 국제제자 2011-11-14 1729
2566 영성묵상훈련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관 류기종 목사 2011-11-09 1895
2565 영성묵상훈련 한국교회 무엇이 문제인가? 류기종 목사 2011-11-09 1892
2564 순전한신앙이야기 교회성장의 원리 황부일목사 2011-11-06 2360
2563 순전한신앙이야기 교회가 산다는 말에 대해 황부일목사 2011-11-06 2072
2562 순전한신앙이야기 교회를 보는 시각 황부일목사 2011-11-06 2049
2561 순전한신앙이야기 짬뽕신앙 황부일목사 2011-11-03 2558
2560 순전한신앙이야기 고용주와 고용인이 되어가는 교역자들 황부일목사 2011-11-03 1886
2559 순전한신앙이야기 적극적인 사고방식은 신앙이 아니다 황부일목사 2011-11-03 2473
2558 목회독서교육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우화로부터 배우는 변화에 관한 교훈 국제제자 2011-11-02 2868
2557 목회독서교육 성숙한 교회의 여섯 가지 전략 국제제자 2011-11-02 1879
2556 목회독서교육 성숙한 교회의 3가지 목표 국제제자 2011-11-02 1896
2555 순전한신앙이야기 찬송은 오직 새 노래여야 한다 황부일목사 2011-10-30 2234
2554 순전한신앙이야기 선민에 대한 잘못된 의식 황부일목사 2011-10-30 2671
2553 순전한신앙이야기 하나님의 법이 통하지 않는 교회들 [2] 황부일목사 2011-10-26 1986
2552 순전한신앙이야기 큰 것만 선호하는 우리들 [1] 황부일목사 2011-10-26 1795
2551 순전한신앙이야기 그리스도의 화평은 세상 평화가 아니다. 황부일목사 2011-10-26 2151
2550 한국교회허와실 어느「대리운전」목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보며.. 아~~한국교회여! 송삼용 목사 2011-10-24 3547
2549 성경적재정원리 예수님의 물질관 이장석 목사 2011-10-08 3102
2548 영성묵상훈련 [빛을따라간사람들] 마더 데레사 file 황상범 목사 2011-10-07 1862
2547 목회독서교육 진 게츠와 함께 하는 21세기 교회 지도력 국제제자 2011-10-05 1829
2546 목회독서교육 동역, 왜 필요한가? 국제제자 2011-10-05 1883

 

 혹 글을 퍼오실 때는 경로 (url)까지 함께 퍼와서 올려 주세요

자료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 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