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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기억을 만드는 삶

마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259 추천 수 0 2011.11.16 22:5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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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4:3-9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춘천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아름다운 기억을 만드는 삶
막 14:3-9

정문수 집사가 드디어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한 교회에서 25년이나 목회를 하면서 참으로 많은 이들을 맞고 떠나보냈습니다. 그때마다 내게 일어나는 생각 하나가 있다면 이겁니다. “산다는 게 뭔가?” 여러분 생각에는 사는 게 뭐 같습니까? 저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죽음’앞에서는 잠깐이라도 저와 같은 물음을 갖지 않나요? 그것은 사람이 목숨이 끊어지고 나면 그 무엇도, 그 어떤 것도, 의미를 잃기 때문이 아니겠어요? 사랑, 명예, 권력, 지식 그 어떤 것 하나 살았을 때와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는 남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 사람에 대한 기억>입니다. 죽은 사람과의 관계가 무엇이었건 간에  기억은 남습니다. 그가 아내라고 해서, 자녀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삶이란, 아름다운 기억을 남기려는 수고다.>>  
  
1)성서 속에서 하나님도 기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이스라엘을 구해 주셨잖아요(출 2:24). 하나님은 또“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낸 그 첫 세대와 맺은 언약을 기억”하신다(레 26:42, 45)고 하셨어요.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계시해 주시면서,“이것이 바로 너희가 대대로 기억할 나의 이름이다”고 하셨죠(출 3:15). 전도서 기자는, 인간이 하는 모든 일들이 부질없는 일들이라고 말한 다음에, 이렇게 말합니다.

“젊을 때에 너는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은사슬이 끊어지고, 금그릇이 부서지고, 샘에서 물 뜨는 물동이가 깨지기 전에, 네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육체가 원래 왔던 흙으로 돌아가고, 숨이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네 창조주를 기억하여라”(전 12:1-7).

<기억>이 있어서 하나님도 존재하고 나도 존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존재론적으로 말해서 그렇다는 거죠. 이런 의미에서 크리스천은 예수를 기억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을 베푸시면서,“너희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하셨지요?(눅 22:19). 이것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성만찬 제정사에서도 나옵니다.“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다.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여라”(고전 11:24-25). <개역>에서는“기념하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말에서 기념이라고 하면 기념비나 기념품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은 어떤 것을 기억나게 하는 물건이죠. 그러나 고전 11장 본문에서 사용된 anamesis라는 단어는 기념보다는 기억에 더 가깝습니다.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과거 일을 오늘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삶을 지금 내가 기억하면서 그 삶에 동참하는 거예요. 그게 그를 기억하는 거죠.

초대교회 교우들은 예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베드로후서 기자는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가 머지않았음을 알고서, 자기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교우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기억하게 하려고 베드로후서를 씁니다(벧후 1:15). 그는 예언서의 말씀과, 주님께서 사도들을 통하여 주신 계명들을 신자들로 하여금 기억하게 하려고 합니다(벧후 3:2). 유다서 기자도 자신이 유다서를 쓰는 목적은 출애굽 사건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을 기억하게 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어요(유 1:15-17).

성경이 모두 예수를 기억하게 하려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죠? 이 모두 <기억>에 있습니다.  

2)본문 말씀은 이러한 것 외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실천해야 할, 자기를 기억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실천적인 모형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막 14:9). 라는 말은 “누군가 너를 기억하게 하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까요?

그 사람은 여자입니다. 어떻게 했나요?  노동자 열 달 품삯에 해당하는 비싼 향유 한 옥합을 가져와서,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 여인이 왜 그렇게 했는지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는 자신의 장례를 예비하여 그 여인이 그렇게 했다고 설명했는데(9절),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그 설명이 그 여인을 방어해 주려고 한 것임을 생각한다면, 본래 그 여자의 뜻은 다른 데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여자는 본문에서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지만 요한복음에서는 마리아로 되어 있습니다(요 12:3). 누가복음에서는 조금 다른 배경이긴 하지만 옥합을 가져와 예수의 발에 향유를 바른 여인을 동네에서 알려진 죄 많은 여인―아마도 창녀일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눅 7:37-38). 이런 구절들을 근거로 하여 이 여인을 일곱 귀신이 나간 막달라 마리아로 보는 이도 있습니다. (찬송가 346장,“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막달라 마리아 본받아서”). 그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또 그가 죄인이든 아니든 간에, 그 여인은 예수를 너무나 존경한 나머지 그를 위하여 뭔가 멋진 일을 해 드리려고 한 것은 분명하죠. 그 여인은 예수께서 곧 고난당하실 것을 알고서, 아직 살아 계실 때에 그에게 최고의 존경을 표하고 싶어서, 향유를 예수께 부은 것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화를 낸 것으로 봐서, 그런 행동은 상식적인 것이나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그것은 어떤‘이벤트’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몇 백만 원이 나가는 값비싼 향유를 한 번에 써버리는, 주위 사람들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함으로써, 예수를 가장 영화롭게 하고 가장 극적으로 높일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오래도록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결혼 예물, 생일 선물 등은 그 값도 값이려니와 어떻게든 ‘나’를 ‘그’에게 <기억>시키려는 최선의 열의가 아닙니까?  

주위 사람들이 그 여자가 공연한 낭비를 했다고 화를 낸 것은, 그 여자의 그런 뜻을 알지 못해서입니다. 예수는 그 여자의 그런 마음을 알기에, 그 여자를 괴롭히지 말라고 하고,“그는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고 칭찬하십니다. 돈이 많이 들어서가 아니라 아주 <특별한 기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가장 큰 축복의 말씀을 해주십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그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그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인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게 됩니다. 아마 이보다 더 큰 칭찬은 없을 것입니다.

당시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자가 기억된다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유명한 여자도 아니고, 오히려 죄인일 수 있고, 쓸데없는 낭비를 하고 있는 여자가, 복음과 함께 기억이 되리라는 것은 매우 파격적인 선언입니다. 예수께서 주신 가장 큰 축복의 말씀은 그 사람이 오래도록 기억이 될 것이라는 선언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축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로 살아야 됩니다.  

3)<내 머리 속의 지우개>라는 영화는 우리에게 기억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들죠. 철수(정우성 분)는 수진(손예진 분)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수진은 희귀한 병에 걸렸습니다. 스물 몇의 젊은 나이에 서서히 치매가 진행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건망증이 심한 정도지만 차츰 심해져서 도시락은 밥만 2개 싸주고 매일 가는 집조차 찾지 못하고 헤맵니다. 나중에는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누구냐고 물어요. 마지막쯤에서 철수가 수진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못 다한 사랑고백을 하려고 하는데, 수진에게 잠시나마 기억이 돌아오게 하고 행복을 느끼게 하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그의 모습이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 기억의 의미를 묻게 됩니다. 그들은 조금도 변함이 없지만, 단지 기억이 사라진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은 남남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은 이제 “나는 기억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로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기억하지 못하면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기억은 죽음마저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가장 무서운 벌은 잊혀 지게 하는 겁니다. 살았을 때 어떠했을지라도 죽은 다음에 기억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정문수 집사가 죽기 직전에 그는 자신을 기억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이들과 아내도 그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기억하지 못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이 누군가에게, 하늘에 기억되지 못한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아무도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 어느 거리에서도 그의 이름을 부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욥 18:17, 24:20; 신 7:24, 29:20, 32:26).

“의인은 칭찬을 받으며 기억되지만, 악인은 그 이름마저 기억에서 사라진다”(잠 10:7).

“주께서 그들을 벌하시어 멸망시키시고, 그들을 모두 기억에서 사라지게 하셨으니, 죽은 그들은 다시 살아나지 못하고, 사망한 그들은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입니다”(사 26:14).

마지막 구절에서도 죽은 사람들의 부활은 그들을 기억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서 일어납니다. 예수께 옥합을 깨뜨린 그 아름다운 일은, 오늘날 그 여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서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 그 여인이 기억되는 곳에서는, 오늘 우리들의 이름도 기억이 될 것입니다.

4)옥합을 깨뜨린 여인은 아름다운 기억을 위해서 낭비를 할 줄 아는 이였습니다. 대개 너무 합리적이고 계산에 밝은 사람은 낭비도 하지 않습니다. 동시에 그는 축제도 환상도 이벤트도 만들 수가 없습니다. 늘 다람쥐 쳇바퀴 같은 삶을 살면서, 기억할 만한 일은 별로 없습니다. 생일에 사람들은 촛불을 켜고 축하할 것입니다. 똑같은 식사라도 촛불 켜고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케이크를 자르고, 꽃을 전해주면서 축하하는 동안에, 그것은 작은 잔치요 축제가 됩니다. 아름다운 기억이 됩니다. 그래서들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던지 아름다운 존재가 되려면 ‘기억이 되는 일’을 해야 합니다.  

<뇌내혁명>이라는 책에서는, 극한의 고행을 견뎌낸 사람은 나중에는 고통 속에서도 기쁨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사람이 극한 상황을 계속 체험하다보면 은연중 기쁨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그 체험을 DNA와 RNA에 주입시키면 다음부터는 쓰라린 체험을 하더라도 뇌내 모르핀을 분비할 수 있게 되고, 고통 속에서도 기쁨을 맛보게 된다는 것입니다(117쪽).

두려움이나 행복에 대한 기억도 비슷하겠죠. 높은 곳에서 아래를 보거나 깊은 강물을 볼 때 소름이 끼치는 것은 추락이나 익사에 대한 두려움의 기억이 우리 몸에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행복한 기억이나 아름다운 기억도 부단히 그것을 반복할 때 우리 몸 세포 속 DNA에까지 기록이 되어 우리를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 것입니다. 우리가 자녀를 교회에서 길러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신앙이나 행복에 대한 교육은 단기간에 학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개인이 오랜 세월 동안, 특별히 어린 시절이나 청소년 시절에, 신앙 공동체 속에서 들어가 살면서, 부단히 반복해서 행복한 기억들을 가질 때 형성되는 것이죠. 아름다운 사람도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자신이 기억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에게서 잊혀지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만찬을 행할 때마다“나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씀하신다.“나를 기억할 때마다 옥합을 깨뜨린 여인도 기억하여라, 그 여인을 기억할 때마다, 너희들도 아름다운 기억의 주인공이 되어라, 그래서 너희의 무의식과 유전자 속에 내가 기록되고 내가 주는 행복이 새겨지게 하여라.”

이런 주님의 명령 따라서, 여러분 모두가, 매일 매일의 삶에서 주님을 기억하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지 않으면 그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기억되지 않는 삶은 사는 게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문수 집사의 가족들에게 정문수 집사가 기억될 때 그는 그의 아버지였고 아내일 수 있습니다. 기억을 잃어버리면 그때부터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 뜻에서 인류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되는 예수그리스도는, 마리아는 <기억>됨으로 인해서 영원을 사는 것입니다. 그들은 <기억>을 위해 죽음을, 아낌없이 소유를 내 놓았습니다. 영원이란 <기억>입니다. 예수나 마리아가 영원한 것은 그들의 아름다운 삶이 영원히 기억되기 때문이죠.

그러니 우리도 아름다운 기억을 만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삶이 반복되어 무의식과 몸에 새겨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는 항상 기억되어야 합니다. 그게 진정으로 큰 축복입니다.  

그런 사람이 진정 <살았던, 죽었으나 산>사람의 삶을 산 것입니다.

*아침 6시에 정문수 집사를 화장터로 올려 보내고 나서 곧 설교 전문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병들어서 고통 당하기 전에 내가 즐겨 벗했던 것은 두 개 밖에 없어요. 하나는 <욕망>이고 다른 하나는 <돈>이었어요. 그 엄청난 소통과 교제의 재료 중에 달랑 두 개 하고만 친하게 지냈던 거예요. 이제 병들어서 죽게된다고 생각하니 이제서야 만물과 친하게 될 것 같아요. 바람, 눈, 꽃, 나무, 하늘과 땅 이런 것들하고 친하게 지내야 하잖아요. 그런 것들하고 벗하고 친구해야 하잖아요. 정작 살아 있던 동안에 친하게 지내야 할 것들을 알지 못했어요. 그게 고맙고 감사해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욕망의 좌절이 가져오는 분노에 눈멀지 않고, 돈에 사로잡힌 이성이 조롱당하지 않는 그를 보면서 나는 감탄했었습니다. 내가 죽을 때도 이럴 수 있을까?  나는 지금 다시 생각합니다. 죽으면 아무것도 아닌 생을 살면서(여기서 '아무것도 아니다'는 말은 생물학적인 몸을 두고 하는 말이며, 그 속에서 일어나는 욕망과 욕망의 행위들을 일컫는 것이다)나는 만물과 소통하여 친교하고 있는가?

이 아침에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덜컹덜컹 창문이 흔들리는 것을 보아 바람이 놀러 온 것 같습니다.
떠나 보냈으니 다시 맞아 들여야 할 까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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