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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네이버 카페 <순전한 신앙이야기> http://cafe.naver.com/ghkdqndl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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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이 있는 곳에만 은혜가 있다
부흥회나 특별 집회를 한다는 광고나 내걸려 있는 현수막을 볼 것 같으면 항상 공통적으로 강조되며 써져 있는 용어가 있는데 그것은 “은혜충만, 말씀충만, 성령충만”이라는 글씨입니다. 참으로 다 좋은 용어인데 실제는 그렇지가 못합니다.
사도바울은 아직 어린아이 같은 초보 신앙에 있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 구나”라고 지적했습니다.(고후 11:4)
여기서 다른 예수는 언약되고 성취된 구속주가 되신 진리의 그리스도가 아니라 인간기대의 성취자요 인간문제의 능력의 해결사로서 저마다 좋게 만들어진 예수를 말하며 또한 다른 영은 진리의 성령이 아닌 세상의 영으로서 거짓 영이거나 만들어진 고조시키는 분위기적 요란하고 헛된 영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다른 복음은 복음을 사람들의 기대나 욕구에 맞추어 변질시킨 것으로서 갈라디아서 1:6-8절에 보면 다른 복음은 없는데 어떤 잘못된 자들이 사람들을 요란케 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하는 것으로서 갈라디아 교회가 쉽게 쫓고 빠져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오늘날 현대 교회들이 자기 욕망적 성공과 그 성공의 기준으로서 외형적 부흥의 팽창을 위해 대다수의 교인들이 기대하고 원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재미있게 설교하거나 예배를 즐겁고 열정적인 분위기로 만들어 가는데 그것이 곧 교회가 조성하고 만드는 인위적 은혜요 또한 교인들이 공감적으로 느끼는 감성적 은혜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은 실제 은혜도 모르면서 은혜를 찾아 수없이 수평이동을 합니다. 현대교회들은 그들을 끌어들이려고 수단방법 가리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재정과 인력이 넉넉하고 많은 큰 교회일수록 훨씬 유리합니다.
요즘 목회자들의 공감적 얘기를 들어보면 교회가 은혜적인 분위기를 어떻게 얼마큼 만드느냐에 부흥의 성공여부가 달려 있다고 합니다. 목회자들이 주로 찾아다니며 얻으려는 세미나의 주요 내용들이 다 거기에 있습니다. 교인들이 눈으로나 귀로나 감정의 느낌으로나 전율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은혜라는 분위기나 요소들을 안팎으로 얼마나 잘 만들 수 있는가 하는 기술적인 요소들을 성공자는 말하고 그것을 답습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기독교내 흐르는 은혜는 뜨겁고 즐겁고 좋은 축제적인 예배에 있게 되었고 기술적인 시스템이 은혜를 좌우하는 세태가 되었고 개그적인 설교나 기교의 변사같은 웅변술의 설교가 은혜의 말씀이 되었고 답답함과 스트레스를 확 풀어준다는 요란하고 열정적인 밴드가 곁들인 교회 음악이 은혜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교인들은 더 새롭게 차리고 새로운 분위가나 자기 기대나 기분을 충족시켜주는 은혜의 곳을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은혜에 대한 원리>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일수록 참된 은혜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다수의 사람들이 찾는 은혜는 자기 기대적이고 인간적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7:13-14절에 보면 좁은문과 크고 넓은문이 있는데 좁은문은 길이 협착하고 좁아 찾는 이가 적으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넓은문의 길은 크고 들어가는 자가 많다 했으나 거기는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금의 넓은길, 크고 맘에 드는길이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참 생명의 길이 있는 좁은문은 은혜의 길로 보지 않습니다. 대제적으로 사람들의 기대는 요란하고 좋고 기대가 되는곳에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이사야 선지자가 증거 했던 것처럼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아의 아들을 기뻐하나니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곬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치리라”(사8:6-8)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조용히 예루살렘 내부에서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렸다는 것은 보이지 않게 오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보지 못하고 세상적으로 대단하고 큰 세력의 역사로 넘쳐 창일하는 강대한 앗수르를 좋아하고 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참 은혜는 사람이 기대하고 찾고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 은혜는 하나님께서 찾아와 주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인간 기대의 은혜와는 전혀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은혜란 말은 하나님께서 거져 베풀어 주시는 혜택으로서 엄밀히 보면 일반적 은혜와 특별한 은혜로 나누입니다. 일반적 은혜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 만물을 모든 사람들이 다 혜택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이나 불의한자나 악인이나 선한자나 모두 같이 비를 주시고 해를 비취게 하신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하심에 있습니다.(마5:45) 그러나 특별한 은혜는 구원의 은혜로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만세전에 하나님 자녀로 선택하시고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2:5)고 증거 했습니다. 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고 증거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대로 하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딤후 1:9)
사도요한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참되고 풍성한 은혜가 이루어지고 실현되었음을 증거했습니다. 보면 성육신하신 예수그리스도에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했고 (요 1:14)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것이라”고 했습니다.(요 1:17) 이것이 바로 교회에 언약되고 이루어진 구속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풍성한 은혜는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은 것이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엡 1:7) 그러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의 은혜요 인간이 조성하고 기대하는 대로 느끼는 감동이나 기분이 아닌 것입니다. 은혜는 오직 구원을 이룸과 일치되는 유익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참된 은혜다>
사도베드로는 자신이 기도하여 보낸 복음의 서신이야 말로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위에 굳게 서라고 강조합니다.(벧전 5:12)
사도바울도 골로새교회에 증거하기를 “복음이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가 그것을 들어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열매를 맺으며 자란다”고 했습니다. ( 골 1:6)
그렇습니다. 복음에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이 들어있고 또한 그 언약대로 하나님의 은혜가 구원으로 역사되는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 하나님께서 뱀을 저주하시면서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는데(창 3:15) 이 말씀이 바로 은혜의 언약이요 또한 여자의 후손으로 뱀의 머리를 밟을 자로 오실 그리스도 안에서 죄로 뱀(사탄)의 소속에서 원수가 될 위치로 벗어나게 될 구원이 있을 것을 밝히는 최초의 복음인 것입니다.
로마서 1:16-17절에 보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했고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의가 곧 복음인데 그 의는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구원을 예정하신 것이요 그 비밀을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계시하셨고 그 계시의 말씀인 구원의 복음을 통해서 교회로 작정된 자들은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언약이요, 또한 복음만이 그 구원의 언약대로 구원이 성취되는 은혜의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이 없으면 구원의 은혜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복음이 있는 곳에만 구원의 참된 은혜가 있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복음이 있는 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또한 그런 교회에만 복음이 있어 계속 교회 구원을 이루며 그리스도의 증인된 모습으로 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는 교인들은 오히려 다른 복음을 찾고 거기에 은혜가 있다고 요란 법석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해 너희가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을 잘도 받는다고 증거한 것입니다. (고후 11:4)
구원의 복음을 들으면서도 은혜가 안된 다는 사람들이 있고 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도 복음은 살아서 역사되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 자체가 참 은혜기 때문에 교회된 자라면 심령의 밭에 뿌려지고 있는 것이며 싹이 나고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있는 곳에는 복음 외에 그 어떤 것도 필요 없습니다. 요란하고 시끄럽게 할 필요도 없고 시시각각으로 무엇을 도입하고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을 바꾸고 감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복음만이 교회구원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으로 교회구원을 악속 하셨고 그 복음으로 교회된 자들을 부르시고 (살후 2:14) 복음을 들음으로 믿음 주시고 (롬 10:17) 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나님나라를 이을 후사가 되고 함께 한몸된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엡 3:6)
복음에만 교회구원의 은혜가 약속되어 그런 복음이 있는곳에만 그 은혜가 성취됨을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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