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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을 위하여 순간을

고린도전 김동현 목사............... 조회 수 1196 추천 수 0 2011.11.29 14:33:39
.........
성경본문 : 고전1:4-9 
설교자 : 김동현 목사 
참고 :  

< Nov. 27, 2011 라스베가스 복된교회 / 대림절 첫 번째 주일 / 1부 예배 >

< Nov. 27, 2011 / This message is for first Lord's Day of Advent. >


고전 1 Corinthians 1:4-9

『 영원을 위하여 순간을 』, 『 Moment For The Eternality 』


일본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원숭이 잡는 방법이 있습니다. 동네 아이들이 입구는 좁고 밑이 커다란 호루박이라는 것을 이용합니다. 아이들은 그 호루박 안에 쌀을 한웅큼 집어넣고는 원숭이들이 잘 다니는 길목에 놓아 둡니다. 쌀을 좋아하는 원숭이들은 냄새를 맡고 다가와 호루박 안에 손을 넣고 쌀을 한웅큼 집습니다. 바로 그때에 원숭이를 잡기 위하여 어린이들이 덮칩니다. 원숭이가 붙잡히지 않고 도망가기 위해서는 호루박에서 손을 빼면 됩니다. 손을 뺄려면 쌀을 쥐고 있던 손을 펴기만 하면 되는데, 그저 쌀을 꼭 쥐고서는 펴질 않습니다. 결국 원숭이는 아이들에게 붙잡히고 맙니다.


원숭이와 관련한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자의 고사성어에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삼모사라는 말의 뜻은 아침에 셋, 저녁에 넷이라는 뜻입니다. 옛날 중국 송나라 때에 생겨난 말입니다. 저공이라는 사람이 원숭이를 좋아하여 집에서 몇 마리 키웠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원숭이가 늘어 갔습니다. 그래서 원숭이들에게 충분한 먹이를 대줄 수 없어서 저공은 원숭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부터 열매를 아침에는 3개, 저녁에는 4개 주겠으니 그렇게 알아라." 그러자 원숭이들이 열매를 적게 준다고 데모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공은 말을 바꾸어 "아침에는 4개, 저녁에는 3개 주겠다."고 하니까 원숭이들은 좋아라고 하면서 데모를 중지했다는 얘기입니다. 이 '조삼모사'라는 말은 지금 이 순간만을 생각하고 나중은 생각하지 않는 미련한 사람을 뜻합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이익만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더 큰 이익을 놓치는 사람을 뜻합니다.


1980년대 초, 조국, 대한민국에서는 컬러 TV 방송이 시작되었고, 컬러 TV가 시판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에 국내 광고사에 길이 남게 된 불후의 명 광고, 곧 명 카피가 탄생했는데,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라는 문구입니다. 1980년부터 금성(Goldstar)전자 , 곧 지금의 LG전자는 모든 광고 앞에 이 슬로건을 내세웠습니다.


원숭이와 관련된 앞의 두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일순간의 선택이 일생을 좌우한다는 것, 바로 코 앞의 순간의 선택으로 일생을 송두리째 날려버리는 것을 교훈해 준다 하겠습니다.


딜레마란 말이 있습니다. 선택해야 할 길이 두 가지 중 하나로 정해져 있는데, 그 어느 쪽을 선택해도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곤란한 상황. "궁지", "진퇴양난"이란 뜻의 말입니다. 찰스 휴멜이라고 하는 사람은 “우리들이 삶에서 만나는 온갖 딜레마들은 시간과 물질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일의 우선순위를 잘못 선택함에서 온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셀 수 없는 허다한 사람들이 삶의 우선순위를 무시하고 살아갑니다. 어리석은 원숭이처럼 당장 눈에 보이는 이익 때문에 가장 중요한 바를 놓치고, 단 한번 뿐인 일생(一生)과 일생 이후의 영원(令媛)을 그르치기까지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 땅에 태어나 우여곡절(迂餘曲折)이 많은 삶을 살았는데, 그 끝을 그르치게 되었다면 그 얼마나 원통한 일입니까? 그토록 많은 우여곡절 뒤의 마지막은 그래도 형언할 수 없는 위로와 평안한 안식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함께 봉독했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써 보낸 편지 중 문안 인사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항상 감사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고린도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본문의 5절 이하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하나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한 가운데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케 된 것’을 가리킵니다. 7절 전반부에서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있었던 하나님의 은혜를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는 것’으로 표현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키는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다는 말’이나,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다는 말’은 같은 말을 약간 다르게 표현한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어떻게 그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9절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함에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우리는 오늘부터 목회자인 제가 독특한 목회 철학들, 독특한 목적들을 표방하는 ‘사랑방’모임을 시작하게 됩니다. 사랑방 모임에는 여러 목적들이 있습니다. ‘(1) 성경과 복음과 신앙과 기도를 나눈다. (2) 한 가족으로서 사랑하고 섬긴다. (3) 올바른 신앙이 삶의 구심점이 되고, 올바른 신앙을 통하여 복받는 삶을 열어간다. (4) 불신앙의 사람을 사랑하고 섬기며 전도하여 참여시킨다. (5) 교회와 성도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알아간다.’ 등 다섯 가지입니다. 그러한 다섯 가지 목적은 이미 오래전부터 교회에 유행처럼 번져왔던 제자훈련과 가정교회의 장점들만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 다섯 가지를 한 가지로 뭉뚱그린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제함이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지만 신앙생활의 문제점, 신앙생활의 위험성이 어디에 있습니까? 신앙생활을 삶에 있어서 하나의 악세사리로 취급하는데 있습니다. 삶에 하나의 악세사리화 된 신앙생활은 시들은 신앙생활이요, 잠들어 있는 신앙생활, 틀에 박힌 박제화 된 신앙생활, 무기력하고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입니다.


우리는 주일 뿐만 아니라, 사랑방 모임, 그리고 예수님과 매일 매일 교제하는 Q.T. 곧 경건의 시간들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코 앞에 닥친 순간들에 매이므로 영원을 소홀히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코 앞에 닥친 순간들을 붙태워 우리의 삶에 영원한 것을 추구하고 이룰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함께 봉독했던 본문에서 중요한 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했다는 것’,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다는 것’, 즉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받은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로 나타난 결과입니다.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입니다.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하게 되었다는 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영원한 것을 위하여 순간 순간의 삶을 불태웠다는 사실, 즉 가장 중요한 바를 이루기 위하여 자신들이 아름답게 변화되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생각과 인격, 삶의 가치관과 목적, 말과 행실이 경건하고 숭고하고 아름답게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고(至高)의 아름다움을 이룩한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랬으니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가 견고케 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몇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가장 아래층에 있는 것으로서 기본적인 생존 욕구로서의 본능과 물질이 있고, 그 위에 지식이 있습니다. 지식 위에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 지식과 지혜를 이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성이라고 하는 지식과 지혜 위에 뭐가 있습니까? 신앙이라고 하는 영성이 있습니다. 이성의 힘으로까지는 풀리지 않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풀리지 않는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바로 신앙이라고 하는 영성에 있습니다. 이성까지는 임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이라고 하는 영성은 영원한 것입니다.


지난 23일 조국의 대한민국에서 한 비극적인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이 지난 3월 광진구 구의동 자신의 집에서 흉기로 엄마를 찔러 숨지게 한 뒤, 약 8개월 동안 안방에 사체를 방치한 사건입니다. 시신이 썩어 악취가 나자 공업용 본드로 문틈을 밀폐시키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경찰 조사 결과, A군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성적표를 위조했다가 엄마가 학부모 회의에 가게 되면 들통날까 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A군은 반에서 3등 이내에 들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습니다. 하지만 엄마 박 씨는 '전국 1등을 해야 한다. 서울대 법대를 가야 한다.'고 강요하면서 잠을 못 자게 하고 폭행을 가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엄마가 살해되기 전날에도 10시간 동안 아들에게 엎드려 뻗쳐를 시키고 잠을 못 자게 한 채 골프채, 야구방망이 등으로 폭행을 가했다고 합니다. 엄마를 죽여 8개월간을 방치한 그 아들이 도대체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산다는 것이 날마다 악몽이지 않겠습니까? 그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어디 지식과 학벌, 문벌과 재물로 다 해결되는 것입니까? 영성이 없고, 인간이 바로서지 않으면 그 모든 것들이 허무한 것들이 되고 맙니다.


미국 하버드 대학교의 로버트 베로 교수는 기독교와 경제의 상관 관계를 장장 20년이란 긴긴 세월 동안 연구했습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배가 부흥할수록 경제도 그만큼 왕성해진다. 예배에 참석하는 신자가 늘어날수록 경제도 동반 성장한다.” 그가 내린 결론은 한국교회와 한국의 경제 발전상을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한국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하던 80년대 한국 경제도 놀라운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세계적인 역사학자로 기독교회사(The History of Christian Church)를 기록한 필립 샤프(P. Schaff) 박사는 예수의 위대성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돈(金力)이나 아무런 무기도 없이 알렉산더 대왕이나 시저나 모하메드나 나폴레옹이 정복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정복했다. 그는 배운 과학이나 지식도 없이 모든 위대한 학자들이 인류역사에 남긴 빛들을 총 망라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빛을 비추었다. 그는 유명한 웅변학교를 나온 것도 아닌데, 전무후무한 생명의 말씀을 전해주었고, 세상의 그 어떤 시인이나 문학가가 남기려고 해도 남길 수 없는 엄청난 결과를 남겨 놓았다. 그는 한 줄의 글을 쓰신 적이 없으나, 고대와 현재를 통털어 모든 위인들의 설교나 웅변, 사상이나 학술이나 예술작품들, 그리고 시들과 노래들의 주제를 제공해 주었다. 그는 왕들과 왕궁에서 태어난 귀공자도 아닌 저 무명의 아주 작은 고을 유대땅 베들레헴, 그것도 처량하기 짝이 없는 마굿간 구유에서 태어나, 극악무도한 사람이 받는 십자가의 형을 받아 죽었는데도, 지금까지 세계의 운명을 조정하고 있으며, 지구상에 거하는 ⅓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신령한 왕국을 다스리고 계신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처럼 인류 역사에 오고 간 허다한 사람들에게 실로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던 분입니다. 역사학자들은 인류 역사에서 줄잡아 5천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 때문에 순교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에 의하면 앞으로도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 때문에 일어날 순교자의 수가 더 남아있다고 했습니다(계 6: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류의 역사에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준 예수님에게 우리의 생을 걸만하지 않겠습니까?


이태리의 대표적인 고딕 건축물로 일명 밀라노 대성당이라 불려지는 두오모 대성당을 들 수 있습니다. 고딕 양식 건물로서 완성하는데 100년이 넘게 걸렸고, 4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성당입니다. 밀라노 대성당을 말할 때에 그 웅장함이 유명하지만, 성당을 들어가는 입구의 세 개의 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첫째 문은 붉은 장미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는데, 그 아래에 "우리를 기쁘게 하는 그 모든 것들은 잠시 뿐이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둘째 문에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사람이 서 있고 그 밑에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그 모든 것들도 잠시 뿐이다."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 문에는 "오직 영원한 것이 중요할 뿐이다."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모든 즐거움이나 고통은 다 잠깐, 곧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지나가고 맙니다. 중요한 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이든 영원한 것을 붙잡기 전에는, 즉 이 땅의 잠시 잠간의 것, 임시적인 것들로는 결단코 참된 평안과 행복을 얻을 수 없음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다윗 왕의 아들인 솔로몬 왕의 경우, 한 가지 가장 중요한 핵심, 영원한 것을 구했더니 구하지 않은 세계 제일이요 최고의 위치 되게 하시고, 부귀와 영광, 그리고 장수까지 모든 것을 다 주셨다 했습니다.


너무도 잘아는 말씀인 마 6:33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것은 순간의 향락과 이익을 위하여 영원한 것을 소멸하지 말고, 영원한 것을 위하여 순간을 불태우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7절 후반부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했습니다. 또 본문의 8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러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하게 하시리라.”고 격려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영원한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서 경건하고 숭고하고 아름답게 변화된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영원한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영원한 삶을 종말론적 신앙을 갖고서 이루어 나갔다는 것입니다. 즉 멀게는 예수님의 재림, 가깝게는 개인의 종말을 염두하고서 이루어 나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하나님께서 현시대의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순간과 영원 사이에 놓여있는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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