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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짓기

누가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3075 추천 수 0 2011.11.29 15: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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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1:23-28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춘천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영혼의 집짓기
눅11:23-28
                    *당회와 구역회를 동시에 하는 주일입니다.
                     시간과 상황을 고려한 설교입니다.
                     그러나 준비하는 자신에게 더욱 은혜가 됩니다.
                     '내 영혼의 집은 어떤가' 물음이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습니다.


지난 저녁에 도청 앞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 오랫동안 서 있던 시립문화관이 폭삭 주저앉은 것을 보았습니다. 다른 용도로 쓰려고 허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는 순간 괜히 허망한 마음이 드는 겁니다. 아마 눈에 보였던 건물이 사라진 것에 대한 허망일 겁니다. 좀 더 자세히 그 속마음을 들여다본다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불안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일생을 [내 집 마련]을 위해 산다고 합니다만, 언젠가는 허물어지는 집 하나에 삶의 전부를 걸고 사는 인생은 얼마나 허망한건가요?  

요즘 사람들, 우리나라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인간이 이 우주에 출현한 이후 늘 그렇게 어리석게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시대의 민중들과, 아직도 그 허망한 것에 삶의 목적을 두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낡으면 헐어 버릴 수 있는 건물, 포크레인 한 번 찍으면 푹 무너지는 그런 집, 바람에 날아가고, 물에 떠내려가는 그런 집’을 지어 보았다면 이제는 새로운 집 하나를 지어 보라는 겁니다. 그 집을 예수님은 오늘 ‘영혼의 집'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결국 [영혼의 집]을 짓는 것 아닌가요?

자, 그럼 어떻게 영혼의 집을 짓는 가요? 영혼의 집이란 어떤 건가요?
24절에 보면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간다.’는 말씀도 있고, ‘나갔던 귀신이 더 많은 귀신을 끌고 다시 들어온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게 영혼의 집을 짓는 기본적인 토대라면 이것은 아무래도 시멘트나 돌로 만든 그런 건물이 아니라 ‘사람’을 말하는 것 같죠? 사람에게서 귀신이 나가고 들어간다고 하는 것이니 그것은 다시 ‘어떤 마음을 기준으로 하는 행동 또는 삶의 행위’인 것 같습니다. ‘귀신이 나갔다’는 것은 지금까지 품고 살던 가치나 마음이 바뀌었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다시 더 많은 귀신이 들어왔다는 말은   바꾼 대로 살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겠어요?

귀신은 악령입니다. 악령은 생명을 살리는 영이 아니라 죽이는 영입니다.  이기심에서 부터 살인에 이르기까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직간접의 모든 가치나 행위, 삶이나 가르침은 모두 사탄의 일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반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악령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죽이는 영이 아니라 살리는 영은 무엇입니까? 그렇습니다. 성령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나기 전, 주님을 모시기 전에는 사탄(생명을 해치는)의 지배를 받던 존재였습니다. 남이 잘못되는 것을 기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건 우리 속에 사탄의 영, 즉 악령이 우리를 주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의 옛 사람들은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이고, 공격적인, 하나님의 나라와 뜻에 반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 실존에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탄이 쫓겨나고 성령(살리는 영)께서 우리를 주관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 성령께서 우리 중심에 내주하시며 우리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새사람이 되게 하신 겁니다. 이런 실존적 역사가 일어나는 자가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구원의 역사 중에 쫓겨난 사탄이 결코 쉽게 포기하지를 않는다는 겁니다. 사탄은 쫓겨난 그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순순히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늘 24절 말씀처럼 자꾸 돌아옵니다.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자꾸 컴백을 하는 겁니다. 자꾸 와서 틈새를 엿보는 겁니다. 우리 인간의 속성이 그렇지 않습니까? 착한 순간도 있고 악해지는 때도 있지 않습니까? 이것 때문에 괴로워 해보지 않았습니까? 그런 겁니다. 그런데 악령이 돌아와 보니 집이 비어 있는 겁니다. 성령께서 그 안에 존재하시질 않는 겁니다. 아니 있어도 가득하지 않는 겁니다. 그랬을 때에 저가 가서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 휘저어 놓음으로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그 안에 채워져 있어야 할 것이 채워져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 안에 채워진 것이 누룩처럼 활동하지 않고 죽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새 주인을 온전히 모시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혼의 집]이란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그가 믿는 예수의 가치관과 인격으로 삶을 사는가 하는 겁니다. 그게 [영혼의 집]을 짓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예수께서 말하는 무너지지 않는 영원한 집인 겁니다. 그럼, 지금 우리 영혼의 집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무엇으로 그 집이 채워져 있습니까? 어떤 모습으로 단장되어 있습니까? 다시 말해 어떻게 살고 있느냐 그 말입니다. 어떻게 살았느냐 그 말입니다.

제가 얼마 전부터 세수를 하고 스킨이라는 걸 바릅니다. 전에는 왠지 사치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바르면 뭐가 얼굴에 나서 쓰질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선물로 받았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내가 향기를 발해야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한 번 써 보자’했습니다. 그래서 스킨을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 향을 뿌려놓고 그 향을 맡으면서 늘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 나는 그리스도의 향기다. 이 향기만큼 좋은 삶의 향기를 이웃에게, 만나는 사람들에게 뿌려야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자니 더욱 제게 이런 예쁜 마음이 드는겁니다.

내가 신는 신발의 이름만큼 내 발걸음이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울까. 내가 차는 시계의 값어치만큼 나의 시간 관리는 하나님 앞에 멋진 것일까. 내가 사용하는 화장품의 브랜드만큼 나의 영혼 다듬기는 하나님 앞에 어여쁜 것일까.
내가 끼고 있는 반지의 변치 않음만큼 나의 하나님을 향한 약속은 신실한 것일까. 내가 타는 차만큼 내 삶은 자랑스러운가?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 영혼의 집에 삶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영혼의 집을 세운다는 게 뭘까요? 내 속에 살리는 마음, 위하는 마음, 도우려는 마음, 높여 주려는 마음, 덮어 주려는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바로 성령의 마음입니다. 이 마음이 가득하면 그는 더 이상 악령이 주인 노릇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단단히 주인이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마음을 따라 살면 더 이상 빈집이 아닙니다. 이게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존재가’ 되는, 영혼의 집을 아름답게 가꾸는 겁니다. 그게 바로 [성령 충만] 이요 [말씀 충만] 입니다. 성령이 충만하지 않다는 말은 남을 헐뜯고, 깎아 내리고, 나쁘게 말하고, 칭찬하지 않고, 자기를 높이고, 무시하고,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의 일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계속 그렇게 사는 사람이 ‘빈집’의 사람입니다. 그러면 누구든 언제든 사탄이 침입을 합니다. 그 사람은 영혼의 집이 허물어진 사람입니다. 어떻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집, 영혼의 집은 어떻습니까?

'I will be back', 그건 사탄이 늘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을 헝클어뜨려놓고 엉망진창이 되게 합니다. 한번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오늘의 나의 삶이 헝클어져 있습니까? 어지럽습니까? 그건 우리 영혼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하고 말씀으로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별 수 없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주님은 무리 중의 한 여자가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라고 외칠 때에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대꾸하십니다. 여인의 외침은 외모에 초점을 둔 것이었습니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다.' 그러나 주님의 외침은 내면에 초점을 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영혼이 채워져 그 말씀을 지키며 사는 자, 그가 복이 있다.' 관점이 다르고 초점이 다릅니다. 우리의 삶의 관점과 초점은 어디에 맞춰져 있는 겁니까? 육체입니까, 영혼입니까?

교우 여러분! 관심사를 좀 바꾸어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아니 여러분 마음에 들어 있는 내용물들을 좀 바꾸지 않으시렵니까? 삶의 메뉴얼을 바꾸지 않으시겠어요?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읽는데 이런 내용이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정직’이란 순례자가 여관 주인 가이오에게 수수께끼를 냅니다.
“더 많이 버릴수록 더 가지게 되는 건 누굴까요?” 그러자 여관주인 가이오가 대답했습니다.
“가진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사람입니다. 그는 준만큼, 아니 그 열 배는 더 갖게 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 ‘가이오의 말이 맞다’ 는 조사가 나왔습니다. 미국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가족 수와 인종, 교육수준, 종교 등 조건이 똑같은 두 가정의 수입을 비교했답니다. 그랬더니 연간 10만원을 더 많이 기부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가정보다 연 수입이 40만원이 더 많았답니다. 기부할수록, 다시 말해 나눌수록 돈이 더 굴러 들어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돈보다 더 큰 마력은 바로 세상이 주는 짧은 기쁨보다도 위로부터 오는 진정한 희락이 아니겠어요? 이런 사람이 영혼의 집을 짓는 사람 아니겠어요? 영혼의 인테리어가 잘 된 사람 아닙니까? 이런 집 짓자고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거 아닙니까?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되자는 거 아닙니까? 이런 사람을 교회 일꾼으로 뽑자는 거 아닙니까? 이걸 하자는 겁니다. 그러니 다른 걸 말해서도 안 되고, 다른 걸 하자고 조르지도 말아야 합니다.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다 헛될 뿐'입니다. 영혼이 아름다운 사람만 영원히 남습니다. 영혼의 집짓는 일에 일생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가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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