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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짓는 사람

창세기 허태수 목사............... 조회 수 3332 추천 수 0 2011.11.29 15: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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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창35:18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춘천성암교회 http://sungamch.net 

복을 짓는 사람
창35:18
                *오후 3시는 광염교회 구역회입니다.
                  2시부터 하는 예배에 증언 할 하나님의 말씀인데, 우리교회 주일 2부 설교로 해야겠다는
                 내면의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어루만지시는 성령의 손길에 맡기렵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비유는 현재적인 삶의 형편을 말하기 위해서 사용되기도 하지만, 장차 있을 하나님의 징벌에도 적용됩니다. 예수는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겁니다.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지 않으면 그 나무는 찍혀 불에 태워질 것이다(마 7:18-19).” 이런 말씀들이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을 말하는 것 아닙니까? 결국 잘못 심으면 심판이 되고 잘 심으면 좋은 열매를 거둔다는 것이죠. 잘 심으라는 뜻이 있습니다. 인생도 그가 심는 것으로 결정이 난다는 의미죠.  

저는 지금 한 교회에 26년 째 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코 흘리게 초등학교 학생이 자라서 지금은 권사가 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의 어머니 아버지가 되는 장로 권사는 늙어서 돌아가시거나 은퇴를 했습니다. 말하자면 한 인간의 오르락 내리락한 삶을 한눈에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가족과 한 인간의 삶을 전체적으로 보면서 느끼는 게 뭔지 아세요? 그렇습니다. “인생은 심는 대로 거둔다.”입니다. 저는 오늘 성서 속에서 잘 심어서 좋은 열매를 거둔 한 사람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야곱입니다. 야곱에 대한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지혜롭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의 복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또 반면에 사기꾼이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도록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가 어떤 경우의 사람으로 평가 되던지 이 한 가지는 객관적일 수 있습니다. <야곱은 요행이나 행운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스스로 복을 만들어가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누구는 안그러냐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을 위해 공부도 하고 애도 쓰고 투자도 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수고가 과연 복을 짓기에 합당한지는 모를 일입니다.

야곱은 복을 쟁취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점은 그가 이름을 잘 짓고 잘 바꾸는 데서 나타납니다. 창조 이야기는, 하나님이 모든 짐승들을 만드시고 최초의 사람에게로 이끌어 오셨을 때,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이 그대로 이름이 되었다고 하죠(창2:19-20). 사람이 다른 짐승과 구별이 되는 것은 이름을 짓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름을 짓는 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할까요? 사물이나 사건을 규정하는 행동입니다. 이걸 명심하셔야 합니다. 자기 앞에 놓여진, 다시 말해, 자기에게 일어난 사건을 어떤 의미로 받아 들이냐는 것이 바로 이름붙이기입니다. 그것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집니다. 회심 이후의 바울,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구약의 이 사람 야곱, 욥, 애굽으로 팔려 가야만 했던 요셉 등등은 자기 인생에 일어난 일들과 사물에 이름을 잘 붙인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승리자들입니다. 반면에 패배한 사람들은 모두 이름을 잘못 붙인 사람들입니다. 부정적으로 받아들여 나쁜 이름을 붙인 사람들은 가룟인 유다처럼 모두 중간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김춘수 시인은 그의 [꽃]이라는시l에서 이름을 짓는 의미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사물과 사건의 이름을 짓는 다는 것은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일어나는 생활의 일들에 대해 의미를 붙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에이 빌어먹을’  ‘나쁜 놈’ ‘죽일 놈’ ‘싫어요’ ‘ 감사해요’ ‘좋아요’ ‘행복해요’ 이 모두가 이름 붙이기 아닙니까? ‘하겠습니다’ ‘못해요’ ‘감사해요’ 이런 거 모두 자기 삶의 사건이나 감정에 이름붙이기 아닙니까? 새로 태어난 아이나 새로 발견된 사물의 이름을 짓는 것 외에는,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주로 우리에게 닥친 상황을 규정하고 이름 짓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이런 점에서 탁월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팥죽 그런 거 보다 말입니다.    

@야곱의 이름 짓기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행동입니다.

“산모는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자기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하였다. 그러나 그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을 베냐민 이라고 하였다.”  

야곱이 그토록 사랑한 라헬은 이렇게 아이를 낳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라헬은 마지막 순간에 몸도 마음도 약해졌던지 자기가 낳은 아들의 이름을 [베노니]라고 지었지요. 그것은 ‘내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하다가 늦게서야 첫아들을 낳았는데, 어찌나 기뻤는지 이름을 요셉이라 지었습니다. 그것은 ‘더하다’는 뜻입니다. 아들을 하나 더 달라는 뜻이었죠. 그러다가 둘째를 낳았는데, 그 어린 것을 두고 자신은 이세상과 이별을 하게 되었으니 그 슬픔이 얼마나 컸을까요?  베노니라는 이름에는 이런 어미의 비통함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겁니다. 그러면, 그토록 사랑하는 아내가 마지막 유언처럼 이름을 남겼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이면 어쩔 겁니까? 아마 그대로 썼을 겁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베노니]라고 지은 이름을 [베냐민]으로 바꿉니다. 그것은 ‘오른 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오른 손은 어떤 손입니까? 강한 손입니다. 오른쪽 방향은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알려져 있던 시절입니다. 이제 인생을 갓 시작하는 아들에게 어머니의 슬픔이 담긴 이름을 주는 대신 씩씩하고 희망찬 이름을 준 것입니다. 이런 야곱의 행동은 그저 아들의 이름을 잘 짓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그것은 자기에게 닥친 상황을 규정하는 능력이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힘이었습니다. 이것이 야곱이 늘상 그의 삶을 통해 심는 복의 씨앗이었습니다.    

@야곱의 이름 짓기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하나님을 보는 신앙의 행동입니다.

야곱은 에서를 피해 도망가는 길이었습니다. 심신이 얼마나 지쳐 있을지는 도망쳐 본 사람은 다 압니다. 어느 날 너무 피곤하고 지쳐서 돌을 베고 깜박 잠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꿈에서 천사들을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의 앞날은 불투명하고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한 상태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깟 꿈이야 피곤해서 꾼 정도로 여길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현실적인 고민에 빠질 수도 있었습니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야곱은 그 순간,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지도 모르는데도 그 꿈을 하나님의 임재로 받아 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주께서 분명히 이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몰랐구나.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곳은 이제부터 하나님의 집이다. 나에겐 그렇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 이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곳의 이름을 [벧엘]이라고 했다는 거죠. 그것은 여러분이  다 아시듯이 ‘하나님의 집’이라는 듯 아닙니까?(창2:17-19). 하나님의 집이 어디 화려한 왕궁에 있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허허벌판에 돌무더기 몇 개 있는 곳이지만 야곱은 그곳을 하나님의 집으로 이름 짓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도 자기 삶의 나쁜 형편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알고 그곳을 하나님의 집으로 삼을 때, 그는 전능자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야곱이 라반을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올 때를 봅시다. 그때도 그의 문제는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 아닙니까? 그때까지 그의 삶은 걱정으로 가득했습니다. 형 에서와 화해를 하고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아니면 형과 싸워서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에서를 만나기 전날 밤, 야곱은 식구들과 자기에게 딸린 모든 소유를 개울을 건너 먼저 보내고 뒤에 홀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더니 야곱을 붙잡는 게 아닙니까? 놀란 야곱은 그를 이겨 보려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동이 트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얼마나 끈질기게 정체불명의 사람을 붙들고 놓지 않았던지 결국 그 사람은 야곱의 엉덩이뼈를 후려쳐서 떼어 놓았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은 그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아마 ‘죽이려면 죽여보라’는 심보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그가 야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 지독한 놈. 네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 그러니 이제 너의 이름은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하고 말 한 다음에 야곱을 축복하고 떠났습니다.

본래 야곱이라는 이름은 ‘발뒤꿈치를 잡다’즉 ‘속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야곱이 쌍둥이로 태어나면서 형의 발뒤꿈치를 잡고 나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제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이라는 의미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긴 하지만 야곱이 씨름하여 얻은 이름이 아닙니까? 결국 신앙이란, 이렇게 각자 하나님과 씨름하여 생명이 되는 이름 하나씩을 얻어야 비로소 시작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야곱의 문제가 거기서 끝이 났습니까? 아닙니다. 내일 아침이면 형 에서와 전투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엉덩이뼈는 다쳐서 절뚝거리지, 그야말로 문제는 더 커져있습니다. 그 몸으로 어떻게 싸운단 말입니까? 그것은 야곱에게 더 큰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마음도 불안한데 몸까지 부실한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을 보세요. 그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뵈옵고도 목숨이 이렇게 붙어 있구나”하면서, 그 곳의 이름을 이번에는 [브니엘]이라고 합니다(창32:20_). 바로 이런 이름을 짓는 능력이 야곱이 복을 짓는 비결입니다. 그것은 작명술이 아닙니다. 신앙입니다. 그가 브니엘에서 승리한 이상 그 다음 날 에서와의 싸움에서는 이미 이긴 것이나 다름이 없는 거 아닙니까?

자, 지금까지 야곱의 삶을 이야기 했습니다. 이것이 성서의 맥입니다. 아니 성서에 나오는 승리하는 사람들의 삶은 대부분 이런 공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 야곱이라는 한 사람이 보여주는 신앙의 결론은 ‘하나님 앞에서 풀려야 사람들 앞에서도 풀린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야곱은 이런 삶의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험하고 고달픈 인생 가운데서도 베냐민, 베델, 브니엘 이런 이름들을 지어 낼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절망 가운데서도 복을 만들어가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사람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고집, 자기 경험, 수다스러운 것과 싸우지 말고 거룩한 것과 죽도록 싸워서 마침내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거 하자고 우리가 모여서 듣고 의논하고 순종하고 충성하는 거 아닙니까? 야곱의 인생과 자신의 한 해,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비교해 보세요. 내 인생 복을 받을 수 있게 잘 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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