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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빌립보서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767 추천 수 0 2011.11.29 15: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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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빌3:12-21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춘천성암교회 http://sungamch.net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빌3:12-21

* 2008년 1월 13일 주일 예배 설교 원고 전체입니다.
  한비야의 책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제목으로 땄습니다.
  사고의 깊이와 주시는 말씀의 양분을 위해 그녀의 책을 읽을것을,
  이상은의 노래를 들으실 것을 권면합니다.
  말씀을 꼭꼭 씹어 먹는다는 의미에서 필요합니다.
  유독 '사마리아인의 길'을 좋아 하셨던 예수를 참고 하시지요.
  누구로 인해서가 아니라, 그대 자신으로 인해 하늘의 복이 있으시길!

<한비야>는 오지 탐험가였습니다. 그녀는 그녀만의 세계를 확보하고 경험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세계적인 사회봉사 활동가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그녀는 그녀 자신만을 위한 여행을 다니지 않습니다. 그녀는 지도를 갖고 다녔던 오지 여행을 통하여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사람이 사는 이유라는 최종적인 결론을 얻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이유가 ‘자기보다 조금 못한 처지의 사람들을 돕는 것’ 이라는 것을 여행을 통해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그녀는 종교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도우러 세계의 여러 나라를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전에 그녀가 그 자신을 위해 여행을 할 때는 지도를 들고, 지도에 있는 마을을 향해갔지만, 지금은 지도에 없는, 사람들이 갖고 사는 욕망의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은, 지도에 표시할 필요도 없는 가치 없다고 여겨지는 곳으로 갑니다. 마치 예수께서 사마리아로 가는 길을 즐기셨듯이, 한비야는 지금 지도에는 없는 동네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책을 통해 말합니다. <지도 밖으로 나가라!> 이 말이 목사인 제게는 좀 더 구체적으로 들립니다. <지도에는 없는 마을>을 사모하라!        

오늘의 본문 12절에서 바울 사도는, “내가 이것을 이미 얻은 것도 아니요, 또 이미 목표점에 이른 것도 아니다”고 고백합니다. 바로 앞 절에 보면 그가 이르려고 한 목표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는 것, 그리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에 이르는 것이죠. 이것은 바울 사도의 가르침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의 한결같은 소망도 이러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 같은 분도 그런 경지에 아직 이르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가 하는 일은 단 한 가지, 곧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고 온몸을 앞으로 내밀어 목표를 향하여 달려가는 것이라고 합니다(13절). 이것은 관람석에 있는 고관이나 관객의 모습이 아니라 전력질주 하는 운동선수의 모습이죠. 어떤 자리에 오른 사람이라기보다는 후보자가 되어 겸손히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당시 빌립보 교회의 신자들 가운데 열광적인 신앙에 경도된 사람들은 이미 자기들이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고 자만하고 자신들의 육신의 자랑과 업적을 내세우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것에 대응해서, 신앙은 지금 여기의 현실과 세상적인 것에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목표를 향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눈에 보이는 것이나 세상적인 것에 집착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바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바탕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라고 하였습니다(히 11:1). 눈에 보이는 것은 누구나 믿을 수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되지 않습니다.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시고 그의 후손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을 때, 그것은 세상의 것으로 보장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약속 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고 미지의 세계를 향해서 나아갔다. 성서는 이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이미 모든 것을 성취하였다고 하는 교만한 신자들에 대해서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이다. 그들은 배를 자기네의 하나님으로 삼고, 자기네의 수치를 영광으로 삼고 땅의 것만을 생각한다.”고 엄중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18-19절).

그리고 20절에서 바울은“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합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에 따르면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로마 시민권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시민권이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로마 시민권이 그의 재판의 권리 등등을 보호해 줄지는 몰라도 진정으로 그의 생명을 지켜주고 변호하고 인도할 시민권은 하늘의 시민권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들은 이 세상의 시민권만 얻으려고 애쓰지만 사실은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하늘 시민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 시민권>이 있어야 세상 시민권도 의미를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크리스천들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서의 영주권은 얻으려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늘의 시민권은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저 교회 출석하고 직분 맡고 일정 헌금을 하면 적금이나 보험처럼 나중에 하늘 시민권이 보장되는 양 생각들을 합니다. 그러나 하늘의 시민권은 이 세상의 주민등록을 얻는 방식으로 얻을 수는 없습니다.

바울은 우리 시민권이 하늘에 있다는 말씀에 이어서, “우리는 그 곳으로부터 구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20b). 우리가 하늘에 시민권이 있다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산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지만 종말에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그분이 주신 사명을 다하면서 그분 앞에 서게 될 날을 생각하면서 늘 오실 구세주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깨어 기다리는 종의 비유>(마 24:45-51)에서, 주인이 부재 시에 이 세상만 바라보고 방탕하게 즐기고 하인들을 구타하는 악한 종은 생각하지도 않은 시각에 주인이 오면 심판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주인이 부재 시에도 주인이 오실 것을 기다리면서 늘 주인이 앞에 있는 것처럼 산 일꾼은 크게 칭찬을 받고 주인의 전 재산을 맡게 됩니다.

바울은 바로 그런 선한 일꾼처럼 사는 것이, 목표를 향해서 앞으로 달려가는 삶이요,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그 분 앞에서 <하늘 시민권>을 간직하고 사는 삶이라고 합니다.

‘담다디’라는 대중가요를 부른 가수가 있습니다. 껑충하니 키가 크고, 다른 연예인들과는 다른 그의 삶 때문에 나는 그녀의 노래를 잘 따라하지도 못하면서 그녀를 좋아합니다. 얼마 전에 들은 그녀의 노래 가운데 <지도에 없는 마을>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동화 같은 제목일까 싶었는데, 그런 것과는 조금 다른 뜻이었습니다.

조그만 마을 돌담길 아이들 웃으며 놀고/담장 아래 작은 꽃 평화로운 낮잠을 자고 있는/바람이 이끄는 대로 구름이 가는 길대로/나는야 꿈 따라 헤맸지만/가장 아름다운 풍경 그대와 가고 싶은 곳/조그만 마을 오솔길/그대에게 물으니 말 해줬지/아무런 욕심 없이 그렇게 살고 싶어/그렇게 걷고 싶어 그대와/잃었던 거라 생각해도 마음에 행선지만 바꾸면 돼/어디에나 있는 곳 어린 시절 함께 살던 곳/바람이 노래해주고 별들이 그림 그리지/지도에 없는 조그만 마을

<지도에 없는 마을>은 욕심 없이 그대와 사랑하면서 사는 곳, 동심이 있고 바람과 별들이 있는 곳입니다. 어쩌면 이상은이 그린 그 마을은 바울 사도가 말하는 하늘의 시민권과 많이 닮았는지 모릅니다. 본래 이 구절에서‘시민권’(politeuma)라는 단어는‘나라’‘국가’라는 뜻도 됩니다. 즉 우리는 이 세상 국가와 다른 하늘 국가를 갖는다는 뜻도 됩니다. 로마의 식민지배세력과 그에 아부하면서 사는 온갖 추한 권력들, 그리고 그런 체제하에서 기득권을 향유하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이 되어 자기들의 배를 자기네 하나님으로 삼고 땅의 것만 추구하는 자들을 향해서, 바울 사도는 우리의 시민권은 그렇게 종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시민으로 속해 있는 나라는 <지도에 있는 나라>가 아니라 <지도에 없는 나라>가 아닙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자꾸 지도에 나와 있는 마을에서만 살려고 합니다. 건축물 대장에 등록된 집만 집인 줄 압니다. 아닙니다. 바울의 목표는 <지도에 없는 마을>에 사는 것입니다. 이게 신앙인들의 최종 목표라는 것입니다.    

<지도에 없는 마을>은 지도에는 없지만 <지도에 있는 마을>을 의미 있게 합니다. 이 땅에 살지만, 저기를 향해가는 사람들의 삶은 아주 의미가 있습니다. 죽음을 겁내지 않고, 끝없이 용서하며, 넘치게 사랑할 수 있습니다. 여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이 세상 그 어떤 지도 에도 없는 마을에 살’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닙니까?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의 소망에 대해 가르치면서,“우리가 이 세상만을 생각하고 그리스도께 소망을 걸었으면, 우리는 모든 사람 가운데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이다”고 합니다(고전 15:19). 바울을 비롯하여 초대교회 신자들은, 이미 이룩한 것, 이 세상 것만 가지고 판단하면 로마의 귀족들이나 관리들에 비해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고 아직 오지 않은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았기 때문에 그런 처지에서도 오히려 로마 귀족들을 능가하는 기쁨이 있었고, 죽음을 이기는 승리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울 당시에 헬레니즘 세계에서는 무엇이 영원한 것이냐는 물음이 있었습니다. 육체는 덧없지만 영혼은 영원하다는 사고도 그리스철학에 있었습니다. 신령한 지식만이 영원하다는 영지주의도 있었습니다. 열광적으로 영에 취해 방언하거나 예언하는 것만이 유일한 현실이라고 보는 열광적 신자들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예언도 사라지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사라지지만,“사랑은 없어지지 않는다”(고전 13:8)고 했지요. 이것은 불멸하는 것, 영원한 것에 대한 사고에 혁명을 가져온 말입니다. 한비야가 개인적인 차원의 오지여행의 즐거움에서, 고통당하고 배고픈 사람들을 찾아나서는 일과 같은 전환입니다. 바울도 한비야 처럼 말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가운데서 으뜸은 사랑이다”고 말입니다(13절).

그리스철학자들이 영혼만 영원하다고 할 때, 바울은 그것이 영이든 육이든 이 세상의 것으로서 영원한 것은 없으며, 사랑만이 영원하다고 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흔히“남는 건 사진뿐이야”하고 허탈하게 말하는데, 바울은“남는 건 사랑뿐이야”하고 따뜻한 가슴으로 말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기업들은 이 세상의 지도와 주소록에서 확고한 지점을 확보하고 등록하려고 애를 씁니다. 교회도 이 세상에 건물을 지을 때는 부동산도 매입하고 등기도 하고 그럽니다. 하지만 진정한 교회의 터는 그것이 다가 아닐 것입니다. 교회는 그 터를 <지도에 없는 마을> 위에 견고하게 세우고, 크리스천은 <하늘 시민권>을 확실하게 간직해야 합니다. 교회마다 무슨 동 몇 번지라는 주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과연 교회의 실체일까요? 그 교회에 누가 와도 거기에 아무도 없고 불이 꺼져 있으면 그것은 건물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추운 겨울에 무슨 강좌를 하면서 노란불을 켜 놓고 교우들이 모여 기도하고 성경을 공부할 때, 그곳은 정겨운 하나님의 집이 됩니다. 멀리서 가까이서 형제자매들이 와서 마음과 마음이 모여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주일마다 모여 친교를 나누고, 그 동네의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고, 음식을 나누고, 의지할 이 없는 노인들을 찾아볼 때, 사람들은 그곳을 그저 건물이 아니라 주님의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교회이며, 그것은 지도에도 없고 주소도 없는 마을입니다. 하늘에 있고 우리들의 마음에 있는 곳입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는 여인>은 아름답습니다. 그렇다면 <지도에 없는 마을>을 향해 오늘을 사랑으로 사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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