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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순전한 신앙 이야기<http://cafe.naver.com/ghkdqndl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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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부터인가 사람들의 관심의 제일이 건강으로 두드러지면서 “건강”이라는 용어가 잘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그러면 그렇게 되는 것처럼 매우 기대적으로 쓰고 있습니다. “건강한 가정”, “건강한 기업”, “건강한 사회”, “건강한 나라”등 그렇게 구현되기를 목적 하면서 사람들의 이슈의 용어가 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보면 실제로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간절한 이슈가 되는것입니다.
세상 사회에서 관심의 초점으로 쓰는 용어가 되어서인지 몰라도 언제 부터인가 기독교 교계에서도 “건강한 교회”라는 말이 나오고 지금은 유행되어 공통적으로 쓰고 있음을 봅니다. 예전에는 부흥한교회, 성장한교회라고 쓰고 목적했는데 이제는 건강한 교회라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요즘 보면 거의 다 건강한 교회를 목적삼고 열심히들 추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라는 용어에는 언듯 듣기에는 그럴싸하고 공감적으로 보이지만 건강한 교회라는 용어에는 인본적인 냄새가 짙습니다. 이것은 순전히 이상적인 교회관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복음적인 교회관의 입장에서 볼 때 건강한 교회는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건강한 교회는 우리가 기대하는 인간적 교회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우선 건강이라는 용어를 보면 “몸에 아무런 탈이 없이 튼튼함, 육체와 정신이 정상적으로 활동하는 상태, 건전하고 강직함”을 뜻하고 있음을 봅니다. 세상적이나 인간적으로는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건강하다는 말은 성경적이거나 신앙적 용어로는 합당치 않습니다. 그것은 체육적이고 의학적이고 인본적인 용어에 적합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기독교계에서 유행적으로 건강한 교회란 말이 사용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만큼 현대 교회가 세속화 되어 가는 증거이고 인본적인 것이 보편적으로 교회에 작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열린예배와 셀목회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새들백 교회에 릭 웨렌은 새들백 교회는 건강한 교회라 했고 그의 저서에서 “목적이 이끌어가는 교회”로 가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라 했고 또 “당신의 교회는 목적이 이끌어 가는 교회가 됨으로서 더 강해지고 더 건강해 진다”고 강조했습니다. 릭 웨렌이 말하는 목적이 이끌어 가는 교회는 순전히 인본주의입니다. 모든 것이 안팎으로, 대내외적으로 물심양면으로 다 잘되어 가고 자기들 목적한 기대대로 그렇게 성장하는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교회들이 새들백교회 같은 성장을 꿈꾸면서 그가 말한 건강한 교회가 현대교회들이 추구하는 교회관이 된 것입니다. 우리들이 원하고 좋아하는 교회로 잘 세워져 가는 교회를 그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건강이라는 말이 10회정도 나옵니다. 모두 육체의 회복이나 튼튼한 상태에 대해 사용했습니다. 강건이라는 말도 15회정도 나옵니다. 주로 육신의 건강을 표현하고 있으나 사도 바울은 신앙과 연계시켜 속사람의 강건케됨과(엡3:16)“깨어 믿음에 굳게서 강건하라”는 것과(고전16:13) 또한 “너희가 주안에서 그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고”(엡6:10)라 했고 사도 요한은 그 유명해진 구절에서 “네 영혼이 잘됨같이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했습니다(요3서2절) 그러니까 성경에서의 진정한 건강이나 강건은 우리가 기대하는 바와는 전혀 의미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자 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 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9:12-13)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율범의 기준에 하자가 없고 모든 유대 종교의식에 합당한 것을 다 갖추고 유대사회에서 인정받는 자로서 합당히 생활하는 건강한 유대종교인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 저들에게는 그리스도가 진정으로 필요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교회들이 그렇습니다. 모두가 보기에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어디 한쪽 부족함이나 결여됨이 없이 크고 확고하고 시스템이나 운영상 프로그램이 잘 돌아가는 그래서 교계에서, 사회에서 인정해주는 교회로 선 것이 건강한 교회인 것입니다. 이런 교회에는 주인 되시는 주님이 필요 없습니다. 그들은 그저 주의 이름으로 저들이 원하고 자랑하는 건강한 교회만 만들면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런 건강한 교회는 교회된 모습이 없습니다. 또한 저들끼리 건강한 교회라고 자랑하는 교회치고 그리스도가 전부 되시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건강한 교회라는 것은 저들끼리 기대하는바 대로 여러 조건을 공감적으로나 특별하게 세우고 만들어 가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중 라오디게아 교회가 좋은 예인데 그들은 우리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는 교회라 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현대교회들 중에 대체적으로 모든 것을 갖춘 자타가 인정하는 교회들이 건강한 교회라고 한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보실 때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오히려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고도 부끄러움조차 모르는 병든 교회였던 것입니다.(계3:17) 그래도 요즘 교회들은 그렇게 사람들이 인정하는 건강한 교회를 세워 보려고 열정들인데 모두 교회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인터넷에 올려진 저의 글을 보신 어떤 분이 전화를 해 왔습니다. 그 분은 어떻게 여겼는지 우리교회를 건강한 교회라면서 나름대로 건강한 교회를 몇을 정하고 배우려는 중심에서 탐방해 보려 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응답하기를 저희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아니라 했습니다. 그 분은 인터넷 글을 보고 좀 건전하고 나름대로 괜찮다고 여겨져서 건강한 교회라 칭한 것 같은데 저희 교회는 그렇지가 않다고 했습니다. 요즘 교회들이 공감하며 목적하며 이미 그렇게 모델로 세워진 교회들도 있지만(?) 그런 건강한 교회를 기준 한다면 저희교회는 턱없이 빈약하고 부족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건강한 교회가 되어야 겠다는 목적도 가져 본적이 없습니다.
교회는 우리가 기준하고 목적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대부분이 교회를 목회자 자기 중심의 기대에 따라 큰 교회를 세우는 것으로서, 모든 것을 큰 규모와 거기에 걸맞는 조직과 시스템을 갖추는 것으로 발전하는 것을 건강한 교회로 여기고있거나 아니면 다수의 이상을 따라 인류의 건강과 평화와 복지를 구현해 가며 또는 사회와 민족과 이상적인 기독교 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건강한 교회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일부 신복음주의 자들은 초대교회가 건강한 교회였다면서 그들처럼 예수님 말씀에 순종 하면서 서로 나눔의 공동체를 잘 이루어 가는 것이 건강한 교회라면서 지구촌 모든 교회가 이같은 교회로 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어째든 이들도 건전하고 튼튼하고 정상적인 모습을 건강한 교회의 조건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초대교회는 우리가 기대하고 기준하는 그런 조건을 제대로 갖춘 교회가 아닙니다. 그들은 번듯한 예배당도 없었고 소그룹 운영의 조직도 없었고 어떤 상태의 시스템도 없었고 사회적으로 영향을 주고 알리는 그 어떤 사업이나 행사나 프로그램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조건적으로는 부족하고 열악했지만 그들은 주께서 언약하신대로 그대로 성취되어 가는 순전한 교회였던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이루는 조건이 있었다면 그것은 한 가지 복음이요 복음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복음대로 복음이 이루어 가는 교회 그런 교회가 참된 교회요 진리위에 굳게 선 교회지만 우리가 볼때는 절대로 건강한 교회가 아닙니다. 실제로의 형편적 모습은 늘 개척교회 같을 수도 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환난과 궁핍중에 형편이 연약하고 어려웠어도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라고 말씀했습니다. (계 2:9)
현대교회들이 바라고 세워가는 건강한 교회들은 유형적으로 많이 보이는 것 같지만 그럴수록 복음적인 교회는 요원한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복음적인 교회를 원치 않습니다. 그저 복음을 이용하여 저들이 원하고 좋아하는 교회로 만들려 합니다. 에스겔의 증거를 보면 당시 이스라엘이 주의 성전에 대해 그들 세력의 영광이요 너희 눈의 기쁨이요 너희 마음에 아낌이 되었다고 했는데(겔24:21) 바로 이런 중심으로 오늘날 다수가 원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라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성전을 무너뜨리신 것처럼 우리가 이상하는 보이는 차원의 건강한 교회는 없는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를 주창한 새들벡 교회 딕 워렌은 목적이 이끄는 교회가 될 때 교회는 더욱 강해져가고 더욱 성장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목적은 그들이 원하고 기대하는 크고 모든 것을 잘 갖춘 교회로서의 성공인데, 그들은 교회의 본질을 너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주께서 목적하신대로 세워가시는 거룩한 교회는 리더쉽이 잘났다는 자들이나 반면에 부족하고 연약한 인간들이나 모두 세울 수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 인간들이 목적하고 세워가는 교회는 언약된 주의 교회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들이 좋은대로 저들의 기대와 영광을 위해 모여 주의 이름을 부르며 구하는 억지에 불과하고, 주의 이름으로 불법을 행하며 선지자노릇하고 권세를 행세하며 그 무리들을 주도하고 욕망을 채우며 성공주의자들로서 함께 가칭 교회를 이룰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공하여 건강한 교회를 이루었다는 다수가 알아주고 부러워하는 현대 교회들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된 모습이 안보이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처럼 우리는 망하고 그리스도만 흥해야 합니다.(요3:30) 이런 모습에서 볼 때 우리는 건강하다고 느끼는 자 없으며 또한 그런 식으로 건강한 무리가 되길 원하는 자도 없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질그릇이라고 했습니다. 깨지기 쉽고 깨지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질그릇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보배를 가졌다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생명의 능력인 것입니다. 이것은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한 것이라 증거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해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거꾸러뜨림을 당하지 않는다했습니다.(고후 4:7-9) 또한 바울은 계속 증거하기를 우리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케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케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라고 했습니다.(고후 6:9-10) 이것이 바로 우리는 건강치 못하고 약하나 그리스도 안에서 강한 교회의 진실인 것입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교회 중 서머나교회에 대해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하셨고(계 2:9) 반대로 우리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며 오늘날 건강한 교회들처럼 말하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교회라 지적하신 것입니다.(계 3:17)
참으로 굳게 서가는 교회는 주께서 그 분의 의대로 세워가시는 교회요 그 복음대로 믿음을 가지고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모습의 교회인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부흥하고 건강하고 세계적이고 성공하고 하는 것들과는 전혀 상관없이 순전히 교회 구원을 이루어가는 교회인 것입니다.
오늘날 건강한 교회로 목적하고 유행처럼 공감하는 교회관은 주로 외형중심이거나 아니면 자기들의 의를 세워감에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건강한 교회는 복음적인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구원이 이루어져가는 교회가 아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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