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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고후8: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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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기쁨과 은혜
2006-02-01
Ⅰ. 본문의 배경
본문의 내용은 사도바울이 연보에 대하여 고린도 교회에 편지한 내용이다. 그 당시 예루살렘에 큰 흉년이 들었다. 그러한 어려운 상황에 닥쳐 있는 지체들을 돕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헌신을 하도록, 마게도냐 교회의 섬김의 예를 들어서 말하고 있다.
Ⅱ. 마게도냐의 곤경과 헌신
A. 곤경
마게도냐 교회는 수많은 환란과 시련을 당한 교회였다. 또한 가난한 교회이기도 했다. 본문내용에서 바울이 ‘극한 가난’으로 표현할 정도로 말이다. 반면 고린도 교회는 무역이 활발하고 문화가 번창했던 도시적 기반을 바탕으로 한 물질적으로 풍부했던 교회였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의 중심이 없었다. 이러한 고린도 교회에 바울은 물질로만이 아닌 마음의 연보를 하도록 당부했던 것이다. 이에 마게도냐 교회의 예로써, 환난과 시련가운데서도 마음을 드렸던 바를 강조한 것이다.
B. 헌신
하나님 앞에 헌신한다는 것은, 총체적인 생활이다. 단순히 일시적인 많은 헌금이 진정한 그것이 될 수는 없다. 단숨에 헌신을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닌 것이다. 자신의 상황과 관계없이 늘 섬김의 자세로 살아가던 이들이, 고난의 때가 닥쳐도 주저 않고 헌신할 수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 교회의 헌신을 가르켜서, ‘풍성한 연보’였다고 언급하고 있다. 곧, 넘치도록 헌신한 교회였던 것이다. 환경적으로 풍족하여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곤경가운데 있어도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기만 하면, 그 여건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이 같은 향기로운 섬김을 할 수 있음을 우리는 이 교회를 통하여 볼 수 있는 것이다.
가난해도 하나님을 섬길 수는 있으나, 가난해야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더불어 시련을 당한 사람이어야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성립되지 않는다. 고로, 이 마게도냐 교회가 오히려 그러한 어려운 상황가운데 있었기에 그같이 넘치게 섬길 수 있었다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교회는 바울의 마음가운데 극한 고난의 교회로 깊이 박혀 있을 만큼 힘든 교회였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넘치도록 헌신했던 그들은 얼마나 하나님을 향한 기쁨이 컸기에, 그리도 훌륭히 섬길 수 있었던 것인가? 이 질문에 먼저 답하기 전에, 우리는 보통 이런 상황이 있을 수 있는가를 의심하기 마련이다. 그것은 다음의 신자의 영적세계에서의 기쁨과 슬픔의 공존으로서 설명되어질 수 있다.
한 인간 안에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기란 쉽지가 않다. 대부분의 경우 커다란 기쁨이 슬픔을 밀어내거나, 아님 그 반대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에서는 이 두 가지가 공존한다는 것이 놀라운 신비이다. 한번 지난 은혜의 날들을 회고해 보자. 이 세상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 못할, 이상한 공식이 성립함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주님으로 인해 기쁨이 충만하던 때는, 동시에 많은 눈물을 흘리던 슬픈 때이기도 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주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고 놀라워 기쁨을 느끼며, 한편으론 값없이 그것을 받는 하나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슬픔이 동시에 밀려왔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슬픔과 기쁨의 공존이다. 이것이 신자 안에 있는 것이다.
교회가 많은 모욕과 시련을 당할 때, 그 교회에 접붙여진 신자들은 그 고난에 함께 참여한다. 극한 환란과 시련, 내적인 시험과 물질적 가난으로 많은 고통을 받으나, 그들은 넘치는 기쁨을 소유하였다. 그러한 극한 고난가운데 살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이겨내는 방법을 터득해 나갔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교회를 운영해 가시는 지혜이다. 신자에게도 또한 그러하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에게 있어, 훈련을 위하여 징계하시어 연단으로 이끄시기도 하지만, 잘못을 보복하시는 경우는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으시기에 많은 연단을 하시는 교회가 있는 것이다. 마게도냐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던 교회였지만, 고린도 교회보다 훨씬 가난한 가운데 많은 시련을 받았다. 그러나 그런 혹한 고난으로서, 정금을 만들어 내시듯 그 교회를 이끌어 가셨던 것이다.
축복이란 편안히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목적대로 활발히 그 교회와 신자를 이끌어 가실 때, 그 것이 복이고 기쁨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물질적으로 풍부했으나 그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로 향하지 못했던 고린도교회는 이 같이 시련을 당하였으나 오히려 늘 기쁨이 넘쳤던 마케도냐 교회를 배워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그토록 어려운 상황가운데에서도 넘치도록 섬겼던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Ⅲ. 기쁨의 근원: 은혜
이에 대해 사도바울은, 그 기쁨의 근원이 ‘은혜’였다고 말하고 있다. 마게도냐가 그렇게 넘치는 헌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으로부터의 은혜로 가득 채워졌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는, 세상적으로 많은 복을 받을 때와 비례하는 것이 아니다. 영혼을 일깨어 신령한 기쁨을 부어주실 때에야 그러한 것이다.
마게도냐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끊임없이 부어주셨는데, 이것은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의 감화인 것이다. 이처럼,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격이 있다. 더불어 거기에는 그럴 만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자기 인식이 있다. 그 가운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다는 갈망이 생겨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할 바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은혜를 주시어, 우리를 감화시켜 주셔서,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는 가운데 살게 하실 때, 이 교회와 같은 섬김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환경과 처지에 희망을 걸지 말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언제쯤 내가 그렇게 될까만 바라고 있지 말자. 언제든지 자기를 낮추고 진실하게 은혜를 구하면, 하나님 그것을 부어주신다. 극한 가난, 시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싶다는데, 부어주시지 않을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의 은혜로서 기쁨을 달라고, 그래서 그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다운 맛을 내면서 살겠다고 진심으로 매달릴 때, 하나님은 분명 응답하신다.
핵심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매우 가난하고 환란과 시험을 많이 만난 이름도 없는 교회가운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부어주시어 기쁨이 넘치는 교회가 되게 하셨다. 그래서 풍족한 교회가 할 수 없는 위대한 일을 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셨다. 우리도 역시 형편과 처지가 마게도냐 교회와 같다고 하더라도 소망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의 궁핍함은 그리스도안의 부요를 맛보게 하시기 위함이며, 또한 고난과 시련은 하나님을 영광을 보게 하기 위함이다. 이 같은 넘치는 은혜의 삶을 살아서, 고난과 가난도 물리치며 기쁨의 삶을 이어가는 성도들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200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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