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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삼하21: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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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구미정 교수 |
참고 : | 2011.10.2 주일 |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우리시대의 뜨거운 돌
(사무엘하 21장 8-14절)
2011년 10월 2일 주일예배 말씀증거
구미정 교수(숭실대학교 외래교수)
히브리 성서에서 사울 왕과 다윗 사이의 알력관계는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사무엘상 9장 21절의 보도에 의하면, 사울은 사사 시대 말기에 지파 간 전쟁으로 멸문지화를 당할 뻔한 베냐민 지파 출신인데, 베냐민 지파에 속한 모든 가문 중에서도 가장 보잘 것 없는 집안 출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무엘상 10장 27절에 따르면, 사울이 왕으로 추대되는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이런 사람이 어떻게 우리 왕이냐” 하면서 여전히 업신여기고, 예물도 바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 사울에 비하면 다윗은 소위 정계에 입문하면서부터 인기가 하늘을 찔렀습니다. 블레셋의 골리앗 장군을 물맷돌 하나로 물리친 일은 두고두고 백성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습니다. 사무엘상 16장 18절의 보도로 미루어 보건대, 다윗은 기본적으로 용감한 군인인데다가 수금도 잘 타지, 외모도 멋있지, 말도 잘하지, 정말 민심을 확 사로잡은 것 같습니다.
본래 사사 정치가 막을 내리고 왕정을 택할 당시 사무엘의 생각은 이랬습니다. 왕은 자신의 왕위를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왕은 하나님 앞에 철저히 순종하며 겸손히 백성을 섬기는 자여야 합니다. 그러니 왕위는 당연히 세습되어서는 안 되고, 예언자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그때그때 선택해야 합니다.
사울의 불안 혹은 불만이 거기에 있었을 겁니다. 명색이 왕인데, 이스라엘 전 지파를 통솔하는 통일왕국의 초대 왕인데, 맏아들 요나단에게 왕위를 물려줄 수가 없습니다. 전쟁에 나갈 때도 사무엘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사무엘이 없이는 아무것도 단독으로 국무하지 못합니다. 이런 제한적 왕권이 사울은 못내 섭섭했을 겁니다. 그런데 다윗부터는 왕위에 대한 이해가 달라집니다. 다윗은 왕위를 자신의 아들에게 세습했습니다. 예언자는 조언만 할 뿐, 결정은 왕이 스스로 합니다. 본격적인 왕정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다윗 정권 말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3년 동안 이스라엘에 흉년이 들어, 다윗이 하나님께 그 곡절을 여쭈니,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는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많이 죽여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친절하게도 21장 2절에 기브온 사람들의 정체도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본래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지만, 이스라엘에 동화되어 함께 살던 족속이라는 겁니다. 그 배경이 여호수아 11장 18-19절입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의 모든 왕들과 싸운 지가 오랫동안이라. 기브온 주민 히위 족속 외에는 이스라엘 자손과 화친한 성읍이 하나도 없고 이스라엘 자손이 싸워서 다 점령하였으니.” 그러니까 가나안 원주민 가운데 기브온 주민들만 이스라엘 자손과 화친했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사울은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을 편파적으로 사랑한 나머지’ 기브온 백성들과의 화친 규례를 깨고 그들을 죽였답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기브온 땅에서 전쟁을 한 것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입니다. 사울이 죽고,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족속의 왕으로 추대되니까, 사울의 군사령관을 지냈던 아브넬 장군이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데리고 마하나임으로 가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추대했습니다(삼하 2:8-11). 그리고는 요압 장군이 이끄는 다윗의 부하들과 전투를 벌인 곳이 바로 기브온입니다. 그러니까 기브온 족속을 많이 죽인 건 정확히는 사울이라기보다는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부하들과 다윗의 부하들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은데, 성서 기자는 어쩐 일인지 사울만 콕 집어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 봅니다. 어쨌든 흉년의 원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죄 때문이라고 하니까, 다윗이 기브온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상해주면 좋겠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대답하기를, “사울의 자손 가운데서 남자 일곱 명을 우리에게 넘겨 달라”(6절)는 것이지요. 이스보셋은 이미 제거된 상황입니다. 9장 1절 이하에 보니까, 사울의 자손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는 자식이라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밖에 없다고 합니다. 므비보셋은 어릴 때 블레셋이 처들어와 전쟁하던 와중에 유모가 데리고 도망가다가 떨어뜨려서 두 다리를 저는 형편이라고 나옵니다. 기본적으로 싸움을 잘해야 왕노릇도 잘한다고 믿어지던 당시 상황에서는 도저히 왕이 될 재목이 아닌 거지요. 그래서 다윗은 므비보셋을 거두기로 합니다. 요나단과의 옛 정도 있고 하니까요.
그럼 이제 사울의 자손 가운데 남아 있던 사람이 또 누구란 말입니까? 므비보셋을 빼놓고는 직계 적통이 다 제거된 마당에 다윗이 생각해 낸 게 바로 사울의 후궁 리스바의 아들 둘과 사울의 큰 딸 메랍의 아들 다섯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건 아예 사울 집안의 씨를 말려버리겠다는 속셈입니다.
다윗은 제 손에 피 안 묻히고 자기 권력 유지에 걸림돌이 되는 사람들을 숙청하는 데 일가견이 있는 왕입니다. 사울의 딸 메랍이 아드리엘이라는 남자와 결혼하여 낳은 아들들도 원래는 다윗한테 눈엣가시였을 텐데, 정작 죽이는 건 다윗이 아니라 기브온 사람들이 아닙니까?
사실 저의 관심은 리스바입니다. 리스바는 사울의 후궁으로, 알모니와 므비보셋이라는 두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일곱 구의 시신이 쪼르르 나무에 달려 있는 아래 이 여인이 앉아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 중 다섯 구의 시신은 자기 아들이 아닙니다. 사울이 정실부인 아히노암에게서 낳은 딸 메랍의 아들들이지요. 요컨대 다섯 구의 시신은 리스바에게 손자뻘입니다.
이들이 처형당한 것은 “곡식을 거두기 시작할 무렵, 곧 보리를 거두기 시작할 무렵”(9절)이라고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곡식 추수를 두 번 한다고 합니다. 보리 추수가 5월경이고, 밀 추수가 7월경입니다. 그러면 리스바가 시신 앞에 앉아 있던 시간은 얼마 동안인가요? “보리를 거두기 시작할 때로부터 하늘에서 그 주검 위로 가을 비가 쏟아질 때까지”(10절)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기후가 건기와 우기로 나뉩니다. 4-10월까지가 건기이고, 11-3월까지가 우기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리스바는 대충 5월부터 11월까지 여섯 달 가량을 앉아 있었던 셈입니다. 굵은 베로 만든 천을 가져다가 바윗돌 위에 쳐놓고 그 밑에 앉아서, 낮에는 공중의 새가 주검 위에 내려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들이 얼씬도 하지 못하게 지켰습니다.
이 여인의 속이 어땠을까요? 리스바는 성경에서 또 다른 대목에 얼핏 등장합니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아브넬 장군의 도움으로 왕이 된 다음에, 아브넬이 돌연 이스보셋을 배반하고 다윗 쪽으로 전향하는 일이 발생하는데, 그 계기가 바로 리스바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보셋이 아브넬한테 왜 우리 아버지의 후궁을 건드렸냐고 추궁하거든요. 이건 이스보셋이 효성이 지극해서 그런 게 아닐 겁니다. 고대사회에서 선왕의 여자를 취한다는 것은 권력 찬탈을 의미합니다. 압살롬이 부왕 다윗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도, 아버지의 후궁 10명을 강간하지 않습니까?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아브넬 장군은 아마도 무능한 이스보셋을 빨리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자기가 왕위를 탈취하려는 계획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브넬은 사울과 사촌지간이었으니까, 충분히 대권에 도전할 욕심을 품을 만도 하지요.
정치 고수들의 복잡한 계략 속에서 한 여성의 삶과 인격이 훼손되고 무너졌습니다. 남편을 여의고 홀로 된 여인, 남편의 정실부인이 낳은 아들이 왕이 된 상황에서 어디에 기댈 데 없이 하루하루 불안한 목숨을 연명하던 여인, 그런 리스바를 아브넬이 강간한 것입니다. 아브넬은 이 일로 이스보셋과 사이가 벌어져서 다윗 왕한테 귀순하게 되는데, 급기야 다윗의 오른팔인 요압 장군한테 살해당하고 맙니다. 그러니 리스바의 처지가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보통 성서에서 여자가 이런 지경에 처하면 더 이상 등장하지 않고 사라집니다. 이복 오빠 암논한테 강간당한 다말도 그 에피소드 이후에 돌연 사라져서 성경에 더 이상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리스바는 그렇지 않습니다. 남편 죽고, 남편 휘하의 장군한테 강간당하고, 그 장군도 죽고, 다윗의 보복정치에 의해 자기 아들들 모조리 죽고, 그런 기막힌 상황에서도 여전히 존재를 드러냅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생존자’(Survivor)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리스바의 행동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걸 다윗이 모를 리 없지요. 나무에 달려 죽은 일곱 구의 시신은 무죄합니다. 그저 다윗의 보복정치에 희생당했을 뿐입니다. 리스바는 방치된 주검들 앞에서 여섯 달을 버티며 다윗을 향해 부르짖습니다. 죽음을 능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원한관계 때문에 죽은 것도 서러운데, 승자인 다윗이 이런 식으로 주검을 욕보이는 것은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 한도 너무 커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도 어려울 판인데, 리스바는 억울한 죽음을 보듬으며 연대하고 저항합니다. 자기 아들 둘과 본처의 딸이 낳은 아들 다섯이 오직 사울의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무에 매달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봤을 뿐만 아니라, 그 시신이 낮이면 새들에 의해, 밤이면 들짐승에 의해 훼손되지 않도록 지키는 일을 했습니다.
여섯 달 동안 눈 한 번 제대로 붙이지 못하고, 먹을 것 하나 제대로 먹지 못한 채, 꼬박 주검을 지킨 리스바의 행동이 마침내 다윗을 움직이는 장면은 감동 그 자체입니다. 12절에 보니까 마침내 다윗이 길르앗 야베스로 가서 사울의 뼈와 요나단의 뼈를 수습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일곱 구의 시신도 수습하더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 뼈들이 모두 사울의 아버지 기스의 무덤에 합장되었습니다. 죽음의 의례가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치러진 것이지요.
리스바라는 이름의 뜻은 ‘뜨거운 돌’이라고 합니다. 저는 우리 시대에도 리스바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약자를 죽임에로 내모는 불의한 정치에 맞서 해원상생의 정치를 요구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우리는 두 분의 어머니들을 잃었습니다. 이소선 여사와 박용길 장로님이 그분들입니다. 1929년 경북 달성에서 독립운동가 집안의 막내로 태어난 이소선 여사는 열여덟의 나이에 혼인하여 이듬 해 아들 태일을 낳습니다. 그 아들 전태일이 1970년 11월 13일, 스물 둘 꽃다운 나이에 분신한 사건은 어머니의 삶을 180도 뒤바꿔놓았습니다. 아들을 먼저 보낸 이 어머니는 그 다음부터 아들의 삶을 대신 이어갔습니다. 청계피복노조 초기에 노사협의회가 열리지 않자, 대통령을 만나겠다며 청와대 앞에 온종일 쪼그리고 앉아 있었던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청계피복노조의 성공으로 원풍모방, 동일방직 등에서 민주노조가 결성되었습니다. 어느 해엔가는 청계피복노조 일을 도와주던 대학생 장기표 씨가 긴급조치 위반 혐의로 구속된 뒤 열린 재판에서 판사들을 향해 “당신들은 부모들이 소 팔고, 논 팔아 공부 갈차 노니까, 이 따위밖에 재판을 못하냐. 힘없는 노동자를 도와준 게 죄라고 심문을 하냐”고 대들었다가 법정모독죄로 1년형을 받기도 했답니다.
이소선 여사는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습니다. 특히 투쟁하다가 마지막 수단으로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라도 할까봐 할머니가 되어서도 부지런히 달려갔습니다. 2009년 7월에는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던 쌍용차 노동자들의 장기 농성 현장에도 달려가 “절대 죽으면 안 되니까 소금 찍어서 밥 먹고 살아서 싸우라”고 격려했다고 합니다. 그런 노동자들의 어머니가 향년 81세를 일기로 지난 9월 3일에 소천하셨습니다.
박용길 장로님은 어떻습니까? 9월 25일 93세를 일기로 소천하신 장로님은 문익환 목사님의 반려자이십니다. 황해도 수안에서 태어난 장로님은 경기여고, 일본 요코하마 여자신학교를 졸업하고, 1944년 청년 문익환과 만나 결혼합니다. 이후 오로지 통일을 향한 한 길을 걸어오신 목사님과 나란히 동지애를 나눈 통일운동, 민주화운동의 어머니가 아닙니까? 1976년 문익환 목사님이 ‘3·1 민주구국선언’에 연루돼 투옥되면서 본격적인 투쟁의 길을 걷게 되는데, 통일·민주운동의 길에 뒤늦게 들어섰다는 뜻으로 ‘늦봄’이라는 호를 짓자, 박 장로님은 그 길에 끝까지 함께 동참하겠다는 의미로 자신의 호를 ‘봄길’이라고 지었습니다. 정말 질투 나게 부러운 대목입니다. 한 살 터울로 만나 친구로, 아내로, 동지로 오순도순 살던 남편이 1994년에 먼저 하나님 곁으로 떠났습니다. 2001년에는 장남마저 아버지 곁으로 갔습니다. 한국적 오페라를 창조한 우리 시대의 예인으로 일컬어지는 문호근 선생입니다. 여자가 이렇게 남편 잃고 자식 잃으면 그 한에 묻혀 우울증과 절망감에 시달리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박용길 장로님은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문 목사님이 “우리 민족이 준비 없이 해방을 맞아 분단이 됐으니, 통일은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며 시작한 ‘통일맞이 칠천만 겨레 모임’을 이어받아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통일의 봄길을 닦는 데 헌신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 여성, 김진숙 전국민주노조연맹 지도위원은 아직까지도 부산 영도에 있는 한진중공업 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지금이 며칠째인가요? 저는 지난 8월 21일에 부산에 있는 자그마한 평신도대안교회에 말씀 증거차 내려갔다가 그곳을 방문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늘 가봐야지, 가봐야지, 무슨 해결 못한 숙제를 받아든 사람마냥 끙끙대기만 하면서, 희망버스도 못 올라탄 소시민적 용기없음만 탓하고 있었는데, 교인들과 함께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가보니 크레인 앞에 ‘228일’이라고 써 있더군요. 저는 그 날짜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전까지는 오늘로 며칠 됐다더라, 대단히 추상적이고, 대단히 막연했는데, 딱 8월 21일에 228일이라고 쓴 글씨를 눈으로 본 다음부터는 더 이상 추상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시간을 꼽게 됩니다. 2011년 1월 6일 새벽 3시, 그 차가운 바닷바람을 이겨내고 김진숙 언니가 기어이 85호 크레인에 올랐습니다. 8년 전 구조조정에 맞서 김주익 노조 지회장이 목을 멘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곽재규씨도 목을 멨습니다. 회사는 1천 700억 원의 영업이익이 났고, 경영진들은 수백억의 주식 배당금을 챙겼다는데, 어찌된 일인지 구조조정의 칼바람은 잦아들 줄을 모릅니다. 앞에 선 노동자의 뒷목에 허옇게 핀 소금꽃을 아름답게 보던 김진숙 언니의 감수성이 오늘을 버티는 힘인 것 같습니다.
이소선 여사께서 쓰러지기 직전인 7월 초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지요? “그 사람 어떤 생각으로 올라갔는지 다 알아. 김진숙 죽을까봐 걱정이 돼 잠을 못 자겠어. 제발 죽지 말고 내려와서 같이해요. 내려와요. 내 소원이야. 진숙씨 내 말 듣고 내려와요.”
기우제를 명분으로 피비린내 나는 숙청을 모략하던 정치 9단 다윗도 여섯 달 만에 마음을 돌이켰습니다. 나무에 매달린 일곱 구의 시신 앞에서 그저 가만히, 그러나 젖먹던 힘을 다해 말없이 화해의 정치를 부르짖던 리스바의 항거에 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1월부터 10월까지, 열 달이 다 되어가도록 이 정부는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기업의 오너는 경영난 악화와 세계시장의 흐름만 되뇌이며 둘러대기에 바쁩니다. 두 어머니를 잃은 마당에, 타워크레인에 매달린 김진숙을 위해, 아니 신자유주의 지구화 경제질서 속에서 인간성을 유린당하고 능욕당하는 무수한 알바생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하청업체, 용역업체 파견직 근로자들을 위해 대신 울어줄 어머니는 어디에 있을까요?
저는 박용길ㆍ이소선ㆍ김진숙, 이 세 이름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환생한 리스바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널리 잡으면 또 다른 이름들도 줄줄이 있을 것이나, 최근 두 분의 소천 소식과 또 2011년 최대의 관심이 김진숙 지도위원의 농성이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제 두 분 어머니는 가셨습니다. 김진숙 언니만 남아 있습니다. 지상에서 35미터 높이, 걸어서 한 바퀴 돌면 열 다섯 걸음, 비를 피하고 지친 몸을 뉘일 곳이라고는 운전실 비좁은 한 평이 전부…. 그 위에서 오십대 여인이 불의한 정권, 불온한 시대의 한 가운데로 ‘뜨거운 돌’을 던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비를 내려주신 것은 기브온 사람들이 사울 집안의 일곱 명을 죽임으로 원한을 풀어서가 아님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비를 내려주신 것은 한 여인의 침묵시위가 죽음을 더 이상 욕되게 하지 않고 새로운 해원상생의 정치로 나아간 대목에서 이루어진 은혜였습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한 사람이 굶주리는 것은 온 사람이 굶주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 한 사람이 크레인에 매달려 있는 것은 온 사람이 매달려 있는 거나 진배없습니다. 달리 말하면 온 세상이 죽음을 부추기는 사악한 세력의 손아귀에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이런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다스림에 상반되는 이 세상제국의 심장부에 오늘 나는 어떤 뜨거운 돌을 던지고 있을까요? 이 땅에 하나님의 질서가 구축되게 하기 위하여 오늘 나는 어떤 당사자 투쟁을 벌이고 있는가요?
생명의 하나님, 촛불 한 조각에도 어둠이 슬금슬금 물러나는 걸 봅니다.
세상에 죽음의 악취가 진동하는 까닭은 내가 생명이 아닌 때문이겠지요.
내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생명이 되살아나게 해주십시오.
그저 살아있으니 숨 쉬는 그런 몸생명 말고,
태초에 하나님이 불어넣어주신 생기, 그 생명의 기운이 온 존재에 약동하여,
비록 목숨은 끊어질지라도 영원히 사는 그런 얼생명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우리로 인해 이 세상이 한층 하나님 나라에 가깝게 되는 데
우리를 사용해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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