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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따라간사람들] 터툴리안

영성묵상훈련 오명희 전도사............... 조회 수 3687 추천 수 0 2011.12.17 20: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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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www.inbora.com/bbs/board.php?bo_table=board13&wr_id=69&page=63 
터툴리안

정열과 용기에 찬 라틴신학의 아버지, 터툴리안

순교자의 피는 교회 성장의 씨앗이다
교회의 중심지는 초대교회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시를 거점으로 이루어졌다. 2,3세기의 초대교회에 가장 영향력이 컸던 대도시는 로마, 카르타고, 알렉산드리아였다. 이 3대 도시는 사상적으로 크게 구별되는 두개의 학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카르타고와 로마는 서방학파로 라틴적인 성격의 제도적이며 실제적인 특성을 가졌고, 알렉산드리아는 동양학파로 희랍적 성격의 사색적이고 철학적 관점이 높았다. 서방 기독교 신학의 창시자인 터툴리안은 고대 기독교 인물 중 뛰어난 사람으로 라틴신학과 신학용어의 원조이며 라틴문학을 건설하는데 공헌이 큰 북아프리카의 저명한 저술가 중에서 당대 일인자였다.

성도들의 순교를 통한 회심
아프리카의 라틴신학자이며 도덕론자인 터툴리안은 155년경 현재 북아프리카의 튀니스인 카르타고에서 태어났다. 로마 총독부의 백부장인 부유한 부모 밑에서 그는 그 시대에 받을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헬라어와 라틴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역사와 철학서적들을 많이 읽은 그는, 법률을 공부하여 로마에서 변호사로 일하며 점점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매사에 열정적이고 강렬했던 그의 천성은 생애 초기 우상숭배와 방황가운데 보냈다.
로마의 법정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195년경 어느 날,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당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죽임을 당하는 극심한 상황 속에서도 신앙을 버리지 않는 그들의 영웅적인 모습을 보고, 그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으며 곧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회심 후 그는 타고난 열정과 의지로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장로로 선출되었다.
그는 기독교와 그 문헌연구에 전념하면서 법률에 관한 탁월한 자신의 지적 능력을 활용하여 새로 믿게된 기독교 신앙을 옹호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살던 시대는 우상숭배와 이교적 요소가 교회와 신앙을 혼탁하게 하던 때였다. 진리를 향한 그의 열정은 더욱 활활 타올랐고, 이교도와 유대인 그리고 이단자들을 대항하여 기독교 신앙을 변호하는 일과 엄격한 도덕생활을 추구하며 권장하는 데 자신을 아낌없이 바쳤다.

우리는 죽음을 정복합니다
당시 북아프리카 전역에 있는 교회들은 코모두스 황제(180-192)의 통치 아래 비교적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 셉티미우스 세베르스(193-211)가 기독교를 대적하여 누구도 기독교나 유대교를 믿지 말라는 칙령을 내렸다. 기독교인들은 무조건 엄벌에 처하도록 하였으며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도 법률로 금했다. 이것으로 인해 또다시 박해의 해일이 북아프리카를 덮쳤다. 이교도들은 기독교인들의 예배를 방해하고 거리에서 하나님을 모독하는 시위를 하면서 기독교는 사회의 악이라고 소리 질렀다.
이때 장로 터툴리안은 기독교 신자라면 누구나 숨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순교에 직면하게 될 때 확고하게 설 것을 권면했다. “우리는 죽음을 정복합니다. 죽어 정복당하는 그때가 바로 승리하는 때입니다. 고난을 두려워하는 자는 고난받으신 분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로마서 8:17에서 사도바울도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겠다는 그 사형선고에 대하여 우리는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품과 사람의 성품이 서로 반대되는 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정죄받을 때에는 하나님께로부터는 용서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독교가 결국 승리할 것을 알았다. 그리고 순교자들의 죽음이 불신자들에게 강력한 효력을 발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사실 그가 주님을 믿게된 것도 바로 순교자들의 증거 때문이었다. 순교자들은 교회를 파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 신자들에 대한 존경심을 불러 일으켜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련기간 중에 터툴리안은 그렇게도 열망하던 순교를 하지 못하고 살아남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체포되어 카르타고에 있는 원형 경기장에서 처형되었다.
“당신들이 우리를 많이 죽이면 죽일수록 교회는 더욱 풍성한 추수를 거두게 될 것이다. 순교자들의 피는 교회성장의 씨앗이다”

그의 열심이 교회를 떠나게 하다
어느 시점에서인가 터툴리안은 교회를 떠나 몬타누스파로 불리는 한 금욕주의적 이탈그룹에 가입하였다. 이 파는 대체로 정통교리를 신용했지만 광신적으로 교리와 생활에 엄격하였다. 202년경 그곳 신자들이 가혹한 박해를 당하던 상황에서 몬타누스파들이 보인 용기와 열정을 터툴리안은 보았다. 또한 그의 도덕적인 성품과 엄격한 도덕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그로 하여금 규율이 해이해지고 모든 것이 형식으로 흘러가는 교회에서 자연히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자신은 결코 정통적인 기독교의 교리와 생활에서 떠나지 않았다. 교회에서는 몬타누스파를 정죄하였지만 이 위대한 인물을 따르고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격려와 원조를 받았다.
샤프는 말하기를 “터툴리안을 한 신학자로 볼 때에는 광신적인 분리파라 하기에는 거리가 먼 것이었으며, 그의 저서는 분명히 어느 사람의 것보다 교회에 필요하고 감화를 주는 것이었다.”고 하였다.
노년에 터툴리안은 몬타누스파들과 결별하고 몬타누스파와 카톨릭파의 중간입장을 취하는 독자적인 분파를 창설하였다. 이 터툴리안파는 그의 사후 200년 이상 존속하다가 어거스틴의 감화와 설득에 의해 마침내 기독교 주류파로 다시 합류하였다.
그는 신학 특히 라틴 기독교 신학에 기여한 바가 컸기 때문에 그가 만약 몬타누스파에 들어가지 않았었다면 분명히 당대의 ‘성인(聖人)’으로 기독교 전승 안에 살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향한 그의 뜨거운 열심과 정열이 빚어낸 것이었으니, 그가 청교도적인 입장이 짙은 몬타누스주의에 들어간 것도 어찌보면 이해할 수 있는 모순이라 할 수 있다.

정통을 고수한 불같은 변증가
터툴리안은 2세기때 아프리카 교부들 가운데 헬라어 대신 라틴어를 쓴 최초의 교부로서 현재 36권의 저술이 남아있다. 그는 대단한 열심과 열정을 가지고 글을 썼는데 ‘불같은 터툴리안’이라는 칭호를 얻을만큼 그 저작 스타일이 공격적이다.
그는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를 법률적 접근을 통해 이해하였다. 그에 의하면 복음은 새로운 법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위대한 법률 제정자이며 재판관이다. 즉 그리스도인은 교훈과 법에 충실해야할 뿐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의롭게 되기 위해서는 주어진 그 법을 통하여 도움을 얻어야한다. 그는 성서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명확히 성서를 인용했으며 그런 연유로 교회 전체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깊이있는 주석가가 되었다.
그의 글의 특징은 짧지만 재치있고 생생하고도 직관적인 표현으로 가득차 있으며 지나치게 논쟁적이어서 노골적인 표현도 서슴치 않았다. 그의 언어가 거칠고 통속적인 면이 있지만 거기에는 고상한 임무의 위엄과 참되고 진지한 존엄성이 있었다. 그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모든 것은 현실적인 세계를 목표로 삼고 있었으며 실천적인 결단에 집중되었다.
변증서로서는 회심 초기에 「순교자에게」를 썼고, 변증적 작품인 「여러 민족에게」와 「변증서」를 썼는데, 변증서에서 그는 이방 종교의 비합리성을 지적하기 위하여 이방종교를 해부하였다. 197-200년경에는 「영혼의 증거」를 썼다. 이 책은 심리적 증명에 의한 유신론 변증서로서. 이 책에서 그는 인간 내면의 종교성을 말하였는데 사람의 영혼은, 한 분 하나님만을 알고 있으며 영혼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고 또 마귀의 권세로부터의 보호를 하나님께 호소하고 싶어한다고 믿었다. 212년에는 「스카풀라」를 썼는데 이것은 아프리카 총독 스카풀라가 기독교를 박해하는데 대한 일종의 경고였다.
교리논쟁서로서는 200년경에 쓴 「이단규정에 대하여」, 206-211년 사이에 쓴 「헤르게네스논박」, 「마르시온논박」, 「그리스도의 육신에 대하여」는 모두 영지주의를 논박하는 글들로서, 이단들에게는 성경상의 어떠한 권리도 기독교 전승을 공유할 권리도 없다고 주장한다. 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하고 신앙고백에 일치해서 성서를 이해하는 것으로 족하다. 이런면에서 사도신경은 교회공동체에 의무를 부과하는 ‘신앙의 규칙’으로서 요약되어 혼동없이 전승되었다. 또 그의 「프락세아스 논박」은 단일신론을 논박하는 글로서 이 글로 그는 삼위일체론에 지대한 공헌을 했고, 이 책을 통해 서방에서 기독론적, 삼위일체론적 논의를 위한 표상과 개념을 각인해 놓았다. 교회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 것은 그의 교리가 아다나시우스, 어거스틴, 다른 교부들, 니케아 회의(325년), 칼케톤 회의(451년) 등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에 있다.
여기서 그의 힘차고도 강력한 메시지를 들어보자.

“이제는 만민이 시인하고, 이제는 높은 자리에 계시고, 이제는 승리하신 우리 주님이 속히 재림해 오시는 저 장관을 보라! …나는 말할 것이다. 이분이 너희가 유다에게 돈받고 산 분이다! 이분이 너희가 갈대와 주먹으로 치고, 침을 뱉어 모욕을 주고, 쓸개즙과 신포도주를 마시게 한 분이시다!”

장차 재림하셔서 죄악세상을 심판하시고, 당신의 공의로 죄인들을 심판하실 그리스도의 승리를 선포한 그의 설교는, 당시 박해받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위로와 소망이 되었다.

오늘날 흔히 사용되고 있는 신학 용어들 중에는 터툴리안이 처음 사용한 것들이 많이 있다.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 낸 사람도 터툴리안으로, 그는 “한 본체 안에 세 위격이 연합되어 계신다”는 교리를 공식화하였다. 또한 성례전, 부활, 참회, 신약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도 터툴리안이다.
그의 신학은 대체로 당대에 전형적이었으며 몬타니즘의 영향으로 심하게 변질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그의 작품은 상당히 균형잡혀 있으며 그 작품의 상당수가 서방 사상에 근본적으로 중요하게 남아있던 교리적인 체계를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는 진정 위대한 초기교부들 가운데 한사람이며 라틴 기독교 신학의 선구자이며 서구 정통교회의 옹호자였다.
그의 삶은 오늘날 신자들에게 예수님을 통하여 나타난 도덕적인 빛을 삶 가운데서 실천하도록 하나의 도전을 던져준다. 그의 생애는 이교 철학과 사회와 교회에 만연한 부패를 개혁하려고 일생을 헌신한 생애였다. 또한 교회를 박해하던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그렇게 많은 저술활동을 할 수 있었는지 그의 저술에 대한 정열과 용기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폭넓은 그의 사상은 라틴 신학의 아버지로서, 오늘날까지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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