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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

요한계시 김동현 목사............... 조회 수 2344 추천 수 0 2011.12.20 02:07:26
.........
성경본문 : 계1:9-11 
설교자 : 김동현 목사 
참고 :  

< Dec. 18, 2011 라스베가스 복된교회 / 대림절 네 번째 주일 / 1부 예배 >

< Dec. 18, 2011 / This message is for fourth Lord's Day of Advent. >

계 Revelation 1:9-11

『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 』

『 Companion in the Suffering and Kingdom and Patient Endurance of Jesus 』


중국에는 곰을 사육하는 농장이 있습니다. 곰을 잡아오면 보통 최대 20년 동안 사육하면서 쇠사슬로 곰을 묶어놓고는 산채로 곰의 쓸개에 호수를 꽂아 지속적으로 쓸개즙을 뽑아낸다고 합니다. 어디 중국 뿐이겠습니까? 우리가 다 몰라서 그렇지 그런 짓을 하는 곳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무수한 먹거리, 엄청난 먹거리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것도 부족하여 곰에게서 산체로 쓸개즙을 채취한다는 것이 도무지 말이나 됩니까? 인간의 극악성을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전 중국의 한 농장에서 어미 곰과 새끼 곰을 잡아다가 분리하여 철장에 넣었습니다. 그리고는 쇠사슬에 묶여 있는 새끼 곰의 쓸개에 호수를 꽂아 쓸개즙을 뽑아냈습니다. 쓸개즙을 뽑아내자 새끼 곰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의 절규를 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어미 곰은 상상을 초월하는, 죽을 힘을 다해 자신이 갇혀 있던 철장 우리를 부수고는 새끼 곰에게로 갔습니다. 어미 곰은 새끼 곰의 사슬을 끊고자 온 힘을 다했으나 사슬이 끊어지지 않자, 새끼 곰을 끌어안아 질식사 시키고 말았습니다. 어미 곰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신도 스스로 벽으로 돌진하여 머리를 부딪쳐 죽는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어디 할 일이 없어서 그런 만행(蠻行)을 저지릅니까? 그 얼마나 통탄스럽고 비극적인 일입니까? 살아있는 곰에게서 강탈한 쓸개즙을 먹고 조금 더 건강하게 산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세상 천지에 먹을 것이 널려있고, 우리는 하루에도 무수한 생명체의 희생을 머금고 존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내 한 목숨을 유지하기 위하여 무수한 생명체의 희생을 머금고 있는 우리가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그리고 무수한 생명체의 희생 앞에서 할 수 있는대로 낮아지고 비우는 자세로 사는 것이 인간된 우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우리의 도리이지 않겠습니까? 저는 앞에 소개한 어미 곰과 새끼 곰의 사건에서 생명에 대한 존귀성을 상실한 체, 미칠대로 미쳐버린 극악한 인간의 실상을 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모습이지 않습니까?


또 한 가지 새끼 곰에 대한 형언키 어려운 어미 곰의 애절한 모성애를 보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떠올려 봅니다. 우리 인간을 너무 사랑하셔서 자신의 생명이나 다름 없는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할 정도의 하나님의 사랑, 어미 곰에서 보듯이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애절한 모성애적 사랑이 바로 이 자리에 있는, 하나님의 또 다른 자녀인 우리를 향한 어버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 견딜 수 없는 애절한 모성애적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 그 사랑으로 거듭난 새생명을 갖고 사는 우리가 과연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을 기록한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인 사도 요한은 나이 88세라고 하는 고령의 나이에 밧모섬으로 유배(流配)당했습니다. 당시 유대는 로마의 식민지였고, 도미시안 황제(Domitianus, 재위 AD 81-96) 치하였습니다. 도미시안 황제는 재위 말기에 통치의 누수 현상을 만회하고 통치력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을 신으로 숭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바로 그러한 정책의 첫 희생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지금의 터키 지역에 해당하는 소아시아의 대표적인 기독교 지도자였고, 도미시안 황제의 박해에 의하여 밧모섬으로 유배되었던 것입니다. 밧모섬은 사도 요한이 살고있던 당시에는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올 수 없는 생지옥 같은 유배지로 악명 높은 곳이었습니다. 당시에 주로 정치, 종교 계통의 중범죄자들의 유배지였습니다. 밧모섬은 현재 그리이스 영토이고 에게 해에 있는 13개의 섬들 가운데서 길이 16km, 폭이 9km 정도 되는 초승달 모양의 가장 작은 섬입니다. 밧모섬은 망망대해의 한 복판에 놓인 불모의 바위섬으로서 아직도 돌이 생산되고 있고, 지금은 관광지로서 3000여 명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는 도시이며, 터키의 에베소에서는 약 96km 정도 떨어진 섬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와 같은 밧모 섬의 채석장에서 돌을 깨는 일에 동원되었고, 갖은 학대와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렇게 자신이 당시에 처한 삶에 대하여 본문의 기록대로 “예수님 안에서 환난과 나라와 인내에 동참하는 자인 나 요한은” 이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와 똑같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거듭나 죽을 죄에서 구원받았고, 새생명으로 지음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되는 특권, 하나님나라에서 영생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고, 예수님의 직제자, 곧 사도로 부름받은 요한은 밧모섬에서의 고독한 삶, 모진 학대의 고통과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의 삶, 채석장에서 돌 깨는 고된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쉴틈 없이 긴긴 밤 시간 동안 기도에 전념하는 삶, 두고 온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염려 등의 모습으로 예수님 안에서 환난과 나라와 인내에 동참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일상의 삶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예수님 안에서 환난과 나라와 인내에 동참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살고 있는 삶의 환경이 어떻습니까? 사도 요한 때처럼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목숨을 내놓아야만 하는 순교의 시대가 아닙니다. 불합리한 모진 학대의 고통이나 착취, 굶주림 등이 없는 시대입니다. 개인간에 차이가 있지만 최소한의 풍요와 편리를 누리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 또한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초대 교회 성도들이 겪었던 박해와 환난에 동참할 수 있겠습니까?


옛날처럼 순교라고 하는 거대한 것이 아닌, 우리가 처한 현실의 삶에 걸맞는 것을 찾아내야 하고, 찾아낸 그것을 일상의 삶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이루어갈 수 있는 실제적인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겠습니까?


가장 가까운 나의 가족을 대하는 말과 행동의 변화를 들 수 있습니다. 툭명스럽던 말, 상처를 안겨주었던 말을 다정다감한 말로 바꾸는 것, 내 밖에 모르는 내 중심이었던데서 서로를 배려하는 상대방 중심의 언행이 되는 것, 서로 서로 인격을 존중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 등은 우리의 일상생활 중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의 변화를 결코 어떤 거창한 것에 두지 마십시오. 사실 거창한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들이요, 우리 삶의 현실에서 실현하기 어려운 동떨어진 것들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을 향하여 변화된 언행은 친척들과의 관계 변화, 타인 곧 이웃과의 관계 변화로까지 이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와 더불어 우리의 전 삶을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잊거나 무시하고 지나쳤던 가장 근접한 것들, 가장 작은 것들에 변화를 일으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다음의 것들이 변화되기란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동안 잊거나, 간과하면서 지나쳤던 것들을 돌이켜 보십시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을 어디에서부터 개선시킬 것인가? 어디에서부터 변화를 줄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시고, 아주 소소한 것이지만 변화를 시도해 보십시오.


배우자를 향한, 자녀들을 향한, 동료 직원들을 향한, 이웃을 향한 나의 말로 인하여 내가 상처 받고, 스트레스를 받고, 또 가족이나 동료 직원이 이웃이 상처 받고,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다면,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나도 편안하고, 주위의 사람들도 편안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말을 어떻게 했을 때, 더 좋은 결실이 있는지를 학습해야 합니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연구하지 않으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전히 상처와 고통을 주고 받는 삶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것, 초대교회 성도들이 겪었던 환난에 동참한다는 것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아주 사소한 것에부터의 변화에 있습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에게서부터, 가장 근접한 일, 가장 작은 일에서부터 변화를 시도해 보십시오.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결코 어느날 생각지도 않게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는데,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서로 서로 학습하고, 연구하고, 땀흘려 노력하며 만들어 가는 가운데, 이룩되는 산물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행복을 그렇게 아름다운 관계를 통하여 만들어 가는 사람에게 복을 풍성히 내려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석봉 토스트, 연봉 1억 신화>라는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서울 무교동 코오롱 빌딩 앞에서 아침 7시부터 11시까지 1.5평 남짓한 이동식 스낵카에서 토스트를 굽는 김석봉씨가 그 주인공입니다. 그는 전북 정읍에서 빈농의 6남2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만 졸업한 뒤, 도둑질만 빼놓고 안 해 본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동차 정비소 견습공, 조선소 컨테이너 공장 노동자, 용접공, 과일 행상, 공사장 막노동 등 극심한 육체적 피로가 수반되는 많은 직업을 찾아 전전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97년 3월 토스트 장사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검정고시를 거쳐 신학교까지 졸업한 그는 오전에만 일하고, 오후에는 공부나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일거리가 없을까 고민하다가, 길거리에서 토스트를 파는 노점상이 된 것입니다. 토스트맨이 된 그는 여느 노점상인들과 다르게 장사를 했습니다. 양배추, 오이 등, 토스트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를 매일 구입하여 직접 깨끗이 씻고, 커피 물도 정수기로 걸러내고, 토스트와 함께 판매하는 우유도 전날의 것을 쓰지 아니하고, 아침마다 신선한 우유를 구입했습니다.


또 보통 포장마차에서 쓰는 철제 그릴판을 양질의 스테인리스로 바꿨으며, 두루말이 휴지 대신에 보푸라기가 생기지 않는 최고급 티슈 화장지를 손님들에게 제공했습니다. 모든 재료는 저칼로리 위주의 최고급으로만 선택했고, 조미료와 설탕은 전혀 쓰지 않았습니다. 계란도 일반란이 아닌 값비싼 영양란을 사용했습니다. 또 음식을 만지는 손으로 잔돈을 거슬러 주는 것이 불결하다고 생각해서 스스로 돈을 넣고 잔돈을 거슬러 가는 '셀프 계산제'를 도입했습니다. 또 주위에 있는 호텔의 외국인들도 자주 들르는 것을 보고 메뉴판도 한글, 영어, 일어, 중국어 등 4개의 언어로 표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그는 노점상임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하얀 호텔 조리사 복장을 하고, 항상 환한 미소를 머금고, 손님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오늘도 오셨네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라는 인사를 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그의 모습을 본 손님들이 감동을 받아, 한 번 그의 토스트를 먹어 본 손님은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가 만드는 토스트를 먹기 위해 일본에서 1박2일 일정으로 여행을 오는 일본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무교동 5대 명물로 인정되고 있으며, 일본의 여행가이드 북에도 올라 있고, TV에도 자주 출연하고, 여러 매스컴에 등장하는 등,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고,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김석봉씨는 비록 길거리의 노점상이지만 매월 순수입 8백만 원을 벌고 있는데, 연봉으로 계산하면 약 1억원의 고소득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석봉토스트' 브랜드로 대형 쇼핑몰에 진출하는 등, 15개 체인점의 창업주가 되었고, 작년 6월에는 '샌토매니아'라는 브랜드로 중국에까지 진출했습니다.


요즘 현대인 치고는 소유, 학벌 등 여러 가지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많은 것을 갖춘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멋지고도 훌륭하게 사는 그리스도인이지 않습니까? 바로 그렇게 멋지고 훌륭하게 사는 삶의 모습,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삶의 모습이 예수님의 고난,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겪었던 환란에 동참하는 하나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같은 시대에 우리가 저 이슬람권 나라에 선교사로 가지 않고서는 순교할 수 있는 길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한 모습으로 예수님의 고난, 초대교회 성도들의 환난에 동참하지 않는 이상, 우리가 우리의 삶의 현실, 일상생활에서 예수님의 고난, 초대교회 성도들의 환난에 동참하는 방법은 아주 소박한 것들, 삶의 주변에 근접해 있는 사람들을 향한 나의 언행심사의 변화, 아름다워짐 등에 있음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현재의 우리 삶의 현주소, 우리의 영혼의 현주소, 우리의 신앙의 현주소를 돌아보고, 부족한 부분들을 새롭게 하고자 아름다운 고뇌와 몸부림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되고, 그렇게 변화된 삶 자체가 하나님의 복인 것이고, 또 그렇게 변화된 삶을 살 때에 추가적인 하나님의 복들이 풍성하게 주어짐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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