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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4: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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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남준 목사 |
참고 : | 열린교회 http://www.yullin.org |
나눔의 정신
2006-04-02
I. 본문해설
본문은 성령 강림 사건 이후에 일어난 성도의 공동생활 중 한 마음 한 뜻으로 자신의 모든 물질을 바쳐 서로가 공유하며 생활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성령강림은 복합적 의미를 지닌 사건이었다. 선교적 관점에서 보면, 교회를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시켜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 공동체로 성도들을 묶는 사건이었으며(선교의 불씨), 설교사적으로 보면, 복음의 진정한 의미를 직접 체험하게 하여 담대함 가운데 말씀을 선포할 수 있게 만든 사건이었고(설교의 부흥), 교회론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교회에 부어주신 사랑 강림 사건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성도들은 자기사랑을 전적으로 포기함과 동시에 동질의 까리따스를 가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정신으로 공동생활을 하는 중 삶으로 구체화되어 드러난 모습이 본문의 내용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공동생활이 어느 시대든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생활 형태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지순의 사랑을 공유하게 된 공동체가 밖으로는 영혼구령의 열정으로, 안으로는 나눔의 열정으로 구현되어 그분의 뜻을 이뤄가야 한다는 그 정신은 흩어져 살고는 있지만 지금도 변함없이 이어져야 한다.
II. 성도의 공동생활과 물질
그렇다면 성도의 공동생활과 물질은 어떤 관계가 있으며, 성도들이 지녀야 할 참된 물질관은 무엇인가?
A. 물질을 경멸치 않음: 물질을 경멸하고 가난을 숭고한 덕목으로, 자신의 영혼을 고양시키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복음적 사상이 아니다. 성경은 물질을 악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물질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기에 인간이 선한 목적을 가지고 그것을 사용하면 선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며, 악한 목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악에 기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물질에 대한 성도의 의무는 물질 자체를 경멸하는 삶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소유했더라면 그 사람의 탐욕으로 인해 악한 일에 쓰여 질 그 물질들을 자신이 차지하여 일체의 순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계획에 사용되도록 하는 데 있다. 어떤 의미에 있어서 가난한 것은 하나님 앞에 내세울 덕목이 아니다. 또한 성도의 받은바 소명, 곧 이 세상을 하나님의 창조 목적에 합당하게 고쳐 나감에 있어서도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되리라는 사실도 부인할 수는 없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그 물질을 점유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 속에 있다. 그러나 물질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유업으로 주신 것이며, 불신자들이 이 물질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불법 점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성도는 정정당당한 경쟁을 통해 이 물질들을 획득하여야 하며,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위해 이 물질들을 사용하여야 하는 것이다.
B. 누림과 절제 사이에서: 물질은 누림과 절제라는 미묘함 안에 놓여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노예처럼 여기시고 물질을 맡기신 것이 아니라 자녀 된 우리에게 물질을 주신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집안에 후사가 되었기에 그 물질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는 뜻이 된다. 맡겨주신 물질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은 죄가 아니다. 또한 그렇게 누리며 살아가는 지체들의 물질생활을 정죄하는 것도 복음의 정신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누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도는 절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현재형) 네 마음도 있느니라(미리형)”(마 6:21). 현재는 그렇지 않으나 미래에 얼마든지 물질의 탐욕에 빠질 수 있는 것이 우리 마음임을 보여주는 말씀으로서 하나님의 보좌와 다투는 강력한 것이 물질임을 가르쳐 준다. 지순의 사랑으로 하나님만을 사랑할 때에는 이러한 일은 있을 수 없겠으나, 은혜가 사라지게 되면 사람들은 물질에 대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수많은 이기적 욕망이 공동생활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절제가 필요하다. 좁은 의미로서의 절제는 하지 말라고 명하신 것을 참아내는 것이지만, 넓은 의미로의 절제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허락되었으나 더 높은 목적을 위해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성도의 물질관은 바로 이러한 넒은 의미의 절제가 필요한 것이다. 허락된 것이라고 모두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옳은 일이라 하더라도 절제는 필요하다. 가치 없는 일에 물질과 열정을 쏟는 지혜 없는 자가 되지 말고, 참으로 가치 있는 일에 그 물질을 쓰라 동시에 여유 있게 물질을 누리되 그 물질을 절대로 사랑하지 않는 지혜자가 되라.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없으면 그가 가진 게 무엇이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도 주님을 소유하였으며 그가 안 가진 것이 무엇인가?(어거스틴).
C. 참된 가난함
-소유하지 않음이 아님, 나눔으로 가난해짐: 물질을 탐닉하게 되면 두 가지 결과가 따른다. 첫째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줄 여유가 없게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의 영혼에 심각한 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덕성스런 마음은 물질 소유의 여부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 물질에 대한 탐닉 여부에 달려 있다. 참된 가난함은 소유했으나 타인에게 나눠주고 베풂으로 인해 가난해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소유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그 일들을 감당하여,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기여하도록 흘러들어가게 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며, 진정한 가난함이다.
Ⅲ. 청결한 마음과 공동생활
A. 탐욕을 버림: 나눔의 정신은 청결한 마음과 직결된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복락을 누린다. 그러나 탐욕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청결한 마음을 소유함에 있어서 최대의 적이 된다. 잘못된 물질생활은 우리를 그러한 탐욕에 빠지기 쉽게 만들며, 더 나아가 자신의 육욕을 만족시키는데 물질을 사용하고픈 적극성을 띄게 한다. 가난하고 배고플 때에는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다가 물질을 주시면 그 신앙이 변절되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보는가? 청결한 마음을 가질 때에만 하나님만을 깊이 사랑하게 되고, 삶속에서 그분을 늘 뵈옵게 되며, 충족한 삶을 누리게 된다. 자유하도록 우리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셨으나 하나님의 대한 사랑에서 비롯된 절제함이 있어야 한다. 탐욕을 가지고는 결코 영혼이 아름다워 질 수 없다.
B. 지순의 사랑으로 하나 됨: 그렇게 함으로써 지순의 사랑으로 공동체가 하나 될 수 있다. 물질에 대한 각양 탐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제한된 물질에 대한 다툼은 끝이 없을 것이며, 성도의 하나 됨은 파괴될 것이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것이었으나 그것은 또한 세상 사람들의 것이었다. 그분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를 누리게 하셨으나 결코 모자랄 것이 없으신 분이셨다. 이것이 성도의 공동생활 가운데 그분이 보시고자 하셨던 모습인 것이다. 성실과 정직과 공정함으로 많은 물질을 획득하여 그분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하라. 그러나 먼저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라. 물질이 있다 하더라도 불결한 마음에 그 물질을 담는 것은 그분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근심시킬 뿐이다.
Ⅳ. 결론과 적용
고통 받는 지체들을 위해 주께서 주신 소유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섬기는 삶은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그분은 우리에게 더 많은 것들을 맡기실 것입니다.
나눔 1. 지난주 말씀(서로 존경함)을 듣고 실천했던 삶을 나누어 봅시다.
나눔 2. 행 4:32 설교 말씀의 전체적인 내용을 나누어 보고, 깊이 다가왔던 부분을 서로 말해봅시다.
나눔 3. 신자들의 물질생활의 바른 태도는 무엇입니까?
나눔 4.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자녀 된 우리가 적절하게 누리며 사는 것은 복음적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방종하게 누리다보면 결국 사랑과 탐욕에 빠지게 되는데, 이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나눔 5. 참된 가난의 의미는 무엇이며, 이런 정신을 가능케 하는 한마음 한뜻의 공동체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나눔 6. 자신의 삶속에서 나눔의 실천을 했던 경험을 한가지씩만 이야기 해봅시다.
2006-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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