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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분노, 희망

마가복음 양미강 목사............... 조회 수 1707 추천 수 0 2012.01.07 1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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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1:15-17 
설교자 : 양미강 목사 
참고 :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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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절망, 분노, 희망

(마가복음 11장 15-17)

2011년 11월 20일 주일예배 말씀증거

양미강 목사 (한백교회)

 

그리고 그들은 예루살렘에 들어갔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 안에서 팔고 사고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면서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는 것을 금하셨다. 예수께서는 가르치시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얼마전 [분노하라]는 책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다. 그 책의 저자가 젊은 세대들에게 던지는 화두는 ‘분노’이다. 현재 프랑스의 민주주의의 토대를 만들었던 레지스탕스의 정신, 바로 레지스탕스의 정신이 ‘분노’였다는 것이다. 사회 양극화, 이민자에 대한 차별, 민주주의 위협 등에 저항하는 정신은 이 시대와 우리자신을 더욱 더 강렬하게 상호 연결하는 소통의 끈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면 제대로 들여다보고 제대로 찾아야 하는 것이고, 그것을 제대로 찾을 때 분노할 수 있다. 저자가 분노를 주제로 삼은 것은 아마도 분노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을 향한 질책인 동시에 무관심이야말로 우리의 적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깨어있음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참여적 동기로 전환시킨다는 의미이며, 무관심을 극복하고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실천이 따르게 된다. 따라서 분노는 적극적 행위의 원천이다.

 

분노는 제멋대로 발산하는 질풍노도의 카타르시스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봉합되지 않는 무분별한 감정의 노출과도 다르다. 낭비되는 감정의 소모와 다르다. 제대로 분노할 줄 아는 것은 제대로 문제를 인식하는 동시에, 본질을 바꾸는 지난하고 험난한 길을 따라가는 인내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분노를 파괴가 아닌 새로운 희망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다시 살펴보려고 한다. 오늘 설교는 동시대 인물은 아니지만, 시공간을 넘어서 어떻게 분노가 희망으로 바뀌어가는지, 그곳에서 어떤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지, 세상을 바꾸는 힘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한사람은 309일간 한진중공업 고공크레인에 있었던 김진숙이고, 또 다른 사람은 41년전 11월 13일 청계천에서 분신한 전태일이다. 그리고 2천 년 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십자가 죽음의 행진을 시작한 예수이다.

 

지난 11월 10일 부산 영도 앞바다 한진중공업 85호 고공크레인에서 환한 웃음을 머금은 그가 내려왔다. 그의 이름은 김진숙, 한진중공업이 정리해고 방침을 강행하자 1월 6일 혼자의 몸으로 35미터의 고공크레인에서 농성을 벌인지 309일 만에 살아서 걸어 내려왔다. 새해초 크레인을 올라갈 때 검고 짧았던 그의 머리는 반백이 되어있었고, 사람들은 그를 소금꽃이라 불렀다.

김진숙 그가 올라갔던 85호 크레인은 8년 전 한진중공업 노조 위원장이었던 김주익씨가 정리해고에 반대해 129일의 농성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바로 그 크레인이다. 그는 1월 "이 85호 크레인이 더 이상 죽음이 아니라, 더 이상 눈물이 아니라, 더 이상 한과 애끓는 슬픔이 아니라 승리와 부활'의 자리가 되도록 아직도 85호 크레인 주위를 맴돌고 있을 김주익씨의 영혼을 안고 반드시 살아서 내려가겠다"는 편지를 남기고 떠났다.

 

한진중공업 사태가 장기화되자, 그의 크레인 생활도 장기화되었다. 그는 크레인 위에서 혼자가 아니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정리해고의 부당성과 크레인에서의 일상을 전하면서, 절박한 세상을 향한 그의 외침을 공감을 얻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약 없이 진행되는 그의 힘겨운 투쟁은 사람들에게 “김진숙을 살려내자”는 외침으로 메아리가 되고, 그를 지원하기 위한 희망버스는 계속되었다. 5차에 걸쳐 전국 각지에서 총 35000명이 자발적으로 희망버스에 몸을 싣고 부산 영도로 모여들었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버스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간절함을 함께 담아 85호 고공크레인으로 향해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이르기까지 35미터 고공에서 그것도 비좁은 크레인에서 사투를 벌이는 그의 목숨을 건 투쟁은 사람들에게 감동으로 다가와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SNS 공간에서의 소통은 김진숙, 한진중공업이라는 몇 자 안되는 단어로 전국적, 세계적으로 퍼져가는 통로였고 그 통로에서 김진숙 그는 서있었다. 그 결과 한진중공업과 노조는 연내 해고노동자 전원복귀와 2천만 원 위로급 지급이라는 극적인 타협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는 그의 편지대로 살아서 내려왔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그의 현 직책은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다. 21살의 나이에 처녀용접사로 입사해서 노동조합 투쟁 때문에 해고되고 그후 20여년을 해고자로 살면서 아직도 노동운동을 하고 있는 그야말로 ‘팔자가 센’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는 일당이 세다는 이유로 용접을 배웠고, 돈 벌어 대학을 가는 게 소원이었고 뭔가 이 사회에 도움이 되고자 노동조합에 가입했던 철모르는 촌뜨기였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는 사는 게 지옥 같아서 아침마다 울었고 공장에서 관리자를 만나면 주눅이 들어 안전모를 확인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어야 했다고 한다. 너무 힘이 들어 시계를 몇 번씩 보지만 5분도 지나지 않았던 그때 노동조합을 시작했고 그 후 아침에 회사 가는 것이 즐겁고 당당했다고 고백한다. 자신에게 인간다움을 깨닫게 해주고, 세상을 새롭게 보는 눈을 열게 해주었으며, 자신이 노동자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고 치욕스럽지 않도록 해주었다고 한다.

 

그는 같이 살아야 한다는 생각, 내가 달라져야 그들이 달라진다는 생각, 그들이 딛고 선 땅이 변화되어야 내가 딛고 선 땅도 변화된다는 생각을 했고, 눈물은 곧 다짐이 되었고, 가슴 벅찬 환희가 되었다고 자서전 책에서 고백한다. 다음은 한진중공업과의 협상소식이 전해진 당일, 5차 희망버스가 있던 날 그의 작별인사이다.

 

“오늘로 277일.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습니다. 먹은 걸 다 토해낼 만큼 무서운 바람이 하루 종일 크레인을 뒤흔든 날이 있었고 한증막 같은 철판 속에서 땅에 떨어진 토마 토처럼 물러터지던 날이 있었습니다. 봄부터 여름까지 끝도 없이 내리던 긴 장마에 옷도 젖고 이불도 젖고 마음도 한없이 젖어 뒤척이던 날들도 있었고, 입던 옷을 다 껴입고도 손이 시린 날들도 있었습니다. 단 하루도 마음을 놓을 수 없을 만큼 끊임없이 이어지던 강제 침탈의 위협들. 그 피를 말리는 공포와 긴장의 시간이 모인 277일. 기적 같은 시간이었고 눈물겨운 나날이었습니다. 희망버스가 만들어온 여론이 국회를 움직였고 마침내 요지부동이던 한진 자본을 움직였습니다. 우리 참 멋있었습니다. 희망버스 진짜 멋졌습니다. 크레인의 동지들, 우리 조합원들, 그리고 희망버스 여러분들. 우리 모두 최선 다했습니다. 여러분이 있었기에 우리 네 사람 살아서 땅을 밟을 수 있다는 희망도 품어봅니다. 그런 승리로 가는 길이 이리도 멀고 험난합니까.“

 

김진숙, 그가 정리해고의 직접 당사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모르게 85호 크레인으로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노동자들을 사지로 내모는 정리해고, 이미 그 크레인에서 농성을 하다가 죽어간 동료에 대한 미안함, 부당한 현실에 대한 절망, 그대로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분노, 다시는 이런 죽음이 반복되지 않고 함께 살아야겠다는 희망, 내 삶을 바쳐서라도 죽음의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 그리고 함께 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다. 그리고 그가 보여준 삶을 담보로 한 진정성이 담긴 투쟁은 수많은 사람들을 움직이고 그 움직임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다시 태어나게 만들었다.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피복 노동자로 살다가,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과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의 41주년이 되던 날이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자신의 몸을 던진 전태일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는 교회는 얼마나 있을까? 이 시대 우리가 전태일을 기억해야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우리를 열악한 노동자의 현실을 돌아보게 했으며,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삶의 기본적 권리가 무엇인지를 돌아보게 했고 역사를 바꾸었다.

 

전태일은 청계천 공장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재봉 일을 하던 여성노동자들이 격무에 시달려 폐병에 걸리자 해고되자,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한 ‘노동지옥’ 현실을 사회 각계각층에 호소해왔다. 그러나 경제성장의 그늘 아래 기본적 인권조차 인정받지 못한 당시, 그 누구도 전태일의 외침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전태일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가두시위를 벌이다 몸을 불살랐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그가 죽어가면서 울부짖은 마지막 말이다.

 

현대 한국인물사열전에 전태일과 안병무를 이렇게 소개한다. “세상이 놀랐다. 까마득히 잊혔던 노동자들의 참혹한 현실을 접한 사람들은 쇠망치로 뒤통수를 두들겨 맞은 듯 한 충격에 사로잡혔다. 민주화와 함께 민중 생존권 문제가 시대의 당면과제로 떠올랐다. 기독교인들, 특히 진보적인 신학을 추구하는 무리 가운데서 민중의 고난에 대해 한국 기독교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 하는 뼈아픈 자책과 반성이 일었다.”

 

민중신학자 1세대인 고 안병무 선생은 기독교인의 한사람으로서, 신학자로서 심각한 고뇌에 빠졌다. 그는 전태일의 분신 사건을 씹고 또 씹은 끝에, 전태일의 자기희생은 타자를 구원하는 민중적 메시아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2000년 전에 일어난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현대 한국 민중의 역사 현장에서 계속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안병무는 미발표 설교집 ‘전태일 이야기와 부활’에 이렇게 썼다.

 

“1970년 한 무명의 어린 노동자가 평화시장 앞거리에서 대낮에 자기 몸에 휘발유를 부어 불을 그었습니다. 누구도 알지 못하는, 겨우 소년기를 벗은 젊은 사람, 그 어린 손으로 큰 교회들의 문을 두드리고, 정부와 노동부(노동부는 1981년 설립됐으므로 그 역할을 맡은 정부 부처를 말함-필자 주) 등 여러 곳의 문을 두드려보았지만, 아무 반응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분신이었습니다. …그 분신과 함께 전태일이라는 청년은 갑자기 거인처럼 민중 사이에 살아난 것입니다. …그해와 다음해를 비교해보면, 노동자들이 자기 권리를 찾자는 자주적인 운동이 10배, 20배, 30배로 증가했습니다. 전태일이 어떻게 살았나, 하늘에 갔는지, 땅에 갔는지, 그건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사람들에게, 이야기에서 이야기로 전해지는 동안 뜻밖에도 전태일이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소금꽃 김진숙의 309일간의 투쟁 속에서 전태일의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전태일을 기념한다는 것은 박제화된 전태일, 우상화된 전태일이 아닌, 사람들에게 분노와 희망, 그리고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자신을 던져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자 했던 전태일의 시선으로 김진숙을 기억하고, 또 다시 전태일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대한 무관심이 아닌 이 세상에 대한 분노가 새로운 희망을 만들고 역사를 만든다는 점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예루살렘 입성 후 성전에서 보여준 예수의 성전숙청 사건은 예수의 분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수는 성전 뜰 안에서 물건을 팔고 사는 사람들을 내쫓았고, 돈을 바꾸어 주는 환전상들의 책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었다. 또한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는 것을 금했다. 이정도면 예수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고 볼 수 있다. 예수의 성전숙청 사건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는 별도로 치자. 예수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예수의 질책은 그의 분노가 어디로 향했는지 분명히 보여준다. 성전이 강도굴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전에서 이루어지는 돈 바꾸는 은행업무, 제물용 짐승을 매매하는 상업행위는 예배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법적인 허가상태에서 이루어졌고, 흠없는 짐승을 바치기 위한 명목으로 이미 성전 안에 독과점체제가 형성되어있었다. 총독은 성전헌금의 자유를 인정하고, 사제계급의 자율적 관리를 인정하였다. 이로써 성전은 독과점체제에 유지하는 법적 체계 이루어졌고, 합법성에 기인한 기득권층인 사제귀족이 형성되었고, 그들은 성전수입으로 대토지 소유자가 되었다. 반면 농민들은 소작농으로 전락하였다. 당시 성전에서 매년 순례자들에 의한 희생제물의 매매 수입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니 성전은 종교행위를 빌미로 사제계층들이 돈 버는 장소가 되었고 이에 연결된 큰 손들이 줄줄이 있었던 것이다. 성전은 모양만 그럴듯하지 실제적으로는 사제를 배불리는, 반대로 농민들을 착취하는 강도 굴이었다.

 

예수의 분노와 격렬한 행동은 갑작스럽고 돌발적 행동이기보다는 의도된 행동이다. 예수가 무슨 배짱으로 성전에서 그야말로 ‘난동’을 부렸을까?(기득권자의 입장에서는 난데없는 날벼락, 난동일 것이다) 돈이 오가는 곳이니 병력도 배치되어 있을 테고, 예수의 이런 행동은 바로 그들의 눈에 띄어 결국 이 사건은 결정적으로 그가 죽임을 당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성서는 전한다. 예수의 성전숙청은 죄 사함을 받기 위해 제물을 바치는 행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고, 유대교 귀족들과 성전당국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또한 로마권력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당시 불의한 체제를 상징하는 성전은 예수가 넘고 가야할 산이었다. 한진중공업의 노동자해고가 김진숙이 넘고 가야할 산이었듯이, 청계천 노동현실이 전태일이 넘고 가야할 산이었듯이 말이다. 예수의 공생애 마지막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힘들고 어려웠다. 예루살렘 입성 후 예수는 그대로 묵과할 수 없었다. 성전을 향한 예수의 분노는 이 세상에 대한 사랑이었다. 성전을 회복하는 일은 그가 외쳐온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나라는 김진숙과 전태일이 말했던 사람답게 사는 삶, 죽임의 세력에 대항하는 살림의 원리가 지배하는 것, 그리고 죽어가고 희생당하는 것에 대해 외면하지 않겠다는 외침과 실천, 희망이 상징이다. 잘못된 시스템을 바꾸는 일을 하지 않고는 예수 그 자신이 말했던 하나님 나라는 오지 않는다. 아닌 것에 대해 NO라고 말하는 것은 분노요, 용기요, 그를 따랐던 민중들에 대한 사랑이었고, 죽어가는 세상에 대한 살림적 행동이었다. 그리고 예수는 계속 그의 길을 걸어갔다. 십자가를 향해서 뚜벅뚜벅..... 예수가 이 세상에 분노하고 이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 속에서 전태일과 김진숙을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2천년을 뛰어넘어 이 시대의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싶다. 하나님나라는 무관심을 극복할 때, 스스로 깨어있을 때, 이 시대와 내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소통의 끈을 놓지 않을 때 이루어집니다. 정작 자신을 위한 작은 일에만 분노하는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며 우리 모두 이 세상에 고통 받는 것들과 함께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실천할 때 하나님나라를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第十四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간호원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간호원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도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 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二十원 때문에 十원 때문에 一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一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난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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